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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밤의 소리 / 문서정

 

나는 밤에는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밤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가령 마른 잎사귀와 마른 잎사귀들이


바람에 부딪혀 가랑가랑한 기침 같은 소리를 내는 것,


느티나무 둥치에 매달려 있던 매미가 허물을 벗는 소리,


눈송이들이 철 대문 위로 싸그락, 싸그락 내려앉는 소리,


육중한 트럭이 차도 위로 달려드는 고양이를 밟고 지나가는 소리,


양탄자처럼 납작해진 고양이가 차도 위에서


마지막 신음을 내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왼쪽 귀가 없다. 귀가 있어야 할 곳에 수박씨만한 작은 구멍만 있다.

 

벽을 마주보고 모로 눕는다. 나는 어둠 속에서 팔을 뻗어 손바닥으로 벽을 더듬는다. 작고 돌올한 것들이 만져진다. 베이지색 바탕에 노란색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엠보싱 벽지를 만지면 꽃잎들이 손에 가득 들어온다. 나는 그것들을 귀라고 상상한다. 굳이 세어본다면 족히 천여 개는 되지 않을까. 아주 작고 귀여운 꽃잎들은 새끼 짐승의 귀, 큰 꽃잎들은 크고 울퉁불퉁한 귀, 끝이 뾰족한 꽃잎들은 톱니바퀴처럼 날카롭게 생긴 동물의 귀라고 생각한다. 귀들이 온 방안을 돌아다니다 내 몸에 내려앉는다. 머리카락, 손톱 끝, 어깨, 둔부, 음모 위에 앉는다. 천 개의 귀들이 천 개의 상처를 가진 나를 위무하는 시간이다. 나는 그것들을 가만히 쓰다듬어 준다. 천 개의 귓속으로 차도의 소음들이 빨려 들어가고, 사람들의 소리가 흘러 들어간다.


희명 씨는 왜 맨날 밤 근무를 자청해서 할까?”


자원 봉사자가 반납된 도서 카트를 밀고 다니며 책을 제 자리에 꽂다말고 철학서가 코너에 서 있는 사서 H에게 뜬금없이 묻는다.


수당을 주니깐 하는 거죠.”


H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묻는다는 듯이 살짝 퉁을 주듯 말한다.


아니, 저렇게 젊고 예쁜 아가씨가 왜 밤도, 휴일도 없이 자원해서 근무를 하느냐 말이에요?”


면장갑을 벗으며 자원봉사자가 한 번 더 묻는다.


아니, 정말 몰라요? 희명 씨 청각 장애인인 거. 가족도 없고 애인도 없는 사람이 밤 근무라도 해서 돈이라도 벌지 뭐하겠어요? 게다가 희명 씨는 성형중독자라고요. 매년 전신 피부재건성형을 해대는데 돈도 많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H가 비밀이라도 털어 놓는 양 은밀한 목소리로 답한다.


저녁 식사 후, 도서관 종합자료실 데스크에 앉아 컴퓨터로 신간 도서 분류 작업을 하고 있는 나를 두고 두 사람이 설전을 벌인다. 그들은 내가 당연히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내 얘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나는 다 듣고 있으면서도 못 들은 척 한다. 씨발, 이라는 욕이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치밀고 나왔지만 도로 삼켰다. 대신 H의 이름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고 날짜, 요일, 시간, 그녀가 나에 대해 한 신체 비하 발언을 그대로 기입한다. 이런 걸 공격적 수비라고 하는 거다. 누구든 나를 공격하면 나는 백 배, 천 배로 되갚아 준다. 얼음도 이빨이 있다는 걸, 나무 그늘도 날카로운 손톱이 있다는 걸 H는 곧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여덟 살 때 6급 청각 장애인 판정을 받았고 작년에 새로 5급 청각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두 귀의 청력 손실이 각각 60데시벨 이상으로 50센티미터 이상 거리에서 발성된 말소리는 듣지 못한다. 손을 귀에 갖다 대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은 들을 수 있다. 복잡한 차도의 경적 소리, 초인종 소리, 도서관 사무실 바닥에 유리컵이 떨어지는 소리 등은 희미하게 들을 수 있다. 오른쪽 귀에 보청기를 끼면 차 경적 소리, 초인종 소리 등을 조금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 청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언젠가는 양쪽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청력이 서서히 회복되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어본 적이 없다. 이미 여덟 살에 세상의 어둠을 모두 보아버렸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희망을 버려야만 세상을 그럭저럭 살아낼 수가 있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여덟 살 이후로 왼쪽 귀에 인조 귀를 부착하고 다녔지만 실제 귀가 아니라 인조 귀라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밤에는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밤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가령 마른 잎사귀와 마른 잎사귀들이 바람에 부딪혀 가랑가랑한 기침 같은 소리를 내는 것, 느티나무 둥치에 매달려 있던 매미가 허물을 벗는 소리, 눈송이들이 철 대문 위로 싸그락, 싸그락 내려앉는 소리, 육중한 트럭이 차도 위로 달려드는 고양이를 밟고 지나가는 소리, 양탄자처럼 납작해진 고양이가 차도 위에서 마지막 신음을 내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낮 시간에 봉인되었던 소리가 밤이 되면 스스로 빗장을 열고 나에게로 달려온다. 여러 소리 중에서 가장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죽음이 깃든 소리이다. 수심에 찬 깊은 한숨 소리, 중환자실 침대 난간을 붙잡고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 등은 더 잘 들린다. 왜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건 나로서도 참 신기한 일이다. 만약 내가 검진 의사에게 밤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의사는 분명 청각 장애 5급 판정에 덧붙여 정신 장애 3급 판정을 내릴 게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화상으로 왼쪽 귀는 형태조차 없고, 왼쪽 목덜미부터 왼쪽 어깨와 팔, 왼쪽 유두에까지 엷은 화상 자국이 있는 스물일곱 살의 아가씨가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꾸며낸 이야기일 거라고 가엾게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여덟 살 때 집에 불이 났다. 불길이 방 한 칸, 부엌 한 칸을 삼키고 엄마와 언니도 삼켰다. 나는 화마로 청각 장애인이 되었고 늘 머리를 길러야 했다. 긴 머리카락이 인조 귀가 부착되어 있는 왼쪽 귀와 화상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목덜미를 덮을 수 있도록. 내가 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내 운명이 너무 가여워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2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는 늘 나를 위하여 기도했다. 할머니는 천수관음보살상이 있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분황사에 가서 매일 천 배를 올리셨다.


두 무릎 구부리고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 앞에서 빌며 아룁니다. 천 개의 손에 있는 천개의 눈, 그 중 하나를 덜어서 우리 희명이, 불쌍한 내 새끼에게 귀 하나 만들어 주옵소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늙은 목숨은 거두어 가시고 젊디젊은 내 새끼 청력은 살려 주시오소서!


할머니는 사찰에서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기도를 했다. 길가 장승 앞에서나,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나 교회 첨탑 위의 십자가를 보고도 언제나 나를 위해 기도를 했다. 할머니는 당신의 염원대로 늙은 당신의 몸을 외제차가 거두어 가게 하셨다. 젊으나 젊은 내게는 수억의 보상금이 주어졌다. 외제차가 할머니를 치였는지, 운전자의 말대로 할머니가 차도로 뛰어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날 밤, 나는 바람이 창틀을 흔들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길고양이가 이웃집 담을 넘어가는 소리도 들었다. 새벽엔 앞집 현관문 우유 주머니에 500밀리리터 우유가 담기는 소리, 삶을 한 번 훌렁 뒤집어봐!, 하며 다리 위에 서서 어떤 남자가 울부짖는 소리도 들었다. 그날부터 내게 세상은 들리는 세계와 들리지 않는 세계, 밤의 세계와 낮의 세계로 확연히 구분되었다.


포구에서 들리는 파도의 철썩거림을 들으며 눈을 감는다. 현관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앞집 1003호 부부의 애들 성적 걱정, 은행 대출금 상환 계획 등을 의논하는 소리, 옆 집 1005호 청년이 문을 여닫는 소리, 벽에 무언가를 탁, , , 던지는 소리, 아래층 904호 여자의 교성이 고스란히 들린다. 80킬로그램은 족히 넘어 보이는 50대 아줌마의 교성치고는 꽤 섬세하고 농염하다. 나는 귀를 막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밤의 소리를 지각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적대감과 세계에 대한 불안감을 더 높이 쌓는 일일 뿐이다.


할머니의 따스한 손이 그립다. 가칫한 손으로 왼쪽 귀부터 화상 난 자국을 따라 내 몸을 어루만지며 나직이 읊조리던 할머니의 기도문을 인용해 주문을 외워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부디 밤의 소리들은 거두어 가시고 낮의 소리들을 들려주소서!”


나는 P시 시청 내 도서관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다. 공공기관 장애인과 귀화 외국인 의무고용 할당제가 생기고부터 운하의 도시이고 철강의 도시인 P시 시청에도 장애인이 두 명, 귀화 외국인 한 명이 채용되었다. 장애인 공무원 두 명 중 한 명은 계약직 9급 사서인 나이고 또 한 명은 시청 문화동 갤러리실에 근무하는 큐레이터 조승우 실장이다. 그는 프랑스 유학 중에 스키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후천적 장애인이다. 그는 사고 전에도 유능한 큐레이터였고 사고 후에도 유능한 큐레이터이다.


들리는 세계와 들리지 않는 세계, 둘 다를 경험하고 있는 나와, 두 다리로 걷는 세상과 휠체어 바퀴로 걷는 세상을 다 경험해본 조 실장은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조 실장은 서른다섯 살로 하얀 피부에 조각상 같은 이목구비에 붉은 입술을 가졌다. 남자가 붉은 입술이라니! 데이트 상대로는 분에 넘치는 남자였지만 우린 이따금 데이트 비슷한 걸 한다. 주로 미술관에서 설치 미술을 감상하거나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정도이다. 그는 절대로 내가 휠체어를 밀도록 하지 않았다. 운전도, 요리도 뭐든 직접 했다. 그는 내가 그보다 키가 훨씬 크다는 사실에도 기죽지 않았다. 둘이 종종 거리를 걸을 때면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휠체어를 탄 남자와 키가 170센티미터인 여자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다들 이상스럽게 쳐다보았다. 게다가 나는 종종 수화를 하기까지 하니 더 기이하게 보였을 것이다.


조 실장이 오늘 저녁 나를 초대했다. 그의 오피스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자는 거였다. 그와 함께 있을 땐 사람들의 시선이 늘 부담스러웠는데 그의 오피스텔에서의 데이트는 최소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어 좋다. 그의 집에 가기 전에 오래도록 샤워를 했다. 가슴 라인과 힙 라인에 옅은 꽃무늬 패턴이 들어간 캘빈 클라인 제품의 브래지어와 팬티, 짧은 누드 톤 슬립을 갖춰 입었다. 왼쪽 귀부터 왼쪽 가슴까지 연하게 파운데이션을 발랐다. 할머니의 사망보상금으로 피부재생수술을 매년 받고 있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내 갈비뼈인 연골로 귀를 만들어 붙이는 성형 수술도 하려고 했으나 진짜 귀의 모양이나 기능과는 매우 다르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포기했다. 남자와 가정을 꾸려 정상적인 삶을 살아보겠다는 꿈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지만 그와의 만남은 늘 나를 설레게 했다. 나는 오늘밤 거추장스러운 내 처녀성을 파괴해 버릴 생각이다. 물론 그가 원한다면 말이다.


그의 오피스텔은 스틸하우스가 많은 동네에 있었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입주 할 수도 없는 70평 대 고급 오피스텔이었다. 정문에서 보니 형산강 물줄기가 유유히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어느새 어스름이 깔려오고 있었다. 소리들이 귓가에 쟁쟁 울리기 시작했다. 새들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소리, 가로수 잎들이 바람에 살랑대는 소리, 어스름을 안고 투명하게 흘러가는 강물 소리가 기분 좋게 귀에 감겼다. 오른쪽 유두가 바람에 날리는 원피스 자락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는 과일 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나를 쑥스러운 듯 맞이했다.


어서 와.”


낮 동안, 소리가 삭제된 채 보이는 그의 모습만 보다가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편안하고 따뜻했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익숙한 동작으로 냉장고에서 볼을 꺼냈다. 볼 안에는 정사각형으로 큼직하게 잘라 갖은 양념과 술에 미리 재워 둔 고기가 들어 있었다. 그가 고기를 볶고 상을 차리는 동안 나는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희명아, 슈베르트 피아노 연주곡으로 준비했어. 볼륨을 최대치로 높였어. 들려?”


그가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입모양을 크게 해서 말했다. 수화를 배울 동안은 입모양을 크게 해서 말할 테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귀가 몹시 따가웠지만 나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자막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나는 기네스를, 그는 양주를 마셨다.


희명아, 너를 좋아해.”


그가 입을 크게 벌려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나는 그의 입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술이 내 입술로, 머리카락으로, 목덜미로, 가슴께로 내려왔다. 갑자기 그가 동작을 멈췄다. 조명등을 켰다. 왼쪽 귀에 피부전용접착제로 단단히 부착해 놓았던 인조 귀가 그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다. 그가 내 왼쪽 어깨에 걸쳐져 있는 슬립 끈을 거칠게 내렸다. 왼쪽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더니 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야? 도대체 이 물건은 뭐야? 왜 말 안했어. 이건 반칙이야!”


나는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감싸며 그를 빤히 쳐다봤다.


당신이야말로 반칙이야. 불부터 끄라고. 그리고 하나씩 물어보란 말이야, 이 병신 새끼야!”


그의 동공이 커지더니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순간이었다. 그가 나의 뺨을 때린 건.


병신이라고 말하지 마! 네가 아니라도 숱하게 듣는 말이야. 왜 말하지 않았어?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당혹감과 배신감으로 가득 찼다.


병신! 술만 마실 줄 알지 여자 마음은 마실 줄도 모르는 병신 새끼!”


나도 그의 뺨을 때렸다.


병신이라고 말하지 말랬지! 너는 나를 속였어, 나를 속였다고!”


그가 한 번 더 내 뺨을 쳤다.


언제든 말을 하려고 했어. 속인 건 아니라고! 당신이라면, 당신이라면 나를 이해해 주리라 믿었어.”


나는 발악하듯 대들며 그의 뺨을 한 번 더 갈겼다.


그의 심장이 격하게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도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누구든 나를 치면 피범벅이 되도록 곱절로 되갚아 준다. 이것이 여덟 살 이후 내가 세상을 견뎌온 방법이다. 나는 무엇을 간절히 원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무엇을 간절히 원하기 전에 내가 그것을 원할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언제나 고개가 저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 실장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고 싶지 않았다. 그를 간절히 원했다. 설령 조 실장이라 하더라도 나를 치면 나는 물어뜯을 수밖에 없다.


방에 불도 켜지 않은 채 탈진하듯 침대로 가 눕는다. 고작 세 시간 동안 조 실장 집을 다녀온 것뿐인데 오랜 시간, 먼 공간을 건너 온 것 같다. 목덜미 뒤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손으로 벽을 더듬는다. 어둠 속에서 귀들이 돋아난다. 무수히 많은 귀들이 허공에 떠다닌다. 작고 앙증맞은 귀들이 귀엣말로 속삭인다. 울지 마, 울지 마! 귀들이 내 눈물을 핥는다. 귀들이 하나씩 벽 속에서 태어날 때마다 내 울음은 줄어든다. 페니스 크기 만 한 귀가 질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질 깊숙이 파고들어 오랫동안 머무른다. 들떠 오르는 옅은 신음이 천 개의 좁은 달팽이관속으로 음밀하게 숨는다.


밤 아홉 시, 자원봉사자가 반납 도서 카트를 데스크 앞으로 밀어 두고선 퇴근을 한다. 도서관 종합자료실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시청 내에 있는 이곳 도서관은 열람실이 따로 없다. 종합자료실 중앙에 원탁 테이블과 의자가 구비되어 있고, 장방형 각 코너 마다 긴 책상과 의자가 구비되어 있어 책이나 신문 등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아직 서너 명의 사람들이 남아 있다. 그 날 이후로 조승우 실장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같은 시청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그가 있는 갤러리실은 문화 1동이고 이곳 도서 자료실은 문화 2동에 있어 부딪힐 일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 휴대폰에 눈길이 간다. 메시지 창을 자주 확인한다. 충동적으로 그에게 먼저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휴대폰을 서랍 깊숙이 넣는다.


종합자료실은 내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와 차도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과 자료실 복도에 설치된 자판기 동전 투입구에 누군가 동전을 집어넣는 소리만이 들린다. 종합자료실 옆 자료조사실에서 스카치테이프 뜯는 소리가 계속해서 난다. 두런두런한 말소리도 간헐적으로 새어 나오고 있다. 자료조사실은 사서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다. 도서 라벨을 붙이거나 파손된 도서들을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정비하거나 신간 서적들과 폐기될 정기 간행물들을 보관해 두는 곳이다. 나는 진작부터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유난스레 스카치테이프 뜯는 소리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진통제를 먹어야 겨우 진정이 되곤 했다. 숨을 죽이고 발끝으로 걸어가 자료조사실 문을 소리 나지 않게 열었다. 간접 조명만 커져 있다. CC TV 사각지대에 있는 코너 벽 쪽에 남녀가 마주 보고 서 있다. 사서 H와 홍보실 주임 K. KP시 홍보용 스토리텔링 책자 발급 건을 모 출판사에 전권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받은 얘기를 하고 있다. 나는 스마트폰 동영상 버튼을 누른다. K가 돈 봉투를 H에게 건네더니 포옹을 한다. 이어 입술과 입술이 부딪히는 소리, 혀가 혀를 깊숙이 흡입하는 소리. 바지 지퍼를 내리는 소리, 선이 굵은 K가 내는 낮은 탄성, H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옅은 신음이 들린다. 내가 들어 온 줄도 모르는 그들은 하던 짓을 멈추지 않는다. 내일 아침이면 시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동영상이 올라올 것이다. 둘 다 기혼인 그들은 분명 중징계를 당하게 될 것이다. 나는 받은 건 반드시 곱절로 갚는다. 상처밖에 없는 나에게 또 한 줄의 상처를 남긴, 동료의 아픔을 비아냥거린 H를 나는 용서할 수가 없다.


피곤에 절은 몸으로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뒤에서 향수 냄새가 난다. 아래층 904호 여자다. 밤마다 남편에게 잔소리를 해대다 교태를 부리다 하는 여자다. 푸훗, 웃음이 난다. 여자가 1004호 아가씨네, 하며 따라 웃는다. 오늘, 많이 덥죠? 물빛 원피스 참 곱네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둘이 머쓱하게 있기가 겸연쩍었던지 여자가 먼저 인사말을 건넨다. 나는 눈인사만 건넨다. 나는 아래층 여자의 경제 사정이며 부부 사정을 낱낱이 알고 있기에 쿡, 자꾸 웃음이 난다. 여자의 얼굴을 찬찬히 살핀다. 여자의 얼굴 주름을 살펴보는 중이다. 여자는 지난 주말,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바르면 십 년쯤은 젊어진다는, 왕후의 품격을 갖춘 여성들만이 바를 수 있다고 광고를 해대는 동안크림을 50만 원 주고 샀다. 그날 밤, 여자는 밤늦도록 여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카드 값을 걱정했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휴대폰을 침대 협탁 위에 두었는지 확인한다. 아직도 조 실장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 ! ! 벽 너머에서 소리가 난다. 무언가 뾰족한 기구로 책상 위를 찍어대는 날카로운 소리이다. 늘 이맘때쯤이면 나는 소리이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3개월 전부터 줄곧 듣던 소리이다. 내 침실과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1005호에서 나는 소리이다. 나는 1005호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1500세대가 넘게 모여 사는 복도식 13평 주공 아파트, 1005호 입주민과 나는 벽 하나를 공유하고 있다. 이어 뭔가 벽에 부딪혔다가 방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파손될 염려가 없는 가벼운 물건들일 것이다. 방금 1005호 방에서 젊은 남자가 볼펜 같은 걸로 책상 위를 찍어대다 책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벽으로 던졌을 것이다. 이어 그가 벽 쪽으로 아주 딱딱한 질감의 작은 물건을 연속적으로 던지는 소리, 방문을 열고 나가 화장실 문을 여닫는 소리가 여과 없이 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침대 위로 몸을 던진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는 아마도 침대 위에 1220분 자세로 누워 있을 것이다. 그가 다리로 이불을 감는 소리, 몸을 뒤척이는 소리로 미루어 그의 자세까지 알 수가 있다. 오늘 밤도 또 숙면을 취하긴 그른 것 같다. 그가 밤새 잠을 잘 자줘야 나도 편히 잠을 잘 수 있다. 밤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부터 침대에 눕는 것이 두렵다. 소리들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솜으로 오른쪽 귀를 막거나 이어폰을 끼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부디 밤의 소리들은 거두어 가시고, 낮의 소리들을 들려주소서. 자장가처럼, 주문처럼 백 번 쯤 외우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긴다.


문화동 전체, 아니 시청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무심한 척 종합자료실 데스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업무에 집중하려 애썼다. H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장이 나를 부른다는 전갈이 왔다.


관장은 책상에 앉아 있다가 유연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40대 후반인 여자 관장은 무척 수다스러운 편이었지만 상당히 정치적인 인물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사람이었다. 윗선들한테는 정색을 하고 깍듯하게 대하며 최대한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부하 직원들에게 일을 다그치고 독려할 때는 걸걸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농담을 섞어가며 하는 베테랑 공무원이었다. 관장이 책상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이어 흰 종이에다 글자를 적어 내게 보여 주기도 하며 입을 크게 벌려 천천히 말한다.


여기 도서관에서 일한 지 3년 됐지요?”


.”


뭐 불편한 점은? 가령 동료들과 불편하다든가, 소통이 잘 안된다든가……


…….”


곧 특채가 있을 예정인데 오희명 씨는 내가 특채 대상자로 적극 추천할 생각입니다. 시청 게시판에 올라온 동영상은 오늘 아침에 삭제되었습니다. 그래도 일파만파로 인터넷 포털 검색어 1위로 올라있군요. 외국 리얼 동영상을 흉내 낸, 배우 지망생들의 설정된 동영상이라는 기사가 나갈 겁니다. 오희명 씨 생각은 어떤가요? …… 나와 생각이 다르다면 지금 말해 주세요.”


…….”


그럼, 나와 생각이 같은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곧 인사이동이 있을 겁니다. H는 감봉 처리되며 면 단위 도서관으로 발령이 날 겁니다. K는 당분간 정직 후, 강원도 산중으로 파견 근무 보낼 겁니다.”


시청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 사람들은 나를 보면 당황해하거나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홍해의 물이 갈라지 듯 나를 피해 양가 벽 쪽으로 붙었다. 어떤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속닥거렸다. 저 여자가 미스 베토벤이야? 귀머거리 사서 말이야. , 맞아. 바로 저 여자야. 미스 베토벤, 성깔이 장난 아니네. 에휴, 소름 돋아. 상종을 말아야겠어. 원래 장애인들은 콤플렉스 덩어리들이야. 그들의 입모양을 보고서 읽어 낸 내용들이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몇 캔 샀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 근무 내내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누구도 내게 눈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나는 귀 하나만 없는 게 아니라 직장이든 어디든 이야기 나눌 사람 하나 없다. 미스 베토벤이라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는지도 몰랐다. 아다다, 어버버, 라고 부르지 않은 것만도 다행한 일이었다. 빨간 세퍼드, 라는 학창시절 별명보다는 천 배, 만 배나 그럴싸한 별명이었다.


고등학교 때 별명은 빨간 세퍼드였다. 졸업식 날이 되어서야 내가 그동안 빨간 세퍼드라 불렸다는 걸 알게 됐다. 교장실 앞 복도에 꿈은 이루어진다’, ‘하면 된다’, 라는 글귀가 씌어진 액자에 나는 빨간색 락카 스프레이로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써놓았다. , 한여름인데 머리를 좀 묶는 게 어떠니? 보는 사람이 다 덥다, . 누가 네 귀만 쳐다보고 다닌다니? 이젠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니? 라고 말한 20대 여교사 자동차에는 개보지’, 라고 빨간색 락카로 도배를 해 놓았다. 그 후, 누구도 나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건드리면 물린다, 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슬픔은 머리카락처럼 자라나고, 불행은 밤처럼 점점 짙어 간다는 걸 나는 이미 열일곱 살에 알아 버렸다.


, , . 옆 테이블에서 나는 소리이다. 비니 아래로 굵게 웨이브 진 머리카락이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어떤 남자가 한 손으로 캔 맥주를 마시며 다른 손으로 볼펜을 쥐고 테이블을 찍어댄다. 차 소리에 묻혀 다른 사람들은 들을 수 없겠지만 나는 또렷하게 들린다. 매일 밤 듣던 익숙한 소리이다. 바로 1005호에서 나던 소리이다.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무척 해사한 얼굴이다. 20대 후반 쯤, 큰 키에 마른 남자다. 남자는 왜 뭐든 자꾸 찍어댈까? 다들 일을 하러 나간 낮에도 저렇게 찍어댈 게 분명하다. 다들 잠을 자는 밤에도 수시로 무언가를 톡, , , 찍어대는 남자가 있다는 걸 주민들은 모를 것이다. 밤에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자가 그 청년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는 것도 역시 주민들은 모를 것이다. 피식, 헛웃음이 났다.


후두둑.


갑자기 비가 쏟아지자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주공 아파트를 향해 갔다. 나도 엉거주춤 일어나 편의점에서 산 비닐우산을 들고 남자를 뒤따랐다. 남자가 301동 중간 현관문으로 사라졌다. 내가 사는 동이다. 나도 중간 현관문으로 들어섰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10층에서 잠시 섰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남자 멱살을 잡고 당신이 뭔가를 두드리고 던져대는 소리 때문에 잠을 도통 잘 수 없다고, 제발 소리 좀 내지 말아 달라고, 한 번만 더 소리를 내면 당신을 사나운 개처럼 물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말을 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빗소리가 실내에 가득 찼다. 너무 크게 들려 고막이 찢어 질 것 같다. 이어폰으로 막는다. 순전히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다. 빗소리를 듣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벽 너머에서 무언가 벽을 향해 끊임없이 던지는 소리가 들린다. 종잇조각이나, 과자 봉지, 티슈 조각처럼 아주 가벼운 물건들을 던지는 소리이다. , , . 이어 벽을 향해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걸 던지는 소리가 난다. 오른쪽 귀를 틀어막은 작은 솜뭉치는 어디로 빠져 버렸는지 없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카디건을 걸치고 1005호로 향한다. 이제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초인종을 연속적으로 누른다. 문이 열린다. 문 뒤로 보이는 실내는 캄캄하다. 아까 편의점에서 봤던 파리한 얼굴의 남자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경계의 눈빛을 하고 서 있다. 제 멋대로 흐트러진 곱슬머리가 목덜미를 덮고 있어 베토벤을 연상시켰다.


, 무슨 일이죠?”


“1004호 사는 사람이에요. 벽에, 그러니까 벽으로 던지지 말라고요.”


, , 무얼 던, , 던지지 말라는 거죠?”


남자는 말을 더듬거렸다. 평소 긴장하면 나타나는 말버릇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물건들을 던지지 말라고요. 휴지나 종이, 과자 봉지, 뾰족한 기구 같은 것도요. 책상 위도 두드리지 말라고요.”


나는 다소 짜증스럽다는 듯 빠른 속도로 말을 건넸다.


, 그 소리가 들려요? 그 소리들이 들, , 들린단 말인가요?”


남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무척 순진해 보이는 눈이다.


…….”


나의 침묵이 어색했던지 그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로 1004호 사는 거 맞아요? , 당신도 환청을 듣는 건가요?”


…….”


정말 그 소리들이 다 들려요? 죄송합니다. , , 죄송합니다.”


남자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맥이 풀렸다. 남자는 대기에 떠있는 공기 앞에서도 고개를 못 들고 굽실거릴 사람이었다. 내가 푸훗, 웃음을 터뜨리자 남자는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문을 닫았다.


남자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씩씩거렸다. 아까 파리한 표정으로 말소리를 더듬으며 나를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던 것과는 대조적인 행동이었다. 벽으로 자꾸만 무엇을 더 던져 댔다. 나중엔 베개며, 생수병을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별 귀신같은 여자 다 보겠네. 취업 재수생들이 환영과 환청에 시달린다고 하더니. 모르는 여자까지 나를 우습게보네. 그래, 우습게들 보라고. 다 그놈 때문이야. 그놈 때문에 뭐든 안 되는 거라고. 나를 어느 직장에서 받아 주겠냐고! 나는 벽을 탕, , 쳤다. 남자가 캔을 벽으로 던졌다. 나는 더 세게 벽을 탕, , 탕 쳤다. 남자가 이번엔 백팩 크기만 한 물건을 벽으로 던졌다. 나는 더 세게 오랫동안 벽을 쳤다.


매일 밤마다 그와 나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교전을 벌였다. , , . 그가 먼저 공격을 해오면 나도 이어 탕, , , 반격을 해댔다. 어떤 날은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여니 1005호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우물쭈물 한참을 망설인다. 남자의 얇은 입술이 앙다물고 있어서 더 얇아 보인다.


, , 소리들리는 거 말이에요. 그것 좀 조금만 참아 주면 안 되나요?”


…….”


나는 곧 사, , 사라질 계획이거든요.”


남자의 목소리는 모기 소리만 했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치밀어 올랐다. 이웃의 고통, 고민을 함께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들어주기라도 해야 한다는 빌어먹을 책임감 비슷한 감정 말이다.


우리, 술 한 잔 할래요? 옥상으로 가요.”


나는 맥주 네 캔과 새우칩을 들고 옥상으로 갔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자도 뒤따라왔다. 녹색 우레탄 방수 포장이 되어 있는 옥상 바닥으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남자의 옷이 젖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고개를 조금 숙이고 밤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머리 위로 우산을 받쳐 주었다. 맥주 네 캔을 남자 혼자서 다 마실 동안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술이 들어가니 남자는 놀랍도록 침착했다. 말을 더듬지도 않았다.


매일 밤, 환청을 들어요. 죽여라, 죽여! 너를 구타하고 추행까지 한 놈을 죽여라!, 하는 소리요. 그 놈을 죽여야 네가 산다, 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요. 밤엔 유독 더 자주, 더 선명하게 들리죠. 나는 그 소리를 밤의 소리라고 불러요.”


뜻밖의 말에 내 몸이 움찔했다. 밤의 소리, 라는 말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사라지기 전에 누굴 좀 죽을 만큼 혼내 주고 싶어요. 나는 어디서나 왕따였어요.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집단 구타와 놀림을 당하고 성추행까지 당했죠. 그 중 나를 가장 괴롭혔던 놈을 찾아 죽이고 싶어요. 그런데나는 생각과는 달리 남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해요. 더듬거리기나 하죠. 찾아가서 욕이라도 실컷 퍼부어 줄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곧 사라질 것이니 소리 나는 것 참아달라는 남자의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남자는 관심을 끌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계획적으로 내게 접근하기 위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죽을 거면 그냥 죽지 내게 말하는 의도는 뭔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의도는 또 뭔가, 라는 말이 목구멍 아래까지 치밀고 나왔지만 차마 뱉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남자도 분노와 슬픔을 어떻게 밖으로 표출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빗소리는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했다.


병원에는 가봤어요?”


가면 뭐 해요? 이미 군 병원에서 진단받은 신경증 병력 때문에 취업도 안 되는 판국에요. 그놈을 죽이고 싶을 때마다 책상을 볼펜으로 찍어대고 화살을 벽걸이 다트에 던지는 게임을 하죠.”


남자는 25층 옥상 아래 밤거리를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거리에는 자동차 불빛들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남자와 옥상에서 내려올 때엔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아파트 뒤편 산책로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앞집 거실에서 6시 아침 뉴스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모든 소리들이 점점 희미해졌다. 나는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도서관에서 유일하게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은 도서관장뿐이다. 관장은 걸걸한 목소리로 내게 농담을 걸어오곤 했다. 희명 씨, 세상에서 제일 쉬운 숫자가 뭔지 알아? 내가 고개를 가로 저으면 에이, 그것도 몰라? 십구만이야. 쉽구만.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지 말라고. 뭐든 즐겁게, 편하게 생각하라고.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한 물간 유머를 쾌활하게 잔뜩 풀어 놓고 가곤했다. 직원들은 모두들 서로 짠 듯이 나를 외면했다. 내가 보고서를 들고 복도를 걸어 갈 때나 구내식당에서 눈이 마주칠 때면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피했다. 누군가는 대놓고 말을 하곤 했다. 장애인 특혜로 들어 온 주제에 주제 파악도 못해. 무서워서 피하나 뭐. 더러워서 피하지!


1005호 남자는 여전히 무언가를 벽이나 바닥으로 던졌다. 컵라면과 햇반 빈 용기 등을 벽으로 던지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끝이 뾰족한 걸 연속적으로 던지는 소리도 들렸다. 남자의 긴 한숨이 벽을 타고 넘어 왔다. 남자는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책상을 볼펜으로, 샤프로 신경질적으로 찍어댔다.


저녁 산책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몇 주가 지났는데도 여태 문자 한 통 없는 조 실장을 떠올렸다. 내일은 내가 먼저 연락을 해봐야지, 하는 생각들로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선뜩한 기운에 눈을 떴다. 잠결에 아주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생살을 찢어 뜯는 듯한 소리였다. 오래전 들어봤던 소리였다. 방문 틈새를 테이프로 붙이는 소리, 창문 네 모서리를 테이프로 꼼꼼하게 붙이는 소리, 테이프를 벽으로 힘껏 던지는 소리, 침대에 털썩 눕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쿨럭, 쿨럭, 기침 소리.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는 소리.


엄마가 내 옆에 누웠다. 아빠의 제사를 지내고 엄마가 제기들을 씻어 큰 박스에 차곡차곡 쟁여 두는 걸 보고 나는 잠이 들었다. 잠결에 엄마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어 엄마가 테이프를 뜯어 어딘가에 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두꺼운 커튼을 닫는 소리도 들렸다. 엄마가 내 옆에 누워 나를 꼭 안았다.


-엄마, 무슨 소리야?


-아무 소리도 아니야. 얼른 자.


-가슴이 답답해.


더 이상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연신 기침이 터져 나왔다. 엄마도 기침을 했다.


-엄마, 답답해.


-곧 괜찮아져. 우리 모두 아빠가 계신 곳으로 가는 거야.


엄마는 내 가슴팍을 토닥였다.


-엄마, 언니는? 희선 언니는?


나는 언제나 몸이 퉁퉁 불어 힘없이 누워 있던 언니를 생각했다.


-희선이는 아빠가 계신 곳으로 갔어. 더 이상 콩팥 투석을 안 해도 되는 세상으로. 그곳에선 병원비 걱정도, 집세 걱정도 안 해도 된단다.


엄마의 목소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내 몸이 끝없이 방바닥 아래로 잠기는 것 같았다. 엄마가 계속 귀엣말을 했다. 희명아, 사랑해. 희선아, 사랑해. 엄마의 손이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엄마가 흐득흐득 울었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가까이 들렸다가 아득하게 멀어져갔다. 엄마가 내 손을 스르르 놓았다.


1005호 초인종을 연거푸 눌렀다. 아무 기척이 없다. 경비실로 뛰어갔다.


“1005호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을 겁니다. 세 달 전부터 수도와 전기, 보일러가 다 공급 중단 됐어요. 사람이 살고 있을 리가 없어요.”


60대 중반의 경비원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 급해요.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요!”


경비원이 마지못해 랜턴을 들고 의자에서 일어나 1005호로 올라가는 동안 나는 열쇠 수리공을 부르고 119에 신고를 했다. 열쇠 수리공이 현관문을 열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실내는 캄캄했다. 경비 아저씨가 랜턴으로 실내를 비추었다. 작은방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큰방은 잠겨 있었다. 열쇠 수리공이 방문을 뜯었다. 쓰레기더미가 나타났다. 방안 가득 쓰레기통이었다. 쓰레기를 헤집고 경비원이 방안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사람이 늘어져 있고, 머리맡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사방 벽에는 벽걸이 다트판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119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남자를 구하느라 경비실로, 1005호로 헐떡이며 내달렸더니 기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침대에 고꾸라지듯 눕는다. 어쨌든 남자는 죽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남자가 더 이상 밤의 소리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을 감은 채 손으로 벽을 더듬는다. 엠보싱 벽지의 자잘한 꽃잎들이 만져진다. 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벽을 몇 번이나 안타깝게 더듬는다. 여전히 꽃잎들만 만져진다. 천 개의 귀들이 사라지고 없다. 한 개의 귀도 만져지지 않는다. 사위에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밤의 소리들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이 머리맡에 있는지 확인하고선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나는 1005호 남자와 나란히 옥상에 서 있다. 녹색 우레탄 방수 포장이 되어 있는 옥상 바닥에 서서 밤하늘을 둘 다 말없이 보고 있다. 남자는 겸연쩍은 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 , 그쪽 때문에 살아났어요.”


남자는 그쪽 덕분에가 아니라 그쪽 때문에라고 말했다.


이봐요, 나 덕분에 살아났으니 이제부터 내가 그쪽에게 무얼 좀 가르쳐야겠어요.”


다소 단호한 어투로 내가 말했다. ‘나 덕분에라는 낱말을 유독 힘주어 말했다. 남자가 겁먹은 듯한 얼굴로 나를 흘끔 바라봤다.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이 빨간 세퍼드였어요. 빨란색 락카로 학교 복도, 자동차, 공중전화 부스, 어디에든 욕을 써댔어요. 나를 힘들게 하거나 곤경에 빠뜨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공격이었어요.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나도 그쪽처럼 죽으려고 시도 했을 수도 있어요. , 내가 말하는 대로 따라 해봐요. 지금부터 매일 욕을 몇 개씩 가르쳐 줄게요. 쉬운 것부터 할게요. , 큰 소리로 따라해 보세요. 좆나.”


베토벤이 킥킥거렸다.


그 욕은 나도 알아요.”


아는 것과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은 달라요. , 한 번 해보세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웨이브 진 숱 많은 머리카락이 밤바람에 보기 좋게 휘날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자 별들이 반짝였다. 수도 없이 바라봤던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별들이 귀처럼 보였다. 수없이 많은 귀들이 내게로 쏟아져 내렸다. 수천 개의 귀들이 어깨, 머리카락, , 다리에 내려앉았다. 한 쪽 귀 없이 한생을 살아가야 할 내게 수천 개의 펄럭거리는 귀들이 내 귓불, , 어깨를 차례로 애무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좆나, 좆나, 씨발, 씨발, 하며 공격적 수비 연습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조 실장에게서 문자가 와 준다면 좆나 행복한 밤이 될 텐데 말이다.

 


<당선소감>

 

이제부턴 소설을

더 많이 사랑해도 된다

밤이고 낮이고 사랑해도 된다

 

눈발이 수줍은 듯 고즈넉이 날린다. 겨울철이라도 눈 구경을 좀체 할 수 없는 지역이라 무척 반갑다. 저녁은 빨리 오고 한 해는 더 빨리 저물어 마음 한 켠 씁쓰레해지는 세밑에 만난 눈이라 더욱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눈발이 흰 치마 자락을 펄럭이며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모습을 무연히 바라보다가 눈 내리는 겨울강을 따라 걸었다. 그제야 내가 며칠 내내 오지도 않을 당선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며칠 내내 끊임없이 울음을 참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오지도 않을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는 일 보다는 쓰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며 기도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에 당선 소식을 들었다. 이제부턴 소설을 더 많이 사랑해도 된다고, 밤이고 낮이고 사랑해도 된다는 소식에 겨울강을 따라 기어이 눈물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낱말과 낱말, 문장과 문장을 부유하던 순간들은 행복하기도 했지만 힘들었다. 앞으로 더 힘든 순간들이 올 때면 겨울강을 따라 걷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던 순간을 기억하겠다. 내 가슴 속에 숨어 있는 천둥처럼 터질 격음의 낱말과 문장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소설을 쓰겠다. 그리하여 오래 소설을 쓰겠다. 아주 오래오래 쓰겠다.


소설의 길에서 만난, 내게 우주를 보여 주셨던 선생님께는 존경한다는 말씀 올린다. 치열하게 합평해준 문우들, 소설의 길을 헤맬 때마다 따뜻하게 손잡아 줬던 문우들에게는 고맙다는 말 전한다. 글 쓰는 나를 잘 견뎌준 L과 가족들에겐 언제나 사랑하고 있다는 말로 고마움을 대신 하겠다. 끝으로 부족하고 부족한 글에 눈 마주쳐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불교신문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더욱 뜨겁게 소설을 사랑하겠다. 오래 두고두고 읽히는 좋은 소설로 보답하겠다.

 


<심사평>

 

아픈 삶을 생명력으로 승화시켜

 

소설은 우주에 뿌리 내린 감성으로 아름다운 생명력을 창조적으로 형상화시키는 문학형태이다. 그것은 언어로 조탁되므로, 소설문법에 투철해야 되고, 독자를 감동시켜야 한다. 8편을 본심에 올리고 깊이 읽었다.


<황금산의 들개>는 들개를 잡으러 다니는 와 들개와의 인연으로 들개를 그리는 화가의 이야기인데 작위적이다. <()>은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장의사를 아버지가 운영하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을 방치한 채 염을 하고 관을 짜며 살아간다. 손자인 나의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밀도가 떨어진다. <당신의 방생>은 현학적인 묘사와 서술이 추상적이고, 형상화에 서투르다. 소설문법을 공부해야 한다.


<작은 바라밀>은 밀도 짙은 수필 같은 소설인데 많이 써본 솜씨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자잘한 사건에서 늘 밀리며 사는 나의 이야기인데 자잘한 감동밖에 주지 못하는 결말이다. 큰 사건을 만들어 주제를 도출해내는 구성을 해야 한다. <떠돌이 개>는 삶과 죽음이 섞이어 있는 인도방랑 이야기이다. 가족들의 연달은 죽음을 겪은 와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의식으로 방랑하는 미국 노랑머리 의사 여자의 만남과 그 여자의 참담한 죽음을 결말에 놓은 것은 아주 좋은데 좀 지루하다.


<불편한 편집장>은 인생을 관조하는 시각이 절실하다. 폐경기에 들어선 편집장을 능소화에 비유하여 서술한 것은 탁월한데 이야기가 늘어진 느낌이다. <달을 따라간 남자>는 비인간(동물적)의 세상에서 인간 세상을 찾아가다가 도사견에게 물려죽은 인간의 참담한 실존이 가슴 아프다. 달의 상징성이 의미심장하다.


<밤의 소리>는 공격적으로 발악하듯이 살아가는 한 장애인의 아픈 실존, 밤의 소리를 이겨내는 의 삶이 눈물겹고, 조실장의 사랑을 끝까지 갈구하는 내가 안타깝다. <달을 따라간 남자>, <불편한 편집장>, <밤의 소리>를 놓고 다시 깊이 읽은 다음 자기와 이웃 남자의 아픈 삶을 생명력으로 승화시킨 필력이 돋보여 <밤의 소리>를 당선작으로 선택했다.

 

심사 : 한승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