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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그림 속에서 보다 / 임정화

 

홍 여사는 아까부터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가 그린 `해질녘의 철로' 앞에 서 있다. 그림에 바짝 붙어선 것도 아니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의 동선을 방해하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지점에 홍 여사는 자리 잡고 서 있다. 느릿느릿 흘러가던 관람의 줄이 홍 여사에게 걸려 엉클어진다. 그림에만 집중하는 홍 여사와 달리 사람들은 그림과 홍 여사를 번갈아 쳐다본다. 호기심을 감추지 않는 그들 중에는 그림을 향해 몸을 기울이는 이들도 있고 노골적으로 홍 여사를 쳐다보는 이들도 있다.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관람의 줄을 되잡아 발걸음을 옮긴다.

 

홍 여사는 호퍼의 그림을 바라본다. 자신의 시선을 붙든 그 아득함 속에서 누군가를 발견하기나 한 것처럼. 주변에서 자신을 힐끔거린다는 사실을 홍 여사는 잘 알고 있다. 홍 여사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어깨와 허리를 더욱 꼿꼿이 편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생각한다. 호퍼의 그림이 한 점뿐이라 아쉽다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끌리는 이유에 대해 홍 여사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의 그림 속 주인공들은 대개 어딘가를 응시한다. 묵연한 그들의 시선이 가닿는 곳은 어디일까 궁금해한 적이 있다. 보고는 있지만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 얼굴들. 해답은 찾지 못했다. 다만 그들이 바라다보는 세상이 어쩌면 바깥이 아닌 자기 안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 그리고 세련되고 점잖아 보이는 그들 주위로 까닭 모를 무거움과 권태가 축축하게 가라앉아 있다는 느낌만 기억할 뿐이다.

 

홍 여사가 그림 옆에 붙은 라벨로 눈을 돌린다. 1929. 캔버스에 유채. 홍 여사는 태어나서 한 번도 유화물감을 만져본 적이 없다. 캔버스의 질감을 느껴본 경험도 없다. 물감을 물에 희석시켜 쓰는 수성물감보다는 기름과 혼합하는 유화물감의 색감이 당연히 더 강렬하고 짙으며 거칠 거라 여겼다. 그러니 떨어지는 불덩어리를 그리기에는 유채가 알맞아, 이미 물에 한번 풀어진 물감으로 노을을 그리기란 적당치 않지, 여백이 없는 서양화 속에서 색채들의 경합이 튄다, 마르고 굳어버린 유채 위로 덧입혀지는 또 다른 물감들의 관계는 먹고 먹히는 싸움터와도 같아, 물감들을 싹 긁어내면 지금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지, 최후 승리한 그림만이 사람들의 시선을 차지하기 마련일 테니.

 

대상의 그림자가 두드러지는 호퍼의 다른 그림들과 달리 이 작품은 그림 자체가 그림자를 던지는 듯하다. 어쩌면 철로는 낭떠러지들을 잇는 허공에 자리 잡았는지도 몰라, 낭떠러지가 아니라면 아무튼 높은 곳. 전면에 보이는 굴곡이 산 때문인지 언덕 탓인지 잘 구별되지 않는다. 완만한 평야는 아닐 거야, 그늘진 경사는 그만큼의 거리를 만들어내고 그 사이엔 분명히 틈이 있을 테니까, 그런데 전신주처럼 높다란 저건 또 뭘까. 늘어진 전선도 없고 나란히 줄 선 또 다른 전신주도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인가, 사람도 없이 황량한 곳, 철로라기보다는 경비초소 같은데, 소총을 들고 먼 전장(戰場)의 포화를 감시하는 군인이 어디쯤 서 있을 것만 같은, 역시 종말(終末)을 표현하기에는 붉은색만 한 것이 없지.

 

지난한 장마에 맨살을 드러낸 땅은 질퍽거렸다. 홍 여사는 포장된 길로만 걸었다. 밝은 갈색머리의 백인이 여럿 눈에 띄었다. 아이들과 함께인 가족도 보였다. 그들 틈 사이로 둘씩 짝지은 연인들이 즐비했다. 연인들이 즐비한 세상. 수줍게 사랑하기보다는 과시하고 우쭐대는 커플들. 홍 여사는 시야에서 쌍들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보이지 않는다고 믿으면 그들은 어김없이 사라졌다. 석조전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끌며 여유롭게 고궁 안을 산책하고 싶었다. 살갗에 엉겨 붙는 습기만 아니었어도홍 여사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근대식 석조건축물인 석조전은 고대 로마 신전과 닮았다. 굵고 높은 기둥 여섯 개를 포함한 주량이 특히 그랬다. 첫 번째 기둥과 두 번째 기둥 사이, 다섯 번째 기둥과 여섯 번째 기둥 사이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펼쳐져 있었다. 하얀 바탕 위로 `이것이 미국미술이다, THE AMERICAN ART'라는 검은 글자들이 굵거나 혹은 가늘게 인쇄돼 있고, 글자 아래에는 전시작 사진 두 개가 따로따로 박혀 있었다. 왼쪽 사진에는 여자 셋이 개와 여자아이를 양옆으로 거느리고 섰고, 오른쪽 사진에서는 첼로가 무겁게 녹아내렸다. 엄청 큰 걸로 봐서는 첼로가 아니라 더블베이스일지도 몰라.

 

계단을 오를 때 사람 몇이 층계참에 서 있는 걸 봤지만 홍 여사는 그들을 알아채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기억을 더듬는다 해도 그런 사람들은 으레 `있었나? , 본 것도 같고, 기억이 없네' 정도로 취급되고 만다. 홍 여사에게 있어 그런 만남들은 애초에 마주침조차도 되지 못하는 무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무의미들을 지나칠 때마다 어쩐지 자기 자신이 조명을 받고 있다는 묘한 느낌을 받곤 했다. 사선으로 계단을 올라 중간쯤 이르렀을 때 한 커플이 뒤에서부터 빠르게 오르며 금세 홍 여사를 앞질렀다. 그들의 존재감이 홍 여사를 환기시켰다. 홍 여사는 앞질러 가는 그들을 주의 깊게 살폈다. 키가 큰 백인남자와 보통 체격의 동양여자였다. 걸음걸이가 생기 있고 활발하기는 했지만 그런 움직임에서 흔히 포착되는 연극적인 요소 따위는 감지되지 않았다.

 

홍 여사는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무작정 그림 앞에 서 있기를 좋아한다. 작가의 의도나 전문가적인 비평 등은 홍 여사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눈길을 끌고 색감이 조화로운 작품들에 한없이 열광했다. 늘 버릇처럼 이어지는 행동이 한 가지 있었다. 그림 앞에 서서 받게 되는 느낌을 문장으로 지어내거나 혹은 단어 하나라도 떠올리기. 그래서 순간적으로 문장이 만들어지거나 단어 하나라도 떠오른다면 그 그림은 홍 여사에게 있어 성공적인 작품이 되었다. 물론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성과가 없는 그림들도 많았다. 그런 그림들은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아래층의 첫 번째 홀, 첫 작품은 성조기였다. 라벨을 확인하니 석판화였다. 그 옆에도 나비넥타이 판화가 진열되어 있었다. 홍 여사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 옆 짝꿍이 지우개로 만들었던 상스러운 도장이 떠올랐다. 알파벳 Y와 남자 성기를 새긴 도장이었는데, 짝꿍은 펼쳐진 여학생들의 교과서만 골라서는 그 안에다 눈 깜짝할 새 그림을 찍고 도망쳤다. 무심코 펼친 책장들에는 똑같은 모양의 성기와 성기들이 합을 이룬 채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다음 작품은 코카콜라 병이었다. 나비넥타이에 이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이었다. 홍 여사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코카콜라 병들을 바라보았다. 불량품이라고 짚어낼 만한 병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가장 윗줄 첫 번째 콜라병이 홍 여사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짙고 선명한 선과 병목에까지 골고루 채색된 녹색, 그 병에 든 콜라가 진짜일 게 확실해 보였다. 홍 여사는 혀를 내밀어 재빨리 입술을 축였다. 소풍 때마다 홍 여사의 엄마는 가방 속에 사이다와 바나나, 삶은 달걀과 김밥도시락을 넣어주었다. 병째 가져간 사이다는 미지근하다 못해 뜨끈뜨끈했다. 톡 쏘는 맛은 똑같았어도 그 시절 홍 여사는 사이다보다 콜라를 더 좋아했다. 굴곡진 코카콜라 병은 다보탑 같았다. 사람들은 석가탑을 더 쳐주었지만 홍 여사는 언제나 화려하고 정교한 다보탑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다보탑을 닮은 코카콜라 병 속에 담긴 형용할 수 없는 맛의 검은 물. 그것은 마시기만 해도 그 사람을 세련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물이었다. 지독히도 건조하고 신랄하면서도 집요하기까지 한 앤디 워홀의 작품들. 홍 여사의 입매가 일그러졌다. 똑같이 생긴 캠벨 깡통들은 아무리 재료가 달라도 죄다 똑같은 맛일 것만 같았다.

 

박스 몇 개를 지나 `라디오'라는 작품 앞에 섰다. 건물유리에 반사된 담배 `KENT'`RADIOS'라는 네온 간판이 도시적이고 근사해보였다. 굵고 진하고 검은 테두리를 가진 크리스털 그릇의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정물화는 만화적이었다. 쾌활하고 유아적인 작품들이 이어졌다. 톰 웨슬만(Tom Wesselmann)`위대한 미국 누드 #57'은 단순하면서도 밝은 노랑과 살색이 노골적으로 주의와 시선을 요구했다. 그야말로 미국이었다. 그림 속 여인의 태운 피부와 가슴을 가렸던 부분이 절묘하게 대비되는 누드에 정신을 빼앗겼을 때 바로 옆에서 낄낄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홍 여사는 그림을 주시했다. 점점 가까워진 낄낄거림은 이내 홍 여사의 뒤통수까지 다가왔다. 홍 여사는 뒤돌아보았다. 그들이었다. 무의미들 속에서 튀어나와 자신을 앞지르던 백인남자와 동양여자 커플. 그들은 홍 여사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 것처럼 손가락으로 누드의 젖꼭지를 가리켰다. 홍 여사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얼마 전 S백화점 옥상에서 홍 여사는 제프 쿤스(Jeff Koons)의 보라색 풍선을 보았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풍선은 엄청난 크기에 비해 예술적 가치가 아리송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너도나도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홍 여사도 사진을 찍었다. 경비원까지 세워둘 정도로 대단히 비싼 작품이라고 했다. 지나친 광택이 부담스러웠지만 자꾸 보니 어쩐지 현대적이고 근사해보였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주위를 돌아보는데 옆에서 나누는 젊은이들의 잡담이 들렸다. 제프 쿤스의 아내가 포르노 배우이고, 유명한 국회의원이며, 둘의 정사를 적나라하게 담은 사진작도 있다고 했다. 포르노 배우, 포르노 배우, 홍 여사는 입속말을 했다. 제아무리 유명한 예술가라 할지라도 정상적인 아내에게 정사 장면을 찍자고 제안했다면 흔쾌히 승낙을 얻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전직 포르노 배우였으니 가능했을 터, 그런데 대체 누가 국회의원이라는 거지? 제프 쿤스? 아니면 그의 아내? 설마 포르노 배우가? 그날 밤 홍 여사는 인터넷으로 제프 쿤스를 검색했다. 이탈리아 전직 국회의원은 제프 쿤스의 포르노 배우였던 전처였다.

 

홍 여사는 궁금했다. 포르노 여자배우를 국회의원으로 뽑은 유권자는 남성이 더 많았을까, 여성이 더 많았을까, 포르노 배우로만 머물지 않았던 특별한 여성 국회의원, 그렇기에 가능했던 결혼이었으리라. 출구 쪽 마지막 사진작품 속에는 브라와 팬티 바람에 검정 밴드스타킹을 신고서 돌고래 인형을 타고 앉아 원숭이 인형에게 입맞춤하려고 몸을 앞으로 수그린 여자가 있었다. 홍 여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제어가 `정체성'인 아래층 다른 홀에는 미술관 입구에 걸려 있던 작품이 서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던 홍 여사가 손바닥으로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개의 머리가 박제였던 것이다. 작가는 마리솔 에스코바(Marisol Escobar)라는 여성작가였다. 홍 여사는 개의 머리만 의도적으로 피해가며 작품을 둘러봤다. 복고풍 차림의 세 여자는 각각, 삼면이 얼굴인 머리, 긴 주둥이 끝에 가정주부일 법한 여자 사진이 붙은 머리, 우측에 눈 두 개가 생기다 만 여섯 개의 얼굴을 가진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홍 여사는 작품 속 옷차림으로 눈을 돌렸다. 문득 한 친구가 떠올랐다. 이미 연락이 끊긴 지 삼십 년도 더 된 친구였다.

 

미래는 미용사가 되려는, 막 스무 살을 넘긴 노랑머리 아가씨였다. 가장 먼저 출근해서 청소를 하고 엉성한 가발을 상대로 기술을 익혔다. 동갑내기 홍 여사는 거의 매일 아침 일찍 미래가 근무하는 미용실에 들렀다. 때문에 그 시절 홍 여사의 헤어스타일은 날마다 달랐다. 홍 여사의 머리로 연습을 할 때면 미래는 신나 했다. 엄마나 작은 언니도 몇 번 당한 뒤로는 미래에게 머리를 맡기지 않았다. 시달릴 대로 시달린 머리카락은 끝이 갈라지고 푸석해졌지만 홍 여사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주위에서 던지는 관심들이 즐겁기만 했다. 미용사가 되기 위해 늘 열심이었던 미래에게 어느 날 홍 여사가 물었다. 장래희망이 헤어디자이너야? 미래는 고개를 단호히 가로저었다. 아니, 내 장래희망은 미국에 가는 거야!

 

미래의 큰언니는 미국인인 흑인 남자와 결혼했다. 작은 셋집에 살던 미래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집에 데려가지 않았다. 그런 미래가 하루는 홍 여사를 불렀다. 조카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미국에 사는 미래의 큰언니는 휴가차 가족들과 친정나들이 중이었다. 우리 엄마 말이 원래 튀기들이 인물이 좋다더니 진짜로 그래. 큰언니네 애들이 얼마나 예쁜지 너도 보면 놀랄 거야. 미래는 우쭐해서 약간 들뜨기까지 했다. 현관문을 열 때 미래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홍 여사도 미래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했다. 미래가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그리고는 고양이처럼 소리 내지 않고 걸었다. 홍 여사도 까치발로 걸었다. 방문 안쪽에서부터 아이들 소리가 작게 새어나왔다. 방문 너머의 소리를 따라 미래가 웃었다. 미래의 웃음을 따라 홍 여사도 웃었다. 미래가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간신히 머리를 집어넣을 만큼만 열었다. 미래의 머리 너머로 홍 여사는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갑갑했다. 방안을 가득 메울 만큼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흑인 남자가 고개를 외로 틀고 한쪽 손을 맨가슴 위에 얹은 채 대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곁에는 살집이 좋은 여자가 속옷 차림으로 엎드린 채 두 다리를 벌리고 잠들어 있었다. 홍 여사의 낯이 달아올랐다. 두 몸뚱어리 발치에는 공간이랄 수도 없는 조각난 틈이 있었고, 그곳에서 동물의 어린 새끼 같은 조카들이 놀고 있었다. 미래가 손짓으로 조카들을 불러냈다. 나오라고, 이모랑 같이 놀자고. 그러나 나온 아이들과 그들은 잘 놀지 못했다. 아이들이 쓰는 말은 참으로 앙증맞고 경이로웠지만 홍 여사는 물론이고 미래조차도 도무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홍 여사는 미래에게 물었다. 너도 네 큰언니처럼 되고 싶은 거니? 미래가 대답했다. 이번에 큰언니가 빨래건조기를 사줬어. 엄마는 빨래들을 차곡차곡 개서 건조기에 집어넣어. 그러면 장마가 한 달씩 이어져도 빨래들이 뽀송뽀송 말라. 신기해. 엄마는 빨래건조기가 정말 마음에 든다고 했어. 홍 여사가 물었다. 그럼 너는 빨래건조기 때문에 미국에 가고 싶다는 거야? 미래는 대답 대신 콧방귀를 뀌었다. 홍 여사가 다시 물었다. 미국에 가기 위해 넌 뭘 하는데? 미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홍 여사는 대답을 듣고 싶었다. 오래된 몸을 움직이듯이 미래가 말했다. 나는 큰언니처럼 미국 남자랑 결혼할 거야. 홍 여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다야?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미래의 고개가 무겁게 두어 번 끄덕였다. 네 형부 같은 흑인이라도 좋아? 미래가 잠깐 고민했다. 가능하면 백인이랑 해야지, 하지만 정 안 되면 흑인이라도 상관없어. 홍 여사는 자기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미래는 자신의 친구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미래에게서 눈길을 거두며 홍 여사가 말했다. 어쨌든 미국에 가려면 영어공부부터 해라. 일단 말은 통해야지.

 

홍 여사의 결혼을 앞두고 그들은 사소한 문제로 다투었다. 홍 여사는 다른 도시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미래는 같은 미용실에서 오래도록 근무했다. 아이 둘을 낳고 홍 여사는 다시 결혼 전 살던 도시로 돌아왔다. 그 사이 가끔 홍 여사는 미래가 미국남자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갔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건너 들은 정황으로는 홍 여사가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도 미래는 영어공부를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 미래가 백인이 아닌 다른 혈색의 미국남자와 결혼해서 사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했다. 어쨌든 홍 여사는 점점 더 미래를 기억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돌아온 도시에서 첫 번째 맞는 남편의 생일에 홍 여사는 남편의 직장 동료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홍 여사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봤다. 큰아이는 카트에 태우고 작은아이는 멜빵으로 안은 채 재료들을 넘치도록 집어 담았다. 초밥 거리로 쓸 문어와 새우를 살피는데 낯익은 여자가 홍 여사의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색 바랜 포대기로 우량한 사내아이를 들쳐 업고 있었다. 너무나도 곤히 잠든 탓에 사내아이의 머리는 뒤로 꺾여 안쓰럽게 덜렁거렸다. 분명히 낯이 익은데도 누군지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니 옷 입는 취향이 바뀐 탓이 컸다. 잰걸음으로 여자에게 다가가던 홍 여사가 소리쳤다. 미래야!

 

몇 년 만에 만난 미래는 달가운 낯빛이 아니었다. 뒤에 업은 아이는 누구냐는 홍 여사의 말에 당황하는 기색까지 역력했다. 내 애야, 외면하는 듯 흘리듯 미래가 대답했다. 너 결혼했어? 언제? 근데 애가 한국 애 같은데? 미래의 시선이 홍 여사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그럼 한국 애지, 어디 다른 나라 애라도 될 줄 알았어? 되쏘는 미래의 말에 홍 여사는 아연해졌다. 넌 미국남자랑 결혼할 줄만 알았으니까,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홍 여사는 근처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가자고 미래에게 권했다. 미래는 말없이 서 있었다. 홍 여사가 팔꿈치를 잡아당기자 그제야 잡힌 팔을 비틀어 뺐다. 나중에, 나중에 또 보게 되면미래는 말을 다 끝내지도 않고 인사도 없이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미래가 지나간 자국은 낯선 타인들로 금세 지워졌다.

 

마리솔의 작품에서 홍 여사는 미래를 기억해냈다. 미국남자들은 제복 입은 여자들을 좋아한대. 세미정장만 즐겨 입던 미래가 낡은 포대기로 아이를 업은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미래의 머리에서 백인들의 금발보다 더 샛노랗던 머리카락이 사라진 것도 기억했다.

 

다음 작품은 코카콜라 병이었다. 나비넥타이에 이은 앤디 워홀의 작품이었다.

그 시절 홍 여사는 사이다보다 콜라를 더 좋아했다.

그것은 마시기만 해도 그 사람을 세련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물이었다.

 

홍 여사를 때리고 아프게 하던 이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거나 힘을 잃었다.

받은 대로 되돌려준다는 것은 유치한 짓거리일 뿐이다.

 

미국남자를 만나기 위해 네 시간이나 길바닥에 내버리며 이태원으로 놀러 다니던 미래, 정식미용사가 되어 미국에서 미용실을 차리겠다던 미래. 하지만 한국인이 확실한 아이를 업은 미래의 미래는 완전히 어그러진 셈이었다. 꿈을 이루려면 뭔가 더 확실하고 공격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다. 가령 영어학원에 등록한다든지, 아예 큰언니를 쫓아 미국으로 가버리는 것 말이다. 검붉은 색이 인상적인 파자마 그림 앞에서 홍 여사는 한숨을 내뱉듯 혼잣말했다. 미래, 너는 이런 파자마가 입고 싶었겠지, 크고 두툼한 겨울용 커튼 같은.

 

`자장가 '는 백색의 꿈이다. 하얀 침대보와 베개는 그곳에 편히 누우라고 관람자를 유혹한다. 매혹적인 잠자리야, 무게를 지워버리는 신비한 동심이고 순수한 낙원이지, 하지만 이 백색의 꿈은 북극인 걸, 살인적인 추위를 교묘하게 은폐시킨 꿈 말이야. 그림의 한 귀퉁이에서 백곰이 눈뜬 물개를 뜯어먹다가 멈칫 관람객을 쳐다본다. 주둥이와 빛나는 설빙 사이로 석류빛이거나 자두빛이 아닌 핏빛이 번진다. 초식동물이 없는 세계. 털빛마저 꿈의 색상으로 뒤덮인 포식자의 세계. 미래의 큰언니는 빨래건조기 같은 것들의 대가로 자신의 몸뚱이를 지불했다. 매 맞고 사는 언니에 대해 말할 때마다 미래의 말투는 담담하거나 무심했다.

 

벽에 매달린 채 부서져 흘러내리는 첼로 혹은 더블베이스는 파괴와는 다른 이미지를 제공했다. 그것은 망가져 못 쓰게 된 악기가 아니라 차라리 환상이고 꿈이었다. 버려지고 무시되어야 할 쓰레기가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악기는 동화적 상상력이었다. 홍 여사는 작품명을 확인했다. `부드러운 비올라' 더블베이스도 첼로도 아니었다. 홍 여사의 추측은 모두 틀렸다. 그러나 홍 여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무가 아닌 비닐 풍선 재질의 비올라는, 현을 당길 아무 힘도 없는 비올라는 더 이상 악기인 비올라가 될 수 없었다.

 

위층 첫 번째 홀에는 각종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황토색 필터의 거대한 담배꽁초들이 공간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말보로처럼 생겼지만 필터에 하얀 점들은 보이지 않았다. 서로에게 기대어 안락하게 널브러진 담배꽁초들은, 폐를 질식시키고 살을 파먹고 뼈를 부서뜨리는 악행을 차폐한 채 휴식을 주는 쿠션으로 변신했다. 소리를 반사시키는 전시공간이 시끄러운 잡음으로 들끓었다. 그들이었다. 홍 여사를 앞질렀던 그들이 다시 뒤처져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는 좁고 높은 공간을 울렸다. 주위를 돌며 뛰어다니는 대여섯 살 먹은 사내아이도 있었지만 홍 여사의 촉수는 그들에게로만 향했다. 그들의 대화가 신경을 거스르는 이유는 말 때문이었다. 모국어를 쓰는 외국인들의 잡담은 알아들을 수 없기에 언제나 소음처럼 들렸다. 그들 중 여자는 안내원에게 한국말로 작품 설명을 들었다. 안내원의 설명이 통역되어 백인남자의 귀로 전달될 때마다 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여자의 염색한 듯 까만 생머리와 매끈한 피부색은 유난히 동양적이었다. 가느다란 골격, 그리고 백인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팔다리. 어쩌면 유학을 갔다가 백인남자와 연인이 되어 모국을 방문한 것일 수도 있었다. 티셔츠에 짧은 청반바지 차림, 이렇다 할 액세서리도 없고, 가방도 명품이 아니었지만 여자에겐 기품이 있었다. 곁눈질로 본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하지만 입을 가리지도 않고 거리낌 없이 소리 내어 웃는 여자의 모습이 홍 여사를 언짢게 했다.

 

목처럼 구부러진 곳에 공산품인 형광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과학이 상업이 되고, 다시 예술과 혼성된다. 형광등 몇 개에 불을 켜놓고 독립적인 공간 하나를 차지한다. 한쪽 벽면에는 앙증맞은 옷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있다. 예술 쉽네, 참 쉬워, 예술이라고 이름만 붙이면 다 예술이 되네. 다른 홀에도 팔레트를 갖다놓거나 빈 액자를 걸어놓고는 `거울'이라 제목을 단 작품들이 버젓이 한 자리씩 차지한다. 예술은 아이디어인가. 아니면 단조로운 물음표인가. 반신반의하는 홍 여사의 눈에는 달걀을 그린 섬세한 그림이라든가 빨간 캔버스 앞에 초록색 병이 하나 놓인 강렬한 보색 대비, 그 뒤로 보이는 두 작은 병의 그림자가 더 미학적이고 취향에 맞는다. 아무려나 예술은 지성과 교양을 고양시킬 뿐더러 덕수궁이, 석조전 전시회가 자신에게 커다란 자존감을 안긴다는 데 대해 홍 여사는 만족한다.

 

네 개의 홀에 전시된 작품들을 모두 관람하고 홍 여사는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기념품점 한 구석에 도록 판매대가 보인다. 홍 여사는 도록의 표지를 장식한 호퍼의 `해질녘의 철로'를 바라본다. 예전에 봤던 호퍼의 다른 그림들도 홍 여사는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그림 역시 호퍼의 여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죽은 손으로 신중히 그린 것처럼 보인다. 여러 작가들의 욕망이 형상화된 이번 전시회의 제각기 다른 작품들이 주변에서 번쩍거리거나 화려하게 웃고 있을 때, 호퍼의 그림은 부동자세로 버틴다. 그리고 요지부동으로 기다린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의미들을 드러내지 않고서 다가올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로 지금껏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관제탑처럼 보이는 건조물 안에는 사람이 없다.

 

홍 여사는 도록을 구입한다. 도록의 첫 장을 넘겨 전시회 입장권을 꽂아둔다. 투명한 비닐가방에 묵직한 도록을 담아 들고 홍 여사는 여느 때처럼 기념품 매장으로 들어간다. 앤디 워홀이나 리히텐슈타인의 모작들이 작은 액자형태로 진열장 위에 놓여 있다. 그 밖에는 이번 전시회와 관련이 없는 과거 전시작들이 그려진 작은 팬시용품들이나 완구들이다. 중앙에 놓인 유리관 안에서 균일가 액세서리들이 반짝거린다. 전에는 작가들의 수공예품이 비싼 가격에 판매됐었고, 홍 여사도 몇 가지를 구입한 적이 있었다.

 

관람은 끝났다. 홍 여사는 다시 2층 로비로 올라간다. 소파에 앉아 도록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난간에 기대어 아래층 포토존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시간은 더디 간다.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켜자 십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발신번호는 한 가지였고, 홍 여사가 아래층을 관람하고 있을 때 5분 간격으로 부재메시지가 전달됐을 터이다. 홍 여사는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지 않고 만지작거린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느긋하게 앉아 눈을 감고 있거나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홍 여사의 양손 속에서 전화기가 둔하게 회전한다.

 

홍 여사는 느릿느릿 계단을 내려온다. 활짝 웃거나 소곤대는 무리들을 지나 출입구를 통과한다. 바깥공기는 습했지만 구름 사이로 엷은 햇살이 대기를 말리는 중이다. 홍 여사의 걸음이 물에 젖은 듯 무겁다. 계단을 내려온 발걸음은 목적지를 아는 것처럼 대한문으로 향한다. 구두가 볼이 넓은 홍 여사의 발을 아프게 한다. 아픈 발 때문에 홍 여사의 걸음은 더욱 느려진다. 화단 언저리로 떨어진 능소화가 편평히 깔려 있다. 매운 빗발에 이렇다 할 저항도 못 해보고 떨어졌을 터이다. 가지에는 몇 남지 않은 꽃송이들이 띄엄띄엄 교수되어 매달린 죄수의 머리처럼 늘어져 있다. 야하고 천박한 주홍색. 능소화에 대한 홍 여사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상을 졸업하고 학원 행정실로 들어간 홍 여사는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다. 홍 여사보다 아홉 살이 많았던 남편은 원장의 아들이었다. 처음 인사를 갔을 때 시댁 대문에는 능소화가 지천이었다. 담을 타고 올라가는 능소화는 벽과 대문, 바닥 할 것 없이 피거나 떨어져 시야를 어지럽혔다. 홍 여사는 난생처음 본 꽃의 이름이 능소화라는 것을 그날 알았다. 어쩌면 저렇게 소박하면서도 농염한 꽃이 다 있을까. 시어머니는 능소화를 가장 좋아했다. 꽃 이름이 무어냐고 묻는 홍 여사에게 시어머니는 말했다. 이 꽃은 지조와 절개가 있는 양반꽃이라고.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는 여느 꽃들과는 다르다고. 능소화는 통꽃이라고.

 

남편도 시어머니를 좇아 능소화가 제일 좋다고 했다. 취향까지 대물림되는 집안이었다. 능소화가 덩굴을 이루며 하늘 높이 담을 타고 오를 때, 그 아래서 시어머니는 아들의 등에 차가운 물을 끼얹었다. 홍조가 감도는 두 뺨을 감추지도 않고, 두 눈의 안구는 탐을 내듯 아들의 맨살을 훑었다. 거울의 표면처럼 반사되는 아들의 등에서 빛을 지워내려는 허망한 손짓처럼 등뼈를 따라 시어머니의 두 손바닥은 미끄러지기를 반복했다. 모자가 행복한 물빛 웃음소리를 내고 있을 때 홍 여사의 맨살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비쩍 마른 시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 뚱뚱한 시어머니는 매타작이 끝나면 능소화를 보러 마당에 나왔다. 능소화가 피는 계절에 시어머니의 멍 자국은 유난히 더 오래도록 머물렀다. 능소화를 보면 불쌍한 엄마가 떠오른다며 남편은 울었다.

 

둘째 아이가 걷기 시작할 무렵, 간간이 윽박지르고 손찌검을 하던 남편의 폭력이 버릇처럼 반복되었다. 검푸른 멍이 풀리기도 전에 매질은 이어졌고, 극복될 수도 없고 초월할 수도 없는 폭력은 일상이 되었다. 도저히 대화나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게 된 홍 여사는 남편에게 말했다. 얼굴, , 눈에 띄는 데는 건드리지 마. 만약 사람들이 내가 맞고 산다는 걸 알게 되는 날엔 당신을 죽일 거야. 명심해, 죽이고 말 거야. 남편은 그래, 라는 대답 한 번에 발길질 한 번씩, 두 발을 번갈아가며 홍 여사의 배에 대고 발길질했다. 들이마신 숨은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한 채 한 곳에서 동그랗게 뭉쳐 아득히 머리를 휘감고 조이며 뭉근하게 홍 여사의 숨구멍을 틀어막았다.

 

홍 여사를 때린 날이면 남편은 또 울었다. 엄마엄마

 

노쇠한 시아버지의 매타작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수십 년을 맞고 살면서 버텨왔던 시어머니는, 다시는 자신의 몸에 멍이 들지 않게 되자 대용량 자동차 세제를 두 통이나 마시고 자살했다. 임종하기까지 끔찍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장이 녹아내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수개월간 모질게 고통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끝장이 났다. 시아버지는 그 뒤로도 능소화가 두 번이나 더 피었다 진 어느 밤, 아들을 낳고 기르고 떠나보낸 그 큰 집에서 급체로 혼자 죽었다. 자기 엄마가 죽었을 때는 몸부림을 치며 울었던 남편은, 주검이 된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는 보일 듯 말 듯 이맛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남편은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죽는 형식도 가지각색이었으나 남편은 죽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홍 여사는 진동하는 휴대전화를 빤히 들여다본다.

 

경추 아래쪽을 다친 남편은 대수술을 받은 뒤 불완전사지마비상태로 누워서 지내야 했다. 퇴원한 남편을 홍 여사는 열심히 돌보았다. 씻기고 먹여주는 일들이 힘에 부치고 고됐지만 홍 여사는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남편은 재활 의지가 대단했다. 손목을 움직일 수 있는 왼손으로 밥도 먹으려 했고, 휴대전화 조작도 열심이었다. 홍 여사는 움직이려는 남편을 매번 부드럽게 저지했다. 수천 날이 지났지만 남편은 여전히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침대 밖으로 한 발짝도 이동하지 못한다.

 

지금 집에는 타잔처럼 성인용 기저귀 하나만 찬 남편이 침대 위에 누워 있다. 홍 여사는 입김을 불어넣듯 최면을 걸듯 남편에게 속삭인다. 빨래거리 때문이야, 여보. 홍 여사는 남편의 벗은 몸 위에 얇은 이불 하나조차 덮어주지 않는다. 당신이 똥을 너무 싸, 여보. 홍 여사는 남편의 식사량을 최소한도로 줄인다. 마비된 몸뚱어리에서는 땀 배출이 되지 않고, 퇴행성으로 근육에는 석회질이 쌓이면서 남편은 수시로 고통을 호소한다. 보일러를 충분히 가동하고, 진통제나 영양제를 챙겨 먹이지만 남편은 늘 운다. 치욕스러워서, 분해서, 그리고 아파서 운다. 나는 당신을 때린 적이 없는데 왜 울어, 여보? 자꾸 울면 강아지 사료를 먹일 거야, 여보. 늘 온화하게 웃는 홍 여사는 그런 식으로 우는 남편을 달랜다.

 

진동하는 휴대전화를 가방 속에 집어넣고 홍 여사는 보루각 자격루 앞에 선다. 올 때마다 읽어서 내용을 훤히 꿰고 있지만 그래도 안내문을 또 읽는다. 동래현 관노였던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 청동제 물받이 통에는 영원히 승천하지 못할 거대한 용이 꼼짝도 못하는 불구로 붙박여 있다. 물이 말라버린 물통에 새겨져 입을 벌린 용은 저주를 풀지 못해 울고 있으리라. 홍 여사는 다시 방향을 틀어 중화문 안으로 들어선다. 중화전을 마주 보고 서서 더 걸어갈지 말지 고민한다. 어딘가 앉고 싶었지만 마땅히 앉을 자리가 없다. 홍 여사는 중화문을 나와 맞은편 벤치로 간다.

 

어느 날인가 쌀 한 가마니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배달꾼이 현관 중문 안에 쌀가마니를 던지듯 부려놓았다. 가마니는 쌀가루로 덧씌워진 채 단단하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거실바닥 위에 놓여 있었는데,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고집스러워 보였다. 홍 여사는 쌀가마니를 쳐다보다가는 안방을 향해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을 자신의 귀로 똑똑히 들었다. 집안의 공기는 건조했고, 더웠다. 자신의 말에 반응하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지만 홍 여사의 동공은 남편이 누워 있는 방을 향해 쏠렸다. 아이가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못하듯이, 그림자 아래 머물게 하고 진저리쳐지도록 기대게 만드는 관계들의 시간, 인상, 그리고 기억들. 홍 여사는 홀린 듯 그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담장 안과 밖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옛것을 간직한 궁은 도시 안에 유폐되어 있다. 이제 일어나 천천히 걸어서 대한문을 벗어나면, 하고 홍 여사는 잠꼬대처럼 중얼댄다. 물기에 젖은 재색구름들이 하늘을 뒤덮는다. 열기와 습기로 숨이 막힌다. 홍 여사는 대한문을 바라본다. 찌는 더위로 혼몽하고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마천루의 세상과 그것이 내는 소음은 건재하다. 만 레이(Man Ray)가 원래 나무막대로 제작했다가 파손된 것을 크롬과 브론즈로 다시 만들었다는 `뉴욕'이란 작품이 눈앞에 겹쳐진다. 조임틀로 고정시킨 은빛 금속 다발은 마천루를 연상시킨다. 누군가 슬쩍 조임틀의 나사를 풀면 비스듬히 기울어 있던 마천루들이 지면을 향해 쓰러질 것이다. 견고해 보이지만 견고하지 않은 것들.

 

그러나 만 레이는 죽었다. 만 레이가 복구해 완성한 그 순간부터 `뉴욕'은 영원히 무너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무너진 `뉴욕'은 더 이상 `뉴욕'이 아니게 될 테니까.

 

홍 여사는 대한문을 향해 일어나 걸어간다. 아주 천천히. 지면 위로 차들은 잡다한 소음을 분출하며 빠르게 달린다. 건물들은 우뚝 솟아 각종 광고를 번뜩인다.

 

시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하늘이 차지하는 공간은 너무나도 좁다. 길 한복판에서 홍 여사는 걸음을 멈춘다. 대한문 밖의 세상도 하나의 그림이고 작품이라고 생각하자, 왜 그래야 하느냐고 따지거나 묻지 않기로 하자. 그리고 하나씩 지워나간다. 제일 먼저 대한문 안쪽 검표원을 지운다. 다음엔 줄을 긋듯 달리는 차들을 지운다. 그리고 빌딩이나 구조물을 지운다. 그 전에 광고들부터 차례차례 지운다. 마지막으로 대한문 바깥의 사람들을 지운다. 보이지 않는다고 믿으면 언제나 사라지던 것들. 그런데 왜 지금 저것들은 저토록 무례하고 완강하며 뚜렷하게 존재하는 것일까.

 

홍 여사는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자문해본다. 상처에 시달려 생을 탕진해 온 것은 아닌지.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었을까. 고갈된 욕망은, 비어버린 물통에 처박힌 채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처절한 용이나 지지대를 빈틈없이 휘감고 하늘 높이 타오르다가 목이 댕강 잘려버리는 능소화를 연상시켰다. 홍 여사를 때리고 아프게 하던 이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거나 힘을 잃었다. 전세는 역전되었다. 그러나 홍 여사는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믿었다. 받은 대로 되돌려준다는 것은 유치한 짓거리일 뿐이다. 나는 그들과 달라.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홍 여사는 자신 안에서 혈액처럼 순환하던 감정들이 문득 한 움큼의 먼지가 되어 가슴 밑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낀다.

 



<당선소감>

 

나도 좋은 글을 쓰게 되리라믿음의 씨알 하나 얻어

 

마흔을 훌쩍 넘긴 어느 날인가, 나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무턱대고 쓰기만 하면 소설가가 될 줄 알았으므로. 하지만 곧 깨달았다.


재능도 없는데다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사실을. 자괴감과 무력감에 이따금씩 드러누웠지만 소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특출 난 재능이 있었다면 이렇게 늦게 시작할 리도 없었겠지만 늦은 줄 알면서도 시작했던 만큼 소설은 좋았다. 그러니 계속 읽고 쓸 수밖에.


그렇게 쓰고 싶다는 열정 하나만 가지고 지난 4년을 함께해 온 끼움 글벗들. 규일이, 미영 언니, 유리, 은미, 지혜야, 고맙다.


또 격려와 가르침을 주신 장영우 교수님과 여러 교수님, 소중한 아버지와 내 가족들, 그리고 임헌영 교수님과 글마다 엄지손가락을 추어올려준 석수와 혜선 언니께도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나의 소설들이 많이 모자라고 한계를 지녔다는 점은 내가 가장 잘 안다. 그렇지만 이번 당선을 계기로, 더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시대를 아우르며 내가 만났던 대가들의 훌륭한 작품처럼 좋은 글을 쓰게 되리라는 믿음의 씨알 하나를 얻는다.

 

서울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사 과정


<심사평>


안정된 문장력 바탕 풍자 이끌어내는 기량 돋보여


새해를 여는 다채로운 그림들.


최종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그림 속에서 보다', `담벼락 붕괴사건', `화이트 아웃', `감자 꽃', `행복한 죄' 이상 다섯 편이었다.


각기 문체상의 개성이 뚜렷하고 이야기가 활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다채로운 그림들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주었다. 유머감각을 능란하게 발휘하거나 인상적인 성격을 제시하는 장점도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 특히 `그림 속에서 보다'는 탄탄하고 안정된 문장력을 바탕으로 전람회의 그림들 하나하나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이끌어내고 여기에 세태에 대한 풍자를 곁들이는 기량이 돋보였다.


사실 각각의 일화가 충분히 유기적으로 통합되고 있지 않다는 아쉬움은 있었다.


그러나 현재와 과거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인물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판단되었기에, 당선작으로 뽑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당선자의 앞날에 소설의 새해가 활짝 열리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심사 : 오정희, 최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