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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 * 신문사측에서 줄거리만 제공합니다.

 

집 떠나 집 / 하유지

 

회사를 뛰쳐나와 집안일만 하며 살아가던 스물아홉 살 동미. 엄마와 남동생에게 구박과 무시를 당하며 삼복더위에 에어컨 한 번 마음대로 못 켜고 서러움만 삼킨다. 그러던 어느 날, ‘이건 뭔가 좀 잘못된 인생이다!’는 깨달음이 번개처럼 내리꽂힌다. 그 결과는 가출. 집마저 뛰쳐나온 것이다. 짐 가방 끌고 무작정 달려간 옆 동네의 길모퉁이, 거기에는 작은 찻집 ‘모퉁이’가 있다. 노란색 고양이 보키가 따라오라고 해서 간 곳이다. 이 찻집에 덜컥 취직해버린 동미는 여러 이웃과 손님을 만난다.

먼저 찻집 주인 봉수. 이모 정 여사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내지 못했다는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인물로, 리경을 짝사랑하며 그 주변을 빙빙 맴돈다. 리경은 ‘모퉁이’의 옆집에서 밥집 ‘만나’를 운영하는데, 옛 남자친구인 경남과 얽힌 일을 잊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봉수의 마음을 알면서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봉수의 사촌동생이자 리경의 룸메이트인 나리는 엉뚱한 성격에 별생각 없어 보이는 대학생. 그러나 갑자기 세상을 떠난 엄마 정 여사를 향한 그리움과 아픔이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다. 나리가 엄마에게 물려받은 작은 집에 리경과 동미가 세 들어 산다. 사람 낚는 고양이 보키와 함께. 볕도 안 드는 컴컴한 스타고시원에서 지내던 동미에게 이 가정집의 방 한 칸은 꽃기린 화분을 햇볕 아래 키우는 공간이 된다.

다른 골목길에는 이 사람, 선호가 있다. 아버지의 채소 가게에서 일하며 아동센터에 오는 아이들에게 미술도 가르치는 선호. ‘모퉁이’와 ‘만나’에 채소를 배달해준다. 그런데 이 남자, 동미와 주파수가 좀 맞는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커다란 라디오의 다이얼이 더 그럴듯한 주파수를 찾으려고 지지직거리며 돌아간다. 동미와 선호의 주파수가 맞아떨어지게 될 것인지. 

‘모퉁이’와 ‘만나’를 스쳐 가는 손님들의 이야기도 있다. 오작교가 없어 만나지 못하는 견우와 직녀, 머리에 하얀 새를 얹고 다니는 마리, 노트북의 자판을 둥둥 두드리며 기계처럼 일하는 작은북, 경비원이 되고 싶어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는 춘식…,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

이런 사연으로 복닥거리는 골목길 모퉁이. 그곳에 스며든 동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당선소감>

 

진심 다한 문장에 진실 담고 싶어

 

어릴 적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소설가가 되려면 소설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렸다. 스물아홉 살의 가을, 회사를 그만뒀을 때부터 소설 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소설가라는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소설을 쓰되 계속 써야 하고, 내 글이 넌더리가 나고 지긋지긋해도 끝까지 써야 한다고 나 자신을 달래며 닦달했다.

그러던 중 시간이 흘러 ‘집 떠나 집’을 썼다. 포기하고 싶다는 고질병이 도지는 바람에 발뺌하며 도망칠 뻔했다. 지금이 아니면 이 글은 영영 끝맺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버티며 자판을 두드렸다. 내 안에서 밖으로 이야기가 스며 나온다는 생각에 즐겁던 순간도 많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행복했다. 그 글, 그 이야기로 이번에 내가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게 된 모양이다.

소설가란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설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좋았겠다.

“진실한 문장 하나, 가장 진실한 문장 하나를 쓰면 된다”고 어느 대가가 말했다는데, 진실한 문장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것도 ‘가장’ 진실한 문장이라니. 이렇게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나는 진실한 문장을 그리워한다.

진심을 다한 문장 속에 진실을 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앞으로 또 긴 시간이 걸린다 해도, 그 꿈이 이뤄지면 좋겠다.

부족한 글을 읽고 뽑아 주신 심사위원들께 고개 숙인다. 등을 두드리는 손길이자 바싹 조이는 고삐로 알겠다.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나보다 더 크게 기뻐해줬고, 시부모님은 나보다 더 오래 기도해주셨다. 새해 벽두, 내 얼굴이 실린 신문을 사보겠다고 한 성숙이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엄마와 남편. 엄마는 나를 태어나게 했고, 남편은 나를 꿈꾸게 했다. 고맙다.



◎ 약력

▶ 1983년 서울 출생

▶ 단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 프리랜서 편집자



<심사평>

 

자극적인 소재·갈등 없는 '생계 밀착형' 멜로드라마

 

올해 장편소설 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은 어떤 일관된 흐름을 찾기 힘들 만큼 다양했다. 이는 얼마 전까지 지배적이던 트렌드, 가령 장르소설적 경향이나 지식 조합형 소설 쓰기의 유행이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본심에서 오래 거론된 작품은 ‘집 떠나 집’과 ‘우리의 투쟁’ 두 개였다. ‘우리의 투쟁’은 응모작 중 가장 가독성이 높았다. ‘여덟 살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9금 하드보일드 갱스터 소설’이라 부르면 적절해 보였는데, 고작 여덟 살인 화자의 시각과 저토록 잔혹한 현실 사이의 간극, 그것은 단순히 군데군데서 발견되는 ‘개연성 부재’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바로 그 간극 덕분에 서사는 기발하고 흥미로워질 수 있었으나 역으로 바로 그 간극 탓에 이 작품은 세계와의 갈등을 완전히 피해 가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반면 ‘집 떠나 집’은 아주 소박한 소설이었다. 어조는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했고, 소재들은 일상적이었으며, 인물들은 착하고 사건들은 소소했다. 끝까지 기발한 서사나 자극적인 갈등의 힘을 빌리지 않은 그 소박함이 심사위원들에게는 이 작품의 최고 미덕으로 읽혔다. 시쳇말로 ‘생계밀착형’ 멜로라고 불러도 좋을 이 작품은 끝까지 소소한 일상에서 희망을 찾는 어떤 윤리 같은 것을 지니고 있었다. 어떤 소설도 그 기원에는 ‘삶’이 있다. 삶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더 깊고 넓어지길 기대하며, 심사위원들은 ‘집 떠나 집’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우리의 투쟁’의 작가와 나머지 응모자에게는 미안함과 위로의 말을 전한다.


심사 : 김숨, 김형중, 성석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