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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 이채현

ㆍ제목은 쉼보르스카의 시 ‘사진첩’에서 인용

 

할아버지가 내게 남겨준 유품은 이안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2007년식 포터2. 태어난 지 사십 년이 다 되어가는 고물 트럭이다. 아직까지도 바퀴가 굴러간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할아버지는 이 트럭에 나를 태우고 거래처와 제조사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곤 했다. 할아버지가 일을 하는 동안 나는 트럭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일밖엔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봉지 라면을 하나씩 내 손에 쥐여주었다. 내 입맛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순전히 할아버지의 취향이었다. 할아버지는 항상 그랬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쥐여주고는 자기는 잘해줬다고 생각하는 식이었다. 애도 아니고. 어째서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걸까.

트럭은 늙은 개 같았다. 탁한 숨을 뱉어가며 터덜터덜 간신히 움직였다. 하지만 집에 남아 있는 차라곤 이것 하나뿐이어서 트럭을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자동 항법 장치가 개발되고 나서 운전할 필요가 없어진 시대가 왔는데도 왜 할아버지가 디젤식 자동차를 고집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돈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이안’은 정말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렸으니까. 이안은 독거노인용 말상대 안드로이드가 상용화된 지 꽤 시간이 지난 후에 나온 후발 주자에 속했지만 상대적으로 싼 가격과 사람과 가장 흡사한 외모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어깨 바로 위에서 떨어지는 검은 단발머리는 마틸다를 연상시켰다. 나는 아홉 시 뉴스에서 이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나오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취향이 꽤 악취미라고 생각했다. 망할 노인네, 죽은 자기 딸 어릴 때랑 똑같은 얼굴을 만들면 어쩌자는 거야. 그것도 여성형도 아니고 남성형 안드로이드를. 덕분에 난 이안을 볼 때마다 그 얼굴에 조금씩 남아 있는 엄마의 흔적을 어쩔 수 없이 함께 볼 수밖에 없었다.

임대 아파트에서 캐리어 몇 개를 끌고 나와 트럭에 실었다. 몇 년째 관리조차 받지 못한 아파트는 여기저기 창문이 깨져 있었다. 내가 살던 사 층 베란다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화단은 이미 시든 지 오래였다. 나는 아파트를 한번 둘러보고 나서 이안에게 차키를 넘겼다.

네가 운전해. 나 운전 못해.

이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은석, 나도 그런 거 할 줄 모르는데……? 말꼬리를 흐리는 이안에게 막무가내로 차키를 쥐여준 뒤 나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이안은 멍청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야, 깡통! 안 타고 뭐해?

내가 소리치자 이안은 마지못해 운전석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내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깡통 티내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말이지 차는 질색이었다. 나는 이안의 손에서 차키를 뺏어서 구멍에 꽂았다. 차키를 돌려 시동을 걸자 포터가 힘겹게 비명을 내질렀다. 백미러에 걸린 사진이 함께 덜덜 떨렸다. 나는 손가락으로 이안의 눈썹 위쪽을 툭툭 쳤다.

매뉴얼에 없으면 검색이라도 해봐. 깡통이 그 정도도 할 줄 몰라?

이안은 잠깐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할 수 있겠냐고 묻자 이안은 또 고개를 주억거렸다. 걱정 마, 다 외웠으니까. 내가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 바라보자 이안은 한 번씩 웃더니 클러치를 밟았다가 떼고 액셀을 밟았다. 포터가 덜덜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석, 운전 못 한다더니 시동은 걸 줄 아네. 근데 왜 운전 안 해? 은석이 운전하는 것도 한번 보고 싶은데. 진짜 근사할 거 같아.

단순히 기술적으로 할 줄 아냐고 묻는다면 운전을 할 줄은 알았다. 운전면허증도 있었다. 적성검사 기간에 갱신을 하지 않아 지금은 아마 취소되었겠지만. 나는 이안의 말을 못 들은 척 눈을 감고 창문에 머리를 댔다. 이안이 쓸데없는 말을 하는 바람에 쓸데없는 기억이 떠올랐다. 최대한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잠을 청했다. 근데 은석아 우리 어디로 가? 끈덕지게 물어오는 이안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노인네의 집으로 가자고 했다.

한참 운전을 하던 이안이 한 손으로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나는 한쪽 눈만 간신히 뜨고서 이안을 쳐다보았다. 이안은 백미러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누구야? 나랑 똑같이 생겼다.

깡통, 제발 입 좀 닥쳐. 쓸데없는 거 자꾸 물으면 버리고 간다.

그러자 이안이 물었다. 은석, 버려진다는 건 뭐야?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이 멍청한 깡통은 버려진다는 게 뭔지도 모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안은 내가 이런 식으로 굴 때마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원래가 독거노인 말상대용으로 개발된 것이었으니까. 텔레비전에서 본 이안의 광고가 떠올랐다. 마른 장작개비처럼 생긴 노인이 이안의 무릎에 얼굴을 베고 누워 있는데 이안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지나갔다. 그나마 이안이 남성형인 게 다행이었다. 안 그럼 롤리타가 따로 없었을 거다. 노인네가 자기 딸을 롤리타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지. 인간의 가장 가까운, 다정하고 친절한 우리의 친구는 개뿔. 그래봤자 냄새나는 늙은이들한테 아양이나 떠는 주제에. 나는 앞이나 보라고 손을 내저었다.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도로 눈을 감았다. 작은 침묵 뒤에 이안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은석, 노래를 불러줄까? 사람은 자장가를 들으면 더 편하게 잘 수 있다던데.

나는 시끄럽다고 손바닥으로 이안의 주둥이를 탁 쳤다. 깡통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그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안이 과장된 제스처로 한 손을 들어 입을 감쌌다. 까고 있네. 아픔을 느끼지도 않으면서. 깡통 주제에 아주 인간 흉내를 내는 데 도가 텄다. 노인네는 매일 이안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이 들었나? 그래봤자 노인네는 죽었고 나는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아닌데. 이안은 너무 하다느니 매정하다느니 엄살을 떨더니 내가 무시하자 자기 멋대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한때 아주 유명했던 아이돌이었다. 남자고 여자고 할 거 없이 수많은 팬들을 거느렸고 엄마가 발표하는 노래마다 음원 차트를 휩쓸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스물세 살에, 데뷔한 지 오 년 만에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지금이야 정자 은행에서 기증받아 혼자 애를 낳는 여자들이 많아졌다고 해도 남편 없이 애를 임신한 것이 당시에는 꽤 큰 스캔들이어서, 그것 때문에 더 이상 무대에서 노래할 수 없게 됐다. 애 아빠가 누구냐는 추측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엄마는 거기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았고 단 한마디만 남겼다고 했다. 사랑 때문이라고. 그리고 조용한 해변 가에 내려가 나를 키웠다. 할아버지와 같이 살게 된 게 그때부터였다.

지금도 엄마의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미 한참 유행이 지나간 히트송을. 이안이 지금 그걸 부르고 있었다. 엄마의 노래를. 빌어먹을 노인네. 도대체 매뉴얼을 어떻게 한 거야. 여태 잘 참아왔는데. 똑 닮은 얼굴로,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이안에게 당장 차를 세우라고 명령했다. 이안은 털털털 소리가 나는 포터를 간신히 갓길에 주차했다.

야, 깡통. 너 한 번만 더 그 노래 부르면 진짜 버리고 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

왜?

짜증나니까. 듣기 싫으니까.

이안이 시무룩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석이 싫어하는 건 안 해. 기계 주제에 잘도 가식적인 표정을 지어낸다. 그런데 순간 그 연갈색 눈망울이 엄마의 눈과 겹쳐보였다. 엄마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그게 다 눈물점 때문이라고 했다. 눈물점 때문에 느이 엄마 팔자가 기구해졌다고. 엄마는 슬픈 영화를 보다가도 울었고 팬들이 준 선물이 새로 올 때마다 울었다. 그렇지만 깡통 따위가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유리창 위로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랜 가뭄 끝의 단비였다. 이안이 말했다. 비 온다! 은석아, 봐봐. 우리 창문 좀 열까? 나는 비가 너무 좋은데, 비 맞으면 시스템이 망가지니까 아버지가 레인코트를 만들어 주셨어. 이안이 또 종알종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방금 전 울 것 같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하지만 나는 비가 싫었다. 비가 오면 사고 때 다친 허리가 욱신거렸으니까.

이안이 처음 나를 찾아왔던 날도 비가 내렸다. 그날 이안은 파란색 레인코트를 입고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이안이 나를 돌아보던 순간 나는 죽었던 엄마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뒷걸음치다가 들고 있던 봉투를 놓쳤다. 벌어진 봉투에서 귤이 몇 알 굴러 나와 이안의 발치에 가 닿았다. 그 자리에서 당장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이 묶인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나는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야 그게 이안이라는 걸 눈치챘다. 이안의 눈 밑에는 엄마의 눈물점이 없었다. 노인네가 눈물점까지 똑같이 만들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게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이안은 할아버지가 죽었다고 했다. 죽는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런 말을 하는 이안의 태도는 침착했다. 그때까지 나는 할아버지가 최초의 이안을 직접 키우고 있었단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미 죽은 사람을 되살려 내겠다는 생각 자체부터가 글러먹은 거였다. 지긋지긋한 노인네. 덕분에 나는 도처에 깔린 엄마 얼굴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노인네가 알기나 알까. 현관 앞에 서 있던 이안을 지나치며 말했다.

그 노인네가 죽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이안은 황급히 내 팔을 붙잡았다. 나는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말하며 뿌리쳤다. 이안이 말했다. 유언이 있었어. 나는 코웃음을 쳤다. 유언, 뭐. 이제 와서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이안을 만들어낸 노인네와 대판 싸우고 나서 집을 나온 지 십 년이 다 되어갔다. 그러니 내가 들을 말은 없었다. 현관 손잡이를 잡자 이안이 말했다. 아버지가 유산을 남겼어. 이안의 레인코트에서 파란색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생명이 시작되는 곳에, 두고 왔다고 했어.

개뼉다귀 같은 소리다. 생명이 시작되는 곳? 노망난 노인네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산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이안을 따라나서는 짓은 하지 않았을 거다. 하필이면 나는 며칠 전에 해고를 당했다. 그것도 안드로이드 때문에. 시 당국에서는 더 이상 도서관 사서는 필요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이 전자 시스템으로 이루어질 거고, 사서의 역할은 이제 안드로이드가 대신하기로 했다고. 하긴 책들도 이제 운명을 다 하고 전자책으로 대체되고 있는 시대에 사서가 살아남겠다는 건 웃기는 일이었다. 그렇게 서면 몇 줄로 아주 쉽게 모가지가 날아갔다. 한마디로 돈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십 년 가까이 도서관에서만 일한 내가 할 줄 아는 일이라곤 대출과 신간 서적 정리가 전부였다.

이안은 다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조잘조잘 참새 부리 같은 입술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은석. 아버지 집에 가려면 이제 작은 사막 하나를 지나가야 돼. 몇 년 전부터 계속된 가뭄 때문에 사막으로 변한 곳이라 은석은 모를 수도 있겠다. 원래는 나무가 정말 많았었는데…… 이런 기후에 사막이라니 진짜 안 믿기지?

그리고 나는 이제 이안의 입을 다물게 하는 방법을 알았다. 조용히 하라고 이안의 가슴께를 무심코 툭 한 번 쳤다가 알게 됐다. 이안은 심장이 있어야 할 위치를 누르면 싸구려 곰 인형처럼 한마디 말을 반복해서 했다. 아이 러브 유! 알 럽 유! 그러면 화들짝 놀라면서 이안은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이건 무슨 취향이냐.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형도 아니고. 인공지능의 프로세스에 의해서 나오는 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다른 어떤 말을 하다가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그 말을 듣기 곤혹스러웠지만 그것만큼 이안의 주둥이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은 없었기에 자주 써먹게 되었다. 이번에도 나는 이안의 가슴을 툭 쳤다.

아이 러브 유!

이안은 딸꾹질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틀어막았다.

한동안 조용한 상태가 이어졌다. 그게 좋아서 콧노래를 간간이 흥얼거릴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자동차 바퀴가 모래 구덩이에 빠지지만 않았어도 이 기분은 계속 유지 되었을 것이다. 차가 기우뚱하더니 주저앉아 버렸다. 이 늙은, 개 같은 차. 처음에 이안은 차에서 내려 구덩이에 빠진 바퀴를 들어 올려 보려고 낑낑거렸다. 함께 좀 들었으면 하는 눈으로 내 쪽을 쳐다봤지만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사막의 햇볕은 따가웠다. 차에서 내리면 금세 땀이 한가득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안은 땀이 안 난다지만 나는 아니었다. 안 그래도 못 씻어서 찝찝한데 거기다 땀까지 더하고 싶지는 않았다.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사막의 밤은 추웠다. 나는 다시 한번 시동을 걸어 보았다. 드드드, 드드, 하는 소리만 날 뿐 차는 이제 시동마저 걸리지 않았다. 이안을 찾아보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안이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안이 미안하다고 했다. 은석,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모래 바람이 불었다. 순식간에 기온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그나마 좀 따뜻했다. 그래도 춥긴 추워서 나는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이빨이 딱딱 부딪칠 정도로 몸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옆에서 이안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쳐냈다.

이런 때라고 친한 척하지 마. 너 같은 건 유산을 찾기만 하면 바로 버릴 거니까.

이안은 내가 뿌리친 손을 쳐다보곤 내게 물었다. 은석, 근데 버려진다는 거, 그거 대체 뭐야?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이 멍청한 깡통은 여전히 버려진다는 게 뭔지 모른다. 버려졌을 때 슬프지도, 주인을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안드로이드는 감정이라는 게 없으니까. 나는 차라리 안드로이드처럼 되고 싶었다. 버려진다는 것도, 혼자 남겨진다는 것도 모르고 싶었다. 이안이 다시 물었다.

은석이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 사전에 검색해봤어. 검색 결과에 1번은 가지거나 지니고 있을 필요가 없는 물건이 내던져지거나 쏟아지다, 2번은 직접 깊은 관계가 있는 사람과의 사이가 끊어지고 돌봄을 받지 못하다. 이렇게 나오던데 나는 1번이야, 아니면 2번이야?

1번이야. 넌 깡통이니까. 사람이 아니라고. 버려지는 건 네가 필요 없어졌다는 거야.

그거 슬픈 거야?

아니. 물건이 슬픈 게 어디 있어. 그냥 버려지는 거야.

나는 사람의 감정을 훈련 받았는데, 슬픔이라는 감정은 너무 복잡해서 그것만은 이해할 수가 없었어. 하지만 아버지가 보여준 적이 있어. 슬픈 사람들의 얼굴. 찡그리고 울고 있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옆에서 꼭 안아줘야 된다고 했어.

이안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모른 척하려고 했는데 손발이 꽁꽁 얼어붙어 이제 아리기까지 했다. 나는 마지못해 그 손을 잡았다. 이안의 몸에는 열선이 깔려 있어서 온도 조절이 가능했다. 꼭 난로를 손에 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따뜻해서 그런지 잠깐 선잠이 들었다. 눈을 떴더니 해가 밝아오고 있는 게 보였다. 사막의 낮이 오고 있었다. 언제 가까이 왔는지 이안이 바로 옆에 다가와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이안의 몸을 밀쳐냈다. 이제 빠르게 더워질 것이다. 온기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이안에게 출발하라고 명령했다. 차키를 돌렸는데 이젠 시동마저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깡통을 불렀다. 그러자 이안이 눈을 뜨고 바싹 고개를 들이밀고 내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자동차 배터리가 나간 거 같아. 주변에 도시가 있나 좀 알아보고 와.

지도에는 분명 이 부근에 작은 도시가 하나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이안이 꿈적도 하고 있지 않았다.

깡통, 왜 그래?

이안은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배터리가 다 돼 가. 아마 한두 시간밖에 못 버틸 거야.

깡통 티내는 것도 아니고.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다. 나는 그제야 이안의 배터리를 충전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구형 안드로이드는 기계 효율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충전기를 가져오긴 했는데 전기를 연결할 만한 것이 없어서 소용이 없었다. 자동차에 연결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자동차마저 배터리가 나가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안이 지난밤에 열선을 틀어두고 잤다는 게 생각났다. 내가 쳐다보자 이안은 점점 느려지는 말투로 대꾸했다. 괜찮아, 은석. 전원이 꺼져도 충전하면 다시 돌아올 테니까. 나는 그런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이안이 없으면 내가 감수해야 될 불편을 셈해보는 중이었다. 우선 이 더운 날씨에 내가 직접 돌아다녀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안의 몸이 자동차 시트에 축 늘어져 있었다. 이럴 때마다 새삼스럽게 이안이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이 피부에 와 닿았다. 알고 있었던 것을 재확인하는 것뿐인데 낯선 기분이 들었다. 이안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했고 마치 잠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나는 이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이안이 간신히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안이 말했다.

은석, 노래를, 불러, 줄까?

배터리가 꺼져가는 상황에서 잘도 그런 말이 나온다. 멍청한 깡통. 매뉴얼이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뭐란 말이야. 이안은 지난번 그 노래가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허락이라고 생각했는지 이안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린애들한테나 불러줄 법한 자장가였다.

이안은 눈을 깜빡였다. 그럴 때마다 숱 많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노래가 점점 늘어졌다. 나는 손을 뻗어 이안의 눈을 감겨주었다. 이안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삐, 하고 이안의 프로세서가 중지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진짜 죽음이 아니란 것 정도는 나도 알았다. 그런데도 무서웠다. 엄마. 교통사고였다. 눈이 아주 많이 내린 날이었고, 타이어가 도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내가 살 수 있는 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마주 오던 승용차가 조수석 쪽을 들이받았다. 스키드 마크를 그리면서 낸 끔찍한 소음 이후에 모든 것이 공백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엄마는 자고 있는 얼굴이었다.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영원한 잠.

눈을 감은 이안의 얼굴이 평온했다. 이안은 충전을 하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엄마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는데 이안은 일어날 것이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서. 엄마도 죽고 이젠 노인네마저 죽었는데도, 자꾸 죽음이 뭔지 모르겠다.

나는 시동이 꺼진 포터를 잠깐 쳐다보았다. 사방에는 모래뿐이었다. 바짝 마른 나무 몇 그루가 듬성듬성 이어져 있었다. 차키를 뽑았다. 백미러에 걸린 사진이 내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나는 이안의 마른 나뭇가지 같은 몸을 안아 올렸다. 깡통이라 무게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는데 두 손 가득 묵직한 게 들어찼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 모래바람이 불었다.

이안을 업고 안드로이드 스토어를 찾아 들어가자마자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리콜 행사! 늦기 전에 구형 안드로이드를 다른 제품과 교환하세요.

그것은 이안이었다. 이안은 온갖 안드로이드와 가전제품 사이에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이안의 아래에는 세탁기가 있었고, 옆에는 냉장고가 있었고 뒤에는 텔레비전이 진열되어 있었다. 굽슬굽슬한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안드로이드들이 웃는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리콜 행사 중입니다. 구형 안드로이드 대신 저를 데려가세요. 그 안드로이드 사이에서 이안은 초라해보였다. 매장 앞에 가만히 서 있자 직원이 다가왔다.

구형 안드로이드 리콜 하시려고요?

여자가 내 등에 업힌 이안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가만히 직원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물었다. 이안이 왜 리콜 되고 있는 거죠? 직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기계적 결함 때문이죠. 고객님, 더 좋은 모델도 많이 나와 있어요. 최근에 이 구형 안드로이드 때문에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거 모르셨어요? 한두 건이 아니래요. 아니, 무슨 기계 때문에 자살을 하고 그런데요? 그게 말이 돼요? 아무래도 실제 사람을 모델로 만든 거라, 사람들이 자주 인간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이건 기계일 뿐인데, 그렇죠? 아무튼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폐기처리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나는 직원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폐기처리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뭐, 부품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다시 다른 기계 부속품으로 사용하겠죠, 아마.

그럼… 폐기를 안 하겠다면요?

글쎄요, 그거 안 하면 안 된다고 그러긴 하던데… 그냥 이참에 새 거로 교환하시는 게 어떠세요?

직원이 지치지도 않고 신형 안드로이드를 들이밀었다. 나는 됐다고 말하고 뒤돌아섰다. 폐기는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은 아니었다. 아직 유산을 찾지도 못했다. 노인네의 유산을 찾기 위해서는 이안이 필요했다.

돌 하나가 툭 튀어와 세탁기 위에 있던 이안을 맞췄다. 그 이안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내 뒤에 있던 직원이 놀라서 소리쳤다. 너네 지금 뭐하는 거야! 저게 얼마짜린 줄이나 알아? 동네 꼬마 애들이었다. 그 애들이 내 등 뒤의 이안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 악마! 썩 꺼져버려! 사람들이 가장 사랑했던 안드로이드를 이젠 악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왜소한 체구를 가진 꼬마가 무리 중의 맨 앞에서 소리쳤다. 너 때문에 우리 할아버지가 죽었어. 맨날 너 따위랑 얘기하더니, 결국 자기 혼자 죽어버렸다고. 나랑 엄마는 어쩌라고, 자기 혼자…… 곧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변했다. 그 애들은 계속해서 돌을 던졌다. 잘못 날아온 돌이 내 팔을 맞고 떨어졌다. 팔이 욱신거렸다. 나는 그 애들을 지나쳐서 뛰기 시작했다.

스토어에서 자동차 배터리를 사서 포터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져 가고 있었다. 나는 이안을 조수석에 놓고 배터리를 갈았다. 이걸 사느라 칩을 쓰는 바람에 마이너스가 또 쌓였다. 배터리를 갈아 놓고 나는 운전석의 손잡이를 잡았다. 사막이니까 괜찮다고 혼잣말을 했다. 딱 이번뿐이라고. 그리고 운전석에 올라타 키를 꽂고 시동을 걸었다. 드드드, 하고 힘없는 소리를 내더니 이윽고 시동이 걸렸다. 이를 악물었다. 있는 힘껏 클러치를 밟았다가 떼고 액셀을 밟았다. 너무 세게 밟아서 포터가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구덩이에서 바퀴가 빠져나왔다. 백미러에 매달린 사진도 함께 흔들렸다. 내 몸의 떨림 같은 건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포터는 잘 굴러갔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이상하게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종알종알 떠들던 게 시체처럼 누워 있어서 그런 건가. 짜증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갑갑한 것 같기도 했다. 노래라도 들을까 해서 한 번도 틀어본 적이 없던 자동차 라디오에 손을 댔다.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날 뿐 라디오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필요할 땐 꼭 이런 식이지. 나는 신경질적으로 라디오를 껐다. 노인네의 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액셀을 더 세게 밟았다. 엔진 소리가 조금 더 커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이안을 들어 품에 안고 차 문을 열었다. 코끝에 소금내가 확 끼쳤다. 통나무집에서 내려다보면 엄마 손을 잡고 걷던 모래사장이 보였다. 노인네의 집은 내가 떠났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미줄이 여기저기 쳐져 있는 것만 빼면 십여 년 전 모습과 똑같았다. 노인네는 엄마가 죽은 이후 집의 어떤 것에도 손대지 않았다. 통나무로 지어진 이층집. 이층에 있는 다락방이 한눈에 보였다.

문은 잠겨 있었다. 혹시나 해서 도어락에 손가락을 갖다 대자 띠릭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거실 풍경이 보였다. 집 안에 있던 온갖 로봇들이 순식간에 현관 앞에 모여 들었다. 거미 모양을 하고 있는 청소로봇이 내 발등 위에 올라왔다. 나는 발을 털어내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로봇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양쪽으로 갈라져 길을 만들었다. 노인네의 연구실로 향하는 길이었다. 가지가지 한다. 왜, 폭죽이라도 터뜨리시지. 노인네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기분이었지만 그 길로 걸었다.

연구실의 문을 열자 보인 건 온갖 기계 부품들과 널브러진 책들, 그리고 마호가니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작은 종이 뭉치들이었다. 나는 책상 위에 일단 이안을 내려놓았다. 종이 뭉치를 들어 펼치자 노인네가 적어놓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생명은 심장에서 시작된다]

또 개뼉다귀 같은 소리를 지껄여 놓았다. 나는 종이를 도로 구겨 던졌다. 나머지 다른 종이는 전부 빈 종이였다. 쓸모없는 영감탱이. 연구실을 한번 둘러보았다. 한쪽 구석에 걸려 있던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 덥수룩한 머리에 지친 표정을 한, 이제 막 삼십대에 접어든 남자가 서 있었다. 오래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지저분하게 나 있었다.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한 흰머리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거울 속에는 책상 위에 누워 있는 이안의 모습이 함께 보였다.

나는 책상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이안을 내려다봤다. 이안의 얼굴은 십 년 전에도 그대로였다. 아마 십 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기계 부품들 사이에 이안의 충전기가 보였다. 충전기를 가져온 다음 이안을 뒤집었다. 등에 충전기를 꼽자 전기가 들어가면서 이안의 몸이 한 번 살짝 들썩였다. 나는 이안을 일으켜 세웠다. 이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눈을 떴다. 그리고 말했다.

은석, 오랜만이야.

목소리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이를 알았던 적이 없다. 이안은 나를 보고 웃었다. 안드로이드치고 어색하지 않게. 나는 무심코 그 얼굴을 보다가 이제 더 이상 그 얼굴을 볼 때마다 엄마를 떠올리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안은 그냥 이안이었다. 나는 이안에게 말했다. 이안이 나를 찾아왔을 때부터 줄곧 묻고 싶었던 것을.

할아버지는 어떻게 죽었어?

이안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경찰이 왔었어. 그 사람들은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했어. 아버지는… 이 앞의 바다에서 발견됐어. 글쎄, 나는 죽는다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은석, 그건 슬픈 일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안이 말했다.

슬픈 일이구나.

내가 언제 그랬어.

은석은 항상 울 것 같으면 입술을 깨물고 콧잔등을 찡그리고 있으니까. 이렇게.

이안이 우스꽝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입술에서 피 맛이 났다. 웃기지 마. 노인네가 죽어서 슬펐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죽은 건 죽은 거고. 그게 자연사든, 자살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사실상 죽음이란, 어떤 사람이 영원히 떠나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노인네도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됐다는 것뿐. 죽지 않았을 때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게 뭐 대수냐고 이안에게 말했다. 입술을 물어뜯던 것을 그만두었다. 그러자 눈이 따끔거렸다.

은석은 이상해.

뭐가.

한 번도 얼굴하고 같은 감정을 말한 적이 없어.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랬지. 이안이 내게 손을 뻗었다. 어깨에 닿는 손이 따뜻했다. 온기에 중독될 것 같았다. 나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이안이 물었다.

아버지를 사랑했어?

사랑이라니, 웃겼다. 깡통 주제에 사랑을 말한다는 게 우스웠다. 슬픔도 사랑도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이안이 이어서 말했다. 아버지는 나한테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했어. 나는 그게 뭔지 모르는데.

사랑 같은 건 없어. 나는 그따위 것이 없어도 잘 지내게끔 나를 훈련해왔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안이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물었다. 근데 왜 그런 얼굴이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 안에서 피 맛이 났다. 그때 거실에서 전화가 울렸다. 나는 이안을 두고 도망치듯 거실로 나왔다. 수화기를 들자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 박사님 댁 맞습니까?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여자는 내 대답은 상관없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끔찍하게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꼭 안드로이드가 말하는 것 같았다. 안드로이드 관리부서입니다. 이안 IN0001이 아직 회수가 안 되었는데, 계속 안 한다면 강제적으로 회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사안이 사안이라. 이미 몇 번이나 공문을 보낸 걸로 아는데요.

내 물건을 강제로 가져가겠다는 건가요?

강제라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시되는 가치는 있는 법이죠. 정부에서 사람을 죽게 만드는 안드로이드를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용건만 전달하고 뚝 끊어져버린 수화기를 들고 있는데 이안이 언제 따라 나왔는지 뒤에서 물었다. 은석, 무슨 일이야?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얼버무리고 소파에 누웠다. 이안이 쪼르르 뒤따라와 말을 걸었다. 밥은 먹고 자야지.

그 말에 나는 일어나 부엌 냉장고에서 파인애플 통조림 하나를 가져왔다. 할아버지가 즐겨 먹던 것이었다. 예상대로 냉장고에는 생수병과 통조림만 즐비했다.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아 통조림을 따고 아주 천천히 파인애플을 먹었다. 내가 그러는 동안 이안은 말을 걸기를 포기하고 소파에 등을 대고 앉았다. 나는 이안의 조그마한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닿을 듯 말 듯 움직이며 내 손가락을 간질였다. 문득 그 뒤통수를 만져보고 싶어졌다. 손을 뻗으려다가 손가락에 묻어 있는 끈적끈적한 국물 때문에 관두었다. 파인애플은 입이 아릴 정도로 달았고, 이안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그들이 이안을 데려가기 전에 내 손으로 폐기하는 것뿐이었다. 이안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물었다.

은석, 자장가 불러줄까?

나는 가만히 있자 이안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안은 라디오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안은 라디오다. 라디오일 뿐이야.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어쩐지 조금 서글픈 일이었다.

집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난 뒤에야 나는 노인네가 말한 유산 따위는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속는 셈치고 여기까지 온 거였지만 역시나였다. 이안은 다락방에서 내려오던 나에게 물었다. 뭐 좀 찾았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노인네가 수집하던 골동품과 로봇 부품, 그리고 굴러다니면서 뭉친 먼지들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곤 소파에 드러누웠다.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노인네의 로봇 부품이라도 갖다 팔아야 되나 싶었다.

이안이 곁에 다가와 앉았다. 내가 물었다. 노인네가 다른 말은 안 했어? 생명 어쩌고 헛소리 말고.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뿐이었어.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밤새 집을 들쑤시고 다녔더니 벌써 창문으로 동이 터 오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안에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왜 자살을 했을까.

이안을 산 다른 노인네들은 대체 왜 자살을 했을까. 멍하니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있는데 이안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가만히 머리를 맡긴 채로 내버려두었다. 이안의 손가락 사이로 사르륵 사르륵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보고 있었다. 이안이 말했다.

아마도, 슬펐기 때문 아닐까.

뭐가.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어. 아버지는 밤마다 혼자 콧물을 훌쩍였어. 그래서 내가 매일 안아줬는데도, 그런데도 훌쩍임이 멈추질 않았어.

이상하네.

노인네는 슬프다거나 기쁘다거나 하는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늘 고집불통인 얼굴에,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빠지는 날엔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냈다. 나는 노인네의 연구실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괜히 얼쩡거리다가 한번 잘못 걸리는 날에는 하루 종일 시끄러운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안은 내 말을 어떻게 이해한 건지, 딴소리를 했다.

그치? 꼭 안아주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으면서, 아버지는 한 번도 괜찮아진 적이 없었어.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나는 이안을 쳐다보았다. 이안이 물었다.

내 잘못이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묵이 길게 이어지는 사이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뭄이 끝나고 나서는 꽤 자주 비가 내렸다. 천장 어딘가에 구멍이 났는지 빗방울이 마룻바닥으로 똑똑 떨어졌다.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나는 이안을 불렀다.

지붕에 물 샌다. 좀 막아야겠는데.

이안이 불쌍한 척 눈썹을 늘어트렸다. 나는 이안에게 레인코트를 던져주었다. 얼른, 나갔다 와. 이안은 마지못해 레인코트를 주워 입었다. 나는 우산을 들고 이안과 함께 집을 나섰다. 이안이 뒷마당에서 찾아낸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갔다. 나는 아래에서 이안이 나무판자로 구멍을 막는 것을 보고 서 있었다. 이안은 한참 낑낑대면서 새는 곳을 찾더니 판자를 댔다. 이제 다 됐다고 사다리에 발을 디디는 순간, 이안이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 건 한순간이었다.

눈을 떴더니 보이는 건 이안의 얼굴이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팔이 욱신거렸다. 이안이 말했다.

움직이지 마, 은석. 넘어지면서 팔을 다쳤어. 부러진 건 아닌 거 같은데…

그 말에 도로 누웠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데 이안이 물었다. 고요한 얼굴이었다. 늘 이런저런 표정으로 풍부한 얼굴이었는데.

은석, 왜 그랬어?

뭐가.

왜 날 받쳐줬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몰랐으니까. 이안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는 안 돼.

왜?

은석이 나 때문에 다쳐서는 안 돼.

그쯤은 나도 알고 있어. 이안이 심심할 때 틀어놓는 라디오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다시 똑같은 상황이 와도 나는 그렇게 할 거였다.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안이 말했다.

은석 말대로 나는 그냥 기계일 뿐이니까. 착각하면 안 돼.

이안이 손을 내밀었다. 인간이 만든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기계가 나를 보고 웃었다. 그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그제야 사람들이 왜 자살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소중하게 생각해도 보답 받지 못하는 마음, 이걸 견딜 수 없었던 거다. 이안의 손을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내 얼굴이 안 보이게. 평소엔 비교적 자제가 잘 되는 편인데 가끔씩 계기가 생기면 별거 아닌 일로도 이놈의 정신머리가 주체가 안 됐다. 화병을 부르는 못된 성질머리라고,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늘 듣는 잔소리가 그랬더랬다. 이안이 말했다.

은석, 있잖아. 내가 아버지한테 받은 명령은 하나밖에 없어. 은석을 소중히 여길 것. 이건 다른 모든 이안에는 없는, 나만 받은 명령이야.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특별하다고 했어.

뭐래는 거야. 깡통이. 나는 내가 이안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안이 따뜻할수록, 다정할수록 나는 슬퍼졌다. 나는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이안을 데리러 오기 전에. 내일 아침 일찍 떠나자고 하자 이안이 중얼거렸다. 은석이 나 때문에 다쳐선 안 돼. 나는 못 들은 척 이안에게 엄마의 노래를 자장가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러자 이안이 조곤조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품 안에는 약간의 온기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제일 먼저 다락방을 살피고 그 다음에 부엌, 거실을 살폈다. 베란다까지 둘러보고 나서야 나는 이안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빗방울이 얼굴을 적셨다. 이안의 레인코트가 흙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이안을 포터 옆에서 발견했다. 이안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빗방울이 이안의 살갗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안의 숱 많은 속눈썹에도 비가 떨어졌다. 그러자 이안은 꼭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안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이안을 안아 들었다. 삐, 하고 이안의 프로세서가 중지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안을 쳐다보다가 이안의 가슴 부근을 쳤다. 아이 러브 유! 이 목소리는 이안의 생명과 상관없이 유지되는 모양이었다. 몇 번 더 두드리자 계속해서 이안이 사랑한다고 소리쳤다. 할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심장 부근에서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진흙탕 위에 떨어진 그것을 주워들었다. 조그마한 칩이었다.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나 찾아 헤매던 할아버지의 유산이었다. 이 작은 칩 안에 그동안 이안으로 벌어들인 재산이 전부 들어 있을 터였다. 이상하게도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나는 포터를 뒤로한 채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와 이안의 몸을 소파 위에 내려놓고 나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었다. 아주 오랫동안.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칩을 손에 쥐고 한참 동안 이안의 얼굴을 보았다. 잠이 든 이안은 마치 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칩을 다시 이안의 심장에 끼워 넣었다. 이렇게 하면 이안의 심장에서 칩을 꺼내기 전까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칩이 들어가면서 이안의 몸이 미약하게 들썩였다. 이안을 일으켜 세웠다. 물기어린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눈을 떴다. 그리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이안입니다.

모든 메모리가 날아간 이안이 나를 보고 웃었다. 나를 소중히 여긴다던 기계는 이제 없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빌어먹을, 깡통. 두 손에 얼굴을 파묻자 빗소리가 귓가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당선소감>

 

할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미안함이 글이 되어

 

할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오래 남아 있었다.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날씨 때문에 열두시가 다 되도록 창밖이 어둑어둑해서 늦잠을 잤다.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세 통 들어와 있었다. 발신자는 모두 아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빈소가 학교 근처에 마련되었다고 해서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바로 지하철을 탔다. 엄마는 초췌한 얼굴로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장례식장 안에 슬퍼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나는 곧 내일모레가 시험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나를 발견한 엄마는 내게 시험공부나 하라고, 기숙사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나는 망설였다. 정말 그래도 괜찮은 걸까. 고민하다가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할아버지의 임종도, 빈소도, 발인도 지키지 못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내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할아버지와 그렇게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는데도. 그때 처음으로 이 기분을 글자로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내 주 아버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지지해준 부모님, 그리고 소연이, 영선이. 가족들 늘 고맙습니다. 황지우 선생님, 김경욱 선생님, 권희철 선생님 감사합니다. 은지, 은혜, 지혜, 재은, 별, 상아 언니, 나보다 더 기뻐해준 동기들 서율, 솔지, 건희, 의진, 민규, 원미, 그리고 선후배들.

같이 소설 쓰는 기쁨을 알게 해주신 천운영 선생님, 신춘문예 내라고 독려해주신 한인준 조교님, 기회를 주신 경향신문사와 작은 가능성을 보고 길을 열어주신 이혜경 선생님, 방현석 선생님께도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인간에 기대어 살기 힘든 세상에 보여준 상상력

 

펜 하나로 온 세상과 맞서나가야 하는 길에 입문하려는 응모자들은 각기 자신이 맡고자 하는 전선이 어디인지를 나름대로 보여주었다.

출구 없는 현실 앞에서 파괴당하거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어떤 배려도 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소멸되어가는 사람들의 사연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어떤 작품도 우리가 현실에서 이미 실감하고 있는 것보다 더 절실하지 못했다. 소설의 특권은 논픽션과 달리 허구를 동원하여 불완전한 실감을 완전한 실감으로, 불완전한 감동을 완전한 감동으로 만드는 것에 있음에도 그렇지 못했다.

다음으로는 안드로이드, 뱀파이어, 디스와 같은 유사인간을 통해 익숙한 주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펼쳐 보이려고 시도한 이야기가 많았다. 지하세계의 생명체 ‘디스’의 공격을 다룬 ‘케르베로스의 영역’은 초반에서 보여주던 현실의 은유가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희미해졌다. ‘한밤, 라디오’는 뱀파이어를 자처하는 여성이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진행자와 나누는 대화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작품이다. 주간에는 로펌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바에서 서빙을 하는 직장여성으로 설정한 뱀파이어 ‘윤희’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캐릭터다. 그럼에도 표면적 설정에 그침으로써 서사가 제자리걸음을 했다.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는 독거노인용 말상대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함께하는 여행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인간을 닮은 로봇 이야기는 이미 제법 사용이 된 소재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점은 안드로이드를 등장시킨 설정, 그 자체가 아니라 차가운 안드로이드로 온기가 있는 이야기를 만든 작가의 솜씨였다. 그것은 단순한 감성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 기대며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심사 : 이혜경·방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