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서랍 속 블랙홀 / 이덕래

 

“어,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내 첫 인사를 듣고, 넌 내가 실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넌 그만큼 민감한 녀석이었으니까. 넌 잠깐 내 눈을 바라보았지만, 곧 시선을 아래로 거두었다. 난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못 알아들었나? 혹시 일본인인가? 너는 왜소한 체구에 좁은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딱 군대를 안 갔다 온 꾸부정한 스무 살처럼 보였다. 너의 모습은 알파벳 ‘c’ 같았다. 대문자 C도 아닌 소문자 c. 삐쩍 마른 체격에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굽히지 않고 뻗어 꼽은 너의 모습은, 정녕 c였다. 나는 너보다 컸고, 말년 병장의 군복이라도 되는 양, 키부츠(이스라엘 집단 농장)에서 제공한 낡고 색 바랜 군청색 작업 잠바와 통 넓은 회색 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난 당당한 한국 예비역 남자답게 홀로 각종 종교 성지인 예루살렘의 구석구석을 일주일간 순례하다 막 돌아온 길이었다. 도보 행군하듯 예루살렘 인근 지역을 열심히 내 두 발로 누비고 다니다 이제 막 돌아온 참이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길거리에서 딱딱한 빵으로 세 끼를 해결했고, 각종 성지 입구에서는 여행 책자를 보면서 갈등하곤 했다 - 입장료를 지불할 만큼 합당한지 판단해야 했다. 그렇게 여행자용 싸구려 팔 인실 숙소를 전전했다. 일부 숙소에서는 그 와중에 디시워싱(설거지) 아르바이트까지 뛰다 왔다. 숙소 로비에 죽치고 앉아 있다가 로비의 전화벨이 울리면, 다른 녀석들보다 더 빨리 전화를 낚아채서는 간단히 페이만 확인하고는 빵값을 벌러 나갔다. 물론 실망한 다른 녀석들에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날리는 걸 잊지 않았다. 나는 알파벳으로 치면 대문자 ‘I’와 같이 당당한 남자였다.

이제 막 피곤함에 찌든 몸을 끌고 돌아와 숙소 현관을 연 것이다. 그리고 널 발견했다. 난 새 룸메이트가 누린내 나는 양놈일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키부츠 발런티어(키부츠 자원노동자 프로그램) 인사 담당인 조엘에게 분명하게 얘기했기 때문이다.

“아이 원트 룸메이트 위드 옐로우 헤어.”

그런데 새 룸메이트임이 분명한 너는 검은 머리였다. 게다가 양놈도 아니었다. 난 양놈을 원했다. 왜냐하면, 양놈 친구를 사귀고 싶었으니까. 양놈 친구를 사귄다면, 다음번엔 그 녀석 나라로 배낭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지난번 룸메이트는 여기서 영어 배우기는 글렀다고 늘 불평만 해대던 흔하디흔한 한국 녀석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놈은 결국 갓 한 달이 되자마자 짐 싸서 비행기 타고 집으로 돌아간 참이었다. 아마 한국에서 빡세기로 소문난 어학원에 등록할 것이다. 난 널 보자마자 조엘에게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실망한 내색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난 예의 바르고 매너 좋은 대한민국의 예비역 병장이었으니까. 생긴 것으로 보면 넌 일본인은 아니었다. 일본인은 일본인처럼 생겼다, 일본인은 그들만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조엘도 한국과 일본이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정도의 상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건 조엘의 세상에선 마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을 룸메이트로 짠 것과 같은 맥락일 수도 있으니까. 키부츠 발런티어 프로그램이란 국제 평화와 관계 회복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조용히 일 잘하다 가게 만들면 되고, 덤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홍보하면 되는 것이니까. 나처럼 사정이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는 숙박이 제공되고,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저렴한 프로그램이자, 덤으로 영어도 좀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졌었다.

그나저나 생긴 건 분명 한국인인데, 혹시 나처럼 똑같이 내가 한국 놈이라서 이놈이 실망한 게 아닐까? 내가 복잡한 셈을 하며 내 야전 침대에 배낭을 내려놓자, 넌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엄... 쑤어리, 엄 넛 커리언.”

이 세련된 발음은 뭐지. 넌 한국인이고 따라서 발음이 제법 후져야 마땅했다. 그러나 너의 발음은 ‘어리즈널’ 냄새를 풍겼다.

“암 드에늬시 메딘 크어리아.”

뭐라는 거지? 난 탁자 위에 있던 메모지를 내밀었다. 너는 이렇게 휘갈겨 썼다.

‘Danish, made in Korea.’

너는 ‘윌리 팍 소푸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너는 한국에서 박수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지만, 덴마크로 가서 윌리 팍 소푸스라는 사람이 되었다.

너는 어려서부터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특히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알쏭달쏭했다. 너는 다른 친구들과 너무나 생긴 것이 달랐다. 코펜하겐 같은 큰 도시도 아니었다. 덴마크 한쪽의 ‘쏜더’라는 도시 외곽에서 자라게 되었다. 젖소 목장이 많은 그런 도시였다. 그리고 넌 태생적으로 별로 활기찬 성격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너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그들은 왜소한 검은 머리 아이에게 그러나, 별로 호의를 보이지는 않았다. 따라서 넌 일찍이 무존재를 지향하게 되었다. 호기심은 무반응이 이어지면 잊히기 마련이다. 또는 그들과 자연스럽게 말을 섞고 동화되면 휘발된다. 너는 그들과 일체가 되기에는 너무 내성적인 성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학교에서도 조용하고 집에서도 조용했다. 어디에서나 공기와 같은 그런 아이가 되었다. 아니, 그런 아이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넌 아무리 조용히 있어도 잘 숨어지지 않았다. 너처럼 새까맣고 빳빳한 머리털을 가진 남자애는 학교에 없었고, 그 지역 사회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너는 점점 c처럼 꾸부정하게 변해 갔다. 고개를 숙이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조그만 체구를 가진 검은 머리 덴마크인으로 알고 지나쳐 가길 바랐다. 얼굴을 들키지 않으면 너의 우울하고 심란한 표정을 읽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너는 점차 무표정한 얼굴을 만들어 갔다.

너에겐 누나가 있었다. 누나의 이름은 ‘제니 송 소푸스’였다. 누나는 너와 달리 사교성이 좋고 활발한 아이였다. 넌 너의 누나와 같은 학교에 다녔다. 전교생 중에서 동양인 외모를 가진 학생은 너희 둘뿐이었다. 너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조용히 있고 볼품없고 또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녀도 늘 사람들의 눈에 너무 잘 띄었다. 그들의 호기심이 빨리 잦아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제드 소푸스 씨의 아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너는 말을 거의 안 했지만, 그래도 말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가끔 그들 중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어쩜 그렇게 덴마크 말을 잘하니?”

너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혼란스럽고 괴로웠다. 어떤 아이들은 너에게 이런 말도 했다.

“넌 어쩜 누나랑 성격이 그렇게 다를 수 있니?”

너는 가끔 주먹을 쥐기도 했고 더러는 엉켜 싸워보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또래 아이들은 늘 너를 내려다보았고 덴마크에서 나는 세계 최고의 우유와 치즈, 그리고 빵을 먹고 좋은 체격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넌 그들의 아래에서 코피 난 얼굴을 감싸 쥐고 있었다. 쿵후 영화 같은 걸 보면서 심취해서 한동안 열심히 따라 해 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번 실전 경험을 쌓아 보고는 포기했겠지. 절도 있고 근사한 타격과 방어 동작, 적들의 쓰러짐과 줄행랑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넌 우리가 생각하는 북유럽의 아름다운 어떤 선진국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꼬마가 감당하기엔 너무 어려운 질문이 예닐곱 살 때부터 늘 따라 다녔기 때문이다. 너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무언가에 골몰하지 않을 때마다 컴퓨터의 배경화면처럼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여기 있을까?’

이 질문은 그런대로 봐 줄 만했지. 그런데 그 질문은 금세 확대되었다.

‘나는 누구일까?’

이런 질문은 사람을 돌아버리게 한다.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후천적으로 병상에 오래 눕게 되는 사람들도 이런 질문을 하게 되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다리나, 아파트 난간에 서서 잠깐 이런 질문을 하게 되지. 종교인과 철학자들의 평생 질문이라고 볼 수 있지. 보통 사람이라면 사십 줄에나 들어서야, 점점 무용한 삶에 접어들면서 때때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지. 어쨌거나 이런 질문은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심각하게 갈구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한 질문이었다. 너는 머리털을 양손으로 쥐어뜯으며 어떻게 이 질문을 떨칠 수 있을까 번민하곤 했지. 그러나 이 질문은 네 어깨 위에 틀어 앉아 이미 머리털을 그러쥐고 있었지. 넌 자살을 생각했을 거야. 손목을 긋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하는 거 말이야. 그러면 너의 육신과 함께 그놈도 영원히 사라져 버릴 테니까.

제드 소푸스 씨와 마리아 소푸스 씨는 다행히 좋은 부모였지. 그들은 널 안아 주고 다독여 주고 남들처럼 좋은 유제품을 주었지만, 너의 근본적인 질문을 해결해 줄 순 없었지. 물론 그들도 너나 누나의 성장기에 일어나는 흔한 사고들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식이 없었고, 초보 부모였으므로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들은 다른 부모보다 한 단계 더 생각해야 했다. 이게 동양인과 서양인의 근본적인 차이일까? 아니면 그 나이 때 아이들이 흔히 치는 사고일까? 다행히 그들은 덩치만큼이나 느긋하고 약간은 둔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네가 잠든 사이에 서로 이렇게 질문했을지도 몰라.

“왜 우리 윌리는 남들처럼 잘 먹여도, 이렇게 작고 꾸부정한 걸까?”

그리고 넌 그들에게 점점 본질적인 질문을 할 용기를 잃어 갔다. 너와 누나와 함께 가족이 되어 매우 기쁘다고 말하는 부모에게 왜 내가 여기에서 자라고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물론 너는 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그들에게 자신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부지불식간에 하곤 했다. 그건 혼잣말이었을 지도 모른다. 너는 탁자에서 밥을 먹고 있었고, 신문을 읽고 있던 소푸스 씨는 그 말을 그냥 흘려 들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여덟 살짜리 아이가 학교 가기 전 아침 식사를 하는 평화로운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게다가 윌리가 세수를 하고 식탁에서 잼 빵을 먹다가 처음으로 입을 떼어 하는 말이 그런 것이라니……일상적인 풍경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소푸스 씨는 입양 서류와 당시 네가 입고 있던 배냇저고리와 손에 쥐고 있었다는 빨간색 딸랑이를 옷장 깊은 곳에서 꺼내 보여 주었다. 넌 입양 서류에 적힌 너의 한국 이름과 출생지를 보았다. 너의 성별과 너의 생일도 보았고, 어렸을 때 성격과 특성이 간략하게 기록된 것을 보았다. 잘 웃는 아이였고, 몸무게가 또래보다 좀 적은 아이였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친부모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너는 입양기관의 이름을 외웠고, 그게 모든 비밀의 열쇠임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양부모는 한국의 고아나 다름없는 불쌍한 두 아이를 입양해서 잘 키워주고 있었다……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넌 큰 기와집 대문 앞에 너를 두고 흐느끼며 멀어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너는 어머니가 쪽 찐 머리에 한복을 입고 있었을 거라고 상상했다. 그녀는 보육원에 너를 맡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어린아이였으므로, 너는 늘 그렇게 상상했다. 부잣집 대문 앞에 버려진 너는 경찰서로 넘겨지고, 그곳에서 입양기관으로 인도되었다고 상상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여전히 왜 한국이 아닌 해외로 보내져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제가 한국에서 태어난 건 알겠는데요, 그런데 왜 지금은 한국에 없나요?’

너의 누나도 너를 이해하지 못했지. 넌 누나에게 자신들이 태어난 나라에 대해 책에서 본 얘기를 했지만, 누나는 너와는 달리 너무나도 밝은 아이였지. 누나는 모든 상황을 이미 잘 정리해서 서랍 속에 넣어 두었어. 덴마크인의 외모 다양성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너의 누나는 너를 바라보며 얘기했지.

“덴마크는 한국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야. 난 이곳에 있는 게 행복해.”

너는 누나를 이해할 수 없었지. 어떻게 이런 중요한 질문을 어떻게 그리 쉽게 접어둘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너는 누나를 여러 번 괴롭혔고 결국, 그녀는 폭발했지.

“난 덴마크인이야! 쓸데없는 질문은 그만!”

너는 누나가 서랍 속에 깊이 넣어둔 질문을 꺼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너는 그 이후로 그녀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넌 네가 누나와 다르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것을 축복으로 여겼을 거야. 멀지만 같은 한국이라는 동네에서 태어난 사람도 성격이 매우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저절로 깨달은 거지.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다. 다양한 피부색처럼 성격도 여러 가지이고, 어떤 사람은 너처럼 까다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

조용한 무존재 아이에게도 시간은 평등하게 주어졌다. 넌 점점 책과 친해졌다. 책은 돈이 들지도 않았다. 넌 복지국가 덴마크의 어느 소도시, 그곳의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많은 책을 읽었고, 배경화면이 떠오르지 않도록, 열심히 그 안에 침잠했다. 책이 눈앞에 없을 때도 문장들을 떠올리고 복기하는 것으로 머릿속을 늘 복잡하게 만들었다. 동네 사람들은 소푸스 씨의 아들이 방과 후에 항상 도서관에 있다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넌 그 안에서 몇 년을 보내면서, 약간의 어렴풋한 답변을 얻기 시작했지. 소도시의 도서관에서 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발견한 셈이야. 좋은 책도 있고 독약 같은 책도 있었지만, 넌 그 안에서 시간과 버무려 지면서 자연스럽게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거를 줄 알게 되었지.

‘나는 왜 여기 있을까?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넌 너의 누나보다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려, 힘들게 그 질문을 서랍 속에 넣어둘 수 있었지. 하지만 너의 서랍은 누나의 서랍보다 덜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 분명해. 넌 그 서랍을 가까이 두고 점점 더 덜 두려운 마음으로 열어볼 수 있게 되었지. 자주 쓰는 서랍은 미끈하게 열리곤 하지. 그러다가 넌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거야. 이제 대학생이 되어 코펜하겐으로 떠날 때가 되었지. 너의 누나는 이미 간호 직업학교에 다니면서 결혼할 남자친구를 부모님께 인사시키고 있을 무렵이었어. 넌 대학교 입학 전에 이스라엘 키부츠 발런티어로 올 생각을 하게 된 거다. 대학교 가기 전에 외국에 가 보고 싶었던 거야. 거기서 넌 대한민국 예비역 병장인 나를 만나게 된 거고. 넌 너처럼 동양인의 외모를 가진 남자 녀석을 실제로는 거의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 거지. 그놈은 배낭을 메고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혔지.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어.

“Uh, Annyeonghaseyo! Bangaweryo.”

넌 그 말이 한국의 인사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 도서관에서 한국어에 대해 공부했었거든. 하지만 넌 연습했던 한국말을 차마 써먹을 수 없었어. 물론 조엘이 너의 룸메이트가 한국인이라고 미리 말해 줬고, 한국말로 인사할까 하고 발음 연습도 해봤지만, 막상 닥치니 말할 수 없었지. 넌 Um……이라고 말했지만, 생각했던 인사말을 마저 발음하지는 못했다. 외계의 말과 다름이 없는 낯선 언어, 모국어가 아닌 말을 띄엄띄엄 발음하는 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너는 그날 나의 존재에 대해 일기에 이렇게 썼지.

‘I met a Korean, made in Korea.’

한낮의 사막 열기를 피하고자 새벽부터 닭장에서 닭 예방 접종 일을 하고 피로와 불평으로 버무려진 닭털들을 마음속 여기저기 얹어둔 채, 터벅터벅 식당으로 향하다가 조엘을 만났지. 조엘이 룸메이트가 맘에 드느냐고 물어봐서, 난 OK, 라고 말해 줬지.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양놈은 아니지만, 덴마크로 놀러 갈 수는 있겠다 싶었다고나 할까? 네가 양놈인지 동양놈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사려 깊고 노련한 조엘은 혹시 맘에 안 들면 바꿔주겠다며 재차 나의 의중을 떠봤다. 나는 OK라는 말을 조엘의 입술 주위로 네 번 정도 떨어뜨린 것 같다, 높게 낮게 무겁게 약하게. 복잡한 표현을 조엘에게 할 자신도 없었고, 윌리를 바꾸고 새 룸메이트를 받을 정도로 깐깐한 성격도 못되었다. 시시각각 상황은 변하고, 당당한 예비역은 불평보다는 적응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난 네 속도 모르고 어쩌면 널 신기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초등학교 때 너의 학급 친구들보다 훨씬 더 희한해 했을 수도 있어. 한국말을 하나도 못하는 신기한 한국인 같았거든. 어쨌든 넌 만만했다. 마치 말년 병장이 신입 이병을 맡은 격이랄까? 난 너에게 날 이렇게 부르라고 했지.

‘Hyeong’

나는 내 멋대로 너를 ‘bro’라고 불렀지. 난 그때처럼 영어를 잘하고 싶은 때가 없었다. 너의 얘기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 내 토익 점수가 900점이었어도, 너와 제대로 얘기하기는 힘들었을 거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넌 그만큼 저 너머 세상에서 사고하고 있었지. 넌 책에서 읽어온 어려운 문어체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너도 영어를 쓸 일이 많지 않았던 거지. 난 네가 늘 얘기하고 인용했던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와 일리아드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지. 그리고 네가 존경한다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같은 작품을 이해할 턱이 없었지. 차마 포도가 왜 화가 났느냐고 네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래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얘기 정도에는 그럭저럭 맞장구를 쳐줄 만했지. 난 네가 말하는 걸 단어로 뜨문뜨문 유추하면서, 너와 나 사이에 놓인 이 부조리한 언어의 장벽과 너에게 내려진 운명의 장난이 혼란스러웠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놈이 한국말을 못한다는 게 짜증스러웠다. 넌 유럽의 철학과 역사에 대해, 그리고 그런 얘기를 통해 인간의 본질과 근원적인 결핍에 관해 얘기했지. 난 동양인 아이가 양놈들의 철학과 역사와 문학에 관해 얘기하는 걸 늘 신기해했다. 넌 네 서랍 속 질문을 너에 국한된 얘기가 아닌 전 인류의 문제로 확장했던 거야. 넌 범지구적 인간으로 진화한 것이었어. 한 세대 안에서의 놀라운 진화! 운명이 만들어낸 초인류, 또는 특이 괴물로의 변태, 혹은 그 징조. 어쩌면 넌 말이야, 그래서 수줍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었던 거야.

‘Danish, made in Korea’

그곳 키부츠에도 멍청이는 있었지. 영국인 발런티어 앤디는 알파벳으로 치면 ‘A’와 같은 녀석이었지. 덩치도 크고 눈도 부리부리했고, 항상 양다리를 쩍 벌리고 서 있었지.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를 공식 후원하는 움브로(Umbro) 티셔츠를 늘 입고 다니고, 손엔 캔맥주나 싸구려 보드카 온더록스 글라스를 들고 있었지. 녀석은 늘 취해 있거나 취할 준비가 되어 있는 녀석이었지. 휴게소에 설치된 TV 앞 소파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채널을 고정해 두고는 누가 리모컨 주위를 어슬렁거릴라치면 큰 눈을 부라리고는 했지. 녀석의 룸메이트인 불가리아인 조이는 졸린 눈을 가졌지만, 머리는 생쥐처럼 기민한 녀석이었지. 그 녀석은 알파벳으로 치면 소문자 ‘z’ 같은 녀석이었지. 그 녀석들은 늘 쉬운 일을 했어. 영어가 되니까 대화가 필요한 일을 했던 거지. 아,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여기에 쓸 말은 아닌 것 같아. 내가 닭 솜털이 뿌옇게 섞인 먼지를 마시면서 닭장 안에서 반나절 씨름한 얘기는 자랑거리도 아니고 너저분하게 늘어놓을 만한 것도 아니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닭장에서 닭똥 냄새를 맡으면서 장닭들의 따뜻한 허벅지 안쪽으로 잽싸게 손을 뻗어 잡아채는 거야. 이 종자닭들은 무게가 4kg이 기본이고 부리와 발톱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지. 그놈들을 반나절 동안 3만 마리씩 잡아채서는 고리에 양다리를 걸쳐 놓는 거야. 그러면 놈들은 거꾸로 매달린 채 주사를 맞지. 그리곤 다시 풀어 놓는 거야. 그래, 말이 필요 없는 작업이지. 그냥 코안에 털이 많은 사람이 유리한 작업이야. 입을 벌리면 바로 입속에 닭털들이 꼬이거든.

난 대한민국의 예비역 복학생답게 독해는 좀 됐지만, 생활 회화는 젬병이었어. 그래서 늘 몸으로 때우는 일을 배정받았으니까. 앤디나 조이 같은 녀석들은 유창한 영어로 불만 사항을 조리 있게 설명했고 결국, 대화가 필요한 식당 같은 데서 일했지. 난 묵묵히 일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곤 했어. 하지만 예비역이 말이지, 여자애들처럼 닭털 핑계나 대면서 징징대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런 것보다도 더 날 괴롭힌 것은 앤디나 조이가 스웨덴이나 스페인, 일본, 그리고 한국 여자 발런티어들을 유창한 영어를 미끼로 자기들 방으로 끌어들여 파티를 열었다는 거야. 놈들은 때로는 그 애들 방을 급습하고 싶어 했지. 그래, 그냥 그저 그런 멍청이들이었는데, 부러웠다고.

너는 키부츠에서도 일할 때 외에는 대개 조용히 방 안에 붙어 있었지. 그냥 처음으로 덴마크 외의 나라에 가보고 싶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 봐, 네 녀석은 옆 방의 한국 여자애들에게 관심이 있었을 거야. 넌 아무리 범지구적으로 인식의 영역을 확장했어도 연애만은 어머니의 정서가 묻어나는, 혹은 묻어날지도 모르는 한국 여자에게 본능적으로 끌렸을 거야. 특히 원산지뿐만이 아닌, 자국에서 자라난 한국 여자를 원한 거지. 내 장담하건대, 넌 한국 여자와 결혼할 거야. 그럴 수밖에 없을 거야. 어쩌면 이미 한국 여자와 결혼했을 수도 있어. 내가 프로이트도 모르고 칼 융도 모르지만, 그 정도는 그냥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거야.

넌 어느 일요일 아침 숙소 현관문을 열고 나가다가 죽은 고양이를 밟게 되지. 고양이의 옆구리가 움푹 패었어. 네가 나에게 그 얘기를 해 줬을 때, 난 화가 났지. 그리고 누가 그런 고약한 장난을 했을지 금방 떠올릴 수 있었지. 그건 스웨덴의 여자애들이 할 만한 일이 아니었지. 그 애들은 아바(ABBA)의 나라에서 온 천사들이었고, 지난밤에 밤새도록 춤을 추고 놀았을 테니까. 한국에서 온 여자애들은 지난밤에도 카세트를 들으며 밤새도록 영어 공부를 했을 거야. 일본에서 온 마나부가 할 만한 일도 아니었지. 그는 내 면상에서 고양이를 던질 수는 있어도, 슬며시 문 앞에 놓을 만한 녀석은 아니었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얀 일당이 할 만한 일도 아니지. 그러기엔 그 녀석들은 너무 새파랗고 약해 빠진 백인 아이들이었지. 멕시코에서 온 유대인인 키브릴 일파가 할 만한 일도 아니지. 그 녀석들은 귀족 교육을 받는 최상위 계층이니까. 결국, 할 만한 녀석들은 앤디와 조이 뿐이었지. 내 소중한 형제를 건드린 녀석들을 응징하기로 맘을 먹었지.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인 나는 야전 침대에서 작업화 끈을 단단히 조이면서 너에게 말했어.

“아 윌 힛 뎃 바스타즈.”

이 비장하고 의미심장한 영어가 난 정말 맘에 들었지. 너에게 예비역 병장의 실전 태권도 실력을 뽐낼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였어. 사실 난 앤디 앞에 서면 대문자 I가 아닌 소문자 i가 될지도 몰라. 영국의 지붕 수리공인 앤디는 대문자 A이면서도 정말 빅 A였거든. 난 무조건 선빵을 날릴 참이었어. 그러면 승률은 반반일 거야. 녀석은 아직 술과 잠에 떡이 되어 있을 테니까. 조이 녀석이 문제긴 한데, 조이는 아마 끼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어. 그 녀석은 교활한 놈이니까 정면 승부에 나서진 않을 거야. 하지만 어찌 될지 몰라. 내 머릿속이 이런 생각들로 복잡할 때 너는 웃으면서 말했지. 그럴 필요 없다고, 폭력은 폭력을 부를 뿐이라고. 난 아니,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말했지. 그걸 영어로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저 주먹을 쥐고 양쪽을 맞대면서 씩씩댔겠지. 여하튼 너는 나를 말렸고, 난 분을 식혔겠지. 어쩌면 식히는 척을 했다는 것이 더 맞겠지. 어쨌든 대한민국 예비역 병장 정도 되면 그 정도 액션은 취해 줘야 하는 거거든. 넌 성경의 한 구절을 읊었고, 아마 그건 예수가 다른 쪽 뺨도 내미는 장면이었을 거야. 그리고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영문 버전도 펼쳐 보여 주고, 읽어 줬지. 넌 정말 신기한 녀석이었어.

우리는 고양이 사체를 숙소 옆 황무지 한쪽에 묻어 주었지. 돌이켜 보면, 그 장례식은 내가 여태껏 본 장례식 중 가장 성대하고 근사한 장례식이었던 것 같다. 내가 구덩이에 죽은 고양이를 내려놓자, 너는 영혼을 달래는 시를 읽어 주었지. 그 시는 로버트 브리지스의 ‘On a dead child’라는 시였다.

“Perfect little body, without fault or stain on thee, / With promise of strength and manhood full and fair! / Though cold and stark and bare, / The bloom and the charm of life doth awhile remain on thee…”

네가 시를 다 읽자 나도 한 마디 덧붙였지.

“윌리가 옆구리 밟은 거 미안해하니까 이해하고.”

나중에 이별 파티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앤디에게 그 얘기를 꺼냈지. 술을 마시면 영어가 좀 더 잘 되거든, 혀가 잘 굴러.

“유, 유 데드 캣 쉐~ㅅ”

앤디와 조이가 노린 것은 윌리, 너만이 아니었다. 앤디는 동양인인 너와 나를 동일하게 소문자 i와 c라고 인식한 것이었다. 예비역 병장인 늠름한 I인 나를 그렇게 깔보았다니 열불이 날 일이었지만, 내일이면 떠날 것이었기 때문에 얼굴을 붉히지는 않았다. 그 자식은 발견한 고양이 사체에 대한 실용적인 활용에 대해 고민하다가 우리 숙소 앞에 두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술김에 재미로 그런 거였다고,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하다고. 그 날 나는 앤디와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런던에 놀러 가면 연락하겠다고.

넌 한국인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고 싶다고 말했었고, 분명히 그간 한국에 한 번은 왔었을 거야. 그들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었지. 그것은 꽤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너의 시작은 지구 상에 흔하디흔한 불행한 아이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어떤 시스템이 너를 머나먼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게 했는지에 대해 궁금했을 것이다. 넌 여전히 한국이 해외로 아이들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 놀랐을 거야. 그 시스템은 지구 위 한반도에 꽂힌 슈퍼 ‘Y’ 새총이 되어 너와 같은 아이들을 쟁여서 지구 반대편으로 쏘았고, 지금도 쏘고 있다. 물론 예전보다는 덜 열심히 쏘고 있고. 그 아이들은 목적지에 도달해서는 어느 순간, 입양증서를 보면서 자신의 블랙홀을 깨닫게 되지. 거기엔 낯선 문자로 너의 또 다른 이름이 쓰여 있을 거야.

그 블랙홀은 모든 현재를, 너를 송두리째 빨아들일 만큼의 가공할 힘을 가지고 있어. 그걸 일단 가둘 수는 있어도 완전히 떼어낼 수는 없어. 어떤 아이들은 이 성가신 블랙홀을, 너무나도 성급히 다른 우주로 가는 웜홀로 사용하기도 하지. 그냥 빠져 버리는 거야. 운 좋은 아이들이 마음속 서랍 한쪽에 그걸 넣어 두고 자물쇠로 채운 후, 유년기를 보내기도 해. 일단 현재를 살기 위해서지. 천성적으로 명랑한 소수의 아이는 열쇠를 아예 잃어버리기도 할 거야. 하지만 어느 순간 때때로 자기만 가지고 있는 블랙홀을 떠올리게 되지. 궁금해서 살짝 서랍을 열어보면 어느새 블랙홀은 더 커져 있고, 그 검은 구멍은 나선형으로 배배 꼬며 더 깊어져 있어. 누가 이 블랙홀을 너에게 주었을까? 너는 이 진드기처럼 떼어낼 수 없는 블랙홀을 증오하게 된다. 이 블랙홀에 먹히고 말 거야. 넌 두려워.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큰 짐이자 굴레임이 분명해.

어쩌면 시스템 ‘Y’가 더 좋은 출발점을 줬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래서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살찐 아이로 성장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출발점으로 돌아온단다.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Y를 좇아 떠날 것이고 Y에서 블랙홀 탐사를 시작할 거야. 그들은 기와집이나 초가집이 아닌 마천루가 즐비한 서울에서 길을 잃지. 자기를 닮은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에서 충만한 자유와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가 반쪽임을 곧 깨닫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걸 깨달아. 하지만 용기 내어 덴마크어로, 영어로, 프랑스어로, 독일어로, 벨기에어로 묻게 될 거야.

“제 블랙홀은 어디서 왔나요?”





<당선소감>

 

내 운의 유통기한 늘리기 위해 노력할 것

 

멈춰 선다. 뒤돌아서서 그림자를 쳐다본다. 내 곁을 사람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불안하다. 하지만 마음 한쪽은 설렌다. 그림자를 바라본다. 나는 예전처럼 평범하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지만, 아주 조금 다르다. 그림자를 좇아 발길을 떼어본다.

고등학교 시절 독서실에 앉아 끄적이기 시작했다. 창가의 화분처럼 늘 자리에 앉아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을, 이해하지도 견디지도 못했다. 소극적인 반항이었다. 참신한 뻥을 치고 싶었다. 밤에 친구의 어깨를 밟고 컴퓨터실의 쪽 창으로 넘어들어가 타이핑하고 출력했다. 도트프린터가 한 줄씩 활자를 인쇄하는 것을 가슴 졸이며 바라봤다. 다행히 몇몇 친구들이 읽어 주었다. 읽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재미있다고까지 말해 주었다. 참 착하고 어른스러운 친구들이었다. 녀석들의 칭찬이 없었다면 글쓰기를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도 청소년기는 버거웠다. 해외입양인의 청소년기는 말 그대로 태풍일 것이다. 이제는 그만 보냈으면 한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 우리 사회의 수준이고 업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폭력적이다. 누구에게나 상처가 된다. 해외입양인 친구인 일리(소설 속 ‘윌리’)와 그의 가족에게 안부 인사와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충북대학교에 입학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창문학동인회 써클룸의 문을 연 것이었다. 바닥과 천장, 사방 벽에는 막걸리 냄새가 배어 있었고 늘 담배 연기로 매캐했다. 선배들의 언어는 전투적이었고 술 마시는 것이 고역이었지만, 내 시를 읽어주는 이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십수 년이 흘렀고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소설가 김현영 선생의 강좌를 들었다. 글 쓰는 즐거움과 재회했고, 함께 글을 쓰고 읽어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행운이었다. 과학 웹진 크로스로드와 포스텍 박상준 교수께도 감사한다. 내겐 매우 소중한 게재 기회였다.

부모님과 가족에게 고맙다. 수필 작가이신 장모님께서는 가문의 영광이라며 가장 기뻐해 주셨다. 아내는 철없는 나를 잘 보듬어주고 아들은 더 나은 사회를 생각하게 한다. 수상쩍었을 나를 이해해준 학과 친구들과 전 직장 동료들도 고맙다. 무엇보다도 전북일보와 송하춘, 백시종 심사위원께 감사한다. 부족한 글을 너그러이 봐 주셨다. 나처럼 글쓰기로 위안과 몰입의 기쁨을 느낀 다른 응모작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은 내 차례였다. 나는 내 운의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음은 당신 차례다.



◎ 약력

▶ 1974년 충북 영동 출생.

▶ 2012년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소설창작과정 수료




<심사평>

 

입양아 자존 독특한 개성미로 표출

 

예선에서 올라온 6편 중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이덕래의 <서랍 속 블랙홀>과 김바울의 <지구인>, 김지원의 <붉은 토트백을 미자에게>였다. 3편을 놓고 숙의 끝에 큰 이견 없이 고른 작품이 <서랍 속 블랙홀>이었다.

일반적인 신춘문예 수준으로 보아 결코 뒤처지지 않는 이 작품은 그동안 외면당한 소수자로서만 여겨지던 해외 입양아의 정체성 혼돈을 주제로 특유의 개성있는 문체와 구성으로 집대성 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여기서 개성있는 문체와 구성이라 함은 신춘문예 양성소로 지칭되는 ‘소설교실’의 천편일률적인 세련미가 아닌 독특한 개성미를 의미한다.

입양 당사자를 ‘너’라고 호칭한다. 너는 덴마크 입양아다. 따라서 그 사회에서는 ‘무존재를 지향’하지만 거꾸로 잘 ‘숨어지지 않는’ 희귀한 존재이다. 어느날 ‘나’는 ‘이스라엘 키부츠 발런티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룸메이트로서 ‘너’를 만난다. 이와같이 정체가 궁금한 인물이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대상을 지칭하는 방법으로 ‘너’를 택한 것은 이채롭다.

‘너’를 ‘왜소한 체구를 가진 검은 머리 덴마크인’이라 하고, ‘나’를 ‘대한민국의 예비역 병장’으로 설정하여, 정체성이 확실한 인물과 불확실한 인물로 대조시킨 점도 특별했다. 이러한 대조를 통하여 ‘나’는 마치 ‘너’의 머릿속을 들어간 본 사람처럼 해외입양아의 정체성 혼돈을 실감한다. ‘너’의 서랍 속에는 언제나 ‘나는 왜 여기 와있는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이 들어있다.

작중인물의 캐릭터를 영어의 알파벳 기호로 표기한 점도 이 작가의 탁월한 고안이다. ‘너’는 소문자 c. ‘나’는 대문자 T. 영국인 ‘앤디’는 대문자 A. 불가리안 ‘조이’는 소문자 z. 이런 방법으로 위축된 민족과 당당한 민족, 또는 굴곡진 캐릭터와 겁 없는 캐릭터를 표현함은 흥미롭다.

대조적인 두 한국인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담당하는 언어의 역할이 중차대하다. 한국인이면서 한국말을 모르는 덴마크인에게 모국어는 ‘외계의 말과 다름없는 낯선 언어’이다. 이때 처음 부딪치는 ‘안녕하세요’의 동질감과 이질감. 그날 밤 일기장에 쓴 ‘I met a Korea’의 친근함과 생경함. 이러한 미묘한 감정을 이 소설은 흥미롭게 포착하고 있다.

‘죽은 고양이 사건’을 설정하여 소설의 반전을 꾀하는 수법도 우수하다. 어느 날 백인 청년 앤디와 조이가 ‘너’의 현관문 앞에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던져 놓아 밟게 만든다. ‘나’는 ‘내 소중한 형제를 건드린 녀석들을 응징하기로 맘먹는다.’ 그러나 ‘너’가 ‘나’에게 성경과 코란을 읽어주며 복수하지 못하도록 말리고 ‘나’의 분을 삭여준다. ‘한국말은 하나도 못하는 신기한 한국인’이고, 그래서 어쨌든 만만해 보였던 ‘너’가, ‘나’를 달래다니, 위대한 ‘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항해를 시작한 이 작가의 미래가 매우 궁금한 것은 이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특수분야, 예컨대 탁월한 언어장치로 씌워지는 다음 작품이 그만큼 기대되기 때문이다.



심사 백시종, 송하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