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열쇠 / 강정희



  “너. 왔구나. 사람들 틈에 섞여있어도 알아보겠다. 내 폐부까지 들여다보는 눈길, 왼 어깨를 살짝 기울인 자태. 그런 너를 나는 알아본다. 좀 더 다가오렴. 이제 눈도 침침하고, 지난날들이 가물가물하다. 처마에 주렴을 드리운 듯, 종종 시야가 흐릿해지곤 한다. 오늘, 번거롭고 경황없는 오늘 같은 날도 아침부터 정신줄을 놓고 까무룩 졸았다. 나 많이 늙어버렸지? 이 몰골 한심하지? 그래도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고 왔니? 그동안 궁금했다. 잊히지 않더라. 너는 여전히 곱구나. 어제 예정이었는데 하루 미뤄져 오늘이란다. 남처럼 그렇게 멀리 서있지 말고 제발 가까이 오렴.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안됐구나. 난 괜찮은데.

  앞산에서 솟은 싱싱한 해가 무난하게 운행을 마치고 시들어 등 뒤로 저물 즈음, 백일홍 발부리에서 옥잠이 뒤척이는 해거름 무렵부터 나는 너를 기다리곤 했지. 너는 어두워져서야 왔어. 실개천 이쪽저쪽으로 낮은 지붕 아래서 그만그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촐한 저녁상을 거두고, 그대로 잠들어도 괜찮을 자세로 텔레비전 앞에 눕거나 기대어 가라앉는 시각이었지. 여름엔 조금 늦게, 겨울엔 조금 이른 시각, 시계가 아닌 어둠의 농도를 재서 맞춰 오는 너는 마을 밖 어디쯤에서 목을 꺾어 하늘을 바라보며 기다리다 오는가 싶었지. 네가 오는 기척을 놓치지 않으려면 귀를 기울여야 했어. 잔디를 스치는 걸음이 풀무치 한 마리가 지나는 양 가벼웠으니. 

  높이가 허리께쯤 되는 하얀 철제 대문은 늘 네 몸피만큼 열려 있었어. 너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와, 소리 나지 않게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들어 올려 닫았어. 그대로 두어도 아무 일 없다고 말려도, 너는 세상 이쪽과 저쪽을 경계 짓듯 걸쇠까지 걸어 단단히 잠갔지. 나는 듯이 잔디를 건너는 발길에, 속으로 삼키는 가쁜 숨소리에, 마루문을 미는 사뿐한 손길에 나는 매양 떨렸단다. 

  스르륵, 새로 만들어 단 새시는 힘을 주지 않아도 끝까지 열렸어. 마루에 오르기 전 댓돌에 서서, 너는 방금 지나온 마당을 돌아보았지. 어둠이 뭉텅뭉텅 고여 있는 나무 아래, 장독대, 농기구 창고를 주의 깊게 살피고, 대문 너머 골목을 일별하고는, 엎드려 신발을 집어 들고 끙 하고 몸을 굴려 마루로 올랐지. 마루문을 닫기 전, 혹 윗집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인기척은 없는지 가로등 아래를 한 번 더 확인했지. 밟으면 여지없이 신음소리를 내는 여섯 번째 마룻장을 가늠해 넘어서, 여닫이와 미닫이 이중문을 차례로 열고 방으로 들었지. 녹슨 경첩 소리가 나지 않게 여닫이를 열려면 무쇠 고리를 들어 올리듯 당겨야 하고, 손바닥만 한 유리가 달린 미닫이는 문지방에서 벗어나지 않게 요령껏 밀어야 했지. 너는 한쪽에 신발을 가지런히 두고 방안을 살폈지. 바닥에 깔아놓은 이부자리와 벽에 걸어놓은 출근복은 계절에 맞게 주마다 달라지고, 머리맡에 쌓아둔 책 몇 권은 그보다 자주 바뀌었지. 네가 이불 위로 털썩 주저앉으면 나도 비로소 안도의 숨을 뱉고 무릎께로 가슴께로 차오르는 어둠을 맞았지. 기다림이 어긋나 실망하는 날도 더러 있었어. 오늘은 아닌가 보다 하고 살풋 졸다가 평소보다 가만하고 재빠르게 들어오는 너를 보고 한밤중에 깬 적도 몇 번 있었지.

  실은 네가 마을 초입에 들어서는 걸 알 수도 있었다. 마을 표지석이 있는 공터에 차를 대고 바로 옆 미니 슈퍼에 들러 동동주를 사왔잖니. 도로에서 한 자쯤 내려앉은 미니 슈퍼 말이야. 두부까지 담은 검정 비닐봉투를 들고 개천을 끼고 걸어오는 너의 냄새와 공기의 흐름을 가장 먼저 알아챈 건 안식일 교회 개였지. 녀석이 신호를 하고, 그걸 알아들은 이장네 개 두 마리와 컨테이너 흰둥이가 짖고, 마지막으로 윗집 누렁이까지 다섯 마리가 함께 울어대면, 얼마 후 열린 대문으로 네가 들어오곤 했지. 눈치 없는 녀석들이 뒷산이 울리도록 짖어대면 너는 걸음을 재촉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지. 개천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다리를 건너 오르막 골목에서 술병이 든 봉투는 무겁고, 귀 밝고 목청 좋은 동네 개들은 야속하고, 어둠을 감지하여 자동으로 켜진 가로등은 너무 환했지. 종종걸음으로 골목을 올라오는 너를 그리던 무수한 저녁들은 흐르고 흘러 어디쯤 고여 있을까? 네가 더 이상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하루 중 그 즈음이면 저절로 떠오르는 너를 생각하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이제 그럴 일 없겠구나.

  쓸 만한 것은 사람들이 다 가져갔다. 마룻장은 주인이 뜯어갔어. 아파트 베란다에 깐다고 하더라. 한옥 분위기로 리모델링을 한다고 말이야. 앤틱 풍이라나. 아니 빈티지 스타일이라고 했던가? 두툼한 미송 원목이잖아. 거기 네 발자국도 새겨져 있고, 눈물도 배어 있는데 말이다. 마루가 없는 모양이란, 이가 빠져 양 볼이 홀쭉해진 영감 꼴이지. 좀 허전하지만 난 괜찮다. 

  어제부터 어떻게든 네게 기별하고 싶었다. 거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제발 좀 가까이 오렴. 미닫이 여닫이문도 떼어갔다. 문살이 온전하니 거실 인테리어에 그만일 거라고 하더라. 그냥 벽에 세워 놓아도 보기 좋을 거라더라. 마루 끝에 새로 맞추어 단 새시 틀과 문은 저 아래 조립식 컨테이너에 사는 김 씨네로 갔다. 3년 넘었어도 새것이나 다름없으니 잘 쓰일 거야. 보와 들보도 앞으로 백년은 너끈히 버틸 수 있는데, 개미구멍이 많이 슬었다고 싫다더라. 그래서 그나마 이만한 모양으로 서 있다. 화강암 주추도 네 개 다 파갔잖니. 기둥 네 개가 공중에 떠 있는데도 이렇게 지붕을 지탱하고 있구나. 

  네가 배롱이라 부르며 간지럼을 태우곤 하던 백일홍은 한 달 전에 팔려갔다. 군청 화단에 심는다고 했으니 가면 볼 수 있을 거야. 배롱이와 너는 잘 통했지. 수령 백 오십 살에 가지가 실하고 품이 깊다고 값을 꽤 쳐주더구나. 배롱이가 뿌리를 동여맨 채 트럭에 실려 떠나고 나니 앞쪽이 휑해져서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더라. 배롱이 꽃은 레이스 조각이었지. 꽃이란 피었다 하면 지기 마련, 노래는 슬픈 것이 들을 만하고, 꽃은 반쯤 시든 것이 볼만 하지. 빛이 바래져가는 꽃잎은 과거를 돌아보게 하지. 연두색 잔디에 뿌려진 연분홍 레이스, 이제는 영 못 보겠구나. 너는 배롱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달을 좋아했지. 깍쟁이 눈썹달이나 풍만한 보름달보다 왼쪽으로 쳐진 하현을 편애했지. 네 덕에 나도 초저녁 동녘 하늘에 돋아난 쌕쌕한 상현과 한밤중 두시나 세시, 몸 무거워 갈 길 못가고 머뭇거리는 하현이 같은 달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 

  마당 가운데 놓여있던 돌절구는 큰집으로 갔다. 받침이 없어 큰 사발이나 함지 같았잖아, 박새와 산까치가 겁 없이 두 발로 톡톡 걸어와 세모난 부리로 물을 콕콕 찍어 마시던 절구 말이야. 네가 말린 밥알을 주위에 늘어놓곤 했지. 댓돌로 쓰던 다듬잇돌도 같이 갔어.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단단한 것 중의 하나였지. 한 달 넘도록 이런저런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잔디도 망가졌다. 잔디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지. 너는 그리도 아꼈는데 말이다. 잔디 말고도 네가 아끼던 것들이 많았지.

  한 철에 두 장씩 여덟 폭 산수화 병풍은 방 한쪽 벽을 다 차지했지. 그만큼 방은 작았지. 작지만 충분했지. 그림은 소치 제자의 제자쯤 되는 이가 먹 심부름을 하다 어깨 너머 눈썰미로 배워 흉내 내 본 것이었지. 이름은 얻지 못했지만 붓은 섬세했어. 너는 한참씩 마주 앉아 오솔길 바위 나룻배 절벽 위에 조그맣게 숨은 사람을 찾아내 말을 걸곤 했지. 낙관도 없는 그림 속 심산유곡 비류직하 일엽편주에 아득해했지. 수묵화 액자와 초서로 흘린 소동파 족자, 서랍 두 개를 품은 앉은뱅이책상, 모두 뿔뿔이 헤어졌다. 천정은 낮고 벽지는 울어 들뜬 옹색한 방을 너는 갤러리라고, 골동 전시실이라고 경탄했지. 변변한 가재도구도 없고 허드레 물건을 모아둔 작은방이었는데 말이야. 너는 그랬지. 방이 무명으로 지은 옷이라고, 폴리에스텔 말고 무명옷.

  앉은뱅이책상 서랍에는 자잘한 것들이 많았지. 태우다 만 인도향초, 녹이 슨 지포라이터, 스위스제 만능 칼, 잉크가 굳은 파카 만년필, 고장 난 휴대용 라디오, 도시에 사는 주인은 오래 전에 잊어버린 것들이었지. 너도 뭐 하나 기념이 될 만한 것을 가져가면 좋을 터인데. 네가 가져다 놓은 촛대가 어디 있는지 찾아볼래?

  참, 너 한 번은 병풍 뒤에 숨어 있어야 했지. 예고 없이 주인이 나타나, 너는 숨을 죽이며 주섬주섬 옷과 가방을 챙겨서 병풍 뒤로 들어갔어. 한밤중인데도 수선스럽게 주방과 욕실을 오가던 주인이 안방에서 TV를 끄고 잠들 때까지 병풍 뒤에 서 있었지. 손에 가방을 든 채로 벌을 서듯 꼿꼿이 서 있었지. 또 한 번은 벽장에 들어가 있기도 했지. 두 무릎을 접어 세워 턱에 붙이고 웅크리고 있었지. 돌멩이 하나로 오그라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안 쓰는 겨울 이불 위에서 땀을 흘리며 몸을 말았지. 너는 언젠가 한 번은 그런 일 있으리라고 예감했었다고도 했지. 어쨌든 넌 점차 익숙해졌어. 혼자서도 소리 나지 않게 대문을 밀고, 토방 모퉁이를 돌아 까치발을 하고 서까래 틈에서 열쇠를 꺼내 부엌문을 열고, 뻑뻑한 가스레인지도 힘 조절을 잘 해서 한 번에 켤 수 있게 되었지. 아래로 눌러야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를 틀거나 잠글 때도 실수하지 않게 되었지. 너, 괜찮니? 세상에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들 하지. 만물은 매순간 닳고 매순간 사그라지는 거래. 난 괜찮다. 이제 내가 있던 이곳은 허공이 되겠지. 그런데 너 정말 어떻게 알고 왔니?” 

*

  욕실 청소를 하다 젖은 발에 슬리퍼를 신은 채로 나섰다. 수도꼭지 때문이었다. 낡고 좁아 아무도 들지 않고 오래 비어있던 사택이었다. 직원들은 대부분 연립 원룸 식으로 지은 새 건물에 살고 있었다. 단층의 허름한 벽돌건물 뒤편에 감나무와 밤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었다. 계절이 되면 열매가 열릴지 궁금했다. 비록 자갈밭에 마른 풀이 푸석거렸지만 담으로 둘러진 독립된 실외 공간, 마당이 있다는 게 맘에 들었다. 

  1월 1일 정기 인사에서 나는 승진을 기대했으나, 승진 없이 G읍으로 발령이 났다. 의아해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연친화적 삶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자연 친화는 다른 말로 승진 포기였고 자명한 좌천이었다. 무엇엔가 저항하는 기분으로 두 달 동안 편도 95㎞, 왕복 190㎞를 차로 출퇴근하였다. G읍, 너무도 잘 아는 곳, 차마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을까? 거기 짐을 부리고, 혼자 상을 차려 저녁밥을 먹고 이불을 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들어가 살만한 사택이 없었다. 반듯하고 필요한 가전이 갖추어진 사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척 1,2월 두 달을 기다렸고, 그러는 사이 3월이 왔다. 1년 중 세 번째 달, 3월은 1월보다 새롭게 시작하기에 좋은 달, 이사하기에도 괜찮은 달이었다. 이사라고는 하나, 일요일을 택해 혼자 13평 임대아파트에 펼쳐놓고 살던 짐을 박스와 종이 백에 대충 담아 승용차 구석구석에 구겨 넣어서 한 달음에 달려 온 것이 다였다. 구겨져 있던 짐을 내려 낡고 좁은 사택 방에 늘어놓고 마당 청소를 시작했다. 욕실에서 수도 호스를 길게 빼서 물을 틀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으나 죽은 듯이 보이는 잡풀에 물을 흠뻑 주고 현관에 마른 나뭇잎 부스러기와 먼지를 씻어냈다. 청소를 마치고 호스를 둥글게 말아 끌어서 욕실 바닥에 던졌다. 상수도일까 지하수일까? 호스 끝으로 흘러나오는 두꺼운 물줄기가 아까워 얼른 수도꼭지를 잠갔다. 순간 픽 소리가 나며 파란색 호스는 기다란 생명체처럼 일어나 요동을 치며 물줄기를 뿜어댔다. 소금 세례를 받은 커다란 지렁이 모양이었다. 얼굴과 어깨와 몸통에 차디찬 물줄기가 튀었다. 정신이 번쩍 났다. 얼굴을 훔치는 동안 수도꼭지에서 호스가 튕겨져 나왔고 파란 호스는 한참 버르적거리다가 잠잠해졌다. 맹렬한 기세로 쏟아지던 물줄기는 제 힘을 못 이기고 수 만 개 방울로 흩어져 타일 바닥으로 부서졌다. 물을 잠그려면 수도꼭지를 위로 올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때 굽이굽이 깊은 몸속에 흐르지 못하고 막혀있던 무엇이 한 움큼 쏟아졌다. 목울대 아니면 척추 어디쯤인 것 같았다. 뱃속에 있던 오래된 성벽 같은 것이 무너지는 것도 같았다. 가봐야 할 곳이 있었다. 그대로 대문을 나섰다. 젖은 머리에 삼월 바람이 차갑게 와 닿았다. 발이 시렸다. 무릎이 나온 운동복 바지도 얇은 실내복이었다. 

  그는 없지만 집은 그대로 있을 터였다. 집이란 그렇게 금방 사라지거나 하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사택에서 멀지 않았다. 아무리 멀더라도 가야했다. 이파리가 나지 않은 가로수 길을 걸었다. 예전에 차로 달리던 길이었다. 차창을 열고 달리면 둥두두둥 북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맞춰 심장이 같이 뛰었다. 북소리 같은 것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만 들을 수 있는 내 심장 박동이었는지도, 혹은 차의 속도에 비례해서 차체에 부딪치는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인도가 따로 없는 2차로 국도, 앞뒤에서 달려온 차들은 세찬 바람과 매연을 날리며 지나쳤다. 아는 길,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하나미용실, 중앙철물, 소문난 기사식당, 인테리어 같은 것엔 도통 관심이 없는 상점들이 3년 전 그대로 낡은 간판을 이고 띄엄띄엄 웅크리고 있었다. 카센터에서 길을 꺾었다. 향교리. 궁서체 음각으로 새긴 마을 표지석이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어른 몸집보다 큰 바윗돌에게 3년 세월은 낮잠 한숨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공터 옆 미니수퍼도 그대로였다. 미니 간판은 물고기 비늘처럼 페인트칠이 일어나 빛이 바래 희미했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그랬던 것 같다. 출입구가 길에서 한 자쯤 꺼진 가게, 거기서 동동주 두 병을 사곤 했었다. 계단 두 개를 내려가야 하는 가게에는 늘 마을사람 두서넛이 어슴푸레한 형광등 아래서 붉은 배추김치 한 접시를 놓고 흰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얘기가 궁금했지만 동굴 속인 듯 웅얼웅얼 울려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다 내 얘기를 할지도 모른다고 여겨서였는지도 모른다. 허리가 기역자 이상 예각으로 굽은 노파는 유통기한이 다가오는 스넥류 과자 봉지를 부스럭 소리가 나게 걸레로 닦다가 일어나, 가게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산뜻한 스탠드형 냉장고 유리문을 힘겹게 열어 동동주를 꺼내 주곤 했다. 검정 비닐봉투에 동동주를 담아 건네줄 때 노파는 언제나 내 눈을 들여다보았는데, 빈틈없이 주름살투성이 얼굴에 박힌 노파의 눈은 우물처럼 깊었다. 근처 주조장에서 매일 대주는 막걸리와 동동주만은 신선했다. 물론 오늘은 아무것도 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저녁마다 반주로 동동주 두 잔을 마셨다. 국 대접에 가득 채운 두 잔이었다. 혼자 따르고 혼자 마시지만 최소한의 의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건배사였다.

  봄비를 위하여 한 잔, 꽃 지는 봄밤을 위하여 또 한 잔. 고요한 밤을 위하여 한 잔, 밤의 고요를 위하여 또 한 잔, 이런 식이었다. 영원히 계속될 9시 뉴스를 위하여, K시 동구 보궐선거를 위하여, 나로호 발사를 위하여, 위성들의 원활한 운행을 위하여, 새로 선출되는 로마 교황을 위하여, 정치계 두목들을 위하여. 두 가지는 서로 같으면 안 되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무관해서도 안 되었다. 새로운 건배사는 얼마든지 있었다. 세상 나무에 달린 이파리 수만큼, 저수지에 이는 물이랑 수만큼 많았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것도 있었고, 공무원다운 것도 있었다. 그는 근속연수 29년인 공무원이었다. 그동안 그가 맡은 업무는 수해복구, 산불 예방, 지역축제, 독거노인 문화 바우처까지 가히 전천후였다. G읍에서는 혁신도시 기반 조성, 토목 건설 지원이었다. 터널을 뚫어 순환도로를 내야했다. 주민 설득, 토지매입, 보상, 할 일이 많았다. 성공적인 혁신도시 건설을 위하여, 주민의 행복을 위하여, 재난 예방을 위하여. 그런 건배사도 끝없이 부를 수 있었다. 다만 그가 누릴 날들이 끝없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비에 젖는 낙엽을 위하여, 아까운 봄볕을 위하여, 나중에는 기억이 혼미해져서 이걸 전에 했던가, 안 했던가를 내게 물으면서 더듬거렸다. 

  일요일 오전이라고는 하지만 마을 입구는 이상하게 적요했다. 인적은 없고 개 네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방심한 개들은 몇 걸음 따라오다 맥없이 돌아서서 저희끼리 어울렸다. 차를 두던 가게 옆 공터에는 마른 풀들이 우거져 있고 반쯤 땅에 묻힌 쓰레기들이 희끗거렸다. 누구나 들어와 편히 쉬라는 간판이 눈길을 붙드는 감리교회를 지나 개천을 끼고 걸었다.

  그의 소유는 아니지만 그가 사는 집이었다. 도청 소재지에 가족과 집을 두고 면으로 읍으로 혼자 떠도는 그에게 때로는 사택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사택은 가족이 있는 직원 우선이었다. 마침 혼자 낡아가는 빈 집을 만났다. 친구의 동창 집이었다. 도시에 사는 주인은 고급차를 몰고 한 달에 두세 번 들렀다. 텃밭과 뒷산에서 나오는 것들을 거두어 가기 위해서였다. 죽순 고사리 머위 토란 밤, 애써 가꾸지 않아도 제 힘으로 땅을 뚫고 나오거나 땅 위에 굴러다니는 것들이었다. 그는 식용식물과 새와 벌레와 야행성 동물에 둘러싸여 적조하나 여여하게 몇 년을 살았다. 몇 년을 늙었다. 소맷부리가 날깃날깃한 내복을 입고 주방과 마루와 장독대 옆 텃밭을 오가면서 나물 한 가지씩을 데쳐 된장에 무치고, 편수냄비에 현미죽을 끓여 아침을 먹었다. 냄비와 숟가락은 물에 담가 놓는 법이 없이 바로 씻어서 물기가 빠지도록 엎어두었다. 그럴 때 허리가 느슨한 바지는 한 쪽 다리만 말려 올라가 있곤 했다. 앉은뱅이책상에 세워진 거울을 보고 면도를 하고 어제와 그제와 비슷한 옷을 갖춰 입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읍사무소에 출근하였다. 

  분주한 일과를 마치고도 두 시간쯤 시간외 근무를 하고 돌아와 집주인이 남긴 죽순이나 고사리나물에 홀로 저녁을 먹었다. 평온한 일과였다. 최소한의 가구와 가전제품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고요하게 살았다. 주인이 내준 작은방은 원래 허드레 물건을 쌓아두던 창고였다, 집안에 내려오던 병풍과 그림, 도자기 중 눈에 들어온 것은 챙겨가고 처분하기 곤란한 것들을 보관해두던 방이었다. 그는 병풍을 펼쳐서 마른 수건으로 먼지를 털었다. 낙관은 없지만 볼만하다고 흡족해했다. 

  한 달에 두 번 고급 차를 몰고 오는 주인보다 그는 집과 잘 어울렸다. 무겁지도 않은 함석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은 휘어졌고, 나이만큼 풍화한 흙벽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개미 거미 그리마 지네, 몸이 가늘고 발이 여러 개 달린 벌레들은 벽과 천정에 드나드는 길을 알고 있었다. 곳곳에 저희만 아는 길을 내놓고 들락거렸다. 집에 집을 지은 셈이었다. 알을 까고 새끼를 기르며 한 세상을 이루어 살고, 그도 살고 있었다. 비가 들치면 신발을 마루 위에 올려놓아야 했고, 지리한 여름 장마에는 흙벽이 젖어 눅눅했다. 

  소맷부리 뿐 아니라 목깃도 늘어난 실내복을 입고 주방과 텃밭을 오가며 저녁상을 차렸다. 생일 케이크 위 촛불처럼 정해진 곳에 가로등이 켜진 마을을 내려다보며 동동주 두 잔을 마신 그는 잠들기 전 다 가라앉은 메밀껍질 베개에 기대어 책을 읽었다. 카네기 톨스토이 주은래 노신 토인비 하이데거 랭보의 인생론 처세론 우정론 명상록 수상록 들이었다. 과거 이름난 위인들이 모두 인생론을 남긴 점이 흥미로웠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퇴근길에 주민을 위한 작은 도서관에 들러 두 권씩 을 빌려왔다. 말이 도서관이지 읍사무소 민원실 벽에 세워둔 책장 두 개가 전부였다. 진한 갈색 티크 책장엔 유리문이 달려 있는데도 안에는 먼지가 수북하였다. 주로 기증도서였다. 근래 몇 년 간 아무도 만진 흔적이 없는 작고 작은 도서관이었다. 당연히 신간은 없었다.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를 기증해주는 단체는 없었으므로. 그에게는 오래된 책도 괜찮았다. 진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변하는 게 아니었다. 더러 ‘암을 이기는 민간요법’이나 ‘암과 싸우지 마라’ 같은 건강서적도 있었다. 맞기도 하고 맞지 않기도 할 것이라고 남의 일처럼 여기며 읽었다. 

  ‘군자는 남들과 잘 어울리지만 같아지지는 않는다.-공자’

  그는 남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고, 일하는 방식이나 사는 방식이 같지 않았다. 달랐다.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것을 하찮게 여긴다고나 할까.

  ‘우주의 복잡함에 비하면 우리의 세계 따위는 지렁이의 뇌와 같은 것이다.’라고 하트필드는 말했다, 라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용했다.

  지렁이의 뇌가 작다고 작은 것일까.

  ‘내가 보기에 불운을 당해보지 않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소. 그런 사람은 자신을 시험해 볼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오. 신들에게 그는 운명을 극복할 자격이 없는 것으로 보였을 뿐이오. 신은 자신이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고, 훈련시키는 것이오.-세네카’

  그날 읽은 내용 중 마음에 드는 구절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사무실 캐비닛을 정리하다 주운 업무수첩이었다. 4년이 지난 것으로 전임자의 전임자가 두고 간 것인데 말짱했다. 1월 2일 시무식부터 5일까지 개인사를 메모하고 그만인 수첩은 한 쪽이 이틀 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미색의 매끄러운 지질에, 자주색 가죽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수첩 주인은 그 해에 금연을 할 계획이었고. 테이프를 들으며 영어회화를 공부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5일은 결혼기념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처음에 그것을 일기장으로 사용하려 했으나 매일 일기에 적을 만큼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독서록으로 쓰기로 했다. 볼펜으로 사각사각 구절을 따라 적고 있으면 도시에 두고 온 가족과 낮에 몰두했던 업무를 잊을 수 있었다. 장차 손자가 태어나 자라서 중학생이 되면 이 자주색 노트를 전해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곧 회갑이 다가오지만 주변의 지인들처럼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출간할 계획은 없었다. 그저 좋아하는 볼펜으로 좋은 구절을 적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자주색 가죽표지 업무수첩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이라고 생각하면 스스로 그윽해지는 것이었다.

  해마다 진행되는 농업박람회 준비와 혁신도시 기반 조성이 주요 업무였다. 박람회는 부서 인원수에 비해 업무가 많았다. 새로운 것을 기획하기도 힘들었다. 올해 행사가 끝나면 다음날 바로 다음 해를 준비해야했다. 격년제로 개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회의에서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머지않아 변화와 혁신을 통하여 문화 인프라가 구축된 글로벌 농업도시의 모델을 건설해 내야했다. 

  위인들의 인생론을 읽는 저녁 시간은 그런 것을 잊고, 잠시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이었다. 지붕 아래나 벽 틈, 들보나 기둥에는 다리가 여러 개인 야행성 벌레들이 길을 찾아 드나들고 그는 평온하게 인생론을 읽고 기록했다. 

  개천을 따라 걷는 길은 3년 전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

  “내 방에 가서 차나 한 잔씩 하지.” 

  이른 점심을 먹고 식당 앞길에 둘러서서 어정쩡하게 머뭇거리는데 뜻밖에도 그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3월 첫 주 토요일, 부서는 전원이 특근을 달고 출근했다. 그날은 예상 외로 일이 일찍 끝났다. 1월 1일자 이동으로 사무실 반 정도는 새 얼굴이었다. 혁신도시 업무가 많아지면서 부서가 새로 생기고 인원이 증원되었다. 두 달이 지났으나 아직 단합을 위한 회식도 못했다. 매일 시간외 근무에 주말 특근이었다. 곁을 내주지 않아 어렵던 그였기에 다들 내심 놀라며 뒤따랐다. 고향도 연고지도 아닌 여기까지 홀로 와서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직원 예닐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당에 들어서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탄성을 질렀다. 특히 여직원들이 내놓는 우와, 어머, 같은 감탄사는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아담한 정원에 어울렸다. 가장자리가 잘 정돈된 타원형 잔디는 노란 러그 한 장을 깔아놓은 듯 포근했다. 잔디 한가운데는 맑은 물을 담은 돌확이 놓여있었다. 사람들은 빛바랜 잔디를 구둣발로 건너 나뭇가지 아래 섰다. 작설 같은 삐죽한 새잎이 돋기 시작한 동백은 바닥에 붉은 하혈을 쏟아놓고 단정히 서 있었다. 백일홍과 멀구슬나무는 아직 꽃샘추위에 순을 내놓지 않고 맨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빈 나뭇가지에 연둣빛 새순이나 무성히 우거진 녹음, 또는 꽃을 그려 넣고 봄과 여름을 상상했다. 수형과 꽃 빛깔, 개화시기를 계산하여 배치한 정원이었다.

  차를 마시던 장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로 집에서 나오는 광경이다. 

  “차 생각나면 언제라도 와요.” 

  “정말요?”

  “그래도 돼요?”

  다들 반색을 했지만, 누구도 다시 올 생각은 없었다. 인사로 하는 말인 줄 모르는 이는 없으니.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정원을 뒤돌아보았다. 눈을 굳게 감은 수선화와 씨앗처럼 단단히 여문 작약 봉오리가 시든 볕을 받고 있었다. 이틀 후 퇴근길에 어쩐 일인지 나는 차를 몰고 그 집에 갔다. 수선화랑 작약이 피었는지를 보러 간 것도 같다. 수선화는 아직 눈을 다물고 있었다. 저녁상을 차리던 그는 놀란 빛을 감추며 올라와 밥을 먹자고 했다. 바지락 국이었다. 서로 무릎이 닿는 작은 식탁에 나란히 앉아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가 문득 수저를 놓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에 작은 문구가위와 부추 몇 가닥이 들려있었다. 텃밭에서 자란 부추를 가위로 잘게 잘라 뽀얀 국물에 뿌려주었다. 초록색 색종이로 내 방문을 환영하는 세리모니 같았다. 나는 무엇인가 부끄러워 바지락 껍질에 새겨진 무늬를 들여다보았다. 며칠 후 나는 또 갔다. 수선화는 눈을 크게 뜨고 마당을 지키고 있었다. 작약 봉오리도 벌어 있었다. 

  “부추 때문이었어. 문구 가위로 잘라서 뽀얀 국에 띄워준 부추만 아니었어도 또 가지는 않았을 거야.”

  아무도 묻는 이는 없었지만 나는 그것만 아니었으면 다시 가지 않았을 거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밥을 먹고 기름기 없는 그릇 몇 개를 닦는 동안 그가 주방에 딸린 욕실에서 물소리를 냈다. 반투명 유리문으로 그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한참 후 그는 욕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성큼성큼 마루를 건너서 작은 방으로 갔다. 나는 욕실에 들어가 딸깍 소리가 날 때까지 문을 닫았다. 천정은 낮고 하늘색 타일 틈에는 물때가 까맣게 끼어 있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 샤워기를 잡고 물을 조금 틀어서 소리가 나지 않게 오래도록 씻었다. 일어서면서 수도를 잠그려고 꼭지를 누르자 샤워기에서 물이 세게 뿜어져 나와 소매와 몸통이 젖고 말았다. 샤워기 수도꼭지가 반대였다. 

  어스름에 가서 한밤중에 왔다. 대문 앞 가로등은 열시에, 개천가 가로등은 열두시에 꺼지므로 시간을 기다려 나왔다. 가게 옆 공터에 세워둔 차 유리창에 이슬이 맺혀 울고 있는 듯 보였다. 키를 넣어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앉아 문을 가만히 닫았다. 어둠 속에서 시동을 켜는 소리는 크게 울렸다. 밤의 정령이 잠을 깨지 않도록 미등만 켜고 마을을 빠져나왔다. 국도에 나와 라이트를 켜고 속도를 올리면 길바닥에 풀어져 누워있던 안개가 일어나 사납게 달려들었다. 바다에서 올라온 밤안개였다. 간간이 맞은편에서 맹수처럼 눈을 부라리고 달려오는 자동차가 두려워 나도 눈에 힘을 주었다. 

  나는 구불구불 골목을 따라 걸어가고, 전깃줄은 전봇대를 따라 거칠 것 없이 공중을 질러 개천을 넘어가고 있었다. 개천가에 사람들이 울러 서 있다. 무슨 일일까? 노란 플라스틱 안전표지대로 경계를 지어놓았다. 공사 중인가? 

*

  “너, 정말 어떻게 알고 왔니? 이제 굴삭기는 내 옆구리를 부서뜨릴 거야. 시간이 많이 없구나. 난 괜찮다. 네가 오는 날을 나는 더 일찍부터 알 수 있었다. 그는 돌아와서 청소를 했지. 마당에 서서 이불을 털고 걸레를 짜서 방과 마루를 닦고, 된장을 덜어 나물을 무쳤지. 죽순 머위 취 톳, 나물 두어 가지에 상을 차려놓고 창문으로 마을을 내다보며 기다렸지. 

  한밤중 혹은 새벽에 네가 젖은 잔디를 밟고 대문을 열어 둔 채로 가고 나면 그는 또 청소를 했지. 네 머리카락을 치워야 했으니까. 긴 머리카락은 이불 아래나 책갈피에 들어 있다가 하루 이틀이 지난 후 눈에 띄기도 했어. 마치 네가 방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나는 것 같았지. 

  11월 늦가을에 그는 좀 쓸쓸해했다. 퇴근길에 동동주를 담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휘적휘적 걸어서 왔지. 그런 날은 이런 건배사를 했어.

  ‘바람에 가볍게 불려가는 낙엽을 위하여 한 잔, 비에 젖어 바람에도 날아가지 못하는 낙엽을 위하여 또 한 잔.’ 

  업무수첩에는 이렇게 적었어.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변화시킬 수 없다. -공자’

  그는 겨우 6급으로 정년을 했지. 더 오래 살았더라면, 5급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는 삶이라고 했어, 전방이 아니고 변방이기에 무미한 일상을 곰곰이 음미할 수 있었다고 했어. 그는 여기서 그윽하게 살았어. 

  ‘먼 길 떠날 때, 무엇이든 한 가지는 남겨놓아야 한다.’

  업무수첩에 그가 마지막으로 적은 말이다. 그래야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일까? 유명한 성현이 한 말은 아닌 것 같아. 혹시 그가 하는 말일까? 남들은 모르겠지만 고단하고 빈한한 생에 네가 있어 흐드러지게 살아보았노라고 회고했어. 네가 두고 간 촛대가 어디 있을 텐데.

  사람들은 이곳을 차로 달리게 될 거야. 제한 속도 시속 80㎞이면 90㎞까지는 마음 놓고 달리겠지. 어쩌면 시속 120㎞나 130㎞로 달리는 차들도 있겠지. 이 부근이 진입로가 되고 뒷산에 터널이 뚫리면 혁신도시까지는 금방이겠지.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죽음이라 하고 싶지는 않구나.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빈집으로 오래토록 있다가 낡고 삭아 스러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부서지고 마는구나. 좀 더 가까이 와서 보렴. 그리 위험하진 않을 거야. 난 늙어서 조금만 건드려도 폭삭 가라앉고 말거야. 너를 보며 옛날을 생각하니, 네가 지켜보고 있으니, 이 고통도 참을 만하구나.”

*

  내 기억에 그 집은 항상 밤이다. 자박자박 내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수요일이면 감리교회 신발장에는 뒤축이 닳은 노인들 신발이 듬성듬성 놓여 있다. 다 해도 열 켤레가 못 된다. 교회 개는 귀가 밝다. 온 마을에 내가 온 것을 알리고 만다. 걸음을 재촉해서 개천을 건너고 골목을 올라간다. 하얀 철제 대문은 항상 열려 있다. 나는 옆모습으로 재빨리 마당 안으로 들어서서 문을 들어 올리며 닫는다. 잘못하면 윗집에 문소리가 들릴 지도 모른다. 잠금쇠를 걸어 잠근다. 토방에 서서 방금 지나온 마당과 골목을 돌아본다. 어둠은 머리칼을 잘라 버려놓았듯이 곳곳에 뭉텅뭉텅 고여 있다. 신발을 들고 마루에 올라서서 또 한 번 골목과 대문을 바라본다. 세상의 단위로는 잴 수 없는 참으로 먼 거리다. 그는 주방에서 저녁을 먹고 있거나 동동주를 마시고 있다. 

  나는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입혀 그의 출근복 옆에 나란히 걸어둔다. 마을 입구 공터 그의 차 옆에 나란히 내 차를 두듯이. 오래 사람이 살지 않았는지 마루는 삐거덕거리고 나는 가시가 박히기도 했다. 집은 옹색했다. 문은 녹슨 경첩소리 주방에서 욕실로 가는 문은 낮아서 허리를 구부려야 했다. 그 불편함과 옹색함이 바로 사랑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집은 정동향이다. 아침에 방문을 열면 가차 없이 쨍쨍한 햇볕이 바로 방 안 깊숙이 들어찼다. 그 환함은 이제 어디 있는가?

  나는 급해졌다. 사람들을 비집고 나가 다리를 건너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슬리퍼를 신은 발이 경사진 골목에서 뒤로 밀렸다. 대문은 뜯겨져 없어졌고 대문 기둥도 무너졌다. 마당은 육중한 굴삭기 체인 바퀴에 살점이 찢기고 패였다. 발이 흙 속으로 푹푹 빠졌다. 앞으로 나아가며 위로 말려 올라가는 굴삭기 체인은 잔디며 흙을 가차 없이 뜯어서 흩뿌렸다. 굴삭기 기사와 또 다른 남자 하나가 나를 향해 들어가지 말라고, 나오라고 소리치며 손을 내저었다. 나는 못들은 척 앞으로 나아갔다. 젖은 흙이 슬리퍼 밑창에 달라붙어 무거웠다. 어렵게 토방에 올라 모퉁이를 돌아 부엌문으로 갔다. 유리가 빠져버리고 틀만 남은 알루미늄 문은 활짝 열려 덜렁거렸다. 장광에는 깨진 항아리 몇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서까래 위쪽 틈을 더듬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빈손에 검댕이만 묻어났다. 불을 때던 아궁이 자리라 그을음이 검게 끼어있었다. 바로 옆 서까래 틈에 손가락을 넣었다. 거기 있었다. 비닐 끈으로 묶은 부엌문 열쇠, 두께와 감촉을 확인하며 꺼냈다. 노란 비닐 끈은 삭아서 부하게 올이 풀렸고 열쇠는 녹이 슬었다. 

  “내가 할게. 키가 닿을까?”

  등 뒤에서 그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그는 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너무 작은 내 말소리는 굴삭기 엔진 소리에 묻혀버렸을 터였다. 녹슨 열쇠를 운동복 바지 주머니에 깊이 넣었다. 흙덩이가 들러붙은 무거운 슬리퍼로 땅을 골라 디디며 걸어 나왔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인부가 이번엔 빨리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마스크를 벗어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 위험하니 어서 비키시오. 일하는 거 안 보이요?

  기둥만 남은 대문 위치에 서서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살던 작은방 옆구리는 이미 무너졌고 지붕도 반쯤 기울어졌다. 누런 벽지가 붙은 흙벽 조각과 부서진 나무 기둥 사이로 업무수첩 자주색 가죽표지를 본 것도 같았다. 굴삭기가 긴 팔 끝에 달린 버켓을 휘둘러 지붕과 이마와 등을 되는 대로 후려쳤다. 집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당선소감>


  "소설은 봄 하늘에 떠 있는 분홍 솜구름 같은 것"

 

  겨우겨우 지어낸 소설 비슷한 것 몇 편을, 미적거리다 마감 날 빠른 등기로 보내고, 우체국을 나서면서 당선소감을 구상했다. 소감은 소설보다 몇 배 더 소설적이어야 했다.

  ‘신문사에서 온 전화를 받은 날, 하늘엔 아직 눈이 되지 못한 구름이 낮게 떠있었다.’ 이렇게 시작해 볼까?

  머릿속에 ‘소설’이란 이름으로 폴더 하나를 저장한 지 8년이다. 이제는 고유명사가 된 ‘생오지’에 우연히 옛날 친구를 따라 갔다가 문순태 교수님을 뵌 후다. 내게 소설은 감히 봄 하늘에 떠 있는 분홍 솜구름 같은 것이었고, 그저 ‘나이 50이 넘어서도 스승을 만날 수 있다니!’ 하면서 매주 토요일 강의를 기다렸다. 교수님의 음성과 표정은 구수하고도 포근했고. 내용은 우리 중 가장 젊은 사람보다 더 젊고 앞서가서 놀라웠다. 

  무등산 뒤편 마을 두부집에서 뒤풀이를 하고 유둔재와 소쇄원을 지나 집으로 돌아올 때는 마음이 급했다. 어서 한글 새 문서를 열어 세상에 없는 첫 문장을 시작하리라고...

  교수님을 웃게 해드릴 수 있어 기쁘다.

  글 한 편에 삶의 파편 하나라도 담아내려고 애쓰는 생오지 글동무들이 그립다, 내 엉성한 글에 예리한 생각을 친절하게 나눠준 차노휘님이 좋아라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과학적 논리로 플롯을 도와주겠다며 번번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조언을 해주는 무던한 공학계 남편.

  오래 전 내가 제게 그러했듯이, 이제 내 등을 떠밀며 요즘 젊은 소설가들의 경향을 반짝반짝하게 정리해서 알려주는 딸.

  축하한다는 말 대신 상금 좀 나눠주라 하는 아들.

  식구 같은 동료 선생님들과 종달새 같은 제자 아이들.

  1월 1일자 신문을 100부 사서 전교생에게 돌리자는 교장 선생님.

  그들 속에 내가 있다.

  ‘선생님, 방학에 좋은 글 많이 쓰시고 소설가 되면 우리 이야기도 써 주세요.’ 

  열다섯 살 아이들도 저마다 가슴속에 이야기를 품고 건너가는 세상, 소설은 영원할 거고 좋은 소설은 캄캄한 길 걸어가는 우리 발부리를 밝혀줄 거라고 믿는다. 촛불 한 자루처럼…

  서로 마주보며 사랑한 사람들의 벅찬 숨결이 시간이 흐른 후에 무엇을 남기는지 알고 싶었다, 사나운 힘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스러져가는 것들이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닐 거라는, 길가 풀섶 어딘가에 무엇인가 남겨두었으리라는 짐작에서 ‘열쇠’는 시작했다.

  아, 그리고 저장한 파일 찾느라, 잃어버린 안경 찾느라 허둥지둥할 때 숨 고르게 도와준 착한 생협 커피야 고마워. 말 잘 듣는 노트북과 프린터도. 

  심사해주신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 1961년 전남 순천 출생
  ● 전남대 사범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 전남 강진 성전중학교 국어교사


  <심사평>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과 문체 필요하다

 

  나라가 온통 어지럽고, 도(道)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고 있다. 공자와 장자가 말하기를, 이런(無道) 시절에는 몸을 숨기고 그냥 살아가라고 했다. 그런데 작가들 대부분은 이런 때일수록 몸을 숨기기는커녕 마치 때를 만나기라도 했다는 듯이 거침없이 붓을 휘두르곤 한다.

  슴새는 폭풍우가 광란하고 파도가 우렁우렁 포효하는 바다 물머리 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날아서 태평양을 횡단한다. 그리고 악천후일수록 더욱 강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이 땅의 작가는 슴새다. 

  저마다 할 이야기가 많았는지, 응모작이 무려 130편에 달했다. 문학의 위기가 심화되어간다고 하는 즈음에 놀랍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상 위에 가득 쌓여있는 원고더미를 보며 심사의 고통을 떠올리기보다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행복함을 느꼈다. 고백하건대, 주어진 하루의 심사기간을 꼬박 넘기고 다음날도 응모작을 읽었다. 

  응모자마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부둥켜안고 불면의 밤을 지새웠을 테다. 먼저 그분들의 노고와 열정에 갈채를 보낸다.

  신춘문예에서는 신선함과 패기를 요구하는 법인데 소설의 주제나 소재가 평범하고 식상하게 느껴지는 응모작이 제법 눈에 띄었다. 애완(반려)동물, 층간소음, 휴대폰, 불륜, 성폭행, 학교폭력, 죽음, 이런 것들은 소설로 이미 써버린 소재와 주제이다. 심사위원과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하려면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과 문체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감히 해드리고 싶다.

  관심 있게 읽어본 작품들이 많았다. 감성돔을 의인화시킨 작품, 타인을 구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스킨스쿠버의 이야기, 여순사건 소재, 염전의 염부 이야기, 편의점 알바와 삼각 김밥 이야기 등등이다.

  최종심에서 올린 작품들은 ‘매미를 누가 죽였는가’, ‘파르나시우스에 관한 고찰’, ‘열쇠’였다. 이 작품들을 놓고 한동안 고민했다.

  ‘매미……’는 자아분열과 피해망상에 빠진 노인의 이야기인데, 문체가 좋고 흡인력도 있었다. 그런데 소설적 형상화가 약간 미흡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 노력하면 장차 좋은 작품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파르나시우스……’는 멋을 부릴 줄 아는 응모자의 작품이었다. ‘파르나시우스’가 뭔지 몰라서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붉은점모시나비’였다. 이런 것을 비롯하여 멋 부리는 점들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신인다운 패기와 역량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과학적(의학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점도 아쉬웠다.

  당선작으로 뽑은 강정희의 ‘열쇠’는 신인다운 패기가 엿보였다. 문장을 단문으로 처리했으면 전달력이 배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서사가 부족하고 자칫하여 스토리가 실종되거나 모호해질 수 있다는 단점도 드러났지만 사물을 묘사하고 판단하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호감을 샀다.

  등용문을 통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런 조언을 제대로 알아차리게 되면 자만할 수 없을 것이다. 절차탁마하여 좋은 작품 남기기 바란다.


심사위원 : 박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