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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잔등노을 / 정연희

 

  소잔등에 부르르

  바람이 올라타고 있다

  곱슬거리는 바람을 쫓는 꼬리는

  등뼈를 타고 나간 장식

  억센 풀은 뿔이 되고

  오래 되새김한 무료는 꼬리 끝에서 춤춘다


  스프링을 닮은 잔등 속 간지러움은 

  온갖 풀끝을 탐식한 벌

  한 마리 꽃의 몸속에 피는 봄

  연한 풀잎이 키운 한 마리 소는

  쌓아 놓은 풀 더미 같고

  잔등은 가혹한 수레의 우두머리 같다


  논두렁 길 따라 비스듬히 누운

  온돌방 같은 소 한 마리

  눈 안에 풀밭과

  코뚜레 꿴 굴레의 말(言)을 숨기는 

  저 순응의 천성 

  가지런한 빗줄기가 껌벅 껌벅거린다


  융단처럼 펼쳐놓은

  노을빛 잔등이 봄빛으로 밝다

  주인 닮은 뿔처럼 몸 기우는 날은

  금방 쏟아질 것 같은 잔등의 딱지가 

  철석철석 박자를 맞추고

  저 불그스름한 노을은 

  유순한 소의 엉덩짝을 산처럼 넘는다




  <당선소감>


  “소눈 바라보다 어둠속 스위치 찾은듯”

   온세상 모든 빛이 내것인양 눈부셔 비바람·폭염에도 춤추듯 살아갈것

 

  소의 눈을 들여다보면 “다 안다, 네 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날 묻고 싶은 일들이 있을 때마다 한참 동안 바라본 소의 눈이 오늘은 내 눈 속에서 “다 안다, 그 맘”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만 같습니다.

 눈을 뜬다고 다 어둠에서 벗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둠 속을 걸어 나오기 위해 스위치만 찾으려 한 시간들, 세상은 너무 넓어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이제 갓 꽃눈을 뜬 여린 풀꽃, 온 세상의 모든 빛이 다 내 것이 된 그 풀꽃같이 눈부신 날입니다. 주름진 시간들에 푸릇한 이파리가 달리면 온갖 춤이 찾아오겠지요. 

 어디 춤뿐일까요? 온갖 바람의 종류와 비와 폭염이 찾아오겠지요. 그러면 저는 온갖 춤을 배우고 추임새를 준비하겠습니다. 

 서툰 춤사위에 추임새를 넣어주신 황인숙·함민복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상쾌한 추임새는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세상의 시간들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늦둥이 딸에겐 미안한 시간들이었지만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한 날입니다. 착하고 묵묵한 <농민신문>에 당선되어 더없이 기쁩니다. 저의 모든 수식어들은 소의 눈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1958년 전남 보성 출생
  ●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 경기 용인수지우체국 근무
  ● 김유정 기억하기·등대문학상·생명문학상·동서문학상 수상, 김삿갓 전국시낭송대회 우수상 수상
  ● 용인문학회·동서문학회 회원


  <심사평>


  “거칠더라도 사람냄새 묻어나는 작품

  대상 그려내고자 하는 치열함 돋보여”

 

  총 244명의 응모작 중 예심을 통과한 19명의 작품을 사전에 전달받아 각자 읽고 합평회를 가졌다. 선자(選者)들은 우수한 작품이 많아 황금 나락 펼쳐진 들판 앞에 섰을 때처럼 행복하기도 했지만 고민도 컸음을 토로했다. 

 신문의 특성 때문인지 농촌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아 진부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그런 작품은 없었다. 두부처럼 반듯하고 말랑말랑한 작품보다 비지처럼 좀 거칠더라도 마음에 씹히는 질감이 있는 작품들이 결국 남았다. 

 사람 냄새가 많이 묻어나는 작품을 선호하는, 응모작을 통해 앞날의 작품을 감히 예측해보는 선자들의 취향이 반영되었음을 실토한다. 

 논의 끝에 압축된 작품은 ‘가실’ ‘동그란 색연필’ ‘밥 먹는 나무’ ‘장수 산부인과’ ‘잔등 노을’이다. 

 ‘가실’은 잘 발효된 남도 사투리의 야생적인 말맛이 일품이었으나 내용에서 농촌의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다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동그란 색연필’은 ‘뚜껑을 열고 뛰쳐나가는 각각의 눈동자들’처럼 상상력이 발랄하고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는 기법이 돋보였다. 그러나 동봉한 작품 중에 긴장감을 잃고 풀어진 구절도 보여 안타까웠다. 

 참신하고 세련된 감각의 잔치를 보여준 ‘밥 먹는 나무’와 굵은 시상과 따뜻한 시선이 빛나는 ‘장수 산부인과’는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었다. 

 당선작으로 결정한 ‘잔등 노을’은 이미지가 활달하고 선명하다. 대상을 그려내고자 하는 치열함이 절로 읽힌다. 직유를 줄여 행간의 이미지를 더 증폭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덮고 그 치열한 힘이 그려낼 미래를 믿어보기로 했다. 치열함으로 치열함마저 넘은 담담한 마음이 이미 싹트고 있음도 소중히 보았다. 

 사람들이 아닌 시의 세계로부터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 시인이 되길 바라며 우선,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 함민복, 황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