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할머니의 라디오 사연 / 최고나

 

  “예은아! 어떻게! 할매가 된 것 같다!”

  흥분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라면을 끓이다 말고 할머니에게 뛰어갔다. 할머니 얼굴은 홍시처럼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번엔 진짜야?”

  “진짜야. 들어봐라. 김복임. 분명이 전주 사는 김복임이라 했다.”

  할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디제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숨을 죽이고 양쪽 귀를 쫑긋 세웠다.

  “네. 사연 잘 들었고요. 전주에 사는 ‘김꽃님’ 씨에게는 선물로 침구 세트 드릴게요.”

  “에이, 뭐야. ‘김복임’이 아니라 ‘김꽃님’이잖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내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이상하네. 아까는 분명히 김복임이라꼬 했는디. 전주 주소까지도 맞았는디…….”

  할머니는 머쓱한지 괜히 귀 후비는 시늉을 했다.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에이, 뭐야. 좋다 말았네. 할머니 때문에 라면만 불게 생겼잖아.”

  나는 툴툴거리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등 뒤로 할머니의 얕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나도 덩달아 힘이 쭉 빠졌다.

  언제부턴가 할머니는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날이 많았다. 할머니는 라디오 사연을 쓴다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붙잡고 라디오 사연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저께는 내가 짐 들고 내려가다 쪼까 쉬고 있는데, 어떤 머시마가 도와주겠다고 하데. 그러면서 내 짐을 들고 다시 올라간 거 있지? 내가 내려가고 있던 것도 모르고 말이여. 하하하.”

  사연을 말하는 할머니의 눈은 언제나 빛났다. 나는 할머니의 말에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할머니가 라디오 사연에 집착하는 걸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에 엉터리 맞춤법, 재미도 없는 이야기. 과연 이런 사연을 누가 읽어주기나 할까? 열두 살인 내가 봐도 의문이 들었다.

  “할머니, 이런 건 글 잘 쓰는 사람들이나 뽑히는 거야. 그리고 요즘 누가 그렇게 손으로 써. 인터넷에 접속하면 되는데. 보기 힘들어서 읽어주지도 않겠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할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사연 쓰기에 빠져들었다. 전단지 뒷면이든 스케치북이든 가리지 않았다. 돋보기안경을 끼고 뭔가를 열심히도 적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 있는데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졌다.

  아가, 할마이가 우산 가지고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라.

  할머니의 문자였다. 나는 수업이 끝나고 현관 앞에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예보에 없던 비 소식이라 마중 나온 엄마들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많았다.

  ‘엄마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새삼스럽게 부러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야, 차예은. 너 그러다가 운동화 다 젖는다.”

  옆에서 나와 같이 엄마를 기다리던 보람이가 말했다. 그제야 나는 신발을 내려다봤다. 빗물이 조금 튀겼을 뿐인데 정말로 운동화의 파란 앞코가 축축이 젖어있었다.

  “야, 너도 메이커 운동화 하나 사라니까. 그거 얼마나 한다고.”

  보람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요즘 그렇게 티 나는 짝퉁 신발 신는 사람이 어디 있냐?”

  민성이가 옆에서 보람이 말을 거들었다. 민성이의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내 신발을 쳐다보았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신발이었다. 나는 신발주머니로 얼른 신발을 가렸다.

  “암튼 우린 먼저 간다.”

  멀리 보람이의 엄마가 보였다. 나도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괜히 할머니에게 화가 났다. 우산도 없이 터벅터벅 정문을 나섰다. 그때였다.

  “할매가 기다리라 안 했냐? 많이 기다렸나? 내 새끼 젖었네.”

  구부정한 허리로 부랴부랴 걸어오는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는 비에 젖은 나를 보고 안절부절못했다. 내 머리며 어깨에 묻은 빗방울을 손으로 털어주었다. 나는 할머니를 쏘아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또 라디오 들은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이번엔 정말로 될 것 같아서…….”

  할머니 목소리가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

  “뭐? 정말 라디오 듣다가 늦은 거라고?”

  황당해서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대답도 없이 내게 우산만 씌워주었다. 나는 우산을 뿌리쳤다. 할머니가 보란 듯이 비를 맞고 성큼성큼 걸었다.

  “할매가 늦어서 화 많이 났냐?”

  할머니는 집에서도 내 눈치를 살폈다. 내 기분을 풀어주려 내가 좋아하는 감자전까지 만들어줬다.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콕콕 찔렀다.

  “할매가 늦어서 참말로 미안하다. 이것 묵고 풀면 안 될까?”

  책상에 지저분하게 쌓인 할머니의 사연들이 눈에 보였다. 괜히 다가가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이런 것 좀 그만 쓰면 안 돼? 뽑히지도 않는 거 매일 쓰면 뭐해? 시간 아깝지도 않아? 이거 쓸 시간 있음 차라리 밖에 나가서 일을 하겠다!”

  그냥 속상해서 한 말이었는데 말하다보니 너무 지나쳤다. 허리가 아파서 거동도 힘든 할머니보고 나가서 일을 하라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심했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할머니의 눈치만 봤다.

  그런데 무섭게 화낼 줄 알았던 할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눈 밑에 커다란 그늘이 생겼다. 침묵을 지키던 할머니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할매가 예은이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

  할머니는 상 위에 어질러진 종이들을 쓸어 모았다. 그러고는 내다 버리려는지 재활용 박스에 하나씩 담았다. 어? 이러려던 건 아닌데. 나는 당황해 할머니의 상자를 빼앗았다.

  “그렇다고 누가 버리래? 할머니는 말을 꼭 받아들여도!”

  나는 툴툴대며 상자를 갖고 내 방으로 향했다.

  나도 한때는 부모님과 살던 때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아빠, 엄마 사랑도 받고 좋은 옷을 입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삼 년 전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의 모든 게 달라져 버렸다. 아빠는 지방에 일하러 가시고 할머니와 단둘이 이곳에 살게 되었다. 나는 먹고 싶은 것도 사 먹을 수 없었고 내가 갖고 싶은 것도 가질 수 없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이커 운동화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울지 않기로 엄마와 약속했는데, 나는 눈물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고 두 눈을 부릅떴다가 감았다. 생각을 떨치려고 상자 안에 있는 할머니의 사연 하나를 집어 들었다.

  라디오 세상 (10시) : 의류 상품권. 예은이 키가 부쩍 자라서 가지고 있던 옷이 다 작아짐. 얼른 당첨돼서 예은이가 좋아할 만한 메이커 옷으로 바꿔줘야겠음.

  ‘이게 뭐지?’

  무심코 집어 읽다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라디오에서 받고 싶은 선물인가?’

  나는 호기심에 계속 읽어 내렸다.

  방글방글 쇼 (12시) : 간식 2종 세트. 당첨되면 반 아이들 모두에게 간식을 준다고 함. 이거 보내주면 예은이 친구들도 좋아하겠지? 햄버거, 피자, 떡볶이 중에 선택할 수 있음.

  지금은 두시 (14시) : 5만 원 문화상품권. 예은이 읽고 싶은 책을 5권이나 살 수 있음. 매일 빌려 읽는 거 보면 안쓰러움. 이번에는 꼭 당첨되어야 함. 제발!

  라디오 천국 (18시) : 베이비 아토피 세트. 예은이 목덜미에 아토피처럼 붉게 올라오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님. 아토피로 번지기 전에 얼른 치료해줘야 함.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할머니는 내게 선물을 주고 싶어 그렇게 열심히 라디오 사연을 보낸 것이었다. 아마도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기록한 것 같았다. 그것도 모르고 할머니에게 투정만 부리다니.

  새벽의 라디오 (새벽 1시) : 발열 매트. 이불이 얇아서 예은이가 감기에 걸릴까 걱정됨. 새벽 시간대라 경쟁이 치열하지 않음. 다른 곳보다 더 신경 써서 재밌고 길게 쓰도록!

  며칠 전 깜깜한 새벽이었다. 볼륨을 잔뜩 줄인 채 라디오의 스피커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대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그때 나는 잠에서 깬 것이 화가 나 할머니에게 무작정 소리를 질렀다.

  ‘이런 바보같이 뭐하는거야!’

  안녕하십니까. 디제이 선생님들. 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주 사랑스러운 손녀딸이 하나 있습니다. 늙고 못난 할미라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 없는 것이 늘 미안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착하고 애교 많은 손녀딸 예은이가 있어서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디제이 선상님의 좋은 목소리로 꼭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선물을 보내준다면 다른 건 필요 없고, 손녀딸이 신을 수 있는 ‘운동화 교환권’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손녀딸이 좋아할 만한, 예쁜 모양의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신. 우리 예은이는 ‘엑스’라는 가수를 참 좋아합니다. 같이 듣게 꼭 틀어주십시오.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할머니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당장 달려가서 할머니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할머니를 사랑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할머니, 우리 라디오 듣자.”

  며칠 후, 나는 라디오 앞으로 할머니를 끌었다. 할머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그냥 왠지 오늘은 할머니랑 같이 듣고 싶어서…….”

  얼마 전 나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다. 할머니에게 느꼈던 내 마음을 그대로 담아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내려갔다. 단지 글만 쓰면 소개되지 않을 것 같아 할머니랑 찍은 사진도 붙이고 알록달록 종이접기도 함께 넣었다. 물론 선물은 할머니에게 꼭 필요한 ‘건강식품’으로 신청을 했다. 신청곡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내 나이가 어때서’였다. 그리고 오늘이 드디어 내가 보낸 사연을 방송하는 날이다.

  “네가 웬일이냐? 먼저 라디오를 듣자고 하고.”

  할머니는 의아한 듯이 내게 물었다.

  “그냥 오늘따라 할머니랑 라디오가 듣고 싶네.”

  나는 모른 척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신 나는 음악과 함께 디제이 아저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번 주 사랑이 가득한 편지는 완산구에서 보내주신…….”

  이번에는 과연 사연이 소개될까? 꼭 소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할머니와 나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귀를 쫑긋 세웠다. 이번엔 정말 느낌이 좋았다.



  <당선소감>


  "아이들 웃음처럼 맑은 세상되길"


  한낮이었고, 날씨는 흐렸고, 낮잠을 이기려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치열하고 살았고, 그래서 아팠고, 더불어 많이 단단해졌다. 글을 쓰는 내내 자문했다. 내가 과연 글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물었다. 누군가는 펜과 노트만 있다면 글을 쓸 수 있다고 했지만 양심의 가책은 늘 저를 괴롭혔다.

  올 한해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 일들은 송곳이 돼 제 모난 곳을 더욱 뾰족하게 파고들었다. 요지경 같은 세상 속에서 지친 날들이 하루하루 맥 빠지게 흘러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도 이렇게 간절히 소망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기는 당연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무장해제 된 아이들의 웃음처럼 쨍하고 맑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동화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은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로 끝났으면 좋겠다. 거기에 제 글이, 제 작은 역할이, 세상에 지친 누군가에게 꿀 같은 단비가 되어주면 정말 좋겠다. 


  ● 1980년 서울 출생.
  ● 제4회 한우리 문학상 수상.
  ● 상명대학교 문화기술대학원 소설창작학과 재학.
 

  <심사평>


  "글 쓰는 바탕 튼실, 훈훈한 여운 남겨"


  당선작으로 뽑은 동화 ‘할머니의 라디오 사연’은 구성이나 문장에서 빈틈이 거의 없어 글을 쓰는 바탕이 튼실함을 보여주었다.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토록 알뜰살뜰 깔끔하게 엮어 훈훈한 여운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 좋은 동화작가로 눈여겨 볼 만할 듯싶다.

  엄마를 잃고 아빠는 일자리를 찾아 지방에 가 있어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조손가정’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12살 어린이 예은이는 허구한 날 라디오를 들으며 ‘청취자 사연’에 줄곧 글을 보내는 할머니가 답답하여 자주 맞부딪친다. 결국, 할머니의 집착은 예은이를 향해 끊임없이 샘솟는 뜨거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과정의 전환도 무리가 없다.

  긴 여운을 남기는 끝마무리도 좋았다.

  예심을 거쳐 넘어온 작품은 모두 10편이었다. 좋은 작품을 골라내는 일은 결국 흠이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내려놓는 일이다. 진부함을 뛰어넘은 소재나 전개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도 있었으나 완성도에서 허점이 크다거나, 대상에 대한 좀 더 깊은 애정과 당위성에 대한 고민이나 천착의 노력이 아쉽다거나, 어린이 독자에게 읽히기 거북한 거친 말을 쓰고 있다거나…. 작품을 내려놓을 때마다 거기에 배어 있는 열정과 고뇌의 흔적이 안타까워 마음이 무거웠다.

  신춘문예 당선이 문단 등용의 관문이 되어 온 지 그 역사 오래이다. 용이 승천할 때의 그 힘찬 용트림 같은 신인의 패기가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그 강도가 약해지고 있다. 세상이 너무 풍요해져서일까? 


심사위원 : 한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