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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자울아배 하얘 / 고군일

 

  등장인물


  한길섶 교수 42세

  수사관1 한길섶보다 세 살쯤 위 고참 수사관

  수사관2 한길섶 나이쯤 중고참 수사관

  수사관3 한길섶보다 열 살쯤 아래 신참 수사관

  강상태 복학생·20대 후반

  처용 대학생

  처용 처 대학생

  역신 대학생

  의사 조사실 외부 의사

  노인과 학부 시절의 한길섶

  풍물 사물패

  스크럼 짠 다수 무리

  곳 조사실


  때 현재

  무대 조사실 내부와 몇 가지 상황을 보여주는 공간


  프롤로그


  무대 열리면, '흘러라, 이 땅의 힘이여'라고 쓴 깃발을 앞세운 풍물 사물패 뒤로 학생과 시민들이 서로의 팔을 바짝 끼고 횡대로 서서 좌우로 앞뒤로 움직이며 입을 크게 벌려 노래를 한다.(노래는 묵음으로 처리) 사물패는 학생과 시민들의 스크럼 앞에서 징을 울리고 꽹과리로 장단을 치고 북과 장구로 흥을 돋운다.

  이 일련의 풍경은 'POLICE LINE'이라고 쓴 폭이 넓은 천이 무대를 가로지르고 있어서 사물패도 스크럼도 몸통이 가려 얼굴과 아랫부분만 보인다.

  스크럼이 무대를 몇 바퀴 돌고 앞으로 나와 섰을 때 무리 뒤에서 가죽 줄 손목시계를 차고 손목에 검은 점이 있는 오른팔이 빠져나와 한 시위대원에게 쪽지를 전한다. 그 쪽지를 전하는 순간의 오른팔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플래시가 강하게 번쩍이고 렌즈가 열리고 닫히는 기계음이 관객의 가슴을 시큼하게 한다. 철크럭 척!


Ⅰ. 조사실


  책상과 책장 싱크대 냉장고 등등 생활용품은 웬만큼 갖춰진 반면, 시계·전화·TV·오디오·컴퓨터는 비치돼 있지 않은 방. 특히 창이 없고 구석마다 달린 폐쇄회로 카메라와 뒷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 그리고, 꽤 견고해 보이는 출입문이 특별한 곳이라는 인상을 갖게 한다.

  책상 위엔 생수 한 병과 수사관 측에서 작성한 설문지(A4 용지 한 장)와 볼펜이 한 자루 있다. 또한, 한길섶의 소지품인 장지갑이 펼쳐져 있고 쇠줄 손목시계와 휴대폰과 파카 볼펜 한 자루가 놓여 있다.

  수사관2가 바인더를 손에 든 채 한길섶을 책상 의자에 앉혀놓고 심문한다. 조명은 한길섶만 비춘다. 한길섶은 주로 왼손을 쓴다. 오른쪽 손목엔 시계를 찼던 흔적으로 흰 피부가 또렷하게 보인다. 한길섶이 조금 피로해 보인다.

  수사관2 : 쉽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한 시간이면 끝날 일을 한나절이 지났습니다.

  한길섶 : 여섯 시간을 넘길 수 없다는 것 압니다. 그만 보내주십시오.

  수사관2 : (손목시계를 본다. 초침이 미처 한 칸도 넘기 전에) 아직 한 시간쯤 남았습니다만 마흔여덟 시간짜리로 연장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춰놨습니다.

  한길섶 : 연장될 이유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사관2 : 저희도 그렇게까지 안 가길 바랍니다.

  한길섶 : 그러니 끝내주십시오.

  수사관2 : 한 교수님께서 끝내야 끝납니다. 그러잖으면 처음으로 계속 돌아갑니다.

  한길섶 : 처음으로 또 돌아가면 그 수사관 목을 비틀어 버리겠습니다.

  수사관2 : 그렇습니다. 한 교수님 지금 심정을 제가 충분히 이해하듯 한 교수님도 심정적 경향까진 부인하지 못하실 겁니다. (책상 위에 있는 설문지와 볼펜을 한길섶 앞으로 바짝 내밀며) 한 줄 한 문장이면 됩니다.

  한길섶 : (책상 끝선까지 멀찍이 밀어내며) 거부합니다. 그런 심증은 가타부타 이전에 무리한 유추입니다.

  수사관 :2 이러시면 시간만 늘어질 뿐입니다.

  한길섶 : 남의 신상에 걸린 문제를 정황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수사관2 : 한 사람보다 국가를 생각해보십시오.

  한길섶 : 국가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이 먼저 있는 것입니다.

  수사관2 : 그 한 사람이 불순하다면요?

  한길섶 : 그런 정황만 듣고 제삼자가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이죠.

  수사관2 : (한길섶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눈을 빤히 바라보며) 잠시 화제를 돌리겠습니다. (바인더를 펼쳐 향가 모죽지랑가를 낭송한다) 간 봄 그리매/ 모달 사로사 울이 시름/ 어두름 나로디샤온/ 즈시 해수나름 디기녀져/ 눈 돌칠 사이의/ 맛보옷 엇디 지소아리/ 낭여 그릴 마사매/ 녀올 길 다 마살해/ 잘 밤 이사리.

  한길섶 : …?

  수사관2 : 내일 강의하실 향가로 알고 있습니다. 표기도 해석도 분분하던데요. 공식대로 풀어 가면 하나의 답으로 떨어지는 수학에 비해 국문학도 학문인지 의아합니다.

  한길섶 : 주관적 논리를 인정하냐고요? 소쉬르의 랑그적 풀이라고 이해하십시오. 인간의 다양한 사고를 인정하는 방식이 국문학의 특징이기도 하니까요.

  수사관2 : 그 특징이 학문이 되려면 과학적으로 증명돼야 할 텐데, 분분한 학설이 증명됩니까? 과학적 증명이 안 되는 논리는 강단에 오르지 않습니다.

  수사관2 : (이해 안 된다는 표정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 한 교수님 향가 강의는 특별하다고 들었습니다. 삼국유사의 향가 열네 수를 다 외우라 하신다고요?

  한길섶 : 원형을 보존해야 하니까요.

  수사관2 : 원형요? 좀 전에 제가 한 낭송이 신라시대 발음입니까?

  한길섶 : 향가는 신라시대 이후 사라졌습니다. 당대의 발음도 알 수 없고요. 다만 어느 민족이나 읽고 말하기는 큰 변화가 없는 걸로 봐서 당대와 조금이라도 가까운 15세기 중세국어 발음으로 읽습니다.

  수사관2 : 신라시대 표기법을 조선시대 발음으로 읽는다는 말씀이군요.

  한길섶 : 고려시대의 기록 정신도 중요한 업적입니다. 그때 삼국유사에 기록해 두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우리가 신라 사람들 정서를 알 리가 없을 테니까요.

  수사관2 : 균여전의 향가가 있지 않습니까?

  한길섶 : 기록 문화재로서 향가적 가치는 있지만 불교 수행적 성격이라 삼국유사의 향가와는 그 의미가 좀 다릅니다. 내일은 향가를 처음 접하는 신입생들 강의라 결강하면 안 되는데요.

  수사관2 : 결강 안 하시기로 이름난 것 압니다. 그래서 저희도 결례를 끼칠까 싶어 좀 서둘렀습니다.

  한길섶 :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의 수사관께도 말씀드렸듯이 제 의사는 거부한 걸로 해주시고 지원은 사양하겠습니다. (책상 위에 있는 소지품을 챙겨 문쪽으로 가며) 안녕히 계십시오. (문을 열고 나가려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의아한 표정으로 조사실 안을 둘러본다)

  수사관2 : (손목시계를 봄과 동시에 책상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의 손짓을 하며) 모죽지랑가를 내일 첫 강의로 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한길섶 : 향가를 한 학기에 마치려면 시간상 일곱 수 정도로 고를 수밖에 없는데, 이유라면 삼국유사에서 가장 먼저 나오기 때문이죠.

  수사관2 : (한길섶의 소지품을 빼앗다시피 받아 책상에 내려놓으며) 일곱 수로 향가를 다 뗄 수 있나요?

  한길섶 : 창작 원리를 기본 배경으로 하고 각 작품의 해석과 특성을 위주로 합니다.

  수사관2 : 어떤 어떤 작품들입니까?

  한길섶 : 그런 것까지 답을 해야 합니까?

  수사관2 : 한 교수님을 위한 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길섶 : 믿지는 않지만…. 모죽지랑가를 첫 시간에 하고 헌화가 처용가 서동요 원가 우적가 혜성가로 끝냅니다. 국경일이나 개교기념일과 겹치지 않으면 찬기파랑가 한 수를 더 하기도 합니다.

  수사관2 : (한길섶의 파카 볼펜을 만지작거린다) 균여전의 향가는 한 수도 없고 제망매가나 원왕생가 같은 서정성도 배제하고 독특한 내용만 하십니다?

  한길섶 : (파카 볼펜을 자연스럽게 건네받아 장지갑 가운데 골에 꽂으며) 종교 성향이나 귀족 같은 특수층보다 일반 대중의 일상을 아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서정성은 향가마다 깃들어 있어서 어떤 걸 해도 충분한 학습이 됩니다.

  수사관2 : (싱크대로 가서 손을 씻으며―이후에도 수사관들은 한 번씩 손을 씻는다) 그럴까요? 말씀하신 작품들은 좌천된 득오의 불만, 롤리타 콤플렉스로 보이는 노인,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는 처용,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서동, 왕을 원망하는 신충, 산도적이 되는 영재 등등 다 문제 있는 인물들 아닙니까?

  한길섶 :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문젯거리로 당대의 의식을 드러내는 인물들입니다.

  수사관2 : (냉장고에서 물을 따라 마시며―이후에도 수사관들은 한번씩 물을 마신다) 한 교수님의 이데올로기가 그런 인물들을 선호한 것 아닙니까?

  한길섶 : 그들의 사회에 대한 시각도 중요하게 본다는 것입니다.

  수사관2 : 왜적이 침입해서 난리가 나고 화랑이 출동해서 진압했다는 혜성가는, 왕조를 뒤집으려는 무력 집단의 반역이나 거기에 동조한 민초들이 들고일어선 난리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던데요.

  한길섶 : (생수병의 물을 마시려다 말며―이후에도 가끔 물을 마신다) 오독입니다. 왜적의 침입이 맞습니다. 화랑의 공적을 상징적으로 노래한 향가입니다.

  수사관2 : 현재 우리나라 실정으로 해석하자면, 북한군의 대규모 공격이나 국지전을 두고 사관생도들의 찬반으로 나뉜 소요와 학생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로도 볼 수 있겠다 이 말입니다.

  한길섶 : 무슨 의미로 그런 해석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위험한 발상입니다.

  수사관2 : 그런 발상을 연상케 하시니 문제 아닙니까?

  한길섶 : 원문에 왜적이 왔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왜리질군치 래질다.”

  수사관2 : 혜성가는 원문 자체로만으론 해석이 가장 안 되는 향가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학자는 무려 열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고, 그래서 또 한 학자는 배경 설화에 맞춰 뜻을 얼기설기 엮는다고 한 것을 봤습니다. 그런 맹점을 이용해서 한 교수님 작의대로 강의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한길섶 : 수사관께서도 제한된 사고로 유영하시는군요.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수사관2 : 말씀 안 하시면 작의대로 강의하신다고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한길섶 : 과학적으로 검증됐고 학회에서 용인된 내용으로 강의합니다.

  수사관2 : 확인해보면 알게 되겠죠. (손목시계를 보고 문 쪽으로 가며) 논제는 다음 수사관과 나누십시오.

  한길섶 : (급히 일어서며 표정이 일그러진다)


  Ⅱ. 첫 대면, 그 세 번째


  수사관2와 3이 서로 가벼운 목례로 나가고 들어온다. 수사관3은 한길섶이 수사관1·2와 첫 대면하던 때와 똑같은 행동과 말을 한다. 한길섶은 수사관3의 그런 행동에 어이없고 화가 난다. 세 번째 똑같이 시작하는 심문이기 때문이다.

  수사관3 : (입에 붙은 기계적인 말로) 안녕하십니까? 한길섶 교수님. 임의동행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시는 데 불편한 점이나 저희 직원의 불찰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길섶 : (일그러진 표정 그대로 걸레를 짜듯이 주먹 쥔 양손을 세로로 세워 힘 있게 비틀며) 인사드리겠습니다. 전 수사관입니다?

  수사관3 : 인사드리겠습니다. 전 수사관입니다.

  한길섶 : 압니다. 그만하세요.

  수사관3 : 정부에 소속한 부서로서 국민들의 애로 사항을 지원해드리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한길섶 : 안다니까요.

  수사관3 : 소지품 일체를…(책상 위에 있는 소지품들을 품목 점검하듯이 살피며) 최근에 착수한 한 교수님의 삼국유사와 관련한 스토리텔링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저희가 지원해드릴 방안을 구상 중입니다.

  한길섶 : 이런 반복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지원 사양합니다.

  수사관3 : 그 전에 한 교수님 의견을 듣고 싶은 안건이 하나 있어 모셨습니다. (책상 위에 있는 설문지와 볼펜을 들었다가 한길섶 앞으로 내밀며) 작성된 문안을 확인해보시고 협조 부탁드립니다.

  한길섶 : (수사관3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내뿜는 한숨에 실어) 지겹지 않아요? 세 번째요.

  수사관3 : 전 처음입니다.

  한길섶 : 협조할 수 없습니다.

  수사관3 : 심정적으론 어떻다고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찬성이나 반대 또는 기타 의사를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길섶 :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수사관3 : 여기 온 사람들은 다 했습니다. 똑같은 문안이었습니다.

  한길섶 : 그랬으면 됐지 왜 내 의사까지 확인하겠다는 거요?

  수사관3 : 각계각층으로 보편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입니다.

  한길섶 : 다시 말씀드립니다. 반복하지 마시고 볼일 더 없으면 그만 끝내주세요.

  수사관3 : (눈을 껌벅이며 망설인다. 자신의 임무가 뇌리를 한 바퀴 돌아 나올 만큼)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단계로 들어가겠습니다.

  한길섶 : (책상을 치고 일어선다. 크게 소리 지르려다가 목 언저리를 감싸며 낮게) 다음은 또 뭡니까? 내가 왜 강요당해야 합니까? 고발하겠습니다.

  수사관3 : (바인더에서 A4 용지만한 사진 한 장을 꺼내 한길섶 앞으로 내밀며) 여기 이 사진에 그의 행적이 있습니다.

  수사관3 : 이 꺼낸 사진은 뒷벽 모니터에 확대된다. 가죽 줄 손목시계를 차고 손등에 검은 점이 있는 오른팔이다. 

  수사관3 :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무리들 뒤에서 삐져나온 이 오른팔을 봐 주십시오. 한 교수님과 같이 오른쪽 손목에 시계를 찼습니다. 손등의 점과 가죽 줄 찬 것만 같지 않습니다.

  한길섶 :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 팔과 내 팔이 어떻다는 거죠? 우연을 필연으로 몰아가는 겁니까?

  수사관3 : 팔이 꼭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만 우연도 필연도 아닐 땐 그 둘 사이의 관계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저희의 지극한 관심과 무한한 지원이 지원대상자의 심정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를 알아내려는 지원대상자의 행위가…(고개를 한 번 갸우뚱, 눈을 껌벅껌벅하고는) 우리의 사업을 더욱 강하게 합니다.

  한길섶 : 뭡니까? 날 그 둘 사이의 인물로 보는 것이 수사관의 존재 이유입니까?

  수사관3 : 제 표현이 좀 엉키지 않았나 했습니다만 해석력이 아주 뛰어나십니다. 존재 이유라는 표현보다는 존재의 당위성이라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길섶 : 이유든 당위든 얽히고 싶지 않습니다. (책상에 있는 손목시계를 보고 곧 바로) 임의동행 시간이 끝났군요. 나가도 되겠죠? (소지품을 챙긴다)

  수사관3 : 잠깐만 계십시오. (바인더에서 또 한 장의 사진을 급히 꺼내 한길섶 앞에 내려놓는다. 모니터에 앞의 사진이 사라지고 새 사진이 현상된다. 모꼬지에서 모두가 어깨동무하고 활짝 웃으며 찍은 단체사진이다) 이 사진 속 인물들이 한 교수님을 마흔 여덟 시간 더 있게 했습니다.

  한길섶 :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건 모꼬지 가서 찍은 사진인데, 이 학생들이 어떻다는 거죠?

  수사관3 : 한 교수님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한 쪽 여학생이 한 교수님을 성추행으로 고소했습니다.

  한길섶 : 어깨동무… 성추행?

  수사관3 : 행위자의 주관적인 목적과 관계없이 피해자가 성적 불쾌 수치 혐오의 감정을 느끼는 일체의 행위가 성추행입니다.

  한길섶 : 내가 무슨… 왜?

  수사관3 : 한 교수님의 손끝을 잘 보십시오. (사진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요기요기… 여학생의 가슴께에 있습니다. 여학생의 말로는 옷 위라고는 하지만 한 교수님의 가운데 손가락 끝이 자신의 유두에 닿을락말락해서 몹시 불쾌하고 수치스러웠다고 진술했습니다. 

  한길섶 : 닿을락말락했다면 닿지 않았다는 얘긴데, 그런데도 불쾌 수치 운운했다는 건 일방적인 생각 아니요?

  수사관3 : 여학생이 성적 혐오감을 느꼈다면 한 교수님의 주관과 상관없이 성추행으로 간주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길섶 : 허! 이렇게 웃고 있는 얼굴이 성적 혐오감을 느낀 표정이라고?

  수사관3 : 여자의 생각과 마음은 다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통을 든 유디트의 모멸감인 듯 황홀함인 듯 그 몽환적이어서 더욱 뇌살적인 표정도 알 수 없어요, 입니다.

  한길섶 : 내 인격을 훼손하고 신체의 자유를 제어한 것에 대해 묵과하지 않을 거요.

  수사관3 : 저희도 묵과하지 않을 정보는 아주 많습니다. 마흔 여덟 시간을 넘어가게 되면 그때 알려드리겠습니다.

  한길섶 : 이런 추잡한 사진을 들이대겠다면 사양하겠소.

  수사관3 : 수사 차원입니다. 거기까지 가지 않으시길 다들 바라고 계십니다. (책상 위에 있는 설문지와 볼펜을 한길섶 앞으로 내밀며) 한 음절 한 글자로도 됩니다. ‘네’라고.

  한길섶,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수사관3을 바라본다.


  Ⅲ. 타인의 구원


  무대 : 한편이 밝아지면, 대학 연극 동아리방에서 강상태와 후배들이 ‘처용’을 연습하고 있다. 남녀 한 쌍이 천을 덮고 누워서 가냘프고 뽀얀 종아리와 굵고 시커먼 종아리만으로 정사를 벌이는 장면이다.

  처용 : (여자가 오르가슴에 들뜬 감창소리를 내지를 때 탈을 쓰고 뛰어들어온다. 다리가 넷인 것을 본다.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치며 안절부절못한다) 오! 오! 오오오오….

  강상태 : 캇. 처용. 인물 분석 안 했어? 왜 뛰어들어와 인마. 안절부절못하는 건 또 뭐야? 처용이 그런 캐릭터야?

  처용 : (탈을 벗으며) 리딩할 땐 안 그랬는데 막상 제 아내가 누구한테 저 소릴 지르나 싶으니까 그냥 뛰어나가야 할 것 같아서요. 가슴은 먹먹하고 주먹은 부들부들….

  역신도 처용 처도 탈을 벗고 모두 웃는다.

  강상태 : 처용, 극 중 인물의 감정에 충실히 하는 게 먼저다. 이번엔 웃고 넘어가지만 또 그러면 내 주먹이 뛰어나갈 줄 알어. 다리가 넷인 걸 확인했으면 무심하게 “셔블 발기다래 밤드리 노니다가…” 대사 치면서 춤을 추란 말야. 알었어?

  처용 : 네. 선배님.

  처용 : 처 선배님, 오르가슴 장면을 꼭 해야 돼요?

  강상태 : 몇 번을 말해야 알겠냐. 첫 장면에서 관객의 눈과 귀를 화악 끌어당겨놔야 연극이 산다고. 셰익스피어 봐라. 첫 장면에서 마녀 요정 광풍 유령 횃불 우르릉쾅쾅 뇌성 번개로 관객을 화악 휘어잡는 거. 넌 그걸 오르가슴… 상태의 감창소리로 해내는 거란 말야. 니들 종아리만으로 관객을 잡을 수 있어?

  처용 : 처 그 감창소리… 해봤어야 알죠.

  강상태 : 그래? 난 또….

  처용 : 처 난 또…? 뭐예요 선배니~임!

  강상태 : 야! 완전 리얼 그 자체던데. 처용 처가 저랬을 거라는 상황이 아주 딱 들어오더라. 간드러진 음색 장단 고저 거기다 끼까지 좋았어. 다음 정기 공연 메인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왜? 배역 바꿔줄까?

  처용 : 처 아~뇨.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상태 : 역신, 리드 좀 잘 해라. 자연스럽게 오르가슴으로 올라가게 말야. 안 해봤다잖아.

  역신 : 안 해보긴 저도 마찬가진데요.

  강상태 : 꼭 해봐야 연기하냐? 열정과 혼으로 하라구.

  역신 : 네. 선배님.

  강상태 : 다들 잘 들어. 연극을 잘하려면 말야, 살면서 적당히 실패도 해보고 죽지 않을 만큼 실망도 해봐야 하는 거야. 그래야 없는 사람들 곤란한 사람들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단 말야. 자신이 아파보지 않고 어떻게 남의 아픔을 알겠냐. 그렇게 저렇게 겪은 일들이 자기 나름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서 극 중 인물에 쉽게 다가가게 한단 말야.

  역신 : 꼭 해봐야 연기하냐면서요?

  강상태 : 반항하는 거냐?

  역신 : 아뇨, 선배님 말씀을 전적으로.

  강상태 : 알어알어 인마. 내 얘긴 실패도 실망도 연극적 재산이란 말이고 그게 다 세상 살아가는 공부다 이 말이야.

  일동 알겠습니다. 선배님.

  강상태 : 처용은 세상 경험으로 이 상황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어. “드러사 자리     보곤 가라리 네히어라 둘은 내히엇고 둘흔 뉘해언고 본데 내해다마란 아사날 엇디하릿고” 다리 두 개는 내 껀데 뺏어 간 걸 어쩌겠냐는 거 아냐.    캬! 이 패러독스!

  처용 : 역신을 주먹이나 칼로 대하지 않고 춤과 노래로 승화한 역신 퇴치의 신이라는 거죠?

  강상태 : 좀 아네!

  처용 : 그래서 처용의 탈을 걸어두면 귀신이 못 들어갔다는 거죠?

  강상태 : 연구 많이 했네. 이제 감정만 잡으면 되는데 말야. 

  역신 : 선배님, 처용은 위선자거나 겁쟁이였을 것 같아요. 정당방위인 상황을 방관하면서 체념과 패배를 인정한 현실 회피가 아닐까요? (처용 처에게) 너 같으면 처용 같은 남자와 살겠냐?

  처용 : 처 간섭 안 하는 건 편하겠는데 달 보러 밖으로만 나돌면 난 뭐야?

  강상태 : 야야, 처용은 신라 때 사람이야. 아무리 못 돼도 천 년 전 사람이란 말야. 처용을 언급하려면 처용이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 인식과 개인 사정을 감안하고 봐야해. 왜 아내의 간통을 목격하고도 묵과했는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이방인의 고충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역설적으로 도치시켜  분노를 노래로 치욕을 춤으로 승화했는지 말야.

  처용 : 처 외로웠을까요? 그래서 달 보러 다닌 건가요? 와이프랑 같이 가지….

  처용 : 그대 옆에 있어도 난 그대가 그립다란 말이 있잖아.

  처용 처 : 뭔 말이야? 옆에 있는데 왜 그리워? 

  역신 : 도움이 안 된다는 거지 뭐.

  처용 처 : 얘들 왜 이래?

  강상태 : (한길섶의 책 어느 쪽을 펼쳐서) 한교수님 책에 이런 글이 있어. “처용이 살았던 당시는 성적으로 매우 문란했다. 유부녀가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는 장면에서 그 사회상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역신은 처용의 행동에 감 화되어 처용을 그린 그림이 걸린 집엔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한 사내의 희생으로 그 뒤 사람들이 입은 덕은 크다.”

  ‘처용’을 연습하던 무대 한편이 급히 어두워지면서 강상태만 탑 조명 안에서 정지된 동작으로 있다. 조사실이 밝아지면 많이 지쳐 보이는 한길섶이 책상 의자에 앉아 있다. 앞 장면과 다른 점은 한길섶이 마흔여덟 시간짜리 피의자 신분이 되면서 허리띠를 풀어 둘둘 말아 책상에 올려놨고 구두도 허리띠 옆에 가지런히 벗어논 점이다. 수사관1은 강상태가 읽은 한길섶의 책 어느 쪽을 펼쳐 든 채로 강상태의 입을 향해 팔을 쭉 뻗는다. 강상태에게 떨어진 탑 조명은 수사관1과 한길섶의 대화가 시작되면 조금 뒤에 사라진다.

  수사관1 : “한 사내의 희생으로 그 뒤 사람들이 입은 덕은 크다.” 한 교수님이 처용가에서 강조하려는 것이 한 사내의 희생이란 말로 결론을 내렸는데,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던 자신의 볼펜으로 책에 밑줄을 그으며)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한길섶 : 그 문구만이 처용가에서 강조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수사관1 :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에게 한 사내의 희생을 주입해서 대외적인 일에 선동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 아닙니까? (동작이 정지된 강상태의 초점 없는 눈동자를 가리키며) 이 눈동자를 보세요. 완전히 세뇌돼 있어요.

  한길섶 : 의도적인 편견입니다. 한 사내의 희생이란 말은 상징적 의미로 사회적 해석을 요구합니다.

  수사관1 : 상징이요? 그 상징에 내포된 의미를 해명해 보시죠.

  한길섶 : 여기서 해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사관1 : 전 들어야할 권리가 있어요. 한 교수님은 의무라기보다는 혐의를 벗는 자기 변명도 될 테고.

  한길섶 : 변명은 더더군다나 할 생각 없습니다.

  수사관1 : 그 상징을 풀어야 편견이 내쪽의 의도인지 그쪽의 지론인지 알 것 아뇨? 

  한길섶 : 어느 쪽이든 옳은 해석이 아닙니다.

  수사관1 : 좋습니다. 그럼 설명이라고 합시다. 설명은 하시겠죠?

  한길섶 : (마지못해, 생수병의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처용은 현명한 바보형으로서 신격화 된 우리 민족의 한 유형입니다. 처용이 등장한 신라 헌강왕대는 사치가 극에 달하고 성적으로도 매우 문란한 사회였습니다. 처용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역신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었지만 인과 덕과 관용으로 극복합니다. 그 방법은 인도 간디가 비폭력 무저항으로 자기 국민들의 적대감을 정화해 나간 것과 같습니다. 처용은 1000년 전에 이미 창조적 평화를 창출해서 사회를 정화하는 데 일익을 한 인물입니다. “한 사내의 희생으로 그 뒤 사람들이 입은 덕은 크다”는. 

  수사관1 : 그 정화 효과로 인한 사회 안정을 의미한다는 말씀인가요?

  한길섶 : 아셨으니 더 설명 안 하겠습니다.  

  수사관1 : 처용이 역신이나 역병을 물리치는데 조선시대까지 심리적 위안으로 자리매김 한 건 이해하겠더군요. 그런데 한 교수님의 이 책을 보면 처용을 신격화해서 토착 종교의 반열에 올려 논 신이면서 영웅이라고 했어요. 강상태가 말한 “세상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든지, “춤과 노래로 승화한 역신 퇴치의 신”이라는 것도 이 책에 서술돼 있습니다. 처용에게 영웅이나 종교성을 부여한 내용에 대해서도 설명해 보시죠.

  한길섶 : 역사는 확실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가 태양     에 바래지면 정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   시 말하면 후대에 전해진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써 그들의 행적이 이해가능하도록 짜여 있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신화는 그럴 듯 하다란 느낌만으로 정사 뒤에 감춰진 사실을 발견해서 실제보다 진실에 더 가까운 내용의 발명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처용의 얼굴이 그려진 그    림만 걸려있어도 들어가지 않겠다는 역신의 말이 민중들 사이에 구전되면서, 실생활에 활용되는 처용의 위력이 신앙처럼 토착화되고 마치 살아있는 영웅처럼 취급된 것입니다. 

  수사관1 : 좋습니다. 희생이나 종교적 의미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책에 메모를 하다가 볼펜 잉크가 안 나오자 볼펜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한길섶의 파카 볼펜을 집는다. 한길섶이 수사관1의 손목을 잡고 볼펜을 뺏어 책상에 놓자 별 수 없이 자신들이 준비해 놨던 볼펜을 집어 메모를 한다) 우린 이미 구면인데, 개인적인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한길섶 :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수사관1 : 원문엔 처용이 동해 용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건 설화를 꾸민 과정의 필요조건이라 치고, 아랍에서 왔다고 하는 편이 설득력 있어 보이더군요. 그래서 드는 의문이, 외도한 아내의 남편이 처용이 아닌 신라인이라면 이 처용가의 의미는 어떻게 될까요? 

  한길섶 : 그랬다면 은유도 상징도 없는 평범한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는 예나 지금     이나 공동체 사회에서 보이지 않은 관계망을 이루고 있습니다. 나와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도 몇 다리 걸치면 학연이든 지연이든 사돈의 팔촌으로라도 관계 지어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용을 외지 사람으로 외간남자를 역신으로 설정해서 당대의 위신과 정조를 옹호하려는 사회적 배려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처용은 난세의 영웅처럼 당시의 성 도덕을 깨우치고 사회를 정화하는 그 시대가 만들어 낸 영웅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수사관1 : 영웅? 좋습니다. 한 교수님은 처용을 시대적 영웅이라 했고, 관계망 속에서 하나의 희생자를 내세워 이 시대의 영웅을 만들어 내겠다는 속내를 보였습니다.

  한길섶 : 잠깐,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속내라뇨?

  수사관1 : 한 교수님이 보기에 이 시대 영웅은 누구일 것 같습니까?

  한길섶 : 내가 한 말이나 책의 내용은 처용가에 대한 학자적 견해일 뿐입니다. 

  수사관1 : 이번 사건을 준비하면서 사르트르의 ‘타인의 구원’이란 말을 알았습니다. 원뜻과 상통하는 의미로 한 교수님께 묻겠습니다. 헌강왕대의 문란한 성 사회에 영웅처럼 등장한 사람이 처용이라면, 당신들이 원하는 시대로 구원해줄 사람은 누굽니까? (수사관3이 보여줬던 문제의 그 오른팔이 크로즈업 된 사진을 한길섶에게 내보인다. 모니터에도 그 사진이 현상된다) 이 오른팔의 주인공이 영웅을 만들어 낼까요? 

  한길섶 : 그것과 날 연관 지으려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유도심문 하듯 속내를 떠보     는 질문에 대답을 거부하겠습니다.

  수사관1 : (손목시계를 본다. 초침이 서너 칸 넘어가도록 잔여시간을 계산하며) 마흔다섯 시간을 묵비권 행사하겠습니까? 좋습니다. 저흰 계획대로 진행하니까. 아까 삽화에서 봤던 강상태를 아시죠?

  한길섶 : ….

  수사관1 : 한 교수님 학교 학생으로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고, 군대 갔다 와서 이번 학기에 복학했고, 후배들과 ‘처용’ 공연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한길섶 : ….

  수사관1 : 이건 사실관계요. 대답 듣자는 건 아니지만 뻔한 걸.

  한길섶 : 그 학생하고 나를 엮으려면 내가 답변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대시오.

  수사관1 : 한길섶 교수와 강상태…. 

  한길섶 : 지금 가고 있는 마흔 여덟 시간은 성 추행 건으로 책정됐다면서 압수 수색 영장도 없이 엉뚱한 답을 강요하고 있는 당신들, 사법권까지 넘나듭니까? 이런 상태의 발언은 법적 증거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수사관1 : 저흰 법적 증거물까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법권보다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희생보다도 광범위하고 심층적이면서 은밀한 작업이니까. 저희가 알고 싶은 것은 태양에 쏘아 올릴 건이냐, 달에 묻을 건이냐만 알면 됩니다.

  한길섶 : 태양에 쏘아 올릴 건이냐, 달에 묻을 건이냐?

  수사관1 : 한 교수님 상징 좋아하시잖아요. 상징적 의미로 사회적 해석을 요구한다라고만 하겠습니다.

  한길섶 : ….

  수사관1 : 한 교수님과 강상태, 두 사람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만난 적은 없더군요. 딱 한 번, 여름방학 동아리 특강으로 고전 강독회에서 만난 것말고는 전혀 교류가 없어요. 전혀! 전혀!

  한길섶 : ….

  수사관1 : 고전 강독회 학생들이 우리 고전에 대해 그렇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줄 이번에 알았습니다. 자체 학습도 열심이지만 외부 교수도 초빙해서 특강을 열고, 고적 답사도 봄가을로 두 차례나 하고 말이죠. 그때 무슨 강의였는지 기억하세요?

  한길섶 : ….

  수사관1 : 입에 군내가 나실 만도 한데…. 기억을 돕기 위해 제가 대답까지 해야겠군요. “향가를 했습니다.” 지금처럼 예닐곱 수를 했나요?

  한길섶 : ….

  수사관1 : “삼국유사에 실린 열네 수 다 했습니다.” 그때 강상태를 알게 되셨나요?

  한길섶 : ….

  수사관1 : 부인하시는 겁니까? 아, 묵비권?

  한길섶 : 강상태란 학생은 지금도 모릅니다.

  수사관1 : 수강생이 서른 명도 안 됐는데 모르십니까?

  한길섶 : 향가 강의를 준비하고 첫 강의를 고전 강독회에서 했기 때문에 웬만한 건 기억합니다. 얼굴 보니까 알겠는데 이름이 강상태인 줄 지금 알았습니다.

  수사관1 : 지금 알았다? 왜죠?

  한길 :섶 출석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동아리는 성적 관리 대상이 아니니까요.

  수사관1 : 고전 강독회 구호는 기억하세요?

  한길섶 : 모라매 울얼에 자울아배 하얘.

  수사관1 : 모름지기 우러르도록 친근하게 지내라!

  수사관1이 허공에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내자 사람의 목소리라고 여겨지지 않는 녹음된 소리가 난다. “자울아배 하얘.” 가늘고 낮지만 동물의 울부짖음 같다. 한길섶이 순간 놀란 표정으로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본다. 한길섶은 자신도 모르게 손이 목을 감싸고 있는 걸 알고 주위를 살피며 살며시 손을 푼다.

  수사관1이 손에 든 볼펜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한길섶의 행동을 유심히 쳐다본다. 녹음된 소리를 모창하듯 비슷하게 “자울아배 하얘”라고 뱉은 뒤 목이 걸걸해져 기침을 하며 출입문을 열고 나간다. 밖에 수사관2가 바인더를 손에 쥐고 서 있다가 수사관1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며 들어온다.


  Ⅳ. 파스칼의 내기


  수사관2 : 사람의 성대에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조금 전의 그 소리… 어디서 들어보셨습니까?

  한길섶 : ….

  수사관2 : 혹시, 저 소리를 낼 수 있는 특수한 성대라도 지니신 건 아닙니까?

  한길섶 : (조금 놀라지만 뭐라고 말은 하지 않는다)

  수사관2 : 놀라시는 걸 보니 의외의 발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묵비권의 연장입니까? 긍정의 침묵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한길섶 : 초법적인 당신들에 대한 저항입니다.

  수사관2 : 그렇습니까? 저는 또 백기 드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분위기도 바꿀 겸 내기 하나 할까 합니다. 참여하든 안 하든 제 주관으로 진행합니다. 지루한 심문에 조미료 친다 생각하십시오. “신을 믿는 것이 신을 믿지 않는 것보다 이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1600년대 프랑스 수학자 파스칼이 한 말입니다. 일종의 확률 이론으로서….

  한길섶 : 검증 가능성이 형이상학적으로 닫혀 있어 도박사의 논증으로도 불리는 이론인 거 압니다. 결과가 어느 쪽이든 제안하는 사람에게 불리할 것 없는 내기죠.

  수사관2 : 그렇습니다. 잘 아시는 것 같으니 한 가지만 짚고 시작하겠습니다. 이 이론에 반론이 많은 것도 아시죠? 그래서 우린 원이론에 입각한 내기를 하겠습니다. (바인더를 펼치며) 먼저.

  한길섶 : 잠깐, 안 합니다. 내기.

  수사관2 : (손목시계를 본다. 초침이 미처 한 칸도 넘기 전에) 한 교수님은 마흔세 시간 동안은 선택권이 없습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제 주관으로 한다. 지루한 심문의 조미료다. 그렇게.

  한길섶 : 마흔세 시간? 그 시간을 번 성추행 건으로 해. 내 발로 들어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여섯 시간은 다 지났어.

  수사관2 : 진정하십시오. 연장하면 그 시간이 그 시간입니다.

  한길섶 : 공무원이 언제부터 연장 근무 했지? 마흔여덟 시간짜리로 넘어가란 말야.

  수사관2 : 중요도에 따라 연장 근무 하는 건 공무원도 마찬가집니다. 특히 우리는.

  한길섶 : 그래, 중요도에 따라 성추행 건으로 넘어가자. 요즘 신문·방송에서 성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는데. 성추행 감시하려고 깔아 놓은 CCTV가 좀 많아. 우리나라 제일 높은 데도 CCTV는 있겠지?

  수사관2 : 빌딩이라면 63, 타워로는 남산의 서울타워, 천문대도 높다면 높은 덴데.

  한길섶 : 그런 데 말고 당신들의 태양.

  수사관2 : (짐짓 놀라며) 한 교수님!

  한길섶 : (소변 뒤 부르르 떨며 잔뇨 터는 시늉을 하며) 정작 자신도 찍히는데. 흣.

  수사관2 : 여긴 농담하는 곳이 아닙니다.

  한길섶 : 합시다.

  수사관2 : (버럭, 큰 소리로) 하지 마세요.

  한길섶 : 안 할 거요? 내기.

  수사관2 : 네?

  한길섶 : 파스칼 형식에 뭣으로 뭣을 걸 거요?

  수사관2 : “자울아배 하얘”를 한 교수님이 들었거나 누가 했는지 안다로 수사관 자리를 걸겠습니다. 한 교수님께선?

  한길섶 : 우리 사회에 통용하는 양심으로 여기서 나가는 것을 걸겠소.

  수사관2 : 그 양심은 관념입니다. 내기 조건에 맞지 않습니다.

  한길섶 : 내기는 수사관께서 제안했으니 나도 뭔가 제안하는 게 공평하지 않소?

  수사관2 : 여기서 나가게 하는 것 역시 우리가 주체라서 조건으론 성립하지 않습니다. 한 교수님 스스로 행할 수 있는 걸 내놓으십시오.

  한길섶 : 잊었어요? 파스칼의 내기가 그런 것 아닙니까. 내가 이대로 버티면 더는 붙잡아 둘 이유가 없어지는데, 내기해서 한 건 잡으면 좋고 못 이겨도 어차피 나갈 사람 내보내는 것이니 수사관께선 손해 볼 것 없다는 것.

  수사관2 : 이길 자신이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한길섶 : 여기서 나갈 지름길을 찾는 거요.

  수사관2 : 그럼 주고받은 조건에 합의한 것으로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수사관2가 바인더를 펼쳐 한길섶의 프로파일을 읽어 내려갈 때, 무대 한편에선 한길섶의 기억 속 과거 일이 재연된다. 재연되는 장면은 대사 없이 마임이나 정지 동작으로 펼쳐진다.

  수사관2 : (바인더를 펼쳐 자료를 보며) 성명 한길섶. 서울 누상동 출생. 42세. 이비인후과 전문의 집안의 형제 중 차남. 민주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자유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석·박사 졸업. 육군 정훈장교 만기 전역.

  무대 한편은 한길섶의 학부 시절이다. 한길섶이 벤치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뒤로 한 무리 학생들이 서로 팔을 바짝 낀 스크럼 형태로 지나간다. 학생들은 ‘POLICE LINE’이라고 쓴 폭이 넓은 천에 몸통이 가려 얼굴과 아랫부분만 보인다.

  수사관2 : 온순 청렴하고 친구들 간에 일연으로 불리며 신뢰가 깊음. 형 한길표가 학생 시위대에 나섰다가 최루탄 파편에 맞아 사망함. 그 영향으로 대학 생활 내내 공부에만 전념. 시위 전력 없음.

  무대 한편, 한길섶이 벤치에서 일어나 조금 전에 스크럼을 짜고 지나갔던 학생들이 ‘POLICE LINE’이라고 쓴 폭이 넓은 띠 뒤에서 뿔뿔이 흩어져 황급히 돌아가는 것을 본다. 곧이어 최루탄이 터지고 최루가스에 재채기를 하던 한길섶이 흠칫 놀라며 목에 손을 갖다 댄다. 금세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흐른다.

  수사관2 : 서른셋에 일연의 세계 인식과 시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 취득. 일본 게이오대와 도쿄대 문학부 연구원으로 도일. 한국과 일본의 고시가 비교 연구. 삼국유사와 관련, 다섯 권 출간. 현재 대한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최근에도 삼국유사를 집필하면서 일본 나고야에 있는 호사문고를 방문하다. (한길섶에게) 일본에 우리 문화재가 많이 유출돼 있는 걸 압니다만 삼국유사에 관해 집필하는데도 일본에 가실 필요가 있습니까?

  한길섶 : (목 언저리에 대고 있던 손을 뗀다. 상처 자국이 있지만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몰라볼 정도다) 거기까진 정보망이 못 미쳤나요? 우리 지금 내기하고 있는 것 맞죠? 책이 나오면 보십시오.

  수사관2 : 삼국유사라면 우리나라 어느 대학 도서관에나 있을 텐데 일본에 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길섶 : 책이 나오면 보시라니까요.

  수사관2 : 일본 게이오대와 도쿄대에 두 번에 걸쳐 총 5년 계셨는데, 두 대학의 문학부 연구원 원장인 스즈키 노코헤에와 요시오카 덴시치로는 절친한 관계로 대학 시절 좌파 운동원이었습니다. 한 교수님의 삼국유사 해설이 그분들의 좌파적 영향인가요?

  한길섶 : 40년도 지난 그분들의 경력을 내가 알 턱이 없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것이 지금 우리 내기와 무슨 관련이 있죠?

  수사관2 : 우리나라에도 자료가 있을 텐데 굳이 일본까지 가신 이유가 뭐냔 말입니다. 이번에 가셨을 때도 두 분을 만나셨습니까?

  한길섶 : 직접 알아보시면 되잖아요.

  수사관2 : 외교 문제가 따르는 사안이라 일단 한 교수님께서 얼마나 충실하게 답변하시는가에 따라 조사의 깊이를 결정합니다.

  한길섶 : 삼국유사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집필하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쓰 가문에 보관된 삼국유사를 보러 갔습니다.

  수사관2 : 왜 일본에 있는 삼국유사입니까? 단순히 보기만 했습니까?

  한길섶 : 직접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내외에 남아있는 삼국유사 원본 4종 중에서 탄생에서부터 현재까지 전승 과정을 알 수 있는 유일본이기 때문입니다.

  수사관2 : 일연 선사께서 쓴 바로 그 책이란 말입니까?

  한길섶 : 일연 당시에 간행된 책은 멸실됐다고 봅니다. 그 책으로부터 227년이 지난 1512년 경주 부윤 이계복이 간행한 책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원본이죠. 무엇을 기대하셨는지 몰라도 답변이 됐습니까?

  수사관2 : 막내 외삼촌께선 잘 지내십니까?

  한길섶 : 글쎄요, 좀 아세요?

  수사관2 : 청문회 스타로 날리셨잖습니까.

  한길섶 : 한참 지난 일이죠.

  수사관2 : 왕래를 별로 안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길섶 : 사무실 개원할 때 가보곤 못 갔습니다.

  수사관2 : 남북 간에 신뢰를 회복한다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겁니다.

  한길섶 : 동족끼리 잘 지내자는 일에 생각이 많은 분입니다.

  수사관2 : 여의도를 나오신 지도 10년, 혼자 연구하시려면 힘들지 않으실까요?

  한길섶 : 연구비라도 지원해주시겠습니까?

  수사관2 : 남북 신뢰 회복을 위해 연구하신다면야 못 해드릴 것도 없습니다. 한땐 북한도 여러 차례 드나드셨는데, 법 적용하기에 따라 위험한 경계는 아직 유효합니다. 암튼 최근엔 지원해드릴 만한 실적이 없습니다.

  한길섶 : 근데, 그런 일들이 지금 우리 내기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수사관2 : 앞으로 답변하실 때 참작하시라고 주변을 상기시켜 드렸습니다.

  한길섶 :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 겁니까? 주변으로 돌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세요.

  수사관2 : (바인더에서 A4 용지만 한 사진을 꺼내 한길섶에게 내민다. 뒷벽 모니터에 사진이 현상된다) 이 사진을 봐주십시오. 스크럼의 뒷모습을 45도 상향에서 찍었습니다. 누군지 알아보시겠습니까?

  한길섶은 사진을 받아보고 좀 놀란다. 예의 그 오른팔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게 찍힌 사진이기 때문이다. 스크럼 뒤편으로 빠져나가는 그 주인공을 45도 상향에서 찍었다. 오른쪽 손목에 가죽줄 시계를 찬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강상태다.

  한길섶 : (조금 놀라며) 이 사람은!

  수사관2가 허공에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내자, 무대 한편에 있는 제2 조사실에 조명이 들어온다. 그곳에선 수사관3이 강상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길섶은 강상태에게서 표정 변화도 없이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본다. 그쪽 조사실에선 이쪽을 볼 수 없는 이중 구조의 유리벽으로 돼있다.

  수사관3 : 학생들 자비를 털어서 공연하려니 힘드시겠습니다?

  강상태 : 리얼리즘극은 무대 세트만도 백 갖고 어렵습니다.

  수사관3 : 이번 ‘처용’도 리얼리즘극으로 하시잖습니까?

  강상태 : 그래서 무대에 의상비까지 부담이 많았는데 행정적으로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수사관3 : 대본을 보니까 향가인 처용가의 원문에 충실하던데, 자신의 견해입니까? 너무 기본적인 것 같습니다?

  강상태 : 작품 해석은 한길섶 교수님 이론을 따랐습니다. 학교 연극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이구요.

  수사관3 : 한 교수님을 잘 아십니까?

  강상태 : 그럼요, 존경하는 교수님이십니다.

  수사관3 : 자주 만나기도 하십니까?

  강상태 : 복학한 뒤론 자주 뵙습니다.

  수사관3 : 자주라면?

  강상태 : 매일이죠.

  제2조사실 조명이 나간다.

  한길섶 : (사건을 끝낼 듯 자신 있게 쳐다보는 수사관2에게 사진을 건네며) 왜, 이제야 꺼냈죠? 참 멀리도 돌아오셨네요.

  수사관2 : (사진을 받으며) 한 교수님 학교 복학생입니다.

  한길섶 : 강상태인 줄 알았으면서.

  수사관2 : 강상태 이름이 의외로 쉽게 나오십니다? 마치 전두엽에서 자주 불러다 쓰는 이름같이….

  한길섶 : 그의 행적이 어떻고 저떻고… 검거 전 전지 작업인 양 의사를 묻고… 함정수사 했군요?

  수사관2 : 저희 조사 방법 중 한 가집니다. 자백하시겠습니까?

  한길섶 : 강상태 뒤에 내가 있다?

  수사관2 : 그렇습니다. 모든 정황을 종합해볼 때 가장 유력한 분이셨습니다.

  한교수 : 자백 받아냈습니까? 나라고?

  수사관2 : 처음엔 강상태의 자작극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행적을 뒤져 찾아낸 단서, 오직 하나.

  제2조사실에 조명이 들어온다. 강상태는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회전판 기구에 알몸으로 결박된 채 거꾸로 세워져 있다. 강상태는 두려움과 고통으로 흐느끼고 있다.

한길섶이 강상태에게서 급히 시선을 돌린다. 한길섶의 표정이 굳어진다.

  강상태 : “자울아배 하얘”입니다. (두려움과 고통으로 지르는 소리가 동물의 울부짖음에 가깝다)

  수사관3 : (기구를 돌려 강상태 몸이 바로 서도록 한다. 점도 없고 시계를 찬 흔적도 없는 강상태의 오른손을 붙들고) 시계를 오른 손목에 차게 하고 점을 그리게 한 것이 한 교수 지시라고 했습니까?

  강상태 : (두려움으로) 네.

  수사관3 : 왜 그랬다고 했습니까?

  강상태 : (고통으로) 혼선을 유도하라고요.

  수사관3 : 전달받은 쪽지도 모두 한 교수가 작성했다고 했습니까?

  강상태 : (동물처럼 흐느끼며) 네.

  제2 조사실 조명이 나간다. 한길섶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런 한길섶을 보는 수사관2가 미소를 지으며 설문지와 볼펜을 집는다.

  수사관2 : “자울아배 하얘” 그렇습니다. 강상태 주변에서 “자울아배 하얘”로 교류할 사람은 오직 한 교수님뿐입니다. (한길섶에게 내밀며) 자백하십시오.

  한길섶 : (강상태를 가리키며) 꼭 저렇게 해야 했소?

  수사관2 : 한 교수님이 버티시니 끄나풀을 당길 수밖에요.

  한길섶 : 비열한 인간들, 있을 수 없어. 어느 재판관이라도 인정 안 할 거야.

  수사관2 : 저흰 재판관의 인정은 알 바 아닙니다. 자백서를 올리는 데까지가 소관이니까요. 이제 그만 끝내실까요?

  강상태가 갑자기 발작을 하듯 울부짖으며 고함을 지른다. 제2 조사실에 조명이 들어온다.

  강상태 : 아냐, 아냐, 다, 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라고….

  수사관3 : (기구를 빠르게 회전시키며) 헛소리 못 그칩니까. 입 다물지 못 합니까. 정신 똑 바로 못 차립니까.

  강상태 : (몸이 돌아가는 중에도 고함을 지른다) 다, 다 거짓말… 누구 없어요? 여기 나 좀 누가… 아….

  수사관3은 강상태가 실신한 듯하자 기구를 멈춘다. 후레쉬로 강상태의 동공을 살핀다. 찬물을 끼얹는다.

  강상태 : (참새가 몸에 묻은 물기를 털 듯 사지를 퍼덕거리며 깨어난 뒤) 아닙니다. 다 아니라구요 수사관님, 전 정말 모릅니다.

  수사관3 : 실토하고 사인했으면 끝인 것 모릅니까?

  강상태 : 거짓을, 거짓 자백했다구요.

  수사관3 : 쪽지를 전달받았다고 했습니까?

  강상태 : 네, 휴대폰으로 “자울아배 하얘.”

  수사관3 : “자울아배 하얘.” 딱 그 한 마디. 그러면 어떻게 했습니까?

  강상태 : 학교 식당 화장실 네 번째 칸 양변기 수조요.

  수사관3 : 그래요, 수조. 물통 안에서 꺼냈다고 했습니까? 한길섶의 쪽지를.

  강상태 : 한 교수님이 아니라 누군지 모른다니까요. 

  수사관3 : (강상태를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한 교수를 매일 만난다고 했습니까?

  강상태 : 네, 아니. ‘처용’ 연습하면서 대본 볼 때마다 생각 한다는 뜻이었… 쪽지는… 정말….

  수사관3이 강상태를 바람개비처럼 돌릴 때 제2조사실 조명이 나간다. 두려움과 고통스러워하는 강상태의 신음소리가 무대 바닥에 깔린다.

  수사관2 : (한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태연하게) 공포감에 헛소리를 하고 빠져나가려고 수도 없이 말을 바꾸곤 합니다. 강상태도 지금 제정신이 어디 있는지 모를 것입니다.

  한길섶 : 제정신이 아니게 한 건 누굽니까? 강상태를 정식으로 검찰에 넘기시오. 저렇게 당할 죄목이 아니잖소.

  수사관2 : 네, 이제 붙잡아둘 이유 없습니다. 한 교수님, “자울아배 하얘”라고 한번 해보십시오. 직접 듣고 싶습니다.

  한길섶 : 무슨 권리로? 안 합니다.

  수사관2 :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권리입니다. 해보십시오.

  한길섶 : 그 권리 인정 못 합니다.

  수사관2 : 들을 의무도 있습니다.

  한길섶 : 내 알 바 아닙니다.

  수사관2 : 다 드러났는데 못 할 게 뭐 있습니까? 쑥스럽다면 제가 눈을 감을까요?

  한길섶 : 내 거부의 뜻을 못 알아듣겠소?

  수사관2 : 정 이러시면 한 교수님 주위 분들이 다칠 수 있습니다.

  한길섶 : 그분들도 이해하실 겁니다. 나와 일대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시오.

  수사관2 : 고전 강독회 구호라 생각하고 해보십시오.

  한길섶 : 어떤 경우라도 여기선 안 합니다.

  수사관2 : (한길섶의 목을 거칠게 쥐듯이 감싸며) 해, 해, “자울아배 하얘.”

  한길섶 : (수사관2의 손을 풀려고 애를 쓰며) 안 한다고, 안 해….

  수사관2 : (한길섶의 목을 더욱 세게 쥐며) 해, 해, “자울아배하얘자울아배하얘.” (동물의 울부짖음같이 녹음된 “자울아배 하얘” 소리가 몇 차례 울린다. 수사관2는 점점 격하게 한길섶의 목을 잡고 흔들며 종용한다) 저 소리처럼 저 동물의 울부짖음 같은 소릴 내보라구. 왜? 왜? 왜 안 하는 거야? 니가 영웅이야? 니가 이 시대를 구원하겠다는 거야?

  수사관1이 급히 들어와 수사관2를 한길섶에게서 떼어놓는다.

  한길섶 : (수사관2의 손아귀에서 겨우 벗어나 기침을 심하게 하는 중에 가까스로) 난… 성대가… 약해.

  수사관1, 수사관2가 진정 된 것을 보고 나간다.

  수사관2 :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 잡는 사이 감정을 추스른다. 바인더에서 한길섶에 대한 자료가 작성된 A4용지 몇 장을 꺼낸다.) 완전한 결백은 절대적 의심을 삽니다. 그래서 모든 정황을 종합해볼 때 한 교수님이 가장 유력하다고 했습니다. 강상태가 복학하고 한 교수님 서적을 탐독하고 고전강독회 특강을 들은 과거 등등은 강상태 쪽에서 피어 난 연기였을 뿐, 한 교수님은 강상태와 한 학교라는 요소 말고는 완벽하게 분리돼 있습니다. 강상태가 접선 때마다 걸려온 공중전화는 CCTV조차 없었고, 목격자 증언으론 등산객 차림의 중년 남자, 자전거 탄 청년, 마트 봉지든 주부 등등 한 교수님이라고 단정 지을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런 완벽함보다 확실한 심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백하십시오. 자백하시면 20년 남은 정년 보장되도록 지원하겠습니다.

  한길섶 : 자백을 강요하기엔 애매한 근거와 모호한 억측뿐이군요. 내 모든 권리를 속박하고도 이기지 못했으니 날 내보내시오. 

  수사관2 : 이 방은 최고의 방음과 영상과 녹음시설이 돼있습니다. 한 교수님이 이 방에 들어온 뒤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행동과 음성은 전부 기록되고 컴퓨터에서 성분을 바로 분석 합니다. 그 데이터가 제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수사관2가 허공에 손가락을 튕겨 ‘딱’소리를 내자, 한길섶의 행동에 따른 음성변화의 컴퓨터 분석 데이터가 소리로 방송되고 모니터에 그래프로 영상화 된다.

  소리 신상-성명 한길섶. 한국남성. 42세. 서울 말씨. 대학교수. 신장 173㎝, 체중 65㎏. 성향온순 청렴하고 동료들 간에 신뢰가 깊음. 옳은 일에 대한 추진력이 강하고 정의로운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릴 위험인물로 추정됨. 음성첫째, 동일 행동이나 안정적 분위기에 따른 음성의 평균치 분석. 모죽지랑가와 혜성가 그리고 처용에 관한 대화 부분에서 발음의 액센트는 중간, 음색은 단순 부드러움, 피치의 값은 최저265.735Hz에서 최고 274.125Hz, 강도의 크기는 최저 61.241db에서 최고 73.359db, 안정도 값은 전반부 40.549%와 후반부  37.762%로 상승하지만 특별하다고 할 수 없음. 둘째, 특이한 행동이나 급격히 변화되는 음성의 성질 분석. “자울아배 하얘”를 강요하는 부분에서 피치와 강도가 31.9%와 29.5%로 급상승함을 보이지만 성격이 자극됨에 따른 변화일 뿐 특별하다고 할 수 없음. 셋째, 상대 말에 따라 달라지는 심정적 변화에 대한 분석. 스스로 학구적 상태에 몰입하면서 학자적 자세를 견지하고, 연민에서 야기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제1차 감정에 젖어들기도 함. 사회적 책임에서 일어나는 우울성 모드와 마음 속 폭약을 터트리는 듯이 격한 감정을 지녔음. 개인의 정신적 충격이나 과거의 상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됨. 의뢰한 동물성 음성의 분석. 동물성 음성(녹음 된 “자울아배 하얘”를 들려주고), 액센트는 조금 높고 음색은 매우 거칠고 날카로움. 피치의 값은 최고 624.162Hz에서 최저 493.276Hz, 강도의 크기는 최고 82.537db에서 최저 63.461db, 안정도 값은 전반부 9.881%와 후반부 7.913%로 분석됨. 인간의 가청 주파수를 능가하는 25631.605Hz의 초고주파가 감지되는 것으로 보아 인간의 소리라고 볼 수 없음. 끝으로, (모니터에 한길섶 목의 흉터가 확대된다)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는 목 부분에 작은 흉터가 보임.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외과적 점검과 성대 검진을 권고함. 이상.

  청진기와 간단한 검사 기구를 든 외부 의사가 들어온다. 편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던 수사관2가 한길섶이 검진 대상임을 가리킨다. 의사는 한길섶의 가슴과 목울대에 청진기를 대고 여러 가지 소리를 내게 한다. 입천장에 플래시를 비춰 검사하고 기도를 확장시켜 소형 내시경으로 성대를 살펴본다.

  의사 : (수사관2에게) 외부에서 성대까지 관통한 오래전에 입은 상처가 있습니다.

  수사관2 : 상처? 얼마나 오래됐습니까?

  의사 : (한길섶의 목에 있는 작은 흉터를 가리키며) 여기 상흔이 보이죠? 20년도 넘은 것 같습니다.

  수사관2 : (한길섶의 어느 때인가를 계산해 보며) 20년이면… 그래서요?

  의사 : 처음부터 치료가 잘돼서 말하는 덴 지장이 없어 보입니다.

  수사관2 : 괴상한 소리를 낼 수도 있습니까?

  의사 : 괴상한 소리요?

  수사관2 : 예를 들면 듣도 보도 못한 동물이나 괴물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요.

  의사 : 글쎄요, 그거야 개인기 아닐까요?

  수사관2 : 인간의 가청 한계를 넘은 소리는 가능할까요?

  의사 : 누가요? (한길섶을 가리키며) 이분요?

  수사관2 : 네.

  의사 : 말씀드리려 했습니다만 기도에서 성대 입구까지 혈흔이 보입니다.

  수사관2 : 혈흔요? 뭐죠? 왜 그렇습니까? 그게 초고주파 소리를 낸다는 증겁니까?

  의사 : 제 말은요, 이 환자분을 쉬게 해주시라는 겁니다. 기도가 극도로 피로한 상태입니다. 상당 기간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사관2가 기대와 다른 결과에 분함을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떤다. 의사는 기구를 챙겨 나가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돌아서 무슨 말을 하려 한다. 수사관2가 여전히 부들부들 떠는 걸 보고는 체념하고 그냥 나간다. 한길섶은 의사가 나가다 말고 돌아섰을 때, 조금 긴장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한다.

  수사관2 : (손에 들고 있는 A4 용지를 사무실 바닥에 팽개치면서) 아냐, 아냐, 이건 아냐, 결코 아냐…. (한길섶의 멱살을 잡으며) 한길섶, 이게 다가 아님을… 이것이 진실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 거야.

  한길섶 : 문제를 해결하는 최우선은 원인을 찾는 것이죠. 정황상의 심증만으론 불확실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바이퍼케이션을 놓쳤나 봅니다.

  수사관2 : (잡은 멱살을 흔들며) 이 결과를 되는 대로 놔두지는 않을 거야. 내가 추리하고 내가 판단하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꼭 만들고 말겠다.

  한길섶 : 당신의 신분이 당신의 이념을 제어한다면 당신의 이념이 당신의 신분을 제어하게 될 것입니다.

  수사관2 : (멱살 잡은 채 눈을 부라리며) 모든 종말은 새로운 시작이야. 잊지 마, 한길섶.

  한길섶 : (수사관2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수사관2의 멱살을 마주 잡는다) 우리 사회에 통용하는 양심이 내게 자유를 줬다고 생각합니다. 그 양심은 진실이든 아니든 우리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할 이 시대의 진리일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수사관님.

  두 사람 모두 상대의 멱살을 한껏 당긴다.

  암전


  에필로그


  무대 중앙의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대와 한편 구석 노인의 움직임은 동시에 이뤄진다.

  ‘흘러라, 이 땅의 힘이여’라고 쓴 깃발을 앞세운 풍물 사물패 뒤로 학생과 시민들이 서로 팔을 바짝 끼고 횡대로 서서 좌우로 앞뒤로 움직이며 입을 크게 벌려 노래를 한다. (노래는 묵음으로 처리) 사물패는 학생과 시민들의 스크럼 앞에서 징을 울리고 꽹과리로 장단을 치고 북과 장구로 흥을 돋운다.

  이 일련의 풍경은 ‘POLICE LINE’이라고 쓴 폭이 넓은 천이 무대를 가로지르고 있어서 사물패도 스크럼도 몸통이 가려 얼굴과 아랫부분만 보인다.

  한편, 허름한 한복 차림을 한 노인이 구석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간다. 파카 볼펜 뚜껑을 열고 잉크 카트리지를 뺀 손잡이 부분 대롱에서 실을 꺼낸다. 그 실로 볼펜 대롱을 묶어 입에 깊숙이 넣는다. 매우 익숙한 손놀림이 왼손잡이다.

  풍물 사물패가 깃발을 앞세우고 무대를 돌면 스크럼도 어깨춤을 추듯이 따라 돈다.

  공중전화 부스에선 노인이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짧게 통화를 끝낸다. 노인은 입에서 실을 당겨 볼펜 대롱을 빼내고는 피를 토할 듯이 심한 기침을 하며 시야에서 사라진다.

  스크럼이 무대를 몇 바퀴 돌고 앞으로 나와 섰을 때 무리 뒤에서 곰 발바닥 장갑을 낀 오른팔이 빠져나와 한 시위대원에게 쪽지를 전한다. 그 쪽지를 전하는 순간의 오른팔을 포착하는 카메라 플래시가 강하게 번쩍이고, 렌즈가 열리고 닫히는 기계음이 관객의 가슴을 시큰하게 한다. 철크럭 척!

  시야에서 사라졌던 노인이 먼 곳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막〉




  <당선소감>


   연극인들도 위로받는 작품 쓰겠습니다


  시민아파트 3층 마룻바닥에 앉아 희곡을 읽는다. 손바닥만 한 낯짝을 디민 초겨울 볕이 피리 부는 푸른 테라코타소년상에 박힌 초침 따라 눈알만 빼꼼 한 바퀴 돌리고 내빼버려도 “엉덩이 썩것슈, 신선이 따로 없당게···” 면박에 으름장을 버무린 아내의 은유가 귓속 나팔관을 두드려대도 허물지 않은 한엔 좁혀야 할 생생무쌍한 나의 거리 사회 오염도 사십구 점 구 퍼센트인 나, 의 희곡 읽기.

  내일 세상 희곡이 폐기 안 될 것이 다행인 나의 희곡 읽기는 꿈에서조차 시력을 돋구는 아내 옆에 누워서도 계속이다. 밤사이 아내 안경의 온전함은 내일 아침 우리 가정의 평온을 좌지우지한다. 잘잘못의 책임 규명도 없이 평온이냐 소란이냐 이분론적 매개 육화된 아내의 안경 이불 속에 누운 채 그 매개를 소중히 떼내 앉은뱅이 경대 위 머그컵에 밀어 넣는다. 턱~대굴~쨍~와그르르! 앗, 머그컵째 뒤로 떨어졌나 보다.

  머그컵에서 쏟아져 선잠 깬 생활들이 고시랑댄다.

  “야심한 밤에 뭔 난리여?”

  “비상치곤 좀 심헌디.”

  “하이재킹… 아녀?”

  “추락헌개빈디.”

  “워메, 이무기도 못 되는 것이 승천헐라했나벼!”

  내 연극의 시발점인 방송대 극회, 문학성을 깔아준 풀밭동호회, 고전의 시각을 틔워준 고전강독회, 희곡 창작으로의 패러다임을 갖게 지도해 주신 명지대 대학원 문창과 이재명 교수님, 극단 완자무늬 김태수 연출님, 극작워크숍의 선배와 동인들 그리고 형님들 누님 동생들 또한 아내와 두 아들로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세상에 진 많은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기회와 활자에 갇힌 대사들에 숨을 불어넣어주신 조선일보사 그리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독자와 관객은 물론 사랑하고 존경하는 연극인들도 위로받는 작품을 쓰겠습니다.


 

  ● 1953년 전남 벌교 출생.

  ●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 200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심사평>


  지적 유희가 전경화된 作品… 결말은 신선했다



  응모작이 200편이 넘는 뜨거운 경쟁이었다. 전체적인 수준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연극의 특성과 제한을 무시한 글쓰기가 압도적이었다. 연극이 본디 사회적인 예술이라 노령화, 게임문화, 혼자 사는 삶 등 이 시대의 이슈들을 풍경적으로 다룬 작품이 많았다.

  심사위원들은 특별히 세 작품에 주목했다. 김민정의 ‘봄이 불어오는 곳’은 음악의 재능이 뛰어난 하인이 사회적 천대와 모략 속에서 음악의 완성을 이루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정제된 언어와 성격 묘사가 훌륭했지만 기시감을 주는 주제와 교과서적 구성이 신선함을 주지는 못했다. 강동한의 ‘강릉행’은 강릉 가는 버스를 탄 승객들의 다양한 여행 목적과 삶의 방식을 설득력 있는 상황 전개, 성격에 부합하는 언어, 현대극적인 구조 속에 잘 아우른 수작이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이 가장 주목한 작품은 고군일의 ‘자울아배 하얘’였다. 고전시 연구가 한길섶이 학생들의 시위를 배후에서 지휘했음을 증명하려고 하는 수사관들. 이들의 심증수사를 정교한 논리로 부정하는 한길섶. 그러니까 이 희곡은 지적 유희가 전경화된 작품인데, 처용가의 해석에 대한 입장 차이가 양자 사이에 확연하게 드러나면서 극은 고도의 논리적 싸움으로 치닫는다. 한길섶의 논리나 수사관의 논리 모두 고전학과 수사학에 대한 차원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발전적으로 수행되고 있기 때문에 지적 유희에 강력한 연극성이 수반된다. 지식인의 정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결말이 오히려 신선하다. 당선작으로 필요 충분한 조건을 두루 갖췄다.


심사위원 : 이병훈, 김윤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