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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꽃게 / 최병철

 

  장손은 섬이었다

  할아버지가 펼쳐놓은 바다에 담겨 있던 당신 


  잠시 뭍에서 맡은 쇠 냄새만

  해안선을 따라 옆으로 옆으로 맴돌고 있었다

  바다의 모퉁이에 헐렁하게 용접되어 있었지만

  기운 기둥을 일으켜 촘촘하게 그물을 걸고

  부력으로 집안을 밀어 올렸다

  뱃머리가 바다를 가를 때마다

  철공소에서 대문을 만들었던 시간들이 솟구쳐 올랐다

  가풍의 출입을 철대문으로 막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배를 저어갈 때 방향을 잡아 주던 어머니가 

  물 밑으로 가라앉고

  철의 껍질에서 탈피했다

  조금씩 자유로워질 때쯤

  딱딱해진 가슴 위로 그물을 펼치고 

  휑한 구멍을 꿰매고 있었다

  물때를 기다렸던 밤 

  팽팽한 수면을 찢고 

  그렁그렁 달빛이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바다가 심심해지면 안부가 궁금해지는 법

  기다림만 키우다 통발에 자신을 가두던 당신

  절단기로 섬을 해체하고 

  배를 수평선 바깥으로 몰아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지만

  집게발이 파도를 물고 놓지 않는다 




  <당선소감>


   九旬 아버지께 바치는 노래


  세상이라는 바다에 우리는 누구나 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꿈은 집념으로 뚤뚤 뭉친 꽃게의 집게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루지 못한 빈자리는 결국 뭔가로 채워지죠. 40대 어느 날 나는 심한 공복을 느낍니다. 허기진 나의 배를 채워 줄 양식인 시가 내 앞에 나타났지요. 그래서 마구마구 시를 주워 먹었습니다. 그렇게 시에 미쳐 내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정신 차리지 않았습니다. 

  시인이 되고 싶은 열망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시를 쓰고 갈무리하고 만족하고 묻어두고 며칠 후 다시 열어보고 실망하고 아직 습작 시인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를 질책하고 그러다 이번에 등단의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저를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경남신문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습작의 솜털을 지우고 자신의 세계를 열어가라는 당부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같이 꿈을 키우며 열심히 공부한 ‘시우리’와 ‘샘시’ 가족들과 이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의 시에 인격을 불어넣어 주신 존경하는 이병관 선생님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고운이 강한이랑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시 ‘꽃게’는 올해 구순(九旬)을 맞이하는 저희 아버지의 일생입니다. 거동은 조금 불편하지만 정신은 아직 견고하신 아버지께 무병장수를 바라며 이 시를 바칩니다. 나는 아버지라는 바다 위의 영원한 무인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1965년 경남 남해 출생.

  ● 1984년 남해종합고등학교 졸업.

  ● ‘시우리’ 회원.

  ● 고운농원 대표.


 

  <심사평>


  삶의 경험에 녹여낸 시적 절실함 뛰어나 


  올해 응모된 작품은 1000여 편이 되었다. 심사위원들은 큰 기대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심사에 임했다. 이번 응모작들은 실험시 계열보다 대체로 서정적 경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서정적 상상력을 통해 팍팍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흐름이 감지되었다. 그러나 참신한 개성과 강렬한 상상력의 촉수를 내뻗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보여준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새로운 자기만의 세계 창조는 언어와 형식의 실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자기만의 언어로 패기 있게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편두통’ 외, ‘꽃게’ 외, ‘쾌종시계’ 외, ‘네모난 집’ 외, ‘편강’ 외, ‘롤러코스트’ 외, ‘은행’ 외, ‘주방론’ 외, ‘음각의 시간’ 외, ‘장마’ 외, ‘자일리톨’ 외 등의 작품이었다. 이 가운데서 이수미의 ‘편두통’ 외 3편, 최병철의 ‘꽃게’ 외 2편이 마지막까지 심사위원의 손에 남았다.

  이 가운데 당선작으로 결정된 최병철의 ‘꽃게’는 제목이 갖는 상징성과 장손의 삶을 바다와 연계한 구성력이 뛰어나며 뭍과 물의 관계를 쇠를 통해 형상화한 새로운 인식이 뛰어났다. 특히 자기 생각과 세계를 삶의 경험에 녹여내면서 끌고 나가는 힘은 시적 절실함에 충분히 값하고 있다. 다소 거친 표현도 있지만 상상력의 질감이 잘 살아 있고, 시에 나타나는 삶에 대한 진지성은 자기만의 세계를 꾸준히 구축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보여 신뢰감을 갖게 했다.

  치열하게 마지막까지 논의됐던 이수미의 ‘편두통’은 이명(耳鳴)에 의한 편두통 증상을 객관적 상관물인 딱따구리를 통해 표현해냈다. 팍팍한 현실 앞에서 현대인들이 겪는 무력감이나 괴로움은 ‘편향(偏向)을 버리지 못한’ 화자의 통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섬세한 시선과 차분한 어조로 문장을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기량이 돋보였지만, 동시에 신인으로서의 강렬한 패기 구축이라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해 드리고, 당선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해 드린다.

 

심사위원 : 성선경, 배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