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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공복 / 김한규

 

  당신이 하고 있는 무엇

  가만히 있게 가만히 두지 않는 시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나왔네요. 

  아니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 왔습니다.


  먼지가 부풀며 피에 섞인다 

  아스팔트가 헤드라이트를 밀어내기 시작하고 

  한 마디를 끝낸 입술이


  냉동고 속에서 굳는다 

  언 것이 쌓이기 시작하자

  흔들리던 빈속이 쏟아져 내린다


  무엇을 하기 위해 당신은

  약봉지를 잊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이 보인다


  죽은 나무 위에서 늦은 밥을 먹을 때

  문은 닫히는 소리를 낸다


  밝아올 것이라는 말을 지워버린

  아침에는 감꽃이 떨어지고

  눈물을 말리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하고 나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끝났습니다.


  아니면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연락하겠습니다. 




  <당선소감>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벗들에게 안부 전한다


  마치 나라를 잃어버린 것 같은 참담함에 젖어 있었다. 차라리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도 없었다. 피하는 것이 능사는 될 수 없고,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저들과 맞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먼 곳으로 가신 어머니가 꿈에 오시곤 했다. 깨고 나면 “제가 잘 살고 있지 못한 거 같아요. 죄송해요”라고 말씀드렸다.

  지난 여름, 무지무지한 햇볕과 끝까지 대결했던 노동으로 몸이 자꾸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무엇보다 시를 쓰지 못한 날이어서 더 혹독하게 여겨졌다. 추스르면서 열기가 옅어진 햇살 속에 앉아 있곤 했다. 살고 있는 동네의 천변에는 코스모스가 오랫동안 흔들렸고,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힘을 내야 한다는 듯 열심히 걷곤 했다.

  역시 참담했던 1980년대의 여러 해를 감옥과 거리를 오가며 살았던 벗들, 그 후에도 어떤 영예나 보상 같은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벗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나도 더 힘을 내겠다는 말과 함께. 또 ‘오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 전에 부끄러워졌다. 단단해지고 싶다면 더 깨져야 할 것이다.

  나보다 더 좌절하면서 견뎌온 아내, 그리고 채영, 승훈에게 다시 쓰겠다고 약속한다. 손을 잡아 일으켜주신 김소연 선생님, 뵈러 가겠습니다. 이기영 시인님, 이제야 갚아드리게 되었네요. ‘진주작가’의 벗들, 계속 버티며 살아남자고요. 이성모 교수님,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정진하겠습니다. 


 

  <심사평>


  평이한 언어로 생의 뒤틀림을 끄집어내다 


  본심에 올라온 시의 독후감은 심사위원들에게 마치 한 사람의 시집을 읽는다는 느낌을 주었다. 느낌과 느낌들이 손쉽게 공유되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지만 참람하다. 문학의 기술과 기교는 독창성이나 변별성보다 더 높은 가치가 결코 아니다. 그나마 네 사람의 가편을 만난 것은 다행이랄 수 있다.

  시 ‘삼각형 누드’는 옷걸이와 옷에 대한 천착이다. “옷을 벗기면 너무 마른 삼각형이 나오”곤 하는 옷걸이라는 상징은 “옷의 속마음을 걸어두”는 곳이다. 그렇다고 ‘옷의 속마음’이 다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성찰의 안팎에는 옷과 옷걸이의 불화와 화해, 측은함과 격려가 맵씨 있게 걸려 있다. 이후 옷과 옷걸이의 서로를 확장시키면서 “옷걸이의 마음을 닮은 삼각형이/ 옷을 벗으면 내 몸에도 몇 군데는 있다”라는 몸의 윤리학에 도착한다. 가장 아름다운 시를 선택해야 한다면 선자들은 이 시가 아닐까 하고 의견을 모았다. 

  또 다른 시 ‘답장 사이로’는 서사가 떠받치는 시편이다. 한 계절의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펼쳤다면 그 속의 고통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러기에 시는 울림이 크고 높다.

  시 ‘5분의 꼬리’는 시간의 비극성을 희극에 기대어 혹은 희곡성에 기대어 진술하고 있다. “약속장소가 5분 먼저 와 있었다./ 내가 늦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5분이라는 시간이 먼저 가 있었다”라는 구절을 본다면 5분이라는 시간은 나를 검색하려는 무의식과 의식의 의도이다. 건조한 5분들은 계속 나를 간섭하고 배반하면서 나를 돌이키게 한다. 독특한 시각이 이채롭다.

  당선작인 시 ‘공복’은 “죽은 나무 위에서 늦은 밥을 먹을 때/ 문은 닫히는 소리를 낸다”는 쓸쓸하고 텅 빈 허기라는 감정을 낯설게 묘사한다. 게다가 뒤틀지 않은 평이한 언어로 생의 뒤틀림을 끄집어낸다. 공복이라는 발화는 화자에 의하면 “당신이 하고 있는 무엇”을 “가만히 있게 가만히 두지 않는 시간”이다. 이것은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와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의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시작이자 재현이다. “밝아올 것이라는 말을 지워버린 아침”과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하고” 난 뒤의 망설임들 모두 같은 공복감이다. 그러한 공복감은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개량의 감정이다. 또한 그 공복감은 우리 시에서 드문 서정이기도 하고 단순하되 겹을 가진 문장 역시 쉽사리 발견하기 힘든 재능이다. 

  심사위원들은 최종적으로 ‘공복’과 ‘5분의 꼬리’ 사이에서 한참 논의를 해야만 했다. 게다가 이 두 분의 나머지 시편들도 고른 수준을 유지했기에, 결정은 힘들었고 결론은 행복했다. 결국 우리 시의 전망이라는 측면에서 개성이 더 도드라진 ‘공복’을 당선작으로 합의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나머지 세 분의 시적 역량에도 심사위원들이 오래 고민하면서 찬사를 보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심사위원 : 김사인, 송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