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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모서리 / 오영록

 

면과 면이 모여 사는 곳

면과 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둥근 모서리


당신의 면과 나의 면이 모여 우리가 되었듯이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서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건물 속에 수만 개의 모서리가 산다

저 많은 모서리도 건물이 되기 전에는 하나의 면이나 각이었을 뿐

건물이 되지 못했다


모서리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많은 뼈가 모여 유연한 각을 만드는 인체처럼

모서리는 각이면서 부드럽기에 따스하다


너와 나의 두 각이 모이면

사랑이라는 모서리 하나 겨우 생길 뿐

화합이라는 모서리 속에는 셀 수 없는 각들이 모여야 산다


산모퉁이 구부러진 철길을

모서리들이 각자의 각으로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있다

면들을 모아 모아서 가는 

모서리가 눈부시다.




  <당선소감>


   "눈물 뒤에는 또다른 웃음…어젤 버틴 건 행복한 오늘 때문"


  늦은 나이에 자아 성찰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글쓰기였습니다. 생업에 얽매이다 보니 그 흔한 문예반이나 어느 대학 교수 이름 하나 적을 사람이 없네요. 


  과연 나의 스승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니 20년 세월 동안 가사를 도맡고 늘 독수공방 선잠을 청해야만 했던 아내의 눈물이 스승이었네요. 설익은 풋과일 같은 글을 늘 엄지 척 세워주던 제훈, 대섭, 금순이 그리고 시가 무엇인지 알게 하신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양형근 선생님, '다시올문학' 김영은 선생님 그리고 습작시를 돋보기 너머로 토시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어내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병석에서 사경을 넘나들고 계신 구순 노모가 스승이었습니다. 


  이 시가 탄생된 것은 얼마 전 성남시 수정구 태평2동 19통 통장을 맡고서였습니다. 수많은 자재가 모여야 건물이 되는 것처럼 사회가 형성되고 역사가 쓰이는 것도 건물이 서는 것처럼 서민들 각 가정의 크고 작은 애환이 모여 한 사회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삶은 모서리보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가시였습니다. 하지만 그 아픈 삶들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건물에 실내가 있고 외벽이 있는 것처럼 눈물 뒤에는 또 다른 웃음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량의 객차를 끌고 구부러진 길을 가는 우리도 많은 모서리를 포용하며 살기에 아름답다 못해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어제가 아프고 쓸쓸할지라도 버텨냈던 것은 꿈처럼 찾아온 웃음과 행복의 오늘이 있다는 희망 때문입니다. 


  졸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동남풍 같은 시를 짓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심사평>


  실제 경험 바탕글·추상어보다는 구체어에 높은 점수


  올해는 소설과 수필, 수기, 논픽션을 포함한 산문 부문은 응모된 작품이 많았지만 수준 면에서는 다소 아쉬웠다. 수필 부분에서는 수기 형식을 띤 '경매는 대박이다'가 경매 경험과 장점, 조심할 점을 잘 전달해 눈에 띄었고 '롱패딩의 긍정적 시그널'은 재미있는 발상으로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엄마가 들려주는 회사와 돈 이야기'는 어린 아이에게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기업과 돈에 대해 친근한 느낌으로 주제를 전달했다.


  우수상으로 뽑은 '철, 선박으로 태어나다'는 철이라는 금속이 선박이 되는 과정과 한국 조선업계의 현황에 대한 설명문이다. 썩 재미있지는 않으나 읽어 나가는 동안 철과 선박에 대해 새로운 지식이 쌓인다. 문학적으로 부족하나 직장 경험을 살린 설명문 형식의 글도 응모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우수상으로 선정했다.


  대상으로 뽑은 '쉰 줄에 공돌이'는 40대 후반까지 스포츠신문의 편집부장을 하는 동안 형광등 하나 갈아 끼울 줄 모르던 ‘문돌이’가 신문사를 나와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회사에 새로 들어가 바닥에서부터 기술을 익혀가는 과정을(아마도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형상화한 수작이었다. 형식을 소설로 집필했어도 읽으면 누구나 작가의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된 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반면 올해 시 부문에서는 작품의 질과 양 모두 예년보다 부족했다.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이야기이고 이 시대의 삶이란 어느 면으로든 경제에 닿아있는 것이어서 굳이 작품에 경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응모작들을 보면서 감각에 인식되는 어떤 구체어들이 아니라 관념적인 추상어들이 많았다는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오영록씨의 '모서리'와 정지윤씨의 '경주마'였다. '모서리'와 '경주마' 자체가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시킨다는 점에서 시적 주제로 다루기에 손색이 없다. '경주마'는 퇴역 경주마를 인생에 빗댄 회한을 잘 그리고 있지만 그것이 단지 회한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논의 끝에 가작으로 선정한 '모서리'는 모서리에 이어져 있는 나와 너, 우리의 관계를 감각적으로 그려낸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랑', '화합'이라는 관념어들이 이 작품을 가작에 머물게 했다. 내년엔 시 부문에서도 대상이 생산되길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 이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