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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가위질은 이렇게 / 이인애

 

엄마의 엄지와 약지는

사이에서 놀고 있는 손가락들을

움직이게 하는 두 가닥의 힘이다

엄마는 매일 아침

낮은 간판 아래 무릎을 꿇는다

빠져나갈 구멍만 있으면, 하며 집을 나와

미장원 열쇠구멍이나 찾는 엄마

날이 마모된 커트용 가위가

정수리에서 밀려나온 머리카락을 씹는다

언젠가부터 밥알도 질기다던 아버지처럼

잘근잘근 이로 뭉갠 머리카락을 토한다

중심에서 멀어진 것들은 잘라내야 한다는 생각

아버지가 다니던 석재공장에서도

돌가루처럼 번져갔던 걸까

남편의 까맣고 윤기 나는 직장을 두 동강 내는

엄마의 가위질을 탓하는 점쟁이

눈 뒤집힌 말들, 미용실 바닥에 쌓인다


가위질 하는 두 손가락 사이에서 졸고 있는

검지나 중지보다도 가늘어진 아버지를

자를 때가 왔다는 통보가 왔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다 오던 날

엄마는 가위가 돌아간다고 했다

손가락이 자꾸만 구멍에서 빠진다고

아버지가 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줬다고




  <당선소감>


  “활자 앞에서만 자유로워…부끄럽지 않도록 노력”


  감은 눈을 생각하고 있었다. 주변 근육들이 눈으로 웅크렸다. 나는 엉성하게 꿰맨 구멍처럼 눈을 감았다. 감은 눈을 의식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얼굴에서 힘을 뺐다. 그때 시가, 살짝 벌어진 틈으로 들어왔다. 비밀처럼 조금만 벌어진 나의 간격, 눈이 감길 때까지 안으로 걸어왔다. 눈이 더 감기자 속눈썹이 허술하게 눈을 막았다. 나는 속눈썹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티다 부르르 떨리는 눈꺼풀로 시가 말을 걸었다. 첫 옹알이를, 이번에도 엄마를 통해 시작하게 됐다. 부모님이 잠든 후에야 옆구리에 파고들어 안겨봤다. 가족도 아니고 남도 아닌 것처럼 대해왔다. 나에게도 부끄러운 사람이라 그랬다. 활자는 나를 뻔뻔하게 만든다. 그 앞에서만 자유롭다. 부끄럽지 않을 때까지 더 쓰겠다.  

 


  ● 전북 임실 生.
  ● 우석대 문예창작과 석사과정.
 


 

  <심사평>


  “서민적 삶의 애환 보편적인 정서로 잘 그려내”


  본심 작품은 300여 편이 넘었다. 작품의 수준도 예년보다 높았다. 우리는 시가 얼만큼 문학적 진정성을 획득하고, 자기 삶의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과 새로운 진술로 승화시키고 있는가를 눈여겨봤다. 최종 논의된 작품은 김화연의 <사과 벌레가 사과를 기다리는 동안> 외 4편과 이인애의 <가위질은 이렇게> 외 5편이었다. 김화연은 오랜 습작의 연륜이 느껴졌으나 작품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지 못한 채 시의 밀도가 떨어졌다. 이인애의 작품은 완성도가 높고, 체험을 바탕에 깔면서 서민적 삶의 애환을 보편적 정서로 잘 그려냈다. 젊은 감각과 번뜩이는 사유의 깊이를 내장한 20대 문청의 시를 세상에 내보내는 기쁨을 누렸다. 참신한 시로 정진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 이영춘, 고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