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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발코니의 시간 / 박은영

 

필리핀의 한 마을에선 

암벽에 철심을 박아 관을 올려놓는 장례법이 있다 

고인은 

두 다리를 뻗고 허공의 난간에 몸을 맡긴다 

이까짓 두려움쯤이야 

살아있을 당시 이미 겪어낸 일이므로 

무서워 떠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암벽을 오르던 바람이 관 뚜껑을 발로 차거나 

철심을 휘어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그저 웃는다 

평온한 경직, 

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발코니에서 화초를 키웠다 

생은 난간에 기대어 서는 일 

허공과 공허 사이 

무수한 추락 앞에 내성이 생기는 일이라고 

당신은 통유리 너머에서 그저 웃는다 

암벽 같은 등으로 봄이 아슬아슬 이울고 있을 때 

붉은 시클라멘이 피었다 

막다른 향기가 

서녘의 난간을 오래 붙잡고 서있었다 

발아래 아득한 소실점 

더 이상 천적으로부터 훼손당하는 일은 없겠다 

하얀 유골 한 구가 바람의 멍든 발을 매만져준다 

해 저무는 발코니, 

세상이 한눈에 보인다 




  <당선소감>


   5년 前 쓴 詩… 이별 통보한 애인이 내 발목 잡은 기분


  허기가 졌다. 국거리용 소고기를 구워 먹고 책상에 앉아 끼적거리고 있는 사이 당선 연락을 받았다. 예고 없이 찾아온 전화였다. 멍하니 하루를 보냈다. 나보다 지인들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당선작은 5년 전에 써놓고 묵혀두었던 시다.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겨울은 그때였었다. 우리, 이제 헤어져. 애인에게 이별 통보를 하고 돌아서는데 ‘나쁜 남자’였던 그가 발목을 붙잡은 기분이다. 사는 일이 이렇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어디 있던가.

  시 쓰는 거 힘드니까 그만두라는 말로 매년 위로하던 가족들, 이종섶·조수일·김형미 시인님, 이건수·한철희 목사님…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이분들의 존재 덕분이다. 특히, 나의 아들아! 창문 없는 고시원을 거쳐 이민 가방을 끌고 그 먼 길을 가는 동안 얼마나 막막했니. 비록 웅크리고 꿈을 꾸지만 볕 들 날이 너에게 오리라 믿는다. 너와 나는 약하지만 언제나 강했다.

  황동규, 정호승 선생님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를 드린다. 아무튼 이건 기적이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 나에게 있었던가. 돌이켜보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산성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부끄러울 따름이다. 또, 겨울이 가고 그 길로 다시 추운 겨울이 오겠지만 이제 나는 시편 같은 봄을 기다릴 것이다.  

 


  ● 1977년 전남 강진 출생.
  ●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풍장문화라는 구체성 통해 삶과 죽음의 동일성 깨닫게 해


  시는 말과 언어를 다루는 기술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간 삶의 내면을 응시하는 깊은 사고와 이해에서 나온다는 점을 투고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우리 삶과 유리된 채 공연히 초현실적으로 매끄럽게 톡톡 튀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다는 것은 시를 쓰는 기술이 앞선 작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심 최종심까지 오른 작품은 이창원의 ‘금요일기’, 홍경나의 ‘먼우물’, 최민주의 ‘그림자 동물원’, 이영란의 ‘짚’, 박은영의 ‘발코니의 시간’ 5편이었다. 이 중에서 피상적이고 관념적이며 감상적인 작품을 먼저 배제하고 나자 ‘짚’과 ‘발코니의 시간’ 2편이 남게 됐다.  

  ‘짚’은 ‘집’이라는 말의 유사성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 시다. 짚을 감아줌으로써 감나무는 혹한의 겨울을 견딜 수 있고, 그 짚 속에 기어든 벌레들 또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시의 전체를 이루고 있으나 평이함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무에 짚을 감아주는 의미가 모성적 차원으로까지 승화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나무들도 영혼이 있다면/ 저 짚에 조용히 은거하고 있을 것이다’와 같은 결구 또한 평이하고 안이하다고 판단돼 결국 ‘발코니의 시간’이 당선작으로 결정됐다. 

  ‘발코니의 시간’은 삶의 고통에 대한 견딤이 죽음의 고통 또한 견디게 해준다는 중의적 의미가 내포된 시다. 정년퇴직한 뒤 발코니에서 화초를 키우는 아버지의 현재적 삶과 암벽에서 풍장의 과정을 겪고 있는 죽음의 삶을 발코니의 통유리를 경계로 대비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동일성을 깨닫게 해준다. 자연적인 해체의 과정을 견디는 풍장 그 자체가 바로 오늘의 삶에서도 가장 요구되는 인내의 덕목이라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관념성을 풍장 문화라는 구체성을 통해 나타내고 있는 점이 이 시의 힘이자 장점이다. 신춘문예에 당선된다는 것은 마치 하나의 새로운 우주를 만난 듯한 기쁨일 것이다. 진심으로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 황동규,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