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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조문 / 이서연

 

빈 방에 남아 빈 방을 닦고 있는 거울처럼


그 집의 벽들은 아직 비에 젖고 있다

현관 앞에 쓰러진 우산이 있고 지붕을 넘어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소리 내어 운다 나는 꽃을 들고 있다


이른 새벽 청소부가 올 때까지

쓰레기봉투처럼 웅크리고 싶은 밤이 있다

자동차가 달리는 8차선 도로를 천천히 가로질러


죽어가는 밤과 죽은 뒤의 밤을

죽은 사람 곁에 앉아 산 사람이 지샌다

삶이 죽음으로 옮겨가는 낮을 지나

죽음이 삶을 전염시키는 밤으로


눈을 감고 있으면 생각 없는 몸이 어딘가로 간다

생각만 남아 몸을 생각한다 


엎어진 화분처럼

방문을 쥐고 있는 젖은 손이 있다

손잡이를 말아 쥔 둥근 손등만 보인다


창문이 없는 방에 바람이 들이쳤다

먹구름과 흰 구름이 방 안을 지나간다

감은 눈 안으로 구름은 어떻게 들어 왔을까?




  <당선소감>


   "정말 살아보고 싶은 도시로 이어지는 길 조용히 걷는 기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습니다. 눈을 떠도 주위는 감은 눈 속처럼 어두웠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잠버릇과 함께 낡아가는 익숙한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으며, 죽은 뒤에 관 속에서 혼자 눈을 뜨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땅 속에 묻혔는데 거짓말처럼 문득 정신이 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불 속에서 손가락과 발가락들을 차례로 움직여 보았습니다. 밤이 오면 잠을 자고, 시간이 지나면 눈을 뜨는 일상이 놀라웠습니다. 매일 밤 누워서 내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챙겨 보는 것은 내일이 다시 저에게 주어질 거라는 믿음입니다. 어째서 저는 단 한 번도 그걸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오늘이 지나갈 때마다 다음에 올 아침을 믿는지…. 앞으로 제가 다녀오게 될 누군가의 죽음과 저의 죽음을 다녀갈 사람들을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새벽, 6시 20분에 맞춰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저는 어두운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정리한 시편들을 봉투에 넣어 보내고, 며칠 뒤에 가까운 분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뒤늦게 찾아간 그곳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 했던 얼굴들을 보았습니다. 죽음이 삶을 이어주는 시간이었고, 삶이 죽음을 연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울고, 웃고, 먹고, 마시는 탁자 위에 수저 한 벌처럼 나란히 놓인 저의 죽음을 마주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저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뜻밖의 수상 소식을 함께 기뻐해 줄, 오랜 시간 함께 소리 내어 책을 읽었던 친구들과 늘 곁에서 사랑과 격려를 건네는 가족들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몇 몇 도시를 떠돌며 살았습니다. 새로운 도시에서 지낼 때마다 저는 언제나 제가 정말 살아보고 싶은 어떤 한 도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 도시로 이어지는 길을 조용히 걷고 있는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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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언어 몰고가는 힘 놀랍고 삶과 죽음 관계 새로운 인식 이끌어


  예심에서 올라온 10명의 작품으로 우리 시단의 변화를 실감했다. 흔히 보아왔던 개인적 발화에 가까운 소통부재의 언술이나 실험이라는 방패 뒤에 숨은 책임방기(責任放棄)의 시편들이 확실히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신 새로움을 보여주는 시편들보다 익숙함이라는 달갑지 않은 현상이 눈에 띄어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었다. 

  두 심사자는 당선권에 든 작품으로 나동하씨의 ‘계단들’과 손명이씨의 ‘전모(全貌)’, 그리고 이서연씨의 ‘조문’을 최종 선정했다. 손명이씨의 작품은 ‘달’이라는 원형상징을 변주하면서 시상을 엮어가는 수법이 눈여겨볼 만했다. 그러나 관념을 구체성에 얹는 데 힘이 부치는 감이 있었다. 나동하씨의 작품은 ‘계단’이라는 대상을 삶의 보편적 국면으로 이어내는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대상을 치열하게 파고드는 힘, 긴밀한 구성력과 치밀한 묘사력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이서연씨의 작품은 참신한 비유와 더불어 언어를 몰고 가는 힘이 놀라웠다. 무엇보다 행간을 건너뛰는 경쾌한 어법이 신인의 예기(銳氣)를 느끼게 했다. “죽어가는 밤과 죽은 뒤의 밤을/ 죽은 사람 곁에 앉아 산 사람이 지샌다/ 삶이 죽음으로 옮겨가는 낮을 지나/ 죽음이 삶을 전염시키는 밤으로”와 같은 구절에서 보듯 활달한 어법을 통해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내고 있다. 구성의 측면에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대상에 직핍해 들어가 인식의 상투성을 뒤집어내는 나동하씨의 작품과 감각적이고 개성적인 화법으로 일상 언어의 범박함에서 벗어난 이서연씨의 작품을 두고 논의 끝에, 두 심사자는 신춘문예 당선자에게 요구되는 새로움이라는 덕목에 좀 더 부합된다고 판단되는 이서연씨의 작품 ‘조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신춘문예 당선자의 영광은 단 하루다. 이 작은 성취에 머물지 말고 당선자는 언어의 모험에 기꺼이 몸을 던져 천 년을 버티는 교목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 이하석, 장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