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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마키코 언니 / 김영주

 

  마른 잎 하나가 김이 피어오르는 허공에서 팔랑거리다 노천탕 수면에 내려앉는다.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둘러쓴 마키코 언니가 물살을 밀어내며 엄마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간다. 영락없는 모녀 사이다. 언니의 낯빛이 어린아이처럼 해맑다.

  “옛날에 저하고 목욕탕에 갔던 거 혹시 기억하세요?” 언니가 엄마의 어깨에 물을 한웅큼 정겹게 끼얹는다. “그런 일이 다 있었어?” 엄마의 희미한 기억이 잔잔한 미소로 번진다.

  마키코 언니가 초청한 4박 5일 삿포로 여행이었다. 언니는 친정아버지까지 꼭 모시고 와야 한다고 내게 몇 번이나 당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외국여행을 감당하기에는 아버지의 건강이 따라주지 않았다. 언니는 그걸 못내 아쉬워했다.

  마키코 언니는 가는 곳마다 엄마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친모녀 같아서 가끔 샘이 날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버지도 함께했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싶었다. 언니는 또 그 불편한 걸음으로 엄마와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바빴다. 옛정을 잊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언니의 올곧은 심성이 그대로 전해졌다.

  사촌올케 마키코 언니가 우리 집에 처음 온 것은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 때였다. 하얗고 투명한 피부에 작고 깡마른 소녀, 내 눈에 비친 언니의 첫 모습이었다. 일본인 특유의 겸손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는데, 눈망울이 유난히 똘망똘망했던 걸로 기억한다.

  언니는 심한 소아마비 장애가 있었다. 큰댁 어른들은 중증 장애인인 데다 아이도 가질 수 없는 며느리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더구나 일본사람이었다. 그 옛날, 할아버지가 일본여자를 보는 바람에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면서 큰아버지는 일본인을 극도로 싫어했던 것이다.

  당시 큰아버지는 미국에 건너가 살고 있었다. 사촌오빠는 어릴 적부터 공부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서 어른들의 기대가 컸다. 그래서 일본 유학까지 보냈던 건데, 그 아들이 한마디 상의도 않고 덜컥 결혼식까지 올린 뒤 며느리라고 데려왔으니 오죽했을까. 큰댁 어른들은 온갖 트집을 잡아가며 며느리를 냉대하기 일쑤였단다.

  아버지는 조카며느리를 큰딸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사코 마다해도 볕이 제일 잘 드는 방을 언니에게 내주었다. 식사 때 언니의 젓가락이 자주 가는 반찬은 따로 기억해 두었다가 엄마에게 특별 주문을 할 정도로 살뜰히 챙겼다.

  언니의 한국어학당 입학수속을 거들어준 건 바로 나였다. 당시 대학 1학년인 나는 공강 시간에 언니하고 캠퍼스에서 단둘이 자주 만났다. 도서관에서 언니의 한국어 공부도 거들어주었다. 우리는 마치 친자매 같았다.

  언니의 한국어 습득 속도는 신기할 정도였다. 하루라도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 시댁 어른들하고 소통하고 싶은 바람이 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6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이었다.

  “내가 몇 달 겪어보니 우리 조카며느리는 참 좋은 사람이야.”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석별을 아쉬워하는 정이 그득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언니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마키코, 시댁 어른들이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말아. 내 말, 알겠지?” 언니의 볼에 굵은 눈물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언니가 떠나자 우리는 가족 하나를 잃은 듯 꽤 오랫동안 허전해했다. 간간 전해오는 큰댁 식구들 소식에 섞인 것 말고는 언니가 어떻게 지내는지 나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지났는데, 지난달에 사촌오빠 내외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삿포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날이었다. 마키코 언니는 엄마와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이라도 꼭 함께 지내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고단하셨는지 일찍 잠들었다. 우리 둘은 맥주 한 캔씩을 탁자에 두고 마주앉았다.

  “내 평생 가장 행복했던 건 한국의 작은아버지 집에서 지냈을 때야.” 언니는 엄마하고 재래시장 좌판에서 맛있게 먹었던 잔치국수, 나와 함께 자주 갔던 학교 앞 떡볶이 집, 동네 생선가게 곰보 아줌마의 친절, 추석 때 엄마가 선물해준 분홍색 운동화, 우리 집 마당의 평상에서 함께 수박을 먹었던 일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진짜 한 가족이었잖아.” 마키코 언니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시집살이는 별로였나 보네?” 나는 짐짓 시치미를 떼면서 빙긋 웃어보였다. 며느리를 그토록 홀대했던 큰아버지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았다. 언니는 싫은 내색 한 번 비치지 않고 그 수발을 다 들었다고 한다. 큰아버지는 몇 년 전에 저세상으로 가셨다.

  “시아버지가 원망스럽다는 생각은 없었어?” 내가 물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러셨을 테니까 나는 그냥 받아들였어. 이제 다 지난 일이야.”

  시댁 어른들이 못살게 굴 때마다 작은댁 식구들의 정성을 떠올렸단다. 한국을 떠나던 날 작은아버지가 들려주셨던 말씀을 새기며 시댁 어른들하고의 거리를 좁혀나갔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어쩌면 언니는 시댁 가족에게서 얻은 마음의 상처를 꿰매고 싶어서 우리를 삿포로에 초대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삿포로를 떠나던 날이었다. “욘주!” 특유의 발음을 내며 마키코 언니가 내 팔을 잡았다. “욘주는 좋은 사람이야. 작은아버님도 어머님도.” 엄마와 내 손을 꼭 쥔 언니의 눈동자는 가을 호수처럼 맑고 깊었다. 이제는 왠지 나와 엄마가 언니의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키코 언니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영주, 삿포로에는 눈이 많이 내렸어. 오늘 아침에 우리가 함께 걸었던 공원에도 가보았어. 참, 작은아버지 건강은 좀 어때? 그분 건강이 회복되면 언제든 삿포로에 다시 와줄 거지? 영주의 가족은 모두 내게 하얀 눈처럼 축복이야.’

  오래 전에 보았던 일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눈 덮인 먼 산을 향해 손나팔을 만들어 그리운 이의 안부를 애타게 묻던 여주인공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했다. 나는 마키코 언니의 잔잔한 미소를 떠올리며 답장을 썼다.

  ‘엄마는 여행 다녀와서 한 이틀 몸살을 앓았어요. 물론 아버지는 편안하게 잘 지내고 계시지요. 언니가 보내준 삿포로 공원 풍경은 숨이 막힐 것처럼 아름답네요. 마키코 언니. 보고 싶어요, 아주 많이요. 이담에는 우리,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해요.’




  <당선소감>


   "나이 쉰에 시작한 문학, 꿈 이뤘어요"


  새 학기가 되면 전공이 문예창작과인 아들에게 시집, 소설집, 희곡집, 작법서 등을 구입해주었다. 자연스레 한 권씩 한 권씩 곁에서 읽다 꿈이 생겨났다. 결국 아들과 같은 과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누군가 글은 공부하는 게 아니라 했던가! 

  나는 학부 때도 안했던 공부를 열심히 했다. 밤새 글을 쓰다 날이 훤히 밝은 날도 많았고, 고요해야 들을 수 있는 세상의 작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나는 쑥을 뜯을 때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그만큼 진득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있자면 몇 시간씩 앉아있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이는 참 묘한 쾌감을 줬다.

  나이 쉰이 되어 다시 공부하겠다는 딸의 등록금을 내준 친정아버지께 당선 소식을 알리니 오히려 당신이 고맙단다. 

  좋은 성소로 끌어주신 하느님과 최고의 스승이신 우석대 문창과 모든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나를 가르칠 때 전라도 말로 무척이나 폭폭 했으리라. 함께 공부한 문창과 교우들과 동시랑 회원들이나 매번 흔쾌히 내 글의 독자가 되어 준 동생 영아가 고맙다. 문학을 두 아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어 행복하다. 

  비 오는 성탄 이브에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알려준 전북일보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





  ● 1965년 충남 논산 출생.

  ● 우석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

  ● 동시창작모임 ‘동시랑’ 회원.


 

  <심사평>


   "인간적 화해의 정, 수묵화처럼 담백하게 빚어"


  수필은 대상을 관조하고 성찰해서 삶의 무게와 깊이를 다져가는 데 유용한 양식이다. 일상의 다양하고 독특한 체험이야말로 수필의 마르지 않는 글감이다. 그걸 퍼 올려 씨줄과 날줄로 짜 맞춘 뼈대에 살을 덧대서 한 편의 수필을 완성한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해묵은 정의와는 반대로, 수필을 ‘청자연적’에 은유했던 피천득 선생의 말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하는 까닭이다.

  예심을 거친 작품들 중에서 1차적으로 고른 작품은 ‘소리샘’, ‘슬픈 바람개비’, ‘그해 봄’, ‘복숭아화채’, ‘혼서지’, ‘한선, 가을 매미’, ‘바람의 언덕’, ‘그 골목의 필경사들’, ‘왜 의자는 파란색이었을까’, ‘아버지의 가면’, ‘마키코 언니’ 등 11편이었다.

  이 중에서 눈길을 끈 건 ‘바람의 언덕’, ‘그 골목의 필경사들’, ‘아버지의 가면’, ‘마키코 언니’ 네 편이었다. ‘바람의 언덕’에는 남편의 사업실패로 겪게 된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의 온기와 웃음꽃’을 발견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화자의 따뜻한 시선이 잘 녹아 있었다. ‘그 골목의 필경사들’은 오래된 골목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정겨운 일상을 차분하게 그려냈다. 두 작품 모두 이웃을 대하는 성찰력의 폭과 깊이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지만, 이야기 구성이 다소 산만해서 수필다운 완결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떨쳐내지 못했다.

  나머지 두 작품은 우선 글 읽는 재미가 있었다. ‘아버지의 가면’에서는 젊어서 주물 일을 하셨다가 노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이야기를 다루었다. 아버지를 향한 딸의 복잡하고 애틋한 심경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그린 수작이었다. ‘마키코 언니’는 일본인 사촌올케와 ‘나’(를 포함한 가족)의 오랜 인연을 수묵화처럼 담백하게 빚어낸 작품이다. 국경을 뛰어넘는 인간적 화해의 정이 듬뿍 담겨 있어서 수필적 감동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둘을 놓고 오래 고심했다. ‘아버지의 가면’은 장면 묘사가 생동감이 넘쳤지만 문체가 다소 거칠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키코 언니’는 서사수필다운 박진감은 다소 부족했지만 안정된 문체로 잘 다듬어져서 수필적 완성도가 높았다. 결국 거듭된 퇴고로 작은 흠결까지 걸러내어 정성스럽게 구워낸 ‘청자연적’ 쪽으로 손이 갔다. 당선작으로 함께 올릴 수 없는 여건 탓에 마지막 손길을 아쉽게 접어야 했던 ‘아버지의 가면’의 필자에게는 각별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송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