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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버스는 오지 않는다 / 백승권

 

  6시 30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사를 하고 건물을 나왔다. 퇴근길. 한달 빠르다는 추위는 매서웠다. 녹색불을 향해 발걸음이 빨라졌다. 정지선 뒤 줄 선 차량들의 헤드라이트가 횡단보도를 밝혔다. 가로수들이 별빛을 가리고 있는 보도블록을 지났다. 왼쪽으로 꺾으면 빵과 커피를 파는 가게가 줄 세워져 있었다. 마주오는 사람들을 피해 뚜벅뚜벅 걸었다. 다시 녹색불이 보였고 금새 빨간불로 바뀌었다. 기다린 후 다시 건넜다. 은행 앞을 지났다.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 중엔 중국인들이 많았다. 관광객들이었다. 두 돌도 지나 보이지 않은 아이들이 찬바람에 맨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같은 색의 패딩을 걸친 연인과 팔짱을 낀 중년 남녀가 어깨 옆으로 지나갔다. 다시 왼쪽으로 꺾었다. 오색 불빛이 반짝거리는 간판들이 즐비한 골목으로 향했다. 맥도날드와 자라, 에뛰드 하우스, 스타벅스를 지나쳤다. 생각보다 멀었구나. 걸음이 느려질 즈음 왼쪽에 찾던 계단이 보였다. 왼쪽 코트 안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계단 끝 오른 편에 두 명 정도 대기할 만한 작은 창구가 있었다. 어떤 일로 오셨어요? 기프트 카드요. 쪽지에 이름과 전화번호 적어주세요. 네. 10만원짜리네요? 네.

  9만 7천원을 받고 다시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계단으로 내려와 잠시 멈췄다. 휴대폰을 꺼내 지도앱을 켰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대중교통으로 집에 가는 방법들이 주르륵 나왔다. 버스와 지하철을 통해 가는 방법들이 있었고 1시간 40분에서 2시간 20분 가량이 걸렸다. 19개의 버스 정류장을 지날 것이냐 아니면 28개의 버스정류장과 25개의 지하철역을 지날 것이냐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어느 정류장에서 탈 것인가도 관건이었다. 가까운 정류장에서 오래 기다릴 것인가, 먼 정류장에서 빨리 타고 오랫동안 갈 것인가도 선택해야 했다. 주춤거리다가 고민하고 움직이기로 했다. 안타본 버스를 타기로 했지만 정류장을 찾기가 어려웠다. 지도앱의 해당 정류장이 지금 서 있는 쪽인지 건너편인지 알 수 없었다. 해당 버스는 보였지만 저 버스가 목적지로 향하는지 빙 돌아서 가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무작정 오르기엔 소요시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르는 버스 정류장과 모르는 버스 정류장 사이를 서성거리다가 택시에 올랐다. 강남 교보타워 앞이요. 네.

  택시 안은 따스했다. 온기에 몸이 녹았고 녹은 몸은 흘러내리듯이 파묻혔다. 창 밖의 불빛들이 제각각 흩어지고 있었다. 자동차는 터널과 다리를 건너 논현동을 지나고 있었다. 교보 사거리를 지나 택시는 멈췄다. 걸으며 버스앱을 켜니 도착까지 17분이 남아 있었다. 가까운 빵집으로 향했다. 초코 식빵을 계산하고 정류장으로 향했다. 마주오는 사람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6002번 버스가 도착하는 곳을 찾았다. 길 건너편엔 나이키와 언더아머 매장이 있었고 뒤쪽으로는 자라 매장이 있었다. 인근에 정류장이 많아 헷갈리기 쉬웠다. 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늘 여기서 타는 것은 아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줄 선 사람은 열 명 남짓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줄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줄의 끝에 섰을 때는 질문을 해야 했다. 이게 6002번 줄인가요? 네.

  줄의 끝에서 6002번 승강장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앱을 다시 켰다. 배차 간격은 길지 않았다. 몇 달 전만해도 한 대를 놓치면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몇 달 전이 아니었고 배차 간격이 짧아졌다. 퇴근 시간대라서 그런지 5분에 한대씩 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버스는 45명 정원이었고 입석은 어지간해선 허용되지 않았다. 45명 정원의 버스 두 대가 가득 채워 출발했음에도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버스앱을 다시 켰다. 다음 버스는 7분 후 도착이었다. 

  버스문이 열리고 발을 디뎠다. 카드를 꺼내 찍고 자리를 찾았다. 좌석 밑에 또는 앞좌석 히터가 있으면 다리를 뻗기 불편했다. 히터가 없는 좌석의 위치는 대략 파악하고 있었다. 창 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뒷통수가 닿기 전에 허리를 밀착하고 아래쪽의 레버를 찾아 더듬었다. 레버를 움직이면 등받이 시트가 뒤로 젖혀졌다. 너무 많이 꺾으면 뒷좌석 승객이 좁아지고 불편해질 수 있었다. 등과 목이 너무 곧게 세워지지 않을 만큼의 적당함이 중요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숨을 내쉬었다. 창 커튼도 걷었다. 아침에 올 때는 햇볕이 강해 치는 경우가 많았다. 커튼으로 햇볕을 가려야 눈도 안 부시고 휴대폰 화면도 제대로 보였다. 퇴근할 때는 달랐다. 커튼을 걷으면 야경이 보였다. 도시의 밤이 흩어지는 장면이 파노라마 비율로 펼쳐졌다. 오늘 서울의 마지막 이미지였다.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타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옆자리는 늘 채워졌고 옷과 어깨가 닿을 수 밖에 없었다. 양쪽 다 알고 있었고 심각하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간격을 유지했다. 다리와 무릎이 닿아서도 안됐고 코트 밑자락이나 점퍼가 상대의 자리로 많이 넘어가서도 안됐다. 닿음으로써 서로에게 미칠 어색함과 이물감을 견디는 것보다 조금 움츠리는 게 나았다. 상대방도 비슷하게 생각할지는 알 수 없었다. 버스는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버스 천장의 조명이 눈부셨다. 간혹 꺼주는 기사님도 있었지만 대부분 켜고 달렸다. 눈을 감아도 불빛이 눈꺼풀을 뚫고 들어왔다. 불평할 수 없었다. 모두가 눈을 감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휴대폰을 보고 있기엔 눈이 아팠다. 최근 들어 부쩍 건조해진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낮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3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루 출퇴근 시간 평균 3시간. 일주일 평균 15시간. 한달 20일 근무 기준 60시간, 1년 기준 720시간, 3년치를 계산하면 2160시간. 버스 안에서의 시간만을 환산한 거였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20퍼센트 정도 더해야 했다. 출퇴근을 위해 길 위에서 2700시간을 보냈다. 

  추워도 더워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회사에 오지 않거나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일은 없었다. 출퇴근 시간은 집에서 멀어져 회사로 가까워지고, 회사에서 멀어져 집으로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남편과 아빠에서 직급과 호칭이 다른 직장인으로 바뀌는 시간이었다. 정체성을 갈아 끼울 시간이었고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직장생활 10년을 지나는 동안 비장함은 전 같지 않았다. 멈추면 오르고 멈추면 내리고 놓치면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이동하는 동안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면 현재의 의미가 달라졌을까. 2700시간 동안 어떤 의미를 더할 수 있었을까. 지금 없는 2700시간의 의미는 뭐였을까. 달리는 버스 안에서 뭔가를 무수히 반복하여 내 것으로 체화함으로써 현재를 바꿀 수 있었을까. 음료수 거치대에 매달아 놓은 빵봉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옆에 앉은 중년 남자의 술 냄새가 너무 독했다. 

  서울을 벗어나는 일은 6002번 버스에 승차함으로써 완료되는 게 아니었다. 교통체증엔 예고가 없었다. 터널 안에서도 수십 분을 갇혀 있던 적이 다반사였다. 서울이라고 한자 한자 크게 적힌 전광판이 보이면 반가웠다. 톨게이트를 벗어나야 비로소 서울을 벗어난 것 같았다. 물리적 거리를 정확하게 재지는 않았지만 심적으로는 회사에서 멀어져 집으로 더 가까워지는 경계였다. 고속도로 왼편 창 쪽으로 신도시의 아파트와 인터넷 기업의 사옥이 반짝거리며 흩어지고 있었다. 버스는 왼쪽으로 빠졌다. 길은 2차선으로 좁아지고 가파르게 휘어졌다. 몸이 기울었지만 속도는 줄지 않았다. 곧이어 톨게이트가 하나 더 보였다. 동네로 들어서는 마지막 톨게이트였다. 승객들은 하나 둘 휴대폰을 꺼내 비슷한 메시지를 전했다.

  응, 이제 들어 왔어. 거의 다 왔어.

  버스는 어둠을 뚫고 2차선을 따라 한참을 더 달렸다. 2차선 양쪽엔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틀을 잡고 있었다. 수년 동안 덤프트럭이 모래를 나르고 포크레인이 쉼없이 산을 깎고 파헤치며 찍어 대던 곳이었다. 버스는 사거리에서 왼편으로 꺾어 수 킬로를 더 달렸다. 멀리 상가건물과 아파트 단지들이 늘어선 곳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길도 어느새 6차선으로 넓혀져 있었다. 승객들이 하나 둘 내리고 있었다. 자리가 비워지고 있었다. 교통 카드를 찍는 소리와 버스기사에게 인사하며 내리는 승객들의 소리가 들렸다. 

  성애 낀 창을 문질렀다. 익숙한 불빛, 익숙한 단지, 익숙한 위치. 내려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렸다. 밤은 맑았다. 가로등 불빛은 선명했다. 지나는 차들의 전조등과 후미등이 도드라졌다. 멀리 상가의 불빛들이 소실점을 만들고 있었다. 초록불로 바뀌고 뚜벅뚜벅 건넜다. 대기 차량들의 불빛이 부셨다. 단지 입구로 들어섰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현관문을 열자 잠금장치 신호음이 삐삐빅 울렸다. 중문 앞에 서자 우당탕탕 소리가 들렸다. 압뿌아! 아이의 목소리였다. 실내 복도의 양 벽과 천장을 울리고 있었다. 소리가 가까워지고 중문 앞에까지 다다랐다. 아이 얼굴이 중문 유리창에 닿았다. 8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7시에 알람이 울렸다. 화장실로 향했다. 불을 켜고 문을 열면 찡그린 표정이 거울에 비췄다. 문을 열고 계단 통로로 내려갔다.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3분 거리였다. 이따금 뛰기도 했다. 지금은 달랐다. 출근시간 대 배차 간격은 20분 정도로 일정했지만 각 정류장 도착시간은 그렇지 않았다. 가장 긴 줄 끝에 서면 6002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빨간색과 흰색이 6:4의 비율로 칠해져 있었다. 매일 타는 정류장은 한때 45명 정원인 6002번 버스의 첫번째 정류장이었다. 아파트 단지별 입주 초기에는 승객이 적었다. 그때는 배차 간격도 길었다. 한대를 놓치면 초조했다. 승객들의 주 목적지는 강남역 인근이었다. 출근하는 직장인이었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달랐다면 환승을 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정류장에서 강남까지 가는 데는 50여분이 걸렸다. 대여섯 개의 동네 정류장을 지나 톨게이트로 향하는 2차선을 지났다. 톨게이트를 지나면 바로 고속도로 진입이었다. 진입하기 전까지 버스는 꾸물거렸다. 길은 좁았고 정차는 잦았다. 신도시가 구색을 갖춰가며 입주자들이 늘었고 6002번 승객도 덩달아 늘어났다. 첫번째 정류장에서 정원을 초과할 때도 빈번했다. 나머지 정류장 승객들에겐 앉아서 갈 기회가 없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입석 승객들도 늘어났다. 원칙 상 입석은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버스기사들은 오랫동안 추위에 서서 기다렸을 승객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버스는 계속 정차했고 중앙 통로는 입석 승객들로 가득 채워졌다. 뒤로 좀 가주세요. 정류장이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앉아 가는 승객들은 편했지만 통로를 가득 메우며 비좁게 서 있는 승객들은 달랐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서서 가는 사람들의 표정들이 줄지어 있었다. 버스기사는 운전을 해야 했다. 비포장 길에선 덜컹거렸고 앞 선 자동차와 간격이 안 맞으면 급브레이크도 밟아야 했다. 버스는 달려야 했다. 승객 모두에게 마음을 쏟으며 조심조심 달릴 수 없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도착하는 것만이 가장 나은 배려였다. 서 있는 승객들은 대부분 휴대폰을 보며 중심을 잡고 있었고 앉은 승객들은 대부분 휴대폰을 보거나 모자란 잠을 청했다. 버스는 강남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옆길로 빠지고 속도가 줄면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사람들이 내리면 버스는 다시 동네로 돌아가기 위해 다음 정류장으로 출발했다. 환승을 위해 내려야 했다. 

  강남에서 내린 후 다음 정류장으로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5분 정도 직진 후 횡단보도를 건너면 도로 중앙에 위치한 정류장이 나왔다. 그곳에서 회사로 향하는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강남 한복판을 지나는 버스는 많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버스를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빠르게 멈추고 신호가 바뀌면 바로 출발하는 버스의 속성 상 휴대폰을 쳐다볼 여유도 없었다. 정류장은 타는 사람들과 내리는 사람들, 타려고 멀리서 달려오는 사람들과 신호가 바뀌기 전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하차하자마자 달리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서로의 어깨를 밀치거나 앞사람의 뒤꿈치를 밟거나 잠깐만요 라는 말과 함께 옆으로 비껴 추월하는 사람들로 틈이 없었다. 작은 공항과도 같았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사라졌고 정류장의 빈 자리는 금세 다음 사람들로 채워졌다. 회사로 가는 버스는 서너 대 정도 있었다. 정류장은 매우 길었는데 적당한 타이밍에 타지 않으면 눈앞을 지나가버리기 일쑤였다. 버스를 기다릴 수록 출근 시간은 더뎌지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처럼 일일이 체크 당하거나 업무능력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약속한 시간으로부터 벗어난 시간에 출근한다는 일은 개인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당당한 이유가 있다면 당당하게 늦게 출근하겠지만 버스에 늦게 오르거나 길이 막혔다거나 중간에 도로에서 사고가 생겼다 등의 이유로 늦는 건 늦은 출근의 이유로 꺼내기 망설여졌다. 더 일찍 탔으면 좋았잖아 라고 닥달하는 상사와 동료는 없었지만 단체 생활의 기본 룰을 어기고 싶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여러모로 어색하고 꺼려졌다. 되려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해서 제시간에 바쁜 걸음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는 묘한 즐거움도 있었다. 다음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온통 진하고 선명한 파란색이었다. 강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스였다. 

  버스는 논현과 신사의 몇 개 정류장을 지나 다리를 건넜다. 주로 오른쪽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맑은 날은 멀리 보이고 흐린 날은 안개만 보였다. 물보다 하늘이 보였고 멀리 빌딩숲과 미세먼지로 뿌옇게 보이는 구름이 뒤섞여 있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의 하늘은 황홀했다. 한낮에 곱게 달궈진 구름들이 캔버스 위의 거친 붓자국처럼 칠해져 있었다. 다리의 끝은 한남동이었다. 버스는 대학교 앞에서 정차했다. 20대들로 보이는 이들이 올라탔고 목적지에 걸맞는 사회인의 차림을 하고 있었다. 교실, 사무실 어디서든 괜찮을 듯한 스타일이었다. 아저씨들은 아저씨 차림을 하고 있었다. 동네에 따라 할머니들의 스타일은 달랐다. 하지만 동네를 막론하고 아저씨는 아저씨의 차림을 하고 있었다. 술 취한 20대들도 있었다. 그들은 막 술집에서 나온 것 같았다. 알코올에 젖은 육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 앉았다. 꼬인 목소리로 대화하며 서로에게 정신 차리라고 닦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 중 정신 차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정해진 정류장을 한참 지나치고 있었다. 아 어떡하지 야 정신 좀 차리라고! 외쳐도 아무도 정신 차리지 못했고 아무도 내리지 못했다. 나는 내렸다. 

  업무가 일찍 정리되었다. 7시 전에 일어났다. 인사를 하고 건물을 나왔다. M버스를 타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M버스는 4130번, 4108번 두 가지였다. 둘 중 어떤 버스를 타던 집 근처까지 도달하려면 다른 버스로 환승해야 했다. 배차 시간은 4108번 버스가 조금 짧았지만 퇴근 시간대에는 의미 없었다. 좌석은 늘 가득 차 있었다. 회사 위치는 4108번과 4130번 버스가 고속도로로 빠져 나가기 전 마지막 정류장 인근이었다. 출근 시간대의 관점으로 보면 퇴근 시간대에 이 위치에서 좌석으로 승차할 가능성은 없었다. 대안을 고민하다 한 정거장 앞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한 정거장 앞 역시 북새통이었다. 좁은 인도 위에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오밀조밀 줄 서 있었다. 버스는 빠르게 오고 더 삐르게 출발했다. 이전 정거장에서 승객을 다 채운 버스들이 그냥 지나가고 있었다. 기다리던 이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냥 지나가는 버스를 쳐다봤다. 버스 안의 승객들은 어떤 표정도 없었다. 버스앱을 켰다. 잔여 좌석 0. 절망스러웠다.

  도착한 버스의 잔여 좌석이 너무 적었다. 44명이 채워진 탓에 남은 자리에 1명을 태우고 출발하는 버스도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지쳐 갔다. 중도에 다른 곳으로 떠나는 이들도 빈번했다. 버스는 느린 간격으로 계속 도착했지만 줄은 쉽게 줄지 않았다. 한 시간을 넘기는 동안에도 내 차례의 버스는 오지 않았다. 입석을 요청하는 승객들도 있었지만 버스기사는 정중히 손바닥을 보이며 문을 닫았다. 다음 버스는 20분도 더 지나야 도착했다. 4108번, 4130번 버스 둘 다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기다리는 시간이 1시간을 넘는 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저녁은 밤이 되었고 집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었다. 대안이 필요했다. 

  반대 방향으로 타기로 했다. 반환점을 도는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일단 승차하겠다는 계산이었다. 원래 방향보다 30분 정도 더 소요되었다. 순수 이동시간만으로 쟀을 때 빠르면 한 시간 남짓하던 퇴근 시간은 자연스럽게 두 시간을 넘겼다. 비 오는 날은 더했다. 터널 안에 30분 이상 갇혀 있거나 고속도로로 빠져나오는 데에만 한 시간이 더 걸리는 적도 있었다. 7시에 회사에서 나와도 9시가 넘어야 집에 도착하는 일이 허다했다. 택시로 40분 정도 걸리던 퇴근은 두 번의 버스 탑승으로 갔을 때 2시간 40분까지 걸리기도 했다. 집은 멀었다. 아니 회사가 멀었다. 출근할 때는 회사가 멀었고 퇴근할 때는 집이 멀었다. 하염없이 먼 집이라도 도착해야만 했다. 집에 가야만 하는 당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집은 원래 그런 곳이었다. 도착하는 곳, 마지막 목적지, 도달해야만 하는 곳, 내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집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은 최종 목적지이자 퇴근의 모든 이유였다. 출근의 모든 이유이기도 했다. 집은 건물이 아니었다. 건물로만 기능했다면 침낭과 텐트를 구입해 회사 건물 지하에서 숙식해도 상관없었다. 월급을 모아 회사 옆에 거처를 구해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집은 그런 게 아니었다. 하찮은 내 몸 하나 먹이고 뉘일 곳이 아니었다. 집에는 나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아내와 우리의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나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늘 원점으로 향했고 집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안도할 수 있었다. 내 사람들을 품에 안고 뺨을 부비고 입을 맞추며 몸을 녹이고 더운 음식을 삼킬 수 있었다. 집은 지금껏 내가 이룬 모든 것의 상징과 다름 없었다. 내 사람들이 거하고 그동안 산 책과 음반, TV와 블루투스 스피커가 놓여 있었다. 완전히 누워도 자리가 남는 길고 푹신한 쇼파가 있었다. 오래된 냉장고에는 남은 오렌지 주스와 우유와 캔콜라가 있었다. 몇 주 전 구입한 커피 머신 옆엔 다양한 색의 커피 캡슐이 투명한 박스에 담겨 있었다. 식탁 오른편의 수납공간에는 늘 빵이 있었다. 세탁실을 열면 정면에 세탁기가 있었고 앞에 빨래바구니가 있었고 위에 선반이 있었다. 선반 위에는 컵라면과 과자가 있었다. 바닥에는 바나나 송이와 귤과 박스에 담긴 감이 있었다. 아내는 인터넷으로 며칠에 한번 꼴로 장을 봤고 세탁실과 냉장고는 늘 간식과 과일과 음료수로 넘쳤다. 회사는 그렇지 않았고 집은 그랬다. 집은 풍요로움과 온기가 넘치는 공간이었고 회사는 긴장과 피로와 한기가 서린 공간이었다. 

  집에 도착해 배를 채우고 몸을 씻고 아이를 재우면 10시에서 11시 즈음이 되었다. 아이의 장난감과 물통을 정리했다. 그제서야 하루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과자나 과일을 꺼내거나 오렌지 주스나 맥주를 꺼냈다. 티비를 켰다. 영화를 한편 다 보기도 했지만 중간에 눈이 감기면 바로 끄고 침대 위로 몸을 옮겼다. 왕복 네 시간의 출퇴근을 마치면 집에서 주어지는 온전히 쉬는 시간은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이따금 억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회사에서 막 나온 파릇한 기분이 집에 도착하고 나면 시들어 버릴 때가 많았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회사에서 묻은 기운은 집에 도착할 즈음이면 완전히 제거되어 있었다. 두 시간의 이동 시간은 집과 회사의 구분을 명확하게 해주었다. 남은 업무를 가져와 새벽까지 처리하거나 따로 시간을 내 주말 업무를 하는 적도 있었지만 집과 회사는 비현실과 현실처럼 서로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서린 기운을 안고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다른 세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그 먼 길을 왔구나.

  아이가 쿵쿵쿵 작은 발로 달려오고 온기가 온몸을 감싸고 거의 모든 물건들의 위치를 알고 있는 곳. 긴장과 불안을 덜어내고 온전히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곳. 먼지를 씻어내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소재의 옷으로 갈아입는 곳,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 살아있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곳, 여기를 여기답게 유지하기 위해서 잠들어야 했다. 다시 일어나야 했다. 다시 눈곱을 떼고, 머리를 감고, 얼굴과 손에 비누칠을 하고 두터운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서야 했다. 모든 잠이 달콤하지 않았고 눈 떠야 하는 모든 아침이 가볍지 않았으며 통증에 부들부들 떨어야 했을 때도 문을 열고 나가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버스가 갑자기 늦게 오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기다려야 했다. 버스를 타야 집을 지킬 수 있었다. 집을 지켜야 나와 우리를 지킬 수 있었고 나와 우리를 지켜야 내가 왜 살아있는지 내게 증명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회사를 향하는 일은 매일 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기꺼이 거대한 톱니바퀴 안에 몸을 내던지는 일이었다. 바퀴 사이 사이에서 몸의 일부가 으깨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요란스럽지 않게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견디고 나면 다시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쿵쿵쿵 작은 발로 달려오는 아이를 안고 지친 표정의 내 사랑에게 선물을 안겨줄 수 있었다. 나를 옮기고 옮김으로써 나는 집의 일부로 기능할 수 있었다. 

  알람이 울렸다. 꿈에서 깼다. 머리맡을 뒤적거렸다. 7시. 몸을 일으켰다. 커튼이 두텁게 쳐진 집안은 어두웠다. 아이와 아내는 거실에서 잠들어 있었다. 살금살금 욕실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물을 틀고 샤워기로 머리를 감았다. 부운 눈과 뺨에 비누거품을 문질렀다. 얼굴과 머리의 물기를 제거하고 셔츠 단추를 잠갔다. 왁스를 바르고 안경을 걸쳤다. 문을 열고 계단 통로로 내려갔다. 계단의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3분 거리였다. 출근시간 대 배차 간격은 20분 정도로 일정했다. 가장 긴 줄의 끝에 서면 6002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강남행이었고 빨간색과 흰색이 6:4의 비율로 칠해져 있었다. 매일 타는 정류장은 한때 45명 정원인 이 버스의 첫번째 정류장이었다. 아파트 단지별 입주 초기에는 승객이 적었다. 그때는 배차 간격도 길었다. 한대를 놓치면 초조했다. 승객들의 주 목적지는 강남역 인근이었다. 출근하는 직장인이었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달랐다면 환승을 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정류장에서 강남까지 가는 데는 50여분이 걸렸다. 대여섯 개의 동네 정류장을 지나 톨게이트로 향하는 2차선을 지났다. 톨게이트를 지나면 바로 고속도로 진입이었다. 진입하기 전까지 버스는 꾸물거렸다. 길은 좁았고 정차는 잦았다. 신도시가 구색을 갖춰가며 입주자들이 늘었고 6002번 승객도 덩달아 늘어났다. 첫번째 정류장에서 정원을 초과할 때도 빈번했다. 나머지 정류장 승객들에겐 앉아서 갈 기회가 없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입석 승객들도 늘어났다. 원칙 상 입석은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버스기사들은 오랫동안 추위에 서서 기다렸을 승객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버스는 계속 정차했고 중앙 통로는 입석 승객들로 가득 채워졌다. 뒤로 좀 가주세요. 뒤에도 자리 없어요. 정류장이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앉아 가는 승객들은 편했지만 통로를 가득 메우며 비좁게 서 있는 승객들은 입장이 달랐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서서 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피로감은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애달픈 풍경이었다. 버스기사는 운전을 해야 했다. 비포장 길에선 덜컹거렸고 앞 선 자동차와 간격이 안 맞으면 급브레이크도 밟아야 했다. 버스는 달려야 했다. 승객 모두에게 마음을 쏟으며 조심조심 달릴 수 없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도착하는 것만이 가장 나은 배려였다. 서 있는 승객들은 대부분 휴대폰을 보며 중심을 잡고 있었고 앉은 승객들은 대부분 휴대폰을 보거나 모자란 잠을 청했다. 버스는 강남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옆길로 빠지고 속도가 줄면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촉촉히 성애 가득한 창을 문지르며 다음 정류장을 안내하는 방송에 귀 기울였다. 아침잠에서 덜 깨어 멍한 기분이 채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내릴 때는 양쪽 좌석에 앉은 사람들과 통로 쪽에 서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승차했던 문으로 하차해야 했다. 교통카드를 태그하며 나는 소리가 삑삑 일정하게 울렸다. 가방과 지갑, 휴대폰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도 했다. 버스 밖은 추웠다. 

  다음 정거장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정면으로 내리쬐는 햇볕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건널목을 지나 도로 중앙에 위치한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140번, 470번, 472번 버스를 기다렸다. 수 대의 버스들이 동시에 도착해 빠져 나갔고 번호를 빠르게 파악해 오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었다. 버스는 목적지 뿐만 아니라 경로도 같았다. 직진 후 다리를 건넜고 터널과 톨게이트를 지났다. 창밖에는 퇴근할 때의 풍경들이 역행하고 있었다. 눈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다. 시야가 가려진 상태와 크고 작은 차량들이 자기 차선을 찾으려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급정거를 하는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다. 버스 안의 승객들이 동시에 앞으로 쏠렸다가 뒤로 밀리며 돌아왔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버스기사였다.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는가 하면 원인이 된 차 옆에 잠시 멈춰 앞문 또는 창문을 열고 거세게 따졌다. 버스기사가 잘못한 경우는 없었다. 그랬다면 차를 세우고 따지지 않았을 테니까. 터널을 지날 때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퍼질 때가 있었다. 소방차와 구급차가 지나갈 때였고, 119 구급차의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럴 때면 도로 위의 거의 모든 차량이 바깥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며 중앙의 자리를 내주었다. 119 구급차는 빠르게 그 사이를 헤쳐 지나갔고 간혹 뒤를 퀵을 보내는 오토바이나 택시가 따라가는 경우도 있었다. 구급차의 목적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구를 태우고 어디가 위급한지 파악할 길 없었다. 당장 급한 건 출근이었고 버스는 회사 근처 정류장에 도착했다. 

  지겹고 피곤했다. 이사할수록 이직할수록 출퇴근 거리는 길어지고 시간은 늘어갔다. 6002번 버스는 정점이었다. 버스는 죄가 없었다. 현재 거주지와 직장을 선택한 것은 나였다. 이런 사실 확인이 출퇴근의 피로감을 줄여주지는 못했다. 장시간 출퇴근은 어지럼증을 불렀다. 집에 도착했을 때 긴장이 희미하게 풀어질 무렵 공간이 흔들렸다. 머리 속에서 내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만히 누웠다.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눈을 감아도 진동은 떠나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렸지만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잠이 들고 눈이 떠지면 다시 출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다시 줄을 서고 다시 버스가 도착하고 다시 버스문이 열리고 다시 버스 계단에 오르고 다시 교통 카드를 꺼내 태그하고 다시 괜찮은 빈자리를 찾아 앉아야 했다. 승객이 모두 앉으면 버스는 출발했고 앉은 자리가 모두 채워지면 이후에 타는 승객들은 입석으로 가야할지 선택해야 했다. 앉은 채 잠이 들어도 선 채 잠에 들지 못해도 버스는 좁은 길과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다시 좁은 길을 지나 서울 도심으로 들어왔다. 앉은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며 하나 둘 중앙 통로의 빈틈으로 직립했다.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통로는 가득 차 있었다. 정차 후 앞문이 열리면 버스카드를 태그하며 내렸다. 각자의 목적지로 각자의 회사로 다음 정류장으로 흩어졌다. 어디로 가는 걸까. 아니. 이 시간에 다들 왜 그렇게 어딜 향하고 있는 걸까. 소가 된 것 같았다. 도살의 고통과 맥도널드 패티가 되는 다진 고기의 운명이 동일하게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커다란 버스에 가득 채워져 도심으로 이동하는 풍경은 시골에서 기른 가축을 도시로 유통시키는 과정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참한 기분보다는 궁금했다. 남은 생 얼마나 더 오래 이 버스를 타고 집과 회사를 오가야 할까. 회사를 가까운 곳으로 옮기면 나아질까. 배차 간격이 짧아지면 나아질까. 나아진다고 해서 버스를 타는 일이 즐거워질까. 창 밖의 풍경이 달라지면 생이 다른 프레임으로 다가올까. 몇 개의 회의를 마치고 몇 개의 메일과 함께 파일을 전송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7시 조금 지나 일어났다. 조용히 인사를 하고 건물을 나왔다. 집으로 가는 버스는 두 가지였다. 둘 중 어떤 버스를 타던 집 근처까지 도달하려면 다른 버스로 환승해야 했다.




  <당선소감>


   경계를 벗어난 사건에 대하여


  소설과 현실의 경계는 영화와 현실의 경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날이 많았습니다. 글과 영상과 경험. 셋 사이에 선을 긋는 일이 점점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글이 끝나는 지점에서도 현실은 여전히 계속 되었고 영상의 잔상은 다시 글이 되기도 했으며 다시 현실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곤 했습니다. 현실 속에서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견디고 살아가고 잠이 들고 이동하고 다시 글을 쓰고 살아내고 잠이 들고 견디고… 피로감이 쌓여갔습니다. 늘 새로운 종류의 피로감이 생성되었고 이를 글로 표현하는 방식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어느 날 돌아보게 된 저의 글이 모두 같은 모양을 띄고 있을까 봐.

  신춘문예는 장벽이었습니다. 두려워서 올라야 했고 넘지 못하더라도 오르는 척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현실을 견디기 위해 현실에서 탈옥하는 방법 중 하나였고 대답을 듣지 못하거나 문이 열리지 않더라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건 제 영역과 권한을 벗어난 일이었으니까요.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기다리거나 바라는 건 연습을 거친 후에 괜찮아졌습니다.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저기요, 제가 당선이라니요. 타인들의 영역에서 영주권을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무명의 소작농에게 소유권을 증명하는 도장이 찍힌 토지문서가 발급된 사건이었습니다. 

  단편소설 ‘버스는 오지 않는다’는 현실 영역과 비현실 영역 사이의 이동에 대한 글입니다. 주 5일 같은 시간 집에서 나와 바퀴 달린 네모난 박스에 몸을 싣고 거주하는 영토의 경계를 벗어나 회사가 있는 영토의 경계로 들어서는 일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습니다. 도착한 곳에서 글을 쓰며 돈을 벌고 먹을 것을 사고 잘 곳을 구했고 어둑해진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같은 버스를 탔습니다. 몸과 시야와 생각과 만나는 사람들과 풍경이 이동하는 동안 지금과 여기와 오늘과 내일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넘쳤습니다. 몸이 현실에 놓여 있는 동안 생각은 다른 수송기기에 실려 알 수 없는 행선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는 그 증거입니다. 또는 다른 행선지이기도 했습니다. 

  출발지와 목적지는 늘 바뀌고 있습니다. 끝과 끝에서 밀어주고 끌어준 분들이 있어 이 글이 태어날 수 있었고 당선의 영광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글과 말로는 영영 갚지 못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과 광남일보 담당자님께 고마운 마음을 거듭 전합니다. 제 인생의 끝과 시작, 영원한 구원자이자 슈퍼히어로, 첫사랑이자 아내인 김수연과 ‘하얗고 우아하고 맑은’ 우리의 모든 것 백아랑에게 내 모든 사랑과 기쁨을 전합니다. 부모님과 친구들, 동료들은 말할 것도 없겠죠. 그대들이 없었다면 이런 행운은 절대로 없었을 것입니다. 밥과 고기, 커피를 사겠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다시 연락할게요. 



  ● 1981년 경기 인천 출생.

  ● 협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 졸업.

  ● 이스터커뮤니케이션 카피라이터, 나인후르츠미디어 카피라이터, 디메이저 카피라이터, 현재 웰콤 퍼블리시스 카피라이터


 

  <심사평>


  소재와 주제 다양···치열한 산문정신 돋보여” 


  소설이 침체를 겪고 있는 이때 낙심하지 않고 소설가로서의 꿈을 닦아가고 있는 분들이 고맙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남직한 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는 것이 소설이다. 여기에 작의에 따라 적절한 인물을 배치하고, 사건을 통한 갈등들을 구성하며, 그 갈등의 해소로 삶의 성찰을 되짚게 만든다. 하지만 아쉽게도 투고된 작품들은 서사의 깊이에 있어서 미진함을 남겼다. 또한 소설이 갖는 미학적 감수성과 삶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산문정신과도 관계있는 일인데, 주제를 붙드는 힘이 부족했다. 

  투고된 작품들은 어떤 이슈나 경향에로의 쏠림은 없었다. 그만큼 소재와 주제도 다양했다. 정밀하고도 개성 있는 문장을 만나면 반가웠다. 작품성을 담보하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에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문장이다. 작가는 우리글을 다루는 장인이다. 장인이 문장을 다루지 못하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도 없다. 굳이 산문적 용어와 일반적용어로 구분하는 이유가 글쓰기에서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염두에 둔 까닭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문장의 밀도와 문채를 논하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투고된 작품들 가운데 몇몇 작품은 오랜 습작의 노력이 엿보였다. 

  최종심에는 일단 네 편의 소설을 올렸다. ‘폭설’과 ‘#그런데 나는’, ‘내 이름은 없습니다’와 ‘버스는 오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폭설’은 사라진 아내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인데,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촘촘하게 엮이지 못했다. 게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처음에 보여줬던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은 삭막한 조직생활과 관계 속에서 겪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화장실에서 배설을 통한 쾌감으로 풀어내는 것이 퍽 인상 깊었지만 등장인물의 성격이 재대로 형상화되지 못했다. 

  끝까지 당선작을 놓고 고심하게 만든 건 ‘내 이름은, 없습니다’와 ‘버스는 오지 않는다’ 였다. ‘내 이름은, 없습니다’는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공존을 그린 내용으로 소유와 계층, 주종관계의 모호함, 존재에 대한 각성을 적절히 잘 그려내고 있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는 하루 4시간을 길에 소비함으로써 가족의 생계와 안위를 책임지는 가장의 고단함을 그린 이야기이다. 우선 치열한 산문정신이 돋보였다. 갈수록 파편화되고 고립돼가는 세태에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가장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갔다. 작가는 ‘버스는 오지 않는다’에서 말한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그 먼 길을 왔구나”라고. 작가가 말하는 ‘여기’는 다름 아닌 가족들이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탈락하신 분께는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심사위원 : 은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