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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쉰줄에 공돌이 / 성리현

 

  아, 이 놈… 아니, 이 분이구나…. 

  말로만 듣던 반도체장비 스핀코터를 코앞에서 보니 나지막이 탄성이 흘러 나왔다. 가정집 전기밥솥보다 조금 큰 타원형의 모양새는 웅크리고 앉아 소꿉장난을 하던 유치원 시절의 딸내미를 연상시켰다. 은은한 회색빛 표면 맨 위에 있는 파란색 뚜껑은 확연히 도드라져 보였다. 뚜껑을 살짝 여니, 지름이 10센티 가량 되는 동그란 물체가 다가왔다. 아, 이게 에어척이구나. 음, 여기에 샘플을 올려놓고 코팅을 하는 거겠지. 

  뚜껑을 닫고 장비를 살짝 들어보았다. 집에서 가끔 드는 20키로짜리 쌀 한 부대보다 조금 가벼웠다. 딸내미를 가슴에 안듯 스핀코터를 꼭 안은 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제부터 내가 이걸 잘 다룰 수 있을까. 이 장비와 함께 인생2막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을까…. 

  한영테크에 첫 출근하는 날, 내가 사무실에 도착한 때는 오전 7시가 갓 넘은 이른 시각이었다. 3년만에 새로 얻은 직장에 대한 설레임 호기심 기대감 등이 뒤섞여 무던히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장인 6촌형이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 열댓평 되는 실내의 오밀조밀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른편엔 폭 1미터에 길이 2미터 가량 되는 긴 작업대와 책상 두 개가 일렬 종대로 놓여있다. 왼편엔 원탁 테이블과 책상 두 개가 횡으로 배치돼있다. 사장 것으로 보이는 책상은 왼편 끝 책상 옆구리에 T자로 물려 출입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좁은 공간에 이렇게 많은 집기들이 있다니, 오밀조밀이 아니라 차라리 덕지덕지라고 말하는 게 나을 성 싶다. 

  나는 스핀코터를 작업대에 내려놓고 내 자리가 어디일까 둘러 보았다. 오른편 끝 책상에 다다르니 모서리를 투명 테이프로 붙인 A4용지가 보인다. ‘문호인 이사 환영!’ 이라는 검정 싸인펜 글씨가 적혀있다. 형이 직접 썼을 거라는 생각에 배시시 웃음이 흘러 나왔다. 컴퓨터 전원을 누른 뒤, 창 밖을 내다보니 4차선 도로위로 차들이 달리고 도로 저편 빌딩들 사이로 아지랑이가 솔솔 피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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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른다더니, 딱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형광등 하나 제대로 갈아끼울 줄 모를만큼 천하의 기계치인 내가 나이 오십줄에 공돌이 생활을 하게 되다니. 평범한 공돌이도 아니고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게 되다니, 이건 정말이지 잠자던 소가 부스스 일어나 하품하면서 웃을 일이었다.

  나는 이제껏 글만 주물럭거리며 살아온 오리지널 문돌이였다. 중고교 시절 국어나 역사같은 과목은 재미가 있었지만 수학이나 기술 등은 아예 교과서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관심을 가지려 해도 DNA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었는지 도통 흥미가 생기질 않았다. 한편으론 야구 축구 배구 등 스포츠 분야를 좋아했다. 틈나는대로 스포츠 전문 일간지와 주간지를 읽으며 국내외 팀들의 동향과 판도, 유명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대학 학과도 적성에 맞는 국문과를 택해 캠퍼스생활 내내 시와 소설 속에 빠져 지냈다. 친구들과 문학을 안주삼아 권커니 잣거니 하면서 밤을 하얗게 새우곤 했다. 그 와중에도 스포츠 전문지는 손에서 놓지 않았고, 간혹 야구장이나 축구장을 찾아 모교팀을 목청껏 응원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나는 문돌이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신문기자시험에 합격, 사회생활의 첫 장을 열었다. 스포츠 매니아의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내가 입사한 신문은 종합지가 아닌 스포츠지였다. 나는 또 취재기자가 아닌 편집기자직을 택했는데, 편집기자는 밖으로 나다니는 걸 꺼려하는 내 성격에 딱 맞는 천직이었다. 기사를 직접 쓰지 않으면서도, 글쟁이 열정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편집기자의 주 업무는 기사의 핵심을 찌르는 간결한 제목을 뽑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뛰어난 기자가 되고 싶어 퇴근후에도 제목을 연구하고 고민했다. 영화, 노래, 소설, 심지어 아동 도서에서도 근사한 제목거리를 건져 올리곤 했다.

  동료들의 찬사를 받은 제목 중에 <김기태, 김의 전쟁> <양준혁, 양의 침묵>은 영화에서 따온 것이고, <굳세어라 박찬호>는 노래방에서 노래하다 메모해둔 것이었다. <이상훈, 내게 홈런을 뺏어봐>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책 제목에서 뺏어왔고, <김용수 날자 선동열 떨어지다>는 어린이용 속담 사전에서 응용한 것이었다. 지면에 생생하게 자리잡은 나의 명작들을 볼땐 자식 대하듯 크나큰 애정이 솟아났고, 동료들은 물론 경쟁지 기자들까지 내 작품을 모방하는 걸 볼땐 가슴 뻐근한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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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 붉은 꽃 없고, 달도 차면 기운다! 

  1998년이던가, 프로야구 해태팀의 몰락을 다룬 기사의 제목을 달 때 부제로 인용한 경구였다. 담당 취재기자가 자신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라며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로부터 몇년 후, 회사는 딱 그런 운명이 됐다. 한낮의 태양처럼 뜨거운 인기를 모으던 신문은 어느 날 부턴가 저무는 석양처럼 쓸쓸히 기울어갔다. 지하철에 무료신문들이 속속 등장하며 스포츠신문 가판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더니 인터넷 매체들까지 날로 위세를 더해갔다. 사람들은 갈수록 스포츠신문을 사보질 않았다. 무료신문과 인터넷에 공짜기사가 널려 있는데 굳이 돈을 내고 신문을 살 이유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스포츠신문 광고주들의 이탈이 이어졌다.

  회사는 점차 가판을 포기하고 배달판 확장에 안간힘을 썼지만, 이번엔 혜성과 같이 나타난 스마트폰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세상 뉴스를 보는 창’이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스마트폰은 스포츠지뿐 아니라 종이신문 자체를 무용지물로 몰고 가는 괴물이었다. 

  적자의 수렁에서 회사가 할 수 있는 건 임금삭감과 구조조정뿐이었다. 사원들의 월급을 거의 반으로 줄였고 근속기간이 오래된 사원들을 대상으로 틈나는 대로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생각했던 인원수에 못 미쳐 한 해에 다섯 번 실시한 적도 있었다. 급여와 인력을 그렇게 줄 줄였는데도 회사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칼바람이 휘몰아치던 3년전 겨울, 회사는 또다시 명퇴의 칼을 뽑아들었다. 이번이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며 조만간 정리해고에 들어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쉰을 눈앞에 둔 나이에 나는 결국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편집부장으로 몇년째 근근이 버티던 중이었다. 더 이상은 구차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가라앉는 난파선에서 이 눈치 저 눈치 봐가며 살아남겠다고 발버둥치는 건 어찌보면 죽음만도 못한 고통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비장한 각오를 가슴속에 꾹꾹 묻었다. 그래, 차라리 바다로 뛰어들자. 설마 한조각 물거품으로 사라지기야 할까. 죽을 힘을 다해 헤엄치면 저 멀리 비옥한 땅에 반드시 닿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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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살 많은 6촌형에게서 전화가 온 건 희망의 상징이라는 노란 개나리꽃이 집 담벼락을 타고 오르던 올 3월말, 정확히는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20년전 쯤엔가 신문사로 급히 찾아와 50만원을 빌려갔던 형이었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왔지만, 별 왕래도 없던 6촌동생에게 급전을 구하는 모습에선 궁색한 처지가 고스란히 묻어났었다. 화학공학과 출신인 형은 수년째 일제 반도체장비를 수입 유통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한 뒤 서둘러 돌아섰다. 그후론 어디론가 잠적했다는 얘기가 들려올 뿐 도통 소식이 없던 터였다. 

  형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이게 몇 년만이냐고 운을 뗀 형은, 내가 이십년쯤 된 것같다는 대답을 하기도 전에, 얼른 다음 말을 꺼냈다. “기뻐해라. 내가 드디어 첨단 반도체장비를 개발했다.” 이 형이 이렇게 급한 성격이었나, 라고 생각하며 “그래요…”라고 다소 심드렁하게 답하자 이번엔 웃음섞인 호탕한 목소리를 내 귓전에 날려 보냈다. “한영테크! 한영테크 한번 검색해서 훑어봐. 메인 화면에 내 사진하고 반도체 장비 사진들이 좌악 나올거다. 하하하.” 

  통화는 그렇게 일방통행식이었다. 나는 별 말없이 이따금 응, 네, 아, 그렇군요, 하는 추임새를 넣어줄 뿐이었다. 목소리를 점점 높인던 형은 갑자기 술이 당긴다는 말을 던지더니 내가 사는 동네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형은 맥주잔을 벌컥벌컥 비우며 살아온 얘기를 가득 쏟아냈다. 스핀코터라는 반도체 장비를 개발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했다는 대목에선 눈시울을 잠깐 붉히기도 했다. 

  요지는 이랬다. 국내 이공계 학생들이나 연구원들이 주로 쓰는 일본제 스핀코터는 성능도 별로 안좋은 게 값만 터무니없이 비싸다. 고장이라도 나면 에이에스받는 한두 달동안 연구를 중단해야 하는 폐단도 있다. 그런 점에 착안해 성능 좋고 값싼 국산장비를 개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마침내 모델명 ACE-7이라는 명품을 만들었다. 국내시장 초기반응은 기대 이상이고 앞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도 휩쓰는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형은 스핀코터 본고장인 일본에 무턱대고 찾아간 것부터 끝내 자금이 달려 모든 걸 포기하려 했다는 얘기까지 줄줄이 늘어놓았다. 세상을 하직하려고 수면제 백 알을 입안에 우겨넣었다가 사흘만에 깨어났다는, 믿지 못할 얘기까지 꺼냈다. 예전에 내가 두세 번 봤던 형수와는 이혼했고 6년전엔가 재혼했다고 했다. 지금의 형수와 식은 올리지 않고 살고 있는데,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의지가 되는 분이라고 했다. 

  형의 얘기가 귀에 쏙쏙 들어온 건 아니었다. 평생 문돌이로 살아온 내게, 공학계의 상징 물질인 반도체에 관한 스토리는 어찌보면 하품나는 얘기에 가까웠다. 다만 전체적인 맥락은 형이 고생 끝에 낙을 보게 됐다는 것이니 다행이기도 하고 일견 부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성공했으면 예전에 꿔간 돈이나 갚지, 라고 웅얼거리던 차에 형이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옛날에 오십만원 빌렸었지? 이제야 갚아서 미안하다. 그리고 너, 지금쯤 신문사 부장, 아니 편집국장 하고 있는 거 아냐?” 

  그야말로 빈집에 황소가 들어온 격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받는 척 돈을 받았지만 가슴은 쿵쿵 뛰었다. 막노동 잡부로 근근이 살아가는 내게 50만원은 엄청난 실존의 크기로 다가왔다. 무려 5일치 일당에 가까운 돈을 한목에 움켜쥐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좀 더 빌려줄 걸,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렇게 성공했으면 물가상승률 감안해서 한 100만원은 줘야 하는거 아닌가, 궁싯거리기도 했다. 형과 나의 처지가 어쩜 이렇게 정반대로 뒤바뀔 수 있을까, 씁쓸한 마음이 일기도 했다. 실로 오만 가지 감정을 촉발시킨 돈, 50만원이었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 두 잔이 연거푸 입속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취기가 오른 나는 3년 전에 명퇴했고 지금은 막노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꺼내고 말았다. 무얼 바라고 한 얘기는 아니었다. 단지 아등바등 살아가는 내 처지에 대해 넋두리를 하고 나면 막힌 가슴이 조금 뚫리지 않을까 싶어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일 뿐이었다. 

  # 

  그런데 그게 공돌이 세계로 들어서는 도화선이이 될 줄이야. 

  “명퇴? 막일을 한다고?…” 내 말에 어안이벙벙한 표정을 짓던 하던 형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그 침묵은 형의 급한 성질을 예열시키는 잠깐의 호흡에 불과했다. 소주 한잔을 입안에 털어놓은 형은 골뱅이 안주를 뒤척거리다 말고 젓가락을 탁자위에 탁 내려놓았다. 

  “호인이 너 지금 헛고생 하고 있다는 얘긴데, 그럼 우리 회사에 들어와라!” 

  흐흡! 생각지도 못한 형의 말에 나는 술기운이 확 달아나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일단 내색하지 않고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는 생각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형을 바라보았다. 귀는 어느 때보다 쫑긋 열어둔 채. 

  “그러잖아도 몇주 전에 관리부장이란 놈이 그만뒀어. 모바일게임 회사 네트워크 관리를 맡게 됐다나 어쨌다나, 갑자기 사표를 내더라고. 그 자리가 너한테 맞을 거 같아.”

  아이고, 이게 웬 떡이냐! 나는 하마터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를 뻔 했다. 하지만 곧바로 찾아든 생각 하나가 용케도 내 손과 발을 붙잡았다. 천하의 기계치가 반도체장비 회사의 부장 자리를? 이게 대체 나한테 맞는 옷인가? 

  “근데 형, 난 공대 출신이 아니라 반도체 같은 건 잘 모르는데. ”

  슬며시 던진 말에 형은 우물거리던 골뱅이 한 점을 삼키더니 대뜸 받아쳤다. 

  “야야! 네가 문과출신이고 나이 좀 먹었다고 반도체 관련 일 못하란 법 있냐? 이공계 아니어도 너 정도 연륜이면 우리 회사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거다. 내가 뭐, 아무 생각없이 입사하라 그러는 것 같냐? ”

  형은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면서 말을 보탰다. 

  “호인아, 사람은 말야.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면 안돼. 이 형을 봐라.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냐. 아이 캔 두 잇, 나는 할 수 있다! 관리부장은 무슨, 관리이사 자리를 줄테니 멋지게 한번 해봐.” 

  형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사나흘 시간을 줄 테니 좋은 쪽으로 결론 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곤 나의 입사를 기정사실화하듯, 회사의 비전, 매출 현황, 업계 동향까지 소상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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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보면 지난 3년간 내 생활은 막막하다 못해 절망적이었다. 명퇴직후 주간지와 인터넷신문 몇 군데를 노크해 봤지만, 늙다리를 반겨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치킨집이나 피자집 생각 해봤지만 백에 한두 명 살아남을까 말까 한다는 소리에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대리운전 기사나 해볼까 했지만 그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마침 대리기사를 하던 동네 후배에게 물으니, 녀석은 코웃음을 쳤다. 승용차는 물론 승합차, 트럭까지 운전해야 하고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외제차도 몰아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2종 보통면허로 달랑 승용차만 몬데다, 스틱차량은 엄두도 못내는 내 운전경력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급기야 신문광고를 통한 유통사업에 손을 대봤지만 올드 매체인 신문을 매개로 뭔가를 한게 잘못이었다. 열 달동안 광고비만 들입다 붓다가 끝내 두손 들고 말았다. 

  파이낸셜 대표이던 대학 선배에게 속아 그나마 남은 돈 홀랑 날리기도 했다. 애초에 월 20%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그 인간 딱 넉달만에 줄행랑쳤을 때 배신감보다는 자책감이 더 크게 밀려왔다. 

  결국 난 인테리어 경력 30년의 동네 선배를 찾아가 인부로 써달라고 하소연하기에 이르렀다. 말이 인테리어지 사실은 미장 방수 철거 페인트 등 온갖 일을 다 하는 소위 잡테리어 업체였다. 그런 곡절로 막일꾼이 되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으니, 마음속에 희망이니 비전이니 하는 것들이 꿈틀댈 리 없었다. 시멘트포를 나르고 삽질이나 하는 내 처지에 대한 체념과 넋두리로 일상을 채울 뿐이었다. 

  이 넓은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막노동뿐이라니, 통탄할 노릇이었지만 냉혹한 현실이었다. 기사나 주물럭대며 제목입네 달아온 편집기자의 이력은 신문사라는 울타리를 떠나는 순간 구겨진 휴지나 다름없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론 단 한발짝도 온전히 세상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걸, 나는 그렇게 비통하고 막막한 마음으로 깨달아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 벼락같은, 그야말로 로또 일등같은 행운인가. 잠적했던 6촌형이 구세주처럼 나타나 나를 반듯한 직장인으로 이끌어주겠다니. 형의 제안을 받은 이후로 난 마음 속으로 형에게 수십 번도 더 큰절을 올렸다. 선택의 여지가 있을 턱이 없었다. 단지 형의 제안을 냉큼 받아먹기엔 마지막 자존심, 지푸라기같은 하찮은 자존심이 남아 있어서 사나흘 시간을 끌었을 뿐이었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나는 형에게 전화를 걸어 또박또박 말했다. “나, 형 밑으로 들어갈게요." 형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잘 생각했다. 넌 잘 할 수 있어!”

  순간의 적막을 파고들며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공돌이생활 처음이라 겁도 좀 나지만 이공계니 반도체니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 아냐? 신문사 입사했을 때 초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한번 해볼게요.” 형의 웃음소리가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하하, 겁내지 마라. 네 뒤엔 이 형이 있다! 문호인 이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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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에 앉아 한영테크 사이트에 접속하니 회사연혁, CEO인사말, 그리고 은은한 빛깔의 ACE-7 이미지가 스르륵 펼쳐졌다. 며칠 전부터 꼼꼼히 살펴본 홈피였지만 막상 회사에 출근해서 보니 글자 하나 하나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나는 깍지 낀 두 손을 뒤통수에 댄 채, 그동안 형에게 들은 것과 나름대로 공부한 내용을 찬찬히 되새겨보았다. 

  스핀코터란 웨이퍼나 글라스같은 화학물질의 샘플을 본체 상단의 에어척이 회전하면서 코팅하는 장비로 사용자들이 연구 데이터값을 얻고자 할 때 쓴다. 한영테크에선 코팅하는 물질의 크기가 4인치 이하인 소형 스핀코터를 생산 판매한다. 대기업은 16인치이상 중대형 스핀코터를 만드는데, 소형시장은 시장규모가 작아 진입하지 않고 있다. 

  4인치 이하 스핀코터는 말하자면 틈새시장 제품이다. 큰 수요는 없지만 대학교나 기업체 연구실을 중심으로 꾸준한 구매가 이어지고 있다. 한영테크는 일본제품을 수입 판매하며 두세 업체와 경쟁을 벌여왔지만, 작년 10월이후 비장의 신무기 ACE-7을 내세워 한발 앞서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ACE-7은 미리 만들어 쌓아두는 게 아니라, 주문이 들어오면 제작해서 납품한다. 그러므로 사무실엔 작업대와 각종 부품을 담아두는 서랍장만 있으면 충분하다. 수요자들은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 광고를 보거나, 지인의 소개를 받아 구매상담 전화를 걸어온다. 회사는 영업부서나 영업 인력을 따로 둘 필요가 없다. 직원들이 전화 상담에 얼마나 상세하고 친절하게 응대하느냐가 매출로 이어지는 관건이다. 

  직원은 모두 네 명인데, 형과 형수, 나, 그리고 서른여덟살 된 엔지니어 한 명이다. 나는 그 대목에서 잠시 미소를 머금었다. 친인척 세 명에 이방인 한명이라니, 이런 걸 두고 가족친화경영이라고 하던가. 

  ACE-7 이미지 아래에 있는 글은 이미 여러 번 읽은 것인데도 새삼 또렷하게 다가왔다. 

  [High Quality, Best Price! 글로벌 명품 ACE-7은 세계최초 초정밀 그래픽 스핀코터입니다. 성능은 외국산보다 우수하고 가격은 절반에 불과합니다. 첨단 기술력의 결정체, 국산 스핀코터 ACE-7이 반도체강국의 첨병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줘도, 글로벌 명품을 생산하는 회사의 환경은 낙제 수준이다. 이런 열악한 여건에서 한 회사가 굴러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20년도 넘은듯한 허름한 오피스텔의 3층 복도끝에 위치한 좁디 좁은 사무실, 그 흔한 TV 한 대 없고, 화장실엔 고장난 각종 장비들이 뒤엉켜 있다. 용변을 보려면 1층에 있는 공용 화장실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20층 현대식 건물의 한 개 층을 통째로 쓴 100평짜리 사무실, TV는 열대도 넘고 사원용 침실까지 따로 있던 전 직장 모습이 얼핏 스쳤다. 나는 잠시 착잡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낡은 건물에 비좁은 공간이면 어때? 직원들이 똘똘 뭉쳐 이익만 많이 내면 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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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를 보니 8시 40분이다. 커피 한 잔 타 마시려고 출입문옆 정수기쪽으로 가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명뿐인 엔지니어, 최영민 과장이 출근한 것 같다. 음, 덩치가 범상치 않다. 175센티인 나보다 15센티는 더 큰 것 같고 체중도 90키로는 족히 넘어 보인다. 구릿빛 피부에 딱 벌어진 어깨, 굵은 쌍거풀과 완고한 턱선이 왠지모를 위압감마저 풍긴다. 

  이왕이면 아담한 체격에 순한 인상이길 바랬던 나는 떨떠름한 기분을 감추고 애써 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최영민 과장이지? 얘기 많이 들었어. 나, 문호인이야. 잘 부탁해.”

  형한테 들은 바로는, 최 과장은 전문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여러 전기 전자 회사를 거쳤다. 한영테크엔 3년째 다니고 있는데 스핀코터쯤은 눈감고도 분해 조립할만큼 실력이 뛰어나다. 

  “네, 최영민입니다.” 최 과장은 내 손을 잡고 짧게 한마디 했다. 그러곤 곧바로 나를 지나 내 앞자리에 가서 앉았다. 순간 나는 어디선가 날아온 테니스공에 한방 맞은 듯 기분이 멍해졌다. 뭐, 이래? 새로 들어온 상사인데, 그렇게 휙 지나칠 건 뭐람. 테이블에 앉아 차 한잔 마시자고 말하면 안 되는거였나. 범상치 않은 체구만큼이나 저 예사롭지 않은 시선. 어째, 기류가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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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과장의 냉랭한 반응은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그때 이후로 내가 늘그막 공돌이 생활이 결코 순탄치 않다는 걸, 아니 너무나도 험난하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달이 다 되도록 나는 스핀코터의 각종 부품과 용어들을 외우고 익히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회사 사이트와 관련 서적을 들여다보며 샤프트, 베어링, 커플링 등 물경 100개에 이르는 부품과, 스핀스텝이니 런타임이니 끝도없이 쏟아지는 용어를 숙지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렇지만 업무를 빨리 익혀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보고 또 보고 있다. 문제는 스핀코터의 작동원리 및 쓰임새다. 그것은 외운다고 될게 아니다. 실제로 장비가 제작되고 작동되는 모습을 본다해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미심쩍은 판이다. 

  나에겐 그 과정을 자세하게 가르쳐주는 사수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해줄 사람은 최 과장밖에 없다. 알고보니 최 과장은 일개 엔지니어가 아니다. 부품조달부터 제작, 장비납품, 에이에스에 이르기까지 1인4역을 해내는 큰 일꾼이다. 그는 ACE-7 탄생에도 큰 몫을 했다. 장비개발에 관한 플랜과 공정은 형이 마련한 것이지만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실행업무는 최 과장이 한 것이었다. 이래저래 최 과장은 회사 운영을 쥐락펴락하는 실세다. 프로야구팀으로 치자면 한 시즌에 20승 이상을 올리는 슈퍼 에이스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는 사수가 돼주기는커녕 갈수록 나를 냉대하고 있다. 아니, 나를 짐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인사도 대충 하는 둥 마는 둥이고 점심식사도 혼자 휭하니 다녀오곤 한다. 그런 그의 태도에선 웬 늙다리가 사장 친척이라고 낙하산타고 들어와 재정만 갉아먹고 있나, 하는 마음이 온전히 느껴진다. 

  하필이면 그의 자리가 바로 내 앞인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내가 어쩌다 구매상담 전화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상담이랍시고 더듬더듬 하다보면 결국 말문이 막혀버린다. 그때 나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그는 돌아보지도 않거나 잠깐 도는듯 하더니 멈춰선 자세로, 그러니까 약간 비스듬한 자세로 간략히 대꾸한다. 어떤 때는 아무 말없이 자기 책상의 전화버튼을 눌러 당겨 받는다. 그런 태도가 뜻하는 게 뭐겠는가. 웬만하면 나와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것 아닌가. 안 그래도 덩치가 크고 인상도 차가워서 다가가기 힘든 판에, 성격마저 까탈스러우니 차라리 큰 산 하나가 내 앞에 버티고 서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성 싶다. 

  입장을 바꿔서도 생각해봤다. 이공계통은 하나도 모르는 주제에 4년제 대학 나왔고 나이도 많다는 이유로 봉급을 자신보다 더 받는 내가 싫을 법도 했다. 늙은 식충이 하나 때문에 자신의 페이도 당분간 못 오르게 됐고 게다가 편하게 부려먹을 수도 없으니, 그 심정이 오죽 답답할까 일견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내가 상사 대우 받겠다는 꼰대도 아니고, 반도체 문외한이니 그저 잘 가르쳐달라는 것뿐인데, 서로 합심하면 파이도 더 커지고 회사생활도 즐거워질텐데 그걸 왜 모르는지, 안다면 왜 애써 외면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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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어쩌랴. 아쉬운 놈이 우물 팔수밖에. 나는 팔짱을 낀 채 생각을 다듬었다. 그래, 내가 자세를 한껏 낮추면 그도 결국엔 마음의 문을 열리라. 미적거릴 것 없이 당장 진솔하게 다가가 보자…. 

  회사 근처 구로공구 상가에 다녀온다던 최 과장이 오후 세시쯤 들어왔다. 뭔가 가득 담긴듯한 박스가 손에 들려있다. 나는 자리에서 재빨리 일어나 다가갔다. 박스를 건네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무겁지? 고생했네.”

  하지만 돌아온 응답은 언제나 그렇듯 짤막하고 냉랭하다. “고생은요.”

  그는 박스를 작업대에 내려놓고 곧바로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박스 안엔 스핀코터용 모터 열 개가 들어있었다. 사무실에 마침 둘밖에 없겠다, 비굴하게 굴어서라도 네 마음을 열어보리라. 나는 짧게 호흡을 가다듬은 뒤 전에 없이 다정한 시선을 건넸다. 

  “근데 이게 모터라는거지? 어떻게 쓰이는건지 실제로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최 과장은 아무 대꾸도 없이 컴퓨터 화면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아, 모터는 어떻게 움직이는거지?” 나는 모터를 들어 올리며 독백하듯 또 읊조렸다. 

  대답하기 귀찮다는 건지, 아니면 겁을 줘서 말꼬리를 자르려는 건지 그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그거 잘못 만지면 큰일나요. 예전에 한번 까맣게 타버린 적도 있어요.”

  나는 조금 움찔했지만 그래도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고 생각하고, 은근슬쩍 작전을 바꿔보았다. “아, 그런가, 모터는 그렇다 치고, 혹시 저녁에 시간 있나? 내가 한잔 살게.”

  “저, 술 안먹는데요.” “그럼 저녁식사는 어때?” “퇴근하면 다른 데 알바하러 가야 됩니다.” 

  최 과장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챙겨들고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말을 꺼내지 않으니만 못한 상황이 돼버렸다. 갑자기 난로불을 쬔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의 뒤통수에 대고, 그래, 네가 그렇게 잘났냐? 늙다리 문돌이라고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거냐? 어지간하면 같이 좀 먹고 살자, 라고 퍼붓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겨우 삼켰다. 만에 하나 그가 뒤돌아서서 인상 쓰고 덤벼들기라도 한다면 딱히 대응할 방법도 없어 꼬랑지를 내리고 말테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놈이 큰 소리 쳐봐야 한 순간 일뿐, 그 길로 스핀코터 배우는 길은 영영 막히고 말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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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달리 사수가 돼줄만한 사람이 있는가? 없으니 문제다. 형? 형 생각을 하면 고개부터 가로젓게 된다. 최 과장이 하도 고깝게 나오는 터라, 은근히 형에게 기대를 걸어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형의 실상을 알고 나선 아예 기대를 접기로 했다. 

  형은 회사 근처 소형 아파트에 사는데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두 번, 그것도 오후 네 시가 다 돼서 어슬렁거리며 회사에 나오곤 한다. 형은 평소에도, 대기업 회장들이 회사에 날마다 출근하는 줄 아느냐, 그러면 사원들만 더 피곤하다, CEO는 원래 조용히 남모르게 큰 구상을 하는거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형은 어쩌다 사무실에 있을 때 내게 신경을 써주긴 하지만 주로 답답한 얘기만 했다. 두세 번인가 나를 옆에 앉혀놓고 미국, 독일 등 외국 기업의 사이트를 보여주며 PCB 노광기술이니, 유전막 형성기술이니 하는 고차원적 강의를 했다. 그렇지만 그건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었다. 글자를 깨쳐가는 초등학생한테 대학원 논문을 들이댄 격이라고나 할까. 회사의 주력장비인 스핀코터도 잘 모르는 놈한테 노광기술은 뭐고 유전막 형성은 또 뭔가. 내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 형은, 이런 걸 잘 알아야 꿈을 크게 가질 수 있다, 면서 예의 그 야망론을 들먹였다. 

  예전엔 잘 몰랐지만 20년만에 만난 형은 한마디로 돈키호테형 인간이다. 무모하리만치 야망을 크게 품고 급하게 돌진하는 행동주의자. 좋게 말하면 야망이지만, 냉철하게 말하면 오바가 너무 심하다. 그런 형의 모습은 어찌보면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터득한 대인관계 노하우로 비치기도 한다. 가끔 형에게 어떻게 해주길 바라며 최 과장 얘기를 꺼내 봐도 큰 그림 운운하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 친구의 까다로운 성격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네가 인문학적인 소양을 발휘해 잘 다스리면 결국 마음을 열 것이니 상황을 크게 내다보라, 하며 애꿎은 내 어깨만 두드렸다. 그때마다 나는 뜬구름 잡는 얘기 하지 말고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려다 입만 아플 것 같아 그만 두곤 했다. 

  형은 또 알콜 중독까진 아니더라도 술을 즐기는 편이다. 이틀이 멀다하고 저녁시간에 고교동문들이나 지역의 각종 단체 임원들과 술자리를 갖는다. 그런 식으로 인맥관리를 잘해야 사업도 잘된다는 게 형의 신념아닌 신념이다. 나하고도 술자리를 몇 번 했는데, 매번 나를 새벽 두시까지 붙잡아놓곤 했다. 

  형은 회사업무를 마냥 손놓고 있는 게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술자리가 끝나면 집에서 새벽 세시쯤부터 업무를 시작하며, 국내외 각종 사이트에 들어가 반도체분야를 서핑한다고 한다. 실제로 직원들에게 지시 내릴 일이 있으면 그 시간에 회사 전용 이메일로 보내왔다. 

  이렇듯 야망을 가득 품은 채 술에 젖어 사는 형, 낮에는 회사에 잘 나오지도 않고 새벽녘에 홀로 업무를 보는 형에게 스핀코터 사수 역할을 기대하는 건, 야구선수 류현진에게 월드컵 축구경기에 출전해 골을 넣어주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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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수가 없는 현실은 냉혹하다 못해 비참하다. 두 달, 석 달이 지나면서 나의 열정은 맥없이 사그러지고 있다. 업무 진도는 한 발짝도 못 나가고, 늘 기본적인 사항만 주절대는 내 모습은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 스핀코터 문의전화라도 오면 회사 사이트를 훑어가며 겨우겨우 응답해서 견적서를 보내고 있다. 그나마 견적서 작성하는 건 전임 관리부장이 쟁여놓은 샘플을 따라하면 되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동안 형의 지시로, 대학교나 기업체 연구실에 ACE-7을 납품할 때 최 과장을 따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내 임무는 능수능란한 최 과장 옆에서 멍한 표정으로 서있는 게 다였다. 하릴없이 손톱이나 깨물던 모습에서 짐짓 팔장을 끼고 상사연하는 모습으로 변했을 뿐, 시간이 흘러도 관리이사 직급에 걸맞은 처신을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는 내 위치를 찾을 수 있겠지, 생각하다가도 좀처럼 다가가기 힘든 최 과장을 생각하면 체한 듯 가슴이 답답했다. 

  차라리 때려칠까? 아니야, 나가봤자 막노동밖에 할 게 없잖아. 무조건 버텨야 돼. 버티기만 하면 월급은 나오고 처자식 볼 면목은 세울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게 뭔가.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앉아서 회사 재정만 축내고 있으니 한심하기도 하고 양심에 찔리기도 하고. 

  나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하는 건 애잔한 형수의 모습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6촌형수로 나타난 사람. 약간 작다싶은 키에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 형과 동갑내기로 음대 피아노과 출신이라는 송화정 이사를 보노라면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못해 시려온다. 형수는 전공과는 상관없는 회계재정이나 주문상담 업무를 능숙하게 해내고 있지만 팍팍한 삶의 고단함 때문인지 눈밑엔 늘 그늘이 져 있다. 

  “언니, 오백만 해줘. 삼부이자 쳐서 월말에 꼭 갚을게. 지난 달에 지방대에 한 대 납품했는데 아직 결제를 안해줘서 그래.” “수잔나. 삼백만 어떻게 안될까? 틀림없어. 나 신용 좋은거 알잖아, 그래, 고마워.” 형수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회사 재정에 신음하고 있다. 월급날인 매월 25일이 다가오면 주로 친언니나 성당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어 자금을 융통하기 바쁘다. 제 날짜에 돈을 못구해 월급이 일주일이상 밀린 적도 있다. 

  내가 대충 파악한 바로는, 회사 재정은 ACE-7을 한 달에 최소 여섯 대는 팔아야 굴러갈 수 있다. ACE-7 한 대 제작비는 300만원 가량이고 판매가는 550만원이니 한 대 팔면 250만원 이문이 남는다. 그래서 여섯 대 팔아 1500만원 남짓한 수익으로 임대료, 대출금 상환, 직원월급 등을 충당하고 형 부부의 생활비를 챙길 수 있다. 

  내가 입사한 이후 월간 판매대수는 다섯 대와 여섯 대를 오르락내리락 할뿐 큰 진전이 없다, 그래서인지 형수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피아노 강의를 지난 달부터 주 3회로 늘렸다. 원래는 월, 수요일에 했는데 토요일에도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발주난 데 있어요? 형수가 강의를 마치고 오후에 사무실에 들어설 때 늘 던지는 첫마디다. ACE-7 납품 요청을 받은 것 있느냐는, 형수의 절박한 심정이 묻어있는 그 일곱 음절은 뾰족한 구두 발자국소리처럼 좁은 사무실에 울려 퍼지고 내 귀속을 헤집고 다닌다. 

  그래도 형수는 나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진 않다. 아니, 어찌보면 날 괜찮게 생각하는 듯 싶다. 일전에 형이 들려준 얘기로는, 형수는 나를 나이답지 않게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으로 보고 있다. 국문과 나와서 반도체회사 생활하기 힘들텐데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별 얘기는 나누지 않지만 어쩌다 대화를 할 때면 애써 그늘진 표정을 걷고 온화한 미소를 건네온다. 주로 스핀코터와는 상관없는,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지만 그 미소속에 왠지 나에 대한 기대가 담긴 것 같기도 하다. 빠른 시일내 업무를 익혀서 형과 함께 회사를 멋지게 이끌어가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하지만 난 내 처지가 답답하기만 하다. 공돌이 생활 멋지게 해보자며 달려왔지만 불과 몇 달도 안돼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줄이야. 출근하는 발걸음도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날마다 자석에 이끌리듯 맥없이 끌려올 뿐이고 시간도 갈수록 늦어져 번번이 아홉시를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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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부장, 오랜만이요. 잘 지내시나?” 

  뙤약볕이 사무실 창문을 녹일듯 내리쬐던 여름날 오후, 전화 한통에 귀가 번쩍 뜨였다. 발신자는 신문사 경영기획실에 근무했던 동갑내기 김 실장이다. 그는 나보다 석 달인가 먼저 명퇴했는데, 그동안 신문바닥을 떠나지 않고 착실히 터를 다져온 모양이었다. 신문사 근처 무교동에서 신문광고 영업소를 3년째 운영해오고 있다고 운을 뗐다. 

  김은 조만간 ‘서울인’이라는 타블로이드판 격주간 신문을 창간할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토박이들을 상대로 한 신문인데, 보수는 섭섭지 않게 줄테니 나보고 편집국장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인쇄, 광고, 배포 등 경영전반 업무는 자기가 맡아서 할 것이고 편집국은 자기네 사무실 한쪽에 둬도 충분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햇볕처럼 달아올랐다. 격주간지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됐다는 게 중요하지.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돼…. 

  이튿날, 형수에게 적당히 둘러대고 한 시간 일찍 퇴근해서 김의 사무실을 찾았다. 한영테크 사무실보다 두 배쯤 컸지만 책상이나 소파는 중고 제품인듯 했고 전체적인 실내 분위기도 우중충했다. 이것도 아무렴 어떠리. 한영테크같은 허름한 사무실도 괜찮게 여긴 내가 아닌가. 다른 거 다 떠나 내가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이면 된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둥, 하나도 안 변했다는 둥, 화기애애한 말을 건네던 김이 자신만만하게 ‘서울인’ 청사진을 밝혔다. 

  “지금 서울에 삼대째 살고 있는 순수 토박이가 오십만명쯤 되거든. 일단 십만부를 발행해서 무료로 우편 배송할 생각이야. 서울시청같은 관공서에서 기본적인 광고를 대주기로 했어.” 

  커피를 마시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던 나는 잠깐 의아한 생각이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근데, 관공서 광고만으로 수익을 맞출 수 있나?” 

  김이 금테 안경을 한번 고쳐 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 관광업소나 음식점들을 찾아가 서울의 전통명소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써주고 광고를 따려고 해. 어때? 괜찮지? 문 부장 혼자 하는게 아니고, 똘똘한 기자 한 명이 수족처럼 붙어다닐거야.” 

  어이쿠! 나도 모르게 얕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기사를 써주고 광고를 따오라고? 한두 번이면 몰라도 그런 광고를 계속해서 따낼 수 있나? 그렇게 수지 맞추는 건 한계가 있을텐데. 게다가 나는 말이 편집국장이지, 실제론 기사쓰고 편집하고 광고영업까지 하는 1인3역 말단사원이란 얘기 아닌가. 

  나는 살짝 부아가 치밀었지만 애써 옅은 미소를 흘리며 말을 던졌다. “아주 맨땅에 헤딩하는 국장이 되라는 거구만. 그리고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두 명이 다해? 이거 노동착취 아냐? 하하.” 

  내 말이 거슬렸는지 김이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착취는 무슨 착취, 저비용 고효율이지. 문 부장, 아직 세상의 쓴맛을 모르나 본데 우리 나이에 죽도록 뛰지 않으면 바로 낙오야, 인생낙오. 예전에 좋았던 시절은 다 잊어야 돼. 뺑이치고 달려도 될까말까 할 판에….” 

  김은 인생낙오까지 들먹이며 자못 비장한 어조로 말했지만 난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 열여섯 면 중 네 면은 전면광고로 채운다 치고 열두 면은 어떻게 만드나. 전통명소 서너 개와 ‘서울의 역사’같은 고정물로 반은 메운다 해도 나머진 어떻게? 그리고 업주들에게 계속해서 광고를 따낼 수는 있을까. 이건 정말이지 머리에 쥐가 나도록,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도 안되는 일이다…. 섭섭지 않게 주겠다던 보수도 듣고 보니 어이가 없다. 기본급은 월 100만원이고 수익이 나면 인센티브를 준다는 것이다. 김은 이익이 많이 나서 내가 월 500만원은 받을 거라고 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영업이 안될 경우엔 기본급도 못 받을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 

  나는 잠시 화장실 다녀오겠다며 사무실을 나섰다. 원래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었지만 그 길로 건물을 벗어나 곧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미안해, 생각해서 불러줬는데. 나, 그 일 못할 거 같아. 다음에 기회되면 같이 합시다.” 

  한줄기 빛처럼 다가왔던 희망의 불씨가 바람에 날리듯 허무하게 날아갔다. 되지도 않을 일을 떠벌인 김에게는 차라리 연민의 감정이 일었다. 신문사를 나온 뒤론 다들 힘들게 살고 있구나. 이 한 세상, 아등바등 버티고들 있어.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오후 7시가 넘었는데도 거리는 아직 훤했다. 지하철역으로 조금 걷다보니 어지러운 마음이 정돈되는 것 같았다. 그래, 신문은 돌아갈 수 없는 땅,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자. 미우니 고우니 해도 난 이제 한영테크밖에 없다. 김의 제안을 뿌리친 것도 어찌보면 한영테크라는 비빌 언덕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대론 안된다. 더 이상 허수아비처럼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나는 그 길로 형을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표를 던지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신입 엔지니어 한 명 뽑읍시다. 얘기가 통하는 애로. 나도 이쪽 일을 신나게 좀 배워보자구요. 최 과장에게 업무가 쏠리는 것도 문제야. 자식이 갈수록 기고만장이야. 업무 균형을 위해서라도 똘똘한 애로 한명 충원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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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접 때 형 옆자리에 나도 앉았다. 올해 서른 살, 이름은 장순호. 키는 나와 비슷했지만 약간 말랐다싶은, 호리호리한 체형이다. 홑꺼풀 눈매에 동그란 얼굴형, 전체적으로 순박한 생김새다. 이력서를 보니 전문대 금속공학과 졸업후 유진금속이라는 생산설비업체를 4년동안 다녔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단순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사표를 냈고, 한 달가량 구직활동을 했다고 했다. 정감 가는 인상과 꾸밈없는 말투가 내 맘에 쏙 들었다. 

  그는 입사하자마자 전 직장에서 달지 못했던 대리직함을 꿰찼다. 그래봤자 직원 다섯 명인 회사의 최말단이지만. 장 대리 입사이후 회사엔 아연 활기가 돌고 있다. 그는 이공계 전공자답게 스핀코터 제작공정을 일주일도 안돼 마스터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ACE-7을 거뜬히 제작하고 시험가동까지 완벽하게 마치곤 한다. 그는 또 누룩꽃처럼 푸근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고 전화 응대도 친절하게 한다. 한마디로 넝쿨째 굴러들어온 복덩이다. 마침 ACE-7의 우수성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는지, 그가 입사한 뒤로 월 판매대수도 여덟 대 수준에 올라서면서 형수의 한숨은 크게 줄어들었다. 

  장 대리와 나는 서로에게 스승이 됐다. 그는 내가 애타게 갈망하던 사수다. 내가 ACE-7의 작동원리나 쓰임새에 대해 물어보면 장비를 직접 가동시키며 하나하나 알기 쉽게 가르쳐준다. 장 대리는 최 과장과는 달리, 나와 술자리도 자주 갖고 얘기도 많이 나눈다. 술자리에서 나는 그의 인생 멘토 노릇을 하고 있다. 일에 파묻혀 지냈던 신문기자시절 얘기를 들려주며 열정이 인생을 꽃피운다고 폼을 잡는다. 직원들끼리 서로 아끼고 격려할 때 조직력이 커지고 회사도 발전한다고 입에 침을 튀겨가며 얘기하고 있다. 

  그의 고민도 기꺼이 들어주었다. 동네 치과의 간호사 아가씨가 마음에 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여자는 비전없는 남자를 제일 싫어한다, 지금 당장은 부족하더라도 벽돌을 쌓듯 미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기계만 아는 공돌이라는 인상을 주어선 안된다. 책을 많이 읽어서 엔지니어적 사고를 뛰어넘는 인문학적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내 얘기를 듣던 장 대리는 역시 신문기자 출신이라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네요, 라며 순진한 미소를 머금곤 한다. 나는 호쾌한 웃음으로 화답하며 굳은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제 훌륭한 사수를 만났으니 얼른 회사의 주역으로 올라서자.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상사로 거듭나면 그때는 최 과장도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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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과장이 실력만큼은 최고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장 대리가 제작공정을 일주일만에 정복한 데는 최 과장의 똑소리나는 지도가 큰 몫을 했다. 조수다운 조수가 들어왔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다. 각종 부품의 연결패턴을 그림으로 그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노트에 적으라면서 공정의 중요사항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는 장대리를 빨리 키워 격무에서 벗어나보자는 계산도 깔린 듯 했다. 

  하지만 최 과장이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장 대리에게 잘 가르쳐주면 줄수록, 장 대리가 커가면 커갈수록 최 과장 중심의 회사 구도는 무너져 갔다. 어느 순간부터 그걸 의식했는지 최 과장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돌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와 장 대리가 친하게 지내는 걸 매우 못마땅해 했다. 최 과장은 가끔 사소한 문제를 트집 잡아 장 대리에게 버럭 성질을 부렸다. 작업대 위에 놓여있던 크리넥스 티슈통을 통째로 집어던지려 한 적도 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장 대리를 달래는 건 내 몫이었다. 나는 그를 불러내 회사근처 공원에서, 때로는 퇴근후 호프집에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장 대리, 네가 참아라. 최 과장은 실력은 뛰어난 데 인성이 안된 놈이야. 걔는 인간 되긴 애저녁에 글렀다. 인간성 좋은 네가 언젠가는 에이스가 될거야. 그러니 절대 기죽지마,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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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거나 나는 장 대리 덕분에 회사 생활을 가벼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 출근시각은 8시 전후로 다시 빨라졌고, 근무시간에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어느덧 입사 7개월째. 요즘엔 스핀코터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자는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야 제작 공정을 온전히, 그야말로 빠삭하게 익힐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최 과장은 지방에 1박2일 출장가고 없다. 나는 작업대 자리에 앉아 스핀코터를 제작하고 있는 장 대리에게 다가갔다. 이틀동안 두 대를 만들어 납품까지 완료하라는 최 과장의 지시를 이행하고 있는 그에게 다소 절박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한 대는 그렇게 장 대리가 만들고 나머지 한 대는 내가 만들어 보면 안될까? 장 대리 도움을 받아서 말야….”

  “아, 그러시죠.”장 대리는 특유의 순박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모터 앉히는 작업을 먼저 했다. 작업대에 원래 모터가 두 개 있었는데, 한 개는 장 대리가 이미 썼길래 나머지 한 개를 사용했다. 모터색이 조금 바랜 것 같아 써도 되는 건지 물어보려했는데 그새 작업에 빠져있는 그에게 말 걸기가 좀 애매했다. 에이, 뭐 별일이야 있겠어? 나는 잠깐 고심하다가 그 모터를 집어 들었다. 

  어느새 스핀코터 한 대를 완성한 장 대리가 내 작업을 거들어 주었다. 모터가 장착된 상태에서 하나 하나 지시한 것이다. 그의 도움을 받아 사각판에 샤프트를 꽂고 커플링, 베어링, 립씰, 에어척의 순서로 조립했다. 그리고 원통을 씌운 뒤 멤브레인으로 본체를 감쌌다.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뒷덜미에도 축축하게 땀이 찼다. 두 시간 쯤 흘렀을까. 드디어 내 손때 묻은 스핀코터가 탄생했다. 시험가동을 해보니 이상 없이 잘 돌아갔다. 

  브라보! 나는 역전 만루홈런을 치고 들어온 타자처럼 장 대리의 손바닥을 있는 힘껏 쳤다. 천하의 기계치였던 내가 반도체 장비를 제작하다니. 와, 나는 이제 어엿한 공돌이다. 평범한 공돌이가 아니라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역군이다. 하하하!

  이튿날, 장 대리와 함께 모교 전자공학과에 납품을 했다. 실험실에서 교수와 학생 몇몇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 대리가 두 대중에 한 대를 꺼내 가동했다. 완벽했다. 샘플이 코팅되는 과정이 그래픽으로 생생히 나타나자 교수, 학생 할 것 없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청춘의 꿈과 기상을 떨쳤던 모교에서 나는 구름 위를 날아갈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가을 하늘은 파란 물감을 들인 듯 선명했고 부서지는 햇살은 내 가슴을 따뜻하게 파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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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인생2막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것 같다. 일이 손에 익으니 신바람이 절로 나고, 공돌이 세계에 뛰어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분수처럼 솟아난다. 글밖에 모르던 내 DNA에 이렇게 꼼꼼한 제작 본능이 숨어있을 줄이야. 손으로 직접 만드는 기쁨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맛보게 될 줄이야. 

  나는 그동안 막연하게 느꼈던 문돌이와 공돌이, 문과와 공과의 차이도 비로소 깨달았다. 그 차이는 바로 정밀이라는 규칙의 상대성에 있었다. 

  편집기자 시절, 나는 냉철한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생산성 없는 것들에 매달렸다. ‘오랫만에’가 아니라 ‘오랜만에’가 맞고, ‘체력이 딸린다’가 아니라 ‘체력이 달린다’가 맞는 표기라는 것. 콘텐츠가 아닌 콘텐트로 써야 하고, 네온싸인대신 네온사인으로 써야한다는 것. 동해바다, 약수물, 생일날 등은 동어반복이므로 유의해야한다는 것. 장밋빛, 등굣길 같은 사이시옷 규정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 등등. 

  넓은 세상에 나와 보니 그런 규칙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문과 세계의 정밀은 지키면 좋지만 안 지켜도 그만인 것이다. 오랫만이면 어떻고 체력이 딸리면 어떻고 콘텐츠면 또 어떤가. 때로는 지키지 않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동해바다나 생일날이 더 쉽게 와닿고 장밋빛보다는 장미빛이, 등굣길보단 등교길이 훨씬 부드러운 표기 아닌가. 

  이공계에선 표기 문제는 문제에 속하지도 않는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상대에게 잘 전달만 되면 그만이다. 중요한 건 0.001퍼센트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기계적 정밀이다. R.P.M 수치 하나만 틀려도, 부속품 연결패턴이 한 군데만 엇나가도 장비는 즉각 멈춰선다. 그리고 그게 곧바로 손실이 되고 신뢰문제로 이어지고 생산성 저하로 직결된다. 

  요컨대 문과의 정밀은 틀려도 별 지장 없는 하나의 규칙에 불과하지만, 공과의 정밀은 어디 한 군데라도 틀리거나 어긋나서는 안되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한치의 정밀과 싸워가며 제품을 개발하고 제조하는 공돌이들이야말로 나라 경제 발전의 큰 축을 담당하는 진정한 산업역군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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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한영테크입니다.”

  “아, 여기 A대인데요. 일전에 납품하신 스핀코터 두 대중에 한 대가 엊저녁에 고장이 났어요. 삐~삐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서버렸네요.” 

  모교 전자공학과에 납품하고 온지 보름가량 지난 아침. 전화를 걸어온 학생이 다급하게 말을 잇는다. “교수님이 화가 엄청 나셨는데 두 대 다 발주 취소하라네요. 당분간 실험도 못하게 됐는데, 손해배상 청구 안 하는 게 다행인줄….” 

  “아이고 어쩌나. 죄...죄송합니다.” 수화기를 들고 있던 나는 적당한 답을 못 찾고 말을 더듬거렸다. 

  흠칫 놀란 얼굴로 바라보던 최 과장이 전화를 뺏듯이 가져갔다. “저기요, 제가 엔지니언데요. 아, 예, 그러셨군요. 이거 참,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지금 즉시 학교로 가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최 과장은 에이씨, 육두문자에 가까운 소리를 뱉으며 자리에 털썩 앉는다. 형수와 장 대리도 넋이 나간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내 속은 바싹 타들어갔다. 하필 그날 납품한 장비가 고장날 게 뭐람. 이번 달에 간신히 여덟 대 발주 맞춰놓았는데 두 대가 취소되면 적자가 크게 날텐데. 한 대는 다른 데 판매하면 된다지만, 고장난 한 대는 팔지도 못하고 부품값만 쌩으로 날리게 생겼잖아. 더욱 중요한 건 신뢰문제 아닌가. 장비가 작동중에 갑자기 섰다는 게 소문 날 것이고 그리 되면 회사의 이미지는 곤두박질 칠텐데….

  부랴부랴 학교로 갔던 최 과장이 오후에 스핀코터 두 대를 구르마에 싣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한 대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분해하더니, 문제의 모터를 집어들고 장 대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장순호! 모터를 이걸 쓰면 어떡해? 브레이크를 못 잡아 주잖아. 에이에스 해주려고 가져온 장비에 있던 걸 잠시 빼논건 데. 이거 하나 구분 못하냐? 색이 누렇게 뜬거, 보면 몰라? 수명이 간당간당 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당연히 뻑이 나지.”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최 과장 얘기로 볼 때, 그 모터를 장착한 스핀코터는 내가 만든 것이었다. 색이 좀 바랜 것 같아 찜찜하긴 했는데 그냥 지나쳤던 게 결국 사달이 나고 만 것이다. 

  “네가 그러고도 엔지니어냐, 임마? 너 그래갖고 밥이나 빌어먹고 살겠냐?” 

  최 과장의 호통은 더욱 커졌고 장 대리는 어쩔줄 몰라 하며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멋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최 과장, 그거 내가 만든 거야. 그러니까 장 대리한테 뭐라 하지 마라.” “에에?” 최 과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장 대리한테 말화살을 돌렸다. 

  “야, 내가 너한테 다 하라 그랬지. 스핀코터를 아무나 만들게 하면 어떡해, 임마.” 

  최 과장은 급기야 모터를 장 대리에게 집어던질 자세를 취했다. 

  “그만 하세요. 최 과장!”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형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못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나대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최 과장의 ‘아무나’라는 말이 가슴을 후벼팠고, 모터를 집어던지려는 행동은 바로 나를 향한 것이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야, 최영민! 그래 나, 아무나다. 어쩔래, 임마. 모터 하나 제대로 못끼는 등신이다. 어쩔거냐고, 이 새끼야.” 

  그에게 쌓였던 울분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최 과장은 물론 형수와 장 대리도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어안이벙벙해있는 최 과장을 밀치고 사무실을 나섰다. 문까지 세게 박차고 싶었지만 형수가 있어서 차마 그렇게까지 하진 못했다. 

  회사 근처 공원으로 갔다. 일렬로 늘어선 은행나무 사이로 11월 하순의 스산한 기운이 떠다니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곱씹어보니 최 과장을 향한 울분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질책을 더 크게 쏟아낸 것이란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스핀코터의 생명과도 같은 모터를 대충 대충 쓰다니. 나는 역시 제조업 일은 도저히 할수 없는 천하의 기계치에 바보, 등신, 머저리인가보다….

  나는 공원을 한 바퀴 돌며 배회하다가 회사로 들어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왔다. 동네 호프집에서 새벽 두시까지 맥주를 들이켰다. 장 대리에게서 전화가 두 번 왔지만 받지 않았다. 형에게선 전화가 없었다. 누구도 그 상황을 보고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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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떠보니 오전 11시. 간밤의 과음탓인지 머리가 좀 띵하다. 소파에 누운 채 곰곰이 생각해본다. 토요일이라 출근 안해도 되지만 이대로 그냥 그만둘까. 아니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낼모레 슬며시 나가볼까. 

  순간, 핸드폰 문자음이 울린다. 발신자는 뜻밖에도 송화정 이사, 즉 형수였다. ‘문 이사님, 시간 되면 오늘 오후 여섯시에 뵐수 있을까요. 회사근처 카페빈에서 기다릴게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네, 알겠습니다, 라고 답을 보냈다. 만약 형의 전화나 문자였다면 한두 번쯤 응답을 안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덟 달 가량 다니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회사재정 문제로 갖은 고생을 하는 사람은 형수이고 형은 그런 형수 덕분에 돈 걱정 없이 야망만을 좇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설령 내가 그만둬도 형보다는 형수한테 더 크게 여운이 남을 것 같았다. 날 좋게 봐줬는데 기대에 못 미친 미안함, 크게 하는 일도 없이 회사 재정만 축낸 죄송함…. 그나저나 왜 보자고 한걸까.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 깨끗이 털고 월요일에 웃는 얼굴로 보자는 걸까, 이번에 손실 본 게 너무 커서 누군가는 쉬어야 한다고 에둘러 말하려는 걸까. 따로 만나자고 한 걸 보면 회사에 그만 나오라고 하진 않을 것 같은데. 혹시 언젠가는 내게 직접 하고 싶었던 얘기를 꺼내려는 건 아닐까. 회사 살림은 어떻게든 꾸려갈테니 열심히만 해달라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형의 손을 잡고 내일을 향해 꿋꿋이 나아가 달라고….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몸에 남아있는 술기운을 싹 씻어내고 싶어졌다. 그래, 오랜만에 시원한 산바람이나 쐬며 마음을 추슬러보자…. 

  나는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등산화를 챙겨 신었다. 몇 달만에 와본 동네 산의 초입길에는 노란 은행잎이 수북하고 길다랗게 깔려 있었다. 옐로카펫을 연상시키는 수려한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으로 향하니 다시 뛰어보자는 희망의 다짐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솔솔 피어올랐다.





  <당선소감>


   제 글이 위안을 주고 희망을 북돋아주길 바랍니다


  "와아, 니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구나."


  당선 소식을 들은 친구가 대뜸 뱉은 말입니다. 피식 웃어 넘겼지만 한편으론 전생에 뭔가 큰일을 하긴 한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진짜로, 나라까진 몰라도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포 몇 명쯤 구하긴 했나 봅니다. 이런 큰 영광이 제게 주어지다니요.

  당선작은 일종의 자전소설입니다. 칠년전쯤 신문사 명퇴 후 방황하던 저를 반도체 장비회사 사장인 친척 형님이 직원으로 채용해주었습니다. 평생 글만 주물럭거리던 제게 공돌이 세계란 낯설고 두려우면서도 새로운 희망이 움트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복잡 미묘한 감정, 문돌이와 공돌이의 상반된 단면들, 막막한 현실 속에서 내딛던 발걸음 등을 한데 잘 녹이면 그런대로 괜찮은 이야기가 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글을 대상으로 뽑아주신 머니투데이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소설쓰기의 방향을 명쾌하게 짚어주신 한겨레문화센터 김현영 선생님께도 감사 말씀 전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식구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은혜와 감사기도를 달고 사는 와이프 전옥경 권사와 생기발랄한 미소를 잃지 않는 이쁜 딸 민지가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교회분들, 신사82친구들, 죽마고우들, 신문사 옛동료들과도 기쁨을 함께 합니다. 이렇게 가슴 벅찬 소식을 전해 주셔서 제가 외려 감사해요, 라고 환호하던 후배 수연의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문학의 길이니 뭐니 거창하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느덧 오십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문학에 관해선 저는 애송이일 뿐입니다. 다만 이 길이 절 구원해주리라는 믿음만은 놓지 않겠습니다. 글을 통해 뾰족한 마음을 가다듬고 온기를 담아 대중과 소통하는 게 무엇보다 큰 행복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제 글이 동포 몇 분에게나마 위안을 주고 희망을 북돋는다면 그만한 기쁨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나라를 구하는 작은 선행이라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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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실제 경험 바탕글·추상어보다는 구체어에 높은 점수” 


  올해는 소설과 수필, 수기, 논픽션을 포함한 산문 부문은 응모된 작품이 많았지만 수준 면에서는 다소 아쉬웠다. 수필 부분에서는 수기 형식을 띤 '경매는 대박이다'가 경매 경험과 장점, 조심할 점을 잘 전달해 눈에 띄었고 '롱패딩의 긍정적 시그널'은 재미있는 발상으로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엄마가 들려주는 회사와 돈 이야기'는 어린 아이에게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기업과 돈에 대해 친근한 느낌으로 주제를 전달했다.

  우수상으로 뽑은 '철, 선박으로 태어나다'는 철이라는 금속이 선박이 되는 과정과 한국 조선업계의 현황에 대한 설명문이다. 썩 재미있지는 않으나 읽어 나가는 동안 철과 선박에 대해 새로운 지식이 쌓인다. 문학적으로 부족하나 직장 경험을 살린 설명문 형식의 글도 응모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우수상으로 선정했다.

  대상으로 뽑은 '쉰 줄에 공돌이'는 40대 후반까지 스포츠신문의 편집부장을 하는 동안 형광등 하나 갈아 끼울 줄 모르던 ‘문돌이’가 신문사를 나와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회사에 새로 들어가 바닥에서부터 기술을 익혀가는 과정을(아마도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형상화한 수작이었다. 형식을 소설로 집필했어도 읽으면 누구나 작가의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된 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반면 올해 시 부문에서는 작품의 질과 양 모두 예년보다 부족했다.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이야기이고 이 시대의 삶이란 어느 면으로든 경제에 닿아있는 것이어서 굳이 작품에 경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응모작들을 보면서 감각에 인식되는 어떤 구체어들이 아니라 관념적인 추상어들이 많았다는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오영록씨의 '모서리'와 정지윤씨의 '경주마'였다. '모서리'와 '경주마' 자체가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시킨다는 점에서 시적 주제로 다루기에 손색이 없다. '경주마'는 퇴역 경주마를 인생에 빗댄 회한을 잘 그리고 있지만 그것이 단지 회한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논의 끝에 가작으로 선정한 '모서리'는 모서리에 이어져 있는 나와 너, 우리의 관계를 감각적으로 그려낸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랑', '화합'이라는 관념어들이 이 작품을 가작에 머물게 했다. 내년엔 시 부문에서도 대상이 생산되길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 이희주, 이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