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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폴이라 불리는 명준 / 명학수

 

  1

  1985년 12월 23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월요일 오후에 일어난 그 사고는 실수와 불운이 충돌해 생긴 비극이었다. 중앙 일간지 뉴욕 주재 특파원으로 6년째 근무 중이던 이진욱은 아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초조한 마음으로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최근 몇 해 동안 아내가 선물을 준비하면 카드에 간단한 인사 몇 줄 적어 넣는 걸로 넘어가곤 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직접 고른 선물을 아들에게 안겨주고 싶었다. 몇 달 전부터 고민하다 마침 적당한 물건을 발견하고 12월 23일 퇴근 후에 대금을 치르고 가져가기로 예약까지 해뒀었다. 그런데, 거의 손에 들어온 줄 알았던 물건을 뜻밖의 인물이 나타나 가져가 버렸고, 그는 다른 선물로 대신하기보다 뉴욕에 있는 모든 상점을 뒤져서라도 똑같은 물건을 찾아내는 쪽을 택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 탓일까? 마음이 조급해진 이진욱은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기를 미처 기다리지 못하고 차도로 발걸음을 크게 내딛고 말았다.

  같은 시각, 이진욱의 아들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엄마가 선물로 준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를 읽고 있었다. 영문판인 데다 은유적인 수사와 말장난으로 가득 찬 책이라 열한 살짜리 한국 소년이 즐기기에 까다롭긴 했지만 이미 여러 번 반복해 읽은 소년에게 책의 내용은 익숙했다. 소년을 이상한 나라의 미로에서 끄집어낸 것은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전화벨이었다. 전화는 한 시간 동안 거의 10분 간격으로 울어댔다. 첫 번째로 전화를 건 사람은 폴리스였고, 다음 사람은 닥터라고 했으며, 세 번째는 다시 폴리스였다가 신분을 밝히지 않은 네 번째 사람은 한국어로 다짜고짜 엄마부터 찾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전화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소년은 영어로 묻는 이에게는 "Paul Lee"라고, 한국어로 묻는 사람에게는 "이명준"이라고 대답했는데, 이것들은 'son'과 '아들'만큼 거리감을 주면서도 정확히 같은 것을 가리켰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년의 불안은 제일 먼저 엄마를 향했다. 그들이 모두 엄마를 찾았으니까. 그다음 할머니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늘 함께 있으니까. 그는 할머니와 엄마가 있을 게 분명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곳은 맨해튼 14번가에 위치한 한인 교회 안에 있는 작은 기념품 가게인데 그녀들은 그곳에서 성경이나 휴대용 십자가 같은 기독교용 서적과 물품들을 판매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1년 중 가장 손님이 많은 시기여서 두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끼니를 거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소년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손님이 너무 많아 전화를 못 받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소년은 누구라도 수화기를 들어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진욱은 유니언 스퀘어 근처의 좁은 스트리트를 건너다 러시아계 기사가 운전 중이던 택시에 치였다. 그는 비명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정신을 잃었고,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응급실에서 10분도 채 버티지 못했고 뇌와 심장이 차례로 기능을 멈췄다. 사망 시각은 17시 21분이며 의학적 사인(死因)은 뇌출혈이었다. 택시 기사는 과속은 인정했지만 피해자의 무단 횡단 때문에 발생한 우발적인 사고라고 주장했다. 뉴욕시 경찰국은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던 택시 기사를 즉각 그의 모국 소련으로 추방했고, 사건은 가해자의 나쁜 운전 습관과 피해자의 실수가 빚은 우연한 불행으로 종결됐다.

  이명준의 할머니는 선물용으로 포장된 벽걸이용 십자가에 리본을 묶다가 이진욱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 남겨진 치명상은 숱이 많은 머리카락에 가려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눈에 아들의 시신은 생전처럼 깨끗하고 멀쩡했다. 그녀는 한밤중에 집에 돌아와 하얗게 질린 손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명준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네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그녀는 모든 게 자기 때문이라고 가슴을 치다가 뒤늦게 깨달은 듯, 원인을 제공한 백인 남자가 있다며 그의 탓으로 돌렸다. 그 남자는 정오가 막 지났을 무렵, 상점 문을 열고 들어와 뭔가를 찾는 듯 내부를 둘러보다가 도자기 미니어처가 놓여 있는 진열대 앞에서 잠시 망설이더니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듯이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리켰다. "왜 그거였을까? 어째서, 다른 물건도 많은데 왜 하필 그 물건을 원했을까?" 그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도자기로 입체화해 만든 미니어처였다. 다빈치의 원화가 주는 숭고함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다른 미니어처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정교해 가격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점 때문에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실 그것은 이진욱이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정해두고 절대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한 물건이었다. 그녀는 사정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애초부터 그녀의 머릿속에는 느닷없이 나타난 백인 남자에게 그 미니어처가 처한 상황을 이해시킬 만한 영어 단어는 단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며느리는 한국인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도저히 말을 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만약 그가 오지 않았다면, 그 남자가 다른 물건을 골랐더라면, 그 남자만 아니었다면, 명준아…." 그녀는 소년의 손을 부여잡고 다짐했다. 그 남자는 아마도 유명한 사람일 거라고, TV와 신문에서 많이 본 얼굴이 틀림없다고, 반드시 그를 만나서 선물을 돌려받겠다고, 그래야 아비의 원(怨)도 풀리고 자신의 잘못도 조금이나마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이틀 후, 교회에서 장례를 치른 뒤 화장(火葬)을 한 다음, 유해는 이진욱의 형이 한국으로 가져가 선산에 묻었다. 이진욱의 형이 한국으로 함께 돌아가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소년의 엄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죽어도 안 간다고 말했다. 그녀는 소년에게 물었다. "폴, 큰아버지 따라서 한국으로 돌아갈래?" 소년은 다급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엄마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소년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비로소 실감했으며 오래전부터 그때를 위해 참아둔 것처럼 갑자기 눈물을 떨궜다.

  할머니는 신문에 실린 조그만 사진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그 남자라고 말했다. 앤디 워홀(Andy Warhol). 아마도 그것은 그녀가 알파벳까지 외운 첫 번째 미국인 이름일 것이다. 할머니는 신문과 잡지에서 그에 관한 기사나 사진을 발견하면 스크랩을 했고, 모르는 단어는 사전에서 뜻을 찾아내 영문 옆에 한글로 적어 넣었다. 할머니는 어떻게든 그를 만나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소년의 엄마는 가장의 부재가 남긴 재정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회 상점을 그만두고 급료가 더 높은 일을 찾았지만 할머니는 그러지 않았는데, 어쩌면 앤디 워홀이 그곳을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자주 나타난다는 호텔이나 식당을 알게 되면 소년과 함께 찾아가 기다리거나 근처를 배회하기도 했지만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앤디 워홀은 뉴욕의 도처에 수시로 출몰했지만 할머니만은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신기루 같은 존재였다. 1년쯤 지나 앤디 워홀이 이탈리아에서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렸다. 기사는 전시될 작품 중 하나를 사진으로 소개했는데 제목이 '최후의 만찬'이었다. "이거구나. 이것 때문이었어." 할머니의 표정이 해묵은 난제의 실마리를 찾아낸 것처럼 밝아졌다. 사진 속의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오리지널을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낸 것이어서 아무리 봐도 도자기 미니어처와는 무관해 보였지만 소년은 할머니의 감정을 존중했다.

  한 달이 지난 1987년 2월 22일, 앤디 워홀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TV와 신문을 통해 전 세계로 전해졌다. 그는 뉴욕 코넬 의료센터에서 담낭 수술을 받았는데 다음 날 페니실린 알레르기를 일으켜 심장마비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일부 신문에서는 그를 마지막으로 간호한 담당 간호조무사의 근무 태만을 질책했고, 어느 신문은 간호조무사가 한국인임을 지적하며 의사소통도 서툰 외국인에게 환자를 맡긴 병원의 무성의와 부주의를 비난했다. 할머니는 그 가여운 간호조무사를 만나야겠다고 했다. 소년의 엄마가 이유를 묻자 그녀는 말했다. “지금 많이 힘들 텐데 어떻게 모른 척하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못 그런다. 같은 한국 사람 아니냐. 그리고 그 사람이 어쩌다 갑자기 그리된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간호조무사는 병원에 없었다. 잠시 외출을 한 건지, 그날 하루만 결근한 건지, 휴가를 떠난 건지, 아니면 병원에서 해고당한 건지 궁금했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세세한 사정까지는 묻지 못했다. 그녀는 서툰 영어로 간호조무사의 연락처나 주소를 알려달라고 거듭 애원했지만 직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한 간호사가 주소가 적힌 쪽지를 할머니의 손에 쥐여 주며 “Mrs. Jo is my friend”라고 속삭였다. 덕분에 할머니는 간호조무사의 주소뿐 아니라 그녀가 조씨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름 세 글자 중에 한 자를 알게 되자 어쩐지 그녀와 친밀해진 느낌이 들어 할머니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평소라면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을 테지만 간호조무사는 집에 있었다. 할머니가 조 간호사님을 만나러 왔다고 한국어로 말하자 열린 문틈으로 반만 드러난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할머니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영어로 물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힌 뒤, 조 간호사님이 앤디 워홀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처한 것 같아 찾아왔다고 한국어로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할머니를 흘겨보며 한국어로 물었다. “그게 누구죠?” 할머니는 그녀와 자신, 둘 중 하나가 말귀가 어두운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간호했던 사람요. 며칠 전에 죽은 백인 남자.” “제가 간호했던 환자 중에 그런 이름은 없었는데요.” 할머니는 머릿속이 텅 비워졌다. “모른다구요? 앤디 워홀을? 그럴 리가요? 지금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람을, 어떻게 당신이 몰라요?” “글쎄요. 누군지 모르겠네요.” 그 순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위해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동네까지 당도하도록 그녀를 떠밀었던 연민과 공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할머니는 앤디 워홀의 외모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잘 생각해 보라고, 틀림없이 당신 환자였다고 말했다. 간호조무사는 걸쇠가 팽팽해지도록 문을 열고 할머니를 향해 다가섰다. “이보세요, 그 환자 이름은 밥 로버트였어요. 나뿐 아니라 담당 의사와 동료 간호사, 모두 그를 밥이라고 불렀구요. 의심스러우면 병원에 물어보세요. 만약 그 사람이 깨어났다면 자기 이름은 밥 로버트라고 스스로 밝혔을 거예요. 앤디 워홀요? 그런 사람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구요. 내가 아는 건 오직 밥 로버트, 그 사람뿐이라구요. 그러니까, 당신은 사람을 잘못 찾아온 거예요. 아시겠어요?” 간호조무사는 차갑게 돌아섰고, 그녀와 할머니 사이에서 문은 굉음을 내며 닫혔다. 할머니는 하마터면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간호조무사가 쏟아낸 말을 되씹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 깊이 파고든 모국어를 그녀는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소년과 소년의 엄마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사소한 것 하나까지 빠짐없이, 그리고 천천히 들려줬다. 소년의 엄마는 한숨을 뱉으며 이제 앤디 워홀은 그만 잊으라고 했다. 소년은 할머니가 부러웠다. 소년에게 할머니의 고생담은 앨리스의 모험만큼 흥미진진했다. 소년은 할머니가 들려준 얘기를 일기장에 적었다. 첫 문장을 영어로 시작했다가 지우고 다시 한국어를 사용했다. 한참을 걸려 두 페이지 가득 써 내려간 일기장을 들고 숙제 검사를 받듯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할머니를 찾아갔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의 침대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1년 후, 뉴욕에서 앤디 워홀을 추모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열렸다. 소년은 할머니와 함께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장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소년은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는데, 진열된 모든 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답고 고가(高價)이며 심지어 예술적이라 해도, 어쨌든 고인의 유품이었으니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할머니는 소년의 손을 잡고 말없이 느린 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앤디 워홀의 작품은 놀랍지도 낯설지도 않았다. TV나 신문이나 책에서 보던 것을 실물로 직접 볼 때의 감탄이나 반가움조차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걸음을 멈춘 것은 전시실 한쪽 벽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대형 회화 작품 앞이었다. 그것은 검은 윤곽선의 내부에마저 채워지지 못한 여백이 너무 많아서,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그려지다 멈춘 붓질의 흔적이 너무 뚜렷해서, 화가의 부재가 남긴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소년은 그림 옆에 작은 글씨로 적힌 제목을 보았다. ‘The Last Supper(1986)’. 그것은 분명 같은 제목이지만 할머니가 신문에서 봤던 ‘최후의 만찬’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캔버스 위에 검은색 실선으로 그려진 예수와 제자들의 모습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것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소년은 그림 앞에 붙박인 채 꼼짝도 않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할머니의 무거운 발걸음은 소년의 뒤를 따랐지만 시선은 예수의 얼굴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못했다. 그들은 마지막 전시물 앞에 이르렀다. 그것은 회화 작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앤디 워홀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었고, 제목은 ‘The Last Atelier’였다. 외부의 출입을 거부하는 무릎 높이의 철제 펜스로부터 열 걸음 정도 들어간 안쪽 벽면에 기대어진 대형 캔버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위에 미완성으로 남겨진 예수와 제자들의 형상은 조금 전 ‘The Last Supper’와 유사하다. 좌우측 벽면에는 그 공간의 주인이 화가임을 알려주는 화구와 잡동사니가 아무렇게나, 그러나 비교적 청결하고 조화롭게 널려 있고, 한쪽 구석에는 화가가 근육을 키우는 데 사용했을 바벨과 벤치도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소년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소년은 할머니의 팔을 꽉 쥔 채 다른 손을 들어 펜스 너머 아틀리에 한복판에 있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것은 작은 목재 테이블 위에,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고대 유물처럼 놓여 있었다. 이진욱이 이명준에게 주려 했던 물건, 아빠가 아들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 계획대로 소년의 소유가 됐다면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꿔놨을 도자기 미니어처. 소년은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사람을 죽게 한 건 택시 운전사예요.” 할머니의 목소리도 들렸다. “진욱이가 그 차도를 지나간 건 다 내 탓이야.” 소년은 그들을 향해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그런 선물 갖고 싶지 않았어요.” 소년은 그것을 처음 보았다. 아빠가 왜 그것을 선물로 주려 했는지 소년은 영원히 알 수 없을 테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소년은 그것을 보는 내내 ‘저건 내 거야’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손등 위에서 차가운 물기를 느낀 소년이 할머니를 바라본 순간,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할머니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념품 가게에 나가는 것도 그만뒀고 방문자가 드문 시간에 교회에서 기도를 하거나 가끔 미술관에 들러 종일 앉아있다 돌아오는 것 말고는 외출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앤디 워홀의 사망 2주기를 두 달쯤 앞두고 한국으로 돌아가 소년의 큰아버지와 두 해를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2

  폴은 고등학교 재학 중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연기의 매력에 빠졌다. 특별한 분장도 없이 표정과 몸짓과 말투의 변화만으로 전혀 다른 인물의 삶을 살아보는 것은 연기만이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였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폴의 열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열정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존재했다. 그곳에는 무대와 카메라를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갖고 노는 인재가 차고 넘쳤던 것이다. 대학은 현실의 냉엄함을 알려줬고 폴의 자존감을 앗아갔다. 졸업 후 1년 동안 폴은 유럽과 남미와 아시아를 돌아다녔다. 그건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한 번쯤 경험하게 되는 히피(hippie)적인 일탈이었는데, 엄마는 그것을 배부른 도피라고 불렀다.

  엄마는 일본인 사업가와 재혼해 도쿄로 떠나더니 3개월 내에 고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일을 찾지 않으면 생활비를 끊어버리겠다고 새벽마다 전화로 10분 넘게 노발대발했다. 그는 별수 없이, 그러니까 순전히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브로드웨이에 있는 500석 규모의 어느 중형 극장에서 관리직 일자리를 얻었다. 오디션을 보러 다니지는 않았다. 애초에 아시아인을 뽑는 오디션 자체가 희귀했고 간혹 있더라도 춤과 노래가 가능한 연기자를 원하는 대형 뮤지컬뿐이었다.

  그러다 대학 때 알고 지내던 중국인 친구를 극장 로비에서 우연히 만났고, 그의 소개로 소규모의 실험적인 아트 필름을 만드는 그룹을 알게 돼 그들 작업에 가끔 참여했다.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동료를 사귀면서 폴은 연기의 열정을 되찾았고, 드물기는 했지만 그들의 인맥을 통해 대사 한마디 없는 작은 역할이라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폴과 사라 정의 만남도 그런 네트워크가 작동한 결과였다. 사라는 한인 교포 3세 여자였다. 그녀는 주로 저예산 CF나 단편영화만 만들던 감독이었는데, 자신의 첫 장편영화에 출연할 연기자를 찾던 중 폴을 소개받았다. 사실 폴은 영화보다 연극을 더 하고 싶었지만, 취향보다 기회가 우선이었다. 그는 시나리오는커녕 시놉시스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얼른 사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영화 ‘Half and Quarter’는 아시아계 유색 인종과 혼혈들의 정체성 문제를 코믹하게 다룬 영화였고, 폴이 맡은 역할은 꽤 비중 있는 조연이었다. 영화의 총예산은 100만달러에 불과했는데, 그 금액은 뉴욕에서 한 편의 장편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예산의 최소한도임에도 제작자와 감독의 예상치일 뿐 실제 확보된 금액은 아니며, 완성 후에 극장에서 상영될지 여부도 불확실하다는 건 이미 촬영이 시작된 후에야 폴이 알게 된 사실들이었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사라는 폴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혹시 한국 이름이 있는지 물었고 폴이 알려주자, 그때부터 바로 폴을 명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폴이 그 점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지만 사라는 들은 척도 않고 영화 촬영 기간 내내 그를 명준이라 불렀는데, 그녀가 원하는 게 명준의 스트레스라며 감정을 컨트롤하지 말고 고스란히 발산하라고 끊임없이 그를 자극했다. 두 달간의 촬영과 3개월 동안의 후반 작업을 마치고 영화가 완성된 후, 첫 번째 시사회에서 엔딩 타이틀에 이름 ‘Paul Lee’가 올라가는 걸 보며 폴은 작품을 무사히 끝냈다는 성취감보다 사라를 향한 호감을 더 강하게 느꼈다. 그날 밤, 제작사에서 주최한 파티에서 사라는 폴에게 ‘은하’라는 두 글자를 한글과 한자로 적어 보여주며 의미를 설명했다. 폴은 한자보다 한글이 더 쿨해 보인다며, 그래서 이게 뭐냐고 사라에게 물었다. 사라는 말했다. “내 이름이야. 사라와 은하, 어느 쪽이 마음에 들어?” 폴은 궁금했다. 사라와 은하가 뭐가 다른지, 왜 하필 은하인지, 그럼, 사라는 어떻게 되는 건지. 하지만 폴은 묻지 않았다. 대신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는 그를 폴이라 불렀고 할머니는 고집스럽게 명준이라 부르며 두 사람은 할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다퉜다. 폴은 사라와 그런 상황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그의 걱정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사라가 말했다. “공식적으로, 대외적으로 내 이름은 사라 정이야. 하지만 아빠와 엄마는 나를 은하라고 불러. 나도 은하가 좋고. 그러니까, 부탁인데, 너도 나를 은하라고 불러주면 안 될까?” 폴은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그녀가 원하는 게 뭔지 어렵지 않게 이해했고, ‘은하’라는 두 글자에 담긴 아름다운 의미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해졌다. 폴은 입술을 움직여서 은, 하, 발음해 보였다. 그리고 자신도 털어놓을 게 있다며, 아빠의 죽음과 앤디 워홀과 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그녀에게 들려줬다. 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사라는 말했다. “이런 거 아닐까? 그 러시아인의 과속은 일종의 지진 같은 거야. 사람들이 있건 없건 지진은 일어나잖아. 보행자와 상관없이 그의 운전은 늘 거칠었을 테고, 하필 그 순간 그곳을 지나는 우연을 빚어낸 건 순전히 당신의 실수라고 할머니는 생각했겠지.” 한 번도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꽤 그럴듯하다고 폴은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빠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나를 명준이라고 부른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시끌벅적한 파티에 어울리지 않는 둘만의 침묵이 잠시 흐르다 문득, 사라는 폴의 손을 잡았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치 어제도 그제도 그랬던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 입을 맞췄는데, 그것은 주변의 누구도 놀라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일주일 후, 사라는 자신의 모든 물건을 폴의 집으로 옮겼고, 폴은 사라를 위해 꽤 많은 짐을 내다 버렸다.

  ‘Half and Quarter’는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돼 수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몇몇 평론가의 주목을 받았고, 그 덕분인지 해외 여러 영화제에 초청됐다. 사라는 한국에서 열린 영화제에 참석하느라 일주일 동안 부산을 방문했다. 그녀는 폴도 함께 가길 원했지만 ‘Half and Quarter’가 관심을 받은 이후 영화와 연극에서 비록 단역이지만 일이 계속 들어오고 있던 상황이라 폴은 뉴욕을 떠날 수 없었다. 사라는 영화제가 끝난 후에도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 인터뷰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영화 관련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사라가 소화한 주요 스케줄이었지만 그런 공식적인 업무가 끝난 후에도 그녀는 특별한 목적이나 아무 방향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한국으로부터 CF나 뮤직비디오 촬영 같은 일거리가 들어오면서 그녀가 한국에서 보내는 기간은 점점 늘어났고, 폴이 불만을 털어놓자 사라는 함께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폴은 너무 바빴다. 스케줄은 마음만 먹으면 조정할 수도 있지 않나, 사라는 생각했지만, 이제 막 제대로 된 커리어가 시작된 폴의 입장을 알기 때문에 그녀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몇 달 후, 사라는 한국에서 장편영화 감독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고 계약서에 사인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났다. 그녀가 없는 여섯 번의 밤을 보내고 날이 밝아질 무렵 폴은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흐린 음성으로 계약이 틀어졌다고 말했다. 폴은 잠으로부터 벗어나려 애를 쓰며 영화는 뉴욕에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 너무 낙담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사라는 대답이 없었다. 두 사람이 침묵을 지키는 잠시 동안 사라가 견디던 감정을 폴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폴은 어서 돌아오라는 말만 반복했다. 사라는 말했다. “네가 와주면 안 될까?” 더듬더듬, 사라는 처음으로 폴에게 한국어를 사용했다. “나 많이 힘들어. 이리 와 줘. 명준, 네가 필요해.” 폴에게 사라의 한국어는 멀고 낯설었다. 폴은, 나는 갈 수 없으니 네가 돌아와야 한다고 영어로 말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영어 문장은 짧고 냉정했다. 사라는 알았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사라는 폴의 곁으로 돌아오는 대신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아빠와 엄마가 한국으로 와서 자기와 함께 지낼 예정이며, 아무래도 체류 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질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그녀는 적었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체류 기간이 길어질 거라는 말보다, 아빠와 엄마라는 말이 폴에게는 더 의미심장했다. 그렇다. 그녀에게는 아빠와 엄마가 있었다. 같이 산 지 1년이 넘었는데 폴은 그들의 존재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폴은 그것이 새삼 이상하게 여겨졌고, 뭔가 중요한 것을 빠뜨린 느낌에 사로잡혔지만 그게 뭔지는 알지 못했다.

  사라의 두 번째 이메일이 도착한 건 한 달 후였다. 이메일에는 LP와 CD와 몇 권의 도서와 몇 점의 의류가 적힌 목록과 함께 한국 주소 하나가 적혀 있었다. 그녀가 주소를 알려주면서 원한 게 단지 그런 물건만은 아님을 모르지 않았지만 폴은 그녀의 기대를 모른 척했다. 폴은 사라가 원한 물건을 상자 세 개에 나눠 한국으로 부쳤다. 수신인은 ‘정은하’라고 한글로 적었다. 여전히 그녀의 많은 짐이 집 안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는 건드리지 않았다. 그녀가 두고 간 것을 어찌하면 좋을지 그녀에게 묻지도 않았다. 그게 무엇이든 폴에게 남겨진 것들은 이제 사라와 무관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흔적을 지우는 대신 폴은 그녀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폴과 사라를 모두 아는 친구들을 일부러 만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라 얘기를 꺼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쪽에서 먼저 사라의 안부를 물어왔다. 그는 인터넷으로 한국의 최신 뉴스를 찾아 읽었고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사라 정’을 검색하면 폴이 이미 알고 있는 과거의 기사들만 나왔고, ‘정은하’로 검색하면 사라와 무관해 보이는 문서와 기사가 나왔다.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직접 근황과 안부를 물으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지만 폴은 그러지 않았다. 폴이 물으면 사라도 물을 테고 그러면 폴은 대답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할 말이 없었다. 이제 그만둬야겠다고, 사라와 폴 사이에, 어쩌면 은하와 명준 사이에, 나쁜 감정은 남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해피엔딩이라고 폴은 생각했다.


  3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명준은 잊혀졌다. 명준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 폴의 곁을 떠났고 폴이 명준인 걸 알지만 한 번도 폴을 명준이라 불러 본 적이 없는 폴의 엄마는 1년에 한 번쯤은 폴이 도쿄로 와주길 원했다. 그러나 폴은 뉴욕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명준이라 부르지 않았으므로 명준은 폴로부터 멀어졌다. 폴은 명준을 잊었다.

  언젠가부터 조금씩 일이 줄기 시작해서 폴은 이유가 뭘까 고민하며 거울을 보다가, 어느덧 대머리가 돼가는 중년의 아시아인을 발견했다. 나이를 먹는 것은 누구나 겪는 일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만 아빠가 대머리가 아니었기에 아무런 각오도 예감도 없었으므로 폴은 크게 놀라고 말았다. 두피에서 머리카락이 빠져나가는 속도만큼 일은 줄어들었다. 머리 벗겨진 40대 중반의 아시아인이 맡을 배역은 그에게 남은 머리카락만큼 희귀했다. 뉴욕에는 젊고 잘생기고 건강한 흑발을 소유한 동양인이 드물지 않았으니까.

  브로드웨이의 한 극단이 앤디 워홀을 연기할 배우를 뽑는 공개 오디션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폴은 그것이 요절한 예술가가 뒤늦게 내민 사죄의 손길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처럼 보였지만, ‘Half and Quarter’ 이후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게 없던 폴에게 주어진 터닝포인트이자 마지막 기회라 여기는 것보다는 덜 절박해 보였다. 폴은 소파에 앉아 할머니의 스크랩북을 펼쳤다. 분주한 기념품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남자가 보인다. 은색의 머리카락과 마른 얼굴과 입가의 주름. 그는 할머니를 향해 미소 지으며 긴 팔을 뻗어 뭔가를 가리킨다. 움푹 들어간 두 눈에는 오래 기다려온 크리스마스 선물을 품에 안은 어린아이의 기쁨이 가득하다. 서둘러 작업실로 돌아갔겠지, 머릿속은 이미 영감으로 가득 찼을 테고, 바로 옆에서 사신(死神)이 기회만 엿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야. 미완의 화폭 안에서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예수의 모습을 바라보며 폴은 생각했다. 이건 운명이야.

  이마를 반쯤 덮은 은색 머리카락과 까만 선글라스와 검정 터틀넥과 블랙 슈트. 이런 것들만 있으면 누구라도 앤디 워홀처럼 뉴욕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다. 때문에 이 옷차림으로 폴이 오디션장에 나타났을 때 관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하지만 폴이 입을 열어 대사를 읊기 시작하자 연출자와 작가와 제작자와 투자가들은 차례로 자세를 고쳐 앉으며 관심을 드러냈다. “나는 하나의 미스터리로 남고 싶어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려 애를 쓰죠. 만약 내 어린 시절에 대해 누가 물으면 매번 다르게 지어냅니다.” 폴은, 아니 앤디 워홀은 수줍은 듯 입을 조금씩 움직이며 낮고 가는 음성으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이건 단순히 내 인생의 한 부분을 말하지 않거나 감추려는 게 아니라, 전에 내가 말했던 것을 잊어버려서 다시 그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일 뿐이에요. 사실은 무엇이 진짜인지 나도 잘 모를 때가 있답니다.” 폴이 대사를 멈추고 선글라스를 벗어 자신의 인종을 드러냈을 때 어떤 참관인은 당황했지만 작가와 연출자는 그의 두 눈에서 앤디 워홀 특유의 거리감과 무심함을 발견했다. 폴은 지친 기색을 한껏 드러낸 몸짓으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정면을 한번 슬쩍 바라본 다음,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은색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더니, 마치 모자를 가볍게 들어 올리듯이, 늘 해오던 일상인 것처럼, 가발을 벗었다. 분장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약간의 옆머리만 남은 민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며 폴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근거리고 웅성대는 소음이 사방에 가득했다. 그러나 소음의 파문은 그를 비켜 갔다. “내 이름은 밥 로버트입니다. 사람들이 내게 이름을 물으면 나는 그렇게 대답합니다. 내일은 잭 로버트가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마이클 로버트일 수도 있구요. 하지만 저는 밥 로버트가 좋아요. 이름은 가발과 같은 것이죠. 나를 지켜주니까요.” 앤디 워홀이 대머리였음을 소문으로만 들어 알고 있을 뿐 실제로 본 적 없는 투자자와 제작자들은 너무 놀라 말을 잃었고 작가는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으며 연출자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폴을 힘껏 껴안았다.

  폴의 기대와 달리 연극 ‘A man named Bob Robert’의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작가는 대본을 계속 수정했고 연출자는 대본이 나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버텼으며 제작자는 홍보와 무대에 쓸 돈이 부족하다며 투자자만 쫓아다녔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하루빨리 모든 배우들이 모여서 리딩(Reading)부터 시작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폴은 이번 공연에 모든 것을 걸었다. 앤디 워홀의 복장과 표정과 말투와 몸짓, 취향까지 연구했으며 밤에는 앤디 워홀의 일기를 읽다 잠들었다. 가끔 그는 가발과 선글라스를 쓰고 앤디 워홀이 즐겨 찾던 미드타운의 호텔과 레스토랑 근처로 산책을 나갔는데, 가끔 그에게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도 되겠냐는 사람들이 있어 진짜 앤디 워홀이라도 된 듯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해주고는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급기야 인내심이 부족했던 투자자들이 작가를 교체하는 결단을 내린 뒤에야 작업은 속도를 냈다. 그 후에도 연출자가 두 번이나 바뀌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오디션이 끝나고 16개월 만에 ‘A man named Bob Robert’는 무대에 올려졌다.

  ‘A man named Bob Robert’는 앤디 워홀이 담낭 수술을 받기 위해 밥 로버트라는 이름으로 입원해 다음 날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이틀을 통해 한 예술가의 비밀과 진실을 파헤쳐 보이겠다고 선언한 작품이다. 공연이 시작된 후, 워홀재단에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일부 대사가 잘려나가거나 수정됐고 공연 횟수를 거듭하면서 점차 퍼포먼스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일부 장면이 화제가 됐는데, ‘문제의 그 장면’에 대해 어떤 평론가는 “예술가와 그를 사랑하는 모든 대중을 모독하는 포르노그래피”라 비난했고, 다른 평론가는 “관객의 관심을 얻어낸 유일한 장면”이라고 비꼬았다. 제작사 측에서는 그 장면이 담긴 사진이나 동영상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으며 그것은 홍보를 위한 궁여지책이었겠지만 아마도 워홀재단과 어떤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게 기자들의 추측이었다. 폴은 그 장면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디션에서 보여줬던 퍼포먼스를 평소처럼 반복하면 될 뿐이고 가발을 벗었을 때 관객들이 보는 것은 폴이 아니라 극중 인물일 테니 대단한 각오나 훈련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힘든 장면은 따로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밥 로버트의 죽음을 확인하고 무대 밖으로 사라지면 폴은 가발도 선글라스도 없이 홀로 서서 긴 독백을 끝내고 느리게 발을 옮겨 침대 위에 눕는다. 눈을 감지도 않았는데 일제히 모든 빛이 사라지고 무대의 막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그는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누워 있어야 한다. 무덤 안에 홀로 남은 듯 가슴을 짓누르는 막막한 어둠의 무게 때문에 폴은 숨이 막힐 지경이 됐다. 막이 닫히고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사방이 고요한 중에 누군가 다가와서 손을 대며, 이봐요 앤디, 다 끝났어요, 말해주면 그때서야 폴은 마법에서 풀린 듯 침대에서 일어났다.

  폴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분장을 지우지 않았다. 은발의 가발을 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다음 극장 밖으로 나가면 앤디 워홀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서로 앞다퉈 사진을 찍으려 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앤디라고 불렀고, 또 다른 이들은 밥이라고 부르며 다가왔다. 그는 흔쾌히 사진 촬영에 응해주고 그대로 브로드웨이를 지나 집까지 걸어갔다. 관객 상당수는 아시아인이고 그중에는 한국인도 많았는데, 그들은 폴이 한국인이 맞는지 묻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는 연극에서 사용한 말투와 악센트를 그대로 살려 극중 대사로 답했다.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니까요. 사실은 나도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의 영어 대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마치 정답을 들은 것처럼 박수를 쳤다.

  그는 인파를 헤치고 오프 브로드웨이를 지나 웨스트 57번가로 걸어갔다.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동양인 여자가 그를 향해 다가온다. 그녀는 말을 고르는 듯 망설이다 겨우 입을 뗀다. “명준, 이명준 맞죠?”

  여자가 건네는 뜻밖의 한국어가 그를 한발 물러서게 한다. 까마득히 멀어졌지만 그 세 글자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지구상에 몇이나 되는지, 그리고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여자가 또 묻는다. “잘 지냈어요?”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의 한국어가 무슨 뜻인지 생각한다. 낯선 언어에 담긴 의미가 퍽 멀게 느껴진다. 그는 여자의 이름을 묻지 않는다. 명준이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묻지도 않는다. 그들이 서로 아는 사이인지, 만난 적이 있는지 묻지도 않는다. 그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연기 중이고, 그러니 여자의 한국어에 대한 응답으로 그는 영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내 이름은 앤디 워홀입니다. 사람들이 내게 이름을 물으면 나는 그렇게 대답합니다. 내일은 밥 로버트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나는 앤디 워홀입니다.” 여자는 할 말을 잃은 듯 멍한 표정이다. 정해진 대사를 모두 소화한 배우처럼 그는 돌아서서 때마침 바뀐 신호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 무대를 벗어난다. 차도 너머에 도착해 여자가 서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여자가 이쪽으로 가볍게 손을 흔든다. 신호가 바뀌고 택시와 승용차가 거친 소음을 토해내며 저쪽과 이쪽 사이를 빠르게 지나간다. 차량 사이로 여자가 돌아서는 모습이 보인다. 거리는 음악과 웃음소리와 누군가를 부르는 외침과 경적 소리로 시끄럽다. 몇몇 중국인이 게이 바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다. 그들은 손을 들어 브이(V)를 만들었지만 다들 피곤해 보였고 아무도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늘 가던 길을 따라 타임스스퀘어 쪽으로, 거기서 그를 반겨줄 관광객들을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끝>




  <당선소감>


   멀리 있던 우주가 결국 눈앞으로, 반짝!


  제가 쓴 소설 속 명준이 미국 뉴욕에서 영문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있었을 무렵, 대한민국의 작은 도시에 살고 있던 한 소년은 평범한 밤하늘에서 빛나던 보통의 별들 가운데 특별한 어떤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시선은 줄곧 하늘로 향해 있었지만 별은 늘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간혹 소년의 시야에서 벗어났죠. 소년이 별을 잃은 것인지, 별이 소년을 떠난 것인지, 둘은 한동안 서로 다른 궤도에서 예측 불가능한 비행을 해야만 했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제자리에서 맴돌 뿐임을 깨달은 소년은 뒤늦게 자신을 붙들고 있던 중심으로부터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처음 그곳으로 돌아가 하늘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우다 끝내 용기를 내서 머리 위로 손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뭔지도 모르고, 그것이 저기 어둠 속 어딘가에 정말 존재하는지 아무런 확신도 없이, 오직 본능과 예감만으로 머나먼 우주를 향해 오랫동안 바라만 보던 그것을 마침내 손가락을 곧게 펴서 가리킨 것입니다.

  별을 바라보는 것과 손으로 가리키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소년이 깨달은 순간, 반짝! 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반짝! 별빛은 소년의 몸속으로 사정없이 쏟아져 들어왔고, 반짝! 멀리 있던 우주가 소년의 눈앞으로 바짝 다가왔습니다.

  이제 소년은 별을 향해 떠날 채비를 합니다. 소년을 가두고 있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알몸이 되어 우주의 한복판으로 나아갈 작정입니다. 별이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과연 그곳에 도달할 수는 있을지, 소년은 모릅니다. 하지만 도중에 길을 잃어 수억 광년을 헤맨다 할지라도 한 뼘 한 뼘 그곳을 향해 다가갈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소년은 충분히 행복할 겁니다. 애초부터 소년의 세상은 거기였으니까요.

  졸고를 정성껏 읽어주시고 애써 골라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선생님들의 선택과 기대에 답할 수 있도록 용맹정진하겠습니다. 그리고 멀리 도쿄에 계신 엄마, 사랑합니다. 이 모든 게 당신 덕분입니다.



  ● 1966년 경기도 동두천 출생.
  ● 성균관대 회계학과 3년 수료.
  ● 극단 ‘허리’에서 2년간 배우 및 스태프로 활동.
  ● 학원 수학 강사로 재직.


 

  <심사평>


  충분히 숙성된 문장... 사실과 허구 자연스레 연결” 


  응모작 상당수가 개인적인 경험과 언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공감의 여지를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개별 작품은 새롭게 생겨난 것인 만큼 존재 이유가 필요하다. 완결성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또 하나 눈에 띈 것은 스타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외형적으로 비슷비슷한 작품이 많아지고 있다. 국적 불명의 장소, 번역투 문체, 쉽게 납득 가지 않는 돌연한 결말 같은 것이 공통점이다. 비슷한 스타일 속에서 변별력을 내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아 보였다.

  송은영씨의 ‘알’은 익숙한 설정의 작품이다. 우리 일상 공간이나 몸 어느 곳에 이질적인 물질이 자리 잡게 되고 그것이 하나의 현상으로 확산돼 가는 과정을 차분히 그려냈다. 하지만 익숙한 것인 만큼 이미 존재하는 다수의 작품과 확실히 다른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서동욱씨의 ‘마리의 집’은 사건의 전개가 빠르고 흥미롭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제이라는 인물의 역할이 불분명하고 결말이 돌발적으로 급히 처리된 느낌이다. 박다래씨의 ‘뒤에’는 가장 안정된 작품으로 꼽혔다. 잘 아는 이야기를 적절히 다루고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반면 우연히 존재하게 된 자연물처럼 분명한 의도와 지향이 느껴지지 않은 점이 발목을 잡았다.

  명학수씨의 ‘폴이라 불리는 명준’은 이야기와 문장이 소설로 충분히 숙성된 작품이다. 작은 흠이나 실수가 잘 보이지 않는 점도 믿음을 준다. 사실과 허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기술이 뛰어나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다음을 기약하게 된 이들에게는 걸음을 멈추지 말기를 당부한다.



 

심사위원 : 김인숙, 성석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