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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봄, 달 / 방미현

 

  멀다. [멀ː다]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다. 어떤 기준점에 모자라다. 서로의 사이가 다정하지 않고 서먹하다. 은우가 찾고 있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그 아래 있었다. 동사 멀다. 시력이나 청력 따위를 잃다. 따위라는 단어에 울컥했다. 시력 따위라니. 그런 뜻이 아닌 줄은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은우는 누구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평소 같으면 집에 들어와서 그녀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통창의 블라인드를 내려 자신의 방을 들여다보는 도시의 시선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그녀는 창밖의 풍경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빌딩 앞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꽁무니에 시선을 두기도 했고 도로 중앙의 버스 정류장을 지키고 선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다가, 여러 개의 빨간 십자가를 거쳐 며칠 전 개업한 콩나물 국밥집의 간판도 살펴보았다. 어두운 도시에 색색의 불빛이 켜져 있었고, 은우는 그녀답지 않게 그 풍경이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빛 공해 보랏빛을 띠는 도시의 밤하늘에 어색하게 보름달이 떠 있었다.

  은우에게는 가족들만이 부르는 아명(兒名)이 있었다. 문아. 그녀의 아버지가 태명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꿈에서 커다란 보름달을 보았고, 그 후 그녀가 부부에게로 왔기 때문에 아이의 태명을 영어 단어 Moon과 한자 아이 아(兒) 자가 합쳐진 '문아'로 지었다. 자라면서 은우라는 호적상의 이름으로 불릴 일이 훨씬 많아졌지만 문아의 삶을 종종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아명 덕분에 그녀는 항상 달이라는 존재에 혼자만의 친근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를테면 야근 후 집에 오는 길에 보름달을 만나면 그날만큼은 아주 조금 덜 피곤한 것 같기도 했다.

  병원에서 망막검사를 하고 난 후 의사가 보여줬던 사진을 보면서 은우는 달을 떠올렸었다. 달의 표면이 한쪽 면은 태양의 빛을 받고 다른 쪽 면은 어둠에 가려져 있을 때 표면에 나타나는 거뭇거뭇한 점들이 그녀의 망막 가장자리에도 있었다. 망막검사를 위해 동공확장제를 투여한 후라 사진 속 이미지는 처음에는 흐릿하게 보였을 뿐이었지만 점점 선명해졌고 곧 그녀의 머릿속에 또렷이 각인되었다. 주황빛을 띠는 커다란 동그라미, 그 안의 작고 노란 원에서 뻗어 나온 얽히고설킨 모양의 가느다란 실핏줄들 그리고 거뭇거뭇한 점들이 자리 잡고 있던 이미지는 그 후 눈을 감고 있을 때나 꿈속에서 돌연 그녀 앞에 나타나곤 했다. 그럼 항상 그녀는 그것이 달인지, 자신의 눈인지 헷갈려 했다.

  한 달도 더 된 일이다. 잠이 깬 은우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눈을 떴다. 더듬거리며 협탁 위의 휴대폰을 찾아 들고 옆구리의 전원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3:48 AM이란 글자가 떠올랐다. 몸을 일으켜 화장실까지 가는 일곱 걸음 중 두 번째 걸음을 떼었을 때였다. 그녀는 빨래 건조대에 걸려 넘어졌다. 건조대 위의 양말들과 브래지어, 잠옷으로 사용하는 오래된 면 티셔츠 위로 그녀가 쓰러졌다. 블라인드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 외엔 그녀의 원룸은 어두웠지만, 눈이란 주변의 조도에 적응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은우는 넘어진 후 맞은편 TV 옆까지 기어가 조명을 켜기까지 아득한 어둠이 주는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넘어진 그녀 앞에 놓여 있던 건조대의 뼈대조차 한 뼘 정도의 거리에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은 손으로, 아니 온몸으로 느껴졌지만 물건의 형체는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뱃속 깊숙한 곳에 공포와 의심이 자리 잡았다. 한번 시작된 의심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때 더욱 공포스럽다는 점에서 그녀는 그날 이후 출근길에도, 업무용 이메일을 작성하는 도중에도, 친구와의 저녁 식사 중에도 답답한 심정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불안의 크기만큼 두려웠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을 미루었다. 의심과 회피, 두려움 사이를 오가던 은우가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의 진료를 예약하고 실제로 병원에 가기까지는 한 달 가까이 걸렸다.

  의사는 담담한 목소리로 은우의 눈과 망막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명을 말했다. 흔히 RP(Retinitis pigmentosa)라고도 불리는 질병이라고 했다. 그리고 삶의 모든 디테일이 그러하듯 사람마다, 그러니까 환자마다 증상의 발달 양상이나 속도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RP라고 하는 병은 망막의 언저리에서 시작된 시각세포의 변성이 가운데로 확장되어,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터널 현상이 지속되다가 결국에는 실명에 이르는 병이에요. 진행속도는 환자마다 달라서 어떤 사람은 진단 후 1년 안에 실명에 이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10대 후반에 진단을 받고도 30, 40대까지 중심부 시력을 유지하기도 합니다."

  40대 후반의 의사는 익숙한 자세로 말을 이었다.

  "실명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은우가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물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발병 시기와 진행 속도에 따라 극소수의 환자들은 노년기까지 중심부 시력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실명에 이르는 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치료법이 없는 병이기도 해요. 그렇지만……증상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되는 보조제도 있고 병증으로 인한 불편함을 덜어내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받아들이시기 힘들겠지만'이라는 표현이 중간중간 나왔고 의사는 은우의 개별적 불행에 담백한 공감을 표하고 있었다. 그는 적절하게 말의 속도를 조절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은우는 느낄 수 있었다. 이날의 선고는 대학병원의 안과의사에게는 수차례 반복되었던 일이며 그날 그에게 주어진 노동의 일부라는 사실을. 어쩌면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그는 저녁 메뉴로 구내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을지, 병원 밖으로 나가 만둣국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은우는 비현실적인 말들을 지극히 현실적인 자세로 이어가고 있는 의사의 입술 언저리에 자리 잡은 반투명한 각질을 그 순간 바라보았다. 그가 망막 사진을 가리키며 말할 때마다 흰색 가운 안에 받쳐 입은 엷은 하늘색 셔츠의 소매가 드러났고 거기엔 아주 작은 파란색 볼펜 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 작은 점까지도 그녀는 선명히 보았다. 은우는 이처럼 작은 디테일까지 볼 수 있다고, 눈에 이상이 없는 게 분명하다고 의사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참는 것은 그녀가 잘하는 일이었다. 지난 7년간 그녀는 금융회사가 몰려 있는 여의도에서의 삶을 8할은 참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1㎡ 남짓의 공간에서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애썼다. 은우의 상사들도, 동료들도, 후배들도 대부분이 남자였다. 여성성의 자기검열에 철저해질 수밖에 없었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혹독히 단속했다. 지나치게 여성스럽지도 않게, 또 적당히 여성스럽기 위해 항상 긴장해야 했다. 회사 내부 회식, 고객사 담당자들과의 회식, 외국계 투자은행 임원들과의 회식 자리에도 그녀는 꼬박꼬박 나가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다. 덕분에 여의도와 청담동의 술집, 신사동의 고급 음식점, 유명 호텔 중식당의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하룻밤에도 몇 번씩 속을 게워내기도 했다. 농담 삼아 입사 2년 차에 그녀는 동기들에게 변기로 식당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병원 로비를 빠져나오자 거리는 어둑해져 있었다. 어눌해진 시력 덕분에 모든 것이 흐릿했다. 야맹증은 환자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병증이라고 했다. 해가 짧았던 지난겨울의 퇴근길이 흐릿했던 것도, 며칠 전 부엌 장의 깊은 곳에 놓인 냄비를 찾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모두 병으로 인한 증상이었다, 빽빽하고도 흐릿한 풍경을 피해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여백은 하늘이다.

  삶은 잔인하고도 우스운 것이었다. 불과 지난주 그녀는 점심시간에 입사 동기인 윤기와 식사를 하고선,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며 문득 자신의 삶이 드디어 균형을 찾았다는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던 터였다. 아이스 음료가 어느덧 반가워지는 계절, 봄이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비추는 햇살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었다. 눈을 감은 채 그대로 몇 걸음을 걷고 있자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이 넘은 지 두 해가 지났고 결혼에 대한 조바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 이사한 원룸이 햇빛이 많이 드는 공간이란 것도 마음에 들었고, 대리 직함을 달고 스스로 두 개의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녀는 입사 후 그 어느 때보다 성취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원룸이 전세란 것도 물론 그 성취감의 일부였다. 헤어진 지 거의 일 년이 되어가는 남자친구에 대한 미움조차도 옅어진 채, 엷은 그리움만이 남은 마음의 상태조차도 적절했다. 이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봄을 핑계로 그녀는 설레는 마음을 품기도 했던 것이다.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햇살에 눈이 그토록 감겼던 이유가 어쩌면 병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니 우스웠다. 갑작스러운 조도의 변화에 눈이 빠르게 적응을 못 하는 것 또한 대표적인 초기 증상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돌아온 은우는 겨우 겉옷만 책상이자 밥상으로 사용하는 테이블 위에 던져두곤 저녁도 먹지 않은 채로 침대에 누웠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고 함께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아직 자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한 일을 타인과 나누는 것이 익숙지 않은 은우는 손에 들었던 전화기를 협탁 위에 도로 올려놓았다. 연인과의 이별 후에도 며칠이 지나야 그 사건이 이해되고, 이해가 된 후라야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녀였다. 아직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그날이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다.

  오진의 가능성을 의심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망막전위도검사(ERP)라는 정밀 검사의 결과였다. 죽어가는 시각세포처럼 되돌릴 수 없는 확진이었다. 그녀의 뇌는 빠르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다만 마음은 머리의 속도나 방향을 따르지 못하고, 다른 길을 내달렸다. 기적, 기도, 신…… 그리고 자살이라는 단어들에 검붉은 그녀의 마음이 도달했다. 여느 때의 그녀처럼 수학 문제를 몇 개 풀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으면 좋으련만 실명은 그렇게 취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답을 구할 수 있는 문제를 몇 개 풀고 나면 삶의 문제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원룸의 책상 위에도 회사의 책꽂이에도 업무용 금융 서적과 서류철 곁에 고등학생 때 풀던 수학책을 꽂아 두었다. 그녀는 그날 수학책을 펼쳐보지 못했다.

  당연히 잠은 오지 않았다. 육체의 피로도와는 상관없이 그녀는 잠들 수 없었다. 머릿속의 생각에 부피가 있다면 아마도 그날 새벽 그녀의 머리는 폭발했을 것이다. 그녀는 폭발을 바랐다. 머릿속을 메운 자음과 모음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숫자들도 날아가다 낙하하겠지. 아마도 두 눈알도 방바닥을 구르지 않을까? 붉은 피와 검은색의 글자들, 숫자가 사방으로 튀어 원룸을 어지럽히면 그녀는 두 눈알을 조심스레 들어 올릴 것이다. 손바닥 위에 동그란 눈알 두 개를 올려두고 아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가해지면 보려고 몇 달간 미뤄뒀던 영화를 지금 보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녀를 침대에서 일으켰다. 바탕화면의 '영화 폴더'를 클릭해 내려받아 놓은 파일을 재생하자 하얀 설원, 빨간 목도리, 비가 내리는 풍경, 연두색 자동차, 연한 팥죽색의 한복이 눈앞에 나타났다. 고등학생 때 좋아했던 남자아이와 보았던 영화였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그 무렵에는 보이지 않았던 인물들의 사정이 눈에 띄었다는 점이다. 유혹의 쓸쓸함, 설렘 뒤의 두려움, 분노로 덮어버린 그리움, 그리움인 양 꾸민 외로움, 뜨거운 사랑과 뒤섞인 지난한 일상이 십여 년이 흐르고 그녀의 삶도 그때의 선명함을 잃었기 때문에 보였는지도 몰랐다.

  은우는 영화를 좋아했고, 주말 근무가 없는 토요일은 두세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보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좋아하는 장면은 10초 단위로 앞뒤로 움직이며 인물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 바람에 날리는 옷깃과 배경의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을 꼼꼼히 지켜보기도 했다. 더러는 영상을 캡처하여 모아두고 잠이 쉽게 오지 않는 밤이면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을 잠재우기 위해 그 사진들을 꺼내보았다. 그렇게 모아둔 장면 중 요즘 그녀가 자주 클릭하게 되는 장면이라면 초록의 나무와 벚나무가 나란히 서서 연녹색의 이파리와 분홍색 꽃잎을 섞고 있는 사진이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선 두 그루의 나무가 다정해서 좋았다. 조용하고 느린 일본 영화에 나왔던 장면이다. 영화는 보는 것이지 듣는 것이 아니었고 영화의 9할은 영상이라고 은우는 늘 생각했기 때문에, 어떠한 강렬한 간절함에 이끌려 그날 밤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시력의 상실에 대한 대비라기보다는 본다는 것에 대한 간절함에 기인한 것이었다.

  '눈이란 호기심에 찬 뇌가 바깥세상을 향해 뻗어 나온 것과 같다.'

  고등학생 시절 생물 과목 문제지의 한 귀퉁이에서 보았던 문장이 불현듯 떠올랐다. 인간의 사유 방식이 눈이라는 감각기관에 크게 의존한다는 내용이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봄으로써 인간은 인지하고, 사고한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종종 깨닫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눈이 뇌의 일부라니. 그렇다면, 눈이 실명에 이르는 질병에 걸리고 이상 증상을 보이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은우는 생각했다. 동시에 앞으로 시력이 떨어지면서 과연 자신의 사고가 어떻게 변할지 짐작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두려웠다. 영화를 본 후, 혹은 회사에서 비일상적인 경험을 한 날이면 잔상을 쉽게 지우지 못하는 그녀는 비로소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마주하게 될 잔상의 세계가 무서웠다.

  '잔상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갇히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수학 문제를 풀듯, 차례차례 하나씩 증명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거대한 문제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다만 모든 불행 앞에서 인간이 품는 하나의 질문을 되풀이했다.

  '왜, 나인가?'

  그녀는 그 순간만큼은 존재를 믿지도 않던 신에게 따져 묻고 있었다. 왜 하필 자신이어야 했는지.

  의사의 말에 의하면 '왜'는 애초에 없었다.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도 않은 병이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유전적 요인에 의한 발병과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슷한 비율로 나타난다고 했다. 한 대를 걸러 조부모에게서 손자 대에 유전되기도 하는 병이었다. 은우의 경우는 유전이 아니며,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을 수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큰 사건에는 특별한 이유란 것이 없다. 그냥 일어나는 것이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중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 가장 큰 적으로 돌변한 데에도 생각해 보면 이유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이 무리와 다르다는 걸 들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몇 해 전 그날의 일도 다르지 않았다. 여의도에서 직장 동료들에게 분노한 범죄자가 칼을 들고 행인을 공격했던 그때, 그녀는 사건이 일어난 곳과 불과 2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을 지나고 있었다. 그날 죽은 20대 여성 또한 그녀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녀도 은우도 남자와는 인연이 닿은 적이 없었다. 은우가 아니라 그녀가 선택된 데에는 이유가 없었다.

*

  그녀는 출근 준비를 했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샤워 가운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고, 따뜻한 온도의 물로 10여 분간 샤워했다. 다른 것이 있었다면 샤워기 아래로 눈을 감은 그녀 앞에 어제 보았던 달의 이미지, 아니 망막 사진이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좁은 화장실을 조금이라도 넓어 보이도록 원룸 화장실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거울이 달려 있었는데, 그녀의 눈은 흰자는 희고 검은자는 검은 깨끗한 모습이었다. 그 뒤에 오염된 망막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배신감마저 들었다. 망막 사진 속의 곰팡이처럼 피어 있던 검은 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라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

  밤새 내린 비 덕분에 뿌연 하늘이 걷히고 세상은 봄을 맞아 생동하고 있었다. 봄이라는 말은 '보다'라는 말에서 생겨났다. 그녀는 봄을 찬찬히 보았다. 어젯밤 내려다본 정류장의 나무는 가까이서 보니 자동차들이 양쪽에서 내뿜는 매연에도 불구하고 연두색의 새순을 키워내고 있었다. 여의도행 버스에 올라탄 그녀는 이른 출근 시간 덕분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어제의 그녀라면 눈을 질끈 감고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잠들었겠지만, 오늘의 그녀는 마치 여행지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관광객인 양 길가의 모든 풍경을 아까워하며 눈에 담고 있었다. 어제 병원을 나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은우는 골목길로 사라져가는 할머니의 뒷모습, 길가 낡은 식당 앞에 늘어선 작은 화분들, 햇빛이 강물에 부딪혀 만들어내는 반짝거림을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회사의 엘리베이터 벽면은 청록색이었다. 일곱 해를 보내는 동안, 가족이나 친구들의 얼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없이 보아온 것이었다. 그저 푸르스름한 벽면이라고 생각했을 뿐 정확한 색을 인지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다른 날과 같이 그녀는 7시 정각에 1㎡ 크기의 자기 셀에 도착했다.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있는 팀 회의에서 그녀는 자신이 담당하는 미국 시장의 전날 동향 보고를 마치고 부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부장은 부드러운 음성과 젠틀한 태도 뒤에 독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십여 년을 함께 한 팀장을 최근에 지방 지점으로 좌천시킨 것도 부장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공공연히 사내에서 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은우의 면담 신청에 적잖이 놀랐던 것 같다. 최근에 팀원 한 명이 길 건너편의 타 증권사로 이직한 후 부장의 신경은 곤두서 있었다. 휴가 이야기를 꺼내자 혹시나 그녀가 다른 회사의 면접을 보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그동안 하루나 이틀씩만 연차를 썼잖아, 이 대리가. 갑자기 5일 휴가를 내겠다니까, 솔직히 좀 당황스럽네."

  부장의 첫마디였다.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가 편찮으시다고 해요. 갑자기 넘어지셔서 거동을 못 하신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아흔을 넘긴 연세를 생각하면 움직이실 수 있을 때까지는 누가 옆에 있어야 되는데, 아시다시피 저희 부모님이 지금 국내에 안 계셔서……."

  은우가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지난밤 그녀는 한 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미리 자세히 생각해두지도 않은 시나리오였지만 쉽게 이야기가 이어져서 자기 자신도 조금은 놀랐다. 어릴 적 부모에게 혼나고 토라진 문아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던 할머니가 다시 한 번 품을 내주었다. 다음 주에 가면 안 되겠느냐는 등의 협상시도가 있었지만 그녀로서는 물러설 곳이 없었기에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다. 은우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휴가는 그날 오후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녀는 꽃집과 작은 빵집을 겸하는 가게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두 개 샀다. 그리고 곧장 점심 약속을 해둔 윤기와 만나기로 한 벚꽃 길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연분홍빛의 꽃잎이 도화지 위의 수채화 물감처럼 길가에 흩뿌려져 있었다. 윤기는 길의 초입에 서서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몸에 딱 맞게 재단된 남색 양복을 입고 회갈색 구두에 벨트 색을 맞춰 세심하게 멋을 낸 모습이었다. 은우의 목소리에 윤기가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앉자."

  둘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은우와 윤기는 7년 전 겨울, 학생에서 직장인이 되었다. 돈과 시간이 맞교환 관계라는 사실을 함께 배웠다. 또 앞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해야 하는 일을 하며, 만나야 하는 사람과 보내게 되리라는 현실에 적응해 나갔다. 가장 친한 친구를 꼽자면 은우에게는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단짝 친구 두 명이 있었지만, 어쩌면 윤기가 그녀의 밑바닥을 친구들보다 많이 보았을지도 모른다. 헤어진 애인들보다도 그녀의 유연함을 가장한 비겁함에 대해, 열정을 가장한 야망에 대해 많이 알고 있기도 했다. 서로의 밑바닥을 공유하며 윤기와 은우는 요란스럽지 않은 우정을 쌓았다.

  "오빠 기억나? 나 왜 건강검진할 때마다 돌고래 청력이라는 소리 들었잖아."

  음료수를 담당한 윤기가 건넨 자몽 에이드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은우가 물었다. 그녀가 갑자기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어쩌면 뛰어난 청력이 자신의 병에 대한 복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인간의 몸이란 놀랍게도 하나의 감각을 상실하면 다른 감각들을 동원해 잃어버린 영역을 채운다고 하지 않았던가. 은우는 고를 수 있다면 청력을 잃고 싶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았다.

  "맞아. 우리 신입 연수 때, 다른 팀 정보도 앉은 자리에서 듣고 알려주고 그랬잖아. 덕분에 우리가 그 세션에서는 1등 했었어. 기억난다. 시간이 참 빠르다."

  윤기가 안경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담담하고도 따뜻한 눈빛이었다. 순간 은우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불쑥 말해버리고 싶었다. 대책 없이 엉엉 울어버리고 싶기도 했다. 대신에 드디어 입사 이래 최초로 5일짜리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고 말했을 뿐이다. 어제의 확진 결과를 말하는 순간 윤기와 자기 자신 사이에 벽이 생길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에 그녀는 하고 싶었던 말을 삼켰다. 어떤 일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윤기의 눈에서 자신을 향한 동정 어린 눈빛을 보는 순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아니, 휴가가 지금부터라고?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다녀와서 말할게."

  "그렇다면 이은우 좀 멋있는데? 일단 오늘 오후엔 뭐 할 거야?"

  "오후엔……."

  자신 있게 시작한 문장을 끝낼 수 없어 은우는 얼굴을 붉혔다.

  "나…… 뭐하지?"

  은우에게는 계획이라는 게 없었다. 쳇바퀴 밖의 삶을 세심히 돌보지 않았기에 그녀는 어른의 삶에서 자기만의 취향이나 취미를 기르지 못했다. 사실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정확하다. 어울리는 정장 스타일, 자신의 다리 선을 돋보이게 하는 구두 코 모양은 알게 되었지만, 그조차 업무 성과를 위해 기능적으로 접근하여 쌓은 지식이었다. 금융업계란 곳은 고급 취향의 멋을 권했다. 은우는 유능해 보이면서도 노골적으로 관능적이지는 않도록 스타일링하는 법을 배웠고, 모니터 위 가상의 숫자로만 존재하는 돈이지만 아홉 자리 이상의 숫자를 다루는 직업에 어울리는 태도를 길러야 했다. 주위의 취향과 분위기를 조금씩만 변형시켜 자기 것인 양 그녀는 걸쳐 입었다. 그러는 동안 은우는 문아와 점점 멀어졌다.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만큼 멀어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달은 매해 3.91㎝씩 지구로부터 멀어진다면, 문아는 은우가 직장인이 되고부터 해가 지날수록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다. 그녀는 이 또한 어른의 삶에서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방금 전 은우가 느꼈던 부끄러움은 낯설지 않았다. 며칠 전 그녀는 백화점에서 도망치듯 나왔었다. 무난하게 어울려 좋아하던 립스틱이 똑 떨어진 날이었다. 점원은 립스틱 색상이 단종되었다는 이야기 끝에 자신을 컬러테라피스트(color therapist)라고 소개하며, 은우가 좋아하는 색과 피부색에 어울리는 색을 적절히 고려해 새로운 색상을 추천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어떤 색을 평소에 가장 좋아하세요?"

  간단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은우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당혹감을 빠르게 감지한 점원은 특유의 사무적 친절함을 담아 화장품과 관련된 색이 아니어도 된다고 덧붙였는데도 답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었다.

  "남색…… 이요."

  은우는 자기가 신고 있던 구두를 빠르게 스캔하며 남색이라고 외쳤지만 이내 알 수 없이 부끄러워졌고,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황급히 백화점을 빠져나왔었다. 저녁용 샌드위치를 지하 식품 코너에서 사려고 했던 것조차 잊은 채,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불안감을 안고 사무실로 복귀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밤 그녀는 자정이 다 되도록 엑셀 시트 위의 숫자들을 오가며 예의 건조함에서 위안을 찾았지만, 이상한 상실감은 잔상처럼 마음에 남아 그녀를 괴롭혔다.

*

  버스 측면의 추상화 전시회 광고를 따라 그녀는 덕수궁으로 향했다. 평일 낮의 덕수궁 뜰에는 방문객이 많지 않았다. 뜰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전시장으로 가는 동안 카메라를 메고 지나가는 외국인 무리와 한복을 맞춰 입은 대학생 커플이 달뜬 얼굴로 그녀를 지나쳤다.

  전시장을 들어서자 강렬한 원색, 두꺼운 유화 물감, 간단한 도형과 선만으로 이뤄진 그림들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원색의 그림들이 '보다'라는 행위의 밀도를 높였다. 고향의 산과 바다를 하루에 꼬박 8시간씩 그려냈던 화가는 예순이 넘어 처음으로 그림을 판매했다고 전시장의 벽면에 쓰여 있었다. 그는 애초에 60세까지는 기초를 닦는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전시관 4개를 차례로 둘러보다, 은우는 노년의 화가가 그린 한 점의 그림 앞에 멈춰 섰다. 황홀할 만큼 밝은 원색의 그림들 사이에 온통 가을빛 색의 그 그림이 걸려 있었다. 어두운 주황색, 빛바랜 녹색, 짙은 갈색이 교차하는 그림이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두껍게 바른 여러 겹의 물감을 긁어내 만들어내는 화가 특유의 직선적 요소 또한 다른 그림들에 비해 단호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그림을 그릴 때는 거침없이 원색을 사용하고, 켜켜이 바른 물감을 남김없이 긁어내 마치 섬광이 지나간 자리처럼 직선을 그렸다. 그러나 이 그림의 직선과 물감을 닦아내 만든 작은 직사각형은 배경에 칠했던 물감이 충분히 닦이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화가는 망설이고 있었다. 이 무렵 그가 겪고 있던 육체적 한계와 정신적 한계가 상호작용을 일으켜, 그의 세계가 모호해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변화를 겪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를 붙들어 놓은 그림은 화가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평소라면 그녀는 그런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삼각형과 선, 몇 가지의 어두운 색으로 이뤄진 추상화라고 넘겼을 그림이었는데, 은우는 그림 앞에 서서 오래도록 울었다. 자신의 의지로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림 앞을 떠날 수 없었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화가는 수십 차례의 심장수술과 뇌수술에도 불구하고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있었기에 멈추지 않았던 그가 죽기 3년 전 그 그림을 마지막으로 절필했다. 그 후 화가의 3년은 어떤 삶이었을지 은우는 짐작할 수 없었다. 잔상의 세계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다만 눈물이 차올라 그림이 뿌옇게 변했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마음이 막막했던 화가의 마음을 더듬었다. 선명하게 자기 자신을 그렸던 그와 문아가 좋아하던 색조차 잊고 있던 은우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은우는 기억했다. 그녀는 주황색을 유독 좋아했었다.

  어릴 적 문아는 시골의 할머니 집에 갈 때면, 밤의 낯선 모습에 놀라곤 했다. 어설프게 어두운 도시의 밤과는 달리 시골의 밤은 그녀에게 암흑의 공포를 주는 동시에 밝고 큰 달을 보여주곤 했다. 검은 하늘에 떠있던 추석 무렵의 달은 주황빛으로 빛났다. 할머니의 손전등 불빛 색깔도 주황색이었다. 예전 집의 화장실은 마당 한쪽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때문에 밤중에 화장실에 가려면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큰 손전등을 들고 나와 제일 먼저 그녀의 작은 구두를 비춰주었다. 동그란 불빛 아래 신발에 발을 끼워 넣을 때면 저절로 눈이 감기는 햇살 아래 선 것처럼 마음에 따스한 기운이 퍼졌다.

  은우 앞의 세계는 점점 작아질 것이다. 처음에는 주변부가 어두워지고, 시야는 직경 30㎝의 원에서 20㎝가 되고, 그러다 탁구공만큼 작아지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갑자기 좁아진 시야에 적응하는 동안 환자들은 온몸에 멍이 는다고 한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문아와 멀어질 때마다, 은우는 문아가 점점 작아지다가 어느 날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마음에 멍이 늘기도 했다. 다만 회사 사람들도, 친구들도 바로 앞의 허들에 온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녀도 그들을 따랐을 뿐이다. 문아가 따라오지 못하고 뒤처질 때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를 둘러싼 세상과 달라질 용기가 없었다.

  그녀 앞의 삶은 이제부터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선글라스의 양쪽 렌즈에 그녀는 미리 가운데 동그랗게 구멍을 뚫어 놓은 검은 종이를 덧대어 테이프로 고정시켰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선글라스를 쓰자 주변이 어두워졌고 어린 시절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 눈 가까이에 붙이곤 멀리 있는 곳을 바라볼 때처럼 세상이 좁고 동그랗게 변했다. 좁아진 시야로 원룸을 둘러보던 은우는 창가로 걸어가 동그란 달을 바라보았다. 검은 도화지가 도시의 하늘을 뒤덮어 검게 칠했다. 그녀 앞에 나타난 달은 선명하게 빛났다. <끝>




  <당선소감>


   믿기지 않는 현실, 낮은 마음으로 계속 글을 쓰겠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마음이 멍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었지만, 제 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마음이 어두워지는 날도 많았습니다. 고독한 작업이었고 고독해서 좋았지만, 때로 제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깊이 의심했습니다. 그런 날은 저 자신이 아주 작은 점이 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제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라서,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잘 써보고 싶어서 책상 앞으로 돌아왔던 것 같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것은 아마도 계속 써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회를 주신 매일신문과 심사위원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용기 내 한 걸음 한 걸음 찬찬히 가보겠습니다.

  제가 저 자신으로 살 수 있도록 온 마음으로 응원해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못난 글을 퇴근길에, 야근 후 늦은 밤에 읽고 꼼꼼한 비평과 뜨거운 감상을 전해준 친구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보잘것없는 이야기를 두고 그토록 오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을 곁에 둔 것은 큰 행운입니다. 어두웠던 마음에 환한 빛을 드리워준 브라질의 태양도 잊지 않겠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저는 저 자신이 글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퇴고는 그곳의 태양에 빚졌습니다. 항상 믿어주신 시부모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바다 건너편의 소중한 친구 Alberta와도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각자의 모습으로 저를 믿어주고 응원해준 언니와 동생에게도, 가장 슬픈 날에 책 속에서 위로를 구할 수 있도록 길러주신 부모님께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한 달에 한두 번씩 들러 읽고 싶은 책을 골랐던 동네 서점이 떠오릅니다. 그동안 제 삶에 나타나 주었던 모든 책들에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소설을 써 내려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낮은 마음으로 계속 쓰겠습니다.




  ● 1982년 서울 출생.
  ●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전 OECD 재정기업국 투자과 연구업무.


 

  <심사평>


  새롭지 않은 설정이지만 안정된 문장·구성이 신뢰감 줘” 


  올해 예심 통과작들은 전반적으로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특출한 '단 한 편'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교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지만 흡인력 있는 서사로 자기만의 문제의식을 힘 있게 펼쳐내는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소설을 왜 쓰는가'라는 치열한 질문과 함께 그것을 풀어가는 자기만의 문법을 갖고 있는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중에 본심위원들은 예심 통과작 중 세 편의 작품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성기옥의 '폭염'은 치매에 걸린 시모를 모시는 중산층 가정의 여성에게 들이닥친 불안과 위협을 환상적인 수법으로 묘사한다. 남편과 화자 사이에 끼어든 간병인 아줌마가 그 매개다. 세 편의 소설 중에서는 비교적 서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지만, 문장이 거칠고 마무리가 취약하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노은지의 '해설'(海雪)은 우연히 보게 된 남자 포르노 배우의 표정에 매료된 여교사의 은밀한 욕망을 다루는 작품이다. 흥미로운 소재를 경쾌하게 끌고 가는 솜씨가 돋보였지만, 결말이 다소 미진하고 상투적이었다. 방미현의 '봄, 달'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주인공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멀어졌던 본래의 자기를 재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펼쳐간다. 새롭지 않은 설정과 서사이지만 안정된 문장과 구성이 신뢰감을 주는 작품이다.

  본심위원들은 오랜 논의 끝에 방미현의 '봄, 달'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지나치게 예상 가능하고 무난한 서사여서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런 가운데서도 이 작품이 보여준 차분한 안정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봄, 달'에서 펼쳐지는 '나'의 이야기가 앞으로는 바깥을 향해 더 넓어지고 깊어졌으면 하는 우리의 바람을 당선자가 외면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험난한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 데 대해 따뜻한 염려와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 김인숙, 김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