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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린을 찾아가는 길 / 황윤정

 

  돌풍의 시작은 '2041년에 다녀왔어요'라는 제목의 글  

  '과거 속의 후회! 미련! 아쉬움! 잠시나마 날려버리세요!' 

  아이엠 트립의 광고문구가 입에 텁텁하게 남아 맴돌았다 


  필립은 요즘 '아이엠 트립(IM Trip)'에 푹 빠졌다. 아이엠 트립은 일종의 환각제였다. 영어 단어 이매지너리(imaginary)의 앞 글자 두 개를 따서 붙여진 이름인 만큼 말 그대로 '상상의 여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약이었다. 아이엠 트립이 처음으로 시판된 건 이천 오십 칠년이었는데 사실 그 당시만 해도 광고를 본 대중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광고 문구는 대략 이랬다.  

  '당신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 과거 속의 후회! 미련! 아쉬움! 잠시나마 날려버리세요!' 약을 복용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잠들기 전 캡슐 형태의 아이엠 트립을 하나 먹는다. 

  그리고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장면을 집중하여 떠올린다. 그러면 잠이 드는 동시에 그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연히 실제로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타임 워프 개발은 수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미진했다.) 아이엠 트립이 선사하는 상상 속의 과거는 굉장히 현실 같았다.  

  보통의 꿈처럼 맥락 없이 끊어지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생생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냄새, 맛, 촉감까지도. 그렇게 선연하게 재생되는 과거의 어느 날을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번 살아보는 것. 그게 바로 아이엠 트립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적으로 인체에 해롭지 않다고 결론이 났다 할지라도, 그리고 국가가 허락하는 수준이라 할지라도 환각 작용이 주된 효능이었기에 아이엠 트립은 출시되자마자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 아이를 가진 부모들의 반발이 거셌다.  

  그렇지 않아도 몇 년 전 몇 가지 마약이 합법화된 뒤로 아이들도 쉽게 그것을 구할 수 있게 되어 환각으로 인한 교내 사건사고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던 차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USNS(United Space Network Service)를 이용하여 종로 근처의 아이엠 트립 본사 앞에서 판매 중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SNS를 쓰던 스마트 세대 이후 등장한 스페이스 세대는 시간을 넘나들지는 못하지만 공간을 넘나드는 데에 성공한 첫 세대였다. 그들은 국가 분쟁을 막기 위해 제한된 지역만 아니라면 어디든지 USNS를 통해 마음대로 체크인하곤 했다. 당연히 시위는 매일 열릴 수 있었다.  

  날마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마약 합법화라는 이슈에 편승해 시민들을 홀려 돈을 버는 기업'이라며 회사 측을 비난했다.  

  연이은 시위에 결국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그런 기회주의적인 마인드로 제품을 출시한 게 아니며 그저 스페이스 세대가 아직 이루지 못한 '시간에 대한 통제'를 조금이나마 이루려는 시도였다고 밝혔다. 회장이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을 때 기자회견은 아쉽게도 바로 끝났다.  

  누군가 그곳의 위치를 USNS에 슬쩍 흘려서 항의하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그러나 짧은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드디어 일각에서 아이엠 트립을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거였다. 그 움직임은 대중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기에 처음에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사람들은 분명 합법인데도 밀거래라도 하듯 아는 이를 통해서만 약을 건네받곤 했고 그마저도 겁이 났는지 USNS에 비밀 채팅방을 만들어 거래하는 장면을 들키지 않을 만한 장소를 찾으려 애썼다.

  심지어 김진오라는 스물한 살의 청년이 아이엠 트립을 구매한 사실을 들켜 직장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소개되면서 아이엠 트립과 관련한 커뮤니티는 갈수록 음지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사회적 분위기는 놀랍게도 한순간에 극적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아이엠 트립을 먹었다고 밝힌 사람들의 생생한 후기가 여러 차례 포터넷(Post-Internet)을 휩쓴 탓이었다. 돌풍의 시작은 한 사이트에 올라온 '2041년에 다녀왔어요.'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글쓴이는 말했다. 

  아이엠 트립으로 어머니가 죽은 해로 돌아가 그때 당시 지키지 못했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고, 자신은 아이엠 트립을 먹은 걸 후회하지 않으며 필요하다면 다시 복용할 거라고. 드라마에나 자주 나올 법한 스토리였다. 달리 말하자면 드라마에 자주 등장할 만큼 언제든 쉽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스토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임종'은 식상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눈물을 자아내는 소재였으므로. 그 글은 포터넷 유저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많은 이들이 글쓴이가 태그해둔 어머니의 묘지에 체크인하여 꽃과 함께 뒤늦은 조의를 표했고 동시에 아이엠 트립을 향한 관심을 드러냈다. 점점 포터넷 내 대부분의 사이트에서 'oooo년에 다녀왔어요.'라는 제목이 베스트 순위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후기들은 진위 여부를 두고 언제나 시끄러웠다. 실제로 과거에 돌아가는 게 아닌, 오롯이 사용자의 상상에 기반을 둔 그 경험 속에서 눈에 보이는 증거를 남기기란 불가능했다. 따라서 상상의 경험을 진짜로 겪은 거라고 한들 증명할 방법이 없었으며 거짓으로 꾸며낸 거라고 한들 가려낼 방법도 없었다. 

  그저 각자의 생각에 맡긴 채 믿거나 믿지 않거나 그럴 수밖에. 어쨌든 믿는 사람들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할지라도 끊임없이 후기는 올라왔고 어느덧 아이엠 트립은 확실하게 화제의 중심에 놓였다. 회사 측이 발표한 판매량만 봐도 갈수록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으며 더 이상 유저들은 숨어서 아이엠 트립을 사지 않았다. 

  이제는 오픈된 장소로 당당하게 체크인하여 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직장에서 잘렸었던 청년, 김진오가 누군가의 지적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사람들은 '김진오를 다시 직장으로!'라는 구호를 내세운 집회를 열어 부당 해고의 철회 및 개인 선택의 자유를 주장했다.  

  필립이 그 집회에 간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우연보다는 실수에 가까웠다. 여든이 갓 넘은 필립은 (아무리 지금이 여든 정도로는 어디 가서 노인 취급도 못 받는다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시대이긴 하지만) 워낙 스마트 세대로 살아온 세월이 길어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USNS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종종 체크인 장소를 잘못 입력하곤 했다. 단순히 예전처럼 글자로 주소를 입력하는 거라면 큰 어려움이 없을 터였지만 USNS는 3D 화면을 눈앞에 띄워놓고 그 속에 걸어 들어가 양손으로 거리를 확대, 축소하여 최종 목적지를 터치해야 했기에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조금 서툴 수밖에 없었다. 

  버벅대며 겨우 성공하거나, 자식에게 부탁하거나, 그냥 포기하거나. 세 가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필립은 그 중 첫 번째, 혼자서 어떻게든 물고 늘어져 힘들게라도 성공하는 타입이었다. 

  다른 노인들처럼 도움을 구할 자식도 없거니와 만약 자식이 있었다 해도 딱히 필립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도와달라고 부탁할 일은 없을 거였다. 필립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본인의 부족한 깜냥을 쉽게 인정하고 포기할 사람도 아니어서 항상 조금 버벅대더라도 끝까지 붙잡고 늘어졌다. 그렇게 하면 (아주 가끔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가까스로 해내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영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필립이 교장 직을 맡고 있는, 시에서 가장 큰 펫스쿨(pet-school)의 입학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천 십년대 후반만 해도 다섯 가구 당 한 집 정도만 반려동물과 같이 살았었는데 어느 순간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의 수가 그렇지 않은 가구 수의 두 배를 넘어섰다.

  자연스럽게 펫 시장 역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고 그 안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인 것이 바로 펫스쿨이었다. 과거에는 반려동물을 펫스쿨에 보내는 게 유난 떠는 일이라며 손가락질까지 받곤 했으나 이제 펫스쿨은 엄연히 국가 차원에서 의무화한 일종의 공식적인 교육 제도였다. 

  이천 사십년 대 후반, 동물의 언어를 번역할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고 난 뒤 수많은 동물들의 이야기가 그 기계를 통해 번역되며 곳곳에서 인간 사회의 성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성난 대중의 반응에 정계는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동물권 보장을 시대의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었고 곧 여러 제도를 개편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르면 ① 모든 반려동물은 가까운 펫스쿨에서 최소 일 년 간 교육을 받아야 하며 그 이상은 재량에 맡긴다. ② 입학 시기는 반려동물의 종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존재한다. ③ 교육 및 훈련은 동물권을 박탈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지며 특히 인간을 따르기 위한 훈련은 세부 교칙에 의해 어느 정도 제한된다. ④ 보호자도 보호자로서 필요한 과정을 밟아야 반려동물이 정식으로 졸업할 수 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펫스쿨에서는 반려동물들을 직접 가르칠 펫티처 뿐만 아니라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관리할 사람들도 필요했다. 그래서 은퇴한 선생님들을 여러 요직에 앉히기 위해 데려갔는데 필립도 그런 케이스였던 셈이다. 사실 처음에 필립은 교장 직을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펫스쿨 의무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더 이상 교직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 학교든 동물 학교든 마찬가지였다. 거의 오십 년을 꼬박 학교에 매달려 있다가 퇴직한지 겨우 몇 달째였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푹 쉬고만 싶었다. 게다가 이렇게 지쳐버린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필립이 은퇴하던 해에 학교 폭력으로 학생 한 명이 옥상에서 뛰어내린 거였다. 그때 교감이었던 필립이 소식을 들은 건 오후 다섯 시 무렵이었다. 필립은 하얗게 센 머리를 몇 번 쓸어 넘기다가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몇 번 두드렸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소리쳤다.

  "왜 하필이면!" 그 짧은 비명과도 같은 외침 뒤에 생략된 말은 뻔했다. 왜 하필이면 올해인 것인가! 왜 하필이면 내가 교감으로 재직 중일 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가! 필립은 오십 년의 교직 생활을 별 탈 없이 마무리 지을 수 있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조용하게 사건을 덮었다.

  그런 상황을 겪고 난 뒤였으니 필립이 펫스쿨 교장 직을 거부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청을 받았을 때 놀랍게도 필립은 조금 망설였고 세 번째에는 결국 마음을 바꿨다.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의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사실 필립 본인에게 그 변심은 갑작스러운 변덕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필립은 몇 달째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찾아간 학생의 장례식에서 학생의 영정 사진을 본 뒤로 계속 그랬다. 

  대부분의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제대로 모른 채 학교를 이끌어가던 필립이었건만 영정 사진 속의 얼굴은 신기하게도 자신이 아는 얼굴이었다. 언젠가 교감실의 청소를 맡았던 학생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특별한 기억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아는 얼굴이라 잠시 기이한 기분이 들었을 뿐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 하필이면.' 다시 한 번 속으로 되뇐 그 문장 뒤에 생략된 말은 여전히 예전과 같았다. 분명 그랬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나서 필립은 매일매일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피곤한 상황에서도 도무지 깊게 잠들 수가 없었다. 매번 악몽을 꾸었으나 꿈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일어나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피로만 쌓여갈 뿐이었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하면 제일 좋을 터였지만, 아무래도 시기를 미루어 짐작해보았을 때 가장 타당한 원인은 장례식일 수밖에 없는데 필립은 그게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좋지 않은 사건은 맞지만 이미 여차여차 수습된 사건이기도 하기에 계속해서 꿈자리가 사나워 고생하는 게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상태는 더 심해졌고 심지어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자고 뜬눈으로 보내는 날도 더러 생겼다.  

  필립은 마침내 불면증의 유일하고도 유력한 원인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 사건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였다. 펫스쿨 교장 직을 수락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마음의 변화였다.  

  비록 사람 학교에서의 역할은 끝났지만 이렇게 다시 학교라는 공간에 불려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부채 의식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다.

  그렇게 펫스쿨의 교장이 된 필립은 학교에 몹시 전념했다. 단순히 집과 교장실만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모든 학교 행사에 적극 참여하며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려고 애썼다. 펫스쿨이라고 해도 막상 겪고 보니 이전의 사람 학교들과 엄청나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냥 동물일 뿐, 얌전한 학생도 있었고 활발한 학생도 있었으며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도 있었다. 당연히 극성스러운 학부모들도 있었다. 일에 열정적으로 빠지자 필립이 악몽을 꾸는 빈도는 다행히 낮아졌다. 아주 가끔 다시 잠을 설치는 경우가 생기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다음 날에 학생들과 더 많이 지내면 당분간은 괜찮았다. 

  이런 생활을 하고 있던 필립에게 펫스쿨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입학식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교장인 자신이 직접 그럴 필요는 없는데도 필립은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하고 각각을 배정된 반으로 안내하여 반장 선거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신입생 중 하나가 탈출을 꾀했다. 다들 정신없는 틈을 타서 학교를 빠져나간 거였다. 펫스쿨 공식 계정으로 USNS에 긴급 공지 글이 올라갔다. 

  '이름: 사라, 나이/학년: 6개월(1학년), 종: 강아지(슈나우저/사진 첨부). 오전 10시 경 보호자의 손을 벗어남.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그리 멀리는 못 나갔을 거라 추정. 많은 제보 바람.' 글이 올라가자마자 학교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제보가 쏟아졌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그 제보 속에 찍힌 곳으로 곧바로 체크인하여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다 살펴봤으면 그 다음 장소로 체크인하고 그런 식이었다. 필립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서둘러 자신의 USNS를 켜 성큼성큼 3D 화면 속으로 걸어 들어가 제보된 장소 중 하나를 과감하게 터치했다. 

  평소에는 수십 번 망설임 끝에 이루어졌을 모든 움직임들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순식간에 필립은 '김진오를 다시 직장으로!' '아이엠 트립을 복용할 자유를!' 하고 외치며 행진하는 사람들 사이로 체크인하게 되었다. 

  필립은 아이엠 트립에 대해 잘 몰랐다. 그냥 그런 비슷한 이름 때문에 세상이 조금 시끄럽다고,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얼떨결에 집회 현장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도 그 집회가 어떤 집회인지 관심 없었다. 

  원하던 장소가 아닌 곳에 체크인 됐다는 사실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이런 곳에 학생이 숨어든다면 찾기 힘들겠구나 하는 걱정만 들었다. 그저 사라의 이름을 외치며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런데 필립의 눈에 누군가가 들고 있던 아이엠 트립이 들어왔다.  

  정확히는 아이엠 트립의 포장에 쓰여 있는 광고 문구가 필립의 시선을 끌었다. '당신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 과거 속의 후회! 미련! 아쉬움! 잠시나마 날려버리세요!' 필립은 다리가 무언가에 붙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후회, 미련, 아쉬움…….  

  장례식에서 본 학생의 영정 사진이 머릿속을 스쳤다. 필립은 아이엠 트립을 들고 있는 사람의 팔을 붙잡아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보시오. 이게 대체 무슨 약이오?"  

  사실 모르는 사람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필립에게는 낯설기 짝이 없는 행위였다. 그러나 이번엔 어쩐지 치솟는 궁금증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다행히 아이엠 트립의 대단히 열성적인 유저였던 그는 필립의 질문에 흥분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을 지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약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포터넷을 휩쓸었던 후기들부터 본인이 직접 겪은 경험들까지 이야기하며 필립에게 아이엠 트립으로 상상의 시간 여행을 꼭 하기를 거듭 권했다.  

  그러고는 목적지를 터치할 필요 없이 바로 내재된 체크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USNS용 체크인 칩 하나를 선심 쓰듯 건네주었는데, 그러면서 이곳에 가 자신의 이름을 대면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필립은 자신의 오른손에 놓인 칩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칩을 완전히 감싸며 주먹을 한번 힘 있게 쥐었다가 다시 서서히 폈다.  

  솔직히 쉽게 믿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필립은 평소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믿지 않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칩을 다시 돌려주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됐소.' 하고 운을 떼려는 순간 필립의 초점이 칩이 아닌 칩을 감싸고 있던 자신의 손에 맞춰졌다. 

  평생 매끄러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비참하게 쪼그라든 볼품없는 손이었다. 조금 전에 중얼거렸던 아이엠 트립의 광고 문구가 텁텁한 입 속에 남아 미련하게 맴돌았다. 필립은 재차 주먹을 쥐었다.

  그는 굳게 쥔 필립의 주먹을 바라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필립은 그가 자리를 뜨고 나서도 사라를 찾았다는 펫스쿨 계정의 공지가 올라와 알람이 울릴 때까지 한참 동안 집회 현장을 서성거렸다. 

  삼일 뒤, 필립은 결국 USNS에 칩을 꽂고 거래처로 이동했다. '체크인하시겠습니까. YES/NO'라는 문구 앞에서 한동안 망설였지만 막상 YES를 눌러 아이엠 트립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자 구매는 생각보다 쉬웠다. 물론 약을 샀다고 해서 바로 복용한 건 아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또다시 삼일이 지나고 나서야 필립은 드디어 처음으로 아이엠 트립에 도전하기로 했다.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침대에 앉아 캡슐 형태의 아이엠 트립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일종의 환각제에 의존해야한다는 점이 꺼림칙해 다시 한 번 갈등했지만 마침내 아주 천천히 캡슐 하나를 삼켰다. 

  필립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장면을 떠올렸다. 처음 학생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듣던 바로 그때를. 최대한 집중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당시 따사로운 햇볕이 교감실을 내리쬐고 있었고 필립은 의자에 몸을 맡긴 채 졸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고 당황한 표정의 몇몇 교사들이 들이닥쳤다. 깜짝 놀란 필립이 한 마디 하려는데 어쩐지 교사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한 명은 심지어 울고 있었다. 

  "교감 선생님, 큰일 났어요. 학생 한 명이……." 

  현실은 몇시간일 터인데 상상의 과거는 며칠씩 흘렀다 

  "린, 금방 가마" 필립의 쭈그러든 손이 YES에 닿았다 

  "뉴스 못보셨어요? 사실은, 어제 김진오가 자살했어요" 

  필립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음을. 아이엠 트립이 선사하는 상상 속의 과거로 들어왔음을. 자각은 어렵지 않았다.  

  전해들은 대로 모든 감각이 실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등 뒤로 느껴지는 햇볕의 따스함과,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깬 자신의 심장 소리, 손에 배인 땀, 선명하게 보이는 교사들의 표정, 더없이 뚜렷하게 들리는 울음소리까지.  

  이보다 현실적일 순 없었다. 필립은 양손을 비벼 땀을 없애며 아이엠 트립은 상상의 여행이 아닌 타임 워프를 가능하게 만드는 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신뢰도 높은 모든 후기들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실제로 바뀐 과거는 없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는 아이엠 트립 회사 측에서 공식 발표한 주의사항과도 똑같았다.) 그저 얼떨떨해하던 필립이 정신을 차린 것은 탁자 위 공간에 설치해둔 3D 시계를 보았을 때였다. 시계는 오후 다섯 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필립이 익히 알고 있는 순간이었다. 필립은 실제로 과거의 당시에 오후 다섯 시를 막 넘기던 시계를 보며 오십 년의 교직 생활을 떠올렸었다. 그리고 소리쳤었다. 왜 하필이면!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필립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상상의 여행이든 타임 워프든 상관없었다. 어쨌든 자신은 과거로 왔다. 그것도 밤마다 좀 더 괜찮은 과거를 살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하고 후회한 뒤에 돌아온 과거였다. 수없이 상상했던, 좀 더 나은 과거를 만들어볼 기회가 온 셈이었다. 

  필립은 돌아온 과거 속에서 이번에는 왜 하필이면! 이라는 말을 뱉지 않았다. 대신 철저하게 조사에 응하여 학교 폭력을 일삼은 가해자들을 제대로 가려내기를, 언론에 많이 노출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기를 지시했다.

  그리고 교무 회의를 열어 은퇴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남은 교직 생활 동안 학교 폭력을 없애기 위해 학생들 곁에서 최선을 다하겠으며 다른 선생님들도 성실히 돕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과거의 시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현실에서 잠든 시간은 고작해야 몇 시간일 터인데 상상 속의 과거는 며칠씩 흘러갔다. 

  그 며칠 동안 필립은 죽은 학생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이리저리 발로 뛰었다. 펫스쿨의 교장이 된 뒤 학교에 전념했듯이, 그렇게 애썼다.  

  그리고 이번에도 학생의 장례식장에 가서 영정 사진을 마주했다. 필립의 입술이 떨렸다. 그 떨림은 상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했다. 필립은 매일 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던 말을 드디어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미안하네. 정말 미안했네." 

  필립은 눈을 떴다. 동시에 필립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눈물을 미처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새 장례식장이 아닌 자신의 방이었다. 현실로 돌아온 거였다. 현실인데도 오히려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상상 속의 과거보다 더 현실감이 없는 거 같았다. 

  필립은 한참이나 멍하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 자신이 새로 만든 과거의 순간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계속 상기시켰다. 기껏 바꾼 과거가 상상에 불과하다니 아무래도 약간의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과거 속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었다.  

  그래도 어쨌든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더 컸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렇게 말하지 말 걸.' 했던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갔기에. '그렇게 할 걸.' 했던 행동들을 할 수 있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전하고 싶었던 말을 전할 수 있었기에. 필립은 눈물로 베개가 축축해진 것을 느끼며 그만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필립이 아이엠 트립에 푹 빠진 건 그때부터였다. 하루에 적어도 하나씩은 먹었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 속에 찝찝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채로 남아 있던 사건을 다시 찾아갔다. 매일 다양한 시대를 넘나들었다. 

  어쩔 땐 천구백팔십 년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부모님께 버릇없이 굴었던 날을 다시 살아보기도 했고, 어쩔 땐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를 거쳐 대통령을 탄핵했던 이천십 년대 후반의 어느 날로 돌아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보기도 했다.  

  또 어쩔 땐 이천삼십 년대 초반에 있었던 세계 여성 혁명의 날에 직접 참여하여 여성들을 비롯한 유색 인종, LGBT 등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행진하기도 했으며, 어쩔 땐 이천사십 년대 초반에 머물며 그때 당시에는 진짜로 성공할 줄 몰랐던 USNS에 과감하게 투자해보기도 했다. 

  새로 만들어보고 싶은 과거의 순간은 생각하면 할수록 많이 떠올랐다. 필립의 다이어리는 돌아가고 싶은 언젠가의 날들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찼다. 어쩌면 모든 날들을 다시 살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가끔은 상상 속의 과거가 끝나는 아쉬움이 너무 커서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연속해서 아이엠 트립을 먹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어느 쪽이 진짜 현실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필립은 그 모호해진 경계가 마음에 들어 더욱 자주 상상의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리고 필립은 어느 순간 자신의 성격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하지도 않았었고 자신의 잘못을 굳이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필립뿐만 아니라 아이엠 트립을 복용하는 사람들 모두가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을 후회하여 바꾸겠다는 의지였으므로 자주 과거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상상과 현실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성격은 바뀌는 게 당연했다. 

  문제는 그렇게 성격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초래한 '새로운 과거'는 아무리 새로워봤자 결국 '상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서 과거 속 후회와 미련과 아쉬움은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현실로 존재할 수밖에 없고 스스로 내적 변화가 있든 없든 자신이 만들어낸 그 '진짜' 삶의 흔적을 언제까지나 떠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필립이 이를 인지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한 이천 육년으로 돌아갔던 경험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초보 선생 특유의 서투름과 어설픔으로 저질렀던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실수들을 만회해보고자 필립은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엠 트립을 하나 먹고 누웠다. 

  그리고 가장 만회하고 싶은 기억의 장면을 집중하여 떠올려 당시로 돌아갔다. 몇 번을 겪어도 현실처럼 생생한 감각에 기분이 좋았다. 특히 이렇게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젊음을 다시 한 번 누리는 느낌이라 더 좋았다. 그런데 얼추 원하던 대로 상상 속 과거의 일부를 완성했을 때였다.  

  갑작스럽게도 필립은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바로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당시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동료 선생으로 필립이 짝사랑하던 여자였다.  

  필립은 여태껏 아이엠 트립을 먹고 과거로 돌아갔을 때 새로운 과거를 만들어내는 것과 관련이 없는 다른 주변 환경에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보았을 때, 필립은 교실에 있었고 그녀는 운동장에 있어 둘 사이의 거리가 매우 멀었는데도 필립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로 향했다. 거의 습관처럼.

  실제로 과거에도 필립은 멀리서 그녀를 몰래 지켜보곤 했었다. 고백할 생각은 없었다. 워낙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애초에 좋아한다는 감정을 인정하기까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인정하고 나서도 고백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감당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냥 짝사랑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딱히 가까워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가까워지면 더 좋아하게 될 터였는데 예전의 필립에게 그런 감정의 변화는 그리 달가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녀가 너무 빨리 전근을 가버렸다는 점이었다. 같은 학교에서 일한지 일 년 만에 필립은 그녀를 영영 볼 수 없게 됐다.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으니 근무지가 멀어지면 그대로 끝일 수밖에 없었다. 필립은 비로소 조금 후회했다. 자신이 감당하기 싫어 포기한 경우의 수는 어쩌면 자신의 소심함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었다한들 필립에게는 뒤늦게라도 연락처를 알아내 친해질 그런 용기마저 없었다.  

  후회되어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감정이란 건 식기 마련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닳아 없어질 거였다. 

  하지만 상상 속의 과거에서 필립이 우연히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필립은 그 감정이 닳아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세월이 흘러 예전처럼 감정의 형태가 견고하지는 않았으나 분명 그것은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 여전히 특유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 흔적은 후회이자 미련이자 아쉬움이었고 또한 그리움이었다. 

  필립은 그녀와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보고 싶었다. 새로운 과거를 상상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웬만하면 그 새로운 과거 속에서 오래도록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필립은 혼자만의 계획을 세웠다. 아이엠 트립을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개별적인 상상의 과거들을 하나의 상상으로 연결시키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중요한 가설 하나를 입증해야 했다. '상상 속에서 바뀐 과거도 자신의 의식 혹은 무의식 아래 저장된 일종의 실제 기억이므로, 아이엠 트립을 통해 실제 과거가 아닌 가짜 과거로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필립은 제일 먼저 그녀가 전근 가던 날로 돌아갔다. 당시에는 그녀가 동료들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필립은 마치 펫스쿨 입학식 때 학교를 빠져나갔던 사라를 찾으러 갈 때처럼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 앞에 서자 정말 현실인 것처럼 그녀의 향수 냄새가 났다. 필립은 어쩔 수 없이 조금은 달아오른 얼굴로, 하지만 과감하고 당당하게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그녀는 담당하던 학년도 다르고 평소에는 친하지도 않았던 필립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꽤 당황하는 거 같았다. 

  필립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화끈거림도 그녀의 표정에 묻어나는 당황스러움도 무척이나 생생했다. 필립의 '진짜' 기억에 충분히 각인될 만큼. 다행히 그녀는 당황하는 기색을 곧 거두고 미소를 지으며 필립의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한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초 뒤 그녀의 코트 주머니에서 진동 소리가 났다. 

  필립은 핸드폰을 다시 건네받고 그녀를 향해 중얼거리듯 말했다. "늘 이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부터 하면 되죠."  

  필립은 드디어 가설을 입증해보기로 했다. 아이엠 트립을 먹고 자리에 누웠을 때 그녀와 연락을 이어가던 상상 속의 어느 날을 집중해서 떠올리고 또 떠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가설은 옳았다. 

  아무리 환상이라고 한들 선연한 인상을 지닌 채 의식 속에 각인된 일종의 경험이었기에 필립은 상상 속에서 그녀와 연락을 지속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모든 필립의 개별적 상상이 필립의 의도 아래에서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던 셈이다. 

  새로 만들어내기 시작한 거대한 과거 속에서 필립은 실제로 젊었던 필립보다 용감했고 배려심이 있었으며 또한 대범하고 너그러웠다. 물론 종종 원래 필립의 성격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한번은 그녀가 필립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생각했던 거랑 참 다른 사람인 거 같아." 그 순간 필립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눈을 피해 시선을 내리깔고 말았다. 젊어진 자신의 손이 보였다. 분명 삼십 대의 피부로 돌아왔는데도 왠지 쭈그러든 노인의 피부를 보는 것 같았다. 

  필립은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내 마음은 항상 이랬어."  

  어쨌든 그렇게 좀 더 괜찮은 성격으로 거듭난 필립은 그녀와 순탄한 연애 시절을 보냈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게다가 예쁜 딸도 얻었다. 필립은 자신의 품 안에서 잠든 딸의 고른 숨소리에 더할 나위 없이 벅차올랐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필립은 천천히 딸의 호흡을 따라했다. 

  딸이 숨을 들이쉬면 필립도 숨을 들이쉬었다. 딸이 숨을 내쉬면 필립도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한참을 함께 호흡한 뒤 필립은 딸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뺨을 어루만졌다. 따뜻하고 보드라웠다. 필립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필립에게 다가온 그녀가 필립의 뺨에 입을 맞췄다.  

  필립은 그녀의 가슴에 기대어 잔뜩 목이 멘 채 중얼거렸다. "린. 린이라는 이름이 좋겠어." 언젠가 딸이 있다면 지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름이었다. 이제 필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아이엠 트립에 완전히 빠졌다.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매일매일 상상 속의 과거에서 그녀와 린과 함께 지냈다. 

  심지어 과거의 시간이 흘러가는 방식은 현실과 같지 않아서 하룻밤을 누워서도 여러 계절을 보낼 수 있었다. 필립은 그렇게 상상 속에서 몇 번이나 봄을, 여름을, 가을을, 겨울을 보냈다. 점점 필립에게 현실과 상상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현실로 돌아온 필립은 약이 다 떨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리 많이 사뒀다고 여겼는데 언제 다 먹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미처 정리를 못해 지저분한 책상 위를 서둘러 헤집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남은 약은 없었다. 필립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왜 하필이면!" 애가 탔다. 상상 속의 과거에서 필립과 그녀는 막 린의 유치원 학예발표회에 함께 가려던 참이었다. 얼른 약을 먹고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그녀와 린이 자신을 기다리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필립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USNS를 켰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며칠 째 결근 중이었기에 대부분 펫스쿨 측에서 온 메시지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메시지를 무시한 뒤 필립은 아이엠 트립 거래처가 내재된 체크인 칩을 USNS에 꽂았다. 곧 자주 가서 익숙한 배경이 3D 화면 속에 펼쳐졌고 '체크인하시겠습니까. YES/NO'라는 문구가 떴다. 

  필립은 망설이지 않고 화면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YES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터치하기 직전, 린이 나중에 자라서 자신에게 최신 기계에 대해 가르쳐주는 모습을 상상했다.

  분명 다급했는데도 절로 웃음이 났다. 이제 더 이상 필립은 뭐든 혼자 물고 늘어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린, 금방 가마." 필립의 쭈그러든 손가락이 YES에 닿았다. 

  거래처는 평소와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다들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거나 무리지어 수군거리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했고 자연히 전체적인 분위기도 아주 가라앉아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필립에게는 아이엠 트립을 당장 사는 게 더 중요했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VIP라는 글자가 새겨진 삼 층으로 올라갔다. 언젠가부터 필립은 아이엠 트립의 VIP고객이 되었다. 항상 조금 더 할인된 가격으로 그리고 조금 더 적은 대기 시간으로 약을 사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쩐 일인지 조용해야 할 VIP 전용 층도 아래층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과연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필립은 그나마 덜 바빠 보이는 직원에게 다가갔다. 직원은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포터넷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소?" 필립의 물음에 직원은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오히려 본인이 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채 되물었다. 

  "아, 혹시 뉴스 못 보셨어요?" 필립이 머리를 긁적이자 직원은 설명하기가 조금 난감하다는 듯이 살짝 웃으며 좌우를 살폈다. 그러곤 곧바로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게 사실은, 어제 김진오가 자살했어요."  

  필립은 김진오, 하고 두어 번 중얼거렸다. 분명 들어본 이름이었다. 그리고 들어본 적 있다고 생각하자마자 필립의 머릿속에 익숙한 구호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김진오를 다시 직장으로!' 그랬다. 이제는 아이엠 트립의 상징적인 인물이 된 김진오, 그가 죽은 거였다. 그래서 아이엠 트립 측에서도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필립은 곧바로 관련된 뉴스를 찾아보았다. 그제야 어리둥절했던 직원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포터넷은 온통 그 사건으로 도배되어 떠들썩했다.  

  '아이엠 트립 후유증? 김진오 자살의 세 가지 의문점.' '환각제 유통 이대로 괜찮은가.' '아이엠 트립 측, 확실한 증거 없어. 루머 법적 대응할 것.' '반대세력 오늘 저녁부터 다시 집회 열 듯.' 종합해보면 직장으로 다시 복귀한 김진오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계속 아이엠 트립을 복용해왔고 최근 보름 동안 무단결근을 했으며 어제 집에서 자살한 채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아이엠 트립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김진오가 보인 일련의 행동에 뚜렷한 인과성이 없으므로 결정적인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필립은 포터넷 상단에 뜬 '김진오의 마지막 영상'이라는 제목을 눌렀다. 누군가와의 영상 통화 기록처럼 보였다. 김진오의 얼굴은 알려진 바와 다르게 굉장히 초췌했다. 

  다크서클도 짙고 수염도 깎지 않았다. 그런 얼굴을 거칠게 매만지며 김진오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 돈 노 후 아이 엠 애니 모어(I don't know who I am any more).  

  "평소처럼 처방받으시는 거죠?" 필립은 직원의 말에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사 곳곳에는 '진실은 밝혀진다.'라는 문구가 적힌, 아이엠 트립의 결백을 믿어달라고 호소하는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다. 그러나 회사 측 입장과는 별개로 이런 사건이 생기면 매출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확실히 보통 때보다 손님 수가 훨씬 적었다.  

  그나마 VIP층은 변화가 적은 편에 속했다. 필립은 조금 전 지나왔던 아래층을 떠올렸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사람들 대부분이 직원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수많은 손님으로 발 디딜 틈도 없었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긴 했다. 필립은 문득, 언제부터 주먹을 쥐고 있었는지 모를 자신의 양 손을 내려다보았다. 

  평생 부드러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거칠고 초라한 노인의 손이었다. 필립은 천천히 주먹을 폈다. 그때였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난데없이 누군가의 절규가 삼 층을 가득 메웠다. 필립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속옷만 입은 한 젊은 여자가 울부짖었다.

  "빨리! 빨리 달란 말이야! 지금 당장 가야해……." 여자의 머리는 자다 일어난 것처럼 형편없이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상태가 어떻든 신경도 쓰지 않는 거 같았다. 그저 비틀대며 빨리! 만을 외쳤고 호흡곤란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듯 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어딘가 아슬아슬하다고 느낄 무렵 여자는 결국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여러 명이 재빨리 여자에게 달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필립은 자신의 호흡까지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밭은 숨을 거듭 내뱉었고 그러다 불현듯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 필립은 흐느끼며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부여잡았다. 사실 필립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한들 앞으로도 오후 다섯 시만 되면 죄책감에 휩싸이리라는 것을. 학생의 죽음보다 자신의 은퇴를 더 걱정했던 과거의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또한 이 세상에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상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들을 만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있는 힘껏 애를 써 봐도 그녀와 린의 존재는 끝끝내 환상에 불과하리라는 것을. 새로 만들어낸 과거는 아무리 생생하고 뚜렷해도 결국 '만약에'라는 가정 속에서만 성립하는 신기루일 수밖에 없었다. 

  없어지지 않고 남을 수 있는 건 '진짜' 삶의 흔적뿐이었다. 이제껏 쌓아올렸던 여러 추억이, 그리고 새롭게 바랐던 미래가 필립의 마음속에서 모래성처럼 속절없이 무너졌다. 필립은 괜찮은지 묻는 직원에게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다고 말하기 위해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막 운을 떼려던 차에 누군가가 외쳤다. 이봐요, 호흡하세요! 하나 할 때 들이쉬고 둘 할 때 내뱉으세요! 하나! 둘! 하나! 둘! 다시 필립의 눈길이 여자 쪽을 향했다. 여자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중 몇 명이 하나! 둘! 하나! 둘! 하며 똑같은 박자로 호흡을 유도하고 있었다. 

  필립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 박자에 맞춰 천천히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나, 둘, 하나, 둘. 그렇게 한참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필립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품 안에서 잠들었던 린의 고른 숨소리를, 린의 호흡을 따라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덧없이 무너진 기억 어딘가에 각인된 더없이 벅차올랐던 그 시간을. 필립은 어쩐지 텁텁한 입 안을 마른 침으로 축이고 또 축였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역시 딱 한 번만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김진오에 관한 뉴스는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쏟아지고 있었고 여자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아이엠 트립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예고한 집회 시간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필립은 손을 내밀었다. 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약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필립은 속으로 직원의 말을 되뇌었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그러곤 약 봉투를 든 손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쩐지 제대로 주먹이 쥐어지지 않았다. 필립은 왠지 모를 아득함을 느끼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끝내 오므라들지 못한 주먹이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끝> 




  <당선소감>


   한줄한줄 행복한 글쓰기


  중학생 때 숙제로 소설을 썼다가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반 친구들 앞에서 낭독을 한 적이 있다. 아마 그때부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던 거 같다. 학업 등으로 바쁜 시기에도 늘 마음 한 구석에는 소설을 향한 동경을 품어왔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직접 쓰기로 결심하고 한 편씩 완성하기 시작하자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물론 때로는 그 과정이 너무 길게만 느껴지기도 했으나 창작을 하는 수많은 이들이 공감하듯 항상 괴로움보단 즐거움이 더 컸다.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내고 그걸 통해 나의 세계관이 담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은 무엇보다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설로 나를 드러낼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 

  앞으로도 계속 치열하게 쓰고 싶다. 그리고 이를 위한 첫 걸음을 경인일보와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스럽다. 

  처음으로 소설을 쓰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모님과 말레이시아의 티오만이라는 작은 섬에서 맥주를 마시던 차였다.  

  당시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그런 선언을 한다는 건 상당히 긴장되는 일이었지만 기분 좋은 바다 냄새와 밤바람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나의 떨리는 고백을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그 뒤로도 언제나 묵묵하게 나를 응원해주신 부모님께 먼저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수민에게도 고맙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저를 이끌어주신 이평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선생님을 만나고 제 인생은 놀라울 만큼 많이 변했습니다. 가르쳐주신 대로 처음의 뜻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고 싶습니다.

  또한 같이 공부하는 예술서가 문우들,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 모두 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소중한 기회를 주신 경인일보와 심사위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1989년 대구 출생.
  ● 서강대 국문과 졸업.


 

  <심사평>


  정체성·존재에 대한 묵직한 성찰” 


  "SF적인 요소를 넣어 재밌으면서도 삶에 대한 근원적 문제에 접근하는 작품"

  '2018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위원들은 당선작 '린을 찾아가는 길'에 대해 등단작품이라고 보기에 이미 상당한 수준이라는 호평을 내놓으며, 이견 없이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총 148편의 응모작 가운데 본심에 오른 18편의 소설을 두고 별다른 의견차 없이 이중 5편을 다시 추렸다.  

  최종 심사에는 '린을 찾아가는 길' 외에도 '매일 빌리는 남자' '세신' '호랑나비와 춤을' 등 실험적 도전부터 정통 소설문법에 충실한 작품까지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이 올라왔다. 

  먼저 '세신'은 화자를 관(棺)에 두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독특한 관점으로 풀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흘렀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호랑나비와 춤을'의 경우는 밑바닥 삶의 씁쓸한 풍경을 객관적 시선으로 담담하게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매일 빌리는 남자'는 표절이 표절이 아니라 일종의 패러디나 오마주로 받아들여지는 아이러닉한 상황을 풍자하는 데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야기의 전개나 서술 방식이 너무 평면적이라는 한계가 지적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이민자의 삶이나 청년실업, 동성애 등 여러 세태를 반영하는 소설들이 다수 투고됐지만 문학적으로 설득력을 갖춘 작품은 많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문학적 실험이나 활기, 자신의 문학적 세계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의지 등을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다. 

  예외적으로 '린을 찾아가는 길'에 대해 기억을 자기 정체성의 문제와 연결해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유발시키려는 주제의식부터 만만치 않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꿈속으로 여행을 하면서 행복한 기억을 만들려 하지만 그것이 결국 가짜라는 반전을 통해 현실성을 되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되고, 밀도 있는 구성과 세련된 문장으로 시종일관 독자를 사로잡는다고 호평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들은 소설가를 꿈꾸는 예비 작가들에게 고전에 대한 독서를 권했다. 많은 작품을 읽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심사위원 : 홍정선, 이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