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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해파리의 밤 / 현해원

  윤의 어깨에 달이 떠 있다고 생각했다.
  윤에게서는 바다 냄새가 풍겼다. 나는 윤을 통해 이제껏 인간이 들어가 보지 못한 심해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맡고는 했다. 냄새의 근원은 그녀의 어깨에 새겨져 있는 해파리 문신이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때때로 그런 생각에 휩싸일 때가 있었다. 윤은 내게서 등을 진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스난로가 조용히 타들어 가는 소리와 냉장고의 냉각기가 조용히 회전하는 소리가 났다.
  윤의 숨소리는 그런 작은 소음에도 묻힐 정도로 희미했다. 윤은 때때로 새벽에 일어나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있었다. 같이 산 지 이 년이 지났지만 나는 한 번도 윤의 그 행동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그에 대해 얘기하는 순간 윤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손을 뻗어 윤의 옷자락을 잡으려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더욱 숨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린 채 이불을 코끝까지 뒤집어썼다.
  부드러운 발바닥이 손끝에 닿았다. 윤은 내가 지금 깨어 있는지 모를 것이다. 윤의 어깨뼈에서부터 날개 죽지까지 새겨져 있는 해파리를 바라봤다. 시리도록 새파란 그 해파리였다.
  마치 바다를 떠다니는 모습 같기도 했고, 높은 곳에서 내던져지는 모습 같기도 했다. 달도 없는 지독히 어두운 밤이었다. 윤의 어깨의 해파리가 달처럼 발광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경찰이 초조하게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며 내 입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생각하고 내가 겨우 짜낸 말은 모르겠다는 말 뿐이었다. 정말로 나는, 윤이 왜 그날 갑자기 투신자살을 했는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이 년 동안이나 같이 살던 친구인데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경찰관의 말에 묘한 짜증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윤의 죽음은 갑작스럽다. 일도 원만히 풀려가고 있었고 질 나쁜 남자친구를 만난 것도 아니었다. 경찰이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들 역시 경찰이 원하는 답은 해주지 못한 것 같았다.
  직장에서의 윤은 언제나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에게 윤은 살포시 쌍꺼풀이 잡힌 눈을 휘며 웃던 모습으로만 존재했다.
  말수 없는 내가 윤과 함께 살게 된 것은 잡지사의 이 대리 덕분이었다. 나는 밀린 월세 때문에 더 돈을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고, 윤은 계속 살던 방을 당장이라도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집주인이 사다리를 타고 2층에 살던 윤의 방에 들어오려 했다고 했다. 혼자 사는 여자는 쉽게 취할 수 있는 꽃처럼 여겨지기 십상이었고, 윤처럼 해사한 여자에게는 더 더욱 그러했다. 모든 사정을 알고 있던 이 대리는 나이대가 비슷한 우리에게 둘이 같이 사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했다.
  나는 당장 돈이 급했고 윤은 싼값에 보안이 더 괜찮은 집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단순했다. 윤과 함께 살게 되고서 알게 된 것은, 윤은 일할 때 외에는 말수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밖에서 많은 말을 하기 때문에 굳이 집 안에서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사람과 말을 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익숙한 윤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침묵의 지점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더없이 편한 그 시간이 좋았다. 방안에는 윤의 냄새가 가득했다.
  윤은 인터뷰어였다. 그녀는 타인의 말을 이끌어 내는 데 누구보다 능숙했다. 말을 이끌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기다리는 데에도 소질이 있었다. 윤은 타인의 입이 열리길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사람의 기분을 단번에 파악해서 적절한 태도를 보이는 능력에 관해서 윤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준비해 온 말만 하려고 마음먹었던 사람도, 윤의 앞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쌓아뒀던 말을 풀어버리곤 했다. 윤과 만난 것은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작은 잡지사의 의뢰로 윤의 인터뷰 현장을 찍으러 갔다. 나는 사진을 조금 공부했을 뿐인 햇병아리 사진기자였고, 혼자 현장에 나가 본 경험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 윤의 인터뷰 현장을 따라다녔다.
  안 팔리는 연예인, 탈북자, 성 소수자, 무명 연극배우 등 다양한 사람들이 윤과 인터뷰를 했다. 눈앞의 모든 것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이 보였던 무더운 여름날, 비싼 양복이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인터뷰 도중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던 한 사업가를 기억한다.
  윤은, 이를테면 살균된 바늘 같았다. 그녀는 곪아서 부풀어 오른 상처에 구멍을 내고 곪은 진물을 빼내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윤을 기억할 때면 난 그녀의 어깨에 있던 해파리의 촉수를 떠올리고는 했다.
  나는 언제나 내가 부끄러웠다. 오른쪽으로 심하게 함몰된 두상은 언제나 내 뿌리 깊은 콤플렉스였다. 지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를 피할 때마다 내가 세상에 잘못 태어난 존재임을 인정해야 했다.
  사람은 자라면서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제왕절개로 태어나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했다.
  아주 오래전 머리를 우악스럽게 잡아당겨지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엄마는 나를 제왕절개로 낳았다. 나는 태아 때부터 글러 먹은 자식이어서 뱃속에서 몸이 뒤집혀 있었다고 했다.
  의사는 우악스럽게 내 머리를 잡아당겼고 그 과정에서 내 두상은 심하게 함몰되었다. 채 뜨지도 못한 채 눈에 쏟아지던 밝은 조명들이 내 눈앞에서 산발적으로 터지는 감각이 눈꺼풀 뒤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감각은 내게 선명히 각인되었다.
  언젠가 실내에서도 모자를 쓰고 있는 사진작가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막연히 사진을 공부하자고 마음먹었다. 단순한 계기였다.
  무엇이든 좋으니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숨길 수 있는 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사회는 그리 막막하지 않았다. 나는 여름에도, 실내에서도 모자를 푹 눌러 써서 내 두상을 가리고는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나를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쳐갔다. 그러나 굳이 헤집어 내려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나타났고, 그때마다 나는 혀를 깨물고 싶은 아득함을 느껴야 했다.
  내 머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흔히 두 부류로 나뉘었다. 위로 아니면 분노. 내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는 같잖고 예쁜 말만 늘어놓는 위로거나, 그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내가, 혹은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분노였다.
  어느 쪽도 달갑지 않았다. 그냥 다 꺼져 주었으면 했다. 나는 내가 추했고, 사회에 맞서 더 강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단순해지고 싶었다.
  윤은 그들 중 어느 부류도 아니었다. 윤은 집에서도 모자를 쓰고 있는 날 보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내 오랜 습관이었다. 혼자 집에 있을 때도 모자를 쓰는 버릇은 여전했다.
  사람은 모두 죽지 못해서 살아. 그 말은 내게 부적처럼 달라붙었다.




  나도 윤의 촉수에 닿은 적이 있었다. 하루는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한 적이 있었다. 한 쇼핑몰의 상품 촬영 보조를 위해 일산의 한 스튜디오에 갔던 날이었다. 클라이언트는 내 모자가 예의에 어긋난다며 트집을 잡았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과 모델들이 오가는 커다란 스튜디오에서 모자를 벗어야 했던, 그런 날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내게 별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순간이 부끄러웠다. 나는 원래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은 나답지 않게 술을 잔뜩 사 와서 말없이 들이켰다.
  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맞은편에서 같이 술잔을 비워줬다. 윤에게 어떤 말을 지껄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속사포처럼 내 안의 뭔가를 계속 흘려보냈던 것은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의 말을 이끌어내는 윤의 능력이 거기서도 발휘되었을 수도 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윤의 촉수에 스스로 내 고름을 가져다 댄 걸지도 모른다. 뭔가를 말했던 것 같긴 한데, 모든 것이 모호했다. 다만 기억하는 것은 윤의 말 한마디었다.
  사람은 모두 죽지 못해서 살아. 죽지 못해서 산다는 말이 왜 그렇게 내게 와 닿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은 내게 달라붙은 부적이었다.
  나는 죽음이 무서웠기에 죽을 수 없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그래서 나는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살아남기로 했다. 그리고 내게 부적을 붙여준 윤은 살지 못해서 죽었다.
  며칠 전 밤, 윤은 산책을 나가듯 집을 나섰다. 나는 편의점에라도 가나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을 뿐이었다. 특별한 예감을 느끼지도 않았고 설거지를 하다가 유리컵을 깨트리지도 않았다.
  평소처럼 별다를 것 없는 저녁이었다. 딱 하나 다른 게 있었다면 내 슬리퍼가 없어졌다는 것뿐이었다. 윤과 같이 살게 됐을 무렵, 마트에서 함께 장을 보다가 문득 윤이 사줬던 것이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도 처음이었고 실내에서 슬리퍼를 신어 본 것도 처음이었다. 몹시도 푹신했고 부드러운 슬리퍼였다.
  나는 이 년 동안 매일 그 슬리퍼를 신었다. 굳은살이 당연하던 내 발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발바닥을 부드럽게 감싸는 감각이 좋았다.
  군데군데 실밥이 터지고 쿠션도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푹신했다. 이제는 슬리퍼 없이 걸으면 발바닥이 아려왔다. 윤이 사준 그 슬리퍼는 이제 나에게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날 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사진을 보정하고 있느라 슬리퍼를 신고 있지 않았다. 윤이 신고 간 것은 그 슬리퍼였다.
  금방이라도 돌아올 사람처럼 집에서 입던 편한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공원을 지나쳐갔을 윤을 상상했다. 녹슨 헬스기구에서 운동하던 사람들이, 추운 밤에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걸어가는 윤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따라 해 보려고도 했다.
  취객이 앉아있는 편의점과 전구가 나간 가로등, 한적한 길가에서 혼자 춤추는 풍선 인형 따위를 지나쳐 어느 높은 상가에 올라갔을 윤을 가늠했다. 옥상은 닫혀 있었지만 창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윤은 왜 하필 그 슬리퍼를 신고 나갔을까. 마지막으로 허공에서 내던져지는 새파란 해파리를 떠올리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영안실에서 흰 천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던 윤이 떠올랐다.
  윤의 발이 지나치게 부드럽다고 생각했다. 등을 대고 누워 있었기 때문에 해파리는 보이지 않았다. 머리에 노이즈가 낀 것처럼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윤의 유골은 나에게 왔다.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윤이지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나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친구였을까.
  나는 윤과 나의 관계를 정확히 정의할 수 있는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우리는 친구였으므로 윤의 유골을 받는 것은 내가 되었다. 나는 계속 죽은 윤이 부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윤의 죽음을 슬퍼했고 그들의 기억 속에서 윤은 언제까지나 해사한 모습으로 박제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윤과의 기억만을 원했을 뿐 타다 남은 육체의 찌꺼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반송당한 윤의 유골단지를 깨끗한 서랍장에 올려 두었다.
  윤의 찌꺼기와 내가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경찰은 윤의 가족들에게도 연락했지만 그들이 윤의 유골을 거절했다고 했다.
  어쩌다 한 번씩 대화 할 때도 윤은 절대로 가족에 대한 얘기만은 하지 않았다. 윤의 유골을 안고 돌아오던 날, 경찰은 조사를 마친 윤의 노트북 따위를 돌려주었다. 실내화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은 윤의 기록에서 특별히 자살의 이유를 찾지는 못했지만 홀로 걸어가는 윤의 모습이 폐쇄회로에 여러 차례 찍혔기 때문에 자살로 결정지었다고 했다.
  나는 새벽에 혼자 창가를 보며 앉아 있던 윤을 떠올렸다. 먹을 때를 놓친 생선조각처럼 홀로 하얗게 응고되어 가던 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새파란 해파리만이 부유하던 밤이었다.
  나는 어둠이 윤을 오래도록 좀먹던 그 새벽을 경찰에 말하지 않았다. 윤의 물건을 정리했다. 나름 오랫동안 같이 살던 방이었는데, 의외로 방에는 윤의 물건이 별로 없었다. 노트북과 몇 권의 책, 솔기가 터진 갈색 지갑, 자잘한 메모가 적혀 있는 껌 종이, 한 짝밖에 남지 않은 녹슨 귀고리, 손때 묻은 하얀 이어폰 등을 상자에 넣었다.
  자잘한 것들을 모두 긁어모아도 커다란 상자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였다. 윤의 유골을 거절했다는 가족을 떠올렸다. 잡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윤이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물컹한 약간의 감촉만을 남기고 유연하게 내 손에서 빠져나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나는 이제 내가 왜 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을 정의하지 못하는 것은 선천적인 흔들림을 동반한다.
  윤은 가족이라는 뿌리에서 내던져진 존재였다. 윤은 언제나 흔들리고 있었다. 윤의 어깨에 새겨진 파란 해파리처럼, 흔들리고 내던져지는 게 당연한 유연한 몸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입을 열기 위해 자신을 유연하게 만드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랬기에 윤은 아무것도 짊어지지 않았고 어딘가로 흘러갔고,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언젠가 윤의 촉수에 닿았다. 그때 고인 나를 흘려보내는 법을 터득했다. 이번에는 내가 윤의 흔들림을 멈춰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순했다.
  이제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윤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윤이 좋아하는 음식과 몇 번이고 돌려보던 이국의 영화, 그녀가 가지고 있던 음식의 알레르기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윤의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그녀가 인터뷰어 일을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 년이라는 시간을 공유했지만 우리의 그 시간은 대부분 침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우리 사이에 내려앉은 침묵이 불편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 시간이 아쉬워졌다.
윤을 생각하면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기 전에 먼저 바다 냄새를 맡았다. 후각은 언제나 시각을 앞질렀다.
  언젠가 우리는 함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한밤중에 잠이 오지 않아서 무심코 틀었던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바다 깊은 곳의 영상이 재생되고 중후한 목소리의 외국 성우가 담담하게 내레이션을 읊었다.
  영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바닥을 닮은 목소리가 영상의 분위기와 꽤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멘터리 속 심해의 생물들은 모두 기괴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물고기들과는 너무도 다른 생김새가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무렵, 나를 보고 괴물이라고 놀리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파랗다 못해 캄캄한 바다는 너무나 아득했고, 바다가 아니라 마치 우주의 한 공간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해파리밖에 없었다. 수압 때문에 뒤틀린 외형을 가지게 된 다른 생물들과 달리 해파리는 원래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바다를 부유하는 해파리의 모습을 오래도록 담았다.
  영상 하단에는 해파리는 지나치게 유연해서 외형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자막이 흘러갔다. 나는 그때 해파리는 어떤 장소에서도, 심지어 우주에서도 그 외형 그대로 그저 부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다큐멘터리는 곧 끝났고 곧이어 쇼핑 호스트가 나와 세라믹 냄비를 광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끈 후에도 윤은 계속 빈 화면을 보고 있었다. 문득, 윤의 까만 눈동자에 비친 전등의 불빛이 마치 해파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보름 후, 윤의 어깨는 해파리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무척이나 유연해 보이는 해파리였다. 그러나 어쩐지 윤의 해파리는 바다를 떠다니는 게 아니라 허공에 내던져지던 모습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심해생물에서 나를 발견했듯, 윤도 해파리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윤의 해파리를 발견할 때마다 그것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윤의 유골을 가족들에게 돌려보내 주기로 하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윤의 휴대폰의 전화번호부를 보는 것이었다. 윤의 흔들림의 원인이 가족이라면 그 가족을 찾으면 윤도 흔들림을 멈출 것 같았다.
  경찰은 개인정보 보호를 운운하며 윤의 가족에 대해서는 일절 말해 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윤의 휴대폰에는 많은 이름들이 저장되어 있었지만 그중에 어떤 번호가 윤의 가족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윤의 가족의 이름은커녕 그녀에게 오빠나 동생이 있는지도 몰랐다. 막막했다. 나와 윤의 유일한 교집합이라고는 이전에 짧게 근무했던 잡지사뿐이었다.
  무작정 잡지사에 찾아가 윤의 기사가 실린 잡지를 받았다. 대부분 인터뷰 대상자의 사진이 실려 있었지만 윤이 같이 찍힌 사진도 간간이 보였다. 잡지에 실린 윤의 얼굴이 유독 해사했다.
  언젠가 내가 찍었던 사진이었다. 눈을 가늘게 휘며 미소 짓고 있는 윤의 모습이 낯설었다. 내게 윤은 언제까지나 흐린 눈을 한 모습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커피가 썼다. 쓴맛을 없애 보고자 스푼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크게 떠먹었다. 뭔지도 모를 아포가토를 시킨 게 문제였다.
  메뉴판에서 적당히 커피인 줄 알고 골랐을 뿐이었다. 설마 쓴 커피와 아이스크림이 같이 나올 줄은 몰랐다. 아이스크림 위에 커피를 끼얹어 한 스푼 크게 떠먹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같이 먹어도 지나치게 쓴 에스프레소 탓에 혀가 아렸다. 맛은 지극히 단순했다. 달콤하고, 썼다.
  그때 누군가 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다가왔다. 왜소한 체격의 여자였다. 언젠가 윤이 인터뷰했던 민영이라는 사람이었다. 북한에서 탈출하면서 경험했던 일을 얘기하며 눈물을 쏟던 모습이 유달리 기억에 남았다. 민영이 조심스레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내가 만난 건 민영만이 아니었다. 나는 잡지를 보고 윤이 인터뷰했던 사람들에게 연락해 윤에 대한 것을 물었다. 나는 윤과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윤은 내게 말 하나를 부적처럼 붙여줬지만 내가 윤에게 그러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윤이 인터뷰했던 사람들이 더 많은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윤은 타인의 말을 이끌어 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사람 중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민영을 비롯해 많은 사람을 만났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과 접한 건 처음이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때때로 혀가 굳어지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잘 버텼다고 생각한다. 나는 참을성 있게 얘기를 들었지만 윤에 대해서 건질 수 있었던 것은 별로 없었다.
  윤은 충실한 인터뷰어였고, 언제나 타인의 말을 이끌어내는 데에 집중했다는 걸 실감했을 뿐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윤은 전부 다른 사람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을 주는 열정적인 사람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외로워 보여서 그녀를 위로하고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언젠가 남들의 눈도 신경 쓰지 않고 윤의 앞에서 크게 울었던 사업가를 만나기도 했다. 그는 윤의 소식을 듣자마자 황망한 얼굴로 말을 더듬다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처음 그들에게 연락했을 때만 해도 그들이 모두 윤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 삼십분, 기껏해야 몇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을 뿐인 상대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단 한 번 만났을 뿐인 인터뷰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윤의 촉수에 닿았던 적이 있었다. 윤이 내게 그랬듯, 그들에게도 부적 같은 말을 붙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맨발로 걷는 집은 어딘지 낯설었다. 옷장에서 닥치는 대로 양말을 꺼냈다. 여러 개 겹쳐 신은 탓에 발이 답답했지만, 한결 걷기 쉬워졌다.
  윤을 만나고부터 부드러워진 내 발바닥은 아직도 단단해지지 못했다. 선반에 얹어둔 윤의 유골단지를 바라보았다.
  밀봉된 하얀 도자기 안에서 어렴풋하게 바다 냄새가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이 방에서는 여전히 윤의 냄새가난다. 느리게 움직이는 시곗바늘을 쳐다봤다.
  나란히 2를 가리키고 있던 시침과 분침이 잠시 겹쳐지는가 싶더니 이내 떨어졌다. 시곗바늘이 다시 겹쳐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윤과 사라진 슬리퍼에 대해 생각했다.
  민영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은 그녀를 처음 만나고부터 몇 주가 더 지나서였다.
  벌써 히터를 세게 틀어둔 카페 내부 탓에 자꾸만 땀을 훔쳐야 했다. 도톰한 모자 안에서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이마에 엉겨 붙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차가운 커피를 한 번에 들이마셨다.
  더운 카페와 달리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이 선득했다. 그때 멀리서 민영이 카페에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모자를 한 번 더 깊게 눌러썼다.
  "동생이 있다고 했어요."
  민영이 내게 낡은 사진을 한 장 보여주며 말했다. 귀퉁이가 조금 잘려나간 사진에서 퀴퀴한 냄새가 훅 풍겨왔다. 사진에는 지금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민영이 어린 남자애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민영이 그녀의 동생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민영의 동생의 이름은 만석이었다.
  만석꾼이 되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이름의 무게와 다르게 만석이라는 남아 아이는 해골처럼 말라 있었다. 볼이 움푹 들어간 얼굴이 마치 해골 같았다. 무심코 모자 밑에 숨겨져 있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주먹 하나는 푹 들어갈 두상이 만져졌다.
  민영은 동생을 남겨 두고 탈북했다고 했다.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동생의 안부는 알 수 없었다. 만석이라는 이 아이는 만석꾼이 됐을까.
  가족도 없이 혼자 남은 아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그다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것을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민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을 데리고 나올 걸 그랬다며 심하게 자책했다. 내가 지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듯, 윤 역시 민영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을 것이다.
  윤은 그때 딱 한 번 자신을 드러냈다. 윤에게도 집에 두고 온 남동생이 있었고, 남동생의 이름은 민영의 동생과 많이 닮아 있었다.
  윤을 자극한 것이 남동생이라는 존재일지, 하필이면 그 이름이 비슷했기 때문일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할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윤은 이곳에 없었다.
  하지만 민영에게도 어떤 촉수가 있다는 것은 가늠할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촉수는 유려하게 윤을 꿰뚫었다. 그 순간 윤은 뭔가를 흘렸다. 윤이 흘린 감정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윤의 동생 이름은 민석이었다. 그는 인천의 작은 횟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윤의 휴대폰에는 수많은 민석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지만 윤과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윤의 유골단지를 안고 광역버스에 몸을 실었다. 유난히, 오늘따라 버스가 덜컹거렸다. 나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유골단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에 잔뜩 힘을 주어야 했다. 멀리서 걸어오는 민석을 보자마자, 단숨에 그가 윤의 동생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민석은 윤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고 있었다. 윤처럼 쌍꺼풀이 있지도 않았고 하얀 피부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민석은 누군가 아무렇게나 깎아 만든 나무 조각처럼 투박한 인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와 윤이 아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왜 나보다 머리 몇 개는 큰 키의 남자에게서 윤에게 느꼈던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민석이 가까이 올수록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민석이 근처에 오자 그의 몸에서 풍기는 바다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풍기는 분위기도 윤과 상당히 비슷했다. 외양이 닮은 것은 아니었다. 몸을 트는 각도나 보폭의 정도, 냄새의 질감 등 정확히 짚어 말하기 힘든 것들에서 윤을 떠올리게 했다. 역시 윤의 동생이구나 싶었다.
  "그때는 저희 어머니가 제 전화를 받으셔서……. 놀라게 해드린 점 죄송합니다."
  민석이 난처한 얼굴로 사과했다.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민석은 몇 번이고 계속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체념이 묻어 있었다. 유골단지를 들고 카페에 들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와 민석은 벤치에 앉기로 했다.
  처음 민석의 전화를 받은 것은 그의 엄마였다. 내가 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는 이미 예전에 싫다고 하지 않았냐며 소리를 질렀다.
  그 반응에서 그녀가 이전에도 윤에 대한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높고 날카로워 졌다.
  당황한 마음에 일단 전화를 끊으려는 차에 민석이 전화를 바꿨다. 그가 서둘러 자리를 옮긴 듯 여자의 목소리가 아득해졌지만, 그 짧은 사이에 따개비처럼 귀에 달라붙은 목소리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뛰어온 탓인지 민석의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인천은 서울보다 기온이 더 높았다. 민석이 얇은 니트 소매를 조금 걷어붙였다. 민석의 팔에는 날뛰는 횟감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는 보기 힘든 생채기가 여럿 나 있었다.
  피딱지가 맺혀 우둘투둘해진 생채기도 있었다. 그가 멋쩍은 얼굴로, 어머니가 치매기가 조금 있다며 변명처럼 읊조렸다. 그녀는 윤의 일을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불안정해지는 듯했다.
  애초에 민석이 아닌 내가 인천까지 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민석은 도우미 없이 오랜 시간 집을 비울 수 없었다. 날씨는 맑았지만 바닷바람은 생각보다 매서웠다. 모자가 바람에 벗겨지지 않도록 몇 번이고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그는 내게 많은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주제를 빙빙 돌리며 변명처럼 몇 어절씩 내뱉었을 뿐이지만, 모든 것은 지극히 단순했다. 그녀는 민석의 엄마였지만 윤의 엄마는 아니었다.
  병약한 윤의 엄마는 윤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었으므로, 이제는 죽은 그들의 아빠가 아내가 있는 집으로 윤을 데려왔다. 윤은 그녀의 엄마와 아주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 이상은 듣지 않아도 윤의 처지를 대강 짐작하게 했다. 민석의 엄마는 윤을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의 시간이 어디에서 멈췄는지는 모른다.
  민석의 팔에 그어진 생채기가 가로등에 반사되어 비늘처럼 번들거렸다. 아마도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련의 행동들에 권태를 느끼기에는 그에게도 가족의 무게는 무거웠을지도 모른다.
  민석의 어조에서 윤에 대한 원망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윤은 아무런 짐도 없었기에 흘러갈 수 있었지만 민석에게는 그의 따개비 같은 엄마가 있기에 흘러갈 수도 없다. 역시, 그는 윤과 많이 닮아 있었다.
  예쁜 여자였을 것이다. 윤을 아주 많이 닮았다는 이름 모를 여자를 떠올렸다. 예쁘고 청초하고 유부남의 아이를 낳아 기른 여자를. 그래서 그저 떠다니다 그대로 흘러갔을 모습을 상상했다. 윤의 흔들림은 그의 엄마로부터 내려온 것이었다.
  "누나가 집에 오고 싶어 할까요."

  민석이 한숨처럼 내뱉었다. 모든 흐름은 지극히 단순했다. 나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정의하지 못하는 것은 선천적인 흔들림을 동반한다, 고 줄곧 생각했다.
  내가 윤의 말에 의지해 스스로의 몸에 부적을 붙였듯, 윤의 가족을 찾아 그녀의 흔들림의 근원을 알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니였다. 이미, 모든 것은 박제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내 손에는 여전히 묵직한 유골단지가 들려 있었다. 이번에는 버스가 아닌 택시를 탔다. 코트 주머니에는 5만원짜리 지폐 두 장이 들어있었다.
  먼 거리를 오게 해 미안하다며 민석이 내 손에 쥐어 준 것이었다. 나는 굳이 그 돈을 사양하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높은 상가 건물 앞을 지나갔다. 울퉁불퉁한 지면 때문에 차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언젠가 이곳에 윤의 모양대로 하얀색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테이프는 자동차 바퀴에 휘감겨 어디론가 휩쓸려갔을 것이다. 근처 휴대폰 대리점의 풍선 인형이 혼자 춤추고 있는 게 보였다. 누구도 풍선 인형을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쳐갔다. 택시는 계속 집을 향해 굴러갔다.
  가로등 하나를 지났다 여전히 방치되고 있는지 아직도 불이 나간 채였다. 늘 파라솔 아래 취객이 앉아 있고는 했던 편의점 앞도 지나갔다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라면을 치우고 있었다.
  공원 주변에 설치된 녹슨 헬스기구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날씨가 추워진 탓인지도 모른다. 잠깐 산책이라도 나온 듯 편한 옷을 입은 여자 한 명이 종종걸음으로 헬스기구 앞을 지나갔다. 여자는 슬리퍼를 신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집이었다.
  계단을 올라갔다. 오래 걸은 탓에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다리 근육이 당겨왔다. 내일은 근육통이 올 것 같았다. 유골단지를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손아귀에 더 힘을 주었다.
  창문을 열고 간 탓에 방안에는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캄캄했다. 불을 켜려고 벽을 더듬다가 실수로 문 근처에 있던 빨래통을 발로 걷어찼다.
  토사물처럼 쏟아진 옷들은 모두 내 것이었다. 땀에 젖은 양말을 벗어 빨래통에 넣었다. 굳은살이 붙었는지 발바닥이 조금 단단했다.
  윤이 슬리퍼를 신고 사라진 후 여러 개의 양말을 겹쳐 신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문득 이 습관이 오래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지 못해 산다던 윤을 오래도록 떠올렸다. 윤의 흔적을 더듬어 흔들림의 시작점을 알아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엇 하나 단순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내게 부적처럼 붙은 말을 기억했다.
  금방이라도 다시 돌아올 사람처럼 나가던 윤의 뒷모습은 여전히 내 기억속에 선연했다.
  그렇게 나갔던 것처럼, 훌쩍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윤을 상상한다. 윤은 계단을 올라가며 녹슨 손잡이를 잡는다. 높은 계단 탓에 숨을 몰아 쉴 때마다 날갯 죽지의 해파리가 한 번씩 너울거린다.
  윤이 돌아올까. 아니면 또 다시 어딘가로 흘러가려고 할까. 흐르고 흘러 초인종 없는 현관문을 두드릴까. 나는 그런 상상을 했다.
  새파란 해파리가 내가 모를 곳에서 발광했다. 달도 없는 지독히 어두운 밤이었다.

<끝>


  <당선소감>

   "언젠가 지치는 날 오더라도 글 오래도록 쓰겠다"

  오늘이 너의 날이 되기를 바라.
  한 친구는 매년 생일마다 같은 말을 했다. 내심 그 말이 좋아 소중한 사람들의 생일이면 그들에게 같은 말을 돌려주었다. 당선 통보를 받은 날은 오랜 친구의 생일날이었다.
  오늘이 너의 하루가 되길 바란다며 축하를 건넸던 그 친구에게 가장 먼저 축하 인사를 돌려받았다. 생일 같은 날이었다.
  생일을 기억하는데 더는 너의 날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의 얼굴이 무럭무럭 떠올랐다.
  2019년은 앞으로 내가 뭐가 될지, 내가 설 자리가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기갈 들린 사람처럼 많은 것을 정리했다. 하루는 책장에 꽂혀 있던 빛바랜 책들을, 다음 날은 오랫동안 좋아했던 가수의 앨범을, 그다음 날에는 미련처럼 남겨 두었던 전화번호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하나씩 버리고 나면 그만큼 내 자리가 생길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끊임없이 내 자리를 의심하게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조금쯤 내가 있을 자리를 나눠 받은 기분이다.
  이십 사시 카페에서 전공도서를 펼쳐 놓고 공부를 하던 사람들 틈에서 나 혼자 소설을 쓰고 있을 때면 바닥없는 불안에 처박히고는 했다. 해가 뜨기 전에 가장 어둡다는 빤한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을 한 편 완성하고 나면, 오랫동안 참고 있던 숨을 한꺼번에 내뱉을 때의 해방감이 차올랐다. 그 순간을 알기에 글을 단념하지 못했다.
  지치지 않고 쓰겠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여태껏 수도 없이 지쳐 나가떨어졌듯 언젠가 다시 지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럼에도 오래도록 쓰겠다.
  그저 지켜봐 주고 기다려준 가족들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분명 앞에서 말로는 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이렇게 글로나마 마음을 전한다. 미숙한 글에서 나조차도 의심했던 나의 가능성을 발견해주신 경인일보 심사위원분들께도 무한히 감사드린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다. 고마운 마음은 직접 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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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미스터리 벗겨가는 형식… 서사 강약조율 돋보여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15편이다.
  다양한 소재를 다채로운 형식으로 펼쳐낸 작품들을 읽는 게 썩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체적으로 일정한 수준에 도달했지만 군계일학으로 빼어난 작품을 찾기는 어려웠다.
  두 심사자가 15편을 꼼꼼하게 읽은 뒤 고심한 끝에 최종심으로 올린 작품은 이수현씨의 '원더서퍼', 윤희웅씨의 '꽝수 반점', 현해원씨의 '해파리의 밤'이다.
  이수현씨의 '원더서퍼'는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축구를 떠나 카드회사 콜 센터 직원으로 바뀐 전직 여자 축구선수의 이야기다.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솜씨도 볼만했다. 하지만 서사의 축을 이루는 갈등 구조가 당혹스러울 만큼 단순해서 인간의 복잡한 심층을 드러내기엔 미흡하다고 느꼈다.
  윤희웅씨의 '꽝수 반점'은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의 탄생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이주노동자의 반전 인생을 다뤘는데,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중층적 구조로 속도감 있게 풀어나가는 솜씨가 대단했다.
  가독성이 높은 소설을 써낸다는 건 장점이다. 화재 현장에서 의인으로 미화되었던 이주노동자가 사망자로 처리돼 유령처럼 살다가 타인의 위조 여권으로 고국으로 돌아가 인생 반전을 이룬다는 서사는 핍진성이 희박했다.
  좋은 작가는 이야기꾼을 넘어서 인간 실존의 당위성과 의미를 탐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현해원씨의'해파리의 밤'은 어깨에 해파리 문신이 새겨진 동거인의 자살 이후 그의 행적을 더듬는 이야기다.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 망자의 유골 단지를 품고 그의 가족을 찾아 나서는데, 그것은 부재의 알리바이, 혹은 인간 내면에 숨은 실존의 당위성 찾기일 테다.
  별다른 사건은 없지만 자살의 미스터리를 한 꺼풀씩 벗겨나가는 형식은 공감할 만했다. 서사의 강약을 조율하는 감각과 섬세한 문장에서 엿보이는 통찰력이나 밀도가 다른 투고작들에 견줘 돋보였다.
  두 심사자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겠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믿고 현해원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심사위원 : 김남일, 장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