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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까치 / 송경혁

  대곤은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눈에 띄었다. 그는 소방서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공중을 쳐다보고 있었다.

“약 아직도 먹어요?”

  유진은 대곤에게 다가가 물었다. 유진은 자신의 질문이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출근한 대곤은 조금 더 홀가분해 보이기도 했다. 유진은 대곤이 자신과 같은 소방서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에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그 좋은 걸 어떻게 끊어.”

  대곤은 무심하게 받아쳤다.

“저도 약 먹어요.”

 “미친놈이네.”

  유진은 대곤을 따라 고개를 들어 공중을 보았다.

“뭐 보고 있어요?”

 “까치. 한 마리가 안 보여.”

 “그런 걸 다 세고 있어요?”

  그래서 피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보이던 게 안 보인다고 말하잖아.”

 “죽은 지 며칠 됐어요. 차에 치여서.”

 “좀 구해주지 그랬어.”

 “말이 돼요?”

  잠깐의 정적이 둘 사이에 벽처럼 들어찼다.

“안 되지.”

  대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진은 일어서는 대곤을 바라보며 고개를 들었다.

 *

  내 앞날은_

  뒷부분이 빠져있는 문장을 바로 떠오르는 생각으로 완성하는 테스트였다. 유진은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썼다가 가로로 길게 두 줄을 그었다. 그리고 다른 말을 써넣었다.

  여태 그랬던 것처럼 밝을 것이다.

  접수직원은 상담을 받기 전에 검사지를 내밀며 작성을 하고 기다리라고 했다. 종이의 맨 위엔 문장완성검사라는 제목이 붙어있었지만, 인성검사라는 느낌을 주었다. 유진은 앞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장에서만 주춤했을 뿐, 다른 문장은 걸릴 것 없이 완성해나갔다.

  내가 늙으면_ 곱게 죽고 싶다.

  내가 믿고 있는 내 능력은_ 나를 믿는 것이다.

  문장들을 완성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작성한 검사지를 접수대에 제출했다. 돌아서니 탁자에 놓인 과자들이 보였다. 유진은 그런 것을 집는 데 주저한 적이 없었다. 쿠크다스 두 개째를 입에 넣고 우물댔을 때, 진료실 문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유진은 그 문을 노크하면서 열었다. 유진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더니, 의사도 “안녕하세요.” 라고 대답했다. 의사가 자신 앞의 의자를 손바닥으로 가리켰고 유진은 거기에 앉았다.

“무엇이 불편하신가요.”

  그가 물었다. 유진은 “왜 왔느냐고요?”라고 되물었지만, 의사의 대답을 기다린 질문은 아니었다. 유진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결국, 유진이 꺼낸 것은 지난주 발생한 화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유진은 서둘러 그에게 다가서다 움찔거렸다. 그의 복부와 등을 땅에서 솟은 듯한 쇠파이프가 관통하고 있었다. 유진이 그 사람의 생사를 가늠하기도 전에 구급대원 둘이 유진의 뒤로부터 들것을 들고 들어왔다. 유진의 두 눈이 초점을 잃으며 흐릿해졌다.

“3층이라고!”

  유진의 고개는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유진은 반장의 외침에 따라 화재가 난 3층으로 발길을 돌렸다.
 
  작은 불이었다. 불은 빠르게 진압되어 다른 층으로 번지지 않았다. 이것을 몇 개의 언론사가 경기도의 한 오피스텔에서 난 화재로 1명이 숨졌으며 소방당국이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 중이라는 내용으로 단신 처리했다. 화재를 진압하는 데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으나 유진은 오피스텔 문밖으로 나와 산소마스크를 벗고 검게 그을린 벽에 토사물을 쏟아내느라 2분을 허비했다. 누군가 마스크가 새냐고 물었을 때, 유진은 손을 들어 내저었다. 반장이 유진에게 말했다.

“병원 가 봐라.”

“가스 중독 아닙니다.”

  유진은 기억을 되짚은 후 대꾸했다. 자신이 오피스텔 화재에서 연기에 직접 노출된 기억은 없었다.

“거기 말고 신경정신과.”

“…….”

“군대에서도 그런 사람, 본 적 없을 거 아냐.”

  반장은 말씨름하는 데 에너지를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말끝을 눌렀다. 반장이 신경정신과 명함을 주었다. 소방서 근처엔 신경정신과가 별로 없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유진에게 반장이 자신을 각별하게 여긴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죄책감 가질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의사는 추임새 하나 없이 유진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의사의 눈과 귀는 정지된 것처럼 움직임이 없었으나, 그의 손은 기계처럼 움직여 유진의 말을 받아 적고 있었다.

“소방관이시군요.”

  의사는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유진이 제출한 검사지였다.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지나갔다. 의사는 그것을 훑어보더니 숙제라도 끝낸 듯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다.

“그걸 보고 일상생활이 어렵다고 느꼈나요.”

  유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으므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의사는 유진을 보고 괜찮다, 좋다 같은 표현을 자주 썼다. 그가 이런 테스트와 대화로 심리상태를 어떻게 진단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대답할수록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는 확신은 들었다. 문득, 죽고 싶다든지, 누굴 죽이고 싶다는 문장을 쓰면 의사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다. 그러나 호기심을 실행에 옮기고 싶진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어도 그렇게 쓸 것 같지 않았다. 일단, 지금은 아니었다.

  의사는 약을 처방하지도, 다음에 다시 오라고도 하지 않았다. 유진이 생각으론 당연한 결과였다. 자신이 병원에 온 건 반장 때문이라고 여긴 까닭이었다. 소방서에서는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반장은 그것을 쓰레기라고 했다.

  유진이 진료실 문을 닫고 나왔을 때, 익숙한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유진은 그가 누군지 생각해내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대곤 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구급대의 대곤이었다. 대곤은 유진을 보고는 시체라도 본 것처럼 멈칫했다. 그러나 표정은 변하지 않은 채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대곤이 진압대 소속인 유진과 같은 시간대에 근무하게 된 것은 지난주였다. 서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유진은 누구와도 친할 정도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소방서에 배치된 지 석 달이 지났을 뿐이었다. 유진은 대기실 테이블에 있는 과자를 다시 입에 집어넣었다. 과자를 다 씹기도 전에 직원이 유진을 불렀기 때문에 유진은 우물거리며 접수창구 앞으로 걸어갔다.

“김유진이지?”

  유진이 신용카드를 직원에게 건네주었을 때였다. 대곤이었다. 유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를 거치지 않은 대답이 이미 입 밖으로 나온 후였다.

“네?”

“왜 왔어?”

  대답은 없고 질문만 오갔다.

“왜 그렇게 빨리 나왔어요?”

  대곤은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나왔기 때문이었다.

“잠을 못 자서 약 타러. 잠 잘 자라.”

  잠을 잘 자라는 말은 의사도 했던 말이었다. 대곤은 계산을 마친 후 잰걸음으로 병원 밖을 나갔다. 대곤의 손에 처방전이 들려 있었다. 익숙한 사람의 행동이었다.

*

  유진은 사고 당사자들을 대할 때,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썼다. 출동 횟수가 늘어날수록 굳이 드는 생각은 사람이 싫다는 것뿐이었다. 현장에서 유진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4월의 첫날에도 일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유진의 팀은 폐지수거업체에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소방서는 펌프카 두 대와 구조차, 구급차를 동원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수거업체 작업자들이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새어 나오는 불을 소화기와 물로 끄고 있었다. 바로 옆에 폐지로 된 언덕이 있었으므로 그리로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불은 끝내 컨테이너 하우스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펌프카의 살수능력은 그 정도 화재를 진압하기에는 충분했다. 진압도구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소방관들의 업무였다. 화재는 순식간에 진압됐다. 불꽃은 컨테이너 안에 붙어있는 누전차단기에서 발생했다. 화재조사관이 아니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정황이 빤했다. 전에 합선이 일어난 적이 있었던 듯, 작업자들이 “그러게 지난번 제대로 손 봤었어야 했다”는 둥의 이야기를 자기네끼리 나눌 정도였다. 폐지수집장은 산 아래 개발제한 구역 안에 들어앉아있어 수십 톤이 넘는 폐지로 불이 옮겨 붙으면 바로 대형 산불로 이어질 터였다. 그러나 빠른 진화로 다친 사람이 없었고 재산피해도 크지 않았다.

  유진은 일어날 수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안도할 뿐이었다. 티브이에 나오는 소방관들은 인명피해가 없거나 재산피해가 적을 때면 다행이다, 신고를 빨리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후렴구처럼 붙였다. 그들은 방화범이 아니었음에도, 흡사 죄를 지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유진에겐 그날의 업무가 힘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유진은 힘들지 않은 날이 길게 이어지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생각도 어깨 한쪽에 늘 붙어있는 파스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화재를 진압한 후에 오늘도 운이 좋았다는 생각은 어김없이 들었다.

  부상자가 없어선지 구급대원인 대곤은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 대곤은 소매를 걷어 드러난 하얗고 긴 팔로 팔짱을 끼고 유진이 현장 정리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소방호스를 쥔 유진도 예외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폐지수집장 화재를 진압하고 본서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소방차들이 4차선 도로로 진입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차량정체가 시작됐다. 동시에 관제센터 근무자의 목소리가 차내 스피커를 타고 전해졌다. 차량 추돌사고가 났다고 했다.

“바로 요 앞이네. 벨 울려.”

  따로 전화를 받던 반장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터널이었다. 사이렌이 울리자 앞을 막고 있던 차들이 꿈틀대며 길을 터주기 시작했다. 소방차들은 빨려 들어가듯 터널 안으로 진입했다.

  터널 속을 흐르는 기체에서 탄내는 맡아지지 않았다. 불꽃은 보이지 않았다. 뿌연 기체가 나와 시야를 가리긴 했지만 화재 때 발생하는 연기와는 달랐다. 사고 차에서 뿜어져 나온 배기가스와 수증기로 보였다. SUV와 승용차가 시옷으로 붙어있었다. 앞차를 들이받은 것으로 보이는 운전자는 술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활어처럼 펄떡대기 시작했다.

“냄새나네. 많이 나.”

  그는 들것에 실려 가는 앞차 운전자의 얼굴에 바짝 붙어 코를 들이댔다. 방금 전까지 좌석에서 죽은 듯 고개를 떨구고 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생기였다. 대곤이 부상자를 들것에 싣고 구급차에 밀어 넣었다.

“음주측정 안 해요? 채혈해요? 채혈해야지.”

  그가 다시 말했다.

“응급실에서 하겠죠. 환자 들어갑니다.”

  대곤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환자야. 같이 탈 거예요.”

  대곤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졌다.

“사람이 중태라고요.”

  대곤이 한숨과 함께 토해낸 말이었다.

“내가 독박 쓰게 생겼는데!”

  후방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진은 예외적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걸음은 대곤에게로 향했다. 반장이 유진의 가슴을 팔로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뒤늦게 도착한 경찰을 불렀다.

“아저씨! 여기 와서 이분 좀 봐요.”

  반장은 구급대원 대곤과 실랑이를 벌이는 운전자를 가리켰다. 나이든 경찰은 배가 나와 굼떴으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공무집행 방해입니다.”

  경찰은 운전자와 구급대원인 대곤 사이에 끼어들더니 물리적 접촉 없이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렸다. 운전자는 당황한 듯했지만 말은 멈추지 않았다.

“음주운전이라니까. 저 사람이…….”

  경찰은 운전자의 눈을 보았다.

“연행해요?”

  경찰은 반장처럼 입씨름을 최소화하는 것이 자신의 업무인 것처럼 노련했다. 경찰이 운전자의 팔에 손을 댔을까. 사고 차량 운전자는 한걸음 물러나더니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그제야 자신에게 쏟아지는 주변의 원망 섞인 시선들을 느꼈는지 전화기를 귀에 대며 도로변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먼저 출발해.”

  반장이 구급차량을 향해 말했다. 구급차 속 대곤은 기도확보용 관에 젤을 바르고 있었다.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대곤의 표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대곤이 선배라지만, 기껏해야 자기또래일 뿐이었다.

  다른 구급대원이 운전석에 오르자마자, 구급차는 120데시벨의 사이렌을 울리며 발사하듯 출발했다. 경찰은 크지 않은 손짓으로 밀린 차들을 빼내기 시작했다. 사고 차량 두 대 외에도 이미 견인차 예닐곱 대와 경찰차 한 대, 유진이 소속된 소방서 차량 세 대, 일반 차량 수십 대가 뒤엉켜 차량정체 구간은 짧은 시간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났다. 유진도 본서로 복귀할 채비를 했다.

“저 환자 무슨 일 나는 건 아니겠지?”

  누군가 한마디 했다. 유진이 머릿속에 떠올린 사람은 대곤이었다. 그들에게는 사고의 인과관계나 사람의 잘잘못을 가릴 이유가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피할 수 없이 말려드는 경우가 있었다.

“설마요.”

누군가 대답했다.

  소방서로 복귀한 진압대원들은 3층의 대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큰 산불이 났다는 뉴스가 대부분의 채널을 채웠다. 대원 중 하나가 혀를 차며 중얼댔다.

“저기는 온통 산이잖아.”

  유진은 소방서 정문으로 난 창밖에 팔을 걸치고 밖을 바라보았다. 소방서는 대로변에 있었다. 늘 문이 열려있는 차고 덕에 소방서가 대로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까치 몇 마리가 날아다니거나 도로표지판 위에 앉아있었다.

  1층에서는 다른 팀의 구급차가 굉음을 울리며 소방서 바깥으로 튀어 나가고 있었다. 구급차와 도로 사이에서 파열음이 들리면서 무언가가 터져나갔다. 유진의 동공은 커졌다가 조금 줄어들었다. 파이프에 찔린 사람이 떠올랐다. 구급차가 밟고 지나간 자리에서는 검은 것이 펄럭였다. 까치였다.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곧이어 달려오던 트럭이 구급차가 지나간 자국을 따라갔다. 까치의 주검이 접시처럼 납작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초에 지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다른 까치 하나가 도로변으로 날아왔다. 날아온 까치는 오가는 차를 피하느라 종종대며 울어댔다. 위태로웠다. 곧이어 대여섯 마리의 까치가 어디선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까치들의 울음소리가 유진이 있던 대기실까지 꽉 채웠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은 유진뿐이 아니었다. 다른 동료가 스위치를 만졌는지 소방서 앞 신호등에 일제히 빨간 불이 켜졌다. 대로를 지나가던 차들이 정차했다. 그 틈을 타 1층에서 소방관 세 명이 도로로 뛰어나와 2차원으로 변해버린 동물의 사체를 플라스틱 통에 담았다. 몰려든 까치들은 사체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교대 준비합시다.”

  대기실에서 누군가 말했다. 일과가 끝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같이 출동한 구급차가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대곤도 아직 복귀하지 않고 있었다.

“구급차 응급실에서 지금 출발했대.”

  유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이라도 했는지, 반장이 구급차 운전수와 통화했다면서 유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환자는 별일 없대요?”

“그렇겠지.”

  반장이 리모컨으로 티브이를 끄며 대답했다.

  유진이 걷는 오피스텔의 복도는 좁고 길었다.

“홈, 스위트 홈”

  유진은 미드에 나왔던 누군가의 대사를 조용히 읊조렸다. 유진은 자신의 오피스텔이 좋았다. 소방관이 되고 나서야 안정적인 직업과 안정적인 안식처가 생겼다, 고 생각했다.

  특전사 시절에도 완전히 독립했다는 생각은 갖지 못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군인이었던 유진은 소방관이 되어서야 독립을 할 수 있었다. 유진의 사명감이 남달라서 소방관에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특전사가 소방관 합격에 유리한 스펙이기 때문이었다.

  유진은 4월이 되었어도 아직 전기장판을 집어넣지 못했다. 불속에서 나온 유진은 집에 들어갈 때마다 춥다고 느꼈다. 제대로 씻었는데도 늘 어디선가 불내가 났다. 유진은 물과 함께 비염약을 몇 알 들이켰다. 약을 먹는 것은 오랜 습관이었다. 환절기 때마다 찾아오는 알러지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비염약은 잠을 자는 데 도움이 됐다. 유진은 핸드폰 불빛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추다가 약기운이 나른하게 퍼진 후에야 잠이 들었다.

  진득한 타르 속에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웅멍거리는 소리가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유진을 휘감았다. 머리는 무거웠다. 유진은 힘을 다해 팔을 휘저었다. 팔이 벽에 부딪쳤을 때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었다. 핸드폰이 푸른빛을 발하면서 길게 울렸다.

“술 안 마셨지? 비상이야. 서로 와.”

  터치를 하자마자 나직한 반장의 목소리가 핸드폰의 작은 구멍을 빠져나와 원룸을 꽉 채웠다. 오전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대응 3단계. 3단계라는 상황을 겪은 적이 없었다. 간첩이 넘어온 상황만큼 심각한가, 유진은 군 시절을 떠올렸다. 그러나 유진의 특전사 시절엔 간첩 소탕 작전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응소를 알리는 문자 몇 개가 연이어 도착했다. 유진은 본능처럼 팔다리를 옷에 집어넣었다.

“어디로 가요?”

“강원도”

“강원도 어디요?”

“가면서 얘기하자.”

  반장의 대답 뒤에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유진은 뒤늦게, 지금의 응소가 대기실 티브이로 본 산불과 관련된 것임을 깨달았다.

  모인 대원들은 갑작스러운 호출에도 불구하고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유진은 떠밀리듯 펌프카에 탑승했다. 긴장보다는 얼떨떨함이 앞섰다. 차가 도로 위에 놓이자, 긴장이 풀리면서 나른함이 밀려왔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유진은 집 밖을 나서면 졸음과 싸워야 했다. 이를 아는지 운전대를 잡은 동료가 자두라고 일렀다. 차의 진동은 심했으며 차 안의 스피커에서는 전선을 타고 나온 목소리들이 간헐적으로 오갔다. 하지만 그것들도 무겁게 떨어지는 눈꺼풀을 막지는 못했다. 유진은 헬멧을 목에 댄 채 잠이 들었다. 다른 대원 몇도 고개를 어딘가에 기댔다. 잠이 든 것은 유진 뿐은 아니었다.

  탁한 공기가 날카롭게 콧속을 찌르며 잠을 깨웠다. 유진이 눈을 떴을 땐 차 안이 이미 탄내로 가득했다. 펌프카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저 멀리 동이 트는 것처럼 산에 후광이 비치는가 싶더니 새까맣던 주변이 붉게 물들었다. 차 안이 술렁였다. 앞뒤로 다른 소방서에서 나온 차들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늘어져 있었다.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반장이 말했다. 불의 규모를 보고 하는 말인지, 소방차들의 행렬을 보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유진이 탄 소방차는 속초의 집결지에 모여 지역 소방본부의 지시를 받기로 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이 최소 근무 인원을 제외한 모든 소방관이 동원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유진에게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대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장에게 물었다.

“대곤 선배는 안 왔나요?”

  장비를 착용하던 반장이 자신의 버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걔는 구급이잖아.”

  반장의 대답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집결지에 있는 차들 대부분이 살수차와 펌프카였다. 구급차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곧 본부의 지시가 떨어졌다. 유진이 속한 팀은 속초의 북단으로 이동했다. 산기슭의 민가 열여섯 개가 모인 마을이라고 했다. 펌프카가 이면 도로에 진입하자 도로 좌우로 불길이 일렁였다.

“타이어 눌어붙겠다.”

  경력이 수십 년인 반장조차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진의 얼굴은 불빛이 반사돼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대원들을 태운 펌프카는 거대한 화염 속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수많은 불티가 강한 바람을 타고 파도처럼 도로 위로 쏟아졌다. 도로를 통과하여 마을에 도착했을 때, 숯으로 변한 집 주변에는 내용물을 토해낸 소화기들이 음료수 캔처럼 굴러다녔다. 누군가 축사를 열어놓았는지 불길 반대편으로 하얀 점이 되어 도망가는 돼지들이 보였다. 불이 지나간 자리는 검게 변했다. 지표 온도는 수백 도까지 올라갔다. 터전을 잃은 사람들도 자기 집 땅을 밟을 수 없었다.

  타지 않고 남은 집은 대여섯 남짓이었다. 그마저도 높이가 수십 미터까지 치솟은 불기둥에 휩싸일 터였다. 소방차가 아무리 많아도 서쪽에서 거세게 부는 바람을 타고 넘나드는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원들은 불을 끄기보다는 불이 남쪽으로 내려오는 걸 막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의 팀은 타지 않은 집과 숲을 향해 일제 방수를 시작했다. 벽을 뚫는 압력의 물줄기도 노즐을 빠져나가는 동시에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휘어졌다. 현장은 조명탄을 쏜 것처럼 훤했다. 날아가던 산비둘기들이 바람을 뚫지 못하고 불에 타 낙진처럼 땅으로 떨어졌다. 관창 손잡이를 잡은 유진의 팔에 감각이 무뎌졌다. 펌프카 안에 있는 물을 모두 방수하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펌프카들은 소화전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물을 보충하고 다시 방수하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아무도 따지지 못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영원할 것 같은 불길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산은 불길 대신 흰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산속에서는 더 이상 탈 것이 없어보였다. 머리 위로 헬리콥터가 날아가고 있었다. 어느샌가 동쪽 하늘에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대지가 태양 아래서 드러나고 있었다. 푸르거나 노랗거나 붉었을 나무와 승합차와 농기계들은 모두 진회색의 무기물로 산화되어있었다. 산불은 확실히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유진이 주위를 둘러보니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 몇이 어느샌가 다가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들어가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소방관 몇이 일어나 주의를 주었으나, 그들은 위험을 알지 못했다. 산속에 발을 디딘 사람들의 신발 밑창이 녹거나, 땅에 뱉은 침이 거품을 내며 끓는 것을 보고 나서야 뒤로 발을 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의지는 꺾일 줄 몰랐다. 그들은 소방관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인터뷰에 응한 소방관은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주민의 인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는 말을 쥐어짜듯 뱉어냈다. 그다음 인터뷰에 응한 소방관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말한 소방관의 말을 앵무새처럼 읊는 수준이었다. 그들은 인터뷰를 다 마쳤음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 소방관이 주민이 건넨 빵을 꺼내 먹자 그들의 카메라는 대부분 그쪽으로 향했다. 검게 재가 묻은 얼굴로 허기져서 보잘것없는 것들을 먹는 모습은 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사발면이라도 먹으면 1면에 나겠구만…….”

  반장이 구시렁댔다. 유진은 사람에 대한 기대나 환멸을 느낄 여유가 사라지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 생각했다. 애를 써 그들을 이해하려 할수록 자신이 갉아 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뭐라도 먹어.”

“이따가 식당에서 밥 먹겠습니다.”

  밤새 불을 끄느라 기력이 빠진 상태였지만, 유진은 밥맛이 없었다. 더군다나 굶주린 짐승처럼 먹잇감을 찾는 그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팀장들은 회의를 했다. 회의를 마친 반장은 이쪽에서 철수한다고 말했다. 백여 마리의 가축과 십여 채의 가옥이 불에 탔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는 주민들은 어디 앉거나 눕지 못하고 온종일 서 있었다. 소방차들은 다시 고속도로 위를 올라탔다. 다른 지역에서 온 소방차들과 헤어졌지만 결국 그들을 휴게소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다.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밀렸던 허기가 몰려왔다. 육개장 하나와 김밥 두 줄을 다 먹는 데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유진이 몸담은 팀은 본서로 복귀하자마자 해산하였다. 길었던 그들의 임무도 끝이 났다.

  후각조차 무뎌졌는지 불내가 느껴지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유진은 이날만큼은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예상과 달리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핸드폰에는 밤새 일어난 비상상황 알람과 소집안내, 화재상황에 대한 문자 열 몇 개가 들어와 있었다. 유진은 그 전날처럼 비염약을 먹고 핸드폰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

  한 주 동안은 화재 신고가 들어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고장 신고 두 번, 벌집 제거요청 한 번, 차나 집에서 발생한 고립사고 해결이 다섯 번, 오인 신고로 출동하다 되돌아온 것이 세 번이었다. 소방서에서 대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유진은 강원도의 산불이 모두 진화되고 나서야 진압대원들뿐 아니라 구급대원 몇도 출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 내내 대곤이 보이지 않았으나, 구급팀장에게 어째서 대곤이 보이지 않는지 묻지는 않았다.

  터널에서 구급차에 실려 갔던 사람이 하루 만에 숨졌다고 했다. 유족들이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거나, 이미 대곤을 고발했을 거라는 소문이 있었다. 응급조치가 늦어 피해가 발생했다는 이유였다고 했다. 대곤은 경찰로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경찰에서는 과실을 묻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단지 참고하기 위한 호출이라는 말을 덧붙였다고도 했다.

  유진은 삽관을 쥔 대곤의 손이 떠올랐다. 그 기억을 떨치려고 했지만, 거머리처럼 머리에 들러붙어 잊히지 않았다.

“생각이 많으면 다쳐.”

  반장이 늘 하는 말이었다.

“생각이 없으면 일은 어떻게 해요?”

  유진이 그 말에 처음으로 대꾸한 건 처음이었다.

“그냥.”

  그런 일을 겪는 것은 대곤뿐이 아니라는 말을 붙였다. 유진은 반장이 그 말을 대곤에게 하지 않기를 바랐다.

  유진은 현장으로 출동하는 내내 한기를 느꼈다. 유진의 다리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렸다. 4월, 구조버스에 탄 그들에겐 계절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현장에 도착한 유진은 온몸을 실어 쇠 지렛대를 잠긴 문 틈새로 넣었다. 체중이 실린 힘을 손이 제대로 받아내지 못해 손바닥이 찢어지면서 장갑 틈으로 피가 새 나왔다.

“이 새끼가 정신 놨네. 넌 빠져.”

  반장이 유진의 목덜미를 잡아 뒤로 잡아당겼다. 유진은 아파트의 복도에 나동그라졌다. 반장과 다른 대원 하나가 모터가 달린 장비를 이용해 문을 뜯어냈다. 바닥에 엎어진 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유진은 엎드린 채로 동료들이 대곤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안에서 반장의 고함이 들렸다. 구급차에서 뛰어내린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개방된 문으로 들어갔다. 유진은 반장의 손이 떨리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누군가 호흡기를 가져오라고 했다. 누군가는 기도확보를 해야 한다고 외쳤다.

*

“무엇이 불편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의사가 물었다.

“잠을 잘 못 자요.”

  의사는 지난번과 같은 질문을 했으나 유진의 대답은 같지 않았다. 잠은 예전부터 못 자고 있었다. 의사는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잠을 잘 자는 것은 중요합니다.”

  모든 이가 잠을 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진은 집에 가면 잠이 무엇인지 검색해보자고 생각했다. 의사의 태도는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으며, 유진이 하는 말을 잘 받아서 컴퓨터에 입력했다.

  그러고는 질문했다.

“약을 드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나요?”

  유진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수면제는 아니지만 잠을 자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유진은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을 삼켰다. 유진은 소방서로 출근하는 내내 대곤에 대해 생각했다. 굳이 떠오르는 그런 생각을 억누르지 않았다. 약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끝>


  <당선소감>

   "독자에게 기쁨을 주는 글…오래 쓰고 싶어"

  “선생님께서 응모한 소설 이름이 뭡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멍해지면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지? 빨리 기억해내야 해!’라며 나를 재촉한 끝에, “까…, 까치?” 라고 겨우 내뱉었다.

  당선 전화를 받고 나서도 실감이 나지 않은 채로 퇴근했다.

  마침 또 송년회가 있어 술을 거하게 들이켰고, 집에 들어와 펄쩍펄쩍 뛰는 아내의 축하를 받은 후 잠이 들었다. 그러다 눈이 번쩍 떠졌는데,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 경이었다.

  머리가 아주 아팠기 때문에 옆구리에 붙어서 자고 있는 고양이의 배를 좀 주물렀다. 잠이 깬 고양이가 내 옆구리를 박차고 뛰쳐나간 뒤에야 제대로 된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아,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됐구나.’

  읽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린다. 내게 소설을 한번 써보라고 했던 아내, 사랑하고 감사한다. 그리고 쓸데없이 귀엽기만 한 우리 집 고양이들과 강아지도 고맙다.

  내게 처음으로 소설을 가르쳐주신 김현영 선생님과 한강 문우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생계를 이어가게 해주신 송하경 회장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글을 쓸 때, 벅찬 보람을 느낀다. 쓰고 나면 할 일을 한 것처럼 마음이 가볍다. 독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글을 오래 쓰고 싶다. 소설을 쓸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은 것 같다.

  ● 충북 청주 출생


  <심사평>

  "인물의 심리, 드라이한 문장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

  본심에 올라온 열네 편 작품들은 대체로 다양한 소재와 서술방법을 보여주었다. 안정된 문장과 구성능력, 그리고 소재에 대한 독창적 해석을 중점적으로 살펴 여덟 편을 최종에 남겼다.

  취업준비생을 다룬 ‘맥주 포비아’는 인물의 감정이 너무 앞서 이야기 전개가 어지럽고, ‘수저계급론’은 스토리에 치중해서 실감을 살리지 못했다.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 온 주인공과 코피노의 이야기인 ‘뽑기 한 판 ’은 재치있는 어휘력으로 현실을 비판하지만 확장된 장면 설정과 작가시선이 필요해 보인다. ‘시간교향곡’은 시적표현과 묘사력이 나름 돋보이지만 서사의 부재가 결정적 흠이며, ‘서울뻐꾸기’는 실감은 나지만 평범하고, ‘미정’은 결말이 갑작스러워 미완성 느낌을 준다.

  마지막으로 ‘50번 사물함’과 ‘까치’가 남았다. 격렬한 운동으로 몸을 만드는 데 몰입함으로써 공허감을 메우는 현대인이 모습을 찬찬히 살피는 앞 작품은 투고자의 만만찮은 공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후반부 김씨의 심리와 행동에 설득력이 부족한데다 죽은 이양희의 신상정보가 다소 혼란스럽다.

  당선작 ‘까치’는 소방대원들의 세계를 단막드라마로 보듯 잘 짜인 작품이다. 집중된 장면과 그 장면들을 이어가는 구성력이 돋보이며 긴장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짧고 드라이한 문장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무엇보다 소방대원들을 평범한 개인으로 바라보고 그려내는 작가의 중립감각도 귀중한 작가기질로 보인다. 당선자는 물론 모든 투고자들의 건필을 빈다.

심사위원 : 조갑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