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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하늘을 달리다 / 송우들

  "그럼, 우리 반 멀리뛰기 대표는 유달리로 한다."

  망했다. 완전.

  나는 지난주에 전학을 왔다. 우리학교 체육대회는 2년에 한 번씩 열린다고 한다. 2년에 한번이 하필 내가 전학 온 올해이고, 그 주요경기중 하나인 멀리뛰기 우리 반 대표가 바로 내가 된 것이다.

  선생님이 나를 반대표 선수로 뽑은 이유는 '멀리' '잘' 뛰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우리 반 여자아이들 중에서 키가 제일 크고, 키가 커서 다리가 기니 멀리 잘 뛸 거란 거였다.

  달리기와 농구, 축구는 인기가 높아 지원자가 넘쳐났지만 모두에게 낯설기 만한 멀리뛰기는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 종목에도 끼어 있지 않은 아이는 나뿐이었다. 그러니 이것도 두 번째 이유가 됐다.

  선생님이 처음부터 '유달리 너는 멀리뛰기 대표!' 라고 말한 건 아니다. 분명 내 의견을 물어봤었다. 정말 싫었다면 그때 대답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왜냐고? 순간 나에게 집중된 아이들의 눈빛에서 궁금증과 기대를 느껴서라고 할까? 새로 전학 온 존재감 없는 아이와 멀리뛰기 반대표 사이에는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모인 그 순간, 6학년 경기 1등을 하고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내 모습을, 엘리베이터에 올라 당당하게 꼭대기 층 버튼을 누르고 올라가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달리는 틈나는 대로 운동장에서 연습하면 될 것 같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네."

'네' '네'라니! 대답을 해버렸다. 나의 '네'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의 시선은 다시 앞쪽으로 돌아갔다. 내 앞에 까만 뒤통수들만이 가득해지자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초고속으로 1층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지구의 중력이 두 배쯤 강해져 내 다리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땐 몸의 반쯤이 접혀있었다. 그대로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엄마가 퇴근했을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잠들어있었다. 엄마의 질문이 쏟아졌다. 나는 소파에 엎드려 엄마의 99번째 질문이 빨리 100번으로 넘어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100번이 끝나고 엄마의 마침표가 들렸다.

"에휴."

  이젠 내 얘기를 할 타이밍이다.

"엄마, 나 우리 반 멀리뛰기 대표됐어."

"멀리뛰기? 막 달려가서 모래판으로 날아가는 그 멀리뛰기? 네가 반대표라고?"

  한꺼번에 세 개씩 질문을 하면 어떻게 대답을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엄마의 질문 세 개의 핵심은 나의 달리기 실력과 연결돼있다. 그래. 난 달리기란 달리기는 죄다 꼴찌다. '달리'라는 이름값도 못한다는 소리는 늘 따라다니는 후렴구였다. 딱 두 번 꼴찌가 아니었던 적이 있다. 1학년 운동회 때 손님 찾기 달리기에서 내 봉투에 있던 미션이 결승선을 잡고 있는 6학년 이어서 혼자 열심히 뛰어 1등한 것, 그리고 5명이 뛰다 3명이 넘어져 2등을 한 것…….

  그날 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교실에서 대답한 "네~" "네~" "네~" 소리가 끝없이 들리면서 어딘가로 계속 떨어지는 꿈을 꿨다. 다음날 아침은 중력이 4배쯤 강해진 것 같았다.

D - 30.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하는 건 겁쟁이가 되는 지름길이다. 멀리뛰기는 달리기 실력만으로 하는 건 아니니까 연습을 하면 생각한 것만큼 나쁘진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내 목표는 3위다! 6학년은 모두 다섯 반이니 두 반만 제치면 3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우선 '멀리뛰기'를 검색해봤다.

'일정 거리를 도움닫기한 뒤 발 구름판에서 한 발로 굴러 멀리 뛴 거리를 겨루는 경기종목이다. 고대올림픽에서 육상의 주 종목으로 채택되었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도움닫기와 발 구름·공중자세·착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한 방법이 저 한줄 뿐이라니 말로는 참 간단하고 쉬워 보인다.

  연습만이 살길이다. 그런데 운동장에 아이들이 너무 많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이 필요했다.

  저녁을 먹고 다시 학교 운동장에 갔다. 해가 길어져 아직 운동장은 밝았다. 비장하게 운동화 끈을 조여 신고, 모래밭에서 30m쯤 떨어진 곳에 섰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용수철처럼 달려 나갔다. 모래밭 앞 발 구름판을 딛고 유튜브에서 본 영상을 떠올리며 점프를 하고 착지했다. 나의 첫 멀리뛰기였다. 감았던 눈을 뜨고 나의 도착점을 봤다. 1m도 안 되는 거리였다. 망했다. 완전.

  뛰고 또 뛰었지만 내 기록은 1cm도 나아지지 않았다. 뒤로 갈수록 다리가 풀려 모래밭에 넘어지기까지 했다.

  울고 싶은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흙투성이에 무릎까지 까진 내 꼴을 보고 엄마는 놀란 표정이었다. 질문 폭탄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그냥 나를 안아주었다.

"다시 새 학교에 적응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앞에선 내 마음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는 것 만 같다. 6학년부터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샤워를 하고 누워서 우영이한테 전화를 하려다 말았다. 우영이랑 친해진지 반년도 안됐을 때 이번 학교로 전학 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다. 나는 무릎에 붙인 밴드만 만지작거리다 잠이 들었다.

D - 20

  텅 빈 운동장을 기대하고 학교로 갔는데 누군가 모래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빨랐다. 바람처럼 달리던 그 아이는 구름판을 딛고 날아올랐다. 가슴을 내밀고 하늘을 달리더니 다시 몸을 접어 미끄러지듯 내려앉았다. 유튜브에서 봤던 칼루이스의 멀리뛰기 모습이 떠올랐다. 하늘을 달리는 사람을 눈앞에서 보다니.

"체육대회? 연습하러 온 거야?"

  그 애가 먼저 말했다. 박수라도 칠 것 같은 표정으로 서있는 나를 못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 어?"

  내가 연습하러 온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 애가 말했다.

"난 다 했으니까 너 뛰어도 돼."

  나는 그 애가 완전히 운동장을 떠날 때까지 쭈그려 앉아 운동화 끈을 고쳐 맸다. 하늘을 달리는 자 앞에서 콩! 하고 뛸 수는 없었다. 쭈그려 앉아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었더니 머리에 피가 몰리는 기분이었다.

D - 17

  전학 온 지 얼마 안 되는 내가 다른 반 아이, 그것도 남자애에 대한 정보를 얻는 건 힘든 일이다. 내가 아는 정보라고는 멀리뛰기를 잘 하는 아이. 하늘을 달리는 것처럼 잘 하는 아이라는 것뿐이었다.

"달리야. 연습은 잘 되니?"

  농구경기에 나가는 여자아이들이 한참 수다를 떨다가 체육대회에 멀리뛰기라는 종목도 있었지?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응. 그럭저럭."

  내 대답은 그렇게 궁금하지 않은 것 같았다. 농구팀은 다시 자기들의 동그란 작전타임 수다를 이어갔다.

"얘들아. 참! 1반에 이정우 멀리뛰기 하는 거 봤어?"

"그 우리 시 육상대표라는 애? 장난 아니라며?"

"그래. 걔 요즘은 가끔 학교 운동장에서 연습한다잖아. 거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다는데?"

"진짜? 언제 연습한대?"

"글쎄. 원래는 전국체전 준비하느라 시민운동장에서 연습하는데 올해는 학교 체육대회 때 참가하려고 가끔 학교운동장에서 연습한다나봐"

  농구팀의 다양한 관심사 덕분에 내가 궁금해 하던 정보를 한꺼번에 얻게 됐다. 체육대회에서 농구팀을 열심히 응원해야겠다. D - 12

  농구팀의 정보에서 가장 정확하지 않은 대목이 '가끔'이었다. 그 '가끔'중 한번이 내가 그날 이정우를 봤던 날인 것이다. 며칠째 그날과 비슷한 시간에 운동장에 나왔지만 이정우는 보이지 않았다. 이정우를 만난다고 '내 형편없는 실력을 확 올릴 수 있도록 방법 좀 알려주겠니?'라든가, '넌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하늘에서 달릴 수 있어?' 라고 물어볼 수 있을까?

  그 '가끔'을 찾아야 할 이유에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다시 비장하게 출발선에 선 다음 달렸다.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도움닫기와 발 구름, 공중자세, 착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이 한 줄을 되뇌며 발 구름을 하려는 순간. 이정우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를 똑바로 보면서. 이럴 수가! 공중자세로 연결돼야 하는데……. 난 모래판에 보기 좋게 엎어져버렸다. 이대로 땅을 파고 들어가 버리고 싶었다. 이정우가 큰소리로 비웃는다면 난 죽을 때까지 저주를 퍼부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보니 이정우가 없었다. 혹시 내가 엎어지는 꼴을 못 봤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0.1초쯤 했을 때였다.

"도움닫기 속도가 너무 느려. 위로만 높이 뛰니까 스피드가 안 나지."

  정확하게 다 본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리고 확인사살까지 했다.

"너 발구를 때 딴 생각했냐?"

  다시 내 머릿속이 훤하게 드러나면 안 된다. 머릿속 유리창에 커튼을 치고 최대한 무표정하게 말했다.

"너 때문이잖아.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니까 집중을 못했잖아!"

  볼륨조절에 실패했다. 내 생각보다 목소리가 너무 컸다. 배에 묻어있던 모래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래? 미안......"

  예상하지 못한 이정우의 대답에 또다시 볼륨조절에 실패했다.

"지금 연습할거야?"

  물어보는 말이었는데 따지는 말이 됐다.

"너 연습 더 해도 돼. 난 시민운동장으로 가도되니까......"

"아니. 가……. 가지마!"

  이정우도 나도 놀라서 서로 멀뚱멀뚱 쳐다봤다. 머릿속에도 모래가 들어간 건지 말을 할수록 문제였다.

" 저번에 너 뛰는 거 봤어. 나 좀 가르쳐주면 안 돼?"

  차라리 솔직한 게 제일 멀쩡한 말이 됐다.

"그래!"

  이번에도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D-10

"호흡이 중요해. 난 땅이랑 호흡을 맞춘다고 생각하면서 뛰어. 그러면 땅이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 들어. 그리곤 땅이 나를 밀어준다는 느낌이 들 때 발을 구르고 뛰어오르는 거야. 머뭇거리지 말고 한번에!"

  역시 하늘은 아무나 달리는 게 아니다. 이정우는 멀리뛰기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한 거지만 도무지 땅과 나 사이에 호흡이라는 게 생길 것 같지 않았다. 나를 밀어주기는커녕 잡아당기는 것만 같으니 말이다. 이틀 동안 포기하지 않고 가르쳐주는 이정우가 고마울 뿐이다.

"잘 봐."

  이정우가 달린다. 정말 달릴 때 땅에서 소리가 났다. "싹-싹-싹-" 저게 호흡이란 걸까? 달릴 때의 이정우는 전혀 다른 표정이 된다. 순둥이 같은 표정은 사라지고 초원을 달리는 치타처럼 매서운 표정이 된다. 자기가 뛰어오를 모래판 위 공간만 보이는 것 같은 눈빛이다. 무언가 단단한 표정이었다.

"야! 이정우! 너 여기서 뭐해!"

  시청 추리닝을 입은 남자애가 나타나 정우를 불렀다.

"코치가 너 잡아오래. 자꾸 없어지더니 여기 있는 거였어? 시립운동장 놔두고 왜 여기서 뛰고 있냐? 학교 체육대회는 그때 와서 감만 익히면 된다며?"

  체육대회 연습 때문에 계속 오는 게 아니었다고? 그럼…….

"야. 알았다. 가자 가."

  정우가 추리닝의 입을 막으면서 끌고 갔다.

D - 7

  내일은 6학년 전체가 소풍을 가는 날이다. 전학생이 제일 힘들 때가 바로 이런 날이다. 짝이 필요한 날, 팀이 필요한 날.

  저학년 때야 번호별로 짝을 지어서 다니지만 고학년들은 단짝이랑 다니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버스에서 같이 앉고, 같이 돌아다니고, 점심을 같이 먹을 '단짝'말이다.

  나는 6학년이 될 때까지 거의 해마다 전학을 다녔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선 엄마의 직업이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바뀌는 학교에서 새로운 단짝을 만들어야 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처음엔 많이 노력했지만 점점 지쳐갔다. 고학년이 될수록 아이들은 각자의 울타리가 생긴 것 같았다. 울타리 밖에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 아이들의 시선도 혼자 있는 친구보다는 울타리 안의 친구들을 향해 있었다.

"엄마. 나 그냥 김밥집에서 포장해갈게"

"아니야. 엄마가 예쁘게 도시락 싸줄게"

  전학을 하고 첫 소풍이 다가오면 엄마도 나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은 눈치다. 역시 엄마 앞에선 내 마음을 숨길 수 없는 걸까.

"그럼 2개 더 싸주면 안 돼?"

"왜? 누구 주려고?"

"아니……. 소풍 다녀와서 오후에 연습할거거든. 그때 배고플 거 같아서"

  거짓말이 보일까봐 뒤돌아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D - 6

  예상대로 불편하고 재미없는 소풍이었다. 선생님은 나를 챙겨주라며 주연이와 짝을 지어주셨다. 주연이는 농구팀 아이들과 같이 다니지 못해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내 입장도 편할 리는 없었다. 버스에서도 주연이의 신경은 온통 농구팀에 가있었다. 주연이가 나쁜 아니라는 건 아니다. 팀이 있다는 건 든든하니까. 그 든든한 팀을 잃을까봐 불안한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자는 척을 했다. 주연이는 몸을 완전히 돌려 뒷자리의 농구팀 아이들과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난 역시 호흡을 맞추는 게 힘들다.

  소풍을 마치고 집에 들렀다 다시 학교 운동장으로 가는 길은 설레기까지 했다. 한손에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 가방 두개가, 한손에는 물병이 있었다.

  운동장에 들어서니 정우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 뻔 했다. 양손에 짐이 있길 다행이었다.

  정우는 오늘 소풍에 가지 않았다. 시 대표 선수인 정우는 학교 오전 수업만 듣고 운동을 하러 간다. 소풍 같은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해온 정우가 소풍도시락을 먹어본 적이 없을 것 같았다. 농구팀 아이들의 말로는 정우가 장학금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정우네 집은 시의 외곽에 있는 시골이라 정우 혼자 시청 소속의 기숙사에서 지낸다고도 했다.

  정우와 나는 멀리뛰기 말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뭐라고 하면서 도시락을 꺼내야 할 지 한참을 고민했는데 정우가 먼저 물었다.

"그거 도시락이야?"

"으응…… 오늘 연습하기 전에 먹으려고…… 너도 먹을래?"

"정말? 내 것도 있어?"

  정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도시락을 반가워했다. 우리는 스탠드에 앉아 도시락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엄마의 도시락은 내 예상을 빗나간 것이었다. 평범한 김밥도시락이 아니었다. 볶음밥위엔 완두콩이 하트모양으로 콕콕콕 수놓아져있었다. 옆쪽의 치킨 너겟 마저 하트, 오렌지에 꽂힌 작은 꽂이 손잡이마저 하트모양이었다. 예쁜 도시락을 싸주겠다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리 뚜껑을 열어봤어야 하는 건데……. 정우는 이 하트 투성이 도시락을 어떻게 생각할까? 슬쩍 옆을 보니 정우가 빨개진 얼굴로 우걱우걱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둘 다 빨개진 얼굴로 도시락만 먹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이 분위기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습할까?"

"그래."

  우리는 여전히 빨간 얼굴로 운동장을 달렸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있었다.

  공기에도 연둣빛이 묻어날 것만 같은 5월이었다. 운동장을 둘러싼 나무사이를 통과한 바람이 나무의 기운까지 담아 내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상쾌했다. 정우랑 함께 달려서였을까? 정말 땅이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서 떠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속도를 내어 구름판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평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점프하는 순간 나를 둘러싼 공기만이 느껴졌다. 나만을 위한 순간 같았다. 아무 것도 없었지만 아무 것도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모래 위로 미끄러지듯 착지했다.

"야 유달리 멋지다! 최고기록이야!"

  정우가 옆에 있어서 좋았다.

D-day &

  나는 지금 도움닫기 중이다.

  발 구름 지점을 생각하면 조금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숨을 모으고 나를 믿어야 한다. 내가 하늘을 달릴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가슴을 열고 뛰어 올라야 한다. 머뭇거리지 말고 한번에!

  엄마의 응원소리가 들린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들린다.

  나는 하늘을 달린다.

〈끝〉


  <당선소감>

   "열심히 쓰겠습니다"

  어린 시절, 여러 번의 전학을 경험했습니다. 새로운 학교에서의 자기소개는 몇 번을 경험해도 두려웠습니다. 간신히 용기를 내어 이름을 말해도 한동안 그 이름을 불러주는 친구는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선생님이 제 이름을 정확히 불러줄 때쯤에야 등굣길의 긴장감이 옅어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친구와 장난을 치고,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는 것 모두 이름이 불려 진 다음에야 할 수 있었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신나게 말입니다.

  당선 전화의 처음은 제 이름을 확인받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이 불려 진다는 것의 기쁨과 안도를 다시 느낄 수 있는 전화였습니다. 막막한 두려움이 옅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용기를 내어 손을 들고, 운동장을 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열심히 바라보고 듣겠습니다.

  어딘가에서 자기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는 어린이들을 찾아 또박또박 그 이름을 불러주어야겠다 다짐해봅니다. 함께 놀며 응원해 줄 수 있는 작가가 될 때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에 손 내밀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감사를 기억하겠습니다.

  저의 첫 번째 독자이자 이야기 친구인 딸 박채윤, 아들 박재현, 그리고 남편 박준형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늘 제가 가진 것보다 큰 것을 보아주시는 아빠와 엄마, 가족들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저의 모든 원고를 함께 읽고 격려해준 '오도독' 글벗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당신들 옆에 있어서 제가 좀 더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 상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수료. 
  ●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학교 수료.


  <심사평>

  "재미를 타고 가는 동화 속의 의미와 가치

  동화의 중심 독자인 초등학교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내일이 아니고 오늘이다. 거기도 저기도 아니고 여기다. 의미나 가치보다는 재미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육목표가 '기본생활습관 형성'이고 독서도 습관 기르기가 목표다. 습관은 반복에서 생겨나고, 반복은 재미가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동화에서 의미나 가치는 재미에 담겨야하고, 지금 여기에 내일을 숨겨두어야 한다.

  이러한 아이들의 눈길을 붙잡아 둘만한 작품들이 여러 편 보여서 반가웠다. 그 가운데서 마지막까지 읽고 또 읽었던 작품을 들어본다. 김민영 씨의 '엄마 없이 마트에'는 일곱 살 아이가 마트 심부름 과제를 가지고 세상으로 첫발을 내딛는 이야기이다. 뒤따르는 엄마를 의식하면서도 혼자인척 겪는 일들이 무척 재미있게 펼쳐지고, 일곱 살 아이의 마음을 담은 독백 같은 문장이 돋보이지만 '대화', '질문', '구입' 같은 낱말들은 문장에 덜 어울린다. 강아지를 만나는 설정 또한 굳이 필요했나 싶다.

  김성복 씨의 '마음의 저울'은 마음을 재는 저울 때문에 벌어지는 고학년 교실 이야기다. 호기심과 긴장감이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간다. 꼬여버린 문제 해결을 위해 저울을 모래밭에 묻어버리는 결말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공윤경 씨의 '가짜 배꼽'은 입양한 아이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부터 혼란을 겪지만 부모의 장난스럽기까지 한 탯줄 놀이로 다시 태어난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무거운 주제에 비해 이야기는 놀라우리만큼 잔잔하고 태연스럽게 진행 된다. 그러나 파도의 높낮이도 생각해볼 일이다. 이야기 흐름의 시점도 헷갈리는 곳이 있다.

  김지민 씨의 '보호 받던 슈퍼맨'은 늘 보호를 받던 장애를 가진 주인공을 도움을 주는 자리로 서게 하는 이야기다. 특별한 사건이 아닌 '사과 자루 들어주기', '팔씨름'으로 반전을 시키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인다. 이야기로 봐서 윤빈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윤빈이네 아줌마', '한 손으로 짊어진', '선생님 손에는 책들이 잔뜩 쌓여', '문자에∽쓰여 있었다.' 와 같이 잘못 된 표현들이 더러 보인다.

  장혜진 씨의 '기억을 모으는 아이'는 엄마를 기억하기 위해서 보육원에서 살아가는 모든 기억을 모아가는 아이의 이야기가 짠하고 감동이다. 마지막까지 저울질하던 작품이다. 그런데 문제는 갓 태어난 오리에게 우유가 든 젖병을 물린다는 대목이다. 포유류가 아닌 오리에게 우유를 먹일 수는 있을지 모르나 보편적이지 않는 일이다. 동화에서 동식물의 삶이나 생태를 그릴 때는 정확해야 한다.

  송우들(본명 송선금)씨의 '하늘을 달리다'를 최종 당선작으로 뽑았다. 전학 온 아이가 학교체육대회 멀리뛰기 선수로 뽑히면서부터 시작되는 문제와 그 극복 과정이 6학년 아이의 심리 발달단계에 맞게 그려져 감동을 준다. 마무리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산뜻하고 멋지다. 그런데 작가는 들여쓰기와 띄어쓰기를 소홀하게 하고 있다. 또 대화체에서 '2개 더 싸주면 안 돼?'에서 '2개'를 '두 개'로 고쳐야하고, 'D –며칠' 식으로 쓴 것도 '며칠 앞'으로 '시선'도 '눈길'로 와 같이 우리말을 살려 쓰려는 노력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이런 글이라면 고학년 아이들이 지긋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즐겨 읽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기쁜 마음으로 뽑았다.

 

심사위원 : 윤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