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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여덟 시에 만나 / 차혜련

  복이가 또 사라졌다. 이건 분명히 엄마 짓이다.

  여덟 시. 늦은 시간이지만 나는 복이를 찾으러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집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상관없다. 며칠째 집에 있는 쓰레기통과 벽장 속을 샅샅이 뒤졌지만 복이는 안보였다. 엄마가 밖에다 내 버린 게 분명했다.

“오학년이나 됐으면 인형은 그만 가지고 놀아야지?”

  엄마가 잔소리를 할 때마다 나는 못들은 척 했다. 일을 너무 사랑하는 엄마는 하나뿐인 아들이 혼자서도 잘 지낼 거라 믿는다. 엄마는 아들이 다 큰 줄 알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복이 없이는 잠을 못 잔다.

“이번엔 놀이터에서부터 찾기로 하자.”

  아파트 정문을 나섰다. 밖으로 나가는 길을 따라 나무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옅은 분홍색 꽃들이 환하게 피어올라 주변이 포근해 보였다.

  복이가 생각났다. 친구들이 나만 빼고 자전거를 타러 갔을 때도, 늘 혼자 보내던 주말에도 언제나 내 옆을 지켜줬었는데…. 복이의 오동통한 엉덩이를 톡톡 치고 꼭 안으면 얼마나 포근했는지 모른다. 훅-하고 따뜻한 바람이 불었지만 내 마음은 허전했다.

“돼지인형. 아직도 못 찾았어?”

  혼자 그네에 앉아 있던 수아가 반갑게 말을 걸었다. 복이를 찾으러 나갈 때마다 마주치곤 했던 아이다. 하지만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리면서 보기만하면 반말이었다.

“또 너냐?”

  나는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 애의 팔과 목덜미에 까만 멍이 보여서다.

“이번엔 누가 그랬어?”

“좀비이!”

  맙소사. 좀비라니. 저번엔 우연히 만난 외계인과 달리기를 했는데 종아리에 검은 얼룩이 생겼다고 했었다. 놀이터 근처, 한강 시민공원까지 뛰었는데 자기가 먼저 도착했다나? 수아는 우리 집 앞에 있는 공원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밤늦게까지 노는 애다. 그네나 미끄럼틀에서 놀다가 부딪쳐 다친 걸로 거짓말을 하는 게 뻔하다.

  나는 적당히 대꾸했다.

“그래… 너도 좀비가 안 되려면 해독제를 구하거나 맞서 싸워야겠지.”

“진짜라니까아. 비밀인데 우리 동네에 좀비가 살아. 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좀비를 인간으로 만들려는 중이고오!”

  수아가 턱을 치켜들며 자랑스레 말했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가 찰랑거렸다.

“그래, 열심히 하셔.”

  나는 듣는 둥 마는 둥하고 놀이터를 나왔다. 동네를 여러 번 돌며 복이를 찾았지만 헛고생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놀이터에 불량해 보이는 남자애, 여자애들이 우르르 몰려 서 있었다. 시비가 붙은 것처럼 보였는데 얼핏 보니 그 가운데 수아가 있었다.

“야야, 괜찮아. 쟤네 부모들은 집에 거의 안 들어와.”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껄렁거리며 말했다. 그러더니 주먹으로 수아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나는 가슴이 덜컥했지만 멀찍이 서서 말릴까 말까 망설였다. 그 사이 옆에 다른 여자아이들도 번갈아 가며 발로 차는 시늉을 했다.

  수아와 눈이 마주쳤다. 간절하게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싸움에 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모른척하고 집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등 뒤에서 앙칼지게 쏘아붙이는 수아의 목소리가 얼핏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불량해 보이는 여자애들 무리가 움찔해서 한마디씩 하며 흩어지고 있었다.

“쟤 진짜 기분 나빠. 좀비가 내 머리를 뜯어먹을 거래.”

“사차원 아니냐? 좀비는 무슨 좀비.”

“쟤네 엄마, 아빠가 게임 폐인라던데? 동네에서 유명하잖아.”

“그 부모에 그 딸이네. 아하하하.”

  나는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복이가 없어서였지 수아가 신경 쓰여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들었던 말들이 자꾸 맴돌았다.

  다음 날 저녁, 복이를 찾으러 나갔던 나는 놀이터에서 수아와 또 마주쳤다. 그 애는 잔뜩 화가 나 있었는데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었다.

“아직도 돼지인형은 못 찾은 거지? 잘됐다.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올 걸? 며칠 전에 주워서 내가 가지고 있거든!”

“뭐야. 당장 내놔.”

  어이가 없었다. 어제 일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내가 복이를 애타게 찾는 걸 보고도 지금까지 모른 척하고 있었다고?

  수아는 그네에서 발을 한 번 굴렀다. 포물선을 그리며 그네가 끼익-끼익-위아래로 움직이다가 멈췄다. 씩씩거리며 화를 참고 있는 나에게 수아가 새침하게 말했다.

“그냥은 안 돼. 조건이 있어. 내일 놀이터에서 여덟 시에 만나! 나오면 돼지인형 돌려줄게.”

“만나서 뭐 할 건데?”

“비밀이야.”

  그 애는 여우처럼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다음 날 나는 할 수 없이 놀이터에서 수아를 만났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한강 시민공원까지 걸었다. 발 밑에서 철렁거리는 강물은 다리에서 비춘 조명에 반사돼 검붉게 보였다. 나는 왠지 멋쩍어서 수아와 약간 떨어져 앉았다.

“이제 말해. 왜 부른 거야?”

“도와달라고. 난 너 같은 지원군이 필요하거든. 내 이야기를 믿어주잖아? 어제는 좀비가 내 목을 깨물려고 했어. 볼래?”

“아니.”

  나는 돼지인형만 도로 받아 가면 그만이었다. 내 말을 못 들었는지 수아는 보란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저께는 내 팔목을 뒤로 꺾으려고도 했어. 좀비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바보들이거든. 겨우 뿌리쳤지만 힘이 엄청 세. 맞서 싸우고 있지만 잘못하면 나도 좀비로 변할지도 몰라.”

  수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그 애의 목주변이 강물처럼 시커멓게 보였다. 그리고 보니 팔목도 같은 색으로 얼룩져있었다. 맞아서 생긴 멍 자국처럼 보였다.

  나는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일부러 너스레를 떨었다.

“혹시 그 불량스런 애들이 그런 거야? 나 말고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려. 좀비 떼들이 몰려와서 나를 먹어 치우려고 해요. 도와줘요. 하고 말이야.”



  내 말을 들은 수아가 비쭉 웃었다.

“내가 없어져도 우리 엄마랑 아빠는 모를걸?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쁘걸랑. 우리 동네에 진짜 좀비들이 들어와서 나쁜 짓을 꾸미고 있어. 사람들에게 좀비가 되는 균을 옮기려고 하니까 좀비를 없애기 위해서 날 좀 도와줘. 내가 만만한 애는 아니지만 혼자서는 힘들거든.”

  수아는 이 위험한 상황에서 동네를 구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했다. 좀비를 만나면 농담을 하고 고민도 들어주며 가까워지는 거다. 그 다음엔 간식도 같이 먹고 유치하지만 술래잡기 같은 놀이를 하다 보면, 점점 사람으로 되돌아 올 거라고 했다.

“좀비들은 보통 떼로 몰려다녀서 친구가 되기 힘들어. 늦은 시간에 강가에서 어슬렁거리는 놈을 하나씩 먼저 잡아 말을 걸어야 해.”

  난 수아의 말을 듣다가 피식 웃었다.

“친해진 좀비들은 좀 있어?”

“아직은 없어. 하지만 애는 쓰고 있으니까 언젠가….”

  수아는 시계를 꺼내보더니 큰 결심을 한 듯 말했다.

“적들이 나타날 때야. 이거 입어. 처음엔 좀 사납거든.”

  수아는 배낭에서 비밀병기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보기엔 그냥 테이프로 얼기설기 서로 붙여놓은 조잡한 비닐봉지들과 신문이었다. 유치원에서 꼬마들이 미술시간에 만든 엉성한 갑옷 같았다.

“팔 다리에 하나씩 끼워. 혹시 물려도 균에 감염은 되지 않을 거야.”

  수아는 진지하게 말했다. 놀이터에서 혼자 있을 때와 달리 당당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쪽 팔에 비닐갑옷을 넣었지만 금세 북- 찢어졌다. 소매 끝에서 덜렁거리는 테이프로 겨우 찢어진 곳을 덧붙였지만 슬쩍만 움직여도 팔꿈치가 나왔다.

  기다리다가 지루해지면 철봉이 있는 쉼터에서 오래 매달리기 내기를 하거나 라면을 사먹기도 했다. 사실은 집에 혼자 있는 것 보다 수아랑 좀비를 뒤쫓는 편이 훨씬 즐거웠다.

  가로등이 하나 둘 켜졌다. 좀비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운이 빠졌다.

“가야겠다. 너도 집에 가야지.”

  내 말에 수아는 얼굴을 찡그렸다.

“좀만 더 기다려. 어제 우연히 만난 좀비 둘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어. 긴장하고 있어야 해.”

“시간이 너무 늦었잖아. 엄마가 집에 왔을지도 몰라. 이제 복이 돌려주라.”

  난 두 손을 붙이고 턱 앞으로 쭉 내밀었다.

“안 돼. 아직 좀비랑 만나지도 못했잖아. 게다가 급히 나오느라 복이를 가져오는 걸 깜빡 잊었어.”

  수아는 왠지 당황한 것처럼 다급하게 말했다.

“어?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 너랑 했던 약속은 분명히 지켰어.”

  나는 잔뜩 실망했지만 복이를 가지고 있는 쪽은 수아였다.

“걱정 마. 내일은 복이를 꼭 받을 수 있을 거야! 여덟 시에 만나!”

  그 뒤로 일주일이 더 지났다.

“아 맞다. 돼지인형 챙겨오는 걸 또 까먹었어. 내일 꼭 줄게. 그래도 괜찮지?…”

  이번에도 핑계를 대는 수아를 보니 누군가가 생각났다. 엄마는 작년에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나와 약속을 지킨 적이 거의 없다. 그럴 때마다 힘들게 잡은 직장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며 변명을 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거짓말. 복이가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해야지! 거짓말은 그만 좀 해. 너도 우리 엄마랑 똑같아. 내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수아에게 악을 쓰며 화를 터뜨렸다.

“…….”

  수아는 귀까지 새빨개졌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배낭을 만지작거리더니 돼지인형을 꺼냈다. 일주일 넘게 밖에 있었던 복이는 쭈글쭈글했다. 쿰쿰한 냄새도 나고 반쯤 젖었지만 내가 찾던 복이는 그대로였다. 나는 수아에게 복이를 빼앗아 들고 꼭 껴안았다.

“처음부터 배낭에 넣고 다녔던 거야?”

“아냐. 사실은… 어제 겨우 복이를 찾았어. 그 동안 매일 동네 재활용 수거함을 하나도 안 빼놓고 다 뒤졌어. 너한테 돼지인형을 찾아주고 싶었거든.”

  수아가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눈가가 점점 벌개졌다. 눈물이 맺혔다. 어깨가 흔들리도록 울음을 참는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바보야. 울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라고….’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했다. 밤 아홉시. 전화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수아도 이 시간에 엄마가 없는 걸까?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그래, 내가 복이를 오래 가지고 있긴 했다. 언제나 내 마음을 달래줬던 돼지인형 복이, 나보다 수아에게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너 줄까?”

  수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복이를 도로 받아서 배낭에 다시 넣었다.

  강바람이 불었다. 양 갈래로 따서 묶은 수아의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목덜미에 누런 멍이 보였다. 이제 보니 색깔이 옅어졌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함께 했던 길을 도로 걸어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헤어질 때 수아가 했던 말이 머리에 자꾸 맴돌았다.

“고마워. 그 동안 같이 놀아줘서 외롭지 않았어. 복이는 내가 잘 돌볼게. 사실 엄마 아빠가 여덟 시면 피씨방에서 돌아와서 툭하면 화풀이로 나를 때렸어. 매를 피하려면 밤마다 밖에 나오는 수밖에 없었어.”

  수아는 수도 없이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더 이상 모른척하면 안 된다. 꾹꾹 눌러놓기만 했던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더 늦기 전에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선소감>

   "서툴고 겁 많고 느린 아이들 어루만지는 글 쓸게요"

  동화가 좋아서 무작정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배짱으로 시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알았다면 시작할 마음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동화를 읽고 책장을 덮을 때마다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내 속에 있던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달라며 졸랐습니다. 하지만 밖으로 어떻게 끄집어내야 할지 몰라서 막막했습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쓰는 일이 놀랄 만큼 어려웠습니다.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움츠러들었습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매번 속이 텅 빈 제 글들을 보면 몹시 슬펐습니다. 의욕만 앞서서 달려들었지만 투고할 만큼 제대로 맺은 글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겨울에는 그만 마음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안 되는구나. 재능 있는 사람들과 온 힘을 다해 글을 쓰는 습작생들이 별처럼 많은데… 다 내 욕심이었던 거야.’

  그런데 이번엔 동화가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당선전화를 받고 실감이 안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당선소감에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아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기쁩니다. 부끄러워서 어디에도 마음 편히 낼 수 없던 글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두렵고 설렙니다.

  거칠고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정진하라는 뜻으로 알고 성실하게 쓰겠습니다. 저는 자기표현을 못하는 내성적인 아이들에게 눈이 갑니다. 매사 서툴고 겁이 많고 느린 아이들, 삶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마음이 갑니다. 저도 어릴 때 그런 시기를 겪었으니까요.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정해왕 선생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저를 묵묵히 지지해준 가족들과 친구들, 남편 김재우 님과 아들 김상윤 군 사랑합니다. 힘들 때마다 서로 위로하며 울고 웃었던 소중한 글벗들도 잊지 않겠습니다. 세상에 있는 동화작가님들을 존경합니다. 어렵고 값진 길을 함께 걷게 되어 영광입니다.

 

  ● 1974년 서울 출생 
  ●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과 졸업


  <심사평>

  "어린이의 상처를 전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믿음직

  320여 편의 응모작은 노키즈존, 가정폭력 등 2020년의 현실을 비추었다. 그럼에도 참신한 글은 드물었다. 주로 가족과 친구를 다루었는데 무신경한 혐오와 훈계의 강박, 정서적 소비에 불과한 진단 없는 희망을 나열하는 글이 많았다. 한편 어떤 글은 독특한 기백이 있어서 작가가 궁금했다. 완성도 때문에 미리 내려놓았지만 심사위원들은 당신의 작품을 응원했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읽기의 리듬을 살려서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바란다.

  ‘언 손’은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던 아이의 실종과 그 집에서 확인하게 된 실체의 섬뜩함이 잘 드러난 이야기다. 어린이의 시선이 주체가 된 공포 서사의 가능성이 보였다. 그러나 어린이 화자에게 지워진 심리적 부담이 타당한지 고민스러웠고 소제목 구성은 몰입을 방해했다. ‘조용한 강태풍’은 아이에게 ‘조용히’라는 칩을 시술하는 미래를 그린 SF다. 버려지는 어린이와 로봇 양육자라는 설정은 흥미로웠으나 인물의 내적 갈등이 빈약했다. ‘괜히 고백했어’는 모처럼 눈에 띄는 사랑이야기였다. 좋아하는 마음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고백하는 장호와 그 고백에 당황하는 두걸, 엇갈린 삼각관계 속의 수애가 유쾌하게 그려졌다. 감정에 솔직한 어린이들은 조금도 희화화되지 않았고 서로의 마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건강했다. 다만 좀 더 입체적인 사건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귀신개’는 몇몇 문장이 불안정하지만 귀신개의 진위 여부를 밝히기보다 독자가 주인공과 함께 저수지에 들어간 것 같은 생생한 경험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문학적 역량이 엿보였다.

  ‘여덟 시에 만나’는 양육자가 있어도 늘 외로운 아이와 가정 폭력을 피해 뛰쳐나온 아이의 우정을 다뤘다. 양육자는 그들의 일상을 지켜주지 못하지만 그 상황을 어린이다운 방식으로 회복해가는 두 아이의 노력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특히 수아의 캐릭터는 단편이 해내기 힘든 밀도를 가졌다. 표현에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으나 어린이의 상처를 전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작가가 믿음직하다고 여겨져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전화를 거는 주인공의 떨리는 손을 끝까지 잊지 말기 바란다. 낯설 정도로 과감한,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존중이 필요한 시대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불어 이러한 요청을 이해하고 분투하며 동화를 쓰는 많은 여러분들의 건필을 응원한다.

 

심사위원 : 김지은, 최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