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한라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은자의 나라 / 오미향
<당선작>
은자의 나라 / 오미향
"젊은 놈이 그리 정신없어 으짤끼고…… 깜빡할끼 따로 있지"
나의 청각이 목소리의 진원지를 잡아낸다. 툴툴대는 은자가 있는 곳은 주방 어디쯤이다. 은자가 계속 투덜거린다. 음식을 내기에 급급한 상황인데도 은자의 입은 쉴 줄 모른다. 나는 툴툴거리는 은자를 무시한 채 밥을 먹는다. 금방 끝날 투덜거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이것은 습관이다. 뭐 하나만 잡으면, 사건의 대소를 불문하고 잔사설을 늘어놓는 이것은 고질병이다.
어제 아침 화장실 바닥 공사를 했다. 공사라고 해 봐야, 타일이 떨어져 나가 생긴 대야만한 웅덩이를 메우는 일이었다. 김씨가 맡고 있는 공사만 끝내면 그만한 재료는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시간을 두고 기다린다면 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가능한 공사였다. 그런데도 공사를 강행한 것은 동수 때문이었다. 동수는 은자의 아홉 살 난 아들이다. 동수는 틈만 나면 웅덩이를 찾았다. 웅덩이에는 항상 시커먼 물이 고여 있었다. 웅덩이 바닥 시멘트가 부서지면서 그 안에 있던 흙이 물과 섞이기 때문이었다. 나날이 커지는 웅덩이가 신기한지 처음엔 들여다보기만 하던 동수가 흙들이 쌓여가자 저도 모르게 손이 간 모양이었다. 은자는 임시방편으로 그 위에 널빤지를 덮어 놓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래서 서두른 것이었다.
은자는 당분간 식당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했다. 김씨는 타일이 완전히 붙는데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화장실을 사용해 버린 것이다. 밤새 마신 술 때문에 나의 몸이 습관적으로 저지른 사고였다. 은자는 이 일을 두고두고 거론할 것이 분명했다. 혹, 공사를 다시 해야 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면. 내가 내민 공사비도 받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이어질 잔사설.
"이 판국에 밥이 넘어가나?"
식사 중이던 손님 몇이 이쪽을 힐끔거린다. 요리를 하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는 은자의 잔소리 때문이다. 나는 그런 프로그램이 내장 된 로봇일지 모른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문득 한다.
"거기 물을 부어 버리믄 어쩌잔 말이고…… 내 맻번 얘기했노? 저거 마를 동안은 식당 화장실 쓰라꼬…… 다시 해야 할끼다…… 돈 아까워 어쩔끼고……"
한차례 손님들이 빠져 나간 식당은 한산하다. 식탁마다 그릇이며 휴지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은자는 주방 뒷정리를 하느라 부산하다. 그때, 식당 문이 열리며 김씨가 들어오고, 곧 김씨각시가 종종거리며 따라 들어온다. 김씨각시의 손에는 대접만한 옹기가 들려있다. 내용물이 뭔지 괜한 호기심이 생겨 내 눈이 따라 간다. 은자도 궁금한지 옹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김씨각시는 주방 입구 바로 앞의 자리에 옹기를 내려놓는다. '맛 들었다' 김씨각시의 표정은 사뭇 당당하다. 순간 젓 비린내가 물컥 난다. 자리젓이다. 뭐꼬? 은자가 옹기 앞으로 다가간다. 자리젓의 깊은 맛은 제주 사람만이 안다던데 요즘 부쩍 자리젓을 찾는 은자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은자가 손가락을 찍어 자리젓 맛을 본다."야이야-정민아-"
은자가 김씨각시의 아들이름을 부른다.
"느그는 엄니 같이 살아 좋제"
은자가 김씨각시를 힐끗 쳐다본다. 은자가 쩍쩍거린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은자가 고개 들어 나를 본다. 아. 뭔가를 기억해 낸 듯 나를 향해 걸어오는 은자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은자가 내 빈 그릇에 자리젓 하나를 얼른 얹는다. '묵으라' 은자의 목소리는 시원시원하다. 자리젓은 그릇의 굴곡을 따라 늘어져 있다. 자리젓에선 투명한 선홍빛이 난다. 잘 삭혀진 자리젓이라야만 낼 수 있는 빛깔이다. 배에는 좁쌀보다도 작은 빨간 알들이 얇은 막에 싸여진 채 매달려 있다. 최고의 자리젓 맛은 알 밴 자리로 담았을 때 난다 하시던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입 안에서 군침이 돋는다. 그러나 이미 내 밥그릇은 비어있다. 그때 은자가 밥이 가득 든 그릇을 내 앞에 갖다 놓는다.
"되수다." 괜한 고집 소리를 낸다.
"되기는 머가 됬노 잔말 말고 묵으라!"
꾸물거리던 하늘은 결국 비를 쏟아 붓는다. 굵은 빗줄기가 거리를 활보한다. 사람들이 하나 둘, 부산식당으로 깃든다. 오늘처럼 날이 궂어 지면, 선약을 지켜내 듯, 모여드는 사람들. 약속의 의미를 일깨우듯 지각의 연유를 조목조목 묻기까지 한다.
먼저 들어온 이씨는 행동이 굼뜨고 마지막에 들어 온 강씨는 체구에 비해 목소리가 컸다. 머리숱이 유달리 짙고 이목구비가 선명한 정씨는 이년 전, 아들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고부터 혼자 살았다. 정씨가 은자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정씨는 매일 같이 부산식당에서 저녁을 해결 했다. 태풍 소식이라도 들리면 식당 안팎을 돌아보며 주인 행세를 했다. 정씨는 은자의 일이라면 뭐든 나섰다. 이런 정씨의 속셈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를 함부로 내색하지 못한 것은 워낙 까다로운 정씨의 성격 때문이었다.
보름 전쯤의 일이다. 은자는 영업 준비를 하느라 한창 바쁜 아침시간이었다. 나는 은자의 심부름으로 은행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그때 내가 막 식당 문을 열려는 찰나."됐다 촤라!"
들려오는 은자의 신경질적인 목소리 때문에 나는 문도 열지 못하고 문밖에 서 있었다. 그리고 곧 정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수 호적에 올려 주커라"
그 목소리는 내가 알던 정씨가 아니었다. 정씨는 숫제 애걸복걸 사정하고 있었다.
"됐다 동수가 정씨 아들이요 뭐요?"
은자의 말투에 짜증이 잔뜩 묻어났다.
"대학꺼정은 시켜주커라…… 살림합쳤댄 이녘 손해 날 건 어실거라"
"그런 소리 할거믄 오지 마이소"
그 후 다시 나타난 정씨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꼬투리를 잡는가 하면 생전 하지 않던 음식 타박도 했다.
손님들이 빠져나간 식당엔 동네사람들만 남아 있다. 언제 나갔는지 김씨가 다시 들어온다. 김씨는 식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출입문 옆에 있는 냉장고로 가 막걸리를 꺼낸다. 김씨각시는 주방에서 미리 챙겨 온 밑반찬들을 부리고 있다. 이씨는 한 움큼의 그릇을 들고 자리를 잡는다. 플라스틱으로 된 넓적한 그릇은 막걸리 잔의 대용물이다. 사람들의 행동은 신속하고 익숙하다. 김씨가 막걸리 병 주둥이의 빳빳한 비닐을 벗겨낸다. 정씨가 그릇을 내민다. 탁한 액체가 두껍게 쏟아진다.
이때, 황씨가 쫓기 듯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열린 문틈으로 빗줄기가 사방으로 들이친다. 황씨가 다급히 문을 닫는다. 그러나 서두르는 만큼 문은 말을 듣지 않는다. 네 칸으로 나뉜 유리문의 문틀을 잡고, 황씨가 끙끙댄다. 유리에는 하얀 시트지가 일말의 공간도 없이 발라져 있다. 보다 못한 은자가 나선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은자가 문을 당긴다. 드르륵 움직이는 문소리와 함께 요란한 바깥세상이 닫힌다. 출입문 앞 쪽 바닥은 그새 빗물이 흥건하다. 손등으로 툭툭 물기를 털어내는 황씨의 바짓단이 흠뻑 젖어 있다. 우산이 바람까지 막아주진 못했을 터였다. 황씨는 출입문 옆, 양동이에 우산을 꽂는다. 은자가 얼른 수건을 내다 준다.은자가 뚝배기를 들고 나온다. 순대와 국물을 가득 채운 뚝배기이다. 은자의 참석을 끝으로 술판이 벌어진다. 이로써 오늘 부산식당 장사는 마감 한 셈이었다. 술판에 먼저 올려 진 것은 역시 철물점 송씨였다. 얼마 전, 사거리에서 삼 대째 철물점을 하는 송씨에게, 중학생 남자아이가 아들이라며 찾아왔다. 이 일로 송씨각시는 집을 나갔고, 이미 아들 넷을 둔 송씨는 각시 눈치를 보아서인지, 아들로 인정 할 수 없다고 했다. 식탁에 모인 여자들은 송씨각시 편을 들고 남자들은 중학생 아들 편을 들었다. 황씨가 중학생 아들이 되어 그 입장을 대변한다. 침이 튀고, 모가지에 굵은 핏발이 선다. 김씨각시가 첨예하게 맞선다. 이혼도 불사해야 한다는 극론을 펼친다. 그들은 한 치의 타협도 양보도 없다.
찌든 식탁 위에서 누구 얘기, 누구 집 얘기가 밀려가고 밀려난다. 동네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은 뚜렷한 증거 없이 거듭 거듭 튀겨져서 술판의 안주로 둔갑한다. 자신들의 인생 또한 그 못지않은 특별메뉴가 된다. 어떤 서막이 올려 졌든 그들의 '왕년'은 네온 보다 화려했고 종말은 비참했다.
"저 동수아방은 어디 이서?"
말을 꺼낸 건, 연거푸 술만 마셔대던 정씨였다.
순간, 은자의 손이 멈칫거린다. 은자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중이었다. 술기운인지 은자의 얼굴이 붉게 얼룩져 있다.
동수! 동수는, 은자의 유일한 혈육이다. 반장을 두 번째로 역임하고 있는 동수는 초등학교 이학년이다. 사흘거리로 상을 받아 오는 동수는 못하는 것도 없다.
동수는 은자의 모든 자부심의 근원이며, 긍지이다. 은자의 삶이다. 한마디로 동수인 즉, 은자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은자의 말처럼 장래에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인지도."와…… 그건 알아 머 할라꼬?"
정씨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하는 은자 목소리엔 날이 서 있다.
"여기 사연어신 사름이 이서게"
정씨는 '다 용서하겠소'를 일러 주 듯 너그러운 미소를 애써 짓는다. 사실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삶이 몇 안 되는 동네였다. 그러니 은자 사연이 어떻든 그다지 충격적일 것도 없었다.
짧은 침묵이 있고 은자가 말한다.
"됐다마 술이나 먹자"
그래도 정씨는 물러서지 않는다.
"무사, 인정 안 허켄? "
정씨가 다그친다. 식탁을 둘러싼 눈빛들이 은자를 쳐다본다. 은자가 앞에 놓인 술잔을 든다. 은자의 엄지와 검지가 움직이고 잔도 따라 움직인다. 은자의 시선이 소주잔에 머문다. 난처한 침묵이 흐른다. 정씨의 얼굴에서 옅게 실소가 비친다. 불현 듯 정씨에 대한 원망이 인다. 은자가 측은해 보인다. 은자의 시선이 식탁 위를 부유한다. 말 없는 은자의 얼굴은 낯설다. 웃지도, 화내지도 않는 얼굴. 무표정과 침묵이 잔뜩 발라진 은자의 얼굴은 생경하다. 엷은 쌍꺼풀과 도톰한 입술은 음전하다. 은자에 대해 처음 드는 생각이다. 은자의 속눈썹이 술잔을 향해 살포시 내려져 있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 은자의 눈동자에 살짝 물기가 어린다. 흠흠. 목을 가다듬고 은자는 단숨에 술잔을 비운다. 술 탓인지 입술에 힘을 준다. 은자의 움푹 들어간 입 꼬리가 우물을 만든다. 목을 한 번 더 가다듬는 폼이 울음을 삼키는 듯하다.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건, 나나 다른 사람들이나 마차가지였다. 그때 김씨가 침묵을 깨고 딴청을 피운다.
"술먹자. 우리집 보일러가 또 말썽……"
순간 괜히 김씨가 고마웠다. 그때 은자가 입을 연다.
"한다…… "
긴장감이 흐르고 모두의 시선이 은자를 향한다.
"한다…… 인정. …… 얼마나…… 이쁜데…… 인정을 안하겠나?"
또박또박 그리고 천천히 말을 뱉는 은자의 목소리는 매섭고 단호하다. 은자가 자신의 빈 잔에 술을 채운다.
이쯤이면 그만 해도 될 법 한데 정씨가 다시 입을 연다.
"인정 허는 사름이 아들보젠 혼 번도 안 오나? "
말을 뱉은 정씨는 여유작작한 배틀의 다음 순서를 기다리 듯 의자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은자가 어쩌다가 어떤 이유로 제주에 스며든 지는 아무도 몰랐다. 실연을 당했다거나 빚에 쫓겨 왔다거나 하는 흔한 사연이 있을 법도 해서, 술 받아놓고, 밥 받아놓고 슬쩍 물어보면, '와! 걸 알아 머할낀데'라거나 '니 만날라꼬'라는 답이 전부였다. 제주에는 피붙이 하나 없다고 했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이미 은자 뱃속에는 동수가 있었고, 여기서 몸을 풀었다고 했다. 그때 은자는 혼자였다. 게다가 박춘자와 박동수 둘의 성도 같다. '은자'는 동수 이름을 작명할 때 작명소에서, 지어준 것이라 했다. 누구든 일면식부터 은자로 불러달라는 것을 보면 그 이름이 퍽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 은자만큼은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이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우길 만한 어떤 것도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미웠다. 아니 사실 내 생각도 그러했으므로 그들의 생각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정정한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달려드는 정씨가 미웠다.
하늘은 터져버린 듯 비를 쏟아 부었고 핑계가 생긴 나는 종일 잠만 잤다. 하루 종일 누워 있던 탓인지 등허리가 쏘삭거렸다. 이미 창문 밖은 회색빛 어둠이 내려있다. 무게가 다른 자동차 소리가 쉼 없이 오고간다. 물 먹은 아스팔트 위에서 자동차 하나가 미끄러지듯 달아난다. 소리가 사라진 방안은 공허하다. 방안은 바깥보다 더 어둡고 적막하다. 덜컥,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기인 한 외로움인지, 하필 이 때 찾아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둠에 잠식된 방안을 찬찬히 둘러본다. 물건의 정체가 야릿하게 드러난다. 나는 방바닥을 더듬어 담배와 라이터를 집는다.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켠다. 불꽃 주변에 하얀 그림자가 너울거린다.
끼걱.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누군지. 둥둥 마루를 건너서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안방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누구지? 은자도 동수도 아니다. 지금 시간에 집에 올 만한 사람은 없다. 동수는 학원을 갔고, 은자는 잠시의 짬도 낼 수 없는 시간이다. 김씨각시인가? 나도 모르게 촉각이 곤두선다. 예측 가능한 소리를 잡아내기 위해 나는 방문에 바짝 다가선다. 그러나 안방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혹시…… 설마? 직접 들여다볼 요량으로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때 안방에서 형광등 스위치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모시모시! 은자다. 침입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에 나는 습관적으로 티브이 리모콘을 집어 든다. 그러나 거꾸로 쥔 리모콘을 바로 잡고 전원 버튼을 누르려던 나는, 동작을 멈추고야 말았다.은자의 일본말은 유창했다. 은자가 일본어를 하나? 저렇게나? 십 여 분, 결코 짧다 할 수 없는 통화시간 내내 은자는 일본어로 말했다. 놀랍다. 통화를 마친 은자는 다시 마루를 지나 현관으로 나갔다. 삐걱하고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에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몇 초, 다시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안에 있나?…… 묵고 자라!" 은자다.
담배 냄새를 맡았는지 은자가 나를 부른다.
"밥 묵고 자라 언능 건너 온나"
은자가 나간 후 티비를 켰지만 볼 만한 프로는 없다. 배에서 가벼운 허기가 느껴진다. 지금 식당으로 건너가지 않으면, 은자는 내내 방문을 두드릴 것이다. 나는 벽에 걸려 있는 모자를 꺼내 쓰고 방을 나선다.
부산식당 건물은 작고 누추했다. 아스팔트와 골목을 낀 모퉁이라는 점을 이용해 출입구를 달리 냈다. 은자네 살림집 대문은 골목에, 식당은 아스팔트 쪽으로 출입문을 냈다. 살림집과 식당의 출입구를 따로 낸 것 역시 동수 때문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팔아야 하는 식당이기에 동수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목은 좋은 편이었다. 동네 사람들을 상대하는 소매점이 대부분이었지만 상권도 있는 자리였다.
나는 슬리퍼를 질퍼덕거리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 안은 손님들로 법석거렸다. 식당 안을 휘 한번 둘러보지만 마땅한 자리는 없다. 벽면 여기저기 칠해진 기름때 무늬가 새롭다. 주방 입구 선반에는 막걸리 잔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 식기들이 오종종히 쌓여 있다.
김씨각시가 음식을 나르느라 총총거린다. 은자는,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손님들 때문에, 김씨각시의 손을 자주 빌었다. 주방 앞자리 말고 빈자리는 없다. 일거일동 보이는 곳이라 누구도 꺼리는 자리였다. 나는 식당 안쪽을 한 번 더 둘러보지만 빈자리는 없다. 안쪽 구석에는 김씨와 정씨가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다. 정씨가 나를 보자 살짝 손을 들었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은자는 주방 안에서 음식을 내느라 경황이 없다. 주방 안은 그릇 부딪치는 소리와 은자의 군시렁대는 소리로 지그럭거린다. 부산식당을 매일 같이 드나드는 사람들에겐 익숙한 소음이다.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식당 안에는 정씨네와 합석한 우리의 자리만 남았다. 정씨와 김씨는 취기 탓인지 귓불까지 빨갛다. 은자는 주방 뒷정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때 동수가 식당으로 들어온다. 손에 든 가방에는 피카소미술학원이란 글자가 적혀 있다. 동수는 미술학원에서 그림과 영어를 배웠다. 미술학원에서 일반 과목을 가르친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동수는 잘 따라 했다.
"오 우리 아드님 오셨어요?"
은자가 주방에서 달려 나온다. 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다. 동수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은자였다. 은자는 동수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도 탄성을 질렀다. 예사로운 행동도 은자는 기특해 했다. 동수도 그것이 즐거운 듯 보였다. 동수는 오늘도 만점 시험지를 내 밀었다. 은자는 호들갑스런 칭찬과 준비해 둔 블록을 상품으로 수여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의 눈이 동수와 마주친다. '안녕하세여- ' 동수는 상만 받는 아이답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고개 숙인다. 눈에 띌 때마다 인사하는 아이. 오늘만 해도 나는 도합 다섯 번의 인사를 동수에게 받았다. 그것도 성이 차지 않는가. 아마 나는, 이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몇 번의 인사를 더 받게 될 것이다. 은자는 흡족한 미소를 띠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옆을 지나던 김씨각시가 동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는 옆의 의자를 손으로 툭툭 치며 동수에게 이리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내 뜻을 이해했는지 동수가 나를 향해 발을 옮긴다. 바로 그때, 정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동수 옆으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동수의 양쪽 어깨를 와락 잡았다.
"저기…… 아빠…… 얼굴…… 아나?"
동수가? 얼굴을 알까? 본적이나 있을까? 과연. 나의 기억에는 없다! 내가 은자 집에 세 든지 벌써 사년이다. 이사랄 것도 없이 옷가지 몇 개 넣은 가방이 전부였다. 나 또한 의지가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일주일만에, 나는 경희와 동거를 시작했다. 할머니가 남겨주신 전세금을 가지고 시작한 살림살이였다. 그러나 그리 오래 가지 않아 전세금은 바닥이 났다. 그 즈음에 경희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후 나는, 공사판을 떠돌다 김씨를 만났다. 그 인연으로, 은자네 문간방에 들어 온 것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은자네서 살았다. 그래서 안다. 동수아빠가 찾아왔던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전의 일이야 모를 일이지만, 내가 사는 동안은 확실히 없다. 아빠를 보기 위해, 동수가 가도 되는 일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식당을 닫아야 한다. 그런데 사년동안 식당 문이 닫힌 적은 없었다.
동수의 몸이 이쪽을 향해 있다. 동수와 마주 하고 있는 정씨는 등을 보이고 있다. 정씨는 한쪽 무릎을 꿇고 동수의 양 어깨를 잡고 있다. 동수를 올려다보느라 목이 젖혀져 있는 정씨의 정수리가 넓게 보였다. 정씨에게 잡혀 있는 동수가 버르적거렸다. 난데없는 정씨의 행동에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동수에게 만큼은 살갑던 정씨였다. 정씨가 동수의 어깨를 흔들며 답을 채근한다. 동수는 정씨를 외면하며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린다. 시야만 가리면 위협도 제거 될 거라 믿는 우둔한 꿩이 생각났다. 도톰한 손가락 사이로 잔뜩 구겨진 동수 얼굴이 보인다. 신변의 안전을 확인하듯 동수가 개미 눈을 뜬다. 정씨는 그런 동수가 재밌는지 킥킥거린다. 동수가 눈에서 두 손을 뗀다. 그리고 정씨의 시선을 피해 나를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만 같다. 자신을 구해달라는 눈빛이다. 나와는 다섯 보폭쯤의 거리다.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수를 해치지는 안겠지만,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도 없었다. 그때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린다. 은자다. 은자가 주방에서 이쪽을 보고 있다. 은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다. 은자가 소리친다. '당장 치워라' 길길이 소리친다. 은자의 입에서 악담패설이 쏟아진다. 마음이 급한 만큼 욕설은 더 험해진다. 정씨는 여전히 동수의 어깨를 쥐고 있다. 동수가 몸을 비튼다. 은자가 허겁지겁 달려 나온다. 주방을 급히 빠져나오느라 여기저기 부딪히는 것 같았지만, 괘념치 않는다.
"와 애비얼굴도 모를까 바서 미친놈!"
은자는, 동수를 와락 안으며 정씨를 밀쳐낸다. 정씨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진다. 은자의 품에서 동수가 울음을 터트린다. 은자는 자신의 팔에 더욱 힘을 준다. 서러운 울음이 누그러지자, 동수를 바라본다. 은자는, 동수의 볼을 매만지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다시 꼭 껴안는다. 은자의 품에서 동수가 간헐적으로 훌쩍인다. 은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씨를 노려본다. 주먹이라도 날릴 태세이다. 정씨는 은자의 시선을 피해 얼굴을 돌린다. 얼굴엔 낭패감이 잔뜩 어려 있다. 은자의 입에서 욕설이 쏟아진다. 은자의 눈빛엔 분노와 원망이 가득이다. 과민한 은자의 태도에 비위가 상했는지 정씨가 빈정거린다.
"애 앞에 꼬빼기도 안 보이는게 뭔노미 애비라고"
정씨가 빈정대며 은자에게 다가온다. 은자는 자신의 몸 뒤로 동수를 밀어낸다. 정씨를 향해 눈을 부릅뜬다. 은자가 소리친다.
"머시라고 니눔이 지금 머라켄노"
은자가 정씨를 향해 삿대질한다. 은자의 다리를 두 팔로 감싸 안고 있는 동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김씨각시가 은자에게서 동수를 떼어 내려 하지만 소용없다.
"내말이 틀렸어 어이 강씨 내말이 틀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듯, 강씨까지 끌어들인다. 은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려온다. 강씨가 은자를 곁눈질한다. 은자의 표정은 굳어 있다. 동수가 은자를 쳐다본다.
"와 누가 안온다카드나"
"오긴 씨펄…… 지 새끼 있는 줄이나 아나?"
우리 모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 모두의 생각이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동수의 존재조차 모를 거라고. '내달에 온다 '라고 은자가 말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나 또한 그랬다. 올 사람이었다면 벌써 몇 번은 왔거나, 진작에 소식이라도 물어왔어야 했다. 그래도 나는, 지금이라도 동수 아빠가 나타나 주었으면 했다. 당장이라도 나타나 정씨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나타나 시끄럽기 이를 데 없는 이 부산식당을 단칼에 정리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허접스럽기 이를 데 없는 동네였다. 행정구역상 '시'에 속했지만, 고층 아파트는커녕 세련미라곤 없는 난잡한 건물들만 즐비했다. 본디 살았던 토박이들은 소위 신도시라 불리는 곳으로 빠져나갔고, 그만한 재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고향을 고집하는 노인들만 남아 있는 동네였다. 이것은 번듯한 무엇 하나 가진 것 없는 이방인들이 터 잡아 살기에 좋은 조건이 되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 동네엔 한 부모 가정도 많고, 그마저도 안 되는 집이 수두룩했다. 그러니 은자를 두고 그리 야단 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은자를 두고 수군거리는 것은, 보따리 때문이었다. 은자가 풀어 놓은 보따리는 없다. 곡절이 깊을수록 술자리의 한탄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인데 취기에도 변변한 이력하나 꺼내지 않는 은자가 마뜩찮은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간은 비가 멈추지 않았다. 장마일기예보에서는 우리나라가 장마권에 들어섰다고 했다. 도로에는 물이 넘쳐흘렀다. 부산식당 앞의 벚나무 줄기 하나가 비바람에 꺾인 채 대롱거렸다. 그날 이후 은자는, 말 수가 줄어든 듯 했으나 크게 느껴질 만큼은 아니었다. 동수는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였다.집안은 조용하다. 은자는 동수가 등교하자마자 식당에 나갔다. 나는 영화를 보고 있다. 내가 보고 있는 채널은 '영화전문채널'이다. 그러나 '영화전문'이란 말이 무색하게 몇 주째 같은 영화만 틀어대고 있다. 그래도 나는 채널을 고정시키고 있다. 그것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오 분도 남겨 두지 않고 반전이 일어난다. 나는 벽에 베개를 대고 자세를 고쳐 앉아 담배 갑을 열었다. 한가치 뿐이다. 티브이에선 광고가 나오고 있다. 영화 중간에 담배 사러 나가지 않으려면 지금 다녀와야 한다. 나는 벽에 걸어 둔 잠바를 꺼내들었다.
그 순간, 은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들어왔는지, 은자가 통화를 한다. 며칠 전처럼 일본말로. 일본에 아는 사람이 있나. '모시모시' 란 말 외에 내가 아는 일본말은 없다. 은자는 굉장히 화가 난 듯 했다. 며칠 전 통화에 비하면 말도 빨랐다. 은자의 음성은 격앙 되어 있다. 감정을 추스르느라 애쓰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방문을 열고 나갈 수가 없었다.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은자의 통화는 짧았다. 은자는 통화를 끝내고도 한참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티비는 이미 영화화면으로 바뀌어 있다. 영화는 절정에 달하고 있다. 나는 좀 더 편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그때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남은 한가치의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방을 나섰다. 밖엔 비가 잠시 멈추어 있다. 담배가게는 부산식당에서 두 집 건너면 있다. 부산식당의 두런대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린다. 간혹, 주문을 받고 있는 김씨각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게에 딸려 있는 방에서 할머니의 등이 먼저 보인다. 할머니는 티브이를 보고 있다. 내가 다가가 팔을 툭툭 친다. 할머니가 돌아본다. 귀가 들리지 않는데도 할머니는 항상 티브이 앞에 있다. '씨즌' 가게 할머니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묻는다. 내가 피는 담배 이름이다. '씨즌' 담배를 살 것인가 묻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내가 가게에 들어가면 할머니는 '씨즌' 하고 불렀다. 어쩐지 내 이름이 '씨즌' 인 것 같다. 그때, 강씨가 가게로 들어온다. 할머니는 강씨를 보며 '에쎄' 했다. 할머니가 동네사람들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에쎄' 담배를 뜯는 강씨가 은자 안부를 묻는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는 거 없어? " 지난번 일로 은자가 괜찮은지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뻔하지 뭐" 떳떳치 못한 출생일 것이 뻔하다는 말이다.현관을 들어서는데 인기척이 느껴진다. 은자다. 현관문 소리를 들었는지 은자가 나를 부른다. 은자가 있는 곳은 부엌이다. 부엌 가까이 다가서자 소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소주병은 이미 비어 있다.
"어디갔다 왔노?"
나는 대답 대신 담배를 들어 보였다.
"좋을 거 하나 없다…… 고만 피라 니도 곧 서른아이가 장가도 가야제"
"……"
"니는 내가 얼마나 꼴촌지 모르제?"
당연히 모른다. 은자가 담배 피는 것조차 본 적이 없다.
"동수 저거 안 들어섰으믄…… 담배 땜시 죽었을 기다"
"……"
"아- 라는 기 그런 기다. 담배도 끊게 맨들고…… 술도 끊게 맨들곡"
술에 취해서인지, 옛 기억이 떠올라서인지 은자의 말이 흐느적인다.
"저- 동수…… 아부지는?"
자분거리는 은자를 보며 슬쩍 용기가 난 내가 물었다.
"니도 궁금하제……"
은자는 웬일인지 순순하다. 십 여 초, 은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후우- 긴 숨을 내 쉰다. 그리고 말을 꺼낸다.
"다찌라고 아나?"
다찌…… 알다마다.
일본남자를 상대로 매춘하는 한국여자를 다찌라고 했다. 매춘을 하다 운이 좋으면 일본남자의 고정 애인이 되고 다음은 현지처가 된다. 현지처를 두는 일본 남자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다찌들의 최종 목표는 현지처로 눌러 앉는 일이다. 현지처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아이를 갖는 것이다. 상대 남자가 아이를 먼저 원 할 때도 있지만, 아이가 생기면 연락을 끊어 버리는 사람도 있다. 아이가 생기면 상대 남자들은, 현지처에게 집을 마련해 주고 생활비와 양육비를 지급했다. 경희 친구 중에 다찌가 있었다. 당시 그 친구에게는 일본인 애인이 있었고 상대남자는 매달 그 친구에게 돈을 줬다. 그 친구는 '애 하나만 낳으면 집 사달라 할 거야…… 그럼 인생 펴는 거지'라며 자랑하듯 떠들곤 했었다.
"들어 본 적은 이수다"
은자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다찌라카드라 내보고……"
"……"
"내 저거 하나 여코 돈 받아 펜히 살라켔다 집도 주고 돈도 주고 그리살믄 펜안할꺼 아이가"
"……"
"근디 틀렸다"
"아-가 뱃속에서 움직이는 디…… 그제사…… 알겠더라…… 내 생각이 틀렸다는 기"
"……"
"그래서 왔다…… 요기 와서…… 열심히…… 저거 하나 바라보고 살라고 왔는디…… 여그 제주도에"
은자의 눈이 반짝거렸다. 눈물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다.
"전화 했다 아 얼굴 한번 보고 가라고……"
"온댄 마씨? "
"지는 궁금 안하것나? 표 끊고 전화한다카드라 "
나는 그런 삶의 형태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었다.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사고. 경희친구를 경멸했던 그 때의 내가 떠올랐지만 애써 기억을 눌렀다. 화를 넘어 선 분노였었다. 그 친구를 부러워하는 경희를 보며 왠지 모를 굴욕감까지 들었었다. 단순한 담보에 불과한 아이. 담보물로 아이를 낳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친구와 그것이 부러운 경희.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녀들의 생각에 얼마나 분노했었는지. 그 때의 감정이 다시 살아난다. 은자에 대해 내가 짐작한 최악은 불륜이었다. 그것 이상 무엇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부러 긴 숨을 내 쉰다. 은자가 눈치 못 채도록 소리 없이 숨을 고른다. 몸에서 긴장이 풀리고 화도 누그러진다. 은자는 '근디 틀렸다'고 이미 지난 행보의 미욱함에 몸서리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좀 더 당당한 추억을 가지고 있지 그랬냐는 반문을 마음속으로 자꾸 자꾸 한다. 동수 얼굴이 떠올랐다. 은자의 다리를 잡고 놓지 않으려 애쓰던 동수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지난날이 어떠했든 어떤 인연으로 동수가 태어났든 그건, 새삼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을 새삼 따지지 않기로 했다. 나는 천륜의 강력한 끌림이 분명한, 표 끊고 전화한다는 말만을 기억할 뿐이었다.
일주일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갔다. 전에 창고공사를 맡겼던 대형마트에서 손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예년보다 긴 우기 때문에 환기 시설과 물건정리를 다시 해야 했다. 창고에 습기가 차면 물건 변형이 쉽다는 이유였다. 장마철 내내 방과 씨름하던 해에 비하면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보다 동수아빠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아니 실체를 이미 알고 있는 나였기에 동수아빠란 사람에 대한, 기대감은 아니었다. 어엿이 존재하는 동수아빠를 입증할 그 순간에 대한 기대였다. 대놓고 묻지도 못하면서, 나는 일과만 끝내면 곧장 식당으로 달려갔다. 드디어 오늘은 창고 정리가 끝났다. 평소 보다 늦은 귀가였지만, 그래도 뭔가를 마무리했다는 생각 때문에, 한결 가뿐한 기분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그런데 식당에 은자는 보이지 않았다. 식당엔 김씨각시만 총총거리고 있었다.
저녁 먹고 가라는 김씨각시의 말을 뒤로 한 채 나는 식당을 나섰다. 김씨각시는 어디 갔는지 한참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좀처럼 식당을 비우지 않는 은자가 그것도 가장 바쁜 시간에. 동수일이 아니고서야 은자가 식당을 비울 리가 없다. 동수일이라면 김씨각시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현관문은 열려 있다. 예상과는 달리 집안은 어두컴컴했다. 집안에서는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혹시, 하는 마음이 들어 안방을 향했다. 안방 문을 열기 위해 방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부엌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부엌은 마루보다 더 어두웠다. 한 구석에 뭔가 웅크리고 있는 형체가 보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형광등 전원 스위치가 있는 벽을 더듬었다. 손에 도도록이 올라 온 스위치가 잡혔다. 그 순간 은자 목소리가 들렸다.
"키지 마라!"
은자의 낮은 어조가 '무슨 일이냐'는 물음조차 어렵게 했다. 돌아설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어 엉거주춤 서 있는데 은자가 입을 연다.
"없는 번호란다…… 씨발눔이!"
은자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고 있다. 웅크리고 있던 은자의 형체가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해 진다. 부엌 벽에 붙어서 두 다리를 감싸 안고 있는 은자의 몸은 조그맣다.
그날 밤도 다음날 밤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그날부터 은자는 시름시름 앓았고 부산식당도 며칠째 문을 닫았다. 동수는 은자 옆에서 자꾸 찔끔거렸다. 김씨각시가 자주 은자를 들여다봤지만 차도는 없다. 김씨각시가 끼니 때마다 동수를 챙겼고 은자의 죽을 쒀 날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등교하는 동수를 위해 우산을 챙겨주거나, 은자의 약을 사다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약사는 이미 조제된 조금마한 약 상자를 내밀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빗줄기는 기운을 다했는지 힘없이 흐느적대고 있다.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아스팔트 한쪽에 고여 있던 물들이 사방으로 튄다. 나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이것까지 약효가 없다면 굳이 업고라도, 은자를 병원에 데리고 가야할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현관을 들어서는데 김씨각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집 그만 부리라"
김씨까지 동반한 것으로 봐선 오늘은 기어코 은자를 병원으로 데려 갈 작정인 듯 했다. 김씨각시가 병원 갈 채비를 하고 김씨는 택시를 부른다. 그때 동수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방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신기했던지 동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람들을 번갈아 본다.
동수 얼굴을 보자 김씨각시가 한 번 더 채근한다.
"저거 놔두고 죽젠?"
창백한 얼굴의 은자가 동수를 쳐다본다. 은자는 동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김씨각시가 다시 은자를 채근한다. 김씨각시의 말을 무시하며 은자가 동수를 부른다. 김씨각시의 말에 겁이 났는지 동수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동수가 은자 곁에 가 앉는다. 은자를 바라보는 동수의 눈자위가 붉어진다. 은자는 동수가 내 놓은 손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입을 연다.
"미안하다……"
은자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린다.
꺼억꺼억, 동수가 갑자기 울음을 토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남기는 어미의 유음쯤으로 여긴 듯 했다. 방안에 있는 우리들이 말릴 새도 없고 이젠 말릴 수도 없다. 얼굴을 바닥에 묻고 있는 동수 엉덩이가 하늘을 찌른다. 꺼-억 동수가 통곡한다. 비명횡사한 어미의 상여 앞에서 곡을 하는 것처럼, 처절하다.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라고 믿기 힘들 만큼 섧디 서러운 울음. 굵직한 울음이 목구멍을 넘기지 못하는지 동수가 켁켁 숨을 토한다. 목구멍에 울음을 걸쳐 놓은 채로 동수가 말한다.
"꺼억…… 죽…… 지…… 마!"
비가 그쳤다. 하늘은 얄미울 정도로 화창했다. 화장실 바닥은 잘 말라 공사를 다시 하지 않아도 됐다. 장마 덕에 일터에서 몰린 사람들의 휴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김씨가 도맡은 건축현장의 미장일을 하기로 했다. 점심 식사 손님들로 가득 찬 부산식당 안은 소란스럽다. 은자가 주방 안에서 툴툴거린다. 동수는 오늘 탐라문화제 백일장에 나갔다. <끝>
<당선소감>
"쓰고 놓기의 반복서 얻은 결실"
사람들마다 언어가 다르고 이해가 다르고 철학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다르고 다르고 다르므로 모두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몰랐다.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우둔함에 몸서리쳤고 '다름'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언어를 알아듣게 될 것이라는 확신 속에, 그래서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당치 않은 기대를 하며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소설은 늘 나를 따라다녔고, 미완의 숙제처럼 계속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쓰고 또 놓기를 반복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나는 누군가를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벗겨내는 작업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그저 글을 쓰면서 나를 조금씩 벗겨낼 뿐이다. 더듬더듬 서툰 몸짓으로.우선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신 한라일보사에 감사드린다. 턱 없이 부족한 저의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김병택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미흡한 글을 매번 끝까지 읽어주시고 지도 해 주신 오을식 선생님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글에 대한 열정이 느슨해 질 때마다 소리 없이 긴장감을 던져주는 소중한 문우 양수진에게 감사드린다.
수 년을 함께 한 문우들, 삶의 버팀목인 벗들 영미, 숭훈, 정민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께 감사드린다. 내 모든 에너지의 원천인 사랑하는 두 아들, 고맙다. 끝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영원한 나의 후원인 김인선님께 이 영광을 돌린다. ● 1966년 제주 출생.
<심사평>
"치밀한 구성과 일상성의 구현"
올해의 소설 응모작은 정확하게 말해 161편이다. 이것은 한라일보 신춘문예 사상 최다 응모 편수로 기록된다. 게다가 미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 응모한 작품도 꽤 있어 응모자들의 거주 지역이 대한민국을 넘어 외국에까지 벋어 있음을 실감케 했다.
소설을 소설일 수 있게 하는 근거는 '이야기'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렇게나 만든 이야기가 결코 아님은 물론이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 중 '외식'(방숙미)·'빼앗기다'(조혜은)·'엄마야, 엄마야'(유단아) 등은 공통적으로 딸과 '엄마' 사이의 사랑·증오·갈등을 그리는 데에 그치고 있을 뿐, 그 이상의 소설적 단계를 확보하고 있지는 못하다. '목단강 강가에 서서'(정은우)는 단단한 문체로 조선족 간병인의 삶을 무리 없이 그리고 있지만, 이 작품이 신춘문예 응모 작품임을 감안할 때, 후반부를 지배하는 통속성은 간과하기 어려운 걸림돌이었다.
당선작인 '은자의 나라'(오미향)는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秀作)이다. '다찌'(일본인을 상대로 매춘하는 한국 여자) 출신 주인공의 삶을 통해 구현되는 이 작품의 일상성(日常性)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현상과 잘 부합한다. 그 일상성이란 간단(間斷) 없는 삶의 고통과 비애, 또는 희망과 절망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것의 근원인 사건들은 이 작품에서 풍경화적 구도 속의 적합한 곳에 배치되고 있다.
낙선자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당선자에게는 또한 앞으로의, 한국문단에서의 큰 활약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 김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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