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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냉면 / 류영택

 

 망치질 소리가 들려온다. 바깥에서 형이 두드리는 소리다. 걱정이 된 모양이다. 일을 하다말고 서둘러 답신을 보낸다. 탕 탕 탕.


  정화조차량 탱크 용접일은 긴장의 연속이다. 안과 밖, 형이 두드리는 망치질은 동생이 무사한지 안부를 묻는 것이고. 내가 두드리는 망치질은 망을 보다말고 어디 가지나 않았을까, 형을 붙들어 두려는 마음에서다.


 


  돌보지 않으면 혼자 살아가기 힘든 '업보' 같은 형


냉면 면발만큼이나 질긴 형과의 인연이 서럽다


 


  형과 처음 손발을 맞춘 것은 우리 집 뒤주를 터는 일이었다. 라면을 사먹기 위해서였다. 긴긴 겨울밤, 꽁보리밥으로 배를 채워서 그런지 몇 번 방귀를 뀌고 나면 이내 배가 고파왔다.


아무리 우리 것이라고 해도 도둑질은 도둑질이었다. 겁이 났다. 뒤주에 들어가려다 말고 형과 신호를 정했다. 누가 나타나면 두 번, 지나가고 나면 한 번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자루에 곡식을 퍼 담으며 연방 망 잘보고 있느냐고 물었다. "뭐 그리 겁이 많아!" 짜증 섞인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시작한 곡식 도둑질은 이듬해 봄까지 이어졌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형과 붙어산다. 집을 나설 때면 형과 내가 먹을 도시락을 싸들고 가게로 간다.


  형은 가게 마룻바닥에 도시락을 펼쳐놓고 밥을 먹는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한 번이라도 자신의 앞날을 생각했더라면 최소한 제 앞가림은 할 수 있었을 텐데. 망을 보다 말고 화장실에 갔던 것처럼 형은 매사에 진지하지 못했다. 훗날 그게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형은 허구한 날 싸움질이나 하는 사고뭉치였다.


  형의 사고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그 많던 문전옥답 다 팔아먹은 것을 생각하면 밉고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도시락밥에 질리지나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 형이 좋아하는 냉면을 마음 놓고 먹으려면 지난날 뒤주에 들어갔던 것처럼 정화조 통 속으로 들어 갈 수밖에 없다.


  탱크 용접일은 뒤주 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겁이 난다. 폐쇄된 공간이 두렵고 매탄가스와 용접가스에 질식하지나 않을까 무섭다. 적막하기만 한 통 속에 용접기를 들이대는 순간, 번쩍 스파크 불빛과 함께 통 속에 남아 있던 매탄가스가 폭발하는 것처럼 '쩡' 귀청을 울린다. 한두 번, 하루 이틀 해온 일이 아닌데도 그럴 때면 소름이 확 끼쳐온다.


  밖에서 망을 보고 있는 형도 다를 게 없다.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으니 오히려 더 불안해한다. 동생이 질식한 것은 아닐까. 탱크 안이 잠시만 조용하다 싶으면 작은 망치로 철판을 두드린다.


하지만 작업시간이 길어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밖은 느긋하고 안은 불안하다. 치매를 앓는 사람처럼 형은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있는지, 통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생은 기억조차도 없다. 망을 보다말고 가게를 찾아온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길 가는 사람들의 이정표 노릇을 한다. 그런 형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지라 작업을 하다말고 수시로 망치질을 한다. 그래도 밖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으면 '쾅쾅쾅' 크게 망치질을 해댄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망치질을 해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아마도 형은 통 속에서 쭈그려진 철판을 펴고 있는 줄로 생각한 것 같다. 흔히 있는 일이다. 벌어진 철판 틈새를 메우느라 망치질을 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형은 안에서 신호를 보내는 줄 알고 연방 망치질을 해댈 때도 있다. 몇 번 그런 일이 있다 보니 신호에 무디어진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찌 망치질과 신호를 구분 못하나! 마음이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람이 찾아와도 걱정, 혼자 있어도 걱정이다. 용접기 홀더를 내동댕이치고 통 속을 기어 나온다. 작업등, 고압호스, 용접기 줄이 널브러진 좁은 통로를 들락거리는 게 여간 성가시지가 않다.

통풍구로 고개를 내밀자 형은 넋을 놓은 채 앉아있다. 손에 들고 있던 망치마저 떨어뜨린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오죽 졸리면 저럴까. 백번 이해가 되면서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덕지덕지 기름이 낀 차체에 용접불똥이 옮겨 붙어 통 속에서 로스구이가 될 뻔했었던 게 어제 일 같은데 천하태평, 어쩌면 저렇게 배짱 편하게 졸고 있을까.' 온갖 한탄을 속으로 삭힌다.

"형, 뭐해!"

고함을 치자 형은 허둥지둥 망치를 움켜잡는다.

작업이 끝나가자 형에 대한 미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아무리 화가 나도 형을 불평하지 말았어야 했다. 비록 속으로 한 말이지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작업 끝날 시간에 맞춰 음식을 주문한다. 형은 곱빼기 나는 보통. 살얼음이 낀 육수를 벌컥 마시고 내려놓는 형의 냉면그릇에 넓적하게 썰어놓은 한 점 돼지수육을 올려놓는다.

"동생 너나 먹지."

형은 자신의 그릇에 담긴 계란을 내 그릇에 올려놓는다. 위험을 무릅쓰고 땜질하여 번 돈으로 사먹는 음식이지만 이럴 때면 라면을 사먹던 지난날의 그 모습과 별반 다른 게 없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훔친 곡식과 맞바꾼, 손수 끓여먹던 라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질긴 냉면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형은 자기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내게 무슨 큰일이 일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쯤으로 생각한다. 둥둥 떠 있는 토마토 한 점을 형의 그릇에 마저 옮겨놓는다.

"동생, 이 집 냉면 맛 진짜 끝내준다."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든 '업보' 같은 형. 출세한 삶은 아닐지라도 그저 보통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밖에, 더 이상 어떻게 해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뒤주에 들어 갈 때나 정화조통 속에 들어갈 때나 제대로 손발 맞은 적이 없는데도, 그래도 망을 봐줘야 안심이 되는, 냉면 면발만큼이나 질긴 형과의 인연이 서럽다.


 


'이 집 냉면 맛 끝내준다.' 울컥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벌컥 냉면 육수로 가라앉힌다.





  <당선소감>


   고통 뒤 안도감이 글쓰기 빠져들게 해


당선 소식에 환호했습니다. ‘기뻐서 부르짖다.’ 이 말만큼 지금 저의 심경을 나타낼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살면서 제게 이런 일이 생길 줄 정말 몰랐습니다. 이제껏 갈 길이 어딘지 모르고 헤맸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를 많이도 했습니다. 겨우 찾아든 길, 한눈팔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제 글쓰기의 바탕은 손편지였습니다.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한 것이 아니라 저를 보내는 도구였습니다. 이제 다시 편지가 오가면 좋겠습니다.오랜 병환 중에도 늘 제게 힘이 되어 주시는 부모님, 사랑합니다. 어설픈 며느리 어여쁘게 감싸주시는 어머니, 고맙습니다.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남편, 사랑합니다. 어리바리한 엄마의 도전을 박수치며 응원해 준 두 아들, 더욱 사랑합니다. 자기 일보다 기뻐해 준 자매들 그리고 오빠, 제 마음 알 터입니다.

글공부의 첫걸음부터 세심히 이끌어 주시고 북돋워 주신 저의 멘토 곽흥렬 선생님, 진정 감사드립니다.

초름한 글임에도 살펴봐 주신 심사위원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를 글판에 뒹굴 수 있게 멍석 깔아 주신 매일신문사에도 감사드립니다. 시작보다 그 이후를 주목할 수 있는 글쟁이가 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 1958년 경북 고령 출생.

  ● 에세이포럼 회원.

  ● 수필세계 작가회원.


 

  <심사평>


  치밀한 구성·스토리텔링으로 작위성 극복


최종 결심에 오른 작품은 김광선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김정수의 '쳇불', 윤현의 '독' 류이혜경의 '모시적삼'과 류영택의 '냉면', 이렇게 5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등반사고로 죽은 젊은이의 장례식을 그리고 있다. 과도한 감정몰입으로 시선의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쳇불' '독' '모시적삼'은 작법이 비슷했다. 현대의 일상에서 이미 멀어진 대상물을 찾아 새로운 눈으로 읽으려 한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찾아 쓰려는 노력이 가상하였으나, 새로운 눈으로 읽는다는 것은 잃어버린 형용사를 찾아서 불러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야 한다. 새로운 의미의 생성이 바로 반전이다. 탄탄한 구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새로운 의미찾기'는 작위적일 뿐이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한 작품이 당선작 '냉면'이다. 가장 큰 장점은 수필이 이야기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구성이 치밀하여 스토리텔링이 탄탄해지면서 수필이 빠지기 쉬운 작위성을 깨끗이 극복했다. 이 작품에서 반전이 무엇이냐고? 우리가 각박한 삶을 견디며 사는 것은, 너무나 못나고 보잘 것 없어 내가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삶과 사랑의 새로운 해석이다. 오랜만에 만나본 진한 감동의 이야기다.

 

심사위원 : 김종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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