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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누비옷 / 김영미

 

‘좋은 인연’ 모임에 가는 날 오래된 옷 한 벌을 꺼내 손질한다. 집안에 경사가 생기거나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날 평소에 잘 입지 않아 장롱 깊숙이 넣어둔 누비 옷을 꺼내 입게 된다.

누비옷은 평생을 입어도 좋을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정성이 깃든 옷이라 입을 때마다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어느 해 가을, 십 년 넘게 친자매처럼 지내오던 차(茶)벗님과 소원해 오던 누비옷 한 벌씩을 장만하였다. 소재는 값비싸지 않고 질긴 광목에다 자연염색을 한 옷감으로 취향과 개성에 따라 골랐다. 형형색색의 옷감들 사이에서 견본으로 만든 쪽빛으로 깃과 옷고름을 빼어 낸 시대를 거스르는 듯 보이는 누비저고리 하나가 눈길을 붙들었다. 앞 섶 품이 길고 넓어 여유로워 보이고 욕심과 조급함을 버린 편안함이 그 품을 가늠하게 한다.

“참 곱네.”

“이 옷 입으면 신라 시대 여인으로 다시 태어날 것 같다”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누비는 대량생산에서 대량소비로 이어지는 시대의 흐름에 걸맞지 않은 옷이다.

우리 옷의 전통과 우아한 옷으로만 명맥을 잇고 있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아하게 한복을 차려 입은 주인이 말했다.

“어디 품 한번 재어 봅시다.”

몸매 드러나지 않는 풍성한 내 품을 잰 후 한 달여를 기다려 목선 깃에 쪽물 시침질이 선명하고 은은한 겨자색 바탕의 누비저고리 하나를 얻었다.

보송보송한 온기가 느껴지는 누비저고리를 보며 나는 함지박 같은 웃음이 번져났다. 심지 굳은 벗을 만난 것 같다. 어린 시절 잠을 설치며 손꼽아 기다렸던 설빔처럼 곱다. 단정하게 개켜진 옷고름을 쓰다듬어 보니 폭신한 촉감이 손끝마다 살아난다.

누비는 숨을 쉬는 옷이다.

누비옷을 입으면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 왠지 좋은 일이 생겨 날 것만 같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서릿발 같은 추위도 앞선 사람처럼 막아주고 가쁜 숨도 고른 호흡으로 보듬는다. 누비옷에 배인 색(色), 향(香), 미(美)의 은근함은 마치 온 누리를 물들이며 누벼가고 싶은 꿈을 꾸게 한다.

몇 년 전, 나는 누비장이 K선생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마당가에는 여기저기 천연염색을 하는 커다란 물통이 자리를 차지하고 포근한 감물과 쪽물 들은 옷감은 빨랫줄에 널려 출렁거리고 있었다.

K선생님은 바쁜 일손을 놓고 느닷없이 찾아든 방문객을 잔잔한 미소로 반겼다. 담담하고 고요한 눈매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오로지 누비옷에 바쳐온 일생을 대변해 주는 듯하였다. 따뜻한 차와 웃음으로 담소를 나누며 땀땀이 누벼온 귀한 옷을 선뜻 내어 주었다.

“마음에 들면 한번 입어 봐요.”

빗살무늬로 생생하게 누빈 옷은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고운 누비옷을 선보이며 온화하게 건네주던 그 마음 향기가 오래오래 남아있다.

K선생의 누비옷에는 한순간도 정신을 딴 곳에 두지 않는 아름답고 팽팽한 긴장감이 묻어난다. 죽비 내리치는 수행자의 깨어있는 삶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전통 손누비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품격 있고 섬세한 바느질로 맥을 잇는 정겨운 우리 옷이다. 소박한 옷감과 예스러운 멋이 운치를 더해 준다. 이불이나 베개, 방석이나 손지갑을 비롯한 조각 천을 잇대어 누빈 밥상보 같은 자잘한 생활용품 하나에도 기품이 느껴진다.

누비는 긴 시간의 숨결과 손끝으로 한 땀씩 촘촘하게 빚어내야 한 벌의 옷으로 탄생한다.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을 가지고 일정한 간격으로 올곧게 누벼야만 그 표면이 울지 않는다. 바느질의 땀수에 따라 세누비 잔누비 중누비로 나눠지고 또 납작누비나 오목누비 볼록누비로 구분되어진다. 삼각형이든 마름모꼴이든 균형을 잃지 않는 자세로 일직선으로 누비는 오직 일심으로 긷는 여인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누비는 기교가 없는 바느질이다. 안감과 거죽의 바늘땀을 고르게 한 뒤 규칙적이고 곧 박음질을 해야 한다. 보온성이 뛰어난 두터운 겨울옷은 솜을 넣어 시침을 한다. 누비고 감치며 깃을 다는 그야말로 정신통일을 하며 정교한 박음 선을 놓쳐서는 안 된다. 바늘에 실을 꿰어 마음을 다잡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노동의 산물이다.

누비는 먼저 입을 사람을 생각하며 옷을 짓고 옷 한 벌을 만드는 데 꼬박 20여 일이 넘게 걸린다. 자연을 닮은 듯, 단순하나 깊고 은근한 맛이 우러나고 담백한 곡선이 멋의 조화를 이뤄낸다.

나는 누비옷을 바라볼 때마다 움을 틔워 내는 봄의 새싹처럼 경이로움을 느낀다.

누비에 맺혀 있는 땀의 노래가 쉼 없이 이어지고 답답하리만큼 반복되는 작업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어 옷에 담긴 정성과 사랑이 스며오기 때문이다. 심혈을 기울여 촘촘하게 빚어 놓았지만 마디마다 여백의 미를 두었다.

누비에는 무수한 길이 보이는 것 같다. 고독과 싸우는 장인의 혼이 담긴 그 길 위에는 무수한 긴 이야기를 풀어놓은 듯하다. 속의 말 다 쏟아놓으나 이내 침묵의 수행에 들어 담담하다.

누비는 손때가 묻고 닳을수록 멋스럽고 구김도 없어 별다른 손질 없이 입을수록 마음 먼저 따뜻해진다. 오랜 지기처럼 두터운 정이 묻어나고 저물녘 절간 마당을 쓸고 있는 비질소리가 나는 듯하다.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올곧게 펼쳐놓은 세상을 향한 순일한 기도의 마음이 숨겨져 있다.

옷은 그 사람의 신분과 직업을 나타낼 수 있고 그가 지닌 취향과 독특한 감각까지 엿볼 수 있게 된다.

가끔씩 거리에서 누비옷을 입고 가는 사람을 만나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다시금 뒤돌아보게 된다. 누비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소음 속에서 찾기 어려운 고요의 빛깔을 본다. 밋밋하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질곡의 세월을 감싸며 살아온 무던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평생 나눔 봉사를 하는 나의 지인은 새벽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인 108배를 하며 하루를 여는 일상이 몸에 배어 있다. 수없이 꺾이는 무릎부분이 맨 먼저 닳아지면 헝겊을 덧대어 기워 입고, 구멍 나고 헐거워진 부분에는 다문다문 꽃잎 모양의 수를 놓는다. 누구나 자기 상처의 자리는 선명한 법인데도 파인 자리마다 새살 돋듯 동백꽃 수를 놓아 입는 그의 심성은 마치 선율이 느껴지는 누비옷을 닮았다.

삶의 행간마다 소리 없이 훈훈한 향기로 채워가는 사람들, 그늘진 구석구석을 비춰 주는 한줌 햇살이다. 선행자와 봉사자들의 표정을 보면, 달빛처럼 은은한 누비옷 빛깔과 향내가 나는 듯하다.

누비옷을 입으면 아랫목같이 따뜻한 ‘좋은 인연’의 환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끈끈한 혈육 같은 정으로 똘똘 뭉쳐진 식구들이다. 언젠가 나는 악성 빈혈로 쓰러져 촉각을 다투어 수혈을 받았을 때, 내 몸속으로 누군가의 눈물이 되고 땀이 되었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오롯한 실핏줄처럼 건강을 되찾았을 때 나도 그들의 도반이 되었다. 정갈하고 한량없는 마음으로 어떤 이는 헌혈을 하고 어떤 이는 장기기증에 힘주어 서명을 한다.

숨을 쉬는 한 벌의 누비옷을 짓는 것처럼 누군가의 가슴에도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 갈 것이다.

누비옷은 언제나 나에게 인생의 화두를 던지며 길을 가르쳐주는 참 스승 같다.

한 벌의 옷으로도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생을 누리고 또 하나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면 고운 누비옷 입고 날마다 거리로 나서고 싶어진다.





  <당선소감>


  나의 문학에도 봄이 오리니…


직장 동료들과 동지 팥죽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두근거리는 호흡을 고르며 마당에 한참 서성이니 무학산 능선을 넘어온 환한 달빛이 목련나무 가지에 걸립니다. 일렁이는 나뭇가지 사이로 무명수건을 쓴 어머니가 달빛을 털어내고 나는 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오래전 문학공부를 하러 가는 날,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던 덜컹거리는 마을버스를 목을 빼고 기다렸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산자락에는 ‘바람재’가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빛이 산란을 하며 동이 트는 새해 아침을 바람재에 올라 힘차게 떠오르는 새 기운의 빛을 만납니다. 바위 틈새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진달래가 성냥개비의 화약처럼 움을 틔우려 긴 숨을 모으고 있습니다. 기나긴 추위와 거친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고 나면 따스한 봄기운도 제일 먼저 닿아 온 산을 붉게 물들일 것입니다.

어쩌면 나의 문학도 이제 거칠고 낯선 겨울바람을 맞이하고 있나 봅니다. 꼭 봄이 오리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렵니다.

설익은 글 끝까지 읽어주시고 거듭나라는 채찍으로 용기와 영광을 안겨주신 경남신문과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 걸어온 글벗들의 추임새는 든든한 언덕이 되었습니다.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 가슴에 소나무 한 그루 심겠다던 사람, ‘좋은 인연’과 ‘마을에 눈이 많이 쌓이니 집으로 빨리 돌아오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는 정다운 이웃들과 가슴 벅찬 기쁨을 나누렵니다.

언제나 어머니의 마음으로 평생 누비옷을 짓는 분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 1960년 2월 23일 창원 출생.

  ● 1998년 ‘자유문학’ 신인상. 

  ● (주)용운산업 근무.


 

  <심사평>


  우리 옷의 미학과 철학 담아내


수필부문 응모작은 300편에 육박했다.

수필은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담는 글이다. 응모작들은 전체적으로 단순한 체험의 기록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체험을 통한 인생적 깨달음과 견해를 전하려는 의도가 엿보여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수필은 일상사의 기록에 그치는 게 아니라 체험에서 걸러낸 금싸라기를 의미의 보석으로 형상화시키는 일이다.

좋은 소재를 만나고 택하는 일이 중요하다. 인생적인 안목과 깊이가 뒤따라야만 좋은 소재를 만날 수 있다.

좋은 소재를 만나더라도 효과를 극대화하여 완벽에 가까운 솜씨를 구현해 내려면 구성에 있어서도 무리가 없어야 한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누비옷’은 우리 옷에 대한 애정과 전통미에 대한 탐구, 섬세한 관찰과 미의식, 옷에 대한 품격과 삶에 대한 깨달음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누비옷’과의 만남과 인연에 의해 체득한 우리 옷에 대한 미학과 철학을 잘 담아낸 작품이다.

당선작과 끝까지 겨룬 ‘고양이 길들이기’, ‘빗’이 있었지만 한 소재에 대한 정(情)의 손길과 사유와 울림에 있어서 ‘누비옷’을 능가하지 못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드리고 정진을 부탁한다.

심사위원 : 정목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