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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추사 유배지를 가다 / 성국희

 


유년으로 가는 길은 안으로만 열려있다


지나온 시간만큼 덧칠당한 흙먼지 길,


낮아진 돌담 사이로 먹물 자국 보인다


푸르게 날 선 침묵, 떨려오는 숨결이여


긴 밤을 파고드는 뼈가 시린 그리움은


한 떨기 묵란墨蘭에 스며 향기로 깊어졌나


허기진 어제의 꿈 은밀하게 달래가며


빗장 풀어 발 들이는 적막의 뒤란에는


낮달에 비친 발자국, 추사체로 다가선다




  <당선소감>


   "유년의 꿈, 그 아름다운 가슴앓이"


  새들이 일제히 저녁놀을 끌고 떠난 만큼 되돌아오는 시간입니다. 나 또한 어김없이 서창을 열고 유년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습니다. 어린 두 눈에 찰랑찰랑 채워지던 그 저녁답의 가슴앓이, 오늘은 그 시절의 나를 찾아가 따뜻하게 안아 주었습니다.

  한순간도 놓지 못한 간절한 바람이 가져다 준 커다란 선물은 아마도 서투른 내 삶의 편지를 읽어 줄 민병도 선생님과의 만남일 것입니다. 매서운 채찍질과 정성 가득한 말씀들을 이끼 앉지 않도록 닦아가며 뿌리 깊이 채우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가슴깊이 감사드리며, 바른 길을 따르는 제자가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또 귀한 인연으로 가족이 된 한결 동인 선배님들, 기쁘게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누구보다도 더 기뻐하실 아버지, 어머니 제 행복을 다 드려도 부족할 듯합니다. 텅 빈 가슴을 채워 줄 한줄기 햇살이라도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또한 글에 대한 나의 마음에 격려와 박수를 아끼지 않고 지켜봐 주는 남편과 범주, 승주에게 고맙다는 말도 함께 전합니다. 부족한 글에 담긴 불씨를 살려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서울신문사에도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우리 민족 문학의 귀한 자산인 ‘시조’, 그 정돈된 깊은 뿌리에서 삶의 자세를 배우고 있습니다. 시조의 품격에 자부심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에 정성을 다하는 시조시인이 되리라 다짐해 봅니다.




  ● 1977년 경북 김천 출생.
  ● 한결 시조 동인.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중.

  ● 제6회 백수 정완영 전국 시조 백일장 장원.

 


  <심사평>


  "역사적 글감에 현대정서 더한 수작"


  신춘문예 등단 신인들의 새뜻한 작품을 읽으며 새해 아침을 여는 마음은 늘 새롭다. 그들의 힘찬 날갯짓은 희망과 꿈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금년에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아 심사과정에서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결과 성국희씨의 ‘추사 유배지를 가다’를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작품은 역사적 글감에 현대적 감성과 정서를 배합하여 시대를 넘어선 시조 가락으로 알맞게 뽑아냈으며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형상화하여 현대적 어법으로 살려낸 점이 우수했다.

  최종심사에 오른 진수씨의 ‘지상의 방에 들어’는 뛰어난 착상으로 시조가 낡은 테마라는 인식을 벗어나게 한 작품이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 겹겹이 고인 삶의 진실한 단면을 유창하게 이끌어간 표현이 돋보였으나 당선에는 밀렸다. 고은희씨의 ‘색소폰 부는 난설헌’은 역사적 숨결의 속 울림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이었음에도 주제의식이 약해 보였다. 장윤혁씨의 ‘서울 타클라마칸 사막’은 탄탄한 구성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소재 선택에서 망설이게 했다. 송필국씨의 ‘사리 기어가다’는 섬세한 묘사와 유연한 가락으로 이미


 

심사위원 : 이근배, 한분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