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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도서관 / 신윤주

 

커다란 눈이 하늘을 올려다봐요. 수백의 실핏줄들이 네모난 바스켓을 움켜쥐어요.


하늘로 날아올라요. 바다의 표지는 잔잔해지고, 파도가 물러간 페이지마다 떠밀려온 해인초들이 엉겨 붙어요. 해인초가 손끝에서 잘게 부서져요. 낮과 밤을 알 수 없는 시간이 이어져요. 키잡이는 가시 박힌 손으로 안개를 더듬으며 항로를 찾고 있어요.


날씨만 도와준다면 오늘 안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그곳에 만


나야 할 사람들이 있거든요. 시커먼 해초들이 대서양을 밀고 들어와 바다의 귓속에


이야기를 풀어 넣어요. 귀를 막아도 노랫소리가 들려요. 저기 범고래 떼가 몰려와요. 표류하는 낱말 조각들을 등에 실어 해안선으로 날라요. 실핏줄이 터지고, 열기구가 휘청거려요. 행운이 문단 밖으로 달아나려 해요. 숨이 차요. 하강하고 있어요.


저 멀리 익숙한 초록색 대문이 보여요.마당에는 안개꽃이 흐르고요. 열린 창문으로 파도가 들이쳐요. 파란 잉크가 옷에 튀어요. 발목이 잠겨 첨벙거려요. 이만 돌아가


야 해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손끝으로 모래의 지문들을 털어내요. 숨을 크


게 들이쉬어요. 한없이 부풀어 올라요.




  <당선소감>


   "여전히 물음표지만 이 길 계속 가겠다"


올해는 무척 힘든 한해였습니다. 일 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우리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안도했고, 시를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에 감사했습니다. 시가 왜 저를 찾아왔는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시를 쓸 때 가장 행복합니다. 용기 내어 검색창에 시 창작 모임을 검색했던 그 날과 부랴부랴 자작시를 들고 찾았던 다음날의 합평 자리처럼 시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고 물음표입니다.

시는 제 삶으로부터 가장 멀리 가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도피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도피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천천히 돌아오는 사람이었습니다. 되돌아오는 길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수수께끼 같던 세계 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것이 나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서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힘내서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게 격려해주신 허영선, 문태준 두 심사위원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쓰는 사람으로 남겠습니다. 저에게 시를 가르쳐주신 최금진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 안에 시라는 씨앗을 심어주신 제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김옥수 교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읽은 시의 모든 시인님, 그리고 저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모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족들, 친구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같이 시를 쓰는 문우들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시와몽상' 식구들, 민주쌤, 민혜쌤 고맙습니다. '시옷서점'의 두 시인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과 함께 시를 읽고 쓰는 우정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를 항상 지지해주는 우리 김작가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이름을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이금옥 님, 당신이 계셨기에 제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 1986년 제주 출생 
  ● 제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심사평>


  상상력의 탄탄한 근력과 섬세한 서정


한라일보 신춘문예 본심에 오른 시 작품들을 차근차근 읽었다. 서정적인 작품들이 다수 있었고, 고유한 제주 체험에 기초해 창작한 작품들도 여러 편 있었다.

한 편의, 새로운 시의 탄생은 하나의, 초유의 관점의 탄생일 것이므로, 한 편 한 편에 과연 시적인, 유의미한, 최초의 발견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생각의 단순한 열거에서 벗어나 그 생각들이 유기적으로 상관하고 있는지도 꼼꼼하게 살폈다.

마지막까지 논의한 작품은 '살구나무', '감자꽃', '그리고 '도서관'이었다. '살구나무'는 무위(無爲)를 노래한 작품이었다. 살구나무의 순연한 생명 운동을 번거로운 잡사(雜事)에 시달리는 사람의 형편에 대조해서 바라본 작품이었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이 이 작품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감자꽃'은 제주 4·3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감자가 자라는 땅속 어둠의 공간을 피신한 공간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 공간이 "검은 봉지"의 공간으로 갑자기 전환되는 대목은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고심 끝에 시 '도서관'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시는 해역(海域)을 책 혹은 도서관의 공간에 견준 작품이었다. 바다의 파도와 해초, 해안선 등을 한 권의 책의 표지와 책 속에 담긴 서사로 치환했다. 상승과 하강, 평면적인 것과 입체적인 것의 경계를 내내 활발하게 허무는 점이 신선했다. 첫머리에서 끝자락에 이르도록 산문시 시행을 끌고 가는 상상력의 탄탄한 근력뿐만 아니라 풍경을 드러내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화자의 목소리가 돋보였다. 그리고 함께 응모한 작품들 전편에서 유니크한 시적 화자를 만날 수 있었던 점도 새로운 신인의 출현을 한껏 기대하게 했다. 앞으로 서두르지 않고, 심지 굳게 자신만의 시세계를 열어 나가길 바란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허영선, 문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