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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돌고래 기르기 / 한준석

 

미소는 돌고래로 기르기 좋습니다

돌고래의 주파수를 라디오로 들어요

나는 무심하게 시작되어집니다

축축하게 연필심이 밤새 헐었습니다

돌고래는 미소에 좋습니다


나는 웅크리기 좋은 무게로 태어났어요

돌고래의 고도는 새떼의 무게 같아요

새들이 흩어지는 사이로 연필 소리가 들립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나가는 새를

잃어버렸다 말할 수 있을까요

나무에 없는 새들을 세어보는 일은

열 손가락으로 모자라고

두 팔로는 충분한 일입니다


돌고래를 기르기에는 남해에 사는 당신이 좋습니다

눈 내리는 남해로 가는 버스 창밖

길러 본 적도 없는데

둥글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바라봅니다

나는 당신의 웃음을 빌려 가벼워지고 싶습니다

일기예보에 오늘 아침은 잔기침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안정은 멀리 있습니까

나는 이런 예감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눈 감으면 버스의 흔들림만 남겨집니다


나는 돌고래가 아닙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릴 줄 압니다

잘 가, 돌고래는 휘어지는 몸짓으로 수평선을 밀어내고 있어

끝에서 끝이 부드럽게 멀어져야 좋은 미소

나는 돌고래로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돌고래는 미소를 기르기에 좋습니다 슬픔을 조심합니다

세계는 서로를 미끄럽게 기를 줄 알고

나는 입김에서 햇빛으로 조용하게 옮겨집니다


나는 한 종류의 돌고래가 됩니다



  <당선소감>


   "바르셀로나에서 마음먹은 꿈 이뤄… 앞으로 더 정진할 것"


바르셀로나에서 처음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한국의 가을쯤 되는 때에 사람들이 반팔을 입고 돌아다닙니다. 시차를 생각하지도 않고 한국으로 연락을 걸었던 사람은 지금까지도 소설가의 마음을 지닌 채 의자에 기대 있습니다. 귀국 후 시를 쓰겠다고 홀연히 들어간 양평의 산골 집 옆에는, 기면증 걸린 수학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가끔씩 제 시를 보고서는 재미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학교에 입학해 허우적대던 나의 손가락에, 시차가 달랐던 그 형이 같은 학교를 다니며 연필을 쥐여줬습니다. 그렇게 올해까지 시를 썼습니다. 소감을 쓰고 있는 지금 제 옆에는 이름만 종이에 썼다 지워도 오랫동안 머무를 사람이 있습니다. 은별아, 너무 고맙다. 모두 감사합니다.

나의 애칭 꾸르끼, 바르셀로나의 지영 누나와 토미 형! 보고 싶어요. 제 은사님이신 권혁목 선생님, 중요한 순간마다 해주셨던 말씀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아, 너희 덕분에 내 많은 순간들이 아름다웠어! 지금까지 시를 쓸 수 있도록 도움 주신 선생님들, 앞으로도 헤매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아버지, 어머니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누나, 매형 항상 응원해 줘서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저의 가능성을 너그럽게 높이 사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시를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시가 너무 좋습니다.


  ● 1990년 출생
  ●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작품마다 상처 치유코자 대변… 과장되지 않은 비유·상징어 눈길


저마다 고립된 외딴섬처럼 단절과 멈춤이 뼈저렸고, 과연 우리가 우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물음만으로도 버겁고 지난했던 시기. 예심을 거친 스물다섯 분의 시편들이 공통적으로 시절의 무력감에 대응하며 상처와 아픔을 치유코자 대변하고 있었으니, 왜 문학이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을 안기며 시대의 가늠자 역할을 자임하는지 여실히 실감케 했다.

최종 논의로 하연, 김성백, 홍진영, 변혜지, 한준석 씨의 작품을 주목했다.

하연의 작품은 익숙한 표현과 소재들이란 점이 아쉬웠다. 김성백의 경우 팬데믹 시대를 겪고 있는 젊은 세대의 고민을 엿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지만 감정과 표현이 곰삭을 시간이 필요하리라 여겨졌다. 홍진영에게서는 시어와 이미지를 다룰 줄 아는 기본적인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몇 개의 서툰 문장들이 심사자의 눈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장래를 위해서 올해의 보류가 본인들에게 더 큰 득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긴 시간 변혜지의 ‘언더독’과 한준석의 ‘돌고래 기르기’를 놓고 토론을 벌였으나 아쉽지만 당선에 준하는 가작 2편을 뽑기로 합의했다.

변혜지의 ‘언더독’은 남다른 사유의 깊이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과장되지 않은 비유를 제대로 다룰 줄 알았고, 절제된 수사의 미덕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어 모자람을 찾기 어려웠다. 막힌 혈로를 뚫듯 날카롭고 예민하되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아우르는 너끈한 묘사력을 겸비했으니, 이만한 사유의 세계라면 우리 시단을 풍요롭게 메우고도 남으리란 믿음에 선작(選作)으로 민다. 언제까지 무거운 짐을 걸치고 거침없이 나아갈지 모두가 기대를 걸고서 지켜보리라.

한준석의 ‘돌고래 기르기’는 ‘돌고래’라는 상징어를 넣어 이미지가 보일 듯 말 듯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미소는 돌고래를 기르기에 좋습니다”의 표현이 말하듯 시가 기본적으로 비유의 장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돌고래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불분명하지만 시 내용으로 보아 사랑, 꿈, 슬픔, 기쁨까지 다 아우르게 한다. 돌고래 자리에 이 단어들을 집어넣고 읽어보면 금세 느껴질 것이다.

두 분을 축하하며 최종심에 오른 분들도 조만간 지면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위로의 말씀을 얹는다.

 

심사위원 : 김영남, 이학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