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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물결을 읽다 / 김재호

 

어시장 뒷골목의 기억은 파랑이다

바다가 심장을 통째로 내어놓은 듯

난전에 퍼질러 앉은 저 장엄한 주검이여


장황한 설명이나 단출한 부연 없이

물결처럼 그어지는 운명을 받아 든다

파도가 가르쳐 주던 거스름의 무늬를


꿈과 이상은 미완의 섬, 현저한 온도차

제 삶에 일어나는 파문을 다독이며

조각난 물빛 삼키듯 처분만 기다리네


언젠가 푸르던 그 바다로 돌아가면

배 밑에서 춤추며 퍼덕이던 날개 접고

통통배 갯배 머리에 장승처럼 서리라




  <당선소감>


   "백지가 되어 날개를 펼치리라"


저에게 왜 시를 쓰냐고 묻는 분들에게

시를 짓는 것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저에게 찾아온 친구를 반갑게 맞은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맛난 음식을 대접하고, 향기로운 차를 나눠 마시며, 밤을 새워 이야기꽃을 피우듯이 그렇게 저를 찾아온 친구에게 진심으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소중한 문우들에게 우편물을 보내기 위해 서둘러 우체국 가는 길에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언젠가 밀포드 사운드 가던 길에 만난 만년설이 녹아 흐르던 계곡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듯 한 청량감, 제트보트로 호수를 가르던 상쾌함이 거침없이 밀려오는 감동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허술한 울타리 같은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준 가족들 사랑합니다.

시 뜨락에서 만난 멋진 선생님들, 문우들 그리고 시조의 참맛을 알려주신 서숙희 선생님, 우리 시조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과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풋내 나는 엉겅퀴 같은 글을 책망치 않으시고 보듬어주신 윤석산 심사위원장님, 이달균 본심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소중한 기회를 허락해주신 <뉴스N제주>와 심사위원님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 좋은 글을 쓸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고 울림이 있는 시적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시조의 율격은 지키되 신선한 이미지를 불러와 언어의 바다를 맘껏 헤엄쳐 가겠습니다. 우리 언어의 아름다운 결을 잘 살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출생지 경북 포항
  ● 주소 경북 포항시
  ● 1961년생
  ● 현대제철주식회사 근무


 

  <심사평>


  바다로 향한 무한한 자유의지를 잘 응축시킨 작품


한 송이 매화의 개화처럼 신춘문예의 관문을 열고 나온 작품은 뜨겁다. <뉴스N제주>의 신춘문예 작품을 그런 설렘으로 만났다.

코로나19가 전대미문의 팬데믹 현상을 초래했으므로 자칫 감정이 절제되지 않은 생경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지 않을까 염려하였으나 다행스럽게도 정형의 본연에 입각한 작품들이 응모되어 시조의 바탕이 매우 튼실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현대시조는 원심력과 구심력의 경계 위에서 존재한다. 정형의 형식 속에서 일탈하려는 자유의지가 원심력이라면 그 일탈의 끈을 팽팽히 당겨 정형의 가락으로 제어하는 힘이 구심력이다. 이 상반된 힘의 구심력 위에서 사유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좌우된다.

신춘문예는 늘 신인다운 패기와 참신함을 우선할 것인지, 3장6구를 이루는 시조적 보법의 안정감에 무게를 둘 것인가로 고민하게 된다. 물론 이 둘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 더없이 좋겠지만 신인에겐 쉽게 극복될 문제는 아니다.

인적사항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로 작품접수번호만 매겨진 1,2차 예심을 통과한 작품 79편을 우편으로 받았다.

최종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소나기」(24번), 「가구박물관에서」(141번), 「물결을 읽다」(114번) 등이었다.

「소나기」는 우선 구와 구를 짓는 안정감과 장과 장 사이의 적당한 여백이 상당한 습작의 시간을 보여준다.

제재를 끌고 가는 첫수의 긴장감이 좋았으나 수와 수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호흡이 딸리는 아쉬움이 컸다.

「가구박물관에서」는 시대와 불화하는 빛 잃은 대상에 대한 애정을 5수로 노래한다. 다양한 시어를 차용하여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서사성에 주목하였으나 의욕의 과잉으로 인해 시조의 장점인 절제와 응축을 간과한 점, 주제를 선명히 그려내지 못한 부분이 걸렸다.

이에 비해 「물결을 읽다」는 어시장 난전에 놓인 생선들을 통해 난바다의 푸른 속살과 새로운 잉태에 대한 염원을 잘 그려낸 수작이다.

기승전결의 단아한 구성력을 보여주었고, 바다로 향한 무한한 자유의지를 내적으로 단단히 응축시키려는 노력을 높이 샀다. 다만 함께 보낸 다른 작품들에서 만족할만한 성취를 보지 못했으나 미흡한 부분은 앞으로 극복해갈 과제라 생각하여 이 작품에 당선의 영예를 안겨준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아쉽게 선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는 더욱 가열한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 이달균, 윤석산, 송인영, 장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