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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부여 / 황바울

 

유적 같은 도시에서 유서 같은 시를 쓴다

아버지와 어색하다 식탁이 너무 넓다

갈증이 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물을 따랐다



날개 뜯긴 잠자리처럼 눈알만 굴려대다

발소리 죽이며 잠자리를 빠져나온 밤

유유히 강이 흘렀다 삼천명이 빠졌는데도


사계절이 가을인 이곳에서는 모두 안다

찬란은 잊혀지고 환란은 지워진다

오늘은 얘기해야지 밥을 꼭꼭 씹었다



*백마강변 낙화암에서 삼천명의 궁녀가 뛰어내렸다는 전설이 있다



  <당선소감>


   "시조와 동화·소설까지… 나는 패기로 글을 쓴다"


사과는 잘해요

죄송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아임 소리

나는 소리입니다

사각사각

사과를 베어물면 나는 소리입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과

사과는 둥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사각은 원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조대휘 장로님의 장례가 끝나고 바로 다음 날,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이 마냥 슬프지 않게끔 선물을 주신 건 아닐까 싶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손자가 되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언제나 힘이 되는 ‘문학살롱 폰’의 폰남정·폰미정·폰이정, 대일문학회와 펄스 식구들, 사랑으로 지도해주신 최승호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글을 많이 써서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시조뿐만 아니라 동화, 동시, 소설도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아직 패기가 남아있습니다. 많은 청탁 기다리겠습니다.

글뿐만 아니라 그 외의 수단으로도 독자들과 만나고 싶어 인스타그램을 만들었습니다. @munhaksalon 문학 얘기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1990년 서산 출생
  ●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화 부문,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수상


 

  <심사평>


  가정과 청춘, 그 이상의 의미를 절묘하게 확장


모두가 힘들 때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나. 무력감을 뚫고 닿은 응모작들에서 위기를 양식 삼아온 문학의 오랜 힘을 다시 본다. 많은 응모자가 정형시의 미래를 새로 쓰려는 듯 긴 고투의 시간들을 투고해왔다. 그런 마음의 갈피에서 문학의 본연을 돌아보며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 읽었다.

끝까지 되읽게 한 작품은 ‘파우치’, ‘먼저 끊으면 안 되는 전화’, ‘자이로 나침반’, ‘붉은색 동화’, ‘닻별’, ‘부여’ 등이었다. ‘파우치’와 ‘붉은색 동화’는 역동적인 언술이나 표현의 확장성에 비해 발효되지 않은 관념과 진술의 과잉이 걸렸다.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버무린 ‘먼저 끊으면 안 되는 전화’나 형식에 어울리게 시적 조율을 해낸 ‘자이로 나침반’의 시인은 계속 시조에 집중할지,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다. ‘닻별’은 의욕적이나 비슷한 표현들이 초래하는 이완의 노정으로 내려놓았다. 이런 지적을 넘어서는 마지막 작품으로 ‘부여’를 들어 올렸다.

당선작 ‘부여’는 정형의 간명한 구조화와 형상력이 빼어나다. ‘아버지와 어색하다 식탁이 너무 넓다’거나 ‘날개 뜯긴 잠자리처럼 눈알만 굴려댄다’ 같은 묘사는 요즘 가정과 청춘의 압축으로 절묘하다. 비유도 적실해서 ‘유적’/‘유서’, ‘잠자리’/‘잠자리’, ‘찬란’/‘환란’ 등은 언어유희 이상의 의미 확장을 견인한다. 특히 ‘밥을 꼭꼭 씹었다’는 대목은 단순하지만 단순치 않은 촉발로 뭔가 시작하려는 다짐과 암시를 오롯이 빚는다. 코로나19처럼 어느 힘든 상황에 대입해도 좋은, 밥의 힘을 조촐히 빛내는 것이다.

황바울씨의 당선을 축하한다. 시조도 꼭꼭 씹으며 더 심화해가길 바란다. 다시 시조를 다잡을 응모자들께도 더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대를 전한다.

심사위원 : 정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