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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벗고싶은 봄 / 조규하

 

코로나 바이러스 마스크 5부제가

담쟁이 넝쿨처럼 담 벽을 둘러쳐도

빈손을 탈탈 털며서 제 집으로 가는 봄


내 맘이 네 맘이니 맘 편히 갖으란다

더불어 같이 갈까, 미래를 통합할까

정의를 공화하려는 선거판에 열띤 봄


한 끼 밥은 건너가도 맨입으로 못나가요

거리마다 입을 막고 거리를 두는 사이

우리는 서로 몰라요 각자가 따로지요


요일마다 수량 한정 봄날도 매진인데

선착순 이라는 말 불안하기 짝이 없어

언제쯤 입을 벗나요, 입술도 맞출까요





  <당선소감>


   "초심 잃지 않고 한 걸음씩 내딛을 것"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왔던 당선소식은 한동안 저를 멍하게 했습니다. 실감은 한 템포 뒤에 오는가봅니다. 오랫동안 시를 가까이 해오다가 5년 전 우연한 계기로 시조를 쓰는 교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귀 너머로 듣고 배운 우리 민족문학, 시조의 매력은 아직까지 저를 설레게 합니다. 고등학교문학교사로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아이들 지도에는 별 막힘이 없었는데 정작, 스스로 신춘이란 문을 열고자하니 이루 말 할 수 없이 막막했습니다. 먼저 기라성 같은, 선생님들 작품을 읽으며 호흡을 익히고 보법을 가늠하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젊은 시대감각을 익히고자 애썼습니다. 그렇게 두해가 지날 무렵, 개인적인 큰일을 겪느라 급격한 시력저하로 위기가 왔습니다. 그럴수록 마음을 추스르며 기도했습니다. 그 중 한 톨에서 이렇게 뿌리가 내릴 줄은, 늦은 나이여서 노심초사하던 내 텃밭에도 꽃이 필 줄은!

지난 한해 바이러스의 전쟁 속에 정치도 경제도 목소리가 갈라지고, 우리 모두는 경계의 눈초리로 살아왔습니다. 자꾸 격상되는 코로나의 단계 없이 덮어 쓴 마스크를 벗어놓고 나 이런 사람이요, 하며 맨입으로 다닐 수 있기를 꿈꿉니다. 신춘을 준비하는 내내 지극히 평범한 지난날의 일상이 큰 축복인 것을 소중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제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첫 열매의 감사를 올립니다. 곁에서 마음 함께 해주셨던 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하며 시조단의 문을 열었으니 처음을 마음을 잃지 않고 한 걸음씩 내딛겠습니다.



  ● 1953년 충북 영동출생. 
  ●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 석사졸업.
  ● 한세대신학대학원, 목회학과졸업. 
  ● 서울 양재고등학교 문학교사로 정년퇴임. 


 

  <심사평>


  새로운 변화 시도한 다양한 형태의 시조 주목


올해의 심사기준은 치열한 사회의식과 진솔한 삶의 현장이 녹아있는지, 관념이 아닌 구체성을 담아내었는지, 이미지의 텐션이 탁월한 지에 중점을 두었다. 작품은 예년과 엇비슷한 편수였으나, 코로나의 영향으로 어둡고 초조한 형태의 가족사가 더러 눈에 띄었다. 최종으로 ‘연명’ ‘내일은 쉽니다’ ‘변신을 하다’ ‘벗고 싶은 봄’을 남겼다. ‘연명’은 쇠약한 노인과 만개를 앞둔 목련과의 교감이 시선을 끄는 반면, 각 장의 느슨함과 서술적인 표현이 아쉬웠다. ‘내일은 쉽니다’는 경쾌한 말의 유희가 살려낸 리듬감이 남달랐으나 종장의 허술한 맺음이 흠결이었다. ‘변신을 하다’는 노가리에서 명태로 변해가는 과정의 감정이입이 감동을 이끌어냈으나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이을 떨칠 수 없었다.

조규하의 ‘벗고 싶은 봄’ 은 보고 들은 일상의 잡동사니를 끌어와 시조의 자리에 앉힐 줄 아는 시각을 높이 샀다. 첫수 초장을 독립적으로 끌어내지 못함이 걸렸으나 전염병바이러스와 마스크라는 초유의 사태를 짚어가며 정치사회를 발랄하게 견인하는 보법이 신인다운 면모를 보였다. ‘한 끼’와 ‘맨입’의 상관관계, ‘입을 벗’고 ‘입을 맞’춘다는 이중적 의미도 잘 살려냈다. 함께 투고한 서정성 짙은 ‘분수’와 삶의 현장을 담은 ‘시력검사’의 완성도가 오늘의 영광을 뒷받침해 주었다.

정치인들은 정치가 생물이라고들 말한다. 변화의 양상이 다양하다는 것,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 이전에 시가 그렇다. 어디로 튈지 빤히 보인다면 얼마나 싱겁겠는가. 밟혔는데 매번 꿈틀거리기만 한다면 지렁이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밟히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밟은 발에 대차게 대응도 해야 시각이 열리고 새로운 시조가 되는 것이된다. 신인의 패기야말로 신춘의 생명이다. 선배들의 눈길이 머문 곳에 기웃대지 말고, 그 너머까지 시공을 증폭시키길 바란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남은 자에게는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이승은, 전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