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제비집 / 임태진

 

푸른 오월 하늘에 제비 한 쌍 날아와서

한 올 한 올 물어온 흙더미와 지푸라기

이 세상 가장 튼튼한 집 한 채를 지었다


사글세로 떠돈 세월 돌아보니 아득한데

앞만 보고 달려온 날들의 보상인 듯

한 생애 빛나는 훈장 처마에 걸리었다


집이래야 단칸방 남루한 살림살이

굳이 인가에 와 터를 잡는 이유는

질기디 질긴 인연을 내려놓지 못함이다


결국 산다는 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강남으로 돌아갈 날 죽지로 헤아리며

해마다 삶의 이력에 둥지를 틀고 산다




  <당선소감>


   "언 가슴에 온기를 전할 수 있는 글 쓰고 싶어"


  당선 소식을 접하고 나서 한 동안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찰나에 시와 함께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고교시절 윤동주, 한용운님의 시를 유독 좋아했었던 기억, 90년도에 방송통신대학 국문과에 입학하여 문학회 활동을 하면서 시와 인연을 맺었던 기억, 그 후 6년 동안 열정적으로 글을 쓰다가 시대 변화와 생활고 때문에 한동안 시 가슴을 닫았던 기억까지, 그렇게 10여년이 흐른 2008년에 정드리문학회에 가입하여 다시 시 가슴을 열고 지금까지 글을 써왔습니다.

  한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보냈던 무수한 시간들, 힘든 싸움이었지만 정드리문학회라는 기댈 언덕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카페의 작품토론방과 오프라인을 통한 합평회를 하면서 쓰고 지우고를 수없이 반복해 왔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말로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 어쩌면 저도 오랫동안 오늘을 꿈꾸어 왔기 이러한 영광이 찾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주신춘문예 당선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잘 압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제주의 아픔과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고 언 가슴에 온기를 전할 수 있는 따뜻한 작품 한편 쓸 수 있는 그날 까지 끄덕끄덕 걸어가겠습니다.

  설익은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신춘문예의 장을 마련해주신 뉴스제주신문사 관계자께 머리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구좌119센터 직원들과도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사랑하는 내 가족에게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조금이나마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앞으로는 모든 걸 작품으로 말하겠습니다.




  ● -

.

 


  <심사평>


  "삶의 이력, 우리 생의 아름다운 집 한 채"


  2011년 뉴스제주 ‘영주일보 신춘문예’는 전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작품을 보내왔다. 심사위원들은 267편에 이르는 응모작을 윤독하면서 탄성을 질렀다. 우리의 민족문학인 시조에 대한 열정이, 바다 건너 탐라까지 불꽃처럼 타올랐기 때문이다.

  제주지역 신춘문예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응모하신 많은 분들이 제주의 정서를 작품에 펼쳐 보였다. ‘해녀, 용두암, 오름, 서귀포, 우도’ 등이다. 작품을 무리하게 이끌고 가느라 그러한 시적 주제들이 큰 결실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생활 속에서 발견한 소재들을 긴강감 있게 끌고 가는 응모작들이 눈에 띄었다. 감상을 진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치밀한 묘사와 관찰로 새로운 감흥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최종심에 오른 임태진의 「제비집」, 이창선의 「섶섬」,오창래의 「우도 생각」, 문제완의 「石衣, 바위가 옷을 입다」, 백점례의 「물의 길은 희다」가 올라왔다.

  「우도 생각」은 우도를 어머니와 아버지의 절규로 중첩시키면서 시적 발상을 전환하였으나, 언어를 함축시키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石衣, 바위가 옷을 입다」는 4수로 이끌면서 시적 전개는 무리가 없었으나 부분 부분을 설명으로 처리해 전달의 힘이 약했다.「물의 길은 희다」는 시조를 다루는 부드러움의 힘은 앞섰으나 주제를 살리지 못해 난해한 면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임태진의 「제비집」과 이창선의 「섶섬」으로 압축되었다. 이창선의「섶섬」은 나뭇잎 섬으로 귀결하면서 그 풍경을 서귀포와 연결, 전개한 사유의 힘이 있었다. 예컨대 임태진이 다른 작품 「화재주의보」연작에서 보여준 삶의 비명과 탄식처럼. 그러나 「제비집」에서 사글세의 남루한 살림과 삶의 여정을 이입해 특히 “해마다 삶의 이력에 둥지를 틀고 산다”에서 볼 수 있듯이 춥고 가난한 우리 생의 아름다운 풍경과 서정의 밀도를 더 높이 평가했다.

  심사 결과, 당선작으로 임태진의 「제비집」을 뽑았다. 앞으로 더 깊은 사유와 서정을 펼쳐 시조문학의 재목이 되기를 바란다. 끝까지 남으신 분들의 작품에도 깊은 애정을 금할 길이 없다. 이번 계기로 도약의 시간을 갖도록 부탁드린다. 


 

심사위원 : 이승은, 박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