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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신 한림별곡<新翰林別曲> / 김영란

 

전갱이 잔뼈 같은 어젯밤 하얀 꿈도

북제주 수평선도 가로눕다 잠기는

은갈치 말간 비린내 눈이 부신 이 아침


바람소리 첫음절이 귤빛으로 물이 들고

닻들도 기도하듯 조용히 기대 누운

기우뚱 포구에 내린 오십견의 저 바다


우리가 불빛들을 희망이라 말할 때

행성처럼 떠도는 비양도 어깨 위에

등 뒤로 가만히 가서 손 한 번 얹고 싶다




  <당선소감>


   "개미 가는 길에 이정표 세워줘서 감사"


  베란다 창을 기어오르던 나팔꽃이 '무의미 연명치료'를 받던 어머니처럼 핏기 없는 알몸으로 겨울을 견디고 있다. 세상과 하직을 하기 위해 몸에서 하나씩 떼어내던 호스들이 마지막 잎새처럼 떨어져 나갔다.

  그 아래로 전설 속 아픈 사연의 백일홍, 눈물로 피는 꽃이라는 듯 석 달 열흘 울다 닦은 얼굴이 부옇다. 바로 옆에 있는 샐비어. 혈색소 미달인 꽃잎마저다 떠났는데 유독 줄기 하나에 남아 있는 진주황 꽃잎. 그 꽃잎을 따라 개미가 길을 가고 있다.

  길…. 이 세상 어디에나 길은 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든 길짐승 날짐승이 사는 세상이든 개미와 같은 곤충이 살아가는 세상이든. 수많은 길 중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은 것 같지만 또 그리 많지 않다. 그 길에서도 삶은 늘 우리에게 어느 길로 갈 거냐고 선택을 강요한다. 중요한 시점에서 길은 언제나 여러 갈래로 나 있기 때문이다. 개미는 샐비어를 택했다. 개미의 길은 샐비어 줄기인 것이다. 샐비어도 누군가의 길이 되고 있는데 나는 누군가의 길이 되어주고 있는가? 개미의 길을 보며 내가 가고 있는 길을 돌아보는 오후다.

  내가 가는 길에 이정표를 곱게 새겨서 세워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우선 깊이 감사드린다. '독자로 남는 게 어떠냐' 타박은 하면서도 시가 나와 있는 신문은 죄다 스크랩해줬던 평생지기 남편에게도 고맙단 말을 해야겠다. 주변에서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다. 마음 깊은 곳에서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응모 마감일에 꿈속에 찾아오셔서 귀띔을 해주신 시아버님과 아버님께서 사랑하시는 어머님. 두 분 영전에 영광의 꽃다발을 올린다.



  ● 1965년 제주 출생.
  ●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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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신인 이지만 시상 전개 솜씨 빼어나"


  신인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기성 작가를 뛰어넘는 참신성이다. 이번에 응모된 작품들의 특징은 고른 수준을 유지하면서 개성 있고 언어 감각이 뛰어났으며 대상을 장악하는 능력이 기성에 못지않았다는 점이다.

  당선작 김영란의 '신 한림별곡(新翰林別曲)'은 신인다운 신선함이 묻어나면서도 시상을 전개해 나가는 솜씨가 빼어났다. 반짝 낚아채는 묘미, 강한 주제 의식 등이 언어 수련 과정을 상당히 거친 것 같아 믿음이 간다.

  이외 최종심에 오른 성국희의 '시간의 길-천전리 암각화'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매우 세련되었고 구성의 완결성도 돋보여 당선작과 겨룬 우수작이었다. 진수의 '공작도시'는 개성 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으나 신인에게 필요한 참신성이 다소 약했다. 서덕의 '컴퓨터 대화법'은 소재 선택에서 오는 신선감은 충족시켰으나 작품 속에 흐르는 어둡고 침울함이 새해 분위기와는 거리를 느끼게 했다. 고은희의 '쉿!' 은 시상의 발상이 독특하고 응모 작품 모두가 고른 수준을 유지했음에도 기교적인 면이 지나쳐 밀려났다. 장윤서의 '봉숭아꽃 누이-디도스 바이러스'는 소재 선택, 구성력이나 글감을 다루는 솜씨가 나무랄 데 없었으나 내용에서 병적 우울함이 비쳐져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송필국의 '일어서는 빛-해송 현애(懸崖)'는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당선의 벽을 넘기에는 미진했다.

  당선작은 한 편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에서 최종심에 오른 우수한 작품들의 탈락이 아쉬웠다.



심사위원 : 한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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