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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한낮의 유령 / 김진희

 

※(註)제목 '한낮의 유령'은 보들레르의 시 '일곱 늙은이들' 가운데 "붐비는 도시, 환상에 가득한 도시, 그곳에는 한낮에도 유령이 걸어 다닌다."라는 문장에서 인용했다.


등장인물

노인(70대)

남자(40대 초반)

커피아줌마(50대 후반)

소년(10대)

순경(30대 후반, 남자와 1인 2역)


공간

혼잡한 도시의 어느 공원


시간

현재, 여름


무대

무대 위에는 벤치 하나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1장

무대, 밝아진다. 매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추레한 행색의 남자, 벤치에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노인, 바둑판과 바둑알을 들고서 등장해 남자가 앉은 자리의 주위를 서성인다. 그는 한참 동안 누군가를 찾는다. 이윽고 남자와 노인이 눈을 마주치게 되면,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노인 이 봐.

남자 (당황해서) 예?

노인 저기, 김 씨 못 봤어?

남자 …누구요?

노인 김 씨. (급하게) 그- 저, 수염 덥수룩하게 난 양반.

남자 그게 누군지 제가 잘……(객석 어느 곳을 가리키며) 저기… 저 분이요?

노인 아니, 저건 박 씨고.

남자 (다시 다른 곳을 가리키며) 아, 그럼 저 분이요?

노인 아니, 아니. 저건 황 씨잖아.

노인은 남자의 옆에 바둑판과 바둑알을 두고 벤치에 걸터앉아 이마의 땀을 닦는다.

노인 아니 이 노인네가 대체 어디 갔어?

남자 다짜고짜 저한테 그렇게 물어보시면… 제가 알 리가 없잖아요, 어르신.

노인 여기 언제부터 앉아 있었나? 여긴 나랑 김 씨 자린데.

남자 자리라뇨. 이런 공원에서 무슨…

노인 그 자리 말이야. 자네 엉덩이를 붙인 그 자리. 거기에 늘상 김 씨가 앉아 있었거든. 말하자면 여기가 나랑 김 씨 지정석 같은 거라구.

남자 그러니까, 제가 왔을 땐 여기 아무도 없었습니다.

노인 김 씨는 털 복숭이 노인네야. 그, 수염 좀 어떻게 하라고 잔소리를 해대도 변하지를 않어. 옷도 매일 같은 것만 입어서 단벌신사라고들 놀리는데, 뭐 가 좋은지 그저 허허실실 웃기만 한다구. 그 양반 입고 다니는 옷이…

남자 아뇨, 저는 글쎄 본 적 없다니까요, 그런 분.

노인 (툴툴대며) 아, 나랑 바둑 두기로 했는데. 여즉 안 왔단 말이야?

사이. 노인의 시선이 남자에게로 향한다.

노인 바둑 둘 줄 알어?

남자 바둑이요?

노인 김 씨 올 때까지 상대 좀 해줘.

남자 …예?

노인 왜, 바뻐?

남자 아뇨, 바쁘다기 보다는…

노인 바쁜 사람이면 여기 이러구 안 앉아 있지. 봐, 다들 할 일 없고 갈 곳 없 는 늙은이들, 살찐 비둘기들 천지거든. 그래, 지긋지긋해, 아주.

남자 (노인의 시선을 피하며) 그럼 저는 이만…

노인 갈 거야?

남자 …….

노인 여지껏 앉아 있다가?

남자, 엉거주춤 일어서 있다. 노인, 남자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홀로 바둑을 둔다.

노인 가려거든 가. 어차피 곧 김 씨가 오면 자네가 그 자릴 비켜줘야 할 테니 까.

남자 …….

노인 아, 그리고 말이야. 난 자네가 찾으려는 그 노인네 몰라.

남자 전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노인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는 걸, 뭐.

남자 바둑판만 보고 계시잖아요.

노인 척하면 척이지, 뭘. (고개를 들어) 자네, 밥은 먹었어?

남자 아뇨, 때를 놓쳐서…… 어쩌다보니.

노인 저 쪽에 설렁탕 맛있게 하는 데가 있어. 4000원에 한 그릇 주는데, 그 집 깍두기가 맛이 아주 일품이야. 내가 오늘 김 씨랑 그 집을 가기로 했어.

남자 …식사 아직 안 하셨어요?

노인 아, 그럼.

남자 벌써 세 시가 다 되가는 데요?

노인 세 시면 어떻구 네 시면 어때.

남자 혼자서라도 드시지 그러세요.

노인 안 돼. 약속을 했어. 그 양반하고.

남자, 다시 노인의 옆에 앉는다. 노인은 바둑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남자 …근데, 정말 어떻게 아셨어요?

노인 무얼.

남자 제가 누굴 찾고 있다는 거요.

노인 자네 같이 젊은 사람이 목요일 세 시에 여기 이러구 앉았으니, 안 물어도 답이 나오지. 대개 그러거든. 대개.

남자 저… 오늘은 목요일이 아니라 수요일인데요.

노인 그래, 수요일.

남자 이 공원은 어르신들이 참 많더라고요.

노인 말했잖아. 늙은이들 놀이터야, 여기가.

남자 며칠 동안 이 부근을 돌면서 계속 찾았는데… 그래도 도통 보이지를 않네 요. 보다보면 다 그 분이 그 분 같고… 사실… 이젠 어떻게 생기셨는지 기 억도 가물가물해요.

노인 여 봐. 아버지 사진 한 장 없어?

남자 …….

노인 언제 집을 나갔는데?

남자 그게… 몇 달도 더 됐죠.

노인 근데 왜 이제 와 찾어?

남자 …….

노인 내쫓은 거지?

남자 (억울해하며) 내쫓다니요. 그냥…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말없이 사라지셨 어요. 그게 다예요.

노인 그러니까, 그게 그거란 소리야. 오죽 그랬으면 제 발로 나왔겠냐구.

사이. 매미 울음소리가 길게 들린다.

남자, 한숨을 쉬며 일어선다. 노인, 여전히 바둑을 두고 있다.

남자 전 이만 가봐야겠네요.

노인 가다가 김 씨 보면은,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나 전해줘.

남자 대체 그 분이 누군 줄 알고요.

노인 딱 보면 알아. 내가 말했잖아, 김 씨는…

남자 …됐습니다.

남자, 퇴장한다. 노인,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찬다.

노인 말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면 좀 좋냐구… 하여간에… 여기나, 저기나……

노인이 다시 바둑판으로 시선을 돌릴 때쯤, 겨드랑이에 보온병을 끼고 어깨엔 작은 가방을 맨 커피아줌마(이하 커피)가 등장한다.

커피 영감님, 혼자 뭐하셔요?

노인 보면 몰라. 바둑 두지.

커피 그러니까 왜 혼자 두셔.

노인 글쎄 그 노인네가 오지를 않잖아. 여 봐, 혹시 오며가며 김 씨 못 봤어?

커피 누구요?

노인 김 씨 말이야, 김 씨.

커피 여기 김 씨인 영감이 어디 한 둘 이예요?

노인 (답답해서) 김 씨는 다른 노인네들하고 달라. 나랑 한 약속은 절대로 안 잊는 양반이라고.

커피 글쎄 난 영감님이 누굴 찾는지 모르겠네. 하여튼 간에, 커피나 한 잔 팔아 줘요, 영감님.

커피, 벤치에 앉아 보온병을 내려놓는다.

노인 밥도 안 먹었는데 커피는 무슨 커피야. 돈 없어.

커피 아니, 때가 어느 땐데 여즉 밥을 안 드셨어?

노인 글쎄 그건 김 씨가…

커피 내가 오늘 한 잔도 못 팔았잖아요. 아니, 글쎄 내 커피 잘 팔아주던 양반 이 오늘은 안 보이네.

노인 누구?

커피 있어요, 풍채 좋은 영감님.

노인 풍채라면 김 씨도 꽤나 좋지.

커피 요 며칠 이 공원을 안 다녔더니, 그 양반이 그 새 딴 데로 옮겼나?

노인 그러게 요새 안 보이더니 왜 다시 기어 나왔어?

커피 그럼 먹고 살아야 하는데 방구석에 가만히 있어요?

노인 미순네는?

커피 이제 안 나오나 봐요. 단속이 오죽 심해야지.

노인 그러니까 자네도 그만 나와. 노인네들 등쳐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어야지.

커피 그저 커피 마시면서 영감님들 손이나 한번 잡고, 말동무나 해드리는 거지. 요즘 같은 때 또 날씨는 오죽 더워요? 그러면 응? 봐요, 영감님. (보온병 을 열어 보여주며) 내가 부러 이렇게, 얼음 넣어 타 온 이 냉커피가 딱이 라구. 말 나온 김에 영감님 한 잔 하셔.

노인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자네가 타오는 그 커피, 300원짜리 자판기 커 피만도 못해. 내가 누차 이야기하잖아. 설탕을 좀 더 타 넣으라고.

커피 노인네들 당뇨 있어서 단 거 먹으면 몸에 안 좋아요.

노인 그나마 달짝지근한 맛이라도 있어야 찾지.

커피 그리고 영감님, 솔직히 말해서, 누가 나를 거둬. 영감님이나 나나 이렇게 다 늙어 가는데 누가 빚이라도 내주겠어? (한숨) 알아서 벌어먹고 살아야 지. 그래요, 안 그래요?

노인 난 나라에서 연금이 나오잖아. 매달 이십만 육천 오십 원.

커피 좋으시겠네. 그럼 내 커피 좀 팔아주면 좀 좋아.

노인 자네 커피 마시려면 내가 자네 것까지 두 잔 사야 하잖아. 그럼 오천 원인 데, 그럴 바엔 자판기 커피를 열 번도 더 넘게 마시고 말지.

커피 됐어요, 됐어.

커피, 보온병의 뚜껑을 닫고 일어선다.

노인 여 봐. 벌써 가게?

커피 커피도 안 팔아주는데 뭘. 내 커피 팔아주는 영감님이나 찾으러 가야지.

노인 (붙잡으며) 아, 앉아봐.

커피 왜요.

노인 아까 여기 웬 젊은 사람이 앉아 있었거든.

커피 어머, 좀 일찍 올 걸. 그 젊은 사람한테 한 잔 팔았을 수 있었을 텐데.

노인 글쎄, 얘기를 들어보라니까. 내 저기, 멀리서 걸어올 때부터 웬 젊은 사람 하나가 여기 앉아서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 거야.

커피 그럴 때 냉커피 한 잔 하라고 하면 딱이잖아요.

노인 딱 보니까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 그 상태로 여기 와서 앉아 있는 이유가 뭐겠어. 누굴 찾으러 온 거지.

커피 누구를?

노인 아, 누구긴 누구야. 애비 찾는 거지. 여기서 뭐 비둘기를 찾겠어?

커피 어머머.

노인 내쫓은 게 후회가 된 건지 찾으러 나온 거겠지만은 말이야, 그런 게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냔 말이지. 그거야 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거 아 니냐구.

커피 정말 그렇대요?

노인 그런 거나 매한 가지지 뭘. 그래 놓구 자식 된 도리를 운운하면서 집으로 돌아 가자구 찾고 있는 걸 거야. 돌아가면 뭐가 바뀌냐구? 곧 얼마 안 가 그 노인네가 다시 제 발로 도망 나올 거야.

커피 영감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노인 대개가 그래, 대개가. 김 씨도 그랬거든.

커피 …내쫓아놓고 무슨 염치로 다시 찾으러 온대.

노인 염치가 아니라 뭔가 쓸모가 생겨서 찾으러 온 거야. 분명히 그래, 분명히.

커피 하여간에, 참…….

노인 말하다 보니 목이 타네.

커피 냉커피 한 잔 하셔.

노인 자네도 참 끈질겨, 하여튼 간에.

커피, 웃으며 보온병의 뚜껑을 다시 연다.

커피 그래서, 여기서 계속 그 김 씨 영감님 기다리시게?

노인 아, 그럼. 여기가 항상 우리가 만나는 장소야. 딴 노인네들도 여긴 얼씬 안 한다구.

커피가 종이컵에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따라 노인에게 건넨다.

매미 울음소리가 길게 들린다.

커피 그래도 영감님이라도 팔아줘서 다행이네.

노인 분명히 해두지만, 자네 건 안 사. 난 한 잔 값만 낼 거야.

커피 알겠어요, 알겠어.

노인 (커피를 마시며) 역시 설탕이 좀 더 들어가야 된다니까. 영 밍밍해서는.

커피 얼음이 녹아서 그래요. 아니, 근데 여기 노인네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여기 서 자기 아버지 찾는 것도 참 일이겠네, 일이겠어.

노인 못 찾아.

커피 그 젊은 사람이 찾는다는 아버지가 혹시 영감님 친구 아니에요?

노인 김 씨? 아냐, 그랬으면 내가 알아봤지.

커피 영감님 아들도 아닌데 영감님이 어떻게 알아봐요.

노인 내가 김 씨를 잘 알잖어.

커피 …하기사 여기 소싯적에 아들딸 하나 없었던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짧은 사이.

노인 자, 여기, 챙겨가.

커피 (돈을 받으며) 오지도 않는 김 영감님 그만 기다리시구 밥 챙겨 드셔요.

노인 아, 그건 안 돼.

커피 저 고집을 누가 꺾어.

노인 김 씨는 올 거야. 오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어기진 않을 거라구. 나랑 바둑 도 두고 설렁탕도 먹으러 가기로 했어. 그리고 오늘 만나서 전에 하다 만 얘기를 마저 해준다고도 했거든.

커피 영감님, 또 그 집 가서 밥 먹게요?

노인 여 봐. 김 씨가 젊었을 때 독일 탄광촌에서 2년 동안이나 일했었대. 나도 그 때 막내 동생 학교 보내주고 싶어서 독일에 가고 싶었는데, 그 뭐냐, 신체검사에서 미달을 받아 버려가지고, 못 갔단 말이지.

커피 아유, 영감님. 그 얘기까지 내가 들어줄 시간은 없어요. 그런 얘기는 시작 하면 한도 끝도 없지. 이만 가 볼게, 또 봐요, 영감님.

노인 …그래. 다음엔 커피에 설탕 좀 더 넣어서 와.

커피, 보온병을 챙긴다. 엉덩이를 털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한다.

무대 위엔 노인이 홀로 남는다. 암전.


2장

무대, 밝아진다. 매미 울음소리가 길게 들린다.

노인, 여전히 혼자서 바둑을 두고 있다.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다. 노인의 주변에서 얼쩡거리듯.

노인 이 녀석아, 저리 가.

소년 네?

노인 넌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소년 …….

노인 지금 몇 시냐?

소년 (손목시계를 보고) 다섯 시인데요.

노인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니냐?

소년 학교 아까 끝났어요.

노인 (이죽거리며) 저리 가서 공 차. 정신 사나워.

소년, 노인에게서 멀리 떨어져 축구공을 가지고 놀다 공이 노인 쪽으로 굴러간다.

소년 할아버지, 공 좀 차 주세요.

노인 …뭐라고?

소년 그거, 공 좀 이리로 차 달라구요.

노인 싫어.

소년 왜요?

노인 네가 알아서 가져가.

소년, 툴툴거리며 노인에게 다가온다.

소년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노인 지금 나 바둑 두고 있는 거 안 보이냐?

소년 근데 왜 혼자 하세요?

노인 누구랑 같이 두기로 했는데, 어딜 갔는지 기다려도 오지를 않아서.

소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노인 꽤 오래 기다렸다.

소년 누군데요?

노인 있어. 김 씨라고.

소년 어? 저도 김 씨에요. 김해 김 씨.

노인 그래서 나보고 뭐 어쩌란 거냐?

소년 어… 그냥 말해봤어요.

소년, 축구공을 들고서 가만히 있다가

소년 할아버지, 근데 저희 아빠 못 보셨어요?

노인 뭐?

소년 제가 아빠를 찾고 있거든요.

노인 아니 오늘 왜들 그렇게 누굴 찾는 사람이 많은 거냐?

소년 집에 들어오질 않아서요.

노인 …근데 왜 여기 와서 찾어?

소년 그냥요. 여기 갈 곳 없는 사람들 많이 오는 데잖아요.

소년과 노인 잠시 침묵.

소년 저도 꽤 오래 기다렸어요. 근데 일주일이 다 되도록 기다려도 안 와서… 제가요, 여기 말고도 지하철 역에 노숙자들 있는 곳도 다 가봤는데요. 없 더라구요. 아빠랑 닮은 사람은 많았는데… 아빠는 없었어요.

노인 …….

소년 (노인이 하는 것을 보다가) 혼자 하면 재미없을 텐데.

노인 네가 뭘 볼 줄은 아냐?

소년 그건 거기다 두는 게 아니라 두 줄 아래에 놓는 게 더 좋을 텐데요?

노인 녀석아, 내가 지금, 몇 수 앞을 더 내다보면서 하는 중인 거야.

소년 제가 상대해드릴까요?

소년, 노인의 옆에 나란히 앉는다. 노인, 굳이 말리지 않는다.

소년 제가 흑돌 할게요.

노인 이 놈아, 당연한 소리를 하냐?

소년 근데 정말 저희 아빠 못 보셨어요?

노인 글쎄 모른다니까. 경찰서엘 가서 물어보지 그러냐?

소년 경찰서는 안 돼요.

노인 아니 왜?

소년 아빠가 빚쟁이들한테 쫓기고 있어서요.

노인 그럼 아빠란 놈이 널 버리구서 도망갔단 말이냐?

소년 그런 가 봐요.

노인 그럼 집엔 누가 있어?

소년 없어요, 아무도.

노인 엄마는?

소년 엄마는 자기 나라 갔어요. 아주 예전에.

노인 어디?

소년 필리핀인지 베트남인지 잘 모르겠어요.

침묵 속에서 노인과 소년은 바둑을 둔다. 매미 울음소리가 다시 들린다.

노인 아, 그러고 보니.

소년 (멀뚱히 바라본다)

노인 웬 젊은 양반 하나가 아까 여기 앉아 있었어.

소년 모르신다면서요.

노인 이제 생각이 난 거야. 꽤나 추레한 행색이었지, 그 젊은 양반.

소년 어떻게 생겼어요?

노인 그냥 평범하게 생겼지, 뭘. 가만 보자. (소년을 유심히 보는) 너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 너부데데하니. (소년이 두는 수를 보며) 야, 녀 석, 너 좀 하는 구나.

소년 옛날에 할아버지한테 배웠어요, 바둑 두는 거.

사이. 얼마 간 두 사람이 바둑 두는 소리만 들린다.

소년 어쩌면 그럼 그 아저씨가 아빠일지도 모르겠네요.

노인 근데 네가 네 아빠보다 훨씬 낫다.

소년 왜요?

노인 바둑 좀 같이 두자니까, 바둑은커녕 딴 소리만 하더니 가버렸지 뭐냐.

소년 무슨 소리요?

노인 너처럼 아버지를 찾고 있다고.

소년 (놀라) 할아버지를요?

노인 그래, 그 양반이 네 아빠라면, 지금 찾고 있는 노인네가 네 할아버지인 것 도 맞겠지.

소년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노인 나는 알아.

소년 네? 뭘요?

노인 네 아빠가 쫓아내서 할아버지가 집을 나간 것이지?

소년 아뇨, 그러니까, 아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그랬어요.

노인 순 거짓말이다.

소년 아빠는 거짓말 안 해요.

노인 불 보듯 뻔하다. 필경 이제 와서 뭐라도 발견했으니 이제 와서 지 애비를 찾으러 다니는 거겠지. 어디서 네 할아버지 명의로 된 땅문서라도 나타났 을 게다.

소년 그걸 할아버지가 어떻게 장담하세요?

노인 왜냐? (바둑알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으며) 대개가 그러거든! 대개가. 글 쎄 이제 와 찾는다고 뭐가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냐? 괘씸한 놈 같으 니라고.

소년 아니에요!

두 사람, 어느 새 바둑판에서 손을 뗀 상태다.

노인 내 말이 맞아. 그런 고약한 놈한테 땅문서는 가당치도 않지. 어디 평생 그 렇게 찔찔 고생을 해 봐야지. 내가 장담하건대, 네 아빤 네 할아버지 죽어 도 못 찾을 거다.

소년 (소리치며) 아니라니까요!

노인 아니긴 뭐가 아니야!

소년 아빤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노인 시끄러! 어디서 소리를 빽빽 질러대냐? 이 고약한 놈의 아들 같으니라고!

노인, 소년의 축구공을 빼앗아 멀리 뻥 차버린다.

소년 할아버지가 더 고약해요!

노인 이제 저리 썩 꺼져!

소년, 씩씩대며 공을 쫓아 사라진다.

노인 (혀를 차며) 웬만큼 시끄러워야지. (주변을 보다가 관객석을 향해) 뭘 봐? 이 봐, 박 씨, 황 씨, 뭘 그렇게 쳐다보느냐고? 노인네 혼자서 바둑 두는 거 처음 봐? 상대가 없으니 혼자 두는 거지, 그게 그렇게 유난스럽게 쳐다 볼 일이야? 자네들 하던 거 마저 해. 난 상관 말고.

노인, 다시 혼자서 바둑을 둔다. 아주 긴 사이. 노인의 표정은 복잡 미묘하다.

매미 울음소리가 아주 오랫동안 들려온다.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 노인의 옆으로 가 앉아 이마의 땀을 닦는다.

노인 자리 주인이 곧 나타날 거야.

남자 …….

노인 …난 분명히 말했어.

남자 ……계속 여기 계셨던 거예요?

노인 그거야 자네가 상관할 바는 아니잖아? 나야 원래 여기 있는 게 내 일인데.

남자 벌써 해가 다 저물었는데요.

노인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김 씨가 곧 올 거라는 게 중요한 거지.

남자 왜 그렇게 그 분을 기다리시는 거죠?

노인 그야 만나기로 약속했으니까. (사이) 자네 아버지는 찾았나?

남자 못 찾았으니까 저 혼자 있겠죠.

노인 그래서 이제 어쩔 건가?

남자 어쩌긴요. 내일 다시 와서 찾아봐야죠. 아버진 분명 여기 어딘가 계실 겁 니다.

노인 내일이면 자네 아버지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남자 …….

노인 헛수고야.

남자 뭐라고요?

노인 앞으로도 자넨 계속해서 아버지를 못 찾을 거야. 왜냐, 어딜 가든 노인네 들은 많고, 그 속에 자네가 찾는 아버지는 보이지 않을 테니까.

사이.

노인 이제 와 찾는 이유가 뭐야?

남자 그야…… 자식 된 도리로서…….

노인 자식 된 도리 좋아하네. 자네가 내 앞에서까지 그렇게 가식을 떠는 걸 알 면은, 자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려다가도 혈압이 올라서 안 돌아올 거 라구. 자네가 이미, 오래 전에 자네 아버지를 버린 거야. 알겠어?

남자 제가 아버지를 버린 게 아니라, 아버지 스스로 제 손을 놓으신 거예요. 정 신이 오락가락해서…….

노인 정신이 오락가락해? 누가?

남자 아니, 그야 당연히 아버지죠.

노인 그런 노인네가 집을 나갔는데 그냥 뒀단 말이야? 이런 더 괘씸한 놈 같으니.

남자 그래요, 사실 처음엔 오히려 잘 됐거니 했습니다. 집안 상황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고요. 됐어요? 지금 이런 대답을 원하시는 거잖아요.

노인 그래, 그런데 왜 이제야 찾느냐고 묻잖아? 말해 봐. 어디 자네 아버지 앞 으로 있는 땅 문서라도 나타났어?

남자 땅 문서라니요?

노인 또 무슨 등골 빼먹을 게 나타나서 찾고 있는 것이냐고?

남자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하고 계시네요.

노인 노인네가 썩어 문드러져서 죽을 때까지, 응? 달려있는 거라고는 죄다 뜯어 내서 가질 생각인 거잖아. 그렇지? 내 말이 틀려?

남자 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나셨어요?

노인 떳떳하지 못하니 말하지 못하는 걸 테지.

남자 말하면 어차피 믿지도 않으실 거잖아요.

노인 (고함치며) 그럼! 다 거짓부렁이야! 싹 다!

사이. 노인, 남자에게서 등을 돌린다.

노인 집에나 돌아가. 자네 아들이 자네를 찾는다고 돌아다니고 있어.

남자 예?

노인 아들 놈 한테는 할아버지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구선 말이야. 여기서 애 빌 찾겠다고 돌아다니는 자네 꼴이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어.

남자 뭐라고요? 제 아들이요?

노인 아까 여기서 그 놈이 나랑 바둑을 뒀어.

멀리서 축구공이 굴러온다. 소년, 등장한다.

노인 저기 다시 나타났네.

남자 누구요?

노인 저기 저 놈이 내가 말한 그 녀석이야.

남자 제 아들이라고요?

남자, 소년에게 다가간다.

남자 아뇨… (보다가) 제 아들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는데요.

소년 누구세요?

남자 그러게 말이다.

남자와 소년, 서로를 보며 어리둥절한다.

노인 (소년에게) 저 놈이 네가 말한 아빠가 아니냐?

소년 아뇨. 우리 아빤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요. 심지어 나랑 별로 닮지도 않았 잖아요.

남자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노인 아니, 그럴 리 없어. 자네가 분명 저 애의 아빠일 테고, 저 애는 자네 아 들이어야해. 그리고 자네가 찾는 아버지는 내가 기다리는 김 씨 일 테지. 그렇지?

남자 어르신, 몇 번이나 물으셔도 이 앤 처음 보는 애에요. 제 아들이 아니라구 요.

소년 이 아저씬 제 아빠가 아니에요.

노인 (고함치며 벌떡 일어선다) 아냐, 틀림없이 내 말이 맞아! 응? 어서 그렇다 고 대답들 해!

남자와 소년,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선다. 이내 도망치듯 퇴장한다.

노인, 허망한 얼굴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 암전.


3장

무대, 밝아진다.

노인, 여전히 벤치에 앉아 멀거니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젊은 순경이 등장한다.

순경 선생님. 한참을 찾았습니다.

노인 나야 항상 여기 있었어.

노인이 잠시 고개를 돌려 순경을 바라본다.

노인 많이 본 얼굴이야.

순경 예?

노인 다들 그런 비슷한 얼굴이었다구. 여기나 저기나.

노인이 다시 생각에 잠긴다.

순경 많이 깜깜해졌어요.

노인 아,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순경 ……그럼요, 선생님?

노인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게 중요한 거야.

순경 무슨 말이요?

노인 여기서 아버지를 찾던 그 젊은 사람의 애가 바로 그 애였을 거라는 거야.

순경 …애요?

노인 아들. 요만한 꼬마 녀석인데, 엄마는 필리핀 사람인가, 아니, 베트남 사람 이야. 그런데 아주 오래 전에 도망가고 없대. 그 꼬마 녀석이 자기더러 김 씨라고 그랬거든. 그리고 그 꼬마 녀석의 아빠라는 놈은 집 나간 아버지를 찾고 있고. 그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놈이 그 노인네 아들인 것 같아.

순경 누구요?

노인 김 씨. 내 친구 말이야.

순경 …예, 김 선생님은 오늘도 역시… 안 오셨겠죠.

노인 그래. 여태 오질 않았어. 여 봐. 김 씨가 아무래도 뭔 일이 난 것 같아. 자네가 김 씨 좀 찾아줘. 그 노인네, 자기 아들이 찾아온 것도 모르고 어 디서 소리 소문 없이 가버렸으면 어떡해? 내가 그 젊은 놈한테 윽박을 질 렀거든. 또 뭘 뜯어내려고 찾는 게냐고. 사실은 그게 아니라 정말로 지 애 비가 보고 싶어서 찾아온 걸지도 모르잖아, 그렇지?

사이.

순경 선생님,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시지 않구요.

노인 집? 아, 집은 내가 때 되면 알아서 가. 걱정 마.

순경 아뇨, 선생님 지금 사시는 그 쪽방이 아니라, 아드님 아파트로 말입니다. 아드님께서 선생님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노인 뭐? 기다리긴 누굴 기다려?

순경 이제 제발 집으로 돌아와 달라고 하셨어요.

노인 아냐. 죽었다고 전해.

순경 지금 이렇게 버젓이 살아계시잖아요.

노인 그 녀석한테 나는 하루아침에 죽었다고 해도 이상할 거 없지.

순경 아드님 품으로 돌아가세요, 선생님.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는 게 우리 모두 에게 좋은 겁니다.

노인 좋기는 누가 좋아? 개뿔도 좋지 않다고.

순경 선생님 여기 계신 거 뻔히 알면서, 저희한테 실종신고 한 아드님 생각도 좀 하셔야죠.

노인 그래, 난 계속 실종인 상태로 있을 거라고.

순경 그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온 아드님 마음이 어떻겠어요?

노인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야. 하여튼 난 안 가. 내가 안 가겠다는 데 억지로 돌려 보내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야. 내 말이 맞지?

순경 선생님. 제발요.

노인 미안하지만 더 이상 줄 게 없다고 전해.

노인, 요지부동이다. 순경, 긴 한숨을 쉰다.

노인 자넨 늘상 같은 얘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순경 네, 늘 같은 얘기를 해드렸지만, 선생님도 같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노인 난 여기서 김 씨 좀 더 기다리다가 돌아갈 거야. 그 양반이 오기로 약속을 했으니까, 이제 곧 올 거거든.

순경 선생님.

노인 …여기서 나랑 바둑 두고 설렁탕도 먹고… 못다 한 얘기도 마저 하고…….

순경 그 분, 아무리 기다려봤자 안 오실 거예요.

노인 ……아냐. 올 거라구, 그 양반이.

순경 이미 잘 알고 계시잖아요. 김 선생님.

순경, 퇴장한다.

노인, 벤치 위에 망령처럼 가만히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막.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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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전화를 받고 한동안은 멍하니 있었습니다. 노트북 폴더에 묵혀두었던 오래된 희곡을 꺼내 다시 들여다보고 고칠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저 막연히 꿈꾸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도 이런 순간이 찾아왔네요.

글 쓰겠다고 골방에 틀어박혀 괴로워하던 저를 보며 마음 아파하시던 엄마. 걱정하시던 아빠. 두 분께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어드린 것 같아 기쁩니다. 엄마 조영웅 님, 아빠 김용관 님 사랑합니다. 두 언니 김선희, 김미희와 동생 김기범에게도 저의 울타리가 되어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작년 겨울 태어난 선우야, 이모가 많이 사랑해.

당선 소식을 듣고 전화 너머로 우시던 고연옥 선생님. 선생님의 격려 덕분에 지금까지 희곡을 놓지 않고 쓸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축하의 말을 건네주신 배삼식 선생님. 선생님을 만나 처음 희곡을 쓰던 스무 살 무렵이 떠오릅니다. 윤대녕 선생님과 김사인 선생님, 그리고 연극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멀리서 절 위해 기도해주시는, 저의 은사 이진순 선생님. 감사합니다.

곁을 지켜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합니다. 20년 지기 친구 지수. 사랑하는 고등학교 친구들. 현지, 예지, 민, 진명. 소중한 대학 동기 은서와 지연 언니. 멋진 배우 윤지 언니와 세경 언니. 괄호의 사람들. 소연 언니, 효진 언니, 도은님, 민조님. 그리고 늘 나를 응원해주는 용. 모두에게 함께 해서 행복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생각이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의심이 가득할 때면 글을 쓰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 시간에서 벗어나 저를 좀 더 믿어보려 합니다. 스스로를 믿고 글을 써 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매일신문에 감사드립니다.긴 터널 속을 걷다 마침내 선명한 빛을 발견한 것만 같습니다. 그 길을, 열심히 나아가보겠습니다.


  ● 1994년 익산 출생
  ●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심사평>


  세대를 망라한 다양한 주제의 뛰어난 수작 대거 몰려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응모 편수에 먼저 놀랐고, 높은 기량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아서 거듭 놀랐다. 응모작들을 읽고 추려나가는 동안 심사자들은 행복한 고민 속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꼭 전하고 싶다. 마지막까지 심사자들의 손을 떠나지 않은 작품은 네 편이었다. 희곡 '늙은 개의 산책', '스탭', '한낮의 유령'과 시나리오 '고도의 괴물' 모두 탄탄한 기본기 위에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을 쌓아올린 탁월한 작품이었다. 네 편의 작품이 각각 고유한 미덕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많은 논의를 거듭해야 했지만, '한낮의 유령'이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는 점에는 빠르게 의견일치를 보았다.

제목 자체가 독특한 울림을 주는 '한낮의 유령'은 한국사회의 주요 현안인 가족해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공원의 벤치라는 한정된 공간과 소수의 인물 활용은 단막극의 전형적인 설정이지만 작품을 단조롭고 지루하게 만들 우려도 있다. 작가는 시차를 두고 드나드는 각 세대를 대표하는 등장인물을 이용하여 그 한계를 극복하면서, 가족해체 현상의 다양한 측면을 함께 건드렸다. 늙은 아버지의 가출을 의도적으로 방임했던 남자는 그를 찾기 위해 공원에 왔고, 이혼으로 어머니를 잃어버린 다문화 가정의 소년은 빚쟁이를 피해 도망간 아버지를 찾아 공원으로 왔다. 그 둘을 매개하는 노인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상대방의 처지를 제멋대로 재단해버리는 폐쇄성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이 서로 얽히면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한다. 다만 3장에 등장하는 순경이 이야기의 마무리를 위한 '의도적인 해설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나머지 세 작품도 당선작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았다. '고도의 괴물'은 이장네 큰아들의 인물 성격이 모호하여 선아가 편입된 마을의 폭력적 구조를 명확히 드러내지 못하는 점이, '늙은 개의 산책'은 아기자기한 작품이지만 관객들이 예상하는 과정과 결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상투성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스탭'은 상징성이 강한 희곡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그러나 그 장점을 극의 마지막까지 지속시켜나가지 못하고, 은수와 아이가 잃어버린 꿈에 대해 직접 이야기 나누는 상황을 설정한 것이 단점으로 남았다. 작은 결함들을 보완한다면 세 작품 모두 훌륭한 단막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심사위원 : 김재석, 최창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