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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 남수우

 

한 사람에게 가장 먼 곳은

자신의 뒷모습이었네


그는 그 먼 곳을 안으러 간다고 했다


절뚝이며 그가 사라진 거울 속에서 내가 방을 돌보는 동안

거실의 소란이 문틈을 흔든다


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손잡이처럼

들킬까 봐

자꾸만 귀가 자랐다

문밖이 가둔 이불 속에서

나는 한쪽 다리로 풍경을 옮기는 사람을 본다


이곳이 아니길

이곳이 아닌 나머지이길

중얼거릴수록 그가 흐릿해졌다


이마를 기억한 손이 거울 끝까지 굴러가 있었다


거실의 빛이 문틈을 가를 때 그는 이 방을 겨눌 것이다

번쩍이는 총구를 지구 끝까지 늘리며

제 뒤통수를 겨냥한다 해도 누구의 탓은 아니지


거울에 남은 손자국을 따라 짚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게 뒷모습을 안겨주던 날 모서리가 처음 삼킨 태양을 생각했다

흉터를 간직한 햇살이

따갑게 몸 안을 맴돌고 있을 거라고


뒷모습뿐인 액자를 돌려세운다


거울 속에는

하얀 입김으로 떠오른 민낯들이 너무 많았다





  <당선소감>


   "당신을 위한 ‘품’ 하나 온전히 그려볼수 있길"


아주 오래전 누군가 나를 위해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었다. 그 불가능을 속삭였던 입술은 이제 영원한 뒷모습으로 내게 남아 있다. 내게 주어진 이야기. 이 믿음으로 사람 하나 불러 세우지 못하지만, 한편으론 이 믿음으로 가능한 생활이 있다면,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의 죽음이 나와 무관하지 않으므로. 여전히 그 뒷모습이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퇴근길 전철에서 졸고 있는 흐린 눈이었다가, 국밥집에서 보았던 알찬 팔뚝이었다가, 같은 우산 아래 설핏 닿은 손등이었다가, 빈 유모차를 밀고 가는 둥근 이마였다. 어쩌면 내가 아닌 모든 것일지도. 나의 생활이 되도록 그 누군가를 향한 애도이기를 바랐지만, 부끄럽게도 충분한 적이 하루도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도 기다렸다. 기다림 없이 기다렸다. 언젠가 내가 당신을 위한 품 하나를 온전히 그려볼 수 있기를. 매일 저녁 꼬박꼬박 수원지의 둘레를 달리듯, 불안한 내가 완전한 원을 결코 그릴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문학에 구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삶에 대한 어떤 자세를 나는 문학에서 길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가 있었다. 돌 하나를 쥐고 네가 오고 있다고 들었다. 미리 마중 나와 기다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한 시절을 묶어 두고 사람들을 떠나 있었다. 그동안 외면했던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용서와 화해로 생활을 돌보던 나날을 지나, 지금 어딘가에서 나를 기억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가장 먼저 건강과 안부를 묻고 싶다. 문학을 통해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함께 무수히 산에 올랐던 꽃가루 산악회 친구들에게. 전당포 필름의 태민이 형과 캔버스 앞의 빈이 형에게. 늘 멀리 떠나 있던 나를 향해 손 흔들어 준 동생 수안이와 부모님께, 여러 계절을 지나 곁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껴 발음하는 단 하나의 소리에게, 감사와 애정을 접어 부친다. 문득 너무 먼 곳에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다고 적어 보았다.


  ● 1991년 서울 출생
  ● 동물생명학 전공, 대학원에서 현대문학 전공.


  <심사평>


  ‘틈’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사유… 좋은 시인으로 살 것이란 믿음 들어


올해부터는 예심과 본심을 통합하게 돼 심사하는 데 오래 걸리긴 했지만, 전체적인 수준이나 경향을 파악하면서 좋은 작품을 선별해갈 수 있었다. 725명의 투고작 3625편을 읽는다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운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이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내면을 읽어내는 일이기도 해서 더 각별하게 느껴졌다. 예년보다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가 강해졌고 상상력도 다소 위축된 것처럼 보였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고립, 관계의 단절 등을 뚫고 희미한 빛을 찾아 나가려는 고투가 시편마다 절실하게 담겨 있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에 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품고 수많은 기록과 증언, 고백과 발언, 노래와 기원들을 공감하며 읽었다. 심사자들이 마지막까지 주목한 작품은 ‘가드닝’ ‘흰 토르소와 천사들의 나날’ ‘인공호수’ ‘에그조프쉬시즘’ ‘서른셋, 생일이 아직 또렷한’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등이었다. 이 여섯 분의 작품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남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어서 무엇을 당선작으로 해도 좋을 만큼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가드닝’은 간결하고 리드미컬한 언어로 의미의 여운을 증폭시키는 시적 재능과 섬세하고 투명한 감각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이 식물적 언어의 세계는 다소 수동적이고 부서지기 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흰 토르소와 천사들의 나날’은 현실의 남루함을 환상으로 감싸며 따뜻하고 환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인상적인 문장이 많지만 세부에 들이는 공력에 비해 전체적 구조나 결말이 약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인공호수’는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의미를 구축해나가는 솜씨가 노련하고 관찰력과 집중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듯이 묘사 위주로 전개하다 보니 다소 평면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에그조프쉬시즘’은 원룸에서 일어난 고독사와 애완견을 중심으로 사회적 비극이 어떻게 봉합되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도시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드러나고 있는데, 작품 간의 편차가 크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서른셋, 생일이 아직 또렷한’은 운문성과 산문성을 적절히 조율하며 긴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묘사와 진술의 연결이 좀 더 자연스럽고 뒷심이 있으면 좋겠다.

당선작으로 뽑은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는 뒷모습과 거울을 둘러싼 사유의 변주가 거울의 안과 밖, 문의 안과 밖, 지구와 태양 등으로 확장되며 몇 겹의 비유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산문적 언어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 이 모호함은 “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손잡이”처럼 미세한 균열의 기억과 무수한 틈을 내장하고 있다. 이 ‘틈’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사유가 그를 좋은 시인으로 살게 하리라는 믿음이 들었다. 당선을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자신의 뒷모습” “그 먼 곳을 안으러” 매 순간 떠나는 시인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 나희덕, 박형준,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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