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동백 101호 / 김은희

 

  오늘도 온통 붉었다. 붉은 구름, 붉은 안개, 붉은 땅. 공기는 탁하고 하늘도 탁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맑고 푸른 하늘을 보지 못했다. 푸른 하늘이 어떤 하늘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 대기질도 나쁘고 산소도 부족했다. 산소통 없이는 외출할 수 없었다. 휴대용 산소 없이 등교하는 것은 금지며 수업 시간에도 얼굴 전면을 감싸는 실리콘 얼굴 커버 투명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다. 마스크 옆 산소 흡입기에 휴대용 산소통을 연결해 숨을 쉬었다.

  “어제 용태도 집으로 돌아가라는 경고음이 울렸다고.”

  “어머나 그랬어!”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미안한 얼굴로 오늘 하루만이라고 집게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사실 이 방법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퇴근길에 꼭, 정말이야. 꼭 사서 올게. 약속해.”

  새끼손가락을 내 코앞에 내밀었다.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래. 엄마가 꼭 사서 올 거야. 엄마가 누구야. 우리 집 슈퍼 능력자잖아.”

  아빠가 엄마와 나의 눈치를 살피며 거실에 팽개친 책가방을 들고 왔다.

  “그럼. ‘꼭’이야. 정말 꼭.”

  짜증을 입 안 가득 물고 볼멘소리로 다짐을 받았다. 엄마는 코를 씽긋거리며 동백 101호가 담긴 진공밀폐용기를 산소 호스에 연결했다.

  “자, 전원 버튼 눌러봐. 작동 잘되는지 봐야지. 물론 잘되겠지만 말이야.”

  엄마는 왼쪽 눈을 찡긋거렸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콧속이 시원하고 상쾌해졌다. 엄마는 그것 봐. 좋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아 향기는 없겠지만. 향기가 싫으면 요 버튼을 누르면 돼. 좋은 향기도 오래 맡으면 머리 아플 수 있으니까. 초록색 불일 때가 산소질이 가장 좋다는 표시야. 노란색으로 바뀌면 나빠졌다는 것이고, 빨간색이면 아주 나빠졌다는 위험 신호야.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 다행스럽게도 동백 101호는 슈퍼 정화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30초 내로 최상의 산소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엄마는 슈퍼 능력자니까. 엄마를 믿어.”

  아빠는 엄마의 열렬한 지지자이며 무한 긍정맨이다. 아빠는 입버릇처럼 엄마가 하는 일은 전 세계 사람들이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도 보호장비 없이 마음껏 숨 쉬며 친구들과 뛰어노는 날을 기다리지만….

  “100번이나 실패했잖아. 무슨 슈퍼 능력자가 100번이나 실패해.”

  “쉿, 정으뜸, 감히 우리 집 금지어를.”

  다행히 엄마는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두 눈을 감은 채 벅차오른다는 듯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있었다. 동백 101호는 엄마가 일하는 대기오염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제품으로 유기농 천연 휴대용 산소생성기이다. 동백 101호는 동백나무로 휴대하기 위해선 스노우볼 안에 있는 전나무만큼 초소형으로 축소해야 했다. 50번째에 동백나무를 축소하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가 생겼다. 정화 능력이 떨어졌다. 정화 능력을 보강하니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는 시간이 짧아졌다. 엄마가 밀폐용기에 담아준 동백 101호는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분해하고 산소를 만드는 과정을 극대화하고 신선한 산소를 생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염된 공기를 정화할 수 있는 기능을 강화하였다고 했다.

  “봐. 이렇게 하면 티 나지 않지. 아무도 모를 거야.”

  “출입구를 통과하지 못할 거야. 귀가 조치 될 거라고.”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엄마가 만든 동백이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너 동백이의 능력을 너무 낮게 보는 것 같아. 엄마 많이 섭섭해.”

  출입구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센서가 작동해 경고음이 울리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출입구 산소 감별기가 산소통에 있는 산소질을 감별하고 나쁨, 매우 나쁨이 나오면 센서가 작동했다. 어제 용태의 표정이 떠올랐다. 출입구에 차단기가 내려지고 삐, 삐. 요란한 경고 소리가 났다. 용태가 출입구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용태는 귀밑까지 빨개졌다. 삐, 삐. 선도 로봇이 용태 앞을 가로막아 섰다. 용태는 금방 울 듯한 얼굴로 뒤로 물러섰다. 학교 출입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용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뒤돌아 교문을 빠져나갔다.

  “정으뜸, 멋지다.”

  아빠는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쭉 내밀었다. 아빠는 일주일 전부터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구하기 어려운 휴대용 산소 때문에 출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래서 사원의 3분의 2를 재택근무하도록 했다. 휴대용 산소를 판매하는 곳에서 배송이 지연되고 있다는 문자와 주문을 취소해 달라는 문자만 반복적으로 전송되었다. 어디든 같은 상태였다. 주문 폭주, 주문 불가, 배송 지연 이라는 문구가 쇼핑몰에 걸려 있었다. 휴대용 산소통을 구하는 일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휴대용 산소통 사재기 대란은 통영발전소의 오작동이 발표되면서 시작되었다. 산소 공급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산소 사재기가 벌어졌다. 통영발전소의 정화 장치가 오작동하여 오염된 공기가 정화된 공기와 뒤섞여 버렸다. 기계 조작 실수인 줄 알았는데 낡고 오래된 기계 때문이었다. 부식된 연결관을 교체하고 탱크를 보수하는 동안 발전소는 폐쇄하기로 했다. 영월 남읍 등 발전소마다 대대적인 점검에 들어간다는 보도가 나오고 난 후 휴대용 산소와 가정용 비상 산소가 가격이 치솟았다. 상품은 품절되어 살 수 없었다. 산소를 구한다는 글이 맘카페에 올라오고 산소를 구한 사람들의 성공 사례가 맘카페에 올라왔다.

  “잘 다녀와. 집에 와서 동백 101호 사용 후기 말해줘.”

  삐오삐오.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보라가 출입구를 통과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선도 로봇이 보라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

  “산소 오염 60% 위험 단계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보라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뒤돌아섰다. 옆줄에 서 있던 용태가 쭉 고개를 빼고 앞을 살폈다. 보라가 옆으로 물러서자 윤아가 출입구 앞에 섰다. 용태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윤아와 센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연두색 불이 들어오고 산소 상태 보통이라는 알림이 떴다. 출입구가 열리고 윤아가 통과했다. 용태가 조심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윤아가 고개를 돌려 용태를 보며 오른손을 슬며시 아래로 내리며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용태가 윤아의 오른손을 보며 씨익 웃었다.

  “뭐야? 수상해.”

  내가 용태 옆에 다가서며 묻자 용태는 어깨를 으쓱하고 줄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용태가 출입구 앞에 섰다. 초록색 불이 반짝였다. 산소 오염45%, 상태 보통. 출입구를 통과하는 용태가 나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해 보였다. 용태 녀석, 뭐지. 하루 만에 어떻게 산소를 구했지. 지금 용태 걱정할 때가 아니지. 바로 코앞으로 출입구 센서가 있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쾌적한 하루입니다. 산소 오염 0%. 산소 상태 최상.

  상냥하고 기계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엥. 나는 두 눈을 슬며시 떴다. 파란색 불이 들어와 있었다. 최상이라고? 최상의 표시등이 뜨는 것은 처음이었다. 최상, 매우 좋음, 좋음, 보통, 나쁨, 매우 나쁨으로 산소질이 나뉘지만, 대부분 좋음이거나 보통이었다. 용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용태의 눈길을 피하며 먼저 말했다.

  “용태 너, 깨끗한 산소가 없어서 학교 오지 못할 것 같다고 징징거리더니 어떻게 된 거야?”

  “나? 방법이 다 있지.”

  용태는 금방 의기양양해져서 씨익, 웃었다. 내가 용태를 쳐다보자 가까이 다가서며 목소리를 낮췄다.

  “섞었어.”

  섞어 쓴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섞어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많아. 나도 윤아한테 배운 거야. 윤아도 섞어서 쓰고 있어. 한 달 되었데. 윤아네 언니네 학교는 섞어서 쓰는 친구들이 많데. 3반 재윤이도, 단이도 5반 예진이도 섞어서 쓰고 있어.”

  용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에게 몸을 바짝 붙이며 말했다.

  “너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휴대용 산소가 없어서 등교 못 할 것 같다고 하더니. 너희 부모님 능력자다. 산소를 어떻게 구했어? 요새 산소 없어서 난리잖아. 설마 너도, 섞었어. 그런 거야?”

  “아, 아, 어.”

  용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뭐야. 그 시원치 않은 대답은.”

  윤아가 용태를 불렀다. 나는 용태를 피해 교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아 윤아와 용태를 지켜보았다.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는 듯 고개를 맞대고 사방을 살폈다. 서로 휴대용 산소통을 보여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1교시는 음악이었다. 노래는 조를 나눠 오 분씩만 돌아가며 부르고 남는 시간은 음악 감상을 했다. 2교시는 체육 시간이었지만 독후감을 썼다. 당분간 산소가 많이 필요한 체육은 하지 못한다는 공지가 전자 통신문으로 전송되었다. 나는 산소통이 신경 쓰여 독후감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엄마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으뜸아, 주의 사항 잊지 마. 두 시간마다 물을 줘야 해. 꼭. 동백 101호는 물을 주지 않으면 정화 능력이 떨어지고 결국 죽어. 그러니까 물은 동백 101호의 밥이야. 동백 101호를 소중하게 다뤄 줘. 두 시간이 지났다. 휴대용 산소 용기의 불이 파란색 불이었지만 초록색 보통 상태로 바뀌어 있었다.

  “왜 그래? 똥 마려운 강아지 모양으로 안절부절 못하며 무슨 일이야?”

  용태가 선생님이 눈치채지 못하게 속삭였다. 나는 용태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빨간색 불로 바뀌고 선도 로봇이 나타나 집으로 돌아가라고 할 것만 같았다. 식은땀이 났다.

  “정말, 똥이 마려운 거야?”
 
  나는 책상 안쪽의 벨을 눌렀다. 선생님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배를 움켜쥐었다. 선생님은 인상을 쓰며 밖으로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화장실을 향해 뛰었다. 화장실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용기 뚜껑을 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동백꽃이 피고 있었다. 가지가 자라고 푸른 잎이 돋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꽃망울이 수줍게 가지에 매달려 있었는데 붉은 꽃이 피고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고 동백 101호가 흠뻑 젖도록 물을 주었다. 붉은 꽃잎이 더 붉어졌다. 충분히 물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수도꼭지를 잠글 때 화장실 문이 열리고 용태가 들어왔다.

  “네가 하도 안 오니까. 선생님이 가보라고 했어.”

  나는 얼른 동백 101호를 등 뒤로 숨겼다. 용태가 고개를 옆으로 숙이고 내 등 뒤를 살폈다.

  “뭐야? 너 산소통 안에 그것 뭐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다급하게 산소통 뚜껑을 닫고 뒷걸음질 쳐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뒤따라 교실로 돌아온 용태가 수업 시간 내내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았지만 모른 척했다. 용태가 쪽지를 나에게 던졌다. 쪽지에는 큼지막하게 글씨가 쓰여 있었다. 너, 많이 수상해. 옆얼굴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것도 모른 척했다. 나는 쉬는 시간에 용태를 피해 화장실에 숨었다. 용태도 관심을 잃은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도 밥을 먹든 둥 마는 둥 하더니 기운 없이 책상에 엎드려 있던 용태가 5교시 수학 시간에 의자를 뒤로 밀치며 일어났다.

  “선생님, 속이 좋지 않아요. 점심 먹은 게 체했나 봐요.”
 
  용태는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입을 벌리고 헉헉거렸다.

  “알았어. 조용히 보건실 다녀와.”

  용태가 비틀비틀 교실 뒤로 걸어갔다. 쿵.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용태가 쓰러져 있었다. 아이들이 쓰러진 용태에게 모여들었다. 뒤에서 선도 로봇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키세요. 모두 옆으로 물러나세요. 비키지 않을 시 벌점을 주겠습니다.”

  반 아이들이 물러났다. 선도 로봇이 집게손가락을 용태 산소통에 가져다 댔다.

  “산소 상태 불량. 매우 나쁨. 산소 오염 85%. 당장 퇴실하도록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용태 산소통 상태 표시등에는 초록색 불이 들어와 있었고, 상태 보통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산소통 불법 조작, 산소 정품 아님. 일어나세요. 집으로 돌아갑니다.”

  용태는 옆으로 누운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나는 선도 로봇을 밀어내고 용태의 마스크를 벗겼다.

  “으, 뜸, 아, 나, 나, 숨을, 쉴, 수, 없어.”

  아이들과 선생님이 악,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위험, 위험. 경고합니다. 교내에서는 마스크를 벗을 수 없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삐삐, 삐삐. 쉴새 없이 경고음이 울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용태가 꼭 죽을 것만 같아 무서웠다. 그때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동백 101호는 슈퍼 정화 능력을 갖추고 있어. 나는 생각할 틈 없이 마스크와 연결된 산소 호스를 빼 용태 코와 입에 가져다 대었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어머, 하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으뜸 학생. 산소통을 마스크에 연결하세요. 오염된 용태 학생한테서 떨어지세요. 경고합니다. 위험. 위험.”

  “시끄러워. 깡통 로봇아. 용태야, 천천히 숨을 들여 마셔봐. 이건 슈퍼 정화 능력이 있는 동백 101호야. 엄마가 그랬어. 동백 101호는 30초 내로 최상의 공기 상태를 만들 수 있다고.”

  용태가 천천히 숨을 들여 마셨다.

  “용태야, 제발 죽지 마. 너 없으면 학교생활 너무 재미없단 말이야. 다신 명태라고 놀리지 않고 점심에 도넛 나오면 너 다 줄게. 용태야, 일어나.”

  “너, 약속했다.”

  용태가 눈을 뜨고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반 아이들 다 들었다. 이번 학기 내내 네 도넛은 내 거야.”

  “아, 용태야!”

  용태를 끌어안았다. 도넛은 백 개라도 줄 수 있어, 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산소 용기를 보았다. 세상에 동백의 붉은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는 울면서 더듬더듬 말했다.

  “동백 101호, 고마워. 용태, 살려줘서 고마워.”


 

 

  <당선소감>

 

   "내 이야깃주머니 꺼내 풀어낼 것"


  나는 겁이 많은 아이였다. 늦은 밤이 되어도 잠을 잘 수 없는 아이였다. 불 꺼진 밤이면 어둠 속에서 불쑥 얼굴을 내미는 괴물이 있지 않을까, 발바닥을 간질거리는 긴 손톱이 있지 않을까. 이불을 눈 밑까지 끌어 덮고 어둠에 압도되어 조심조심 숨을 쉬던 아이였다.

  어둠이 부풀어 올라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면 이불 움켜쥐고 잠들려 하는 할머니를 깨웠다. 그럼 할머니는 잠에 취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날에, 로 시작한 이야기가 내가 잠들 때까지 이어졌다. 어느 날은 할머니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 잠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릴 적엔 할머니에게 숨겨놓은 이야깃주머니가 있다고 믿었으며 행복했다. 이제 주머니를 꺼내 이야기를 해보라고, 네 차례야, 라고 할머니가 나에게 말하고 있다. 할머니가 물려준 보물을 가슴에 담고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어 보려고 한다.

  내가 이야깃주머니를 꺼내 풀 수 있게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국제신문에 감사드리며 항상 응원해준 가족과 친구들, 문우들 감사하며 하늘에 계신 할머니,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힘들 때마다 다독여주신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이제 동화 나라 이야기꾼으로 ‘마법 같은 동화 나라’의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 1973년 춘천 출생. 
●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졸업·박사 수료. 
● 2019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미디어스 인터넷신문 칼럼 연재.


 

  <심사평>

 

  

팬데믹 시대 스토리…흡인력 강해

 

   20세기에 출현한 인터넷으로 문학은 독자를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학을 인류 역사와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주제로 쓰인 176편 중 3편을 본심에 올렸다. 예심에 오르지 못한 작품 대부분 가정과 학교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신변잡기라는 게 문제였다.

‘거리의 별똥별’은 오랜 습작으로 다져진 문장으로 믿음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개성 있는 문체의 비유와 묘사가 캐릭터마다 역동감을 주었다. 그러나 비정한 시장 골목에 사는 유기 묘가 버려진 아이를 위해 오토바이에 치이는 결말은 마음 아팠다.

  ‘별일 없는 하루’는 안정된 문장으로 담담하게 들려준 이야기가 호소력 있었다. 시각장애가 있는 가영은 버스를 타고 하교하다 별일이 다 일어나는 세상에서 별 일없이 무사한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되었다. 버스가 멈추고 가영이가 주머니에서 지팡이를 꺼내 촤라락 펼쳤을 때 박수치고 싶었다. 가영이가 눈 대신 감각으로 버스 안의 상황을 이야기했더라면 작품성이 배가 되었을 텐데.

  ‘동백 101’은 팬데믹 시대에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하다. 교문에서 로봇의 검사를 받고 휴대용 산소통에 적색 불이 들어오면 등교를 못 한다. 산소통 사재기로 ‘섞어 쓰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세상이 코로나 이후의 일상이 될지 모른다.

  흡인력 있게 끌어가는 이야기가 시의적이고 설득력 있어 당선작으로 뽑았다.

  개성이 다른 세 편을 두고 저울질했는데, 아쉽게 통과 못 한 분들에게 조금만 더 힘내라고 다독여 주고 싶다.

심사위원 : 김향이, 김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