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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 줄거리>

 

  방학 / 최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던 날, 나는 학교에 가지 않고 아빠가 살고 있는 병원에 간다. 아빠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빠와 같은 병, 폐결핵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듣는 약이 하나도 없는 이른바 슈퍼결핵에. 3년 만에 다시 만난 아빠와 함께 지낸 지 보름쯤 되던 날, 새엄마가 찾아와 죽은 아빠를 데려가면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고, 그런 내 앞에 하루는 상복을 차려입은 여자, 강희가 나타난다. 알고 보니 나처럼 이곳에서 부모 중 한 사람을 잃었고 또 나처럼 듣는 약이 하나도 없는 그녀가 어째서일까, 나는 자꾸만 궁금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언젠가 사랑에 빠진 사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있는 엄마에게 보내주기 위해 늦은 밤 병원 내 공소(公所)에 몰래 들어가 성체를 한 움큼 훔쳤을 때 그 현장을 목격하고도 모른 척해주었던 수녀를 통해 반가운 소식을 전해듣는다. 나 같은 슈퍼결핵 환자에게도 듣는 ‘신약’이 나왔고, 여러 사람이 그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는. 하지만 나는 마냥 반가워할 수가 없다. 그 약은 한 알에 6만원씩이나 하고, 또 2년 동안 복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아직 등단조차 하지 못한 ‘가난한’ 엄마에게 그 소식을 전할 수가 없다.

  자신의 재능 없음을 결국 인정하게 된 엄마가 자살을 시도했으나 밀린 집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성체를 훔친 것은 난데 어째서 벌은 엄마에게 주는 거냐’며 예수에게 따지기 위해 늦은 밤 공소를 찾았을 때, 본의 아니게 피아노 뒤에 몸을 숨긴 채로 뒤이어 들어온 강희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게 될 뿐이었다. 그러니까 마치 십자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폐를 소독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십자가를 향해 맨가슴을 내미는 모습을. 더해서, 마치 신약이라도 먹듯이 그 안에 있는 성체를 꺼내어 먹는 모습을.


 

 

  <당선소감>

 

   "폐결핵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자전적 경험 녹여내"

  “이제 너무 홀가분합니다.”

  2022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최설 씨(45)에게 당선작 ‘방학’은 10여 년 묵은 숙제였다. 슈퍼결핵에 걸려 생사의 고비에 놓인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그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스물세 살에 처음 폐결핵에 걸렸어요. 10년 동안 약이 하나도 안 들었습니다. 병이 악화해 병원에 입원했고, 정말 죽음을 앞두고 있다가 소설처럼 신약 임상시험을 받으면서 살아나게 됐어요.”

  병을 앓기 전만 해도 글 쓰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책이라도 한 권 남겨놓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전까지 소설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불행이라면 나도 못지않은데’라고 생각했죠. 그 다음부터 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방학’은 그의 첫 소설인 셈이다. 물론 10여 년 전 처음 썼을 때와는 제목과 내용이 많이 다르다. 최씨는 “당시 투고를 해봤지만 낙선했다”며 “글이 엉망이기도 했고 폐결핵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뭔가 교훈을 던지려고 했던 거만함도 문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10여 년 동안 단편만 썼다. 문예지 본심에도 10번 정도 올랐다. 그런 가운데서도 항상 이 작품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모래주머니 같았다.

  “올해 한 문예지 본심에서 떨어지고 나서 이 작품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처음엔 300장짜리 중편으로 고쳐 썼어요. 나중에 단편집을 내게 되면 같이 묶어보려 했죠. 하지만 주로 30~40대 찌질한 남성의 일상을 주제로 한 제 단편과는 결이 달랐어요. 이 소설은 따로 한 권의 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장편으로 늘렸어요. 10년 동안 제가 성장한 덕분인지, 세상을 좀 더 알게 되어서인지 이번엔 이 이야기를 장악해서 쓸 수 있었죠.”

  ‘방학’을 쓰면서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최씨는 “소설 속 인물들이 진짜 현실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 위해선 최설의 뜻대로만 움직여선 안 된다”며 “등장인물들이 작가인 저조차 납득할 수 없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뒀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거의 독학으로 글쓰기를 익혔다. “2018년 합평을 하는 아카데미를 1년 정도 다녔어요. 소설 쓰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건, 소설은 혼자서 쓰는 것이란 것, 그리고 소설은 생겨먹은 대로 쓸 수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제가 천재가 아니니 김훈처럼 쓸 수 없고, 영리하지 않으니 손보미처럼도 쓸 수 없죠. 대신 나처럼 생긴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내 방식대로 쓰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게 자기 합리화일 순 있지만, 그냥 최설처럼 쓰면 되지 않을까 했죠.”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강점은 예민함과 디테일이다. 폐결핵으로 오래 아팠던 탓에 남들보다 훨씬 예민한 편이라고 한다. 남들은 굳이 안 보려는 것을 보고, 미세한 일상의 균열을 까발린다. 특히 그의 단편에서 ‘일상을 비틀어 낯설게 보여주기’가 잘 나타난다. “2016년 한 문예지 본심에서 미국의 미니멀리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평을 받았어요. 저는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미니멀리즘을 찾아보게 됐고, 레이먼드 카버도 그제야 알게 됐죠.” 사실 그가 영향을 받은 소설가는 다자이 오사무, 알베르트 카뮈 등으로 그중에서도 체호프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최씨는 1년에 360일은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가서 글을 쓴다. 그런 생활이 거의 10년째다. 죽다 살아났으니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글만 쓸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형이랑 남동생, 여동생이 다들 결혼해서 살고 있는데, 저를 뭘 믿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 유산을 제게 다 줬어요. 아버지도 제가 ‘죽기는 아쉽고, 작가가 돼볼게요’ 했을 때 그냥 믿어주셨죠.”

모래주머니를 떼어낸 그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최설스러운 소설’을 써나가겠다고 했다. “신춘문예 당선돼서 좋은 게 커피값을 벌게 된 것도 있지만, 이제는 독자만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게 된 점이에요. 이제는 뽑히기 위한 글이 아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온전히 독자를 위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 1977년 경남 고성 출생 
● 삼천포중앙고등학교 중퇴


 

  <심사평>

 

  

  완성도 높은 성장소설…냉소·독설적 문체도 매력

  기성 작가들도 장편을 쓰기 위해서라면 몇 년을 끙끙대곤 하는 판에, 신인이 장편을 쓰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을 줄 안다. 그래서 신춘문예 장편 공모 심사에 임할 때는 좀 너그러워지는 경우가 많다. 완벽한 작품을 기대하는 대신, 선별의 기준은 대체로 두 가지다. 가능성이 보이는가, 기성 작가의 평균작 정도에 미치는가.

  140여 편에 이르는 투고작 중 여섯 편 정도가 그 기준을 통과했다. ‘별 따는 복권방’ ‘연기와 바람의 숲’ ‘개미들의 꿈’ 이렇게 세 작품에서 심사위원들이 본 것은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각각 삽화적 구성의 비유기성, 너무 힘을 들인 만연체, 관습적인 주제의식 같은 흠결이 눈에 띄었다. ‘파주’ ‘열두 번째 거짓말’ ‘방학’ 세 작품은 기성 작가가 쓴 평균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세 작품을 두고 논의가 길어졌다.

  논의 도중 ‘파주’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다루고 있는 공동체가 그 외부, 즉 현실 사회나 역사적 맥락과 무관할 정도로 지나치게 자족적이란 점이 자주 거론되었다. 나머지 두 작품을 두고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당선작은 한 편일 수밖에 없는 법, 두 본심 위원은 결국 ‘방학’에 손을 들어 주었다.

심사위원 : 김인숙, 김형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