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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미쓰 불가마 / 정소정

 

  주연(29·여)은 한적한 동네의 낡은 다세대 주택에 세들어 살고 있지만 대학 때부터 살아서 익숙해진 그 집이 좋았다. 결혼을 약속한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정규직 전환을 약속해준 계약직 일자리까지.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다.

  주인 할머니는 집을 팔았다며 방을 빼 달라 하고, 남자친구는 딴 여자와 키스한 뒤 카톡 이별을 고하고,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던 회사는 계약기간 만료를 차갑게 통보한다. 모든 걸 잃은 주연은 살인적으로 오른 서울의 전세 시세를 절감하며 새 집을 구하는데, 보증금 5000만원으로 집다운 집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그러다 기적적으로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의 별채를 그 가격에 살게 해주겠다는 집주인이 나타나는데!

  집주인 아저씨는 주연의 사정을 봐줘서 특별히 싼값에 살게 해준 거라고 하는데, 그 집은 다른 집과는 사뭇 달랐다. 전에 살던 사람이 남기고 간 가구, 가전제품들이 모두 있는 그야말로 풀 옵션이다. 그 집에서 주연은 전 주인이 남기고 간 ‘목욕권’으로 여성 전용 불가마를 처음 경험하게 된다. 대중탕 자체를 멀리했던 주연은 그곳에서 뜻하지 않은 위로와 힘을 얻게 되고! 무엇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언니들이 생긴다. 예쁜 목욕 아이템을 색깔별로 사서 자꾸만 주연에게 버리는(?) 이쁜 언니,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얼음을 문 채 막 문을 사수하는 얼음 언니, 자상한 매점 언니,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의정부 언니. 그들은 서로의 나이도 직업도 묻지 않은 채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다.


 

 

  <당선소감>

 

   "목욕탕이 주는 '따뜻한 위로'…코로나 시국에 더 그립죠"

  “목욕탕 가는 것을 좋아해요. 어디든 놀러 가면 그곳 목욕탕을 꼭 가죠. 특이한 목욕탕이면 더 좋고요.”

  2022 한경 신춘문예 스토리 부문 1등 당선자 정소정 씨(40)는 “내가 좋아하는 목욕탕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선작 ‘미쓰 불가마’는 사춘기 이후 절대 대중목욕탕을 가지 않은 스물아홉 살 여성이 우연히 여성 전용 불가마에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여러 연배의 사람들과 친해지고, 상처를 치유받는다.

  “제가 좋아하는 목욕탕이 부산 허심청인데, 그곳에 가면 할머니들이 엎드려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고 계세요. 그럼 저도 옆에 같이 엎드려 물을 맞죠. 온양온천 신천탕도 그런 분위기라 좋아해요.”

  목욕탕이나 불가마는 우선 피부에 닿는 그 따뜻함이 적지 않은 위로를 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잘 모르는, 다양한 연령대 사람을 만나기엔 목욕탕만큼 좋은 곳이 없는 것 같아요. 할머니나 아주머니들과도 친구처럼 친해질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가마 토크는 일반 토크랑 달라요. 모두 땀을 흘리는 그곳에서 불가마는 공연장처럼 변해요. 누가 이야기를 하면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요. 수줍어서 말을 못 하는 사람도 큭큭거리며 웃으며 동참하죠.”

  10회째를 맞은 한경 신춘문예는 달라진 시대 흐름을 반영해 이번에 스토리 부문을 신설하고 작품을 공모했다. 영화, 드라마, 공연, 웹툰, 웹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원천 스토리를 찾기 위해서다. 분야 특성상 기성 작가들도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정씨 역시 드라마 대본으로는 처음 당선됐지만, 연극계에선 이름 있는 극작가다. 직장인들이 사슴 농장으로 야유회를 가서 생기는 일을 그린 연극 ‘뿔’이 대표작이다.

  “아버지가 부산 지역 아동문학가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동문학 동인지를 읽고 자랐고, 아버지 친구들도 아동문학가여서 자연스럽게 글을 읽고 쓰는 게 좋았습니다. 종이가 찢어질 때까지 쓰기도 하고, 글쓰기가 스트레스 해소 창구였어요.”

  고등학교 땐 연극반에 들어가 대본을 쓰고 작품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은 경제학과로 진학했다. 그는 “집안 형편이 안 좋아 예술을 전공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또 대학에선 영화 동아리에 가입했고,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 들어가 드라마 쓰는 것을 배웠다. 첫 직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였다.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이다.

  “너무 좋은 곳이라 일가 친척들이 절대 사표 쓰지 말라고 했죠. 저도 계속 다니고 싶었는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잘 눌러지지 않더라고요.” 결국 그는 4년 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한예종 극작과 전문사 과정에 입학했다.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부문으로 당선돼 연극계에 뛰어들었다.

  정씨 작품의 특징은 현실적인 이야기에 판타지적 요소를 녹여내는 데 있다. 연극 ‘뿔’에선 인사 평가를 앞두고 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슴 피를 마셔야 할 상황에 내몰린 직원의 머리에 뿔이 돋아난다.

  코로나 시국이라 목욕탕 이야기가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까. 정씨는 “드라마에서 인물들이 탕에 들어가고, 찜질하는 걸 보면 시청자들도 그 따뜻했던 몸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코로나로 인해 목욕탕에 잘 가지 못하는 지금, 우리에게 더 위안이 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드라마는 정씨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야만 할 길이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내가 쓴 대본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은 오랜 꿈 중 하나”라고 말했다.

  “TV의 매력은 모든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연극이나 영화처럼 어딜 가서 돈을 내고 보는 게 아니라 집에 앉아서 누구나 볼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특히 외로워서 TV 보는 게 낙인 사람들에게 재미와 위로를 줄 수 있는 드라마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 1982년 부산 출생 
●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졸업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졸업


 

  <심사평>

 

  

  '불가마'라는 일상적 소재에 휴머니즘·미스터리 잘 녹여내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열 편이었다. 미스터리, 스릴러, 판타지를 바탕으로 휴머니즘과 코미디를 혼합한 이야기가 주류였다. 조선이라는 매력적인 시대도 여전히 등장했고, 토속 신화의 주인공들도 소환됐다.

  주인공들이 맞닥뜨린 갈등은 대부분 편견과 차별에서 시작됐고 저항하는 주인공들은 쿨함과 정치적 올바름(PC) 사이 어디쯤에 서 있었다. 그사이에 함께 서서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작품을 먼저 찾았다. 작가 의식이 등장인물의 말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작품을, 인물의 행동 앞뒷자락에 자연스럽게 붙은 에피소드를,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위와 같은 기준으로 세 편의 수상작을 뽑았다. ‘미쓰 불가마’는 휴머니즘과 미스터리가 이야기 속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작품이다. 일상의 공간인 불가마에서 소통하는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흥미롭다. ‘고정관념 타파클럽’은 설정과 캐릭터가 가장 독특한 작품이었다. 단 설정이 과감했으니 서사도 좀 과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닮는 여자’는 깔끔한 구성과 안정된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은 이야기여서 자칫 옹색하고 상업성이 낮아 보인다는 염려도 함께 전한다.

심사위원 : 오기환, 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