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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무료나눔 대화법 / 임현석

 

  빨간색 원형 테이블보를 걷어내자 갈색 원목 상판이 드러났다. 손으로 가운데 옹이 무늬에서 굴곡진 주변부, 용접식 철재 프레임으로 제작된 차가운 다리를 쓸었다. 모든 이음새가 단단하게 붙어 있고 균형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져 마치 거실에 뿌리를 두고 내린 또 다른 형태의 나무처럼 느껴졌다. 상판 가장자리는 실제 나무처럼 자연스러운 곡률을 따라 모양이 잡혀 있었다. 아내가 11년 전 장인을 통해 주문제작한 물건이었다. 나는 최근 들어서야 아름다움을 감별하는 아내의 눈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깨닫고 있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찍은 사진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중고거래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 ‘무료 나눔’이라고 올리자마자 반나절 만에 열 세 명이 연락처를 남겼다. 알림 탓에 소파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 화면이 수시로 밝아졌다. 그건 며칠 전 아내가 알려준 앱이었고, 게시판에 글을 올린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빨리 사람들이 몰린다는 걸 몰랐다. 전화가 울렸다. 아내였다. 연락 많이 왔을 텐데, 확인하고 있어?

  일요일, 소파에 깊게 파묻힌 채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을 때였다. 몸을 일으키면서 막 확인하려던 참이라고 했다. 친정은 좀 어때? 그러나 전화는 이미 끊어진 뒤였다. 평소 친정에 잠시 들렀다 올 때조차 온갖 식재료와 필요한 살림살이를 살뜰히 챙겨오던 아내다. 하물며 미국에 가기로 결단을 내린 뒤였으니, 인류 최후 벙커에 실을 물건을 점검하는 물자담당 행정 공무원처럼 딸에게 줄 음식을 하나씩 챙기고 있겠지. 아내는 신경이 몹시 곤두서 있을 것이다. 아내가 오기 전까지 일을 모두 처리해야만 했다.

  조건은 하나뿐이었다. 직접 와서 가져가야 한다는 것. 우린 그 물건을 치워버릴 생각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댓글을 남긴 이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자 그는 내게 직접 가져다줄 수는 없느냐고 했다. 버젓이 가져가는 조건이라고 남겨놨는데도.

  - 어깨를 다쳐서요.

  - 안타깝지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없네요. 혼자 사는 사람이라 옮길 수 없고, 물건을 실을 만한 차도 없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도 아니었고 차도 있었지만 어떤 면에선 모두 진실이었다. 내 SUV 차량 뒤 칸은 골프백과 1년 반 넘게 방치해둔 캠핑용 잡동사니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내가 친정에서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함께 남 좋은 일을 하자고 무거운 식탁을 옮기는 모습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그런 호의를 베풀어야 할 이유란 없다. 모르는 사람인 데다 유일한 조건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선 무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탈락이었다. 그보다도 내 마지막 대답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아 저절로 떨어져나갔다.

  상판에 어떤 나무를 썼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 삼나무입니까, 아님 자작나무?

  - 글쎄요. 원목입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보려 애썼지만 결국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 전 아내는 목재를 만져보면서 가장자리 폭이 균일하고 목질이 중후하다면서 전형적인 무슨 나무의 특징이라며 귀띔했다. 그때 나는 그녀를 따라서 장인 작업실에 갔다가 매캐한 먼지와 어두침침한 분위기에 얼굴만 찌푸리면서 흘려들었다. 가격표가 붙은 물건이 아니었고, 나는 그 동네 장인들이란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에게 가격을 높여부르는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의심하던 터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부러 표정만 찡그리고 있었다. 그러느라고 아내의 말을 귀담아듣지 못했다.

  아내는 옹이 무늬가 중간에서 약간 치우친 곳에 있다는 이유를 들며 장인과 흥정했고 한 푼씩 깎았다. 무늬 모양이 어째서 흥정대상이 되는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이지 무늬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내비치며 거들었다. 장인이 거듭 난색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내가 만족하는 선에서 가격이 정해졌다. 아내는 돌아오는 길에 그게 얼마나 좋은 식탁인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한눈에 봐도 목질이 다르지?” 아내가 말했다. 응, 좋더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식탁이 그저 식탁 아닌가. 기성품도 훌륭한데 굳이 흥정하면서까지 시간을 써야 하나. 속으론 그런 생각도 없진 않았다. 그때는 그랬다. 그리고 지금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식탁 다리를 하나씩 분리가 가능하냐는 질문을 던진 이도 있었는데, 모른다고 대답했다. 핸드폰 카메라 손전등을 켠 채로 식탁 다리를 두루 살펴봤으나 프레임을 통째로 뜯어낼 순 있어도 하나씩 분리가 되는 형태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 역시 아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물건의 내력과 가격, 작동이나 구성 원리, 구조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는 아내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주도권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식탁을 가져가겠다는 대기자는 많았다. 게다가 다리를 하나씩 뜯어낼 수 있다면, 전부 분리해서 달라고 할지도 몰랐다.

  - 통째로 들고 가셔야 합니다.

  - 저는 상판만 필요합니다. 전기 절단기로 분해할 수 있습니다.

  잠시 그의 말을 이해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그건 블레이드형 톱날을 쓰는 절단기를 말하는 것 같았다. 불꽃은 사방으로 튀고, 강한 불빛이 발생해서 용접용 마스크를 쓰고 하는 작업 아닌가. 요즘엔 위험하다는 이유로 길가서도 함부로 쓰지 않는다. 그걸 가정집에서 쓰겠다고? 게다가 아무 쓸모도 없는 철재 다리 뼈대만 집에 남겨두겠다니. 터무니없는 부탁이었다.

  - 죄송합니다.

  - 군대에서 배운 기술이 있어서 절단은 어렵지 않습니다.

  - 어렵고 말고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상판이 8㎝ 정도로 두꺼워 보이는데 요즘엔 목재의 자연스러운 결을 살리되, 폭은 점점 더 얇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가져가겠다는 말인가요? 그러자 상대방은 가구에 대한 철학이 아쉽다며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다. 상대방은 식탁을 보면 주인의 인테리어를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을 알 수 있다면서 난데없는 힐난을 던졌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조립식 식탁이라면 분리해서 가져가는 편이 편하다며, 내게 조립비를 받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조립비는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자 상대에게서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의자도 함께 가져갈 수 있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는데, 의자는 아내가 교회 지인들에게 나눠 주기로 한 터였다. 또 다른 이는 일주일 뒤엔 꼭 가져갈 테니 기다려 줄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내가 양보할 이유는 없었다.

  - 사정이 있어서요. 일주일 뒤엔 꼭 가져갑니다.

  - 죄송합니다. 사정은 저한테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구구절절한 내막까지는 알 필요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대화를 그만둬야 한다. 정말이지 내가 알고 싶은 건 지금 가져갈 수 있는지 그뿐이었다. 가능하세요? 가능합니다. 무료나눔 대화는 이래야 했다. 나는 수신 차단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들을 모두 차단 목록에 올렸다. 예의 없는 것들.

  그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졌거나, 혹은 사회생활 경험이 많지 않은 경우, 그런 어린 애들은 자기 몫과 권리만 요구하고 남을 배려하는 성향이 떨어진다고. 나는 아내에게 새로 부서에 배치된 젊은 직원들을 보면서 자주 불평해왔다. 식탁 상판만 들고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면서도 제멋대로인 신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평소 아내는 젊은 사람이 다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적어도 내가 봐온 요즘 신입사원들은 대체로 그렇다고 했다. 최근에도 그랬다. 갓 입사한 옆 부서 재경국 사원이 영업팀 본부장인 나부터 부장, 차장, 대리까지 다 수신자로 지정해서 메일로 보낸 적이 있다, 요즘 외부 미팅 식사 영수증 누락건이 많아졌으니 각별히 신경을 써달라나, 그게 왜 문제냐는 아내에게 설명하려 애썼다.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한들, 자기 상사에게 보고하고 윗선끼리 얘기가 되게끔 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이가 먹어갈수록 비슷한 연배가 편했다. 식탁 역시 내 나이쯤 되는 사람이 물건을 가져갔으면 했다. 사소한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적당한 여유가 있고, 작은 호의에도 머쓱해하고, 상대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하는 태도를 갖춘 사람이길 바랐다. 보통은 내 나이 연배 남자들이 그런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시간을 알려달라는 게 전부였다. 그게 좋았다. 그는 열세 명 중에서 아홉 번째였다. 원칙적으론 먼저 연락한 순서대로 우선권을 줘야 하겠지만, 원칙을 일일이 지킬 여유가 없었다. 다섯 번째까진 차례대로 내려오다가 그게 시간 낭비임을 깨달았다. 가능하신가요? 여러 명에게 동시에 물었다. 그리고 답장을 훑다가 그로 정했다. 그는 오늘 언제든 가능하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전화번호와 함께 우리 집 아파트 호수를 전달했다. 그러자 채팅창 말풍선 안에 ‘…’ 표시가 나타났다, 상대방이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내 글자가 떠올랐다.

  - 가깝네요. 지금 가지러 갈까요?

  - 집에 있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이상적인 시작이었다. 아마도 문 앞에서 우린 더할 나위 없이 간결한 인사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는 아마도 내 나이대 남자가 아닐까. 그는 식탁을 만지면서 좋은 물건이라고 말할 테고, 나는 오래 정든 물건입니다.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몇 차례 버석한 대화가 오간 다음 그는 자신이 데려온 누군가와 어영차 식탁을 든다. 나도 현관 앞에서 신발을 치우면서 거들어야겠지.

  그럼 남자는 식탁을 든 채로 조금씩 등 뒤쪽으로 물러나다가 현관에서 신발을 구기면서 발에 끼울 것이다. 식탁이 집 밖으로 빠져나가고 문 앞에서 그에게 인사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잘 쓰십시오. 그러면 그가 식탁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내게 인사를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주춤할 테지. 그럼 나는 황황히 말리면서 “내려놓지 마시고요. 조심하시고 살펴가십시오” 할 것이다. 그럼 남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나는 잠시 그를 태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길 기다리겠지. 문이 닫히면 나도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끝이 난다. 그건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무료나눔이다.

  - 저 지금 아파트 1층입니다.

  그가 문자로 아파트 동 입구에 도착했다고 알렸다. 입구 인터폰으로 집 호수를 눌러서 도착 사실을 알려도 될 텐데 굳이 개인 전화로 먼저 연락하다니. 갑작스러운 인터폰 호출 소리에 놀라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 아닐까. 나는 그가 경우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현관 앞에서 기다렸다. 배달 서비스를 수없이 받아본 덕분에 나는 언제쯤 1층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집 문 앞까지 도착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금쯤이라고 생각했을 때 어김없이 인터폰이 울렸다. 나는 문손잡이를 돌린다. 이쪽 세계가 바깥을 향해 열렸을 때 내가 마주한 건, 두 명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들이 먼저 인사했고, 어째서인지 “예”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분명 꽤나 높은 톤으로 안녕하세요, 말하면서 미소 짓는 내 모습을 상상했는데.

  20대 중후반 정도였을까. 한 명은 왜소한 편이었는데 티셔츠 위에 낚시터에서 볼 것 같은 얇은 회색 나일론 조끼를 덧입고 있었다. 이런 스타일이 유행인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티셔츠 위에 왜 거추장스럽게 조끼를 덧입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달라붙는 청바지가 유행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바지를 입고 있었다. 거기에 어두운 색 벙거지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건물 안인데도 그랬다. 그게 유행이라면, 답답하게 보이는 게 유행이라는 얘기였다. 다른 쪽은 두툼한 편에 키도 커서 다부진 편이었는데, 홍학이 그려진 노란색 하와이안 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그리곤 머리에 뭔가를 잔뜩 발라 뒤로 넘긴 채였다.

  둘 다 나름대로 잔뜩 멋을 낸 듯했는데, 뭐랄까, 터무니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휴양지 호텔에서 제비뽑기 이벤트에 당첨돼 상을 받아 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저희는 무슨 상을 받게 되나요? 그렇게 물을 것 같다. 그럼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식탁이라고 대답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무료나눔 식탁을 가져가기에 적당한 복장이라는 게 따로 없지만. 휴가 가는 기분과는 다를 텐데, 딱 붙어서 움직이기 불편한 청바지에 시야를 가리는 선글라스 그리고 지나치게 펄럭거리는 홍학 하와이안 셔츠라니. 식탁을 나르기 좀 더 편한 복장을 입고 오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젊은 애들은 상황에 맞는 옷을 입는 게 왜 중요한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나는 그게 왜 문제인지 딸에게 일러주곤 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상대방이 경계하게 되는 법이다. 그럼 상대로부터 호감을 얻지 못하게 된다. 호감을 얻지 못하면? 딸은 물었다. 그때 나는 대답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던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얻게 되지. 나는 대답했다.

  그들에겐 어떤 불이익이 있을까. 나는 그들에게 더 친근하게 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이 식탁이 얼마짜리인지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다. 상판에 어떤 나무를 썼는지는 나 역시 정확히는 모르지만, 하여간 꽤 비싼 돈을 들여 산 좋은 식탁이라고 그들이 얼마나 횡재를 한 것인지 알려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다. 불이익인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값어치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렇다.

  제가 연락드렸습니다. 하와이안이 말했다. 경우에 따라선 건달처럼 굴 것도 같은 인상인데, 실제 목소리나 태도는 다소곳했다. 그러시군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되도록 복장이나 외모에 대해선 잊기로 마음먹었다. 선글라스 쪽은 좀 더 독특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자기 세계 안에 빠져 있는 것처럼 혼자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거기엔 리듬이 실려 있어서 나는 그게 금세 노래라는 걸 알아차렸다. 아마 랩이 아닐까. 걸어 들어오면서 어깨를 들썩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혼자 웅얼거리는 것에 불과했고, 누군가를 방해할 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는 세상살이의 중요한 원칙을 깨트리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남의 집에 들어와서 무언가를 할 땐 허락을 받아야 하는 점을 말이다. 남의 집에선 그게 원칙이다. 11년 전 아내가 얻은 정보 덕분에 이 집을 산 이래 매달 대출금을 조금씩 갚아가며 애지중지 지켜온 곳이다. 내 공간이다. 그게 어떤 의미냐면, 여기 32평 안에선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랩이든 노래든 춤이든.

  그러나 그들에게 어떤 충고도 남기진 않았고 되도록 그들의 모습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들은 남이고 이건 그냥 무료나눔일 뿐이지 않은가. 그건 그들이 식탁을 나르다가 청바지가 찢어지든, 그 한껏 멋낸 올백 머리에 먼지가 잔뜩 묻히든 내 알 바 아니라는 얘기다. 식탁은 현관에서 중문을 열고 들어와서 거실 쪽으로 틀면 바로 보인다. 그걸 양쪽에서 잡고 나가는 일이 고작이다. 보통 식탁보다는 무거울 텐데 남자 둘이서 들면 어렵진 않을 것이다. 그럼 모든 과정을 다 따져도 몇 분이면 끝날 것이다.

  남자 셋이 우두커니 선 채로 거실에서 식탁을 바라보고 있다. 이 물건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렇군요. 선글라스가 대답했다. 둘은 식탁에 대해서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았다. 둘은 식탁의 가치가 아니라 무게만을 생각하는 듯했다. 얼마짜리인지, 얼마나 좋은 나무를 썼는지 묻지 않는다. 둘은 이를 어떻게 나를지 상의했다. 그 자리에서 마치 뿌리째 뽑아가는 것처럼 그저 그 물건을 자리에서 들어낼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근사한 식탁이라면 누구든 적당한 관심을 보여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들에겐 아무 식탁이나 상관없었던 것일지 모른다. 좀 더 가볍고 싼 나무 합판 조립식 식탁이나 장인에게 제작한 식탁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렇다면 우리 집 물건은 그들에게 너무 과분하지 않나. 아쉬워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떨쳐내기 어려운 생각이었다.

  식탁은 얼른 처리해야 할 물건이긴 했다, 아내가 미국으로 곧 떠나면 혼자 살기 적당한 작은 집으로 옮겨가야 했으므로. 그러려면 거추장스러운 물건들을 어떤 식으로든 치워버려야 했다. 그렇게 아이를 혼자 방치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내는 한번 결심을 내리자 지체 없이 미국으로 갈 수 있는 최대한 빠른 비행편을 알아보더니, 나흘 만에 출국하는 표를 끊었다. 아내는 한동안 그곳에서 살 것이라고 말했다. LA에서? 이 넓은 집을 어떻게 하고? 아내는 집을 전세로 내놓으라고 했고, 내겐 더 작은 집으로 옮겨가라고 했다. 책장이나 식탁은 작은 걸 새로 사는 편이 낫다고 했다. 처리할 물건들은 중고마켓 앱에 무료나눔으로 내놓으면 된다고 했다. 일이 너무 빨리 돌아가는 통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딸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두 번이나 미대 입시에 미끄러지자 차선으로 선택한 게 미국 유학길이었다. 딸에게 먼저 얘길 꺼낸 건 나였다. 언젠가 입사 3년 후배인 회사 부장 하나가 술자리에서 아들을 해외로 유학 보냈다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 대학 입시가 우리보다 훨씬 간단하니까요. 후배는 그렇게 말했다. 그 자리에선 별로 대단찮은 화제였지만, 딸이 입시 실패 후 낙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 말을 담아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1년간 현지에서 영어를 배우는 대학 부속 교육기관에 다니다가 내년에 해당 학교 디자인 관련 학사 과정에 입학하는 코스라고, 그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입시에 재차 좌절해 실망이 컸던 탓인지, 딸도 내 말에 순순히 응했고 유학 쪽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내는 자신이 알아보고 등록시켰던 입시학원들에 문제가 있었다며 자책하던 터라 유학 자체를 말리진 않았다. 다만 아내는 딸아이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면서 한사코 자신이 함께 가야 한다고 했는데, 군말 없이 부모 말을 따르던 딸이 그것만큼은 거부했다. 스물하나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나이라고 했다. 혼자 가는 것. 그게 제 유일한 조건이에요. 딸아이는 말했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나이라. 그 나이 자체는 그런 나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의 인생과 관련해 늘 결정을 내리는 쪽은 언제나 아내 혹은 나였다. 특별한 모험도 도전도 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물론 딸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그동안 맞닥뜨려온 입시란 엄청난 도전이라고 생각했을 터였고 동시에 입시 실패는 거대한 좌절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입시라는 과정 자체가 대단한 일인가? 모르겠다. 나는 그저 결과를 내지 못한 게 한심하고 안타까웠을 뿐이었다.

  한편으론 정보력이 있는 우리 같은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에게 딸은 그저 보듬어야 하는 어린애였다. 결과적으로 아이가 혼자 떠나갈 수 있게 허락했는데, 아이가 혼자 독립할 수 있는 힘을 이참에 기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니까 아이의 요구를 수락한 건 오히려 혼자 살아갈 나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혼자 보내기로 한 건 오판이었을까. 그렇게 빨리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첫 3개월 만에 딸은 자신이 왼팔에 깁스를 했다고 알려왔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도로에서 미끄러지면서 다쳤다고 했다. 넘어지면서 팔을 땅에 디뎠는데, 심하게 꺾였다는 게 딸아이의 설명이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스케이트보드라는 게 뜻밖이었다. 여기 와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수화기 저편에서 딸은 말했다. 나는 그 정도면 다행이라고 아이를 위로했고, 그러면서 다음엔 좀 더 안전한 취미를 찾아보라고 했다.

  “안전한 취미예요. 그저 재수가 좀 없었을 뿐이죠.”

  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한 말투를 쓰지 않던 아이여서 그때 이미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뭔가 더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같은 것이 스쳤다. 돌이켜 보면 차라리 스케이트보드 쪽이 더 안전한 취미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5개월 후 아이는 병원에 입원했다. 그 소식을 전한 건 딸이 아니었다. 아내에게 연락한 것은 현지 어학원 행정직원이었다. 아내는 모르는 번호의 국제전화가 남겨져 있다는 사실부터가 심상찮았다고 한다. 아내도 나처럼 이전부터 불길한 종류의 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아내는 현지 직원의 빠르게 흘리는 영어를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병원이라는 단어와 모터사이클이라는 단어와 남자친구라는 단어를 알아들었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어떤 종류의 사고가 벌어졌는지 짐작했다. 병원도, 남자친구도, 모터사이클 어느 것도 우리 부부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스케이트보드보다 더 낯선 조합이었다.

  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내는 병원 연락처를 받아두었고, 영어를 잘하는 대학생 처조카 아이에게 시켜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신 확인했다. 헬멧을 쓰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아니라네요. 조카가 말했다. 남편이라는데요.

  늦은 밤 딸은 전화로 자신의 의식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고, 치료엔 수개월이 걸리겠지만 차근차근 재활해나가면 되는 일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아내는 그렇게 말할 일이 아니라고 고함을 쳤다. 전화기를 건네받은 내가 남자친구에 대해서 캐물어도 딸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아내는 서둘러 미국으로 가는 비행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둘이 식탁을 옮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와이안이 문에 다다라서 조심스레 뒷걸음질쳤다. 다소 무거워 보였으나, 틀림없이 옮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식탁 상판은 현관문보다 폭이 넓었다. 정말이지 몇 센티미터에 불과했지만, 턱 하고 걸렸다. 젠장, 하와이안이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선글라스가 자신이 하겠다며 자리를 바꿔 문 쪽에서 식탁 머리를 빼내기 위해 분투했지만 어림없었다. 현관 쪽에 놓인 신발장 탓에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좁았다. 식탁을 기울이고, 옆으로 뉘어도 마찬가지였다. 어라? 처음엔 그들이 요령 없는 게 아닐까 했는데, 선글라스 질문엔 당혹감이 밀려왔다.

  “집엔 식탁을 어떻게 들여오셨어요?”

  어떻게 식탁을 들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사했던 날의 기억이 드문드문 떠올랐지만, 냉장고와 식탁이 들어오는 장면은 누가 지우고 간 것 같았다. 아무리 기억 속 창고를 훑어도 그 부분은 깔끔하게 지워져 있었다. 포장이사 업체를 이용했던 것 같다. 아마도 창문을 뜯은 뒤에 사다리차로 올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확신할 순 없었고 식탁이 어떻게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라면, 정말이지 아는 바가 없다.

  그걸 깨닫자 나는 무척이나 당혹감을 느꼈다. 아내라면 알고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나는 급하게 다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음만 길게 이어졌다. 휴대전화에 귀를 대고 있는 동안 낯선 물건을 보는 것처럼 한참 식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번에도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마나한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정말이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들여오긴 했는데.”

  둘은 거실에 식탁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식탁을 어떻게 옮길지 처리 방법을 두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선글라스는 상판과 다리를 분리하자고 했다. 분리가 가능한가요? 선글라스가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선글라스는 마치 자동차 정비라도 하듯 스마트폰 손전등을 켠 채로 식탁 아랫부분을 훑기 시작했다. 그는 분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하와이안이 신중하다는 인상을 줬다면, 선글라스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인 듯했다. 그제야 적당히 서로를 보완하는 친구 관계처럼 보였다. 선글라스는 물었다.

  “혹시 집에 드라이버가 있나요?”

  나는 쪼그려 앉은 채로 선글라스가 식탁 아랫부분을 탐색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하와이안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드라이버? 나는 공구함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냈다. 하와이안과 선글라스, 그리고 나는 식탁 다리가 위쪽을 바라보도록 뒤집었다. 나사도 참 단단하게 조였네요. 엄청 튼튼해요. 선글라스는 드라이버를 돌리면서 힘을 잔뜩 준 표정이었다. 그건 그들이 식탁에 건넨 첫 번째 칭찬이었다. 선글라스가 다리를 만지면서 물었다. 집에 전동 드라이버는 없습니까? 그러나 집에 그런 것은 없다.

  “그게 있으면 편합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요.”

  그 말을 듣던 하와이안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30분 뒤에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식탁 아래에서 부질없이 드라이버를 돌리던 선글라스 쪽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식탁이 문 앞까지 끌려나온 채로 뒤집혀 있었고, 선글라스는 자신의 친구가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열리지 않는 나사를 두고 낑낑대고 있었다.

  일이 복잡해진 것은 누구나 식탁을 쉽게 나를 수 있다고 여긴, 내 착오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앱 게시판에 그저 원목 식탁이라는 설명을 남겼을 뿐이다. 그것 외엔 아무런 특기할 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식탁의 밑바닥을 훑어야 하는 상황 같은 건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헛심 쓸 필요가 없다고, 친구분이 곧 오게 될 테니 그때까지 쉬는 편이 나을 거 같다고 했다. 그러나 선글라스는 계속 시도하겠다고 했다.

  “모르죠. 이러다가 갑자기 잘될지도.”

  그는 정말이지 나사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로선 식탁을 집 안에 들인 이래 거기에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했던 나사였다. 식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아래쪽에 대해서라면 더욱이나 그랬다. 식탁을 뒤집어서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10년 전쯤 초등학생이던 딸아이가 식탁 밑에 들어가 웅크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식탁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라고 혼을 내곤 했다. 식탁 아래 짙고 어두운 그림자가 아이에게 드리워진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였다. 나는 식탁 아래쪽은 온통 어둡기만 하다고 생각해왔고, 그래서 맨얼굴을 밖으로 드러낸 식탁 아랫면이 윗부분보다 좀 더 톤이 환하고 색감이 밝은 나무색을 띠고 있다는 게 꽤 의외였다. 실제로는 아랫면에서 손때가 덜 탄 환한 색이 드러나는구나. 그건 오랫동안 아이 눈에만 보이는 영역이었을 것이다. 식탁은 점점 더 낯설게 보였다.

  식탁에 대해서라면 알고 있는 게 많지 않았고, 설명해줄 수 있는 말도 없었다. 그러니 애쓰고 있는 선글라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식탁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잠시 생각 끝에 내가 알고 있는 걸 하나 간신히 추려서 말해 줄 수 있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너무 애쓰지 마세요.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나는 쪼그려 앉아서 식탁 아래 다리 부분의 이음새 쪽과 그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그때 선글라스는 쪼그린 채로 식탁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내 말에 그는 잠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땀에 번들거리는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잠시만요. 나는 냉장고 쪽을 향했다.

  문을 열고 오렌지 주스를 찾았지만, 없었다. 분명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친정에 간 뒤로 장을 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 들어 끼니는 배달음식으로 대충 때우고 있었고, 냉장고엔 별 신경을 기울이지 못했다. 나는 컵에 물을 채운 뒤 그에게 건넸다. 그가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그걸 받아 마셨다. 친구 오려면 한참은 걸릴 겁니다. 선글라스가 말했다. 하릴없이 남의 집에서 미적거리기 난처하다는 말로 들렸다. 그가 물잔을 비우자마자 이내 뭐랄까 어색한 공기가 집안을 감쌌는데,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린 같은 분위기를 느꼈던 게 틀림없다.

  “이웃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라면” 나는 말했다. “노래를 부르셔도 좋고요.”

  그러자 선글라스가 흠칫 놀랐다. 자신들은 남자 둘 여자 하나로 이뤄진 인디 힙합 그룹이었고 새로 만든 랩을 연습하던 중이라고. 물을 받아마시면서도 속으로 새로 쓴 랩 가사를 외우느라고 조용히 읊조리고 있었는데, 마치 자신의 속마음이 드러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랩이어도 좋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거실을 서성거렸고, 그가 자신만의 랩에 몰두해 있는 동안 하와이안이 누르는 인터폰 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헐떡이는 하와이안 옆엔 한 명이 더 있었다. 탱크톱 차림에 캡 모자를 눌러쓴 차림이었고 오른팔엔 의미를 알 수 없는 영문 문신이 새겨져 있었는데, 나는 비로소 인디 힙합 그룹이 우리 집에 다 모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식탁을 분리해서 옮기려면 사람이 더 필요하겠지. 허락 같은 건 받지 않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전동 드라이버를 이용하자 다소 터무니없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수월하게 식탁이 분리됐다. 문신과 하와이안이 금속 식탁 다리를 앞뒤로 잡은 채로 문밖을 빠져나갔다. 그건 마치 훌륭한 사냥꾼들이 동물의 다리를 들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하와이안이 집 안으로 다시 돌아와서 선글라스와 상판을 마저 들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옮겼다. 그걸 옮기는 모습만 봐도 상판이 꽤 무거운 물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무게도 무게지만, 부피가 커서 이들이 분리된 식탁을 한꺼번에 옮기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니까 정말이지 하는 수 없었다. 나는 하와이안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손사래를 치면서 사양했지만.

  우리는 함께 상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상점 앞을 지났다. 다리를 들고 있는 두 명이 뒤따랐다. 저녁이 내려앉은 거리에서 사람들이 식탁 사냥꾼들을 힐끔거리면서 지나갔다. 도착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상가 건물의 옥상이었다. 옥상이라고요? 그들은 그곳에 자신들의 작업실이 있다고 했다. 옥상에 도착하자,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정말이지 전형적인 옥탑방이었다. 거기엔 평상이 있었는데 나는 그쪽으로 비틀비틀 다가서서 뻗어버렸다. 주스 드세요. 하와이안이 내게 종이팩 포장 주스를 건넸다.

  온몸의 감각은 빨대가 닿은 입술에 몰려 있었다. 평상에 누운 채로 하늘을 바라보면서였다. 그사이 그들은 식탁을 조립하고 있었다. 그건 집 안에 들이는 용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식탁을 밖에 세워둘 생각이라고 했다.

  가끔씩 여기서 뭐라도 시켜먹곤 하려고요. 문신이 설명해줬다. 내가 몸을 가까스로 일으켰을 땐 식탁이 완성된 뒤였다. 바깥에서 원목 특유의 뚜렷한 명암과 짙은 색감이 눈에 띄었다. 그 명확한 대비 때문에 식탁에서 독특한 생기가 느껴졌고, 그래서 식탁은 마치 처음부터 그곳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돋아나기라도 했던 것처럼 보였다. 이 식탁이 내 집 아닌 곳에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 없었는데, 어디에 둬도 그런대로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식사를 안 하셨으면 같이 하고 가시죠. 선글라스가 라면을 끓여오겠다고 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번갈아가면서 랩을 흥얼거리면서 하와이안이 젓가락을 내왔고, 문신이 냄비를 가져왔다. 나도 그때 마침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어서 조용히 흥얼거렸다. 20대 때 유행하던 댄스가요였다. 그러고 보니 그게 그들의 랩과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아내가 곧 떠나기 때문에 식탁을 내놨다고 말했다. 라면을 후루룩 삼키면서였다. 그러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젓가락질을 멈추고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혼자 계신다면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문신이 말을 꺼냈다. “게임 좋아하시나요?”

  그들은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플레이스테이션4 게임기와 게임 CD 패키지를 팔아버릴 생각으로 중고마켓 앱에 올려놨다고 했다. “그냥 가져가셔도 좋아요. 시간 죽이는 데 이만한 게 없거든요.” 선글라스가 말했다. 내가 사양할 틈도 없이 선글라스가 옥탑방 안에서 게임기와 CD를 담아서 줬다. “어차피 저희는 필요 없어요. 오디션이 코앞인데요. 이번만큼은 제대로 해보려고요.”

  물건 하나를 성공적으로 치워내자마자 물건 하나가 늘었다는 사실을 집에 도착해서 깨달았다. 게임기라니, 이걸 아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말 그들은 흥겨워 보였고, 진심이 담긴 배려 같은 것이라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하겠지만, 분명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해명을 해볼 틈도 없이 아내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귀 쪽에 댄 채로 나는 식탁이 있던 자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휑뎅그렁 드러난 공간을 보면서 남은 물건들도 하나씩 사라지는 운명을 쉽게 예감할 수 있었다. 바닥엔 식탁 다리에 눌린 자국이 남아있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만이 공들이고 신경 쓰던 것. 그것을 들어낸 자리였다.

  나는 식탁이 놓여 있던 자리로 다가갔다. 나는 그 자리가 여전히 식탁의 영역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식탁은 사라졌고 그곳은 아무런 구획도 없는 텅 빈 바닥일 뿐이었다. 그 순간 식탁이 놓여 있었던 자리는 유독 더 어두워 보였다. 나는 거기서 식탁의 그늘이 차지하던 범위가 얼마만큼이었는지 떠올리면서 손으로 바닥을 쓸어보았다. 먼지 같은 것들과 찬 기운만 손에 들러붙었다.

  나는 어두운 바닥으로 하나씩 떨어지는 수신 대기음을 들으면서, 지금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냉장고야? 그건 아내만이 알고 있다. 아내만이 아이에게 해줄 말이 있다. 내게도 판단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나는 아내를 붙잡고 한참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슨 원목이라고 했지? 이젠 그때 흘려들었던 아내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문자 메시지가 화면 위에 떠올랐다. 집 안은 적막했고, 나는 그대로 스마트폰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검지손가락으로 중고마켓 앱을 찾아 눌렀고, 이전 대화 목록을 더듬거렸다.

  “이 게임 저도 할 만합니까?” 전화를 받은 건 하와이안이었다. “이런 질문도 괜찮습니까? 혹시 너무 무례하게 들리진 않았습니까?” 이번엔 내가 많이 물어보는 쪽이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TV 단자에 게임기를 연결하고 있었다.


 

 

  <당선소감>

 

   대학생 때 여러번 낙방 계속 쓰며 검증받겠다

  대학생 때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신춘문예를 비롯해 여러 등단 공모전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땐 그게 꽤 충격이었는데, 시·소설 창작 모두 적어도 학교 울타리 안에선 좋은 평가를 받아와서 뭐가 돼도 되겠지 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력도 그다지 좋지 않았던 때다.
  
작가라는 꿈에만 계속 매달릴 수 없었고, 어엿한 생활인부터 되겠다는 생각으로 직장을 구했다. 기자직은 글을 다룬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기자 초년생 땐 글쓰기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그때 배운 몇 가지 교훈은 보편적인 글쓰기 원칙으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이해하지 못한 건 쓰지 말라’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당연한 것 같지만, 기자 초년생들은 높은 지위의 취재원한테 기가 눌려서 대답이 잘 이해되지 않아도 일단 넘어가는 경우가 적잖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본질을 피해간다고 느낄 땐 이해가 될 때까지 취재원에게 몇 번이고 되물어야 한다고 배웠다.

  이해한 것만 쓴다. 이해하지 못하면 남겨둔다. 이러한 태도는 소설 쓰기에 있어서도 도움이 됐다.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속으로 되물었고, 감정과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됐다. 아내와 남편, 딸, 인디힙합밴드가 내는 목소리를 전부 들으면서 세계의 세부들을 만들어나갔다.

  타인에 대해서 더 공감하고 연민하고 싶어서였다. 이제 그들 한 명 한 명을 약간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믿게 됐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오래 쓰고 싶다. 소설가란 자격이 아니라 태도라는 말을 믿으면서 계속 글을 쓰고 검증받겠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 1986년 서울 출생 
●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동아일보 기자


 

  <심사평>

 

  

  필요한 이야기, 개연성, 공감, 유머… 단편소설이 지녀야할 미덕 다 갖춰

  본심에서 만난 총 10편의 응모작들마다 이야기와 형식에 대한 개성이 엿보였다. 그중 ‘깊은 못’은 동네 국제사격장으로 총을 쏘러 나가는 아내가 인상적이기는 했으나 때로 불안한 시점과 A의 실종을 보다 효과적으로 처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싸움’은 현수라는 인물이 돋보였다. “져도 싸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다시 싸운다는 그 청소년의 의지가. 그런 소년은 폭력적인 선생과 시간을 거쳐서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런 현수를 지켜본 ‘나’라는 시점 인물이 스스로 경험한 싸움은 무엇인가? 효과적인 시간 쓰기, 이야기 배치에 대해서 더 고민해 보길 바란다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선자’는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은 때로 이야기보다 인물이 먼저라는 점을 잘 보여주었으나 선자의 배경, 백그라운드의 전형성이 전체 의미를 가려버렸다. 죽음을 기다리면서 모자를 떠주기 위해 손바닥으로 조카 정수리 크기를 재보는 선자의 이야기가 지금보다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모호한 현재 시간의 처리, 죽음 외에 서사를 이끌어 나갈 수 있으며 그 후 남는 선자의 다른 지점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심사위원들은 올해의 당선작으로 ‘무료나눔 대화법’을 선정하자는 데 이견이 없었다. 단번에 이 단편을 뽑느라 다른 응모작의 빛나는 지점을 발견하지 못하게 될까 봐 논의 시간을 늘렸으나 결과는 처음과 같았다. 이 응모작은 단편소설이 지녀야 할 미덕들을 거의 다 갖추었다. 필요한 이야기, 사건이 벌어지는 개연성, 인물의 감정과 행동에 대한 공감, 타인들이었던 서로에게 일어난 변화들. 그리고 유머까지. 날렵하고 영리하며 군더더기 없는 작품이다. 당선자가 소설을 오랫동안 써오고 좋아하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짐작이 틀리지 않기 바란다. 예의를 갖춘 어떤 호의(好意)들은 마음을 열어도 좋을 용기를 내게 하고 그렇게 인물들은 조심스럽게 서로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한다. “가능하세요? 가능합니다.” 무릇 ‘무료 나눔의 대화’는 이런 것이며 이제 우리 시대의 이 귀한 호의를 독자에게로 스며들어 가게 하는 작품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응모자들에게도 내일의 축하와 격려를 전해 드린다.

심사위원 : 권지예, 조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