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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기쁜 손님 / 김정민

 

  딸이 소개해줄 사람이 있다고 식당으로 불러냈을 때

  김 부장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검은 사람이었다 그냥 검은 것이 아니라 아주 새까맸다

...

  자히드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과 함께 

  자백받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자히드에게서 그 검은 남자의 속내나

  실체 비슷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화투장의 흠집을 확인하던 임씨가 손을 멈추고 눈길을 돌렸다.

  “어디서 왔다고 했었지?”

  김 부장은 재차 자히드를 불렀다. 김 부장의 말수는 적었지만 그가 입을 떼면 주의를 기울여 기계 소리 틈에서 말을 찾아야 했다. 화투를 프레스에 넣고 있던 자히드는 김 부장의 말을 듣지 못한 눈치였다. 임씨가 눈짓하자 구멍 난 장갑을 반창고로 메우고 있던 정씨가 재빨리 일어나 믹스커피를 타 와서 자리마다 하나씩 놓아두었다. 정씨는 자히드에게는 커피를 가장 늦게 가져다주며 귀엣말했다. 직원이 여덟명에 불과했지만 매일 칠천개의 화투를 만들어 전국에 공급하고 있는 공장이었다. 사장이 잘 들르지 않는 이 공장의 실세인 김 부장은 여름에는 폭우 같고 겨울에는 폭설 같은 사람이었다. 그의 비위를 맞추는 데 공장 직원들의 품이 반은 들어갔다.

  “자네도 총을 들고서 사람을 쏜 적이 있나?”

  김 부장의 물음에 자히드는 평화시위라는 단어를 내밀었다. 시위라는 단어가 사위로 들리자 김 부장은 위산이 역류하는 듯했다. 김 부장이 나름 고심해서 고른 오삼불고기 식당에서 자히드는 콩나물무침과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으로만 식사했다. 자히드는 파키스탄에서는 돼지고기와 비늘 없는 생선은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하루에 몇번은 기도하고 어느 절기엔 금식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 듯했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살려고 하다니. 김 부장은 소리 내어 휴지에 침을 뱉었다. 김 부장은 쉬는 시간에 자히드가 아주머니들과 나누던 이야기들을 가끔 엿들어 몇가지는 기억했다. 그는 자히드가 고국에서 변호사였다는 게, 정확히는 그걸 말하고 다닌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엇비슷한 검은 얼굴에 어디 있는지 모를 그 나라에서 변호사였건 왕이었건 남의 나라에 왔으면 땀을 흘리며 겸손하게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김 부장의 생각이었다. 우리네 일자리와 자원을 축내며 자히드는 자기 나라에 돈을 부칠 것이다. 비굴한 웃음 뒤에는 증오심과 폭력 성향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었다. 자히드의 젓가락질은 거칠었다.

  “혹시 한국 여자와 결혼했나?”

  김 부장의 질문이 취조처럼 계속 이어지자 자히드는 주머니에서 낡은 지갑을 꺼내더니 사진 하나를 건넸다. 사진 속에는 양복 차림에 금테 안경을 쓴 자히드와 머리에 천을 두른 여자, 그리고 눈이 큰 사내아이가 있었다. 사진을 유심히 보던 김 부장은 헛기침을 크게 한번 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향했다.

  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주일이나 지났으니 늦은 감은 있었다. 김 부장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샤워부터 하고 세탁물을 정리한 뒤 모든 물건을 가지런히 정리한 후에도 한참을 서성거렸다. 생각이 넘치자 자신이 정리되지 않은 물건처럼 느껴져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랐다.

  젊은 시절 출판사에서 영업하면서도 책 한권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김 부장이었지만 책이 좋은 것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 믿음은 늘 영업에 자신감을 부어주었다.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아내가 죽고 이런저런 공장을 전전하며 홀로 딸을 키우면서도 그저 책을 사다주는 것으로 교육을 대신했다.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딸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었다. 보잘것없는 가문의 좋은 유전자만 받아 챙긴 것처럼 일등을 놓치지 않던 딸은 고등학생 때부터 가슴이 답답하다며 자주 울고 화를 내며 말수가 적어졌다. 퇴근해 돌아오면 일과나 책에서 읽은 것들과 세상 이야기를 조잘조잘 들려주던 그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교과서보다 책을 펼치는 횟수가 늘더니 모든 게 아프다고 자신을 찌른다고 했다. ‘불의’ ‘불합리’ ‘차별’이란 단어를 자주 꺼냈다. 곰팡이와 물이 차던 반지하를 벗어난 지가 언제인데도 딸은 쓸데없이 세상 모든 것을 걱정하며 화나고 슬픈 일들이 많다고 울었다. 책을 사주지 않았더라면 딸은 아프지 않았을지 모른다. 정식 교사가 되었을 것이고 정상적인 한국 남자와 결혼했을 것이다. 학원 강사가 되어 시커먼 놈을 사위라며 김 부장에게 들이밀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와 침침한 눈으로 딸이 남긴 몇권의 책을 읽어볼 기력이 김 부장에게는 없었다. 재는 여전히 타고 있었다. 김 부장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에는 일말의 미안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검은 사람이었다. 그냥 검은 것이 아니라 아주 새까맸다. 기억나는 것은 허연 치아와 큰 눈알뿐이었다. 딸이 소개해줄 사람이 있다고 식당으로 불러냈을 때 김 부장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세탁소에서 양복을 빌리고 구두를 닦고 세차를 하고 내내 할 말을 생각하며 한참 등을 곧게 펴는 연습을 하고 자리에 들어갔다. 형편 차이가 심하게 나면 아내의 빈자리로 인한 딸의 고생과 상처, 족보는 멀지만 한때 검사를 했던 사돈의 팔촌이나 교감 선생을 했던 사촌 형, 그리고 자신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 사장은 먼 친척이며 자신이 사장 대행이나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를 꺼낼 것이라 마음먹고 있었다.

  희디흰 딸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그 남자를 본 순간 김 부장은 온몸이 굳는 기분이었다. 딸애보다 훨씬 더 어렸다. 품이 맞지 않는 양복을 입은 그는 긴장한 기색은커녕 환하게 웃으며 두팔을 벌려 김 부장을 안으려고 했다. 충격적이고 불쾌했다. 자히드와 비슷한 남자가 자신을 아버님이라고 불렀다. 이미 이 나라에는 수많은 자히드가 있었고 그들은 우리의 딸들을 간교하게 꾀어내고 있었다. 김 부장은 이 나라의 아버지들을 대표하는 심정으로 ‘나는 자네의 아버님이 아니네’라는 단 한마디를 하고 바로 자리를 나갔다. 등 뒤로 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집에 오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텔레비전을 멍하니 보면서 맥주를 들이켰다. 김 부장은 딸이 변한 것이 아니라 반항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부장은 집에 있는 동안엔 텔레비전을 끄는 일이 없었다. 오랜 불면증 탓도 있었지만, 텔레비전은 그가 볼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창이었다. 내전 중인 에티오피아에서는 피란길에 올랐던 사람들로 추정되는 시신 수십구가 강물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김 부장은 인상을 쓰며 뉴스 채널을 돌렸다. 대가족이 먹을 분량의 음식을 쌓아놓고 먹는 사람들을 지나 한여름에 모피코트를 파는 홈쇼핑 채널을 지나 정치인들이 서로 자기 말이 옳다며 다투는 채널을 지나 산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채널에서 멈췄다. 도시에서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고 그저 존재하기 위해 빈 둑을 막다가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자연에서 위로받고 인생을 반추하고 거친 음식을 먹으며 이제 진짜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그것이 패배자의 도피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김 부장은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하나 없지만 노동으로 굳은살이 박인 두손을 보았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딸의 미래를 위해 쉬지 않고 모아둔 돈이 있었고 칠십이 넘은 지금도 노동자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다만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말은 더이상 할 수가 없었다. 사소한 말다툼이 시작이었다. 김 부장은 홧김에 내 집에서 나가라고 말했고 그길로 집을 나간 딸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재작년 어버이날에 딸이 준 카네이션이 눈에 띄었다. 아내가 아끼던 꽃병 안에서 잘 말라 있었다. 독신주의자였던 딸이 마흔이 넘어서 결혼을 결심하게 한 이방인은 대체 어떤 능력이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김 부장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에티오피아 사람이라고 했다. 위험하다는 말을 입에 머금은 그는 손에 땀이 나도록 전화기를 쥐고 있었다.

  빨간 뒷장과 빳빳한 속지, 화투패의 그림이 그려진 종이와 코팅지가 프레스에 압축되고 식혀진 후 잘리고 다듬어져 케이스에 들어갔다. 불량 화투 한장이 공장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한장이라도 흠이 있으면 그 화투는 통째로 폐기해야 했다. 화투는 아직도 사람의 손을 거쳐야 제대로 완성되는 수제품에 가까웠다. 관리자인 김 부장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직원들을 감시하며 실수를 매처럼 낚아내어 기록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직원들은 그의 침묵과 냉기를 느끼면 더욱 기민하게 움직였다. 특히 김 부장은 직원들이 업무 중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는 스마트폰 탓을 하며 모든 것을 그것과 연결 지었다. 거의 모든 것이 스마트폰으로 빨려 들어간 뒤에 사람들은 손맛을 잃었다. 만져보지도 못한 돈이 온라인상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고 게임을 하는 세상이었다. 상대의 눈빛과 표정을 읽을 수 없다면 더 무정하고 비정해질 수 있다는 게 김 부장의 생각이었다.

  김 부장은 출근해서 급한 일을 점검한 뒤에 여느 때처럼 파란 의자에 앉아 종일 자히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김 부장이 보기에 자히드는 성실성이라는 항목에 있어서는 거의 만점에 가까웠다. 몇시간이나 자히드의 모습을 오탈자를 살피듯 노려보았지만 잠깐 허리를 펴거나 무릎을 굽히는 동작에 가까운 짧은 기도를 가지고 트집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딸은 몇년 전에 에티오피아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그 후로 딸은 변했다. 그곳에는 눈이 맑고 거짓 없는 미소를 짓고 주머니를 채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딸이 말했다. 김 부장은 자히드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과 함께 자백받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자히드에게서 그 검은 남자의 속내나 실체 비슷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얇고 평평한 부침개 같은 것과 빨간색의 구운 닭고기, 그리고 향신료 냄새가 나는 닭볶음탕 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 있었다. 김 부장은 자히드에게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너희 나라 음식도 괜찮으니 한번 정해보라고 말했다. 자히드는 자신이 대접하겠다며 파키스탄 음식점으로 이끌었다. 자히드가 자신을 대접하도록 허락할 수 없다고 생각한 김 부장은 자신이 먼저 계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좁고 열기가 꽉 찬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독특한 향내가 코를 찔러왔다. 김 부장은 낯설고 새로운 감각에 긴장했다. 음식이 나왔을 때 자히드는 카레를 노랗다고 했지만 김 부장이 보기에 그것은 누리끼리한 것에 가까웠다. 자히드의 얼굴이 완전히 검지는 않고 까무잡잡한 것과 같았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 자히드와 자신은 결코 온전한 대화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김 부장은 생각했다. 늘 하던 버릇대로 재빨리 앞접시와 컵, 포크와 수저를 일렬로 맞추던 김 부장은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물컵을 놓치고 말았다. 바닥으로 떨어진 유리는 산산조각이 났다. 깨지는 소리와 함께 기억의 파편이 온몸으로 튀어 올랐다. 김 부장은 황망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깨진 유리 조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려온 종업원에게 자히드가 따뜻한 물을 부탁했다. 김 부장은 딸을 생각하고 있었다. 딸이 상처받는 생각. 다치는 생각. 깨지는 생각.

  “파키스탄에서는 거울이나 유리잔이 깨지는 것을 악귀가 물러가고 행운이 찾아오는 징조라고 해요.”

  김 부장은 자히드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김 부장의 발 앞에 남아 있던 유리 조각 하나를 맨손으로 치우다가 손가락이 살짝 베어 피가 맺혀 있었다. 자히드의 피는 빨갰다.

  “아들은 잘 자라고 있나?”

  “딸이에요, 부장님.”

  “딸인데 왜 엄마처럼 천을 두르지 않는 건가.”

  “저는 딸이 히잡을 쓰거나 쓰지 않거나 하는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려고 이 나라에 온 거예요. 딸이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길 원했어요.”

  “그게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거군.”

  김 부장이 자히드에게 물어보려던 말들이 입안에서 느껴지는 고소하고 담백한 맛과 함께 잊히고 있었다. 속이 불편해서 밀가루는 피하게 된 지 오래였지만 이 반죽 덩어리는 속이 편했다. 음식이 생각보다 입에 맞는다고 말하기는 겸연쩍었다. 김 부장은 늘 비슷한 음식만을 먹어왔고 음식의 맛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을 잘 알지 못했다. 딸은 아버지가 앞으로도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새로운 곳에 가보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달에 두어번 새로운 식당으로 자신을 데려갔던 딸이라면 이런저런 표현을 멋들어지게 했을 것이다. 딸이 그렇게 말하면 정말 그렇게 보이고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히드가 음식에 관해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김 부장은 간혹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친 후에 후식으로 나온 차를 마신 후 김 부장은 달고 고소하다고 자히드에게 말했다. 자히드는 역시 달고 고소하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김 부장이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계산대로 갔을 때 종업원은 계산이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당황한 김 부장은 자히드가 앉아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히드가 손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아직 식지 않은 차를 가리켰다. 아이스타 아이스타. 천천히 천천히.

  김 부장이 다음날 출근했을 때 사장은 웬일인지 공장에 먼저 와 있었다. 이곳저곳을 점검하고 직원들과 몇마디를 나누던 사장은 김 부장에게 함께 점심을 먹자고 말했다. 사장은 삼계탕이 나오기 전에 김 부장의 혈색과 건강부터 걱정했다. 사장이 나이가 있으니 이제 좀 편히 쉬라는 말을 꺼냈을 때 김 부장은 전날 파키스탄 식당에서 자신이 깨뜨렸던 유리컵을 떠올렸다. 유리가 깨지면 늘 나쁜 일이 일어났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길을 헤매다 교통사고를 당했던 날 아침에도 김 부장은 거울을 깼다. 아내와 함께 작은 식당을 열었을 때도 아침에 유리컵이 깨진 후 저녁에 차가 가게 문을 뚫고 들어오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래서 김 부장은 오히려 불운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일어날 일이 마땅히 일어난 것처럼 아무 감흥이 없을 정도였다. 사장은 퇴직금은 넉넉히 챙겨주겠으니 공장 걱정은 그만하고 이제 노후를 즐겨보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사장의 아들이 최근에 실직한 것을 알고 있었다. 김 부장은 삼계탕은 입에 대지도 않은 채 그간 감사했다고 말하고 목례를 했다. 사장은 자히드에 관해 물어봤다. 그의 근무 상태나 인간성에 대해서, 말을 잘 듣는지, 위험한 조짐은 없는지를 물어봤다. 김 부장은 자히드는 성실하고 유능하며 예의가 바르다고 대답했다.

  김 부장이 해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임씨와 정씨는 그가 하는 일 없이 앉아 있기만 하던 파란 의자를 먼저 치워버렸다. 임씨가 발로 의자를 차는 시늉을 하니 정씨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정씨는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걸어가서 김 부장의 노트를 펼쳐보았다. 맨 첫 장에는 수기로 적은 직원들의 생일과 경조사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노트에 적혀진 직원들의 근무 평가는 대부분 만점에 가까웠다. 마지막 메모가 있었다. ‘직원회식 영계백숙으로 원하면 두그릇까지. 추가 음식은 사비로 충당.’ 임씨와 정씨는 허탈해진 눈으로 서로 바라봤다.

  자히드는 김 부장에게 녹차 한잔을 건네주고서 주방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내가 만들어놓은 한국식 닭요리는 다시 끓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자히드의 딸은 공부방에 갔고 아내는 일을 마친 후면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다고 했다. 낮잠이라고는 자본 적 없었던 김 부장은 눈꺼풀이 무겁고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마개가 빠져서 욕조에 받아둔 물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공장에서 챙겨온 작은 짐가방과 함께 자히드의 집에 앉아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공장에서 짐을 챙겨 나왔을 때 잠시 휘청거리며 손을 떠는 김 부장을 본 자히드가 그의 집에서 잠시 쉬어갈 것을 권해서 온 것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분명히 거절했을 테지만 김 부장은 도저히 집으로 바로 갈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작은 방 두개와 거실 겸 부엌이 있는 반지하였다. 자히드는 이 집이 천국 같다고 말했다. 거실 벽에는 파키스탄 국기와 한국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고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짐을 지고 사막을 걷는 사람들, 배에 가득 타 있는 사람들, 해변에 밀려온 작은 신발들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아이를 업고 강을 건너는 사람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시선을 놓지 않던 김 부장은 깜빡 잠이 들었다.

  아이를 등에 업은 배가 부른 여자가 차가운 강을 건너고 있었다. 커다란 짐 보따리가 작은 여자의 머리 위를 짓눌렀다. 점점 커지는 포탄 소리가 여자를 뒤따라오며 으르렁거렸다. 물속에서는 무언가가 여자의 발목을 잡아당기며 잡아먹을 듯 일렁거렸다. 또 그 꿈이었다. 김 부장이 잠결에 가위에 눌린 듯 소리를 내자 자히드가 달려왔다. 김 부장이 눈을 떴을 때는 마치 억겁의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처럼 눈앞의 모든 것이 낯설었다.

  “아이가 그림에 소질이 있네.”

  “저녁이면 기도를 한 뒤 쿠란을 낭송해요. 휴대폰으로 BTS도 보고요. 쿠란 공부도 하고 숙제도 하고 다 열심히 해서 걱정이에요.”

  “똑똑하고 착한 딸이네. 우리 딸도 그랬었지.”

  “김 부장님 딸도 지금도 그럴 거예요.”

  따님이 아니라 딸이라고 하는 자히드의 말에 김 부장은 피식 웃었다. 완전한 한국인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언어와 문화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김 부장의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졌다. 삼계탕을 내어온 자히드는 식사를 제대로 못했을 테니 다시 먹으라고 했다. 김 부장은 분명히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었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는데 자히드는 많이 먹으라고만 했다.

  김 부장은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에 만족했다. 손가락 하나가 없는 삶은 불편하다. 괜스레 삶의 설움을 떠올릴 만한 상처는 불필요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기계에 끼이고 부딪히고 깔려 죽은 동료는 아직도 꿈속으로 가끔 찾아와 김 부장의 안부를 물었다. 사장은 한달 안에 정리할 여유를 준다고 했지만 정리하고 말고 할 것들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쓸모없는 사람이 되긴 싫었다. 숙련된 직원들과 튼튼한 기계가 있었다. 김 부장의 자리는 그 어떤 사람으로 대체되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단지 사장이 좀 쉬면서 삶을 즐기라고 말했을 때 ‘쉰다’와 ‘즐긴다’라는 말의 조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삼계탕 한점을 입에 넣은 김 부장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국물을 한숟갈 떠먹어보았다. 다르지 않은 맛이었다.

  “늘 감사합니다. 공장에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해도 될까요, 부장님?”

  “식사 고맙네. 언제 한번 우리 집에 들르게. 딸애가 읽던 동화책이 아직 그대로 있어.”

  따라 나와 배웅하려는 자히드에게 김 부장이 손을 내저었다. 자히드는 김 부장의 손에 화투 두장을 쥐여주었다. 6월 모란과 12월 비. 기쁨과 손님을 의미하는 화투였다.

  따라 나와 배웅하려는 자히드에게

  김 부장이 손을 내저었다

  자히드는 김 부장의 손에

  화투 두장을 쥐여주었다

  6월 모란과 12월 비

  소매로 흐르는 땀을 훔치며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김 부장은 모르겠다는 말만 중얼거렸다. 십여년 몸을 담은 곳에서 남은 건 화투 두장과 그간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않았던 이방인의 환대뿐이었다. 아버지가 노름빚 때문에 사람들에게 매를 맞은 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을 때 김 부장은 소리를 지르며 아버지의 주머니 속을 뒤졌다.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했다. 죽은 어미 개의 품에서도 새끼는 젖을 찾듯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서 앞으로의 자기 삶에 힘이 되어줄 무언가가 나오길 본능적으로 찾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 있던 것은 화투 두장뿐이었다. 10월 단풍과 11월 오동. 근심 걱정과 돈.

  김 부장의 아버지는 재미로 화투를 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화투로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 화투로 무언가와 싸워서 이기고 운을 바꾸어보려고 했다. 노름에 자신과 가족의 인생을 송두리째 털어넣었다. 나중에는 어머니까지 팔아버리려고 했던 사람이 아버지였다. 아버지 몰래 화투장을 숨기고 버리고 태웠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김 부장은 재미로라도 화투를 치지 않았다. 때로는 화투 공장에서 일하는 자신이 혐오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김 부장은 화투를 쳐본 사람은 득운과 실운을 번갈아 경험해보며 운을 다스려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말해왔다. 판돈이 십원이든 만원이든 그것을 경험해본 사람이 얻는 교훈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사실은 십원짜리 고스톱이 가장 보편적인 즐거움을 가져다주고 우정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 그가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였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도 고스톱을 칠 때는 간혹 총기가 돌아왔었다는 이야기는 아껴 말했다.

  화투는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더 잘 팔렸다. 간혹 화투 케이스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술에 취한 채 밤늦게 공장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김 부장은 가만히 들어주었다. 돈을 잃고 신의를 잃고 가족을 잃고 인생을 잃었다는 사람은 그 탓을 화투에 돌렸다. 화투가 아니라 당신의 욕심 탓이라고 당신이 가족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은 삼켰다. 수화기에서 분풀이와 넋두리가 끝날 무렵엔 이미 듣고 있지도 않은 사람에게 화투장은 불과 같으니 다스릴 수 없다면 버리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딸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김 부장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모란과 비를 보고 있었다. 늘 하던 대로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서 출근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놀라 급히 구구단을 한번 외워보았다. 김 부장은 믹스커피를 찾다가 딸이 가져다 놓았던 원두커피를 집어 들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왔다고 적혀 있었다. 그동안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것은 사실이었다. 교제 정도는 허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답에 대한 명분을 스스로 찾고 있었다. 딸은 화가 나면 말을 하지 않거나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동안 김 부장은 자신의 잘못을 찾아내야 했다. 김 부장은 아직도 딸의 마음에 들게 말을 하는 법을 알 수 없었다. 딸은 본질적으로 그와 자신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아닌데 그런 척을 하는 법을 터득하기가 어려웠다. 처음에 전화를 받으면 무조건 딸의 이야기부터 들어보리라 마음먹었지만, 그는 또 질문을 하고 말았다. 총을 든 적이 있다더냐. 위험하지는 않으냐. 염려하는 아비의 본능에서 나온 질문이었지만 딸은 더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난민이에요. 난민이란 말은 부족한 말인데, 그러니까 완전하지 않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그걸 인정받기까지 싸워야 했어요. 자신의 나라에서 심각한 공포를 겪고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 시간을 수없이 되살리며 인정받아야 했어요. 우리보다 훌륭한 사람들이에요. 그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예요. 아빠, 우리 집은 매일 전쟁터였어요. 엄마의 울음소리, 아빠의 고함, 그런 것들은 총성이 울리고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와 다를 바 없었어요. 저는 난민이에요. 저한테 이 사람이 고향이라고 말해도 아빠는 이해 못하시겠죠.”

  먼 나라에서 온 진하고 구수한 커피 냄새가 방에 가득 차 있었다. 딸에게 할 말을 당장은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김 부장 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지 않아도 그날에 지인들과 함께 조촐한 기념식을 올리겠다는 말을 끝으로 딸의 전화는 끊어졌다.

  운이 온다고 해도 그 운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 찾아온다면 그 운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썩은 땅에 떨어진 밀알과 같다. 착한 아내와 딸이 그 밀알이었다. 먹고살기 위해서 그랬다거나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느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낡은 변명이었다. 집이 전쟁터였고 자신이 난민과 다름없었다는 딸의 이야기가 몸에 꽂혀 어디에선가 자꾸 피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딸이 마음의 병을 앓기 시작한 이후로 김 부장은 되도록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그가 하는 말들은 대개 딸의 심정을 흔들고 아프게 했기 때문에 점점 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이야기만 나누었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었다.

  김 부장은 밖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자신이 예전에 했던 잘못을 복기했다.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리고 몇푼의 보상금을 받고 권고사직을 당했을 때도 그랬다. 근무 태만에 해당하는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보고 마음속으로 공장장을 미워했던 일들을 떠올리고 어린 시절에 했던 작은 도둑질이나 노름꾼인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모멸감을 견디는 방법이었던 그 인내는 자기혐오로 굳어졌고 가까운 이들에게 되돌아갔다. 한번도 세상에 부딪쳐보지 못하고 집으로 원망과 앙금이라는 돌을 가져왔다. 그것은 쌓이고 쌓여 마음의 벽이 되었다. 김 부장이 텔레비전을 끄고 눈을 감으면 어느새 잠결에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강을 건너 다다른 땅에 주저앉고 나서야 여자는 다 찢어진 발의 통증을 느꼈다. 여자의 등에 업혀 있던 갓난아이는 목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여자는 괴성을 지르며 아이에게 숨을 불어넣고 팔다리를 주물러보았지만 아이는 파랗게 차가워져만 갔다. 여자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자기 뺨을 몇대 쳤다. 눈물을 삼킨 여자는 배 위에 손을 갖다 댔다. 아이가 발을 차대고 있었다.

  바빠서 생각할 거리를 미루고 살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바쁘게 살았다. 잊지 말라고 당부하던 이야기는 꿈으로 찾아왔다. 어머니가 늘 해주시던 그날의 이야기는 김 부장의 꿈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며 기억이 되었다. 김 부장은 강을 건너는 여자를 보는 하늘이 되기도 했고 물속에서 여자의 발을 스치는 물고기가 되기도 했고 빨리 달리라고 외치는 소리가 되기도 했다. 그때 형이 살았다면 김 부장도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늘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치매에 걸린 후에는 죽은 아들을 찾으러 간다며 자주 집을 나가기도 했다. 등에다 베개 따위를 천으로 묶어서 둥개둥개 자장가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때 김 부장이 태중에서 전쟁의 공포를 함께 겪었기에 정서가 불안하고 술에 의존하는 것이라며 어머니는 아내 앞에서 김 부장을 감싸고 돌았다.

  그 사람은 난민이에요

  난민이란 말은 부족한 말인데, 

  완전하지 않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그걸 인정받기까지 

  싸워야 했어요

  눈을 감고 있어서 해가 저문지도 모른 채 소파에 앉아 있던 김 부장은 자신이 전화벨 소리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히드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히드가 틀린 말을 하고 다른 행동을 하면 헛기침하며 바로잡아주고서 고맙다,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김 부장은 딸의 방으로 들어가 자히드의 딸에게 전해줄 만한 동화책을 골라보았다. 얼굴이 검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꼬마의 이야기가 있는 책은 유독 손때가 많이 묻어 낡고 닳아 있었다.

  딸에게도 사과는 해야지만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검은 사람을 좋아하기는 어렵겠지만

  딸을 위해 그들의 기념식에

  가리라 마음먹었다 

  검은 남자에게는 먼저 

  고맙다는 말을 전할 것이다

  김 부장은 한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리모컨을 든 채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다. 대가족이 먹을 분량의 음식을 쌓아놓고 먹는 사람들을 지나 한여름에 모피코트를 파는 홈쇼핑 채널을 지나 정치인들이 서로 자기 말이 옳다며 다투는 채널을 지나 한 채널에서 멈췄다. 넓고 푸른 대지를 따라 천천히 길을 걷는 소와 사람들이 보였다. 김 부장은 눈을 크게 떴다. 그곳은 에티오피아라고 했다. 딸애 옆에 있던 그 남자의 고향이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반복하며 비추던 카메라는 지저분한 노점상과 돌을 깨는 사람들, 검은 매연을 내뿜는 낡은 버스를 지나 구멍이 나고 녹슨 양철 지붕들이 모여 있는 쇠락한 마을의 길을 훑어가더니 움막 같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파리를 손으로 휘저으며 머리에 쏟아지는 졸음과 늙음을 이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인터뷰어가 말을 걸자마자 노인의 피곤한 얼굴에 점등된 것처럼 한가득 미소가 번졌다. 단지 한국이라는 단어 그 한마디 때문이었다. 노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벽에는 훈장을 달고 있는 젊은 군인의 사진이 있었다. 노인은 그 사진 속의 사람이 자신이라고 말했다. 노인의 입에서 부산, 춘천이라는 도시의 이름이 나왔을 때 김 부장은 귀를 의심했다. 노인을 포함한 전우들은 21일간의 항해 끝에 부산항에 도착했다고 했다.

  타국의 미래를 위해 자신들의 미래를 지우고 달려온 그들은 생전 처음 바다를 보고 겨울을 만났다. 파도가 거칠어질수록 뱃멀미는 심해져 고통을 겪었다. 영하의 날씨에 방한복을 껴입고 방한모를 눌러썼어도 살을 에는 추위에 방아쇠를 당기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그 검은 사람들은 전승을 거두었다고 했다. 그들이 춘천에 있었다. 김 부장의 고향이었지만 다시 가지 않았던 곳이었다. 노인은 치아가 다 빠진 입으로 한국인들이 잘살고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웃었다. 김 부장은 노인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노인의 환한 미소를 흉내 내려고 양 입술을 들어 올려보던 김 부장은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늦은 밤 공장은 비어 있었다. 파란 의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김 부장은 의자에 앉아 전화를 기다렸다. 술에 취한 채 밤늦게 공장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화투가 아니라 당신이 자신을 믿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자신을 한번도 믿어본 적이 없고,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망가질 때까지 화투장을 들고 있던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아버지가 어디에 있느냐는 사람들의 말에 창고에 있다고 솔직하게 답한 죄로 아버지의 아버지가 어딘가로 끌려갔다. 집안은 몰락했고 김 부장의 아버지는 취업이 되지 않았다. 자신의 땅과 자신의 마음을 단 한평도 가져보지 못한 아버지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김 부장은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부장님, 내일 저 대신 하루 좀 일해주실 수 있으세요?”

  “무슨 일이 생겼나?”

  “딸이 학교에서 남자애를 때렸어요. 파퀴벌레라고 놀렸대요. 내일 학교에 사과하러 가야 해요.”

  “알았네. 사과는 해야겠지만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줘. 딸애한테 맛있는 것도 꼭 사주고.”

  김 부장은 자히드를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 내심 기뻤다. 딸에게도 사과는 해야지만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검은 사람을 아직 좋아하기는 어렵겠지만 딸을 위해 그들의 기념식에 가리라 마음먹었다. 검은 남자에게는 먼저 고맙다는 말을 전할 것이다. 당신의 할아버지가 우리나라를 위해서 해준 일들에 대해 감사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다음에는 차차 무엇을 이야기할지 고민해볼 것이라고 김 부장은 생각했다.

  김 부장은 바지 주머니 안에 있던 화투를 꺼내보았다. 6월 모란과 12월 비. 나란히 붙여보니 기쁜 손님이라는 말이 완성되었다. 생각에 빠져 있던 김 부장은 공장의 전화벨이 다시 울릴 때에서야 전화기 쪽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끝


 

 

  <당선소감>

 

   누군가 손을 잡아주는 느낌 좋은 작가로 성장하고 싶어

  병원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시다가 퇴원하신 어머니께 가장 먼저 당선 소식을 전했습니다. 어머니께선 벌써 다 나은 것 같다고 하시며 기뻐하셨고 아버지께서는 앞으로 세상을 위무하는 글을 써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당선 소감을 쓸 기회가 오면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다 흩어져 막상 손에 쥘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종일 찬 바람을 맞으며 걷고 또 걸으면서 생각해봤습니다. 글을 쓰며 느낀 소회를 어찌 몇줄로 정리할 수 있을까요. 이제야 어떤 커다랗고 따뜻한 손이 ‘안다. 네 맘 다 안다’고 등을 두드려주고 손을 잡아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사람, 좋은 작가로 성장하고 싶다는 단 한줄의 소망만을 조심스럽게 적어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벗들, 제 삶에 함께해준 모든 소중한 인연들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저를 발견해주시고 기꺼이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 그리고 농민신문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끝없이 정진하겠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많은 분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을 것입니다. 하루빨리 일상의 회복이라는 기쁜 손님이 찾아오길 두손 모아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 1982년 경북 포항 출생 
●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 졸업 
● 2000년 대산청소년문학상 소설부문 은상 수상


 

  <심사평>

 

  

  이야기 구조화 솜씨 뛰어나 난민 수용과정 곡진히 그려

  예심을 거처 본심에 올라온 15편의 소설 중에서 최종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내규에 따라> <공공수정일용근로자> <기쁜 손님> 3편이었다.

  <내규에 따라>는 폐암 2기 판정을 받은 농약관리사의 이야기로 수술 후 직장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권고사직을 수용해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과수 화상병으로 타들어가는 배밭, 뇌출혈로 쓰러진 부친, 고장 난 프린터기, 공장이 들어서면서 훼손돼가는 농촌 공동체의 현실 등을 주인공의 상태와 결부시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결말부에 이르러 서술의 긴장감이 떨어지면서 이야기가 단순하게 변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공공수정일용근로자>는 ‘벌’이 사라져가는 시대, 즉 생태계의 붕괴가 가속화돼가는 시대에 인공수정사로 살아가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이 참신한 소재를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주인공의 암울한 처지와 맞물려 서술하고 있는데, 정교함의 확보가 특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데 주인공이자 화자의 감정선이 자주 과열되고, 그럴 때마다 짜임새가 위축되거나 흔들리는 결과가 초래됐다.

  당선작 <기쁜 손님>은 무엇보다 이야기를 구조화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출판사에서 실직한 주인공이 화투를 만드는 공장에서 만나게 된 파키스탄 이주노동자와의 관계를 통해, 딸이 반려자로 여기는 에티오피아 난민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곡진하게 그려 보이고 있다. 오랜 관습적 편견과 혐오에서 벗어나 이러한 변화를 선택하게 된 저간에는, 평생 난민과 다를 바 없이 살아온 자신의 삶이 인과적으로 도사리고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소설은 삶의 연속성을 환하게 획득하고 있다. 말하자면 화투장의 ‘모란’과 ‘비’가 실재성을 갖추고 ‘기쁜 손님’으로 현현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선에서 밀려난 두 분에게는 하회에 대한 기대를,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 : 은희경, 윤대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