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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  / 김종태

 

  뉴타운 소문을 태우고 마을버스가 들어왔다

  미숫가루처럼 흙먼지만 내려놓고 폐교를 한 바퀴 돌더니

  제비처럼 고샅길을 빠져나갔다

  언젠가부터 절개지 묵정밭엔 어린 의혹들이 심겨지기 시작했다 깨진 항아리 속에 갇혀있던 뻐꾸기 소리에 둔덕 까마중 몇, 복부인 같은 선글라스를 끼고 귀고리를 흔든다 전과자인양 담장 안을 기웃거리던 햇살, 굴다리 밑으로 잠입하고 배 밭으로 달려간 그림자 하나가 이른 아침부터 풍선 불 듯 바람의 평수를 후후- 부풀린다

  두부장수 확성기에 귀를 열던 도토리들 일제히 상수리나무를 버린다 선거벽보 어지럽게 붙어있는 축대 아래, 사방치기 놀이를 하던 아이들 오후가 오랜만에 찾아온 밀짚모자 주위로 몰려든다

  뻥튀기 소리에 놀란 해바라기, 발밑에 검은 태양들을 투투둑- 파종하고 늦게 외출한 채송화는 발뒤꿈치를 높이 꺼내 분꽃의 망설임을 흔든다 태양이 시작되면 빨간 인주통이 열렸다 몇 평 봄이 처분되는 계약서 그 끝, 마을경로당에선 코스모스와 금잔화가 형광빛 포스트잇처럼 끝도 없이 유예되고 있었다

  이장 집 옆 모과나무가 늙은 귀띔이라도 들은 걸까 오래된 우물 속에다 노란 주먹을 툭툭 박았다 내가 헐값에 처분했던 그 시절 변두리 네온사인과 외딴집에 세를 든 귀뚜라미의 지하 방엔 오래도록 해가 들지 않았다 지난밤 거처를 잃은 두견새와 갑작스레 약수터에서 쫓겨난 달빛은 창문 틈에 허리가 끼어 아침까지 웅웅거렸다

  누가 분실한 것일까

  공사 중인 안테나처럼 힘껏 꼬리를 세운 고양이 한 마리

  방금 눌러 찍은 붉은 태양이 채 마르지도 않은 부동산 계약서를 입에 물고서

  인적 드문 논밭을 검은 천 조각처럼 가로질러 어디론가 재빨리 구겨지고 있다


 

 

  <당선소감>

 

   “앞으로는 내가 세상을 詩로 위로할 차례”


  패딩점퍼처럼 눈을 껴입은 세상이 고딕체로 서 있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삶의 목록들이 연착되고 있었다. 측은지심의 영혼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시 쓰기. 내 가냘픈 노래는 원고지 속에서 자주 익사했다. 악보의 실루엣이 보이면 음정이 삐걱거렸다. 부러지고 흔들리는 것들이 시가 된다고 믿었기에 앞만 보고 계속 노를 저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몇 년 전의 내가 나에게 웃으며 손을 내민다. 살고 싶어서 시의 소맷자락을 간절히 붙들었다. 시는 나를 살려주시려고 보내준 그분의 언약궤였다. 이제는 내가 세상을 위로할 차례이다.

 한 시도 詩의 램프를 끄지 않는 시시각각(詩視刻各) 스승님과 따뜻하고 치열했던 나의 도반들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치지 않도록 응원해준 아내와 두원, 예은 고맙고 사랑합니다. 지난해 하늘로 가신 어머니, 늘 막내아들을 자랑스럽게 믿어주셨는데, 하늘 향해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벼랑 끝에 선 제 시의 손을 기꺼이 잡아주신 전북문인협회장 김영 시인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마음이 춥고 외로운 이들에게 손난로가 되어줄 그런 시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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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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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전북도민일보의 신춘문예 응모작을 읽는 시간은 ‘어떻게 시를 써야 울림이 깊은가’에 대해 다시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천 편이 넘는 응모작에는 막 시를 쓰기 시작한 듯한 사람의 작품도 있었고, 시적 완성도와 문장의 긴밀도가 만만치 않은 작품도 있었다.

  각주와 외래어가 난무하는 작품과 언어의 유기적인 연결이 아쉬운 작품도 많았다. 패기나 참신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적었고, 그만그만한 내용이나 익숙한 수사가 버무려진 작품도 많았다.

  주제 면에서는 개인의 서정을 노래한 작품부터 시대의 불합리에 대한 작품까지 스펙트럼이 넓었다. 시국의 영향인지 사회의 어두운 면과 개인의 어두운 시간을 직조한 작품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었다.최종까지 남은 작품으로 김선호 님의 ‘빙하의 숲을 걷다’, 조희 님의 ‘파울라가 있는 풍경’과 김종태 님의 ‘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 장성희 님의 ‘폭우’, 김수형의 ‘포스트잇’이었다.

  모두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었으나, 제목이 내용을 끌고 가지 못하거나 내용이 제목을 받쳐주지 못하기도 했다. 시상을 직조하는 솜씨가 매끄럽지 못하기도 하고 제출 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조희 님의 ‘파울라가 있는 풍경’이었다. 시상을 전개하는 힘이나 주제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이 좋았으나 아쉽게 되었다. 조금 더 힘을 내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김종태 님의 ‘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은 자신만의 언어로 시대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수준급이다. 삶의 현실에서 시의 뿌리가 발아했으나 주관에 휩쓸리지 않고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는 솜씨가 시의 밭을 오래 가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도 고른 수준을 보인 점과 앞으로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심사위원 : 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