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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영양교환 / 추일범

 

죽은 고양이를 세 번 봤다
로드킬은 빼고

골목에 밥그릇이 엎어져 있다
토한 우유처럼 고양이가 누워있다
빈 그릇에 사료를 붓는다
이런 것도 밥이라고 

먹을 것 주변엔 개미가 꼬인다
개미를 죽이는 방법은 많다
한 마리씩 손가락으로 눌러 죽일 수도 있고
침을 뱉어 죽일 수도 있다
굴을 찾아 따뜻한 물을 부으면 더 많이 죽일 수 있다
잼이나 설탕으로 반죽한 붕산을 놓는 방법도 좋다
집으로 돌아간 개미들은 빵을 나누어 먹고
배가 부풀어 함께 죽는다고 한다

태우는 데 두 시간쯤 걸립니다
고양이는 죽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것도 몸이라고
가는 길이 멀면 내장을 제거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
상자에 넣고 리본을 묶었다 

고양이를 안고 온 사람이 눈물이 안 난다고 했다
자기도 울 줄 아는데 가끔 이러는 거라고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스콘 하나를 나눠 먹으며 기다렸다

저도 정말 슬프고 싶어요

빈 그릇에 사료를 붓는다
이런 것도 일이라고
고양이 세 마리가 죽는 것으론
끝나지 않는다

오래 일거리를 구하지 못한 겨울이었다


 

 

  <당선소감>

 

   -

  메밀은 사고로 앞발 하나를 잃은 어린 고양이였습니다. 한여름 수유동의 4.19 민주묘지 광장 근처에서 구조됐습니다. 발견 당시 앞발은 뭉개져 있고 위생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메밀을 식구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보살폈습니다. ‘메밀’은 그 아이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후 투표로 정한 이름입니다. 메밀은 같이 사는 여러 고양이 중 가장 많이 먹고 가장 열심히 뛰며 누구보다 건강하게 지냈습니다.

  두 달 뒤, 메밀이 죽었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추석 연휴였습니다. 아주 잠깐 눈을 뗀 사이 사료 포대를 뜯고 놀다가 올 한 가닥이 풀려나왔고 그게 점점 길어져 메밀의 배에 감겼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죽은 고양이를 맨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저는 메밀이 가장 건강했을 때와 죽었을 때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화장하러 다녀온 날만을 썼습니다.

  메밀을 떠올리면 미안한 일들을 꼭 먼저 말하고 싶어집니다.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신 분에게 죄송합니다. 좀 더 다정하고 기쁘게 받을 걸,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 함께 사는 고양이에게 미안합니다. 제가 좀 더 성실하고 부자였다면 보다 맛있고 건강한 걸 사주고 지치도록 놀아주고 좋은 병원에도 데려갈 수 있었을 텐데, 어제도 집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뱉었던 험한 말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잊지 않고 매일 생각합니다. 모두 정말 미안했습니다.

  나랑 지내는 게 늘 불안했던 숑. 당신이 화를 낼 때만 나는 겨우 자랐습니다. 오래 괴롭혀서 미안합니다. 아침 일찍 대문 앞을 청소하는 풍경을 남겨주어서 고맙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만 전화하는 저를 매번 받아주시는 혜원 선생님, 영광 선생님, 목형에게도 감사합니다. 배운 건 다 잊었고 어느 한구석을 닮는 것도 실패했지만, 표정이나 목소리를 떠올리기만 해도 하루가 더 살아집니다.

  그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집과 밥을 고를 수 있는 생활은 대부분 고개엔마을과 성북 친구들 덕에 얻은 것입니다. 특히 시늉만 하는 제 시를 진짜라고 계속 믿어준 미냉. 사실 저는 이걸 핑계로 자주 놀거나 잠을 잤습니다. 좀 더 집중하겠습니다.

  그리고 아파도 무너지지 않는 이랑과 아플 줄 모르는 상만, 경청가 잉지, 반짝이는 상언니. <못배운것들>, 고주망태 소영. 당신들이 모두 나의 안전망입니다.

  부모님에겐 아직 전하지 못했습니다.

  잘못은 꼭 먼지 같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자꾸 쌓이니까,

  21년 12월 24일 추일범 씁니다.

 

● -


 

  <심사평>

 

  

  '시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의응답 사이에서…

  세계사의 아슬한 난간을 모든 인류가 함께 붙잡고 있는 상황이 과연 당대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상상보다 더 끔찍해진 현실이 섬세하고 정치한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이제까지 그 질문들을 예민한 일부의 사람들만 수용했다면 이번에는 모든 인류가 그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투고작들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변 때문에 시의 행간은 길어지고 시적 경향은 어둡고 다양해졌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주목한 분은 유휘량의 「스케치 – 기린의 생태계」와 추일범의 「영양교환」, 이선락의 「염색공장 아줌마 보세요」 등이다. 

  유휘량의 ‘기린’을 발견한 것은 좋은 일이다. 환상과 서정의 플랫폼에서 울림을 구축한 유휘량의 「스케치 – 기린의 생태계」의 ‘기린’은 시적 화자의 그림자 놀이에서 탄생된 발명이다. 불빛에 제 몸을 맡기면 목이 길어지는 그림자/기린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목이 길어진다는 것은 불빛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간절하다는 갈망의 의태이기도 하다. 기린의 파트너로서 ‘새’라는 키워드 역시 그림자 놀이에서 추출된 두 손의 변주이다. 그 새는 그림자/기린의 돌기이면서 또한 외부로 향하는 메신저이기도 하면서 누군가 그림자에게 보낸 메신저이기도 하다. 내부에서 고독사로 향하는 새, 외부로 나가지 않으려는 새를 씹어먹으면서 기린/그림자의 외부는 딱딱한 눈이 내리거나 자꾸 굳은 물감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새알의 둥지에서는 액체의 금속이 흘러내리는 종말의 세계가 시작된다. 그러니 이제 나를 자아와 겨우 연결된 기린이라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삶이 기린을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까. 

  “죽은 고양이를 세 번 봤다 / 로드킬은 빼고”라는 맹렬한 도입부는 추일범의 「영양교환」이다. ‘이런 것도 밥’, ‘이런 것도 몸’, ‘이런 것도 일’을 행사하던 죽은 고양이 세 마리는 우리 생활의 공감각 부분이다. 어쩌면 과거, 현재, 미래를 실천하는 중이기도 할 터이다. 누군가 우리를 사육하고 있고, 더 끔찍한 것은 누군가 우리를 고양이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고양이의 주검에 휘발성 냉소가 건너가는데, 다시 끔찍한 것은 그게 차라리 비애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사람의 의무가 있다는, 단호하고 간결한 추일범의 고유성이 눈을 사로잡는 이유이다.  

  이선락의 「염색공장 아줌마 보세요」은 관찰의 측면에서 시의 전범을 드러낸 가편이다. 사물과 사람이 가진 밝음과 어둠, 슬픔과 기쁨이라는 ‘안팎’과 ‘좌우’를 어김없이 추스리면서 다시 사물과 사람에 대해 되돌아오게끔 한다. 게다가 리듬이 시를 잘 부추기고 있다. 시의 이야기라는 측면에 눈을 뜨게 된다면 이선락의 시적 영토가 어디까지 벋어나가게 될지 짐작할 수도 없다.  

  이은경의 「창, 세기」는 사물이 가지는 매혹에 헌신한다. 세계와 나를 연결하는 물질과 영혼으로서의 ‘창(窓)’을 넘나드는 충분한 존재들이 여기 있다. 때로 눈부시고 때로 끔찍한 것들, 그게 같은 인과율인 것을 소스라치게 깨닫는 지점이 돋보인다. 

  최정민의 「껍질에 베인 손」, 김희숙의 「털실로 얼음 들기」에도 우리가 서성거리고 편애했다는 것을 덧붙인다. 

  시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의 응답 사이에서 우리는 유휘량의 「스케치 – 기린의 생태계」를 당선작으로, 추일범의 「영양교환」을 가작으로 선택했다. 당선된 두 분에게 축하를, 여기까지 힘겹게 도착한 분들의 여정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심사위원 : 장석주, 송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