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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숲속의 우정 / 한상희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절 마당입니다. 산 중턱이라 새소리만 이따금 들려오는 고요한 곳이지요. 이곳이 무탈이의 집입니다. 무탈이는 다리가 짧은 개입니다. 아주 어릴 적 주인에게 버려져 숲속을 헤매다가 여기까지 왔지요. 한참을 먹지 못해 거의 걷지도 못하고 쓰러져있는 무탈이를 스님이 발견해 데리고 왔습니다. 스님의 간호가 극진했던지 며칠 후부턴 죽도 먹게 되고 꼬리도 흔들게 됐지요. 더는 아프지 말고 튼튼하게 자라라고 무탈이란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이름처럼 무탈이는 탈도 한번 안 나고 점점 씩씩해져 의젓한 개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산속 절이라 무탈이는 늘 심심합니다. 나비를 보거나 새들만 지나가도 달려가 보고, 멀리서 고라니 소리가 나면 컹컹 짖어 봅니다. 가끔 쥐가 지나가면 잡으러 후다닥 쫓아가는 게 일입니다. 스님이 언덕배기 작은 밭을 갈러 나오시면 함께 가서 꼬리를 흔들며 바라봅니다.

“무탈아, 밭을 헤집으면 안 된다.”

  스님이 한마디만 하셔도 무탈이는 바로 알아듣고 밭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스님은 “아이 착하지. 우리 무탈이가 최고다”하고 웃으며 쓰다듬어 주십니다. 무탈이는 스님의 그 말만 들으면 기분이 좋아 꼬리를 마냥 흔들어 봅니다. 무료하지만 행복한 하루하루가 지나갑니다. 무탈이는 나비들과 개나리를 헤치며 다니는 게 기쁨입니다. 봄이 되니 풀들도 부쩍부쩍 자라서 무탈이 집 주변을 채워갑니다.

  조용한 절간에 아주머니 한분이 찾아왔습니다. 귀여운 강아지도 함께였습니다. 무탈이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손님도 반가운데 강아지 손님도 함께라서 펄쩍펄쩍 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스님이 손님 오실 땐 너무 뛰지 말라 하셔서 조금 점잔을 빼고 있어 봅니다. 그런데 이 강아지는 성격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작은 몸을 뒤뚱대며 다가와 아~앙 소리를 내려합니다. 너무나 귀여워서 살짝 물어줄 뻔 했습니다. 하지만 무탈이는 참고 가만히 있어봅니다. ‘난 스님의 말씀을 잘 듣는 의젓한 어른’이라고 뽐을 내봅니다.

“무탈이는 정말 의젓하네요.”

  아주머니가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무탈이는 부러 더욱 무심한 척 앉아 봅니다. 스님과 아주머니가 강아지를 보며 한참 얘기를 나눕니다.

“키울 형편이 안 돼서요. 스님께 부탁드려도 될는지···.”

“그럼 여기 두고 가시지요.”

  스님이 한마디 하시자 아주머니가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입니다.

“이렇게 되려고 그랬나, 어쩜 종자도 엘시코기로 꼭 닮은 것 같네요.”

  스님과 아주머니는 둘을 보며 웃습니다. 강아지가 무탈이 옆으로 옵니다.

  아주머니가 가고 나자 강아지는 풀이 죽어 그런지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스님이 반짝 안으십니다.

“넌 일찍 절에 왔으니 ‘보리’라고 하자. 스님처럼 열심히 깨달아보자, 하하!”

  스님은 보리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십니다. 보리는 안에서 아주머니가 가져 온 하얀 우유를 먹고, 잠도 안에서 잡니다. 무탈이는 그런 보리가 부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달이 유난히 환한 밤, 다른 때 같으면 일찍 잠자리에 들었겠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아 서성거립니다. 보리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합니다.

  아침이 되자마자 스님 주무시는 안채에서 문 열리기만 기다립니다.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설쳤습니다. 보리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무탈이는 어렸을 적 처음 절 앞에 왔던 때가 떠오릅니다.

  공원 약수터에서 주인아줌마와 아저씨가 땅에 처음 내려주었습니다. 한동안 아파트 안에만 있다가 흙냄새를 맡으니 흥분했습니다. 좋아서 막 뛰어 다니다 보니 아줌마도 아저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초조해져 여기저기를 살피다 다시 약수터 앞에 와 앉았습니다. 한참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다가와 귀엽다고 쓰다듬기도 했지만 너무나 두려워 피했습니다. 발발 떨며 오랫동안 서성대는데 사람들도 아예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솔길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멀리서 꺽꺽하는 짐승들 소리가 들립니다. 이쪽 산에서 저쪽 산으로 메아리져 울리면서 더욱 무섭게 들려옵니다. 무서워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커다란 바위가 많은 언덕길이 나와 힘이 많이 듭니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가다보니 바스락 소리가 들립니다. 동그란 눈망울로 빤히 바라보는 것은 고라니 가족입니다. 엄마와 아가인 듯합니다. 무탈이 곁을 스쳐서 재빨리 반대편 숲으로 갑니다. 휴-우! 무탈이는 한숨을 내쉽니다. 무서운 동물인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한테 큰 동물은 주의하라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해 힘이 빠지고 숨이 가빠옵니다. 걷기도 힘들어 픽픽 쓰러집니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날은 캄캄해졌습니다. 눈꺼풀도 감겼습니다.

  으스스 찬 기운이 느껴집니다.

“눈 떠보자, 눈 떠보자.”

  스님 한분이 앉아서 무탈이를 쓰다듬고 계셨습니다.

“눈 떠보자, 눈 떠보자”하던 스님의 그때 목소리가 다시 떠오릅니다. 그러자 보리가 더욱 걱정됩니다.

  문이 열리자 웬걸, 똘망한 눈으로 보리가 쳐다보고 있습니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두려운 눈빛으로 무탈이를 피하려 합니다. 무탈이는 너무 반가워 얼른 문지방 위에 앞발을 걸치고 핥아주려 했지만 보리는 흠칫 뒤로 물러납니다. 스님이 웃으며 “괜찮아, 언니다, 언니!” 하시고는 보리를 댓돌 아래로 내려주십니다.

  무탈이는 이것 좀 보라는 듯, 울안을 여기저기 막 달려봅니다. 뒤꼍의 장독대까지 달려가 멈춥니다. 보리는 조금씩 따라오기 시작합니다. 힘이 드는지 잠시 숨 고르다 다시 달려옵니다.

  이제는 어디든지 다 따라 다닙니다.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걷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보리는 말썽부리기쟁이입니다. 밭쪽으로 올라갔을 땐 두둑을 다 헤쳐 놓았습니다. 장독대 옆에 놓인 작은 화분들 중 벌써 두 개를 깨먹었습니다. 스님이 혀를 끌끌 차시지만 혼을 내시진 않습니다. 무탈이는 보리가 귀여우면서도 얄미울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여러 분들이 오셔서 종이로 연꽃을 만들 때 일입니다. 손님들이 보리는 귀엽다고 안채로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과일들이 많이 깎아져 있었습니다. 보리는 냉큼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스님이 “안 돼!” 하셨지만 많은 손님들의 응원을 받아 그런지 보리는 눈치를 살피며 조금씩 조금씩 과일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무탈이는 눈치 없는 보리가 얄미워 컹하고 소리내봅니다. 빨리 나오라는 신호입니다. 스님이 화내신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잠시 멈칫하던 보리는 그대로 직진합니다. 결국 과일을 받아먹고야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무탈이는 “무탈이, 넌 들어가면 안 돼”라는 스님의 말 한마디에 그냥 뒤로 돌아서야 했습니다. 수박, 참외 등 맛나는 과일들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나만 미워 하시나. 이제 보리만 다들 예뻐 해주고’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일어납니다. 무탈이는 언덕 위로 올라가 땅만 파고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온 손님들이 보리를 둘러싸고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너무 귀엽다.”

“어쩜 이리 예쁘지?”

  이 사람 저 사람이 보리를 쓰다듬으며 야단입니다. 그러다 손님들이 다 가시고 갑자기 고요해졌습니다.

“무탈아! 무탈이 어딨나?”

  스님이 무탈이를 부르십니다. 한 걸음에 내달아 마당으로 내려옵니다. 커다란 수박 한 쪽을 주시며 무탈이를 쓰다듬어 주십니다.

“역시 무탈이는 의젓한 언니지?” 하십니다.

  그렇게 해주시니 마음이 좀 풀리긴 했지만, 보리가 점점 사고뭉치가 되는 것 같아 미워집니다.

  하루는 툇마루에서 손님 드시라고 내놓은 과일에 또 보리가 다가갑니다. 무탈이가 으르렁 이빨을 드러내고 겁을 주었습니다. 처음 보는 모습이라 보리가 흠칫 놀랍니다. 슬금슬금 뒤로 발을 뺍니다. 손님이 먹으라고 줘도 무탈이 눈치만 살피며 고개를 숙입니다. 스님이 와서 보시고, “언니한테 혼이 났구나” 하십니다. ‘너도 이제 아기가 아니라고.’ 보리가 여전히 무탈이 눈치를 보며 꽁무니를 뺍니다.

  보리가 무탈이 옆에 나와서 잔 지 얼마 안 된 무렵입니다. 밤에 보리가 먹은 것을 많이 토하고 아팠습니다.

“어쩐지 요새 너무 많이 먹더라니. 쯧쯧.”

  스님이 미지근한 물을 주셨습니다. 보리는 다시 안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보니 보리는 자꾸 토해 얼굴과 배가 반쪽이 된 듯합니다. 스님과 함께 병원에도 다녀왔습니다. 며칠 후 보리는 걸어 나오지 않고 엎드려만 있었습니다. 무탈이는 보리가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햇빛 쏘이라고 스님이 보리를 밖에 나오게 해주셨습니다. 무탈이는 보리를 미워했던 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해가 따사롭게 비추는 마당에 엎드린 보리는 축 처진 눈꺼풀을 겨우 들었다가는 다시 감습니다. 무탈이는 다가가 보리 몸의 구석구석을 혀로 핥아 주었습니다.

‘보리야, 얼른 일어나.’

  눈물이 나오려 했습니다. 보리가 없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계속 핥아주자 보리가 눈을 떴습니다. 비척비척 일어난 보리는 자기 몸을 무탈이에게 기댑니다. 뜨거운 체온이 전해집니다. 무탈이는 그렇게 한참을 더 핥아주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무탈이는 안채 앞을 서성거렸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습니다. 보리가 어떤 모습일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예전에 여기 왔다가 죽은 강아지가 떠올랐습니다.

  털이 하얀 강아지는 처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그 때도 스님과 손님들이 그 강아지를 많이 예뻐하고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무탈이는 샘이 많이 났습니다. 가까이 가지도 않았고, 다가오려 하면 으르렁 소리로 쫓았습니다. 강아지는 슬금슬금 무탈이를 피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무탈이는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잠시 뒤 문이 열렸습니다. 보리의 동글한 눈망울이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보리가 펄쩍 문지방을 넘어 나오자, 뛸 듯이 기뻤습니다. 무탈이는 으스러질 듯 보리를 한번 안아주고는 울안을 힘껏 내달렸습니다. 뒤를 바라보니 보리도 신나게 웃으며 달려옵니다. 너무 숨찰까 봐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줍니다. 울안 가득 핀 수국 꽃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빠알간 보리수 열매들도 햇빛을 받아 더욱 영롱하게 살아납니다. 무탈이는 언덕 위로 올라갑니다. 산모퉁이 엷은 구름자락이 소리 없이 지나고 새들이 즐겁다고 지저귑니다. 보리도 따라 올라와 혀를 내밀고 헉헉 숨을 고릅니다.

‘보리야, 이제 아프면 안 돼.’

  무탈이는 보리의 털을 핥아줍니다. 보리가 숨을 내쉬며 꼬리를 흔듭니다. 마당에 나온 스님도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올려다보십니다.


 

 

  <당선소감>

 

   “동식물 아름다움과 목소리 담고 싶다”

  슬픔과 기쁨은 늘 함께 있나 봅니다.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멍하니 빈 방을 바라보고 있을 때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늘 글에 대한 열망은 있었지만 한동안 잊고 살기도 하고, 분주하다는 핑계로 안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서면 언젠가는 꼭 써야 한다는 생각을 놓은 적은 없었습니다.

아프신 아버지를 돌보면서, 또 코로나 상황 속에서 저는 깊이깊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간 것 같습니다. 요양보호사가 와 주시는 잠깐의 시간 동안 짬을 내어 가끔 산사를 찾곤 했습니다. 그곳의 고즈넉함과 바람소리는 힐링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 산사에서 본 강아지들의 천진함이 이 글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훌륭한 그림책들의 세계를 많이 접하면서 동화를 꿈꾸게 된 것 같습니다. 늦깎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만큼 앞으로 더 열정적으로 쓰고자 다짐해 봅니다. 오만한 인간의 그림자로 숨 쉬면서 또한 인간에게 무한 봉사하고 있는 자연, 동식물들의 아름다움과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습니다. 작은 우화를 통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세계를 꿈꾼다면 욕심인 걸까요.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 한 뼘씩 성장하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병상에 계셔서 이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하시지만 마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이 기쁨을 누려보고 싶습니다. 응원해준 가족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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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무탈한’ 어린이 마음 잘 그려낸 작품”

  코로나 시절인데도 많은 분들이 동화 부분에 응모를 해주셨다. 작품수준도 높고 스타일도 다양해서 심사를 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다고 생각된다. 여러 작품들 가운데 먼저 네 작품을 올려놓고 숙고를 거듭했다. ‘숲속의 우정’, ‘하루살이 춘몽이’, ‘하늘을 나는 꿈’, ‘창틀에 낀 그 새는 어떻게 되었나?’ 등이 그것이다.

  먼저 ‘창틀에 낀 그 새는 어떻게 되었나?’는 창틀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게 된 새를 풀어주는 이야기다. 생명적 존재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배면에 놓인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장치가 다소 단조롭다는 느낌이 있어 작은 에피소드들을 좀 더 아기자기하게 배치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하늘을 나는 꿈’은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는 우화다. 개미와, 개미가 만나는 곤충들과의 대화가 정통적인 우화 형식을 제대로 구현해 낸 듯하다. 부지런함을 상징하는 개미로 하여금 다시 한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곤충들에게 ‘패배’하도록 한 것도 재미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꿈을 꾼 자의 승리라는 ‘오독’이 가능할 수도 있어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하루살이 춘몽이’는 불교적인 성격의 우화라고도 할 수 있고, 삶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끌어낸다는 점에서는 사려 깊은 동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당선작으로 선정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언젠가는 동화에서도 이런 생각의 깊이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표 나게 드러난 설정이 미처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숲속의 우정’은 무엇보다 문장에서 다른 작품들보다 완성되어 있었다고 판단된다. 이 응모자가 글을 얼마나 쓰셨는지는 모르지만 동화라든가 이야기의 문법을 이미 잘 익히고 있다. 불교 동화 확연하게 기울지 않으면서 절집 개들의 우정을 ‘무탈이’의 편에서 아름답게 그려냈다고 본다. 

  이 ‘무탈이’의 마음의 움직임에 어린 독자들도 쉽게 마음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드리며 정진을 부탁드린다. 아쉽게 선에 오르지 못한 작품들, 또 최종에 선택되지 못한 분들께는 아쉬움을 전해 드린다. 모두에게 이 신춘문예가 좋은 경험이 되셨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방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