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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새벽 놀이터 / 문채영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도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는 한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그때 그네 밑에 있는 완충용 블록 하나가 들리더니 그 밑에서 검은색의 무언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공’이었다. 공은 오래전부터 이 놀이터에 사는 수수께끼의 생물이었다. 공은 낮 동안엔 줄곧 놀이터 밑 땅굴에서 잠을 자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움직이곤 했다. 밤이 되어야 사람들도 없고 놀이터가 조용해지기 때문이다. 공은 혼자인 게 편했다.

  오늘 밤도 놀이터는 조용하기만 하다. 공은 텅 빈 놀이터를 차지하기 위해 그네 밑에서 빠져나왔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으악, 벌레! 아니 뭐야!”

  옆 그네에는 한 여자아이가 앉아있었다. 보민이었다. 보민은 놀이터에서 아빠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보민의 아빠는 연락도 없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할머니께서는 먼저 자자고 했지만 보민은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할머니께서 주무시는 틈을 타 보민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로 슬며시 나오고 말았다. 아빠를 조금이라도 일찍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옆 그네 밑에서 갑자기 이상한 생물이 기어 올라온 것이다. 보민은 갑자기 튀어나온 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그네에서 자빠졌다. 공은 당황했다. 가끔 공이 놀이터에서 마주치던 사람은 고작해야 이상한 가면을 쓴 커다란 그림자들뿐이었다. 보민은 그들과 비슷한 가면을 썼지만, 너무 작았고 그림자도 아니었다. 공은 보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우선 보민을 일으켜줘야겠다는 생각에 보민에게 다가갔다.

“미안 놀라게 해서. 괜찮아?”

“악, 마, 말했다!”

  보민은 더욱 놀라서 자빠진 채로 뒷걸음질을 했다. 울상이 된 보민을 보니 공은 다시 땅굴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자신은 사라지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공은 그대로 뒤돌아 기어 나온 구멍으로 다시 들어가려 했다. 그때 보민이 공을 불렀다.

“자, 잠깐! 그, 저기… 다시 안 들어가면 안 될까? 안 무서워할 테니깐.”

  보민은 공에게 조금씩 다가가며 쭈뼛쭈뼛 말했다. 늦은 밤 홀로 놀이터 그네에 앉아있기 너무 무서웠던 것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집 앞 놀이터였는데도 밤이 되니 무척이나 달라 보였다. 뒤에서 무언가가 나타날 것만 같았고 동굴 모양의 미끄럼틀에서는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보민은 할머니 몰래 놀이터로 나온 것을 잠시 후회했다. 하지만 보민은 이 무서움을 이기고서라도 이 놀이터에 남아있어야 했다. 보민에게는 이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민은 최대한 공포를 이겨내려고 했지만 가슴이 여전히 콩닥콩닥 뛰던 참이었다. 새벽의 놀이터는 썰렁해서 더 무서웠다. 그러던 때 바닥에서 공이 나타난 것이다. 보민은 공도 매우 무서웠지만 아무도 없는 놀이터보다는 덜 무섭게 느껴졌다. 처음 보는 생물이더라도 같이 있으면 훨씬 든든할 것 같았다. 보민은 공이 돌아가지 않길 바란다는 듯이 두 손을 깍지끼고 공을 바라보았다. 공은 돌아가고 싶었지만 보민의 말에 구멍으로 들어가는 걸 그만두었다. 배도 무척이나 고팠기에 공은 지상에 남기로 했다.

  공은 그네를 벗어나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기구 위로 올라갔다. 놀이기구 위에는 색깔 점토 같은 것들이 사방에 흩뿌려진 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공은 미끄럼틀과 외나무다리, 전망대와 그물망 사이를 넘나들며 반짝반짝 빛나는 점토들을 먹었다. 보민은 그 빛나는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지금 뭐 먹는 거야?”

“에너지야. 낮 동안에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가 흘린 에너지들을 먹고 있는 거야.”

“아이들이 에너지를 흘린다고?”

“응,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치는 데 반해 몸이 작으니까. 자꾸 이렇게 흘리는 거야. 이걸 그대로 놔두면 놀이터가 그 에너지를 빨아들여서 마구 날뛰기 시작하거든. 그래서 내가 먹어주고 있는 거야. 나는 아무리 먹어도 날뛰지 않거든.”

“놀이터엔 맨날 그게 쌓여?”

“그럼, 아이들이 놀다 간 날엔 항상 쌓여.”

“하지만 난 오늘 처음 봤는데.”

“이건 필요한 사람한테만 보이는 거야.”

  보민은 자신에게도 그 에너지가 필요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자신도 공처럼 에너지를 먹어야 하는 걸까? 에너지는 무슨 맛인 걸까? 보민은 이런저런 고민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항상 보민은 생각이 많아 탈이었다. 그래서 맨날 공부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특히나 아빠가 직장에 나가지 않게 된 후부터는 더욱 생각이 많아졌다. 글자나 숫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머릿속을 빙빙 돌기 일쑤였다. 할머니는 잡생각은 그만두고 공부나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오는 게 아빠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였다.

  보민은 공을 바라보았다. 공은 그림자 같기도 하고 두더지 같기도 한 몸짓으로 놀이기구 사이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공은 아무 고민이 없어 보였다. 보민은 공이 부러웠다.

“너는 매일 이렇게 놀이터에서 놀면서 에너지도 먹고 하는 거야?”

“응. 나는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거든.”

“진짜? 마법이나 요술 같은 것도 못 해?”

“나는 그런 거 못 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거든.”

  보민은 은근히 실망했다. 공이 이 놀이터에 사는 요정이 아닐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공이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도와달라고 하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보민은 왠지 모르게 공이 더 좋아졌다. 특별히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점이 자신과 똑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넌 좋겠다. 할 줄 아는 게 없어도 괜찮아서. 나는 딱히 잘하는 게 없어서 항상 문제인데.”

“왜 그게 문제인거야?”

“뭐든 잘하는 사람이 돼야 좋은 직장도 다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거든.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내가 꼭 돈 많이 벌어서 아빠를 행복하게 해드려야 한 대. 아빠가 혼자서 나 키우느라 고생하시니까 말이야. 근데 나는 아직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깐, 아빠를 행복하게 해드리지 못할거야.”

  보민은 금세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떨구었다. 아빠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엄마처럼 보민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5년 전에 보민의 곁을 떠났다. 보민과 함께 살았을 적에 엄마는 많이 우울해했다. 엄마는 아빠랑 같이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게 더 좋다면서 먼 곳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보민은 생각했다. 사실 아빠보다 자신과 함께 살기 싫어서 엄마는 가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보민은 기분이 울적해졌다. 보민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왜 이 모양인 걸까?”

  그러자 공이 몸을 늘려 보민에게 다가왔다. 공은 옆에 있는 그넷줄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내가 만났던 그림자들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너.”

“그림자?”

“응, 가끔 놀이터 위로 올라와 보면 커다란 그림자가 앉아 있거든. 신문지를 덮고 누워있기도 하고, 몸을 휘청거리면서 고함을 치기도 해. 전에 만난 그림자는 웅크린 채로 나쁜 말을 잔뜩 하고 있었어.”

“그림자들하고도 이렇게 이야기해봤니?”

“그다지. 그림자들은 날 귀찮아하거든.”

“이야기하는 걸 귀찮아하다니… 그림자는 어쩐지 나보다 우리 아빠랑 비슷하네.”

  보민은 바로 어제 일을 떠올렸다. 보민은 미술 시간에 만든 장난감을 자랑하려고 아빠 방에 찾아갔다. 하지만 아빠는 지금 바쁘니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요즘 아빠는 늘 그런 식이었다. 일하러 나가지 않게 된 아빠는 전보다 더 기운이 없어 보였고 짜증도 잘 내었다. 그런 아빠를 귀찮게 했으니 아빠는 보민을 이제 싫어하게 된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렇게 밤늦도록 아무 연락 없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 걸까? 아빠는 오늘 새 직장을 얻기 위해 면접을 보고 오겠다고 나갔다. 면접을 본 후 다시 돌아올 것처럼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인지도 몰랐다. 아빠는 이 집을 영영 나간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불안한 생각들이 보민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보민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네가 봤다던 그 그림자들 말이야, 아침엔 전부 자기 집으로 돌아갔을까?”

“그건 나도 모르겠어. 아침이 되기 전에 다들 어딘가로 사라지기는 했어.”

“놀이터를 떠났다면 다들 집으로 돌아간 걸 거야. 나는 그렇게 믿을래.”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곳을 돌아다녀도 마지막엔 집으로 가기 마련이니까. 보민은 그림자들도 집으로 돌아갔다고 믿기로 했다. 그리고 틀림없이 아빠도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기로 했다. 분명 아직 돌아다녀야 할 곳을 다 돌아다니지 못해서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뿐일 것이다. 보민은 날이 밝을 때까지 아빠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였다. 저 멀리 아파트 입구에서 누군가가 휘청휘청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람을 타고 술 냄새가 밀려왔다. 공은 고개를 내밀고 그곳을 쳐다보았다. 커다란 그림자가 혼자서 떠들며 놀이터로 다가왔다. 보민은 그림자를 보더니 한달음에 달려나갔다.

“아빠!”

  그림자도 보민을 보았다. 그림자는 무척이나 놀란 눈치였다.

“네가 왜 여?어? 안 잤어?”

“아빠 빨리 보고 싶어서 밖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어.”

  보민은 너무 기뻐서 팔짝팔짝 뛰며 그림자에게 안기려 했다. 하지만 그림자는 힘들다는 듯이 보민을 살짝 밀어내었다.

“아빠 지금 술 때문에 머리 울리니까 얌전히 있어. 집에 라면 있지? 아빠 해장 좀 하자.”

  그림자는 보민을 지나쳐 집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보민은 크게 실망했는지 한숨을 쉬며 땅바닥을 보았다. 공이 그런 보민에게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공은 품 안에 에너지들을 잔뜩 안고 있었다. 공이 에너지들을 보민에게 내밀었다.

“이거 나눠줄게. 작별 선물이야.”

“이거를? 하지만 이거 내가 먹을 수 있는 걸까? 먹고 배가 아프진 않겠지?”

“사람이 흘린 에너지니까 분명 괜찮을 거야.”

  보민은 자신의 두 손안에 가득 쌓여있는 에너지들을 보았다. 알록달록한 것이 꼭 별사탕 같았다. 보민은 말없이 에너지들을 쳐다보다가 그림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보민은 공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두 손 가득 에너지를 들고 그림자를 향해 뛰어갔다.

“아빠! 내가 라면보다 더 좋은 거 줄게. 이거 술 깨는 데 좋은 약이래.”

  그림자는 뭐라 웅얼거리며 말하더니 보민에게서 받아든 에너지들을 한 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보민은 조심스럽게 그림자의 반응을 살폈다.

“아빠, 어때?”

  그림자는 아무 말 없이 우뚝 선 채 눈을 감았다. 잔뜩 찡그려져 있던 그림자의 얼굴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가벼워진 기분이야. 날 짓누르던 게 사라진 것 같아.”

  그림자는 가슴을 펴고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러자 그림자의 가면이 깨지고 몸에서 검은색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맙다, 보민아. 이거 약효가 좋은데? 무슨 약이었어?”

“그건 나도 까먹었어. 그나저나 면접은 어땠어?”

“엉망이었지. 그래도 우리 딸을 보니까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아.”

  공은 멀리서 그림자가 아빠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림자였던 남자는 어느새 보민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보민은 아빠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신나게 깡충깡충 뛰었다. 에너지를 먹지 않은 보민도 아빠만큼이나 몸이 가벼워진 모양이었다. 아빠가 보민을 보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공은 그제야 처음으로 아빠의 민얼굴을 보게 되었다. 공이 중얼거렸다.

“그림자는 저런 얼굴이었구나.”

  공이 고개를 살짝 돌리자 길가 근처에 세워진 볼록 거울이 보였다. 새까만 덩어리 같은 공의 모습이 보였다. 공은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여 손안에 남아있던 에너지들을 바라보았다. 공은 에너지를 한 입 먹고는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공은 여전히 공이었다. 공은 이제 다시 땅굴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공은 자신이 나왔던 구멍으로 들어간 후 블록 뚜껑을 닫았다.

 


 

 

  <당선소감>

 

   "갈 길 멀지만 천천히 정진할 것"

  설마하니 저에게도 수상소감이라는 글을 적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저 ‘언젠간’이라는 마음으로 막연하게 생각하던 일이 예상치도 못하게 눈앞에 뚝 떨어지니 해야 할 말도 나오지 않네요. 올해 겪었던 일 중 가장 희한하고 신기한, 무엇보다도 매우 기쁜 일입니다.

  계획되었던 인생이 슬슬 끝나가고 있던 참이라 항상 마음속에 걱정을 안고 살던 한 해였습니다.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치우느라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눈 떠보니 올해가 얼마 안 남아있고 저는 작년과 비교했을 때 별로 변한 게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제대로 이뤄낸 것도 없이 모든 게 끝나버렸다고 생각하던 저에게 전남매일이 찾아와 새로 시작하라고 등을 떠밀어준 느낌입니다. 갈 길이 구만리이고 행선지도 모르지만, 천천히 걸어보아야겠습니다. 걷기는 제 특기이니까요.

  이왕 수상소감을 말할 기회가 생겼으니 감사의 말을 적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온갖 농담과 잡담 속에서 저에게 보석과도 같은 아이디어들을 던져주었던 친구들, 제 앞날을 은근히 걱정하시며 회유하시면서도 끝내는 조용히 저를 응원하며 지켜봐 주시는 부모님, 가장 현실적인 조언으로 저를 구제해주는 언니,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저의 영원한 글 선생님이신 이현우 선생님께 정말 큰절을 올리고 싶습니다. 입시를 하던 반년 동안 글을 배운 인연밖에 없지만, 선생님 덕분에 저의 글이 크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입시에 붙기 위한 글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서 제가 스스로 공부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시고 방법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은 엉성하기 그지없는 저의 글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께도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덕분에 단순한 습작으로만 남을 뻔했던 저의 글을 세상에 알릴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상상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지금보다 훨씬 정교하고 깊은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 2001년 수원 출생. 
● 수원 동우여자고등학교 졸업


 

  <심사평>

 

  

  무난함을 넘어서야 한다

  기대는 종종 빗나가기도 하지만 응모작을 손에 든 순간 우리는 새로운 작품,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을 기대한다. 한 편 한 편 읽다보니 응모작 수만큼이나 작품들이 다양했다. 그러나 대체로 익숙한 소재를 무난하게 쓴 작품들이었다. 사실 무난한 작품을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랫동안 동화를 읽고 글을 써야 무난한 작품이라도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난한 것만으로는 안 된다. 새로운 시도나 자기만의 시선, 자기만의 동화적 세계가 필요하다.

  ‘축구공은 구를 뿐이야’는 여자라서 ‘000는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에 맞서는 씩씩한 여자 아이의 이야기이다. 주제, 구성, 문장 모두 무난한데 주변 인물 모두를 주인공 서우의 반대편에 세우는 등,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설정이 도드라져 아쉬웠다. 주제보다 인물이 앞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맑은 날’은 인정 욕구를 바탕으로 한 자매간, 형제간 이야기로 무난하게 잘 쓴 작품이다. 그러나 흔한 소재를 익숙한 형식으로 형상화했다.

  ‘귀 기울여 봐’는 어린이들이 맨홀에 갇힌 맹꽁이를 구출하기 위해 작전을 펼치는 이야기이다. 서술 면에서나 소재 면에서 매우 안정적이고 문장도 편하게 잘 읽혔다. 어린이들이 동물을 구출하는 여느 이야기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없었다.

  ‘새벽 놀이터’는 이미지가 남는 동화였다. 디테일 면에서 서투름은 있으나 자기만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품 쓰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인적이 끊어진 어두운 놀이터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의 두려움과 불안, 그 속에 묻어 있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고심 끝에 ‘새벽 놀이터’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심사위원 : 임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