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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모카를 위하여 / 박문후

 

  혜주의 집에서는 나와 모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그녀의 손을 통해 제공됐다.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모카는 시바견이니까 어떻게 짖어야할지가 맞겠지만. 만약 천사를 만난다면. 아니 자신이 천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하겠지만, 나와 모카는 그녀를 천사라고 불렀다. 혜주의 집에선 모든 것을 그녀가 결정했다. 우리는 그녀의 친절에 즐거워하는 표정만 지으면 됐다.

  내가 혜주와 같이 살게 된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때마침 나의 원룸 계약이 끝났고, 그녀 또한 함께 살던 어머니가 지방으로 내려가 버려서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혜주는 나를 위해 15평짜리 구축 아파트를 새롭게 인테리어까지 했다. 내가 캐리어 두개를 끌고 현관문에 들어섰을 때, 그녀의 말을 증명하듯 집 안에서 도배지의 독한 풀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나는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새집증후군에 민감했지만 그녀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괜히 그녀의 기분을 거스를 것까지 없다고 생각했다.

  혜주는 자신의 아파트를 새장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때마다 그럼, 우린 뭐지?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의 말을 옳다고 존중하기로 했다. 물론 아파트의 소유주는 혜주였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가구들도 그녀의 것이다. 모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와 모카는 혜주의 공간에 구비된 이케아 매장에서 구입한 옷장이나 소파와 같았다. DIY가구처럼 그녀가 원하는 형태로 앉거나 눕거나 서 있기만 하면 됐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나의 코가 도배지의 풀 냄새에 무뎌지듯, 나는 곧 혜주가 케어해주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쿰쿰한 냄새가 방안에 가득 찼다. 청국장냄새였다. 재택근무라서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혜주가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LP판의 그루브에서 바늘이 튀는 소리와 같았다. 반복과 변주에 균열이 생기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은근히 불안하게 만들었다. 주방에서 튀어 오르는 불협화음 사이사이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톤을 높인 혜주의 목소리가 몇 차례 더 들리는가 싶더니 방문이 왈칵 열렸다. 밥 먹어. 얘는 어디 있니? 아침 내내 보이지 않아. 목소리에 짜증이 잔뜩 배였다. 내가 혀를 차며 돌아눕는 새 나의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자던 모카가 잽싸게 빠져나갔다. 햄 굽는 냄새에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우리팀 화상회의 시간 다됐어. 빨리 먹어. 모카, 너까지 왜 그래?”

  혜주의 두 번째 잔소리가 끝나기 전에 나의 몸이 용수철처럼 튕겼다. 침대를 대충 정리하고 인덕션 앞에 서 있는 그녀 뒤로 다가가 허리를 껴안고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머그잔에 커피를 따르며 나의 눈은 식탁 위를 훑었다. 반찬가게에서 사온 배추김치, 우엉조림, 멸치조림, 구운 햄이 차려져있고, 그 가운데 인스턴트 청국장이 놓였다.

  “청국장이야. 장 건강에 좋아.”

 아무리 장 건강에 좋다고 해도 아침에는 사양하고 싶은 냄새다. 나는 비위가 상하는 것을 참고 청국장을 입안으로 듬뿍 떠 넣었다. 간이 너무 짰다. 짠맛을 희석시켜보려고 볼이 미어지도록 밥을 우물거리면서 어젯밤에 마신 술 때문에 입안이 깔깔해. 그녀에게 에둘러 말했다.

  혜주가 청국장찌개 국물을 떠 넣더니 이맛살을 찌푸리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우 짜 일찍 일어나지 않아 너무 졸았어. 입안에 든 음식물을 변기에 뱉어냈다. 나는 그녀가 음식물을 뱉어내는 소리에 참고 있던 구토가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우리의 천사님 감사히 먹겠습니당.”

  했다. 모카도 혜주를 쳐다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나와 모카는 열심히 밥을 먹었다. 아침잠이 아쉬웠지만 혜주의 기분에 맞추기 위해서다. 식사 후, 나는 설거지를 하고 모카는 화장을 하는 혜주 옆에서 배를 뒤집고 애교를 부렸다.

  컴퓨터가 ON상태로 하루 종일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파놉티콘에 갇힌 기분이었다. 오프라인에서보다 온라인에서에의 업무 피로도가 훨씬 높았다. 좁은 아파트에서 살아있는 생명체 셋이 하루 종일 부대끼다보니 서로의 숨결에 치이는 것 같았다. 신경이 바늘 끝같이 날카로워졌다. 평소 같으면 출근길에 모카를 반려견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퇴근 때 데려왔다. 혜주와 나 또한 서로 다른 부서에서 근무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퇴근시간까지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특히 화상회의 중에 모카가 카메라에 잡힐까봐 걱정을 했는데, 오늘 혜주네 팀 회의시간에 모카가 짖었다.

  화가 난 혜주가 모카를 다용도실에 가두었다. 놀란 모카가 다용도실에서 계속 짖어댔다. 혜주의 느닷없는 행동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개껌을 가지고 다용도실로 가서 모카를 안고 달래줬다.

  회의를 끝낸 혜주가 나에게 함부로 모카에게 나쁜 버릇을 들이지 말라고 짜증을 냈다. 게다가 팀원들에게 부끄러워 죽을 뻔했다며 울먹였다. 나도 기분이 나빴지만 업무시간에 그녀하고 다툴 수도 없고, 일단은 미안하다고 말하고 말았다. 퇴근 시간이 되어 컴퓨터를 끄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 다 침대에 누워버렸다.

  우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벌써 창밖이 어두웠다. 모카를 산책시키기에 너무 늦은 시각이라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녀석도 제집에서 꿈쩍을 않았다. 내가 간식을 흔들며 집밖으로 유인을 했지만 녀석이 머리를 앞다리사이에 파묻고 알은체도 않았다. 식탁 옆으로 데려와 같이 저녁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먹이통을 집안에 넣어주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밤새 모카가 낑낑거렸다.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왔다. 경비아저씨의 목소리에 귀찮음이 잔뜩 배였다. 밤에 개 짖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는 민원이 들어왔단다. 바깥의 소음이 끊어진 심야시간대에 좁은 공간에서 내는 모카의 소리가 예상외로 울림이 컸던 모양이다. 돌아눕던 혜주가 왜냐는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우리 위층에서 민원이 들어왔대. 모카가 짖는다고.”

  그녀가 짜증스런 말투로 거칠게 내뱉었다.

  “아악, 진짜 피곤해. 앞으로가 더 문제야. 쟤 좀 어떻게 할 수 없을까. 정말 미치겠어. 그것 가지고 민원까지. 며칠 전에 엘베에서 만났을 때 우리 모카 귀엽다고 내가 싫어하는 눈치를 줘도 마구 만져놓고선.”

  모카의 이마를 만져봤다. 체온이 많이 높진 않았다. 녀석의 집 안을 살펴봐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모카가 낑낑거릴 때마다 인터폰이 울리고 그때마다 혜주도 덩달아 찡찡댔다.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잤다.

  머리가 무겁고 눈이 아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는데 모카가 현관문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혜주가 발딱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모카를 꾸짖는 혜주의 잠긴 목소리가 같이 섞여 들렸다. 내 입에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혜주와 모카, 둘의 소리가 동시에 멈췄다. 모카가 긁던 것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녀석이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간절했다. 맞다. 배변. 모카는 혜주의 어머니가 있을 때부터 야외배변을 했다. 하루에 한 번씩은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야 하는데, 어제 산책을 시키지 못했다. 나는 재빨리 외투를 걸치고 모카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모카가 산책로를 향해 질주를 했다. 나도 따라서 달렸다. 녀석이 밤새 낑낑대던 것을 해결하는 동안 나는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아파트단지를 내려다봤다. 불빛 하나 없다. 희붐한 대기 속에 줄지어 서있는 낡은 입방체 덩어리들. 입을 다물듯 창문을 꼭꼭 닫아걸고 있었다. 회색 시멘트 벽체 속에 규정지을 수 없는, 함부로 입 밖으로 내어놓지 못하는 소리, 소리들이 압축돼 있는 느낌이다. 그 소리들이 점점 강도가 강해져 밖으로 나올 틈을 찾아 맴을 돌다가, 탈출구를 찾아 맴돌던 소리들 중, 가벼운 것 하나가 모카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됐다.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 불안했다. 나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진저리를 쳤다. 여느 때 같으면 새벽에 일찍 출근을 하는 사람들로 저절로 활기가 만들어지던 거리다. 행인 하나 없는 아파트단지에 택시 한 대가 습관처럼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나의 무의식이 택시를 불렸다. 나는 모카를 데리고 떠났다. 나는 모카의 배변덩어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모카에게 리드줄을 채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녀석이 홀가분한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장을 서서 걸었다.

  혜주가 모카의 입에 햄조각을 넣어주고는 심각한 어조로 말을 했다.

  “얘, 성대수술을 시켜야겠어. 많이들 하는 모양이던데. 그렇게 해버리면 인터폰도 오지 않을 거야.”

  나는 북어국 국물을 뜨던 숟가락을 놓아버렸다.

  “그 말 진심이야?”

  그녀는 나의 말뜻을 알아채지 못하고 성대수술에 대해 한 번 더 이야기를 했다. 식탁 옆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모카를 내려다보다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가 욕실로 들어가자 모카가 나를 따라왔다. 나는 욕실 안으로 녀석을 데리고 들어갔다. 모카에게 양치질을 해주며 녀석의 눈을 들여다봤다. 참 맑고 순종적인 눈빛이다. 차마 마주볼 수 없었다. 녀석은 칫솔질만 하면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 녀석을 보며 차라리 눈을 감고 있어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식사 후, 혜주가 외출준비를 하며 화요일에 동물병원에 가기로 예약을 해뒀어, 라고 했다. 다른 방법도 찾아봐야지 하고 내가 대꾸를 하자, 그녀는 최선의 방법이야, 하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혜주가 현관문을 나서며 늦어질지 모르니까 저녁식사 때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 그녀가 나가고 현관문이 닫히자 모카가 나를 보고 엉덩이춤을 췄다.

  늦은 오후에, 햇볕이 좋을 때 모카에게 야외 배변을 할 기회를 주려고 산책을 나갔다. 1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모카가 나의 품에서 재빨리 뛰어내렸다. 리드줄을 늘이며 산책로를 향해 내달렸다. 어찌나 빠르게 달리는지 금방 줄이 팽팽해졌다. 아파트 단지 뒤쪽에 있는, 야산자락으로 이어지는 언덕배기로 올라갔다. 산책로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나는 모카의 마스크를 벗기고 목줄을 풀어줬다. 혜주가 봤다면 질색을 했겠지만. 목줄이 풀리자 모카의 질주본능이 살아났다. 나도 달리고 싶어 함께 달리다가 가픈 숨을 몰아쉬며 벤치에 주저앉았다. 모카는 길섶으로 들어가 한쪽 다리를 들고 마킹을 한 다음 느긋하게 나무둥치의 냄새를 맡으며 주변을 탐색하고, 발로 땅을 파헤치기도 했다.

  나도 벤치에 길게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록 희뿌옇게 미세먼지로 덮인 하늘이지만 그래도 다른 방해물 없이 시선을 끝까지 보낼 수 있어 좋았다. 숨통이 튀였다. 따스한 4월의 햇살이 나뭇가지를 유혹하고, 화답하듯 터져 나오는 움. 대지에 연녹색이 번지기 시작했다.

  모카가 기운차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혜주가 동물병원에 예약을 했다는 말을 떠올리고 벌떡 일어났다. 앞으로 녀석이 시원스레 짓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의 목구멍이 꽉 막히는 기분이다. 모카를 불렀다. 녀석이 어디를 돌아다니다가 왔는지 숨을 헐떡이며 나타났다. 나는 모카의 입에 간식을 넣어주며 눈을 한번만 깜빡였다. 녀석도 간식을 받아먹고 앞발로 나의 손을 잡으며 꼬리를 한번만 흔들었다. 혜주가 모르는 우리 둘만의 대화법이다. 나와 모카는 얼굴을 비비며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카가 E마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모카의 리드줄을 잡아당겨 마트를 건너뛰었다. 혜주의 계획표 속엔 주말산책 코스에 E마트에 들르는 것이 필수항목으로 들어있었다. 그리고 모카의 뇌 속에 그것을 입력시켜놓았다.

  혜주의 시선으로부터 몇 시간만이라도 자유롭다는 것이 우리 둘에게 모종의 해방감을 줬다. 집 안이 어둑해졌다. 그때까지 혜주가 돌아오지 않았다. 카카오톡에 혜주의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오늘 집에 못 들어온다고, 모카하고 저녁식사를 하라고 했다. 모카에게 사료를 줄 때 30그램만 줘야한다고 고딕체로 강조를 했다. 다이어트 때문이란다. 나에게는 라면 금지와 하트 두 개를 날렸다. 나는 댓글을 달고, 침대위에 핸드폰을 던졌다. 모카를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일단 라면 끓일 물을 인덕션 위에 올려놓고 모카에게도 먹이를 듬뿍 부어줬다. 라면을 먹고 나서 남은 국물을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리고 락스를 부었다. 완벽했다. 모카도 오랜만에 포식을 하고 기분이 좋은지 자기방석에 벌러덩 누워 설거지하는 나를 쳐다봤다. 설거지를 끝내고 나자 완전 범죄를 성공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는 느긋하게 거실에 드러누워 넷플릭스에 들어가서 영화를 봤다.

  모카도 나의 배를 베고 비스듬히 누워 영화를 봤다. 나는 비스킷을 먹으면서 모카의 입에도 넣어줬다. 녀석이 어느새 나의 허벅지와 아랫배 사이에 머리통을 끼우고 코를 골았다. 나는 모카의 배를 쓰다듬으며 화면을 주시했다. 녀석의 잠자는 모습이 어린 아이 같았다. 혜주의 마음을 온통 빼앗아갈 만했다. 모카가 자면서도 끊임없이 앞발차기를 했다. 나는 진드기가 붙었나 싶어 손바닥으로 찬찬히 훑었다. 나의 손길에 녀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잠을 편히 못자는 것 같았다.

  모카가 꿈을 꿨는지 갑자기 짖어대더니 눈을 떴다. 잠에서 깬 녀석이 현관문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어슬렁거렸다. 그러더니 나의 손을 물고 흔들어댔다. 밖으로 나가자는 것인가? 산책을 시켰는데. 내가 귀찮아하는 표정을 짓자 녀석이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똥마려운 개 같은 표정이다. 산책을 할 때 배변을 했는데 왜 저러지. 모카의 짖는 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래도 내가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녀석이 물청소용 밀대에 붙은 부직포걸레를 물어뜯었다. 나는 녀석에게 우족뼈다귀장난감을 던졌다. 모카가 장난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도리어 나의 트레이닝복 바지자락을 물어뜯었다. 나는 녀석이 그러거나 말거나 영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모카가 이번엔 현관문을 발로 긁어댔다. 나는 알았어. 알았어 하며 영화 속에서 딸이 자기가 키운 동생을 데리고 도망치는 장면에서 화면을 정지시켰다.

  외투를 입고 모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밤이라서 그런지 달음박질치지 않고 내 옆에서 보조를 맞춰 걸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산책로로 들어섰다. 나는 모카가 빨리 볼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녀석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더니 숲길로 들어섰다.

  드문드문 서있는 가로등 불빛 때문에 숲의 어두운 부분은 상대적으로 어둠이 더 짙었다. 불빛의 각도에 따라 나무들의 몸통이 일부분만 희끄무레하게 드러났다. 검은 실루엣만 드러내고 있는 나무들이 비밀의식에 참여한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사제들 같았다. 숲 전체가 주술에 걸린 것처럼 실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팽배했다. 나는 리드줄을 당겨 모카에게 집으로 돌아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모카는 내가 리드줄을 당길 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기다리다가 다시 조금씩 앞장 서 나아갔다. 숲속으로 들어갈수록 나는 모카 곁에 바짝 붙어 서서 걸었다.

  어느새, 산책길과 이어지는 야산자락 속에 들어와 있었다. 모카를 찾으러 몇 번 들어와 봤던 숲인데 밤의 숲은 완전히 낯선 세계였다. 리드줄을 쥐고 있는 손바닥이 축축했다. 그때 어디선가 강아지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모카가 잡목이 덮인 바위 아래로 펄쩍 뛰어내렸다. 내가 놀라서 모카를 불렀다. 나는 핸드폰 후레쉬로 모카의 짖는 소리가 나는 곳을 비쳤다. 그곳에 텐트가 쳐져있었다. 모카가 짖어대며 텐트 주위의 흙을 파헤쳤다. 텐트의 지프를 열자 그 속에 강아지 5마리와 케이지가 놓여있었다.

  강아지들이 우리를 보고 달려왔다. 내가 손을 내밀자 익숙하게 손바닥을 핥았다. 모카가 나를 쳐다보고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모카가 이곳을 어떻게 알았을까? 텐트 안에 물통과 먹이통이 있었고, 물과 사료를 가득 채워놓았다. 누군가 강아지들을 이곳에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강아지들의 건강 상태나 케이지가 깨끗한 것으로 보아 가져다 놓은 지 오래된 것 같진 않았다. 나는 유기견센터에 알려주려다가 관뒀다. 낮에 다시 가보기로 하고 모카를 데리고 숲속에서 나왔다. 하늘에 별이 떴는지는 모르겠다.

  혜주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반려견용 마스크랑 개껌이며 개뼈다귀에 개빵까지 간식거리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나는 저렇게 많이 하는 눈길로 그녀를 흘긋 봤다. 반려견이 성대수술을 한 후 짖으면 쉑쉑거리는 소리가 난대. 굉장히 듣기 싫대, 라며 모카가 짖으려고 할 때마다 간식을 입에 넣어주기 위해서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모든 것이 모카를 위해서라는 그녀의 말이 섬뜩했다. 그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장난감을 골랐다. 장난감뿐만 아니라 신발까지 담았다. 신발이 아주 앙증맞았다. 갓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신발 같았다.

  내가 신발을 보며 신기해하자 그녀가 귀엽지 하며 예뻐 죽겠다는 표정이다. 예쁘긴 한데 개도 신발을 신니? 하고 묻는 나에게 어휴, 미개인. 그것도 몰라? 여기 봐. 예쁜 거 얼마나 많아. 외출할 때 우리 모카에게 개발바닥같이 더러운 진흙을 밟게 할 순 없어. 안 그래? 하고 핀잔을 줬다. 나는 속으로 모카는 개 아니야 하면서도, 그건 맞아. 엘리베이터를 탈 때 안아달라고 하는 녀석이니까. 옷 더럽힐 염려도 없고 좋겠네, 하고 혜주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쇼핑몰에서 구매한 물건들이 도착했다. 혜주가 신발을 들고 모카를 불렀다. 짙은 브라운색으로 얼핏 보면 육포로 착각하기 딱 좋았다. 녀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코로 냄새를 맡고 이빨로 물어뜯었다. 혜주가 모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이 돼지, 먹는 거만 밝혀. 이건 신발이야. 엄마 아빠랑 산책 갈 때 신을 거야. 한 번 신어볼까. 예쁘겠다. 우리 모카 신발 신고 브이로그 찍자, 하고 모카에게서 신발을 빼앗았다. 내가 잘 걸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하자 우리 모카는 똑똑한 아이라서. 잘 걸을 거야. 그렇지 모카, 하며 그녀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해버렸다.

  신발을 물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모카에게 혜주는 개껌과 신발을 바꾸자고 했다. 개껌을 받기위해 모카가 신발을 내려놓았다. 모카가 개껌을 씹는 동안 나와 혜주가 녀석의 발에 신발을 신겼다. 녀석이 일어서려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용케 다시 일어서긴 했는데 그 자리에서 얼음땡이다.

  혜주가 육포를 들고 거실 끝에 서서 모카를 불렀다. 나는 처음 줄 위에 서 보는 새끼광대의 눈빛 같은 녀석의 표정을 가만히 지켜봤다. 녀석이 혜주가 들고 있는 육포를 쳐다보다가 나를 쳐다보다가 했다. 혜주가 들고 흔드는 육포 쪽으로 한발을 떼더니 꼬리에 불이 붙은 망아지처럼 껑충거렸다. 그녀가 얘, 망아지 같아, 하며 낄낄대다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으려는 순간 모카가 꽈당하고 넘어졌다.

  그녀가 먼저 비명을 질렀다. 나는 팔짱을 끼고 느긋한 자세로 모카를 지켜보다가 혜주의 비명소리에 잽싸게 버둥거리는 모카를 안아 일으켰다. 녀석의 사지근육이 딴딴하게 뭉쳤다. 혜주가 녀석의 털을 쓰다듬으며 혀 짧은 소리로 간난 아기처럼 달랬다. 모카는 혜주의 눈치를 보며 신고 있던 신발을 이빨로 물어 당겨서 벗어버렸다. 그리고 부리나케 제집으로 달려가서 철망으로 된 문까지 닫아걸었다.

  나는 모카가 꽁무니를 빼는 것이 우스워 웃으려다 웃음을 삼켰다. 모카의 신발을 들고 엉거주춤 서 있던 혜주가 눈물을 글썽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것을 울음으로 표현했다. 나는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모카에게 부리는 짜증이 언제 나에게로 튈지, 아주 위험한 순간이었다. 나는 혜주를 웃겨보려고 좀 전에 껑충거리던 모카의 걸음걸이로 냉장고로 가서 그녀가 좋아하는 망고주스를 컵에 부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와 건넸다.

  모카가 신발을 신고 걷는 것에 실패한 후, 혜주는 오후 내내 짜증을 냈다. 나는 근무 시간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모카를 산책시키자고 그녀를 달랬다. 어쨌든 그녀를 달래야 하는 것이 나의 몫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밤새 침대 귀퉁이에 웅크리고 누워 훌쩍거리면서 나를 달달 볶을 것이다. 자기는 최선을 다해 케어를 하는데 나와 모카가 알아주지 않는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할 것이 뻔했다. 나와 모카가 혜주를 천사라고 부른 때도 있었다. 천사의 친절한 케어도 하루에 한 두 시간이지.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악마의 장난에 걸려던 기분이었다. 밤에 잠을 편하게 자려면 미리 내가 그녀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산책을 가자는 나의 말에 모카의 꼬리가 팔랑개비같이 돌아갔다. 내가 리드줄과 배변처리용 비닐봉지를 준비하는 동안 혜주가 또 신발을 꺼냈다. 그녀하고 오랜 시간 같이 살아온 모카의 눈치가 사람 이상으로 빨랐다. 벌써 알아채고 제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가 아무리 불러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뼈다귀를 들고 가서 유인을 했지만 쳐다도 안 봤다. 나는 혜주에게 오늘은 신발 신기는 것을 포기하자고 말했다. 내 말에 그녀가 들고 있던 신발을 모카의 장난감 바구니에 던져버렸다. 나는 모카의 집에 손을 넣어 녀석을 밖으로 빼냈다. 녀석도 혜주의 손에 신발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순순히 밖으로 끌려나왔다.

  내가 모카의 배를 긁자 녀석도 기분이 좋은지 나의 얼굴을 핥았다. 그리곤 슬금슬금 혜주에게 다가가서 안겼다. 혜주의 표정을 살핀 후, 그녀의 얼굴도 조심스럽게 핥았다. 모카가 얼굴을 핥아도 계속 뚱해있는 혜주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녀석이 간식 벨을 눌렀다. 나는 혜주를 곁눈질하며 벨을 누를 때마다 녀석의 입에 간식을 넣어줬다. 내가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시키자 모카는 신발에 대해 그새 잊어버렸는지 혜주에게도 다가가서 앞발을 내밀며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했다.

  나는 산책을 다녀오겠다며 모카를 데리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 혜주가 잠깐만하고 새로 산 반려견 전용 마스크의 비닐 포장지를 뜯었다. 입과 코 전체를 한꺼번에 막도록 디자인된 스판덱스 마스크였다. 모카의 튀어나온 입에 고무튜브처럼 끼워야 했다. 내가 녀석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고정시키는 호크를 채우는데 녀석이 목을 획 돌려 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얼굴에 착 달라붙는 마스크가 녀석에겐 낯선 모양이었다. 녀석이 앞발로 마스크를 벗겨내 이빨로 물어뜯었다. 모카가 좋아하는 닭고기 육포를 눈앞에 대고 흔들어도 마스크를 놓지 않았다. 녀석이 기어코 마스크의 밴드부분을 망가뜨렸다.

  혜주가 또 다른 마스크의 비닐 포장지를 뜯었다. 화가 잔뜩 난 손길이었다. 그녀가 녀석에게 다가가서 마스크를 다시 씌웠다. 나는 도와주려다 그만뒀다. 혜주와 모카의 서로를 노려보는 눈빛이 확연히 달랐다. 마침내 모카가 송곳니까지 들어내고 왕왕 짖으며 으르렁거렸다. 놀란 혜주가 몸을 뒤로 젖히다가 넘어지며 주저앉았다. 파랗게 질린 혜주를 녀석이 세모꼴로 바뀐 눈으로 힐끗 흘겨봤다. 그리곤 어슬렁거리며 자기집속으로 들어가 아예 매듭으로 만들어진 문고리를 입으로 잡아당겨 문을 닫아버렸다. 혜주가 큰소리로 모카에게 윽박질렀다.

  “걸리면 죽어! 너, 내 말 안들을 거야?”

  “얘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그냥 KF94 씌우자.”

  나는 말과 달리 속으로 너라면 숨통이 온통 막히는 그런 걸 쓰고 싶겠니, 하고 혀를 찼다.

  공기청정기를 켜고 베란다 창문을 조금 열었다. 집 안 공기가 모카에겐 텁텁한 모양이다. 그동안 반려견 유치원도 휴원이라 보내지 못했다. 게다가 먹는 사료와 간식의 칼로리에 비해 운동량도 현저히 부족했다. 몸의 부피가 눈에 띄게 늘어나 숨을 헐떡이는 모카에게 스판덱스 마스크 착용은 콧구멍에 널따란 고무 밴드를 붙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지금 모카가 원하는 것은 밝은 햇살아래서 자유롭게 바깥공기를 마시며 맘껏 달리고 짖는 것이지 신발도 마스크도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화요일 날, 아침 식사를 하며 혜주가 모카를 데리고 병원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식탁 옆에 앉아 사료를 먹고 있는 모카를 내려다봤다. 녀석을 병원에 보내지 않을 핑계거리를 찾아봤지만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모카의 병원예약 시간을 알려주면서 병원에 가기 전에 모카에게 산책을 시키자고 했다. 야외 배변을 할 시간을 주자는 의도였다. 나는 혜주에게 나 혼자서 모카를 산책시키고 오겠다고 했다. 아침 식사가 끝난 후 모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자기꼬리물기를 해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모카가 달렸다. 나도 달렸지만 리드줄에 내가 끌려가는 모양새로 뒤따라갔다. 녀석이 곧바로 야산자락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나도 토요일 밤에 봤던 강아지들이 걱정이 돼 벤치에서 쉬지 않고 같이 따라갔다. 텐트가 있던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 강아지들이 그대로 있었다. 누가 강아지들의 변을 치웠는지 텐트 안이 깨끗했다. 강아지들이 텐트 밖으로 달려 나왔다. 모카가 강아지들을 핥아줬다. 강아지들의 유치가 돋아나는지 나의 손가락을 빠는 힘이 피부가 찌릿할 정도로 강했다. 어느덧 병원에 갈 시간이 다되어 갔다. 강아지들을 다시 텐트 안에 넣고 지프를 원래대로 해놓고 모카를 데리고 산에서 내려왔다.

  혜주가 병원에 갈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모카를 차에 태우면서 나는 그녀에게 꼭 시켜야 돼? 하고 물었다. 그녀가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카가 우리하고 계속 함께 살려면 어쩔 수 없어”

  수술을 해야만 한다는 거다. 자기가 모카의 견주이기 때문에, 모카가 이웃에 민폐를 끼치면 자기책임이라서 해야 된단다. 자기도 정말 하기 싫은 일이라고 울먹이는 소리로 덧붙였다. 경비실에서 오는 인터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애초에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거듭 강조를 했다. 모카는 창틀에 앞발을 걸치고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혜주가 모카의 입에 간식을 넣어줬다. 간식을 받은 녀석이 꼬리로 헤드 레스트를 치며 기분 좋게 짖어댔다. 나와 혜주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모카가 수술 받을 병원에 도착했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 검사를 했다. 그런데 모카의 체온이 정상보다 높게 나왔다. 개들은 사람보다 원래 체온이 높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 만져봐서는 열 체크가 힘들다고 했다. 게다가 장염증세까지 있다며 컨디션이 정상으로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혜주가 수의사와 수술날짜를 다시 잡는 동안 나는 얼른 모카를 끌어안았다. 속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한 번도 기도해 보지 않은 신에게 감사를 했다. 병원에서 장염약을 먹이는 동안 산책을 시키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혜주의 지나친 염려와 통제로 실외배변을 하지 못한 녀석이 밤에 계속 끙끙댔다. 그녀가 위층 현관문에 모카가 성대수술을 할 때까지만 양해를 구한다는 말과 함께 수술날짜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나는 모카가 빨리 회복되기를 기다리면서 한편으로 장염이 계속 되길 바랐다.

  사흘째 되는 날 모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미리 변비약을 먹이고 관장약을 준비했다. 야산자락에 데리고 가서 관장을 시킬 참이었다. 그런데 집에선 만사가 귀찮은 표정으로 제집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있던 녀석이 아파트 밖으로 나오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질주본능이 되살아났다. 리드줄을 팽팽히 당기며 앞서 달려갔다. 변비약 먹인 것 때문에 배변이 급한가 싶어 리드줄을 최대한 풀어주고 나도 같이 달렸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곧바로 야산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을 보고 목줄을 풀어줬다.

  순식간에 모카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 걸었다.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곧 비라도 내릴 듯 하늘이 회색 일색이었다. 모카가 들어간 야산자락의 숲에서 까마귀 떼가 새카맣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까마귀 떼의 울음소리가 음산하게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 모카가 불안해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찢어진 텐트는 더 아래쪽 낭떠러지의 나무둥치에 걸려있고, 케이지는 엎어져 있었다. 강아지들의 사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해체된 사체에서 쏟아져 나온 내장에 파리 떼가 새까맣게 앉아있었다. 파릇파릇해지는 잔디위에 검붉은 핏덩어리들이 흥건했다.

  눈앞의 광경을 보고 나는 구역질을 하며 돌아섰다. 모카가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짖어댔다. 나는 현장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발이 땅에 붙어버렸는지 움직이질 않았다. 모카를 불렀다. 녀석이 나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그리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그 자리에서 배변을 했다. 며칠 동안 쌓인 것을 한꺼번에 다 쏟아내는지 시간이 한참동안 걸렸다.

  모카가 볼일을 보는 동안 강아지들을 해친 동물들이 혹시 또 나타날까봐 나는 주변을 경계했다. 비린내를 품은 회색빛 대기에 갇힌 숲은 침묵을 지킬 뿐, 바람이 불고 있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나뭇가지 하나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모카의 볼일이 끝나자 나는 녀석을 불러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현장을 다 빠져나와 산책로가 보이는 지점까지 정신없이 달리듯 걸었다. 산책로에 들어와서야 모카에게 리드줄을 채웠다. 모카는 좀 전에 본 참혹한 광경을 그새 잊어버렸는지 앞장서서 걸었다. 벤치에 앉았다. 모카도 나의 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모카 입에 간식을 넣어 주고 머리를 쓰다듬는 나의 손이 그때까지 진정되지 않고 계속 떨렸다. 모카와 나는 오랜 시간동안 멍하게 앉아있었다.

  모카의 수술날짜가 다시 다가왔다. 나는 혜주에게 모카를 교정훈련원에 보내자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은 일시적 효과만 있을 뿐이라며 완강하게 자기결정을 고집했다. 우리 셋 모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함께 살기 위해서는, 아니 모카를 버리거나 안락사를 시키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단언을 했다. 나는 화가 났다.

  “어떻게 자기 생각만 옳다는 거니. 그 사람들 전문가들이야.”

  “자격증 있으니까 전문가들 맞겠지. 하지만 모카의 견주는 나야. 나라구. 내가 하겠다는 데 왜 그래? 온정적인 것보다 합리적인 선택이 더 옳은 거야.”

  문득 나도 혜주의 얼굴을 핥다가 모카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혜주가 나를 자신의 틀에 끼어 맞추기 위해 언젠가 수술대 위에 눕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대에 누워 혜주를 쳐다보는 나의 눈빛을 상상했다. 모카의 눈빛과 많이 닮았다. 그날이 언제 닥쳐올지,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해석되지 않는 불안한 느낌이 불쾌감과 함께 사람을 무기력한 상태로 다운시켰다.

  모카의 수술 날, 갑자기 혜주네 팀이 회사에 출근할 일이 생겼다. 그녀가 출근준비를 하면서 나에게 혼자서 모카를 병원에 데려가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며칠 전에 검색을 해둔, 모카를 맡길 교육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곧바로 예약을 했다. 모카가 다니던 유치원이 다시 오픈을 할 동안만이라도 합숙훈련원에 맡겨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곳에서 모카의 실내배변 훈련과 훈련을 통해 짖는 것을 교정까지 해준다고 했다. 모카의 짐을 대충 챙겼다. 그리고 혜주의 집으로 이사를 오던 날 끌고 온 캐리어에 나의 짐도 챙겼다. 나는 우리가 살던 아파트를 한 번 올려다본 후, 모카를 옆에 태우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얼마가지 못해 교육원으로부터 모카를 받아줄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견주가 취소를 했다는 것이다. 내가 의아해하자 견주의 이름이 혜주로 등록이 돼있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견주에게 준비물 체크 차 연락을 했다가 취소한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혜주를 견주로 등록한 것이 실수였다. 교육원 관계자와 통화를 막 끝내자 혜주의 카톡 메시지가 떴다.

  ―지금 바로 모카를 병원으로 데려와. 딴 생각하면 넌 범죄자가 돼. 병원에서 기다린다.

  나는 교차로의 적색신호등 앞에 멈춰 섰다. 모카가 옆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내가 모카의 입에 간식을 넣어주고 눈을 한 번 깜빡이자 녀석도 꼬리를 한번만 흔들었다. 옆 차선에 경찰차가 나란히 멈춰 섰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당선소감>

 

   “상상에서 메타포로, 메타포에서 사유로”

  소설을 쓰면서 항상 염두에 두었던 것이 ‘상상에서 그치지 않고 메타포로까지 넘어가기, 거기에서 좀 더 밀어 올려 사유의 단계까지 끌어올리기’였다. 물론 실패였다. 시시포스가 바윗돌을 정상까지 끌어올리면 다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듯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 마다 그 작품에 대한 평가는 혹독할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시시포스가 이 형벌을 내린 신에게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형벌을 즐기는 것뿐이다, 라고 했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은 담금질을 하는 시간이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기 위해 한밤중에 커피를 마셨다. 커튼 사이로 희붐하게 밝아오는 새벽빛을 보며 굳은 허리를 폈다.

그 노력의 결과를 안겨준 경상일보와 심사위원들께 거듭 감사를 드린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것은 더욱 열심히 하라는 독려로 받아들인다.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끌어 준 동리목월 문창대 이채형 선생님, 김이정 선생님, 소행성의 박상우 선생님, 작마의 엄창석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굳어진 관습의 재현에만 머무르던 것에서 벗어나 현재의 사회상을 관찰하고 이를 재해석하는 소설 쓰기 작업으로 나아가겠다.

●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경주 문화고등학교 국어교사 재직 중


 

  <심사평>

  

  “억압을 사랑이라 믿는, 작금의 슬픈세태 표나지 않게 그려내”

  단편소설 응모작 중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11편이었다. 오랜 코로나19 상황의 직간접 반영인 듯 작품의 분위기는 대체로 무겁고 음울했다. 비교적 높은 완성도를 보여 주의 깊게 살펴본 네 작품도 그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라파스쿠아’는 아픈 동생을 포기할 수 없어 아내의 이혼 요청을 받아들인 화자가 동생과 함께 세부의 외딴 섬 다이브 리조트를 찾아 환도상어를 만나는 과정을 민활한 필치로 그려낸다. ‘삶의 중력’으로부터의 자유롭고자 하는 인물들의 의지를 ‘중력이 덜한 문장’으로 그려내는 솜씨가 매우 돋보였으나 ‘시든 종이꽃 같은 선생님’과 ‘그녀’의 거친 가족사가 주제맥락의 궤도에 여의하게 진입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케세라 세라’는 앞의 작품이 그랬던 것처럼 갇힌 삶의 출구를 ‘출국’에서 찾으려는 인물을 내세운다. 그리고 호주 농장의 가혹한 조건에서 한 번 더 야밤 탈출을 시도하나 결국 떠난 농장의 다른 출입문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짓궂은 구성이 슬프지만 산뜻하다. 다만 여성 화자가 처한 생의 세부들을 ‘탈진한 새들 이야기’로 이어가지 않고 일탈적 성행위의 동기화에 의존한 점이 아깝다.

  ‘그대 이름은 트윙클 스타’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증강현실 앱’에 의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평점관리의 사회로 진입하는 끔찍한 사태를 능청스럽게 예고한다. 그러나 ‘윤은 자신의 아바타로 숨어버리고 싶었다.’라거나 ‘가상의 집으로 영원히 스며들고 싶었다.’라고 마무리함으로서 국가의 증강현실 앱이 오갈 데 없는 인물의 출구나 도피처로 인식되게 하는 등 작의가 다소 모호해지는 점이 있다.

  당선작 ‘모카를 위하여’도 앞의 작품처럼 우리 삶의 부조리함이 어떠한 외부의 억압에 기인하는가 하는 존재론적 문제를 반려견을 소재로 삼아 매우 일상적인 톤의 물음으로 바꾸어 놓는 재치를 발휘한다. 시종일관 스스로 질문하거나 갈등할 줄 모르는 ‘타락천사’ 혜주가 다소 지난 시대의 소설 속 인물 같은 역할을 보인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 작품은 ‘타락사랑’을 정당화하면서 그 억압을 사랑이라 믿는 작금의 슬픈 세태를 집요하면서도 크게 표 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그 솜씨가 더 많은 작품들로 이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진심으로 축하를 전한다.

심사위원 : 구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