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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27번 / 유주현

 

  초등학교 3학년 때 사다코를 시작했다.

  정확히 사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전부터였다. 반장이 봄 소풍에서 찍은 사진을 빨간 리본이 달린 봉투에 담아 모두에게 선물로 나눠줬던 것이다. 스무 장 넘게 받은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대여섯 장 정도였다. 제각기 다른 소풍의 기억과 흔적으로 교실은 떠들썩해졌다. 드디어 내 순서가 다가오는 것 같아 고맙다며 손을 내밀었는데, 갑자기 반장은 악취라도 맡은 듯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표정은 뭐지, 방금 전까지 기분 좋아보였는데, 혹시 지금 나 때문에 얼굴을 구긴 건가, 설마, 그럴 리가. 혼란스럽게 눈을 굴리던 나는 한참 뒤에야 아무런 포장도 없이, 책상 위에 달랑 놓여 있는 한 장의 사진을 목격하게 됐다.

  반장이 셔터를 누른 순간은 거의 완벽해 보였다. 대공원 메인광장 분수대에서 물장난을 치는 열 살짜리 여자아이들의 미소는 햇빛에 반짝이는 물방울보다 눈부셨다. 투명해 보일 정도로 맑은 하늘과 색색의 봄꽃으로 뒤덮인 화단 언덕까지, 봄 소풍 사진 경연대회 같은 것이 있다면 1등을 하고도 남을 만큼 화사한 사진이었다. 너무도 훌륭한 나머지 거룩하며 성스러운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마스터피스에는 조금 이상한 게 하나 섞여 있었다. 바로 나였다. 꽃가지가 비죽비죽 튀어나온 화단 울타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나였다. 어쩌다 카메라 앵글에 잘못 끼어 함께 찍혀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완벽한 사진의 거슬리는 부분을 내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불길하고 무서운 무언가를 예상치 못하게 마주쳤을 때처럼.

  사실 대공원에서 나는 반장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혹시나 뒤에서 얼쩡거리다보면 도시락을 함께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다. 아이들은 언제나 순식간에 팔짱을 끼고 있었다. 끼어들 틈새는 전혀 없었고, 눈짓만으로 서로를 감지해내며 당연하다는 듯 모여 있는 그 자연스러움을 나는 진심으로,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대공원에서의 봄 소풍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블 소고기 김밥 두 줄과 특 새우튀김 여섯 개가 든 가방은 묵직하게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도시락이 필요할 때면 엄마는 분식점에 미리 주문을 했다. 아침에 이름을 대고 찾아가면 된다고, 넉넉히 샀으니 친구들이랑 맛있게 먹으라고. 그러나 내겐 뭔가를 나눠먹을 친구가 없었기에 김밥과 튀김은 매번 잔뜩 남았다. 그것들이 쓰레기통의 철제 바닥에 떨어지며 투두둑 소리를 낼 때마다 기분이 더러웠다.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음식쓰레기가 환경오염에 끼치는 악영향이나 굶주림을 호소하는 제3 세계 아이들에 대한 고뇌는 물론 아니었고 자신의 딸에게 친구가 있을 거라는 전제를 당연하게 내세운 엄마의 머릿속을 몹시도 저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장은 내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3학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어준 존재였다. 오늘 입은 블라우스 귀엽다, 체험학습으로 뮤지컬 보러 가는 것 말고 또 다른 거 하고 싶은 건 없니? 동생이랑 같이 구운 쿠키야, 너도 먹어봐. 누군가와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유일무이, 포 더 퍼스트 타임, 하지메떼… 그래서, 또 다시 엄마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공원 정문에서부터 반장의 뒤를 쫓았던 것이다. 그런데 내게 사진을 건네주던 반장의 태도를 대체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반장의 찌그러진 미간에서 어두운 기운이 뱀처럼 흘러나와 곧바로 내 목에 휘감겼다. 동정을 애정이라 착각했으니 죽어 마땅하다며 숨통을 억세게 죄었다. 점점 가빠지는 호흡 속에서 앞으로도 내게 허락된 것은 동정의 유의어 외에는 없으리란 것 또한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는 사다코처럼 생겼기 때문이었다.

  알고는 있었다. 내가 못생겼다는 진실을. 그런데 반장이 건네 준 사진 속의 내 모습은 단순히 얼굴이 못났, 정도 끝날 상황이 아니었다. 확실히 수상했다. 낯빛이 시멘트 색이다? 눈매가 을씨년스럽다? 쪼그리고 앉아 있는 형태가 기괴하다?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거의 심령사진이나 다름없었다. 밝은 봄, 아이들의 소풍사진에 불현 듯 찍혀버린 귀신 한 마리였다. 어쩐지 어린이집에 들어갔을 때부터 사다코가 뭐라 어쩌고 하는 소리를 가끔 들었는데, 과연 나라도 이렇게 생긴 사람을 마주친다면 어머, 사다코인 줄 알았어, 내뱉어버릴 것 같았다. 사실 이전까지는 나의 못생김을 문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등 3학년은 아직 어리다고 봐줄 수 있는 나이였으며,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든 좋아진다는 식으로 배워왔기에 어른이 되었을 땐 조금이라도 예뻐지겠지, 이런 얼굴이라도 어떻게든 해결될 거야,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든 좋아지고 행복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아니었다. 내 얼굴은 수정의 여지조차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 화장을 하고 성형수술을 하고 헤어스타일을 바꿔본다 하더라도 유난히 눈동자가 작아서 훤하게 드러난 흰자위의 섬뜩함을, 부패라도 된 것처럼 생명력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칙칙한 색의 살가죽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 테니까 이걸로 끝이라는 게 확실했다. 개선시킬 수 없다. 무엇이든 결코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니 가진 걸 활용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미래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가진 것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 행동을 고치자 곧 주변의 표정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점차 날 향한 웃음소리가 늘어났다. 자기 집이나 놀이터에서 함께 놀자하거나 무슨 학원을 다니는지, 동생이나 언니 오빠가 있냐는 질문을 받는 일들이 부쩍 늘어났다. 다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교환일기라는 것을 쓰게 됐다. 당시 우리 반엔 주말드라마에 출연하는 아역탤런트가 있었는데 무려 그 애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았다. 내 기준에선 말도 안 되는 거대한 이벤트들이 매일매일 펑펑 터져대기 시작했다.

  혼자가 아니다. 유치한 문장에 감동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사다코처럼 생겨서 별명이 사다코인 애가 보여주는 사다코의 관절꺾기에 자극받지 않을 아이는 없었던 것이다. 날 격리시켰던 내 얼굴은 아무도 가질 수 없는, 오직 나만 휘두를 수 있는 나만의 유일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우물 속에서 기어 나오는 사다코를 흉내 낸 첫 날. 누가 자지러지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무려 초등학교 3학년이 바지에 오줌을 싸기도 했지만 다음부턴 괜찮았다. 나도 구경해야겠다며 아이들이 몰려왔다. 옆 반, 멀리 떨어진 반, 나중엔 다른 학년까지 몰려왔다. 수도 없이 사다코를 되풀이했다. 나의 사다코는 놀이공원의 인형 탈 따위가 아니었다. 내 뼈와 살과 피가 성장하는 내내 사다코는 계속되었다. 가끔 아파트의 비상구 외부계단으로 나가보곤 했다. 거긴 창문이 아주 컸기에 몸을 살짝만 내밀면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들 사다코를 지나치게 원했다. 인기도 피곤했기에 커다란 창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공중을, 몸을 내던지면 날 잡아주는 손 하나 없이 땅바닥으로 철퍼덕 떨어지고야 말 허공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환경미화 기간이라 교실 인원 모두가 조금씩 할 일을 배정받았는데, 교실 전체의 일이란 소수의 몇 명이 전부 책임지는 식으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소수의 몇이 닥치고 일을 끝낸다면 불화는 없다. 그날은 소수들이 결국 불만을 터뜨리고 말았다. 미화부장과 미화부장의 친구 무리는 그동안 자신들이 겪은 불합리를 열거하며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했다.

  맡은 일을 내팽개친 쪽에서 갑자기 욕설을 내뱉으며 미화부장의 머리끄덩이라도 잡으면 어쩌지 싶었다. 그러고도 남을 애들이었다. 그 애들은 야무지게 따지는 미화부장을 무시하며 그래서 어쩌라고, 비아냥거리다가 다채로운 쌍욕을 내뱉다가 자기들끼리 키득거렸다. 미화부장은 처음 본 순간부터 자꾸 신경이 쓰이는 아이였다. 미화부장의 직함을 맡은 이유도 대단히 웃겼다. 이제껏 반장과 부반장을 지겨울 만큼 많이 이행해 왔기에 중학생의 마지막 시절만큼은 편하게 보내고 싶다는 이유로 임원 선거를 거부했는데, 뭐 하나라도 네가 맡아줘야 우리 반이 제대로 굴러갈 것이라는 담임과 다른 아이들의 사정과 부탁에 밀려 미화부장이라는 소박한 자리에 앉게 됐다. 가끔 미화부장의 책상 위에는 리트 기출문제집이 놓여 있곤 했다. 꽤나 진지하게 다뤘는지 손때 탄 낱장들이 부풀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구제한다는 건 정말 멋진 것 같아, 라고 자주 말했다. 어제도 말했고 일주일 전에도 말했고 십 분 전에도 말했는데 또 말하곤 했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무료 상담을 해주는 좋은 법률가가 될 거라고. 반드시.

  그러니까 미화부장은 황금 똥을 싸서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개소리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미화부장은 슈퍼 히어로물의 주인공 자격을 충분하게 갖추고 있었다. 사다코의 부활을 위해 내가 태어난 것과 같은 이치였다. 운명이라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도 저렇게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무의미한 욕구가 비죽 솟구치면 화도 좀 나고, 그러니 미화부장이 와장창 망신당해서 질질 짜는 거 한 번 봤으면 싶었는데 예고편도 없이 환경미화 전쟁 블록버스터가 불쑥 상영되어 버렸다. 내 객석은 사 분단 첫 번째였다. 미화부장과 미화부장의 친구 무리는 바로 내 앞에서, 맡은 일을 내팽개친 쪽은 일 분단 창가 쪽에서 공격을 이어나갔다. 탱크가 지나가고 병사들이 쓰러지며 공중에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치열한 전투였지만 사(死)분단 앞에서 전열을 가다듬은 미화부장 군(軍), 이라는 설정 자체가 복선이었다. 너무도 분했는지 미화부장의 눈에 물기가 가득해졌다. 내가 만약 감독이었다면 미화부장의 눈을 향해 줌인을 넣었을 것이다. 나는 항상 미화부장에게 사소한 나쁜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눈물이 똑 떨어지는 촌스러운 씬을 무조건 넣었을 것이다. 그래서 불쑥 고개를 일 분단 창가 쪽으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그만 해, 너희가 잘못한 게 맞잖아, 라고.

  맡은 일을 내팽개친 아이들은 내 행동을 꼴같잖다고 받아들인 게 분명했다. 퇴마사들이 나를 죽이겠다고 동시에 주문을 외쳐대는 줄 알았다. 살면서 그런 식의 욕설은 처음 들어봤기에 저 중의 하나가 갑자기 발길질이라도 하면 어떡하나, 맞으면 많이 아플 텐데, 하는 걱정까지 들었다. 그러다 일이 벌어졌다. 맡은 일을 내팽개친 무리 중 하나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사다코 좀 해봐. 내 기분 풀릴 때까지 사다코 보여주면 같이 청소할게.

  그래서 전쟁영화의 한복판에서 사다코를 시작했다. 조화롭지 않은 하이브리드였지만 할 일을 내팽개친 아이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 신나게 관절을 꺾어댔다. 티브이 밖으로 걸어 나오는 사다코, 조용히 누군가의 뒤에 서 있는 사다코, 우물에서 기어 나오는 사다코, 머리카락을 제치고 뒤집어 까진 눈을 보여주는 사다코, 수도 없는 사다코를 보여줬다. 감독님은 좀처럼 오케이 컷을 내리지 않았다. 했던 걸 또 시키고 다시 시키고 계속해서 시켰다. 침 넘기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정적 속에서 나는 사다코를 하면서 펄럭펄럭 뛰어다녔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새빨갛던 하늘이 군청색으로 가라앉을 때쯤에야 감독님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됐다고. 그제야 교실 공기도 조금 편해졌다. 이후엔 할 일을 내팽개친 무리 전부, 대청소에 문제없이 참여함으로서 환경미화 전쟁 블록버스터는 평화롭게 막 내릴 수 있었다.

  대청소가 끝난 뒤 미화부장은 나를 매점으로 데리고 갔다. 뭐 하나 고르라기에 냉동고에서 빵빠레를 꺼냈다. 매점의 냉동고는 어딘가 망가져 있는 게 분명했다. 아이스크림이 단단하게 얼어있는 법이 없었다. 아줌마, 저것 좀 바꾸세요, 수리를 하든가, 중학생들은 신경질을 부렸지만 매점 아줌마는 어떤 높낮이도 없이 매번 같은 응대를 했다.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다.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고. 난 매점 아줌마의 그 소리를 참 좋아했다. 우린 모두 다르지만 똑같은 감색 체크무늬 교복에 감싸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 다 똑같은 것처럼. 한 데 뭉쳐 있는, 대공원 분수대 앞의 아이들처럼 한 덩어리의 유기체처럼 보인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니까. 가끔 매점에 있다 보면 누군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줌마, 다 녹아 있잖아요, 냉동고가 개판이면 빨리 바꾸시라고요.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 아줌마, 그게 무슨 소리야, 맛도 다르고 촉감도 다르고 밀도도 다른데 같긴 뭐가 같다는 거예요, 대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같다고.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다고. 잘 모르겠지만 정말로 똑같아. 다른 거 알고 또 다른 게 맞더라도, 똑같다고 우기고 싶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매점 아줌마를 멸시하고 비난했지만 난 이해할 수 있었다. 알면서도 우기는 일에 대해서. 우기지 않으면 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으니까. 처음부터 눅눅했던 빵빠레는 손으로 잡고 있는 동안 더더욱 빠르게 눅진해졌고, 결국 옆으로 슬쩍 기울다시피할 정도로 균형을 잃어갔다. 미지근한 크림이 자꾸 손등 사이로 흘러내렸다. 멀리 있는 슬픔을 돌보며 살겠다는 사람이라면 바로 옆에 있는 처녀귀신의 특별출연료도 잘 챙겨줄 것 같아서 기다렸지만 미화부장의 입술은 꽉 다문 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난 거창한 걸 바란 게 아니었다. 까메오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크레딧에 마음표시 정도, 고생했고 고마웠다는, 그저 한 줄의 자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빵빠레는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었다. 질척하게 녹아서 내 손과 입 주변을 더럽힐 뿐이었다. 그러나 미화부장은 끝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독하게 조용했기에 문득 나는 머리카락을 잔뜩 앞으로 쏟아낸 뒤에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사다코, 보여줄까? 라고 물어봤다.

  미화부장은 헛기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빵빠레의 마지막 과자조각이 내 입속으로, 깊은 목구멍 너머로 사라지는 순간, 이제 그만 교실로 돌아가자는 식으로 상냥한 눈짓을 보냈을 뿐이었다. 어쨌든 즐거운 학창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엄마와 아빠, 나이차가 많은 오빠와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귀가가 늦었다. 가정에 따뜻한 된장찌개 냄새와 양털러그 같은 푸근함을 덧씌우기 위해선 누군가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한데, 우리 집에는 그런 역할을 맡을 사람이 없었다. 가끔 마주치게 된다면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필요한 건 없냐고 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만 하라고. 내게 갈급했던 것은 돈으로 해결될 수 없는 종류였지만 그들은 각자의 인생을 꾸려가느라 바빴다. 오빠의 인생이 어떤 색으로 덧칠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는 나와 아주 많이 다르게 생겼다. 엄마나 아빠의 뺨에도 죽어있는 듯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아빠와 오빠는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만이 풍길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코에서 턱으로 이어지는 선의 형태가 몹시 닮아 있었다. 살짝 꼬리가 쳐져서 선량하면서도 귀여운 아우라를 풍기는 엄마의 눈은 묘하게도 아빠의 눈매와 유사했다. 부부보다는 남매처럼 보였다. 동질성과 이질성을 헤아리다가 울음을 참지 못해 몇 시간이고 꺽꺽거린 적도 있었지만 사다코를 시작한 후로는 모두 상관없어졌다. 결국 무엇이든 이용하기 나름이다. 나는 노력했다. 자기 전, 거울 앞에 앉아 로션을 바르며 오늘도 수고했어, 내일도 열심히 온몸을 꺾어보자, 거울 속의 사다코를 다독이며 한편으로는 특유의 귀신적인 느낌이 혹시나 옅어지지는 않았나, 은밀하게 신속하게 살펴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사다코는 언제나 소름이 끼쳤다. 괴상한 정도가 말도 못하게 훌륭했기에 안심하며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사다코는 단 한 순간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고시원으로 갔다. 직업이라는 걸 가져보겠다는 각오 때문이었다. 귀신같이 생긴 얼굴로 사기업이나 자영업은 불가능해 보였기에 남는 선택지는 나랏밥 먹는 사람밖에 없었다. 귀신의 집 알바로 평생을 보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노후에 대한 걱정을 지울 순 없었다. 할머니 귀신으로 역할을 옮겨가 일하는 시니어를 실천한다면 어떻게든 먹고 살겠지, 싶다가도 음산한 효과음이 울려 퍼지는 어두컴컴한 세트장 구석에서 기력이 떨어지고 근육도 빠진 몸으로 입술을 오물거리며 서 있다가 아이고 허리야, 이런 소리를 내뱉게 되는 미래를 상상하면 마음이 심란해졌다.

  다만 고시원에서의 생활은 사다코와 함께하기 이전 같았다. 혼자로 돌아간 것이다. 맛있는 걸 먹고 마시며 공부하느라 지친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싶었다. 사다코 말고 너는 누구냐고 물어봐줄 나만의 친구가 마법처럼 나타나주길 바라는 마음은 좀처럼 사라지질 않았다. 그 싸구려 희망은 내 얼굴을 점령한 사다코처럼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사다코를 이용할 수 없는 나는 친구를 만들 수 없었고 고시원에서는, 모두가 사다코를 무시했다. 흰자에 핏줄이 빽빽하게 뻗쳐오른 무슨 무슨 시험의 준비생들에게 웃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절박, 우울, 불안, 쟤는 합격해서 나가는데 나만 또 떨어졌다는 절대적인 공포 앞에서 귀신 흉내 따위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합격만 하면 괜찮겠지, 공무원들은 공시생들보다는 사다코를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 긍정적으로 추측하며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오거나 유난히 구름이 가득해 하늘이 어두웠다 싶은 날이면 새벽녘, 얇은 벽을 타고 울음소리가 허공을 떠돌곤 했다. 벽과 벽 사이에 고인 슬픔들이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다들 저 너머에서 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더, 한 문제라도 더 공부해서 합격률을 높여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내 눈에서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무래도 스즈키 코지 때문인 것 같았다. 사다코는 사실 독창적인 귀신은 아니다. 머리를 길게 풀어헤치고 소복을 입은 귀신이 처음도 아닌데 사다코가 등장한 이후, 이상하게도 영화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귀신만 나오면 은연중에 아니, 저런 사다코 짝퉁 같은 이미지를 쓰다니, 저 작품의 창작자는 부끄럽지도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스즈키 코지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사다코처럼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완벽한 처녀귀신이 등장했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사다코를 만들어낸 건 스즈키 코지였다. 울다 보면 스즈키 코지가 미웠다. 모르는 사람인데 그냥 미웠다. 우느라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빨리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났고, 그러다가 아, 울면서 공부를 하면 되겠구나, 기막힌 묘안을 떠올려 냈다. 울면서 문제집을 풀면 되지. 다음 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흑흑 희극의 발생 조건에 대해서 베르그송은 끄흐흑, 웃음을 유발하는 단순한 형태의 흐으윽 한 개인의 신체적 성격적 결함은 집단의 웃음을 크흑 희극적인 존재이다 흐흐흐흑. 생각보다 할 만 했다. 그럭저럭 괜찮았다.

  일 년 정도 지나자 모의고사 성적이 꽤 좋아졌다. 합격에 대한 자신이 생기자 울음도 슬쩍 잦아들었다. 그즈음의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한참 울어대기만 할 때보다 낯빛이 뽀얗게 느껴졌다. 물론 밥 한 끼를 배불리 먹은 사다코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좀 봐줄만 했다. 결국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닐까. 그러니 웃어야겠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방구석에서 질질 짜봤자 나만 피곤한 것이다. 웃음을 연습하자. 혼자 있더라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사다코를 시작했던 것처럼, 나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너무 열심히 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입가가 양쪽 귀를 향해 올라가 있었다. 학원수업이 끝나고 우르르 복도로 쏟아져 나가는 인파 속에서 누군가와 문득 눈이 마주쳤을 때 어, 나 혼자 웃고 있었어, 머쓱한 기분으로 깨닫곤 했다. 꽤나 여러 번이었다. 편의점에서 우유 한 팩과 삼각김밥이 든 비닐봉투를 들고 나와 유난히 적막하던 골목을 빠르게 걸어가던 늦은 밤, 술 냄새를 풍기며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혼자 웃고 있었다. 이른 새벽의 공용욕실에서도 그랬다. 시험 준비를 하던 내내 토요일 점심을 먹었던 돈까스 식당의 다찌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미친, 또 혼자 실실 웃고 자빠졌어, 내 자신도 깜짝 놀라며 조신하게 뺨을 가라앉혔지만 한편으로는 혼자서도 웃는 내가 기특했다. 그저 그뿐이었다. 일이 이렇게 망쳐질 줄 알았다면 깨어있는 시간 내내 나사 빠진 것처럼 웃어댔을 거라고, 웃음의 연습에 대해서 나는 줄곧 생각하고 또 후회했다.

  초가을비가 잔잔히 내렸던 날이었다. 비는 자정께까지 이어졌다. 습기에 온몸이 망가진 냉동고 속의 빵빠레처럼 흐물흐물해지는 것 같았지만 더 이상은 슬픔에 휘말리지 않은 채 문제집을 풀 수 있었고,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12시가 되자 침대에 누웠다. 5시 반에 일어나기 위해서. 미국 수면의학회에서 추천하는 수면 백색소음을 켜둔 채로.

  가물가물하게 잠속으로 빨려 들어가려는 찰나 눈이 번쩍 떠졌다.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탁탁, 두들기는 소리가 조금 더 세어졌다. 확실했다. 누군가가 내 방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문을 열자, 방금 쌍꺼풀 수술을 받은 사람처럼 눈가가 퉁퉁 부어터진 사람이 서 있었다.

  저는 406호인데요, 안녕하세요.

  자신을 406호라 밝힌 여자의 눈빛은 결연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깨는 경직되어 있었고 자기가 내 방을 먼저 노크했으면서도 머뭇거리며 도무지 말을 못 꺼내겠다는 듯 입술을 앙다물다가 이리저리 비틀어댔다.

  저기, 제가 왜 왔냐면, 저 이상한 사람 아니고요, 임용 준비하고 있고요, 전에 세탁실에서 저한테 세탁기 순서도 양보해 주셨는데, 저 기억 안 나세요?

  내 표정이 무척이나 심드렁했는지 406호는 조금 더 다급하고 초조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말로 저 본 적 없으세요?

  본 적 많았다. 406호 뿐만 아니라 401호에 거주하고 있는 나는 4층의 사람들 대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네가 누구든지 알 바 아니다, 라는 뉘앙스를 필사적으로 흘려댔다. 어쩐지 그래야할 것 같았다.

  그런데 왜요.

  내가 너무 싸늘하게 굴어서인가. 406호는 정말로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눈에 눈물이 차오른 상태로 입을 벙긋거리다가 간신히 말을 툭 내밀었다.

  저, 이번에 합격하나요?

  네?

  저요, 이번에 합격할 수 있냐고요.

  네……?

  어떡해……, 떨어지나 봐…….

  406호는 통곡을 시작했다. 곡소리가 십 초를 넘어가기도 전에 벽 너머에서 주먹질인지 발길질인지 둔탁하게 퍽 치는 소리가 터졌고 뒤이어 조용히 하라는 고함이 뒤따랐다. 난 406호를 내 방으로 끌고 들어온 뒤, 방문을 닫았다. 시계를 얼핏 보니 12시 27분이었다. 그리고 49분이 되었을 때, 난 406호의 이상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고시원에 흐르던 어떤 소문을 알고 나니 406호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소문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슈퍼 내추럴하게 태어나 내추럴한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어떤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으며,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는 공시생이 있다면 나도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게다가 그 공시생이 가끔 누군가에게 웃어줄 때가 있는데, 그 웃음을 받은 사람은 모두 합격해서 고시원을 나갔다고.

  정말 그랬니? 내가 웃는 거 연습하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 전부 합격해서 나갔니?

  물어볼 수가 없었다. 406호는 간절하게 내 손까지 움켜쥐었다. 저는 어떻게 되냐고 자꾸 물어댔다. 헛지랄할 시간에 공부를 하면 조금 더 합격의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저는 울면서도 공부했는데요.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이번엔 반드시 붙어야 한다며, 406호는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내가 합격한다는 증거를 제발 보여 달라고.

  406호 역시 가련한 영혼에 지나지 않았다. 난 작게라도 희망을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406호가 바랐던, 예언의 미소를 보여줬다. 이번에 합격해요. 그러니 이럴 시간에 가서 마무리 공부나 하세요. 잠을 자든지.

  정말로 몰랐다. 406호가 합격할 줄은. 정신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는데 그런 사람이 학교 선생이 된다니 두렵기까지 했지만 어쨌든 406호는 합격을 했으며, 401호의 용하신 분에 대한 소문을 더더욱 떠벌리며 고시원을 떠났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401호로 무슨 무슨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몰려왔다. 사다코를 보여 달라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나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초조하게 눈동자를 떨며 내 입가가 미소로 벌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어려울 건 없었다. 406호처럼 절박하게, 끝나지 않는 수험생활에 대한 고통을 호소한다면 같이 울어주면 됐다. 너의 슬픔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흘려주면 그들은 내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덧붙여 앞으로 당신에겐 행복한 일만 있을 거예요, 희망차게 말해준다면 난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용하신 분이 될 수 있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미래에 대한 예언을 들으러 왔으면서도 묘하게 나를 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짜 점쟁이란 걸 알아채서가 아닌, 천성이 시비 거는 걸 좋아하는 타입인 것 같았다. 마주치자마자 이 사람이 나보다 높은 급인가 낮은 급인가를 본능적으로 따져보는 그런 부류들 있지 않은가. 그럴 땐 비위를 맞춰주면 된다. 잠재된 에너지가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감탄한 듯 중얼거리다가 당신은 곧 모두의 존경을 받을 만한 위치에 서게 될 겁니다, 정말 부럽네요, 그릇이 아주 큰 분이세요, 이렇게 혓바닥을 굴려대면 그들은 내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덧붙여 앞으로 당신에겐 행복한 일만 있을 거예요, 희망차게 말해준다면 난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용하신 분이 될 수 있었다.

  미래를 묻는 일이란 어쩌면 화장실의 목적과도 비슷하다. 그러니 혼자 변기에 앉아 혼자 뱃속 깊이 묵힌 무거운 그것을 떨어뜨리고는 내가 건네주는 휴지로 뒤를 닦아낸 뒤 혼자 시원하게 떠나는 것이 정상이거늘, 굳이 함께 있어야 한다며 우기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몸의 체형과 얼굴의 분위기가 비슷했고 걸친 옷의 스타일까지도 흡사했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튀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걸 절망으로 받아들일 게 뻔했다. 이럴 땐 규율과 규범을 소중히 여기는, 아주 정의로운 분들이 저를 찾아오셨네요, 라고 말해준다면 다들 입을 떡 벌리곤 어떻게 알았냐며 기겁을 했다. 입을 쩍쩍 벌리며 놀랄 때를 놓치지 않고 덧붙여야 한다. 당신들은 올바르게 살고 있으니 곧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행복한 일만 가득할 거예요, 희망차게 말해준다면 난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용하신 분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날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꾸만 매점 아줌마를 떠올렸다.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 아니라고. 우리는 안 똑같다며 우리의 개별성을 말살하지 말라며 모두가 화를 냈는데, 내게 와서 지껄이는 꼴을 보니 매점 아줌마가 옳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개성. 자아. 고유의 이미지. 광활할 정도로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좋고 행복하고 안 힘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어디에도 디테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뭘 어떻게요? 그냥요, 좋게요, 좋게, 행복하게요, 행복하게, 안 힘들게요, 안 힘들게. 차라리 로또번호를 물어보는 사람이 나타났다면 재밌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사명은 조롱이 아니라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답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귀신을 연상시키는 얼굴로 너의 미래는 몹시도 화창하다, 라고 말해주면 다들 미친 듯이 기뻐했다. 가진 것을 활용하기. 봄 소풍에서 찍힌 한 장의 사진에서 깨달은 진리를 나는 잊지 않았다. 모두가 꺼려하는 내 얼굴을 다르게 사용한다면 그건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만약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 왔다면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딴 걸 찾는 사람은 없었다. 나밖에는.

  돈을 받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406호는 내게 왔던 다음 날, 치킨 한 박스를 건네줬다. 고맙다고. 어떤 남자는 고시원 근처의 베이커리에서 빵을 잔뜩 사가지고 와서 주고 갔다. 컵라면 하나를, 오렌지 몇 개가 담긴 비닐봉투를 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별 감각이 없었다. 고마워서 준다는데 사양하는 것도 웃기고 또 공부하는 시간을 빼앗겼으니 소량의 대가는 괜찮지 않나 생각하는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돈 봉투를 들고 왔다. 내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정리를 해준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됐다. 돈 봉투를 처음 받았을 때, 사실 약간 두렵긴 했지만 그것도 몇 번 반복되니 괜찮아졌다. 그깟 돈 봉투가 내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건 그저 징표일 뿐이었다. 누군가 날 간절히 필요로 했다는 아주 귀여운 징표. 어차피 엄마가 용돈은 차고 넘치도록 많이 보내줬다. 생일 즈음에 딱 한 번 고시원으로 와서 비싼 초밥을 사준 것 외에는 딱히 전화통화도 없었지만, 너무 많이 남아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던 소고기 김밥과 새우튀김처럼 용돈은 지나치게 많이 보내줬기에 돈 봉투는 내게 중요한 무엇이 될 수도 없었다. 돈 봉투들은 고시원 내 방, 401호의 붙박이 장롱 서랍에 가득 쌓여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단골이라는 것도 생겼다. 단골들은 오고 또 오고 또 왔다. 너는 곧 행복해질 거야. 그 한 마디 말을 듣기 위해서 계속 왔다. 곧 좋아진다고 했잖아, 그런데 어째서 좋은 일이 생기질 않느냐고, 내가 너한테 돈을 얼마나 많이 퍼부었는데 그 좋은 일, 언제쯤 생기는 거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분명 행복이 엄청나게 밀려 올. 그 사람은 마치 나를 때리기라도 할 것처럼 팔을 휘둘렀으며 콧김을 마구 내뿜더니 갑자기 행운이 더 빨리 다가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엇, 같은 건 없냐며 소리를 질렀다. 행운을 불러오는 무엇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전부터 느꼈지만 지능이 좀 떨어지는 구나, 생각하면서도 나는 반사적으로 있다고 대답했다. 징표라는 걸 쥐어주면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가질 수 있겠지. 그런 수준의 단순함으로 행운을 도와주는 무엇, 이 있다고 대답했다. 장롱 서랍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돈 봉투들. 그 귀여운 징표처럼 그 사람에게도 귀여운 무엇을 쥐어주고 싶었다.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다. 징표란 정말 좋은 것이다. 안심할 수 있으니까. 우기지 않아도 스윽 보여주기만 해도 진실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 우리는 결국 각자의 징표, 그 하나를 찾기 위해 죽지 않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터넷 쇼핑몰을 뒤졌다. 하루 종일 검색을 하다 보니 싸구려 소품을 파는 인테리어 몰에서 어쩐지 상서로운 기운을 품은 듯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약간은 조잡한 연꽃 조형물을 발견했다. 그건 향을 꽂아두는 것이었고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7,800원. 사람들이 날 찾아 올 때마다 연꽃을 슬쩍 보여줬다. 이걸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이 더 빨리 올 거라고. 9만 원만 내세요. 행복을 위해서라면 아주 저렴한 가격 아닌가요?

  사람들은 더더욱 열광했다. 연꽃을 사겠다며 내 방 401호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연꽃을 산 뒤,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람이 나타나자 더 비싼 금액을 속삭이며 자신에게 먼저 구해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원하는 걸 건네주는 동안 나는 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으니, 가끔 인기도 피곤할 때면 7층 건물인 고시원 옥상에 올라가 아무 생각 없이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공중을, 몸을 내던지면 날 잡아주는 손 하나 없이 땅바닥으로 퍽 떨어지고야 말 허공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예전. 사다코 흉내로 친구들을 웃기던 시절. 내가 살던 아파트 동에서 나보다 몇 살 많았던 고등학생이 투신을 했다. 비상구 외부계단에서였다. 중간고사 기간이었기에 난 일찍 잠들어 있었다. 귀신의 집 알바로 평생 살 수 있으니까, 하면서 공부도 안 하던 시절이었기에 초저녁부터 퍼질러 자고 있었다. 깨어났을 땐 모든 일이 끝나 있었다. 다음 날 학교를 가니 모두 그 죽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야, 너희 동에서 그랬잖아, 너 뭐 본 거 없어?

  아침에 대문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을 지나는 동안. 단지 내 상가를 통과해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내가 다니던 학교의 정문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나는 투신 현장을 마치 목격했던 것처럼 알 수 있게 됐다. 언제 사이렌이 시작됐고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는지, 바닥에 들러붙은 피 웅덩이가 얼마나 깊었는지, 화단에 튀어 있던 으깨진 살점과 뇌수가 화단에 어떤 형태로 튀어 있었는지, 아무 것도 보지 못했지만 정밀하게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투신 현장을 알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들었던 것들을 신나게 읊어댔다. 살면서 이렇게 재밌는 영화는 처음 봤다는 듯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거리며. 저 시선들, 절대로 놓칠 수 없다, 생각하면서.

  그래서 처음으로 행운을 불러다 주는 무엇, 을 구해달라며 사정했던 그 사람이 결국 나를 고소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오히려 담담할 수 있었다. 사다코의 시대가 끝났듯 미래를 보는 사람의 시대가 끝난 것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돈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는데요. 돈 봉투 같은 건 다 서랍 속에 차곡차곡 모아놨다고요. 그건 징표잖아요. 당신들이 나를 사랑했다는 그런.

  말해봤자 아무도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운이 너무 빠졌고 심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빨리 뛰어대기에 지갑과 핸드폰만 챙겨서 고시원 밖으로 나갔다. 산책이라도 하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기에 좀 걸었다. 걸었을 뿐인데,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갑자기 버스터미널이 나타났다. 종종 상상해보곤 한다. 그때 만약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면 나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을까. 그러나 그때 나타난 건 버스터미널이었다. 충동적으로 지갑을 열어서 가진 돈으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지역의 버스표를 샀다. 티켓엔 호수 공원이 있는 도시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가게나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상인들은 가게 앞에서 호객을 하다가, 나를 보자 여기가 아니라고 했다. 여기가 아니라니, 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상인들은 팔을 뻗어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너는 이쪽으로 가야한다고. 수많은 팔들이 일정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쪽으로 가고 싶지 않았는데 도열한 그 팔들을 도무지 거스를 수가 없어서 가라는 대로 걸었다. 걸으면서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 사다코를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호수 공원이 있는 도시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를 찬찬히 떠올렸다. 그때 난 견딜 수 없이 슬프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다코와 미래를 보는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이 찢겨나갈 듯한 괴로움을 파렴치하다고 느낄 테니까. 나는 누구에게도, 앞으로도,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다. 울면서 하염없이 걸었다. 걷다 보니 호수에서 아주 먼, 여기까지는 손님들이 영 찾아올 것 같지 않은 허름한 식당에 도착하게 됐다. 문을 열자 사장은 날 보자마자 사다코가 오랜만에 왔다며 악수를 권했다.

  우린 초면인데요? 대답하기도 전에 사장은 카운터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서랍에서 뭘 꺼내고 찾으며 아주 분주했다. 유심히 보고 있자니 목걸이형 이름표에 27이라고 적고 있었다. 빨간색 매직으로 두껍고 큼지막하게, 그래서 위협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숫자 27을 적고 있었다. 다 적은 뒤, 27이 적힌 목걸이형 이름표를 내게 건넸다. 목에 걸라고 했다. 식사는 아침점심저녁 1시간 씩, 숙식은 2층에서 다 같이 담요를 깔고 자야 한다고 했다. 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따라오라기에 우선 따라갔다. 식당 내부에서는 매운 국물 냄새가 배어 있었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커다란 냄비 속, 고기와 버섯과 쑥갓이 잔뜩 들어 있으며 절대로 1인분은 팔지 않는 전골 같은 것이 먹고 싶어졌다. 먹어본 적 없는 그것이 격렬하게 먹고 싶었다. 그리고 사장을 따라서 식당 밖으로 나와 뒷마당으로 몇 걸음 걸어간 순간 난 얼어붙고 말았다.

  식당의 뒷마당엔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우글우글 했던 것이다. 뒷마당은 귀신머리카락처럼 자라난 잡초와 축축한 이끼로 아주 지저분했다. 또 오래된 나무가 몇 그루나 규칙 없이 박혀 있었는데 사방으로 뻗어나간 울창한 가지들 때문에 해도 들지 않아 음침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속에, 1부터 26까지 목걸이형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는 처녀귀신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여긴 SNS에서 아주 유명한 곳이라고 사장은 뒤늦게 알려줬다. 사람들이 귀신체험을 하기 위해 몰려오지. 오늘은 평일이라 손님이 없어. 주말에는 아주 바쁘지만 평일엔 대충 놀면서 지내면 된단다.

  어쩌다 보니 6과 19 사이에 자리를 잡게 됐다. 저기, 안녕. 소심하게 인사를 걸어봤는데 그들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다들 서로를 마치 처음 본 미지의 생명체라도 되는 듯 경계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 아닌가. 그러니 여기엔 사랑이 싹터야 하는데 어째서. 이해할 수 없기에 웃기기까지 했지만 그러나, 나는 곧 알게 되었다. 귀신체험을 하러 온 대부분 멀찌감치 서서 사진을 찍고 도망가기에 바빴지만 아주 가끔 가까이 다가와 너, 이름이 뭐냐고 묻는 관광객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땐 27번이라 대답해야 했다. 다른 귀신들도 자신의 번호를 외쳐댔다. 어떻게든 관심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가진 유일하게 다른 이 숫자를 몹시도 간절하게 외쳐댔다. 우리는 귀신처럼 생겼고,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인생 대신 사다코와 미래를 보는 사람으로 살아왔기에 우리를 마주한 그 누구도 우리를 분간하지 못했으며, 진짜 우리의 이름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기 때문이었다.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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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전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축하인사를 받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소감을 쓰는 중이지만 여전히 얼떨떨하다. 혹시 내가 어떤 코미디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 건 아닐까, 그래서 '당선소식에 희(노는 없음)애락을 분출하는 소설가 지망생의 슬픈 하루라는 쇼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을 혼자 은밀히, 아주 격렬하게 품고 있는 중이다.

  그만큼 기쁘고 두렵고 설레면서도 또 마음이 무거워진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결국 외로울 수밖에 없고, 지난한 고통 속에서 내게 유일한 위로는 텍스트들이었으니, 나는 진심으로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그 힘으로 이제껏 살아왔다.

  부족한 글을 믿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그저 감사드린다. 또 다른 위로를 묵묵히 만들어가는 것으로 주신 기회에 보답하겠다. 소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김현영, 강영숙 선생님께도 고개 숙여 인사드린다.

  이제껏 나를 참아주신 엄마아빠에게 모든 영광을 돌린다. 두 분께 웃음과 행복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바다, 언니, 형부, 재준, 주아, 내 인생의 친구 래경에게도 사랑을 보낸다. 좋은 소설을 쓰도록 노력하겠다. 그게 내가 할 일이다. 오직 그것 뿐이다.

● 1983년 서울 출생 
●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 방송프리랜서


 

  <심사평>

  

  문장력과 구성력, 무엇보다 상상력의 참신함에서 수준이 높아

  202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 분야에 응모한 작품들은 지난해에 비해 편수는 다소 적었으나 문장력과 구성력, 무엇보다 상상력의 참신함에서 수준이 높았다. 올해 응모 작가들은 소설의 빈곤이라는 말이 풍문에 불과함을 웅변해주고 있어서 심사자들을 기쁘게 했다.

  심사자들은 총 응모작 338편을 직접 예심해 6편을 본심 대상작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이를 꼼꼼히 다시 읽으며 토론을 진행하여 당선작을 선정하였다.

  '겨울의 테두리'는 북경의 중국 미술대학 유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예술가 소설로 설정과 배경 묘사가 신선했으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고뇌가 범박하고 평이했다. '매트리스'는 양성애와 동성애 사이의 갈등을 핍진하게 묘사하려 한 시도가 돋보였으나, 특수한 성적 정체성을 통해 보편적인 사랑의 본질을 전달하는 제대로 된 메시지의 구축에 이르지 못했다.
'부진정부작위범'은 개와 사람이 뒤바뀌는 이야기로 발상은 재미있으나 반향과 감동이 없는 전개를 보였다. '펄'은 '커피숍알바'라는 한정된 상황에서 등장인물 네 사람의 관계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훌륭했으나 주제면에서 유의미한 문제의식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마지막에 심사자들은 전신마비로 식물인간의 상태지만 의식이 살아있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멀어져가는 아내와 과거를 묘사한 '모노그램'과 좋지 못한 외모를 타고난 여주인공이 집단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심리를 묘파한 '27번'을 놓고 토론했다.

  '모노그램'은 식물인간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는 낯선 감각으로 독자의 공감을 빚어낸 점이 빛났으나, 의미심장한 설정에 비해 후반부가 너무 평이하고 상식적이었다.

  그 결과 심사자들은 자기 풍자에서 사회 풍자로 발전하는, 쉽지 않은 스토리를 안정된 문장으로 끌고 가면서 진한 페이소스를 그려낸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여 '27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본심의 나머지 다섯 작품을 비롯하여 올해의 응모작들은 매우 수준이 높고 아까운 작품들이 많았음을 밝히면서 응모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엄창석, 이신조, 이인화, 하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