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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스마일 점퍼 / 조우리

 

눈꺼풀 위로 쌓인 생애의 나지막이
그림자 당기면서 저 혼자 저무는 때
대머리 독수리처럼 감독만이 너머였다


녹말가루 풀어지듯 온몸을 치울 때까지
일 년에 쓰는 시가 몇 편이 되겠는가
평생을 바치는 것은 무엇쯤이 되던가


제 높이 확인하고 저려오는 가슴처럼
꽃봉오리 깊은 곳에 진심이 울었겠지
끝없이 닿는 중인데 그 끝 간 데 넘는 사람


죽었던 문장마저 혀끝으로 몰고 가서
흥건히 마른 허공 핥아 보던 나무의 피
돌이켜 떨어지는 순간 칸타빌레 붉디붉다


 

  <당선소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9년 소중한 선물 받은 듯 울컥

 조금 멀리 왔을 뿐인데 덜컥 소중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가슴이 저립니다. 9년이라는 응모 기간 동안의 주마등이 스칩니다. 떨어질 때마다 또다시 글을 쓰게 만드는 무언의 지표가 마음속에 있었고, 마침내 그것이 물보라를 만들어 제게는 무엇보다 좋은 스승이 되어주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시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역 백일장에 참가하기 위해 먼 길에 올랐던 학생을 미쁘게 보시고, 그날 선생님은 제게 시조집 보따리와 돌아갈 차비를 건네주시며 시조를 오래 간직하란 듯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 사랑의 마음에 내내 속으로 울었습니다. 이후에도 메일을 주고받으며 좋은 시조 작품과 함께 당신이 쓰신 작품들을 보내주시며, 우리 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셨던 분이십니다. 생활이 어려울 때에도 도움을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니 같은 분이셨습니다. 어쩌면 시조보다 시조를 쓰시는 시인의 마음을 더욱 아끼고 동경하였던 그때, 그분의 마음이 지금도 제 곁에 많은 귀감으로 남아 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마산에 계신 선생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정수자 심사위원님께 뜻깊은 인사를 남기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님과 조카 나아에게 깊은 고마움 전합니다.

● 1983년 여수 출생
● 2008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심사평>

 

  청춘들이 뚫고 가는 현실, 생의 대목… 밀도 있고 절묘하게 포착

 각자도생이 절실한 시절이다. 응모작에도 각고의 시간을 건너 살아남은 말들로 빚어낸 발화가 많이 보였다. 자기 앞의 현실을 헤쳐 가는 시적 도생들을 곰곰 읽으며 시조의 신춘을 열어젖힐 작품을 가려봤다.

 끝까지 겨룬 응모작은 ‘로댕의 손’ ‘버거’ ‘데칼코마니’ ‘조우’ ‘마법상점’ ‘스마일 점퍼’ 등이었다. ‘로댕의 손’ ‘버거’ ‘데칼코마니’ 등은 발랄하고 활달한 상상력을 정형에 조화롭게 녹여 담는 신선한 시적 언술을 보여줬다. ‘조우’ ‘마법상점’ 등은 당면한 현실의 문제들을 안정감 있게 갈무리하는 형식 운용이 듬직했다. ‘스마일 점퍼’는 이들을 아우르는 시적 언술과 정형의 넓은 보폭 등의 면에서 두드러졌다. 동봉 작품들에서 펼쳐 보이는 다양한 상상력의 개진도 이후를 기다리게 한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올린다.

 ‘스마일 점퍼’는 이 시대 청춘들이 뚫고 가는 현실의 난도 같은 것들을 포착하는 밀도와 내성이 단단한 작품이다. 높이뛰기의 두려움인 ‘높이’와 글쓰기의 어려움인 ‘깊이’를 교차하고 중첩하며 ‘끝없이 닿 중’인 생의 대목들을 절묘하게 잡아냈다. ‘끝 간 데’까지 넘는 최고라도 그것을 다시 넘어야 사는 높이뛰기나 ‘죽었던 문장을 혀끝으로 몰고 가’야 하는 글쓰기나, 각자 삶에서의 도생임을 충실히 새기고 있다. 진술 과잉으로 비친 이전의 쓰기에서 압축과 비유 등으로 깊이를 파고든 숙련의 시간이 짚인다. 이후도 ‘평생을 바치는 것’ 그 너머의 ‘너머’를 향해 시조의 이름으로 계속 나아가기를 바란다.

 조우리씨에게 축하와 기대를 모아 보낸다. 다시금 응모작 준비에 들어서는 도전자들의 높이뛰기에도 바람을 얹는다.



심사위원 : 정수자